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부 : 영원히 돌아오는 인생, 우리는 얼마나 무거워질까? 100 개의 자세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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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당백 시즌2) 11권 1부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부 :
학창시절 한번쯤 겨드랑이에 끼고 다녔을 법한 바로 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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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나무위키:대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이러한 허무한 인생을 두고 하는 표현이다. 라고 서술되어 있었으나, 이 작품을 단순한 허무주의로 해석하는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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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10/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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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교보문고

살아 있는 신화가 된 작가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밀란 쿤데라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를 바탕으로 디자인한 신선한 표지와 장정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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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yobobook.co.kr

Date Published: 3/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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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YES24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국내 총 판매량 100만 부에 달하며, 민음사에서는 밀란 쿤데라 전집(총 15권)을 출간하기도 했다. 쿤데라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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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yes24.com

Date Published: 1/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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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네이버 블로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이러한 4명의 인물들의 무거움과 가벼움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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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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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브런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1) 토마시와 테레자 – 우연과 운명, 그 사이를 교향곡처럼 작곡하는 커플 · 2) 사비나와 프란츠 – 결코 닿을 수 없는 타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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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runch.co.kr

Date Published: 4/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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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체코어: Nesnesitelná lehkost bytí)은 프랑스로 망명한 체코 출신의 작가인 밀란 쿤데라가 1984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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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8/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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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주제 연구

그리고 소설의 중심주제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누구보다도 주인공 사비나와 관련을 갖는데, 사비나가 배반에서 배반으로 끝없는 탈출을 감행하면서 끝내 느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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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ci.go.kr

Date Published: 12/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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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부 : 영원히 돌아오는 인생, 우리는 얼마나 무거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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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Author: 일당백 : 일생동안 읽어야 할 백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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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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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양장본 HardCover)(원서/번역서: [해외]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Paperback))

“그들은 서로 사랑했는데도상대방에게 하나의 지옥을 선사했다.”매해 노벨 문학상 후보 목록에 오르는 작가인 동시에 인터뷰나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은둔을 자처하는 작가. 체코 출신으로 ‘프라하의 봄’을 직접 경험하고 집필 및 판매 금지 등 정치적 박해를 피해 프랑스로 망명한 작가. 현재에서 멀지 않은 20세기 작가이지만 이미 살아 있는 신화가 된 작가.밀란 쿤데라에 대한 한국인의 사랑은 특별하다.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국내 총 판매량 100만 부에 달하며, 민음사에서는 밀란 쿤데라 전집(총 15권)을 출간하기도 했다.쿤데라를 사랑하는 독자는 광고인 박웅현, 피아니스트 김대진, 화가 황주리, 소설가 김영하, 김연수 등 각계각층에서 다양하다. 특히 지난 2016년에는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 선정 ‘우리 시대 지식인이 사랑한 책’ TOP10에 들기도 했다.쿤데라에 대한 격찬은 그의 소설이 프랑스어로 소개된 직후 서양 지식인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쿤데라의 첫 번째 소설인 『농담』 불어판 서문에서 시인 아라공은 쿤데라를 일컬어 “금세기 최고의 소설가들 중 한 사람, 소설이 빵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증명해 주는 작가”라고 격찬하며 “우리 시대 어떤 작가도 필적할 수 없는 기교를 갖추었다.”라고 했다. 또한 샐먼 루시디는 쿤데라를 “명백히 세계적으로 가장 훌륭한 예술가”라 칭했다.이렇듯 명실공히 20세기를 아울러 현존하는 최고의 현대 소설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쿤데라의 작품들은 거의 모두가 탁월한 문학적 깊이를 인정받아서 프랑스 메디치 상, 클레멘트 루케 상, 프레미오 레테라리오 몬델로 상, 유로파 상, 체코 작가연맹 상, 체코 작가출판사 상, 커먼웰스 상, LA타임스 소설 상, 두카 재단 상 등 수많은 문학상을 받았으며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 작가로 추천되고 있다. 미국 미시건 대학은 그의 문학적 공로를 높이 평가하면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쿤데라 작품을 독점 계약, 출판하고 있는 민음사에서는 밀란 쿤데라 국내 소개 30주년을 맞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리뉴얼 판을 선보였다.『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1988년 계간 《세계의 문학》 가을호에 전재되면서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었고, 발표 직후 1988년 11월 20일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당시에는 독문학자 송동준 교수가 독일어 판본을 옮겨 펴냈으나, 1999년 2월에 불문학자 이재룡 교수의 변역으로 다시 펴냈다.이는 원저자인 밀란 쿤데라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쿤데라는 프랑스어 판본을 옮기는 것이 자신의 원작에 가장 충실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새롭게 리뉴얼해 선보이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그간 출간된 세계문학전집 및 작가 전집 버전과 달리 밀란 쿤데라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를 바탕으로 디자인한 신선한 표지와 장정으로 21세기를 살아 나가는 젊은 독자들의 눈을 다시금 사로잡을 예정이다.존재를 관통하는 덧없는 사랑에 대한 잔혹한 메타포고향의 작은 술집에서 일하며 근근이 살던 젊은 테레자는 출장으로 그 도시에 들른 외과의사 토마시와 우연히 만난다. 서로 그 만남을 잊지 못할 만큼 운명적으로 생각하던 차, 테레자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여행 가방만을 들고 그를 찾아간다.전처와의 이혼 이후 진지한 사랑을 부담스러워하던 토마시는 ‘강물에 떠내려온 아기’ 같은 테레자의 연약한 매력을 놓지 못하고 고아를 떠맡듯 그녀와 함께 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스스로가 ‘에로틱한 우정’이라고 이름 붙인 그 ‘가벼운 삶’을 토마시는 버리지 못하고 이 여자 저 여자를 전전한다.그런 토마시를 지켜보는 테레자는 질투와 체념으로 인한 괴로움에 몸부림친다. 소련의 침공으로 체코가 자유를 잃은 후, 두 사람은 함께 스위스로 넘어간다.체코를 벗어나면 토마시의 연인들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테레자는, 토마시의 끊임없는 외도에 믿음을 잃은 후 홀로 국경을 넘어 프라하로 돌아간다. 질투와 미움이 뒤섞인 두 사람의 삶은 그렇게 점차 무게를 더해 간다.한편 토마시의 또다른 연인이자 화가인 사비나는 끈질기게 자신을 따라다니는 조국과 역사의 무게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한다. 밥을 먹어도, 그림을 그려도, 거리를 걸어도 자신에겐 ‘조국을 잃은 여자’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을 그녀는 견딜 수 없다.사비나는 체코에서 멀리, 할 수 있는 한 가장 멀리 떠난다. 사비나를 사랑하는 학자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안정된 일상을 누리던 프란츠는 그런 사비나의 ‘가벼움’에 매료된다.무거운 역사의 상처와 개인적 트라우마를 어깨에 짊어진 이 네 남녀의 생과 사랑의 모습은, 오늘날 ‘참을 수 없는’ 생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오가며 방황하는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되돌릴 수 없는 겨우 단 한 번의 생, 그 무의미함에 대하여“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ㅡ본문 중에서『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작가는 어떤 사랑 이야기, 특별한 동시에 잊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테레사와 토마스는 우연히 서로 만나 평생을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이어 가다가 교통사고로 함께 죽는다. 그들의 운명은 필연적이지 않다.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정들과 우연한 사건들과 어쩌다가 받아들이게 된 구속들의 축적이 낳은 산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둘은 그 구속에 서로를 얽어매며 평생을 존재의 무게 속에서 살아 나간다.토마시는 이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이렇게 되뇌인다.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도 없으며 현생과 비교하여 후생을 바로잡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Einmal ist Keinmal.)”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비튼 이 생각을 바탕으로 쿤데라는 ‘한 번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이 삶의 무의미함을 철저하게 파헤친다.쿤데라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 의미하는 ‘가벼움’과 베토벤의 곡의 모티프 중 하나인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의 ‘무거움’ 사이에서 방황하는 토마시의 모습을 그린다.베토벤의 작품번호 135 마지막 4중주 4악장의 핵심 악장의 모티프인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가 뜻하는 것은 구속, 당위이며 가벼운 것에서 무거운 것으로의 전이이다. 삶을 살아나가는 여러 태도 가운데 쿤데라는 삶의 이 모순된 무게를 저울질해 가며 방황하는 군상을 그려 나간다.밀란 쿤데라의 역사적, 철학적 사유가 오롯이 담긴 작품“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ㅡ본문 중에서한 사람의 인생이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소한 우연이든 의미심장한 우연이든, 우리는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네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따라 흘러가는 이 소설의 배경에는 1960년대 체코와 1970년대 유럽을 뒤흔들어 놓은 시련이 깔려 있다.지금은 멀어져 버렸지만 쿤데라의 작품 한복판에 주인공인 양 요지부동으로 박혀 있는 체코. 작가의 근원은 체코에 있었다. 쿤데라 자신 역시 자신의 조국에서 벌어진 비극과 개인적 박해를 오롯이 경험했고, 이 경험은 그의 작품 군데군데에 녹아 있다.하지만 동시에 쿤데라는 그의 최근 에세이 『커튼』을 통해 사회 운동, 전쟁, 혁명과 반혁명, 국가의 굴욕 등 역사 그 자체는 소설가가 그려야 할 대상, 고발하고 해석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소설가는 “역사가의 하인”이 아니며 소설가를 매혹하는 역사란, 오직 “인간 실존에 빛을 비추는 탐조등으로서의 역사”일 뿐이라는 것이다. 역사로서의 예술, 혹은 예술의 역사는 덧없으며 “예술의 지저귐은 영원할 것”이라는 쿤데라의 말처럼, 이 작품은 역사에서 태어났으되, 역사를 뛰어넘는 인간의 실존 그 자체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영원히 사랑받는 불멸의 고전으로 남을 것이다. 닫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실존의 덫

