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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지축마골피(天方地丑馬骨皮)는 오늘날 대중들 사이에서 ‘천한 성씨’로 알려진 7개의 성씨를 이르는 말로, 인터넷에 유포되는 출처 불명의 낭설에 따르면 천(天)은 무당, 방(方)은 목수, 지(地)는 지관, 축(丑)은 소백정, 마(馬)는 말백정, 골(骨)은 뼈백정, 피(皮)는 가죽백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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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민의 성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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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지축마골피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천방지축마골피. 언어; 주시 · 편집. 천방지축마골피 또는 천방지추마골피는 문헌 기록이 없어 출처와 유래를 알 수 없는 대한민국의 도시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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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7/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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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천방지축마골피는 천민 성씨다? | 중앙일보

… 중앙일보 페이스북 ‘좋아요’를 누르고 더 많은 기사를 만나보세요 – 카드뉴스,천방지축마골피,장윤정 인턴,박범준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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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joongang.co.kr

Date Published: 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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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지축마골피 … 한국인 성씨에 얽힌 이야기 – 글로벌이코노믹

천방지축마골피혹은 천방지추마골피는 문헌 기록이 없어 출처와 유래를 알 수 없는 대한민국의 도시전설이다. 천(天)은 무당, 방(方)은 목수, 지(地)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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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g-enews.com

Date Published: 1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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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한의 직언직설] 천방지축 마골피의 득세 … – 충청헤럴드

어제 어떤 모임자리에서 ‘천방지축마골피’라는 말이 떠돌았다. 어려서 어른들이 어쩌다 쓰신 말이라 그 뜻이 궁금했다. 그러다 국어선생님에게서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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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cherald.kr

Date Published: 5/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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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천방지축마골피”는 천민의 성씨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성(姓)인 천방지추마갈피(千方池秋馬葛皮)와 천민 계급인 천방지축마골피(天方地丑馬骨皮)와의 혼돈에서 발생한 오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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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akong.tistory.com

Date Published: 9/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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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지축마골피’는 천민 성씨? – 오마이뉴스 모바일

마골피’는 20대 초반 여성 솔로 가수로, 부르는 노래의 장르는 록발라드라고 한다. … 천방지축마골피 성씨 중국 유래, 임금 하사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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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ohmynews.com

Date Published: 8/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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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천방지축 마골피

  • Author: 이천운天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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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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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천방지축마골피[1] 또는 천방지추마골피는 문헌 기록이 없어 출처와 유래를 알 수 없는 대한민국의 도시전설이다.

속설 [ 편집 ]

천(天)은 무당, 방(方)은 목수, 지(地)는 지관, 축(丑)은 소를 잡는 백정, 마(馬)는 말을 다루는 백정, 골(骨)은 뼈를 다루는 백정, 피(皮)는 가죽을 다루는 백정이라는 내용의 속설이 있다고 한다.[2] 그러나 이 속설은 역사서나 문헌에 기록이 없어 유래를 알 수 없으며, 조선왕조실록에도 해당 성을 가진 백정은 발견되지 않는다.[3] 역사적으로 유명한 백정으로는 구한말 만민공동회에서 연설한 박성춘, 박서양 부자, 1923년 형평사운동을 전개한 백정 이학찬, 장지필 등이 있다.

전국 약 3만여권의 족보를 소장하고 있는 부천족보전문도서관의 김원준 관장은 “천민은 기본적으로 성씨에 대한 기록이 없다.”고 단언했다. 천민은 성씨를 가지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성을 가진 사람의 조상은 천민’이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 민란 등 중죄를 일으킨 이에게 동물을 뜻하는 글자를 성씨로 부여하는 일은 있었지만 후손들이 죄인임을 뜻하는 그 성씨를 잇지 않고 다른 성씨로 바꾸기 때문에 대대로 이어지는 일은 없다.”며 “‘천방지축마골피’와 같이 희귀한 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중국에서 넘어 와 정착한 이라든지 새 왕조를 여는데 공헌한 개국공신으로서 임금에게 새 성씨를 하사받은 이의 후손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4]