책을 읽으며 나의 얕은 지식으로 설명은 되지 않지만, 놓을 수도 없었던 한가지 감상이자 발상은 ‘코기토 명제’로의 회귀였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를 생각하며 네 명의 중심인물들이 과연 책의 제목대로 존재하고 있는지, 그리고 실존주의 철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상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책에서 ‘밀란 쿤데라’가 계속해서 언급하고 인용한 데카르트와 니체 등의 철학자를 공부하며 생각해본 ‘실존’에 대해 부족한 의견을 나누어보고자 한다. 이 책은 니체가 말한 삶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한다. 인문학의 연못에 발을 담아보고자 고전을 찾은 수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첫 단락에서 나가떨어져 ‘어려운 책’으로 속단 내리게 한 악명높은 책이기도 하다. 니체와 데카르트의 철학과 명제들이 가득한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과연 ‘등장인물’을 벗어나 실존주의적 삶에 충실하였을지 궁금했다. 또한 나는 책 속 네 명의 인물들은 과연 존재하는가, 그리고 실존주의적 삶에 이르렀는가에 대해 알고 싶었다.

‘토마시’와 ‘테레자’, 그리고 ‘프란츠’와 ‘사비나’. 책 속에는 그들의 모든 지적 행위와 선택, 과정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생각을 멈추지 않으며, 생각한 대로 행동한다. 어떤 이는 자신의 삶의 무게에 대해서, 어떤 이는 자신의 애정 상대의 행동을 보며 옳고 그름의 정의 판단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한다. 생각을 멈추지 않는 그들은 과연 존재하며 실존하는가?

사랑에는 자아 정체성의 회복과 발견의 특성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혹은 더 극적으로, ‘내가 이런 사람이었던가?’라는 질문에 대해 가장 진한 인상을 남기는 인간의 행위는 단연 사랑일 것이다. 어떠한 대상을 사랑하는 과정에서 우리 인간은 자기에 대한 새로운 경험과 발견을 하게 된다. 그것은 가히 충격적이고, 중독적이며 자극적이다. 기준은 모호하지만 평범한 사람과의 평범한 사랑은 우리에게 안정과 편안함, 따뜻함 등을 주곤 한다. 하지만 ‘토마시’나 ‘사비나’와 같이 가벼운 삶을 살아가며 애정과 성적 관계의 경계를 나누고 파트너를 찾아다니는 사람과의 사랑은 극적이고 반짝이지만, 아픔과 고통을 동반하기도 할 것이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린 ‘테레자’와 ‘프란츠’는 책 속에서 무거움을 대표하면서도, 일상 속에서 각자의 연애 대상에 동조하고 동화되며 가벼움이 주는 심리적 혼란을 동반한 쾌락을 경험한다. 두 연인의 복잡하게 얽힌 사랑의 과정을 그린 이 책을 읽으며, 인물들은 사랑을 통해 살아있음을 경험하고자 하며, 이는 곧 실존주의적 삶에 대한 갈망임을 느꼈다.

그들은 각자의 사랑의 본위가 너무나도 달랐다. 나는 그들이 정체성을 확인하고 ‘쿤데라’가 만들어낸 책 속에 갇힌 성 중독자 혹은 의존증 캐릭터에서 벗어나, 지적 생명체로서 실존함을 느끼기 위한 수단으로 사랑을 선택했음을 느낀 적이 있다. 네 인물의 사랑에는 극명한 차이가 있고, 감히 누구 한 명도 옳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을 통해 소설 속에서 살아갔고, 책 속의 누군가는 아파야만 했다. 그리고 동조와 동화, 회피 등의 방어 기제를 선택하며 중독적인 만남을 이어갈 수 밖에 없었다. 남녀가 거침없이 몸을 섞는 신체적인 격돌과 꿈속에서조차 그들을 괴롭히는 정신적 싸움은 그들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실존주의적 투쟁이 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곧 실존이라는 철학이 놓아둔 덫에 걸려들었다고 생각했다. 사랑을 통해 본인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궁극적으로 실존에 대한 확인을 갈망하는 그들은 책에서 나오지 못한 채 망가진 연애를 했고 보통의 사람처럼 역시나 죽음으로 발길을 옮기더니 평범하게 죽었다. 나는 이 과정을 실존의 덫으로 보게 되었다.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리고 인물들의 죽음이나 시골에서의 말로에 대한 묘사를 보며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들의 엇나간 정사와 애정에 대한 중독과 무관하게 흘러가는 시간의 축에서, 그들은 죽음이라는 다분히 인간적인 운명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책의 6부 마지막에는 인물들의 마지막에 대해 비문 하나만이 남았다고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마지막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프란츠의 죽음을 시작으로 안도감과 그로 인한 배덕감을 동시에 느끼기도 했다. 나는 책 밖의 독자로서 쿤데라가 써놓고 번역된 글자들 이외의 것들을 멋대로 상상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내가 어떤 이유로 안도감을 느꼈던 것일지 생각해보니, 삶과 실존에 대해 고민하고 수단으로 사랑을 택한 뒤, 인간의 죽음으로 끝맺는 모든 과정이 그들에게 희미하게나마 인간답게 실존했다는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책 속 인물일 뿐인 그들에게 죽음만큼이나 인간적이고 실존적인 행위이자 결정이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 속 인물일 뿐이지만 타인의 죽음을 통해 실존을 느끼고 안도한 나 자신에게 배덕감을 느끼기도 했던 것이다.

정리하자면 책 속 네 명의 인물들은 책장을 넘어 각각의 인간으로서 실존주의적 삶을 살기 위해 사랑이라는 수단을 택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각자의 본위가 너무나도 다른 사랑으로 서로를 괴롭히며 ‘실존’이 주는 중독과 자극의 덫에 더욱 깊게 빠져들도록 만들었다. 실존이라는 가치가 소중하다는 사상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책에서 나올 수 없는 등장인물들에게 작가가 선사한 사랑과 호르몬이 주는 자극이나 실존주의가 동반하는 혼란은 그들이 중독되기에 충분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인간답게 소설 안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뜨겁게 고민하고 정사로 가득했던 젊은 시절을 지나 평범한 인간으로 인생의 말로를 살아간다는 결말로 책이 끝났다.

실존주의 철학이 주는 자극은 책 속 인물일 뿐인 그들에게 너무나 컸고, 사랑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낀 그들은 책장 속에서 죽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독자의 책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다시 사랑한다. 이들의 적나라하고 노골적이지만, 가장 동물적이면서도 솔직한 사랑을 읽고 싶은 독자, 그리고 사랑을 통해 내가 살아있음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 모든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자 한다. 나는 책 속 인물인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의 인간다운 평범한 죽음으로 그들이 실존하였고, 실존주의적 삶을 선택했으며 그 실천을 위해 발악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 역시 사랑을 하고, 죽음에 대해 고민해오며 실존적 삶에 조금이나마 다가간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실존함은 죽음을 통해 증명되기도 할 것이다. 그들의 죽음이 본인의 사랑과 삶이 옳았음을 충분히 증명하였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

<참고문헌>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재룡 역, 서울: 민음사, 2018

#427.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참을 수 없는 생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오가는 우리들의 자화상. 밀란 쿤데라.

#427.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참을 수 없는 생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오가는 우리들의 자화상. 밀란 쿤데라.



< L'insoutenable legerete de l'etre >

– by Milan Kundera.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음.

원서 1984년 출간.

국내 2009년 12월 24일 번역 출판.

숭실대학교 불문학과 이재룡 교수님 옮김.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시리즈 234.

역사와 상처라는 무게에 짓눌려

단 한 번도 ‘존재의 가벼움’을 느껴 보지 못한 현대인, 그들의 삶과 사랑에 바치는 소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으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가

1984년에 펴낸 책으로 역사의 무게에 짓눌려 한번도 존재의 가벼움을 느껴보지 못한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삶의 의미를 탐색하게 하는 소설이다.

진지한 사랑을 추구하는 테레자는 토마시를 사랑하지만

토마시는 테레제와 달리 가벼운 사랑을 추구한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다른 여자들을 만났고 그중 사비나라는 여자와의 만남을 가졌다.

사비나는 가벼운 사랑을 추구하며 조국과 역사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일상 속의 권태에 익숙해있던 프란츠는 그런 사비나의 가벼움에 매료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이러한 4명의 인물들의 무거움과 가벼움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아름답다. (p.13)

이 책은 우리들에게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인식시켜주며

우리의 인생 속 무거움과 가벼움을 생각하게 하고, 사랑과 행복에 대해 사유하게 만들어 준다.

제목이 널리 알려져 있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소설이다.

특히 제목부터 일명 있어 보이는 느낌을 주고 끌리게 만들기 때문에 쉽게 각인되는 그런 책이다.

내게도 그런 책이었다.

수없이 나를 스쳐 지나갔었는데도 정작 읽지 않았던 책 중에 하나.

그러다 2월경 이 책이 눈에 들어왔고

정신없이 흘러가던 2월 내내 들고 다니며 반복해서 읽었다.

읽는 동안 많은 주변 일들이 있었기에 어쩌면 앞으로 잊지 못할 책 중에 하나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책은 테레자, 토마시, 사비나, 프란츠를 통해 삶과 사랑에 대해서 사유하게 된다.

읽다 보면 나는 테레자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테레자를 이해하면서도 테레자와 다른 부류의 토마시, 사비나, 프란츠를 보며

그들을 이해해 보려고 했다.

그러면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고찰해가며 읽었다.

삶의 경험이 조금이나마 쌓이고 나서 이런 책을 읽으니 느껴지는 바가 확실히 다르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줄거리.

책은 총 7부로 되어 있으며

스토리가 순행적 구성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부분부분 바꾸면서 흘러가는 입체적 구성을 따르고 있다.

장면의 전환이 빈번하고, 흔히 말하는 시간의 역전이 자주 보인다.

그리고 밀란 쿤데라가 이야기를 서술하면서 인물들을 전체적으로 조감하며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내용이 서술되고 있다.

책을 읽고

책의 줄거리를 최대한 요약정리.

인물 중심으로 서술하려다가 그냥 책의 서술 흐름대로 기록해보았다.

# 1부. 가벼움과 무거움

테레자는 보헤미아의 한 작은 마을에서 술집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의사 토마시가 술집에 찾아오게 되고 둘은 만나 연인 사이가 된다.

토마시는 결혼 후 이혼했던 유부남이었으며 첫 부인과 2년 남짓 살면서 아들 하나를 얻었다.

토마시는 테레자를 만나면서도 바람기가 많아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다녔다.

특히 토마시는 자유분방한 성격의 사비나라는 애인을 만나며 정사를 나눈다.

테레자는 토마시와 함께 지내며 토마시가 하는 말을 믿으려 애썼다.

그러나 그의 바람기에 대한 질투심이 꿈속에서 격렬하게 기승을 부렸다.

그녀는 항상 끔찍한 꿈들을 꾸었고 토마시가 곁에서 흔들어주어야만 멈추는 신음소리로 마무리되었다.

테레자의 행동은 점차 거칠어졌고 일관성을 잃어 갔다.

토마시의 바람기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고 해결책도 없었다.

토마시는 테레자의 고통을 잠재우고자 그녀와 결혼을 한다.

그리고 토마시는 테레자에게 작은 강아지를 선물하였다.

그들은 강아지에게는 카레닌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리고 토마시는 취리히의 병원장으로부터 의사직을 제안받아 그들은 취리히로 떠난다.

6개월쯤 지나 토마시는 퇴근 후 집에 도착하였는데 테레자가 프라하로 떠났다는 편지가 놓여있었다.

토마시는 테레자가 떠나자 혼자의 시간을 보낸다.

그는 테레자와 얽매였던 7년을 되돌아보며 혼자만의 시간, 존재의 달콤한 가벼움을 만끽한다.

이러한 도취는 얼마 가지 않았다. 토마시는 곧 테레자가 그리워졌다.

그는 베토벤의 마지막 4중주 중 마지막 악장을 되뇌며 그녀에게 가야 함을 느낀다.

Muss es sein?

Es Muss Sein! Es muss sein!

토마시는 프라하로 돌아와 테레자를 만난다.

프라하는 소련의 점령으로 인해 밤새도록 비행기가 날아다녔다.

토마시는 비행기 소음이 낯설어 잠이 들 수 없었다.

그러면서 토마시는 테레자를 바라보며 사색에 젖는다.

# 2부. 영혼과 육체.

테레자는 자신의 행동들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를 회상한다.

테레자는 아름다운 여인의 삶을 멀리 내팽개쳤던 어머니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신경질적이고 우아한 여유가 결핍된 행동, 자기 폭력적 행동 그것은 어머니의 행동으로부터 왔다.

테레자는 슬픔과 두려움, 분노에 찬 영혼이 내장 깊숙이 숨어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그녀는 그런 상태에서 토마시를 만났다.

테레자는 술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테이블 위에 책 한 권 펼쳐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곳에서 책을 펼쳐놓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그 사람, 토마시에게서 동질감을 느낀다.

그녀에게 있어 책은 아무런 만족도 주지 못하는 삶으로부터

벗어나는 도피 기회를 제공했다. 그렇기에 그곳에서 책을 보는 토마시에게 마음이 갔다.

그녀는 그가 읽고 있는 책을 알고 싶어졌다.

그와 대화를 했지만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테레자는 퇴근 후 술집 문을 열고 나오는데 술집 입구 노란 벤치에 토마시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후 그녀는 그를 역까지 배웅했고 그에게서 명함을 받는다.

둘은 이렇게 만남을 시작했다.

테레자는 토마시가 소개해준 사비나 덕분에 사진과 회화에 대해 배운다.

그리고 신문사의 전문 사진작가들 틈에서 일을 배우며 사진사 일을 한다.

테레자는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소련군의 사진을 찍었다.

(역사적 배경이 가미되어 있는데 체코의 민주 자유화 운동인 ‘프라하의 봄’ 이후

이를 막기 위해 체코를 불법 침략한 소련의 침공 사태와 관련이 있다.

테레자는 수백 통의 사진을 찍었고 그녀의 사진은 각종 외국 신문에 실렸다.

이후 테레자는 신문사에 사진을 투고하지만 신문사는 정원 사진 일을 맡긴다.

테레자는 회의감을 느끼며 그만두리고 한다.

테레자는 토마시와 함께 떠나온 취리히에서 혼자의 고독감을 느끼는 와중에

토마시의 바람기, 그를 만나는 많은 여자들을 생각하니 깊은 회의감을 느낀다.

만약 그에게 버림받는다면 자신은 무엇이 될까?

그녀는 카레닌과 함께 떠난다.

그리고 1부의 내용처럼 토마시는 테레자에게 되돌아온다.

이제 운명이 바뀌었다. 그녀 때문에 그의 운명이 바뀌었다.

이제부터는 그녀가 그를 책임져야 한다. 그는 그녀에게 새로운 삶의 욕구를 채워주었다.

그날 밤 테레자는 토마시의 곁에서 자고 있는 그의 숨소리를 들으며 무한한 행복감을 느꼈다.

# 제3부. 이해받지 못한 말들.

대학교수 일을 하는 프란츠는 마리클로드라는 여성과 결혼을 한 유부남이었다.

그런데 프란츠는 사비나라는 여인의 매력에 매료되어 그녀를 만난다.

프란츠에게 사랑은 공적인 삶의 연장이 아니라 대척점이었다.

그에게 사랑은 다른 사람의 선의와 자비에 자신을 내던지고 싶다는 욕구였으며

언제 공격이 올지 끊임없이 기다리는 것이었다.

사비나는 프란츠에게 그런 존재로 다가왔다.

사비나는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 여자로 사는 것을 부조리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녀는 여자로 사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녀는 가벼움과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인물이었고 프란츠는 그녀의 그런 매력에 빠진다.

3부에서는 프란츠와 사비나가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각자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들을 나열한다.

여자, 정조와 배신, 음악, 빛과 어둠, 행렬, 조국, 힘 등이 그것이다.

이 부분은 프란츠가 사랑을 대척점이라고 이야기했던 부분과 상통하는 부분이다.

이후 프란츠는 부인 마이클로드에게 자신의 바람을 들킨다.

프란츠는 솔직하게 자신이 사비나를 만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비나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사비나가 되는 대신 사비나 역을 해야 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와의 여행에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그 어느 때보다 격렬히 그를 사랑했다.

두 사람 모두 그들이 원하는 먼 곳을 향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그들을 구원하는 배신에 도취했다.

프란츠는 사비나를 타며 그의 부인을 배신했고, 사비나는 프란츠를 타고 프란츠를 배신했다.

그리고 사비나는 프란츠를 떠난다.

사비나는 프란츠에게 자유, 새로운 삶이 부여한 예기치 못한 행복, 편안함, 희열 등을 남기고 떠났다.

사비나는 한 남자로부터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떠났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 제4부. 영혼과 육체.

테레자는 잠들어 있는 토마시에게서 낯선 여자의 향기를 맡곤 한다.

이러한 느낌은 테레자에게 깊은 우울감을 가져왔다.

테레자는 잠지사에서 해고를 당하자 바텐더 자리를 얻었다.

사람들은 소련 탱크 사진을 찍었던 그녀를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테레자가 바텐더에서 일을 하던 어느 날 미성년자가 술을 마시며 테레자에게 고백한다.

이를 보던 한 대머리 남성이 미성년자에게 술을 판 테레자를 몰아세운다.

그러자 키가 큰 한 남자가 등장하여 대머리 사내의 행동을 막아준다.

며칠 후 키가 큰 남자는 다시 바에 나타났다.

그는 기술자이며 지난번엔 퇴근길에 우연히 들리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테레자는 토마시에게 바람기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하지만

바오르 산꼭대기에 올라보면 알 것이라는 말과 함께 바오르 산에 간다.