김진우 한국성씨연구소장은 이 속설에 대해 “우리나라는 조선 중기 이후 신분제의 동요로 상민들이 돈을 주고 현달한 다른 족보에 이름을 올린 경우가 많았다. 희성씨가 종원수가 상대적으로 적다하여 천계(賤系)인 것처럼 말하지만 근거가 전혀 없는 악의적 통설이다. 18세기 이후 탁보(잘못된 족보)가 성행하면서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희성씨를 마치 천계인 것처럼 퍼뜨린 것이다.” 하였다.[5]

역사학자 이덕일 박사는 “천방지축마골피는 천계가 아니다.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천(千)씨, 방(房)씨, 방(方)씨, 지(池)씨 등은 중국에서 귀화한 성씨이며, 천계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러한 통설은 호사가들이 악의적으로 만든 내용이 아무런 검증 없이 무차별적으로 사용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 경우이다.”라고 하였다.[6]

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송종복 사학 박사는 “천민은 성(姓)이 없었다. 전 국민이 성을 갖게 된 것은 갑오경장(1894년)부터이며, 갑오경장 전에 성을 가진 인구는 30%에 불과했지만, 신분제가 폐지되고 1909년 민적법이 시행됨에 따라 흔한 성씨로 숨어든 천민의 후손들이 자신의 신분을 ‘카무플라주(camouflage)’하는 의미에서 ‘천방지축’(天方地軸ㆍ하늘 방향과 땅의 축이 어디인지 모른다)에 착안해 입지보전책으로 퍼트린 낭설이다.”라고 했다.[7]

국사편찬위원회 편사부장을 지낸 박홍갑 박사도 저서 《우리 성씨와 족보 이야기》를 통해 천방지축마골피에 관련된 도시전설이 잘못된 오해라고 했다. 또한 17세기 말까지 성관을 가진 인구 비율은 50% 내외였지만, 그 후 100년이 지나서는 90%를 넘는 사람이 성관을 지닌 것으로 파악됐다며, 영조 때 한양 한복판에 인쇄 시설을 갖추고 족보 장사를 하다가 적발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성씨 [ 편집 ]

축씨는 1930년, 1985년, 2000년 실시한 인구조사에서 단 한명도 없어 존재하지 않는 성씨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수 [ 편집 ]

가수 마골피의 예명을 여기서 따온 것으로 알려졌다.[29]

천방지축마골피 … 한국인 성씨에 얽힌 이야기

천방지축마골피 … 한국인 성씨에 얽힌 이야기 이미지 확대보기 고양부 vs 천방지축마골피 … 한국인 성씨에 얽힌 이야기

고양부 vs 천방지축마골피 … 성씨에 얽힌 이야기고양부와 천방지축마골피가 주목을 받고있다.고양부와 천방지축마골피는 모두 성씨에 읽힌 이야기다.제주도에는 고양부 재단이 있다.천방지축마골피 혹은 천방지추마골피는 천(天)은 무당, 방(方)은 목수, 지(地)는 지관, 축(丑)은 소를 잡는 백정, 마(馬)는 말을 다루는 백정, 골(骨)은 뼈를 다루는 백정, 피(皮)는 가죽을 다루는 백정이라는 내용의 속설이 있다.제주의 시조신이 솟아올랐다는 신화의 무대인 제주 삼성혈(三姓穴)의 유지·관리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제주 삼성혈은 조선시대 제주목사 등 중앙에서 파견한 관리들의 관심 여부에 따라 관리 및 정비가 좌우되어 오다가 일제강점기 때 고양부 삼성(三姓)의 대표였던 부성찬(夫聖贊)이 삼성시조제사재단(三姓始祖祭祀財團)이라는 법인체 설립을 신청하여 1921년 인가를 받았다.천방지축마골피혹은 천방지추마골피는 문헌 기록이 없어 출처와 유래를 알 수 없는 대한민국의 도시전설이다.천(天)은 무당, 방(方)은 목수, 지(地)는 지관, 축(丑)은 소를 잡는 백정, 마(馬)는 말을 다루는 백정, 골(骨)은 뼈를 다루는 백정, 피(皮)는 가죽을 다루는 백정이라는 내용의 속설이 있다고 한다.이 속설은 역사서나 문헌에 기록이 없어 유래를 알 수 없으며, 조선왕조실록에도 해당 성을 가진 백정은 발견되지 않는다.역사적으로 유명한 백정으로는 구한말 만민공동회에서 연설한 박성춘, 박서양 부자, 1923년 형평사운동을 전개한 백정 이학찬, 장지필 등이 있다.전국 약 3만여권의 족보를 소장하고 있는 부천족보전문도서관의 김원준 관장은 “천민은 기본적으로 성씨에 대한 기록이 없다.”고 단언했다. 천민은 성씨를 가지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성을 가진 사람의 조상은 천민’이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 민란 등 중죄를 일으킨 이에게 동물을 뜻하는 글자를 성씨로 부여하는 일은 있었지만 후손들이 죄인임을 뜻하는 그 성씨를 잇지 않고 다른 성씨로 바꾸기 때문에 대대로 이어지는 일은 없다.”며 “‘천방지축마골피’와 같이 희귀한 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중국에서 넘어 와 정착한 이라든지 새 왕조를 여는데 공헌한 개국공신으로서 임금에게 새 성씨를 하사받은 이의 후손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4]천씨는 일천 천(千)을 사용하는 영양 천씨와 하늘 천(天)을 사용하는 천씨가 있다.천(千)씨는 영양 천씨 단본이며, 『영양천씨매헌공가승보(潁陽千氏梅軒公家乘譜)』에 의하면 시조는 명나라 홍무(洪武) 연간에 도총장(都總將), 판도승상(版圖丞相)을 역임한 천암(千巖)이다. 중시조 천만리가 명나라 영량사 겸 총독장(領糧使兼摠督將)으로 조선에 파병되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왜군을 섬멸하는 공을 세우고, 조선에 귀화하여 한국 천씨가 비롯되었다.천(天)씨는 2000년 통계청 조사에서 8,416명으로 조사되었다. 역사 인물로 조선 정조 4년(1780년) 생원시에 합격한 천명익(天命翊)이 있다.방씨는 대표적으로 모 방(方)을 사용하는 온양 방씨와 방 방(房)을 사용하는 남양 방씨가 있다.방(方)씨는 중국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의 10세손인 유망황제(楡罔皇帝)가 장남인 뢰(雷)에게 사패지(賜牌地)를 주어 하남성(河南省) 방산(方山) 지방에 봉하였고, 지명을 따서 방씨로 득성하였다. 방뢰의 134세손 방지(方智)가 당(唐)나라 한림학사(翰林學士)로서 669년 나당동맹(羅唐同盟)의 문화사절로 신라에 동래하여 온양 방씨의 시조가 되었다. 6세손 방운(方雲)이 고려 태조를 도와 중무장군(中武將軍)과 대장군(大將軍)을 거쳐 좌승지(左承旨), 지성사(知省事) 등을 역임한 후 광종 때 좌복야(左僕射)에 올랐으며, 993년(성종 12) 온수군(溫水君)에 봉해졌다. 역사 인물로 방휴(方休), 방우선(方于宣), 방순 등이 벼슬을 지낸 것이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고, 방강, 방유령(方有寧), 방호의, 방덕룡 등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순신 장군의 장인이 보성군수 방진(方震)이다.