그녀는 거기서 총살형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고 깊은 두려움 그리고 이를 겪게 한 토마시에게 회의감을 느낀다.

얼마 후 테레자는 기술자의 집에 초대를 받아 그의 집에 간다.

여럿 거절을 했지만 토마시에게 회의감을 느끼게 된 이후 그에게 간다.

허구한 날 사랑과 섹스에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고 설명하던 토마시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녀는 노동자 구역에 세워진 허름한 기술사의 집을 방문한다.

그는 두려움을 느꼈지만 수백 권이나 있는 그의 책들을 보며 불안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후 그녀는 욕정이 그녀의 육체를 사로잡은 것을 느끼자 다가오는 희열에 저항한다.

그녀는 기술자 남자 품에서 버둥거리며 그를 닥치는 대로 때리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녀의 영혼은 관람객의 호기심, 그 악의와 오만을 모두 상실했다.

가장 깊숙한 곳에 은폐된 육체의 심연까지 되돌아간 영혼은

누군가 다시 자기를 불러 주길 절망적으로 기다렸다.

그녀는 그와 관계를 맺고 나서 기술자의 면전에서 펑펑 울고 싶은 커다란 욕망을 애써 눌렀다.

만약 그것을 자제하지 못한다면 원치 않는 사랑에 빠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방으로 들어가 흩어진 옷가지를 주워 황급히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기술자와의 일화는 테레자에게 사랑에 대해 깊이 사유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기술자가 바에 다시 방문하기를 기다렸다. 그가 자신을 초대해주기를 바랐다.

한 달이 지나도 기술자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후 전직 대사로부터 그 기술자는 비밀경찰이었으며 국민을 밀고자 조직으로 만드는 인물임을 듣게 된다.

테레자는 카레닌을 이끌고 컴컴한 프라하 거리로 나섰다.

테레자는 프라하의 변두리에 나가 유난히 쓸쓸하고 우울해 보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테레자는 흐르는 강물을 통해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 이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여러 색깔을 거느리며 사라지는 인생에 대한 작별.

# 제5부. 가벼움과 무거움.

취리히에서 돌아온 토마시는 근무하던 병원으로 복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과장이 그를 호출하며 오이디푸스에 관해 투고한 기사를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

체코는 소련의 점령하에 있었다. 토마시는 공산주의 체제 자체를 비관하기보다는

그것이 최선 인양 확신하는 광신자들 때문에 수많은 부정적 사건들이 발생한다고 여겼다.

그의 기사는 그와 관련된 것이었다.

과장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그가 철회서를 쓰기를 바랐다.

그러나 토마시는 철회하지 않았고 결국 병원을 떠나야만 했다.

토마시는 프라하로부터 80km 떨어진 시골 병원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어느 날 내무부 사무국장이 그를 찾아오며 그의 기사가 검열되어 1/3 이상이 잘려나갔음을 알게 된다.

그의 기사는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글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내무부 사무국장은 토마시가 공작의 희생자였음, 그리고 유감을 표하며 자리를 뜬다.

며칠 후 사무국장은 다시 토마시를 찾아와 종이 한 장을 내민다.

그것은 소련에 충성을 맹세하고 지식인을 고발하는 내용의 종이였다.

토마시는 그 종이에 서명하지 않았고 이후 시골 의사 자리마저 잃는다.

그는 유리창 닦는 노동자가 되었다.

이제 그는 유리창을 닦는 긴 막대기를 들고 프라하를 누비고 다녔으며

외과의사라는 사물의 표면을 열고 그 너머의 것들을 보기 시작했다.

토마시는 술을 마시며 이 잔치 저 잔치로 불려 다니는 기분으로 프라하 거리를 누볐다.

그에게는 멋진 휴가였다.

의사의 일을 할 때보다 자유로운 시간이 많아졌다. 그에게 자유의 시간과 공간이란 여자를 의미했다.

토마시는 그렇게 유리창 닦는 일을 하면서 많은 여자들을 만나고 다녔다.

토마시는 유리창 일을 위해 어느 집을 방문하는데 거기서 낯선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탄원서를 보이며 정치범들을 도울 수 있게 서명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곳에는 토마시의 아들 시몽까지 찾아와 그를 설득했다.

그는 토마시에게 “사상 역시 생명을 구할 수 있어요.” 라고 말한다.

토마시는 끝내 그 탄원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토마시와 테레자는 취리히로 돌아온 이후 줄곧 떨어져 있었다.

그들의 육체적 사랑은 그들에게 쾌락을 주었지만 어떤 위안도 되지 못했다.

부드럽게 하나가 되는 순간은 잠이 든 뒤 한방 중에야 가능했다.

그들은 항상 손을 잡고 잤고 그녀는 두 사람을 갈라놓는 심연을 잊었다.

테레자는 자신이 죽어있는 상태의 꿈을 꾸고 괴로워한다.

이를 토마시에게 이야기하고 둘 간의 관계에 대해 서로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그녀의 슬픔을 감싸 안아준다.

이후 토마시는 사랑에 대해 여러 가지 사색을 하며

자신이 일생 동안 그리워했던 것은 여성적 평안함이며 테레자는 바로 그가 찾던 여성임을 깨닫는다.

그는 그녀에게 어떻게도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을 느꼈다.

# 제6부. 대장정.

제6부는 키치에 대한 쿤데라의 생각, 그리고 키치를 바라보는 사비나의 생각을 주로 담고 있다.

쿤데라는 키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가 미학적 이상으로 삼는 세계는,

똥이 부정되고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각자가 처신하는 세계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러한 미학적 이상은 키치라고 불린다. (p.399)

간단히 말해 쿤데라가 말하는 키치란 미학적 이상이다.

어느 날 한 정치 단체가 독일에서 사비나의 작품으로 전시회를 개최했다.

그녀의 그림에는 “자유를 위해 그림으로 싸운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녀는 항의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항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공산주의와 싸우지 않았다. 그녀가 싸운 것은 키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현대 예술을 박해하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요? 라고만 할 뿐이었다.

그 후 사비나는 자기 약력을 애매모호한 문구로 감쌌고

미국에 와서는 자신이 체코인이라는 것을 숨기는데 성공했다.

그녀는 사람들이 그녀의 삶을 가지고 만들어 내려고 했던 키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처절히 노력해야만 했다.

프란츠는 파리의 친구들에게서 연락을 받는다.

그들은 캄보디아에서 행진을 주최했고 거기에 합류하라는 권유였다.

캄보디아는 지역 공산주의자들의 만행을 겪은 뒤 소련의 도구인 베트남에 점령당한 터였다.

프란츠는 캄보디아의 시위가 사비나의 은밀한 신호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만약 그런 행진에 참가했다면 사비나가 그를 보고 행복해했을 것이고 생각한다.

프란츠는 의사, 지식인, 기자, 가수, 철학자 등과 함께 캄보디아 행진에 참여한다.

길은 좁았고 지뢰투성이였으며 행진할 때마다 각종 장애물들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이윽고 캄보디아의 국경에 이르러 강 건너편에 행진 일행은

캄보디아로 건너가 의료 봉사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강 건너는 무서울 정도로 침묵했다.

프란츠는 이 대장정이 끝에 다다랐다는 인상을 받았다.

프란츠는 격렬히 저항하며 총 세례를 받으며 격하게 죽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총을 맞고 죽는 대신 고개를 숙이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렬로 서서 버스로 돌아갔다.

사비나는 캘리포니아로 가서 정착했다.

그녀의 그림은 잘 팔렸고 그녀는 미국을 아주 좋아했다. 물론 껍질만을 말이다.

테레자와 토마시는 무거운 분위기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사비나는 그들과는 달리 가벼운 분위기에서 죽고 싶었다.

가벼움은 공기보다도 가벼울 것이다.

프란츠는 방콕의 호텔로 돌아와 어두운 밤 혼자 걷는다.

어둠 속에서 알 수 없는 언어로 그에게 다가와 돈을 달라고 한다.

프란츠는 의식 속에서 사비나를 생각하며 그들과 격렬히 다툰다.

그러다 묵직한 것이 그의 머리를 때렸고 그는 쓰러졌다.

한참 후 병원에서 깨어나지만 그는 그때 죽음을 어느 정도 예감한다.

그리고 프란츠는 죽었다. 프란츠의 비석에는 “오랜 방황 끝의 귀환”이 적혀졌다.

# 제7부. 카레닌의 미소.

테레자와 토마시는 유일한 도피 가능성이 남아있던 시골에 내려가 산다.

언제나 손이 부족했던 시골에는 빈집이 남아돌았으며

일하러 오겠다는 사람들의 정치 전력 같은 것은 그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테레자는 산책 도중 왼쪽 발을 저는 카레닌의 모습을 발견한다.

토마시는 수의사가 있는 마을을 다녀온 뒤 테레자에게 카레닌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전한다.

카레닌은 수술을 했고 마취와 함께 잠들었다.

테레자는 카레닌이 깨어나지 못할까 봐 걱정한다.

새벽 3시경 개가 다짜고짜 그들을 깨우며 그들을 밟고 다녔다.

지칠 줄 모르고 그들에게 거칠게 몸을 비벼 댔다.

한밤 중에 갑자기 의식을 되찾자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후 카레닌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는 것이 뻔히 보였다.

테레자와 토마시는 그들이 지나온 십 년의 삶을 몸으로 구현하는 절름발이 개.