방(房)씨는 당 태종 때 재상인 방현령의 둘째 아들 방준(房俊)이 당나라 8학사 중 한 사람으로 고구려에 들어와 당성(唐城)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방현령의 후손으로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에 오른 방계홍(房季弘)을 남양 방씨의 세조로 한다.지씨는 대표적으로 못 지(池)를 사용하는 충주 지씨와 슬기 지(智)를 사용하는 봉주 지씨가 있다.충주 지씨(池)의 시조 지경(池鏡)은 중국 송나라 태학사로서 광종 때 사신으로 고려에 왔다가 귀화하여 벼슬이 금자광록대부태보평장사에 이르렀다고 한다. 《고려사》에 지자심(池資深), 지윤보(池允輔), 지윤, 지용수(池龍壽,) 지용기(池湧奇) 등이 높은 관직을 지낸 것이 기록되어 있다. 고려 말 재상에 오른 지윤(池奫)의 사위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장남 진안대군이며, 지윤의 딸 성빈 지씨는 정종(定宗)의 후궁으로 덕천군과 도평군의 어머니고, 숙의 지씨는 의평군, 선성군, 임성군의 어머니다. 지용기의 아들 지유용도 조선시대 음서로 판의주목사(判義州牧使)를 역임하였으며, 지용수의 외손자는 세종 때 집현전 대제학을 지낸 최만리다. 단종 때 우의정 정분(鄭苯)의 생질이 지정(池淨)이고, 성종 때 영의정 윤필상의 사위가 현감(縣監) 지준(池浚)이며,[13] 그의 현손이 지여해와 지덕해다.봉주 지씨(智)의 시조 지채문(智蔡文)은 1026년(현종 17) 상장군(上將軍)·우복야(右僕射)가 되고 1031년(덕종 즉위) 1등공신에 추록된 명장으로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추씨는 가을 추(秋)를 사용하는 추계 추씨와 추나라 추(鄒)를 사용하는 추씨가 있다.추계 추씨(秋)의 시조 추엽(秋饁)은 송나라 고종 때 사람으로 1141년 문과에 급제했으며 관직이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다. 그는 고려 인종 때 가솔을 이끌고 함흥(咸興) 연화도에 정착하여 한국 추씨의 시조가 되었다. 손자 추적(秋適)은 고려 충렬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민부상서, 예문관 대제학을 역임하며[15] 시랑국학교수(侍郞國學敎授)로 재임할 때 『명심보감』을 엮어 가르쳤다.[16]마씨는 말 마(馬)를 사용하는 장흥 마씨, 목천 마씨와 삼 마(麻)를 사용하는 영평 마씨, 상곡 마씨가 있다.장흥 마씨(馬)는 은나라 군자 마완(馬浣)을 시조로 하고, 백제 개국공신 마려(馬黎)를 득관시조로 하며,[17] 고려 선종 때 판개성윤(判開城尹)을 지낸 마혁인(馬赫仁)을 기세조로 한다. 고려사에 마천린이 1363년(공민왕 12) 1등공신에 책록되었고, 마천목(馬天牧)은 1401년(태종 1) 좌명공신에 녹훈되어 정1품 장흥부원군에 봉해졌다.[18] 또한 마승(馬勝) 등 자손들도 음서로 관직에 진출하고 시호(諡號)가 추증된 사실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19] 마천목의 사위가 신숙주의 숙부인 신평(申枰)이고, 그의 외손녀가 영의정 윤기견과 혼인하였으며, 외증손녀가 조선 제10대 왕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로 조선 왕실과도 혈통으로 연결된다. 목천 마씨는 신정군(新定君) 마경수(馬坰秀)가 많은 양인과 100경(頃)이 넘는 토지를 점유하고 있던 호족으로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고, 아들 목사 마희원은 안렴사 김사렴(金士廉)의 딸과 혼인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마희경, 마상원, 마현겸, 마맹하, 마지휘, 마사인, 마한량 등이 사마시와 문과에 급제하였다. 태종의 제1서자 경녕군(敬寧君)의 1계부인도 군부인(郡夫人) 마씨(馬氏)다.골(骨)씨는 조선시대에 강화 골씨가 있었으나 현재는 이어지지 않고 사라진 성씨이다. 계공랑(啓功郞) 품계로 기자전참봉(箕子殿參奉)을 지낸 골귀손(骨貴孫)의 아들 골인서(骨仁瑞)가 조선 선조 1년(1567년) 진사시에 급제하였다.피씨는 가죽 피(皮)를 사용하는 홍천 피씨, 괴산 피씨가 있다. 피(皮)씨는 중국 천수(天水)에서 계출된 성씨이다.김재희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email protected]