그들은 카레닌의 미소를 최대한 오랫동안 지속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카레닌은 죽었다. 그들은 슬픔에 젖으며 카레닌을 정원에 묻었다.

이후 테레자는 토마시와의 공항 사건 등을 겪으며

자신이 토마시를 정말 많이 사랑했더라면 그에게 짐이 되지 말았어야 함을 깨닫는다.

토마시는 조합장과 젊은 농부를 데리고 집에 불쑥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은 시내의 호텔 속 스테이지로 가서 함께 술을 마신다.

스테이지에서 토마시와 테레자는 함께 춤을 추고 테레자는 토마시에게 이렇게 말한다.

“토마시, 당신 인생에서 내가 모든 악의 원인이야.

당신이 여기까지 온 것은 나 때문이야.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을 정도로 밑바닥까지 당신을 끌어내린 것은 바로 나야.” (p.505)

이에 대해 토마시는 이렇게 대답한다.

” 테레자, 내가 이곳에서 얼마나 행복한지 당신은 모르겠어?

임무도 없고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얼마나 홀가분한데.” (p.506)

테레자는 이상한 행복,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이 슬픔은 우리가 종착역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행복은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춤을 추고 난 뒤 네 사람은 위층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래에서 희미하게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왔다.

끝.

페이지 201쪽 부분에서 테레자와 토마시의 죽음 부분이 나온다.

테레자와 토마시는 언덕을 넘는 꼬불꼬불한 구간이 많은 도로에서

계곡 아래로 떨어져 죽음을 맞이한다.

※ 책 속의 문장들.

책을 읽으며 좋았던 문장들 기록.

▣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트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헤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 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p.9)

▣ 다시 말해 세상사는, 세상사가 덧없는 것이라는 정상참작을 배제한 상태에서 우리에게 나타난다.

사실 이 정상참작 때문에 우리는 어떤 심판도 내릴 수 없다.

곧 사라지고 말 덧없는 것을 비난할 수 있을까?

석양으로 오렌지빛을 띤 구름은 모든 것을 향수의 매력으로 빛나게 한다. (p.10)

▣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말했다.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그의 말이 맞을까? 이것이 문제다.

오직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 (p.13)

▣ 한 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p.17)

▣ 토마시는 생각했다.

한 여자와 정사를 나누는 것과 함께 잔다는 것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거의 상충되는 두 가지 열정이라고.

사랑은 정사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이 욕망은 수많은 여자에게 적용된다.)

동반 수면의 욕망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이 욕망은 오로지 한 여자에게만 관련된다.) (p.28)

▣ 동정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의심쩍은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사랑과는 별로 관계없는 저급한 감정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동정 삼아 사랑한다는 것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p.37)

▣ 그는 그녀와 함께 보낸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았고

그들의 관계가 이보다 더 잘 끝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누가 꾸며낸 이야기일지라도 달리 마무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p.53)

▣ Muss es Sein? (그래야만 하는가?)

토마시는 다시 한 번 말했다.

Ja, es muss sein! (네, 그래야만 합니다.) (p.58)

▣ Der schwer gefasste Entschluss. (진중하게 내린 결정)

진중하게 내린 결정은 운명의 목소리와 결부되었다. (es muss sein)

무거움, 필연성 그리고 가치는 내면적으로 연결된 세 개념이다.

필연적인 것만이 진중한 것이고, 묵직한 것만이 가치있는 것이다. (p.60)

▣ 우리 모두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 것,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어야만 한다고 상상한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더 이상 삶이 아닐 거라고 믿는다.

덥수룩한 머리가 끔찍한, 침울한 베토벤도 몸소

그의 ‘Es muss sein!’을 우리의 위대한 사랑을 위해 연주했다고 확신한다. (p.64)

▣ 책은 그녀에게 아무런 만족도 주지 못하는 삶으로부터

벗어나는 상상의 도피 기회를 제공했지만,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었다. (p.85)

▣ 끊임없이 ‘신분 상승’을 원하는 자는 어느 날엔가 느낄 현기증을 감수해야만 한다.

현기증이란 무엇인가? 추락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튼튼한 난간을 갖춘 전망대에서 우리는 왜 현기증을 느끼는 것일까?

현기증, 그것은 추락에 대한 두려움과는 다른 그 무엇이다.

현기증은 우리 발빝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홀리는 공허의 목소리,

나중에는 공포에 질린 나머지 아무리 자제해도 어쩔 수 없이 끌리는 추락에 대한 욕망이다. (p.106)

▣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강해질 줄 알아야 하는 사람

그리고 강자가 약자에게 상처를 주기에는 너무 약해졌을 때 떠날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이 바로 약자다. (p.133)

▣ 현기증을 느낀다는 것은 자신의 허약함에 도취되는 것이다.

자신의 허약함을 의식하고 그에 저항하기보다는 투항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허약함에 취해 더욱 허약해지고 싶어 하며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백주 대로 쓰러지고

땅바닥에, 땅바닥보다 더 낮게 가라앉고 싶은 것이다. (p.135)

▣ 그녀는 그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기도 전에 일찌감치 그의 손에 헤라클레스의 빗자루를

쥐어 주었으며 그는 그가 사랑하지 않는 모든 것을 그이 삶으로부터 쓸어 내 버렸다.

그의 자유와 새로운 삶이 부여한 이 예기치 못한 행복, 이 편안함, 이 희열,

이것은 그녀가 그에게 남겨준 선물이었다. (p.199)

▣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이 짐을 지고 견디거나,

도는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사바나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p.201)

▣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미래로 도망친다.

그들은 시간의 축 위에 선이 하나 있고

그 너머에는 현재의 고통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상상한다. (p.271)

▣ 그녀는 다시 물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무한히 슬퍼졌다.

그녀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이별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러 색깔을 거느리며 사라지는 인생에 대한 작별. (p.282)

▣ 누구라도 친절하고 예의바르며 겸손한 사람을 마주하면, 그가 하는 말이 몽땅 사실이 아니며,

진지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매순간 확신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기 마련이다.

믿지 않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뿐만 아니라 훈련,

그러니까 잦은 경찰의 신문을 받았던 경험이 필요하다. (p.301)

▣ ‘자아’의 유일성은 다름 아닌 인간 존재가 상상하지 못하는 부분에 숨어 있다.

인간은 모든 존재에 있어서 동일한 것, 자신에게 공통적인 것만 상상할 수 있을 따름이다.

개별적 ‘자아’란 보편적인 것으로부터 구별되고 따라서 미리 짐작도 계산도 할 수 없으며

그래서 무엇보다도 먼저 베일을 벗기고 발견하고 타인으로부터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p.321)

▣ “나는 쾌락을 찾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찾아. 행복 없는 쾌락은 쾌락이 아니야.”

달리 말하자면 그녀는 그의 시적 기억에 문을 노크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은 닫혀 있었다.

토마시의 시적 기억에는 그녀를 위한 자리가 없었다.

그녀를 위한 자리는 양탄자밖에 없었다. (p.337)

▣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p.337)

▣ 소설은 작가의 고백이 아니라 함정으로 변한 이 세계에서 인간 삶을 찾아 탐사하는 것이다. (p.356)

▣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다.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p.358)

▣ 육체적 사랑은 그들에게 쾌락을 주었지만 어떤 위안도 되지 못했다.

그녀는 예전처럼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고,

절정의 순간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은 고통과 묘한 의식의 부재를 드러내는 것 같았다.

부드럽게 하나가 되는 순간은 잠이 든 뒤 한밤중에야 가능했다.

그들은 항상 손을 잡고 잤고 그녀는 두 사람을 갈라놓는 심연을 잊었다. (p.363)

▣ 내가 땅에 묻혀 있었어. 오래전부터 당신은 일주일에 한번만 나를 보러 왔어

당신이 지하의 무덤의 문을 두드리면 내가 나갔지.

내 눈 속에는 흙이 가득했어. (p.365)

▣ 사랑, 그것은 우리의 자유다.

사랑은 es muss sein!을 초월하는 것이다. (p.380)

▣ 사랑이란 우리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에 대한 욕망이다. (p.384)

▣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가 미학적 이상으로 삼는 세계는,

똥이 부정되고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각자가 처신하는 세계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러한 미학적 이상은 키치라고 불린다. (p.399)

▣ 키치는 백발백중 감동의 눈물 두 방울을 흐르게 한다.

첫 번째 눈물은 이렇게 말한다.

잔디밭을 뛰어가는 어린아이, 저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두 번째 눈물은 이렇게 말한다.

잔디밭을 뛰어가는 어린아이를 보고 모든 인류와 더불어 감동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키치가 키치 다워지는 것은 오로지 이 두 번째 눈물에 의해서다.

모든 인간 사이의 유대감은 오로지 이 키치 위해 근거할 수밖에 없다. (p.405)

▣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을 도와주는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어떤 시선을 받으며 살고 싶어하는지에 따라 네 범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익명의 무수한 시선, 달리 말하자면 대중의 시선을 추구한다.

두 번째 범주에는 다수의 친한 사람들의 시선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속한다.

세 번째 범주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 속에서 사는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네 번째 범주에는 부재하는 사람들의 상상적 시선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p.439~440)

▣ 키치란 존재와 망각 사이에 있는 환승역이다. (p.455)

▣ 그가 나를 사랑할까? 나보다 다른 누구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보다 그가 나를 더 사랑할까?

사랑을 의심하고 저울질하고 탐색하고 검토하는 이런 모든 의문은 사랑을 그 싹부터 파괴할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아무런 요구 없이 타인에게 다가가 단지 그의 존재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사랑)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p.482)

▣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p.483)

▣ 테레시는 토마시가 자기를 충분하 사랑하지 않는다고 속으로 항상 비난했다.

이제 그녀는 자기가 얼마나 부당했는지 깨달았까.

그녀가 진정으로 토마시를 많이 사랑했다면 그와 함께 외국에 남아야 했다. (p.501)

▣ 토마시, 당신 인생에서 내가 모든 악의 원인이야.

당신이 여기까지 온 것은 나 때문이야.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을 정도로 밑바닥까지 당신을 끌어내린 것은 바로 나야.” (p.505)

※ 책을 읽고

책을 읽고 간단한 독후.

1

외과의사 토마시는 지방에 내려갔다가 술집 종업원 테레자를 만난다.

테레자는 토마시를 운명적 상대라 믿으며 그에게 애착을 보인다.

하지만 토마시는 가벼운 만남을 추구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토마시는 테레자를 만나면서도 지속적으로 다른 여자들을 만난다.

화가 사비나는 가벼움과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토마시는 이러한 사비나와 만나며 연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대학교수 프란츠는 가벼움을 추구하는 사비나에게 매료되어 그녀와 만남을 갖는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이 4명의 인물들의 생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프라하의 봄’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생과 사랑의 철학적 물음 등을 통해

우리들에게 살아간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사유하게 하는 책이다.

한 달 동안 지속적으로 들고 다니며 읽은 책이다.

읽을 때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던 그런 책.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살아간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게 해서 좋았다.

두고두고 읽고 싶다.

책을 읽고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는 그런 책이다.

책을 읽고 간단히 나의 생각이나 느낀 점에 대해 몇 가지 적고자 한다.

소설 속 역사적 배경이나 키치의 철학적 내용 등은 배제하고 삶과 사랑에 초점을 맞추었다.

향후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지금과는 다른 것이 보일 테니

그런 부분은 나중으로 미루어 두겠다.

2. 우리의 인생은 존재의 무거움과 가벼움의 줄다리기와도 같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 인물들은 각각 무거움과 가벼움을 상징한다.

우선 테레자, 프란츠는 무거움을 상징하는 인물이고

토마시, 사비나는 가벼움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책은 이들의 얽힌 관계를 통해 존재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이야기한다.

특히 책의 3부에서 무거움의 프란츠와 가벼움의 사비나를 대조시켜

존재의 무거움과 가벼움에 대해 자세히 상술하고 있다.

밀란 쿤데라는 초반부에서 파르메니데스가 제기한 문제를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는데 이 부분이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본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 (p.13)

우리는 살면서 때때로 가벼운 존재가 되기도 하고 무거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물론 일관성 있게 가벼운 존재가 된다거나 무거운 존재로의 삶을 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내부요인이든 외부요인이든 어떠한 요인으로 인해 변화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볼때 우리의 인생은 존재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오가는 줄다리기인 것 같다.

우리는 무거움과 가벼움의 경계점을 드나드는 삶을 살아간다.

이러한 삶 속에서 우리는 인생에 대해서 사유하고 혼돈의 운명 속에서 우린 각자의 길로 나아간다.

지금 나의 삶도 그러한 존재의 무거움과 가벼움의 경계를 오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3. 신중하게 내린 결정.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

이는 곧 인생이란 자신의 선택에 따라 흘러간다는 것이다.

토마시가 떠난 테레자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그는 베토벤의 악장을 생각한다.

그녀에게 가야만 하는가?

Es muss sein! 그래야만 한다.

이를 바탕으로 토마시는 테레자에게로 간다.

이 악장의 마지막에 베토벤은 이 같은 말을 새긴다.

Der schwer gefasste Entschluss.

신중하게 내린 결정.

아틀라스가 어깨에 하늘을 지니고 있듯 우리도 우리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짊어지고 있기에 무거움과 가벼움의 공존하는 혼돈 속에서

신중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결정이 내려지면 Es muss sein! 이라고 여기며 밀고 나가야만 한다.

몇 개월간 선택의 기로에 놓여 결정을 망설이고 있었다.

이것이 정말 옳은 결정일까? 정말로 괜찮을까? 수도 없이 되뇌고 되뇌었다.

10년을 돌아본 끝에 결국 신중한 결정을 내렸다.

여전히 이 선택이 잘 된 선택인지 모르겠다. 잘못된 선택인 것 같아 여전히 가슴을 무겁게 한다.

그렇지만 이제 결정해버렸다.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정이지 않은가?

이제 토마시가 자신에게 Es muss sein을 새겼던 것처럼 나 또한 내게 Es muss sein을 새겨야만 한다.

우리는 모두 신중한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리게 된다면 그 결정을 밀고 나가야만 한다.

4. 우리의 인생, 우리의 사랑은 현재 무거움인가 가벼움인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의 인물들은 각각 무거움과 가벼움을 상징한다.

테레자와 프란츠는 무거움을 상징하는 인물,

토마시와 사비나는 가벼움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사비나의 경우 쿤데라가 콕 집어 그녀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지녔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의 인생과 사랑, 나의 인생과 사랑은 현재 무거움인가 가벼움인가?

이에 대해서 깊이 사유해 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나의 경우 4명의 인물중 테레자의 삶과 많이 닮아 있다.

테레자는 무거움을 상징하는 인물로 한 사람에게 의지하는 경향이 강하며 정신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인다.

모험이나 자유를 추구하기보다는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고 유지, 고수하려는 마음이 더 크다.

이는 그녀와 대척점에 있는 자유롭고 가벼운 경향의 사비나와는 여러모로 대조된다.

그래서일까? 테레자의 모습은 마치 나를 보는 것만 같았다.

책을 읽는 동안 소설 속 4명의 인물들 중 이러한 성향의 테레자에게 마음이 가장 많이 갔다.

예전부터 테레자와 유사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의 그런 모습들은 이 블로그의 과거 기록들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읽은 책 중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책이 있다.

이 소설 속 여주인공 폴은 사랑의 덧없음을 깨달으며 익숙함으로의 회귀를 추구하는 인물이다.

폴과 테레자 둘을 보며 나는 현재 그녀들과 많이 유사하다는 것을 느꼈다.

한 사람에게 의지하는 경향, 일상 속의 권태 속에서 정신적으로 약한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유, 가벼움을 추구하기보다는 무거움을 추구하는 측면에서 비슷하다.

때문에 사랑도 폴과 테레자처럼 무거운 사랑을 추구하는 것 같다.

토마시와 사비나처럼 가벼운 사랑을 추구하는 게 싫다.

누군가를 마음을 다 내주어가며 사랑하는 것, 나는 그런 사랑을 추구하는 듯하다.

밀란 쿤데라는 앞서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고 했다.

이를 통해 볼 때 무거움을 추구하는 내게 가벼움을 추구하는 사람이 필요할지 모른다.

무거움과 가벼움이 서로 만나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각자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산다면 테레자가 토마시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처럼 나도 괴로움을 겪을 것 같다.

그래서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의 모순이 중요함을 알면서도

나는 무거움과 무거움의 만남을 추구하고 싶다.

책 속에 나오는 이 문장은 테레자가 한 말로 참으로 공감이 간다.

“나는 쾌락을 찾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찾아.

행복 없는 쾌락은 쾌락이 아니야.” (p.337)

테레자는 가벼움과 쾌락을 중시하는 토미사와는 달리

무거운 삶 속에서 행복을 우선해야 함을 강조한다.

행복이 중요하다는 테레자의 생각에 공감이 간다.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소망이 있다. 그리고 그 행복은 무거웠으면 좋겠다.

무거움과 무거움 속에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같은 인생길을 걸으며 행복하게 사는 것, 그런 삶을 살고 싶다.

5. 가벼움과 가벼움이 만나 함께 무거워진다.

밀란 쿤데라는 왜 책의 제목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고 했을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과 가벼움이라고 했다면 서로의 균형이 맞지 않았을까?

밀란 쿤데라가 정말 그렇게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 생각에 가벼움을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지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선 부분들에서 우리는 무거움 또는 가벼움을 지니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무겁다는 것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을까?

무거움은 상대적인 측정치에 불과하다.

무거움은 또 다른 무거움과 비교한다면 가벼움에 불과할지 모른다.

즉, 간단히 하자면 우리는 모두 가벼운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가벼운 존재들이다.

그리고 가벼움과 가벼움이 만나 삶의 무게가 더해진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각자가 갖고 있는 가벼움과 가벼움이 만나 서로에게 삶의 무게를 더해주는 것, 이런 게 사랑인 것 같다.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를 사랑하며 함께 삶의 무게를 더하는 그런 삶을 소망한다.

6. 인간의 삶은 마치 악보와도 같다.

밀란 쿤데라는 소설의 92페이지에서 인간의 삶은 마치 악보처럼 구성됨을 이야기한다.

이를 옮겨보자면 인간의 삶은 마치 악보와도 같다.

미적 감각에 의해 의도된 인간은 우연한 사건을 인생의 악보에 각인될 하나의 테마로 변형한다.