[윤기한의 직언직설] 천방지축 마골피의 득세

[충청헤럴드=윤기한 논설고문]

어제 어떤 모임자리에서 ‘천방지축마골피’라는 말이 떠돌았다. 어려서 어른들이 어쩌다 쓰신 말이라 그 뜻이 궁금했다. 그러다 국어선생님에게서 그 뜻을 배웠다. 다급해서 허둥대는 모습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그러다 어리석은 사람이 자기 갈 바를 몰라 두리번거릴 때 쓰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늘 한 구석으로 갔다가 다시 땅속으로 갔다 하면서 갈팡질팡’하는 모양을 이르는 말이라 ‘당황해서 허둥지둥 방향을 못 잡고’ 날뛰는 사람을 지칭한다는 것을 나중에 터득했다.

이 ‘천방지축마골피(天方地軸馬骨皮)는 고려와 이조시대에 천민(백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천은 무당, 방은 목수, 지는 지관, 축은 소를 잡는 백정, 마는 말을 다루는 백정, 골은 뼈를 다루는 백정 그리고 피는 가죽을 다루는 백정의 지칭어였다고 한다. 이 일곱 개의 성씨는 특히 조선시대에 대표적인 천민의 성이었다는 속설이 있다. 이 일곱 자 성어는 어쩌다 ’천방지추마갈피‘로 현대적 변전을 거듭해서 일반인들의 범상한 성명으로 정착했다. 그와 동시에 이 성구 일곱 글자 성씨에 대한 세속적인 함의는 여전히 천민의식을 부각시키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 성을 가진 사람을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사람이 있다. 방씨 성의 의사 사위를 본 치과의사 친구도 가끔 어설픈 넋두리를 할 때가 있다. 요즘에는 추씨 성을 가진 사람이 득세하며 이 ’천방지추마갈피‘ 성씨가 크게 클로즈업되어간다.

상(相)이 없이 무심(無心)한 도인(道人)으로 추앙되는 ‘설악 오현 큰 스님’이 입적하며 남긴 열반송(涅槃頌) “천방지축 기고만장 허장성세로 살다보니/온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억!”에도 첫 마디가 ‘천방지축’이다. 만사에 경계가 없이 무애자유(無涯慈幼)한 탈속한(脫俗漢)의 큰 스님이 중생들의 대표적인 행위를 지적한 전반부, 사람들은 욕심이 많아서 매사에 금세 득도하려 허둥대기 십상인데 그러기에 오히려 단순한 동물처럼 혼잡한 생각에 매달리지 말고 깨달음을 구해야한다고 가르치는 후반부 모두를 겸손하게 수용하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으냐고 타이르신 말씀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 며칠 사이에 높은 파고로 술렁대는 법무부와 대검찰청의 맞장 뜨기는 국가와 국민을 축생(畜生)으로 취급하는 정치집단의 오만불손이 극치로 달려가는 양상을 띠고 있다. 이게 웬 미국서부영화 스타일의 결투장면인가. 살아 있는 정권에 칼을 들이대도 좋다면서 임명한 검찰총장과 한 정당의 대표를 지낸 판사출신 5선 국회의원 법무부장관이 백주의 결투를 벌였다. 검찰개혁이라는 명제를 앞세워 권력의 진미간장을 맛보이겠다는 각오로 치솟는 대립각은 양자의 위치와 능력과 인기를 한꺼번에 약탈, 파기, 멘붕의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은가. 승패의 혈투를 예상하며 기대하는 중생의 뿔난 눈초리에 가시가 돋아날지도 모른다. 추장관 대 윤총장의 ‘백주의 혈투’가 점입가경이 될 성 싶은 기미가 국민을 불안과 공포와 혐오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트리는 코미디 장면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잖은가.

어느 중앙일간지 헤드에 ‘윤석렬 허수아비 만들기 작전’으로 등재된 내용이 ‘천방지추’의 추미애 법무장관이 어쭙잖게 밀어붙이는 트릭을 까밝히고 있다. 여기에 실린 내용은 청와대와 여권이 검찰의 수사 지휘를 하던 대검 간부 전원을 교체했다는 사실의 적시였다. 이어서 추미애장관이 가라사대 ‘윤 총장이 제 명을 거역’했다고 구차하게 변명한 내용이 밝혀져 있다. 그리고 여권을 수사하는 서울지검의 수사팀에 대한 검찰 직제 교체 불가피성과 앞으로 검찰의 특별수사팀 설치를 사실상 봉쇄하는 추미애 장관 지시 1호로 승인절차 필요성과 요구발언을 강력하게 기록해 놓았다. 게다가 청와대와 여권은 검찰의 ‘청와대 압수수색은 검찰의 최후 발악’이라고 조폭 투의 불만질책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심지어 윤 총장 탄핵설까지 들먹이는 공포분위기를 전달하고 있다.

그나저나 ‘천방지축’의 득세는 바야흐로 ‘천방지추’의 활약상을 과시할 단계에 이른 모양이다. 추 장관이 단행한 윤 총장 참모들에 대한 인사조치 전날 시작된 장관 대 총장의 인위적 단말마적 대결은 윤 총장이 “법령에 따라 법무부가 인사안을 먼저 내놓아야 만나서 협의하자”는 제안에 추 장관은 “내겐 인사안 없다. 청와대에 있으니 그 쪽에서 받아라”며 엉뚱한 말로 받아쳤던 것 같다. 추 장관은 8일에 시행한 인사 당일 국회 법사위에 출석해 “모든 일정을 취소한 채 무려 6시간이나 윤 총장을 기다렸다”고 토로한 바가 있다. 그걸 트집 잡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어눌한 어조로 “그냥 넘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윤 총장을 ‘항명’으로 몰아 세워 징계절차에 들어가겠다는 계략을 보여주고 있다. ‘적폐’대상으로 둔갑시키고 있다는 게 아닌가. 얼마나 기똥찬 전략발굴인가.

그러나 앞서 노인들 회식모임 자리에서는 더더욱 뱃살 고칠 예상 관전평 시나리오가 작성되었다. 예순 여덟 살 막내 늙은이가 앞장서 신파조 대사를 읊조린다: “요새 인끼 높은 윤석렬 총장이 대통령이 되면 세상이 어찌 돌아갈까? 알아맞히기 ‘스무고개’ 한번 해보지 않을래, 여보게들?” 얼핏 엄청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듣는둥 마는둥 깔고 뭉갤 것 같은 당초의 분위기가 금방 돌연변이가 되었다. 모두가 대환영의 멋을 부린다. ‘멋진 소리’라며 그 말을 되받아 “그래 ‘스무고개’ 넘어 보세나.” 얼씨구절씨구 신이 난 좌중은 흥분의 도가니로 바뀌었다. 극노인 몇 사람이 맛있게 먹은 점심밥에 옛날 청춘시절 많이 즐겼던 ‘스무고개’라 마냥 흥겹기만 하다. ‘스무고개’ 마지막은 ‘천방지축(추)’의 득세가 ‘9988’의 노객들에 의해서 ‘추풍낙엽’으로 끝장을 날려버렸다. 진정 그럴까? 팬터그라프 우스개로 들어둘지어다.

정말 “천방지축마골피”는 천민의 성씨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성(姓)인 천방지추마갈피(千方池秋馬葛皮)와 천민 계급인 천방지축마골피(天方地丑馬骨皮)와의 혼돈에서 발생한 오류입니다.

상식적으로 천민은 성(姓)이 없는 신분이기에 천방지추마갈피(千方池秋馬葛皮)가 천민의 성씨라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조선시대에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등의 몇 차례 혼란 속에 신분상승을 위해 돈으로 급조된 성이라 반박하는 이도 있지만 천방지추마갈피(千方池秋馬葛皮)는 이미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성으로 이 또한 설득력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지씨의 경우 고려 초, 4대 임금인 광종에게 성을 하사받아(약 951년) 그 후로 고려 때에만 무려 36번의 최상급 벼슬(문하시랑 평장사)를 역임한 명문 중의 명문가문이고요.

그렇다면, 천방지축마골피가 천하다는 얘기는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요?

천방지축마골피(天方地丑馬骨皮) 성씨와는 무관하게 7대 백정(白丁)을 한문으로 부르던 것이었습니다.

天은 무당

方은 목수나 미장이

地는지관 등 요즘의 장의사

丑은 소백정

馬는 말백정

骨은 뼈(고리)백정

皮는 가죽백정(갖바치)

를 말하는 것입니다.

갑오경장(甲午更張)이전까지는 천민은 이들뿐만 아니라 관노비(官奴婢), 사노비(私奴婢), 소작농(小作農) 등이 더 있었으며 양민 대부분과 중인도 공식적으로는 성(姓)이 불분명했습니다. 왜냐하면, 관청이 인정하는 성(姓)을 가졌다면 양반의 자손으로 군역(軍役)이 면제되었기 때문에 양반가문의 족보는 관청에서 관리하였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에서 족보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 군적관리가 강화되고 중인과 양민이 공명첩을 사서 양반이 되면서 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국가에서 이들을 공식문서인 족보로서 양반으로 인정할 필요 때문이지요. 갑오경장(甲午更張) 이전까지 이들을 부르는 호칭은 7대천민은 ‘동대문 밖 갖바치 돌쇠’, 농노(소작농)와사노비는 ‘김(주인의 姓)가네 개똥이’등과 같이 불렸습니다.

갑오경장(甲午更張)으로 전 국민이 성(姓)을 갖게 되었고 1909년 일제에 의해 호적이 정리되면서 천민들은 주인의 성(姓)을 쓰거나 직업과 발음이 비슷한 성(姓)으로 호적을 등록하여 공식적으로 전 국민이 성(姓)을 갖게 된 것이죠.