그리고 작곡가가 소나타의 테마를 다루듯 그것을 반복하고 변호시키고 발전시킬 것이다.

인간은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에서조차 무심결에 아름다움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작곡한다.

즉, 우리의 삶 속에 벌어지는 우연한 모든 일들에

의미를 부여할 때 의미 있는 사건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우연한 사건들을 겪는다.

이 우연의 날들 속에서 작곡가가 악보를 작곡하듯

한 사건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 아로 새겨질 때 그 사건은 의미 있는 사건이 된다.

그러므로 우연한 사건의 삶 속에서 어떤 사건을 인생의 악보에 각인시킬 것인가는 나에게 달려있다.

흘러가는 우연한 사건들을 그냥 지나치지 말자.

그 우연의 사건들 틈에서 인생의 큰 사건이 될만한 테마가 나타날지도 모르니깐 말이다.

7. 영원한 회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시작 부분에서

쿤데라는 니체의 사상을 인용하여 영원한 회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가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영원한 회귀라는 사상은 세상사를 우리가 아는 그대로 보지 않게 해주는 시점을 일컫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상 사는 세상사가 덧없는 것이라는 정상참작을 배제한 상태에서 우리에게 나타난다.

이를 간단히 하자면 영원한 회귀란 윤회론적 사고방식이다.

우리의 세상 사는 한낱 덧없는 것에 불과하고 우리의 인생이란 곧 사라지고 마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자그마한 사건이나 사소한 일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너무 얽매이지 말자.

시간을 두고 돌아봤을 때 그 일들은 덧없는 것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될 테니 말이다.

8. 사랑에 대한 표현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에 사랑에 대해 깊이 이야기하는 부분들이 많다.

이 중에서 다시 한번 적어보고 싶은 문장들 몇 가지를 옮겨 본다.

▣ 사랑은 정사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동반 수면의 욕망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p.28)

▣ 사랑한다는 것은 힘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p.186)

▣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p.337)

▣ 만약 흥분이 창조주가 재미 삼아 즐기는 기계 장치라면,

사랑이란 오로지 우리의 권능에만 속한 것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창조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사랑은 우리의 자유다.

사랑은 “es muss sein!”을 초월하는 것이다. (p.380)

▣ 사랑이란 우리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에 대한 욕망이다. (p.384)

책을 읽다 보면 사랑에 대한 좋은 표현들이 참으로 많다.

이를 통해 책을 읽는 우리들에게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책과 책 속의 문장들을 보며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심도 있게 사유해본다.

9. 죽음에 대한 테레자의 꿈.

테레자는 토마시와 거리감을 느끼고 있던 때에 자신이 죽어 있는 꿈을 꾼다.

아래는 테레자가 묘사한 꿈의 내용이다.

“내가 땅에 묻혀 있었어. 오래전부터 당신은 일주일에 한번만 나를 보러 왔어.

당신이 지하 무덤의 문을 두드리면 내가 나갔지. 내 눈 속에는 흙이 가득했어.” (p.365)

이러면서 토마시가 테레자의 눈에 덮인 흙을 털어주었지만

여전히 테레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으며 눈 대신 그 자리에 구멍만 있다고 말한다.

이윽고 토마시가 떠나면 테레자는 다시 무덤 속으로 내려가서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할 거고, 한 달 후 토마시가 돌아올 때가 되면 몰골은 더 흉할 테고,

그러면 토마시가 자신에게 더 실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어쨌거나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해. 눈이 있던 자리에 구멍만 있어.” (p.366)

이러한 테레자의 말에 토마시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낀다.

그리고 토마시는 그녀가 죽어있는 모습을 생각하며 성찰적 태도를 보인다.

무덤 속에서 토마시를 기다린다는 테레자의 모습은 너무 소름이 끼친다.

그러한 처절한 감정이 너무 와닿기 때문에 너무 슬프다.

그녀가 꿨던 꿈처럼 내가 그러한 모습을 한다면 나도 무덤 안에서 누군가 오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기다리는 사람은 처음에는 자주 오겠지만 어느새 발걸음이 뜸해져 흉한 몰골이 되어 쓸쓸히 죽어갈 것이다.

이런 생각에 감정이입을 해보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러한 감정을 도대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내가 땅에 묻혀있을 때 찾아올 누군가가 있을까? 정말 괴롭고 고통스러운 생각이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부재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며 깊은 애상에 젖는다.

10. 진정으로 사랑을 한다면…

테레자는 소설의 전반적인 부분에 걸쳐 토마시의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토마시의 바람기를 증오하고 그가 다른 여자들을 만나는 것을 질투한다.

그녀는 토마시에게 강하게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며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속으로 항상 비난하곤 했다.

그래서 애정 결핍, 우울감 등의 정신적으로 약한 모습들을 자주 보인다.

테레자는 책의 후반부에서 자신의 생각이 부당했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자신이 토마시를 정말 많이 사랑했더라면 그에게 짐이 되지 말았어야 함을 깨닫는다.

그녀는 토마시에게 짐이었으며 그녀는 토마시를 시련에 빠트릴 뿐이었다.

요정이 농부를 소용돌이 속에 끌어들여 빠뜨려 죽이듯

그녀는 그를 불러들어 더욱 낮은 곳으로 끌고 갔다.

그렇게 그들은 막다른 곳에 다다랐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테레자는 토마시에게 이렇게 말한다.

“토마시, 당신 인생에서 내가 모든 악의 원인이야.

당신이 여기까지 온 것은 나 때문이야.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을 정도로 밑바닥까지 당신을 끌어내린 것은 바로 나야.” (p.505)

이 부분에 대해 토마시는 그곳에서의 삶이 행복하며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홀가분하다고 말한다.

테레자는 그의 말을 듣고 이상한 행복,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이 슬픔은 둘이 종착역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행복은 둘이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테레자의 마음에 깊은 공감이 가는지…

사랑하는 사람을 정말 많이 사랑했더라면 사랑하는 사람의 짐이 되지 말았어야 한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 되돌아봤을 때 내가 짐이었으며

그 사람에게 시련만을 안겨주었다는 것을…뒤늦게서야 깨닫는다.

이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종착역에 이르게 된 테레자의 마음에 동정을 느낀다.

예전에 읽은 책 중에 서머싯 모옴의 <인생의 베일>이라는 책이 있다.

거기의 유명한 문구 중 “죽은 건 개였어”라는 문구가 있다.

이는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궁지로 몰고 미워했던

선택이 결과적으로 나 자신을 궁지로 몰고 나를 파멸로 이르게 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문장으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후반부를 읽으며 이 문장이 떠올랐다.

이 문장을 생각하니 테레자의 마음에 더욱 더 공감이 간다.

예전에 읽은 또 다른 책 중에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라는 책이 있다.

이 책 속의 남주인공 슈타인은 사랑하는 니나를 점차 애정, 애착, 연민, 존중 등으로

변화하여 순화된 방식으로 니나를 사랑하게 된다.

슈타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막지 않기 위해 노력했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시련에 빠트리거나, 밑바닥까지 끌어내리는 행동을 최대한 자제한다.

그렇게 그는 사랑하는 사람의 본연을 사랑하는 성숙한 사랑으로 나아간다.

본연을 사랑하는 성숙한 사랑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자신을 끌어내렸다고 이야기함에도

그것은 틀렸다고, 자신은 행복하다고 이야기하는 토마시처럼 그런 말을 할 줄 아는 이가 되어야겠다.

테레자, 토마시, 사비나, 프란츠 여기에 월터, 키티, 슈타인, 니나로부터 사랑을 배운다.

이러한 사색에 젖고 나니 소설 속 이 한 문장이 깊이 와닿는다.

소설은 작가의 고백이 아니라 함정으로

변한 이 세계에서 인간 삶을 찾아 탐사하는 것이다. (p.356)

이래서 소설을 읽는가 보다.

세상 속에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을 탐색하고 배우고 깨닫기 위해서 말이다.

참으로 기가 막힌 책이다.

# 2020년 10번째 책 독서 완료.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을 울린 문장들이 참으로 많았다.

그리고 테레자에게서 왜 이렇게 내 모습이 많이 비치는지.. 정말 좋은 책이다.

한달 동안 들고 다니며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그럼에도 또 읽고 싶은 책이다.

읽어보니 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나의 인생 책으로 손꼽는 <삶의 한가운데>만큼 좋았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다들 그런 때가 있지 않나요? 광활한 우주 안에 내가 짊어지고 가는 이 인생이 한없이 작다고 느낄 때가. 내가 사랑하고 미워하고 용을 쓰는 이 현실을 갑자기 한 발자국 떨어져 보게 될 때가. 그럴 때면 나의 우스운 행동과 지나치게 진지한 마음, 남들을 향한 안쓰러운 노력 같은 것들을 다 포기해 버리고 싶지 않나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바로 그런 마음이 생길 때 읽기 좋은 책입니다. 가벼운 남자와 무거운 여자 사이의 사랑을 그린 이 책은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한편으로 하나의 철학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자 밀란 쿤데라는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풀어놓는 곳곳에 인생의 의미에 대한 본인의 철학을 심어놓으며, 이 책을 소설 이상의 무언가로 만들어 냅니다. 덕분에 독자는 하나의 이야기를 읽는 도중 작가가 심어놓은 이미지와 상징물들을 곱씹을 수 있으며, 동시에 본인의 인생에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적용시킬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제목이 ‘참을 수 없는 인생의 가벼움’ 일까요? 이는 소설 첫 장을 읽으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작가는 우리가 흔히 느끼는 인생의 덧없음이 사실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찰나를 살아갈 수밖에 없어서, 그리고 인생을 한번 더 되풀이할 수 없어서, 본질적으로 무의미한 존재입니다. 만일 우리가 인생을 한번 더 살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면 그 두 번째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어떤 실수를 했다면 다음 인생에서 그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지요. 더 선하고 더 후회 없이 살아갈 수 있을 터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럴 기회가 없고, 지금 이 순간에도 찰나는 계속해서 손끝에서 빠져나갈 뿐입니다.