또한, 족보관리는 군역 등에 신분차별을 둘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족보관리가 관청이 아닌 각 문중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원칙적으로 족보는 예를 들어 ‘경주김씨 계림군파 대종파 공주문중’일 경우 문중보(공주문중)는 10년 단위, 종파보(대종파)는 20년 단위, 파보(계림군파)는 30년 단위, 대종보(경주김씨)는 60년 단위로 만들게 되는데 일본강점기에는 족보를 만드는 과정에서 공권력에 의한 검증이 없었기 때문에 너도나도 특정성씨라고 주장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시대 족보는 본보(本譜)와 별보(別譜)로 구분하였으며 갑오경장 이전 족보에서 가계의 확인이 불가능한 것을 별보라 했는데 별보의 분량이 본보의 몇 배가 되었다고 합니다.

혼란했던 한국전쟁 이후 1955년부터 57년 사이에 족보 대부분이 다시 만들어졌는데 아마도 전쟁으로 없어진 족보와 친인척확인목적보다는 각 문중의 경제적 목적이 더 큰 것으로 보이며 이때에 본보(本譜)와 별보(別譜)의 구분이 슬그머니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성(姓)을 갖게 되면서도 신분차별을 없앤 갑오경장(甲午更張)이전에 7대 천민을 비하하면서 부르던 천방지축마골피(天方地丑馬骨皮)가 발음이 비슷한 천방지추마갈피(千方池秋馬葛皮)로 와전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덧붙여 일부에서 양반이 아니라도 성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역사기록을 위해 임의로 붙인 것일 뿐입니다. 예를 들면 임꺽정이 임씨가 맞을까요? 실록에 임꺽정의 형은 가도치로 가씨로 나옵니다. 성이 아니라 산도적이니 林으로 임꺽정의 형은 갓받치였으니 “가”로 표기한 것입니다. <어떤오후>

[출처 : 네이버 지식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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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지축마골피’는 천민 성씨?

▲ 29일 오후 실시간 인기검색어. 신인가수 ‘마골피’가 2위다. ⓒ . 오는 2월 중순 ‘마골피’라는 가수가 등장한다는 소식이 29일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마골피’라는 검색어가 , 등에서 인기검색어에 오르면서 네티즌들의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마골피’는 20대 초반 여성 솔로 가수로, 부르는 노래의 장르는 록발라드라고 한다.

장윤정의 ‘어머나’, 이승철의 ‘서쪽 하늘’ 등을 작사·작곡한 윤명선 프로듀서가 ‘마골피’의 음반 제작과 매니지먼트를 맡았다는 것과 ‘동방신기’의 믹키유천, ‘슈퍼쥬니어’ 김희철·강인·신동이 마골피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다는 소식은 알려졌지만 얼굴은 공개되지 않아 많은 네티즌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천방지축마골피 성씨 중국 유래, 임금 하사 많아”

그러나, ‘마골피’하면 뒤이어 ‘천방지축’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 흔히들 천·방·지·축·마·골·피 이 7개 성씨는 조선시대 천민들의 성씨라고 알려진 것에서 이 말이 유래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상식. 현재 주변에 ‘천방지축마골피’ 7개 성씨 중 하나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 조상을 천민이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3만여권의 족보를 소장하고 있는 부천족보전문도서관의 김원준 관장은 “천민은 기본적으로 성씨에 대한 기록이 없다”고 단언했다. 천민은 성씨를 가지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 성을 가진 사람의 조상은 천민’이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왕조시대에는 민란 등 중죄를 일으킨 이에게 동물을 뜻하는 글자를 성씨로 부여하는 일은 있었지만, 이 경우에도 그 성이 자손에게 대대로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죄인임을 뜻하는 성을 자손들이 잇지 않고 다른 성으로 바꿔버리기 때문.

김 관장은 “현재 ‘천방지축마골피’와 같이 희귀한 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중국에서 넘어 와 정착한 이라든지 새 왕조를 여는데 공헌한 개국공신으로서 임금에게 새 성씨를 하사받은 이의 후손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이어 “성씨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가 생겨났다가 하는 것”이라며 “족보가 대중화되는 시점부터 누가 양반이고 천민인지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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