1) 토마시와 테레자 – 우연과 운명, 그 사이를 교향곡처럼 작곡하는 커플

주인공 중 한 명인 토마시는 한없이 가벼운 남성입니다. 외과의사인 그는 여러 여자 친구와 성관계를 하는 데서 만족감을 얻지만, 그 누구와도 진지한 관계로 발전하지 않습니다. 그들과 함께 밤을 지새우고 싶지 않아서 집에는 소파조차 들여놓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보헤미아의 한 마을에서 테레자라는 여인을 만나 운명에 이끌리듯 사랑에 빠집니다. 그녀가 하필 그날 아파서 그랬는지, 그녀가 보헤미아를 떠나 프라하로 그를 찾아와서 그랬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우연이 여러 번 겹친 작은 만남으로 인해 토마시는 테레자와 동거를 시작합니다.

테레자는 토마시와 정반대의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한 그녀에게 삶이란 끊임없이 증명해내야만 하는 무거운 것입니다. 불행한 결혼생활을 한 어머니는 늙고 추한 자신의 모습에서 오는 불행을 테레자를 향한 학대로 풀어냈습니다. 테레자는 어머니에 대한 반항심으로 오히려 더욱 외모에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바람기가 다분한 토마시를 만나 겪는 인생의 무게는 더욱 무거웠을 것입니다. 만남이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토마시와 달리, 테레자는 우연이 여러 번 겹치면 그게 바로 운명이라고 여깁니다.

“인간의 삶은 마치 악보처럼 구성된다. 미적 감각에 의해 인도된 인간은 우연한 사건(베토벤의 음악, 역에서의 죽음)을 인생의 악보에 각인될 하나의 테마로 변형한다. 그리고 작곡가가 소나타의 테마를 다루듯 그것을 반복하고,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것이다.”

작가는 토마시와 테레자의 만남을 통해 가벼움과 무거움, 우연과 운명이라는 서로 다른 이미지의 대조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인간이 인생을 살아나가는 방식에는 우연을 마치 운명처럼 그려내는 미학적 과정이 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토마시와 테레자가 서로 다른 인생의 의미를 가지고 관계를 맺어가듯, 인간은 본질적 가벼움에도 불구하고 우연에 미학적인 의미부여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에는 인생이란 이렇다는 식의 결정론도, 인생이란 이렇게 만들어져야 한다는 뻔한 조언도 없습니다. 그저 살아 숨 쉬는 다른 인물들을 분석하며 작가가 늘어놓는 상념과 여러 이미지를 통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있을 뿐입니다. 하나의 결론을 향해 가지 않아도 된다는 다채로움이 독자의 독서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줍니다.

“현기증, 그것은 추락에 대한 두려움과는 다른 그 무엇이다. 현기증은 우리 발밑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홀리는 공허의 목소리, 나중에는 공포에 질린 나머지 아무리 자제해도 어쩔 수 없이 끌리는 추락에 대한 욕망이다.”

2) 사비나와 프란츠 – 결코 닿을 수 없는 타인에 대한 고찰

사비나는 프라하에 거주하는 화가로, 자유로운 영혼과 그에 못지않은 자유로운 관계를 즐기는 여성입니다. 사실 앞서 소개한 토마시와도 가벼운 관계를 맺고 있었죠. 그렇게 인생을 즐기던 그녀는 어느 날 명망 있는 과학자 프란츠와 연인으로 발전합니다. 프란츠는 사비나와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입니다. 학계에서 명성을 떨치며 살아가고 있지만, 자신이 있는 곳의 현실성을 부정하고 진정한 현실이 다른 곳에 있다고 여기죠. 그는 현실감을 느끼기 위해 시위 행렬이나 혁명에 참가합니다. 그런 그에게 사비나라는 보헤미안 아티스트는 삶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한 사람으로 보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비나는 그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공산주의와 혁명의 과정을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보헤미안 토박이입니다. 그녀는 오히려 자신을 둘러싼 세계(공산주의)를 배신하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죠. 그렇기에 프란츠와 사비나는 서로의 육체는 탐하지만, 결코 합일에 도달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성관계를 맺는 도중 중절모를 가지고 장난을 치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합니다. 밀란 쿤데라는 서로 닿을 수 없는 타자와의 이질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젊은 시절 삶의 악보는 첫 소절에 불과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함께 작곡하고 모티프를 교환할 수도 있지만(토마스와 사비나가 중산모자의 모티프를 서로 나눠 가졌듯) 보다 원숙한 나이에 만난 사람들의 악보는 어느 정도 완성되어서 하나하나의 단어나 물건은 각자의 악보에서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기 마련이다.’

사비나와 프란츠의 이야기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토마시와 테레자의 이야기를 다시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토마시와 테레자 사이에는 가벼움과 무거움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사비나와 프란츠도 한쪽은 한없이 가벼운 반면 한쪽은 한없이 무겁습니다. 예를 들어 사비나는 공산주의라는 사상에 별다른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고 본인이 속한 세계(프란츠까지도)를 계속해서 배신하며 파리로, 뉴욕으로 향합니다. 반면 프란츠는 테레자가 떠난 다음에도 그녀가 자신을 어디에선가 부르고 있다고 믿으며, 그녀와 자신 사이의 운명을 믿습니다. 마치 테레자처럼요.

그러나 토마스-테레자 커플과는 달리 사비나-프란츠 커플은 진정한 사랑에 도달하지 못하고 흩어져 각자의 끝을 마주합니다. 이런 상반된 결말 역시 독자의 상상력과 의문을 자극합니다. 우리는 과연 토마스-테레자처럼 미학적인 운명의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아니면 끝끝내 사비나에게 자신의 무거움을 인정받지 못한 프란츠처럼, 무거운 나의 인생을 누군가로부터 가볍게 외면당하게 될까요?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우연일까요? 아니면 운명일까요?

다시 분명한 것은 우리는 타인의 삶을 살지 못할뿐더러, 나의 두 번째 인생도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무엇에 의해 어디로 흘러가든, 그것을 증명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으며 나의 과거는 누군가에게 한없이 가벼워질 터입니다.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다. 유럽 역사와 마찬가지로 보헤미아 역사도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보헤미아 역사와 유럽 역사는 인류의 치명적 체험 부재가 그려 낸 두 밑그림이다.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3) 카레닌의 미소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니체의 영원 회귀 사상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영원 회귀가 무엇인지는 사실 아직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영원 회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들 뒤에 있는 이 긴 길, 이 길은 영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 앞에 있는 저 긴 길 – 그 길은 또 다른 쪽 영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두 길은 서로 반대쪽으로 나 있다. 그들은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리고 이 두 길은 이 출입구에서 만난다. 이 출입구의 이름은 그 위에 씌어 있다. ‘순간’이라고.”

개인적으로 니체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영원 회귀라는 사상이 시간을 직선의 형태가 아닌 순환의 형태로 이해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시간이란 단선적으로 흘러서 지금의 뒤에는 과거가 있고 지금의 앞에 미래가 있다고 상상합니다. 그러나 니체에 의하면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고 찰나의 반복으로 흘러갑니다. 찰나는 영원과도 같고, 그 영원은 찰나가 계속되면서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그리하여 시간은 영원히 회귀합니다.

니체가 말한 시간의 개념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초인은 드물 것입니다.’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도 주인공들은 인생의 가벼움과 무거움과 관련한 많은 경험을 하지만, 이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몰라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그들 중 유일하게 니체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토마스와 테레자의 개, 카레닌입니다.

책 표지에 그려진 카레닌의 모습

밀란 쿤데라가 직접 그렸다는 이 책의 표지에도 카레닌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카레닌은 단순한 반려 동물을 넘어 이 책의 핵심적인 등장인물(이 아닌 등장물)입니다. 카레닌은 니체의 가르침을 행하고, 그렇기 때문에 행복한 유일한 존재입니다.

카레닌은 잠에서 깰 때 순수한 행복을 느꼈다. 그는 천진난만하게도 자신이 아직도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진심으로 이를 즐거워했다. 반면에 테레자는 밤을 연장하고 싶고 다시 눈을 뜨고 싶지 않은 욕망 때문에 마지못해 잠에서 깨어났다.

카레닌이 개가 아니라 인간이었다면 틀림없이 테레자에게 오래전에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봐, 매일같이 입에 크루아상을 물고 다니는 게 이제 재미없어. 뭔가 다른 것을 찾아줄 수 있겠어?” 이 말에는 인간에 대한 모든 심판이 담겨 있다.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라고 테레자는 생각한다.

결국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하루하루를 이루는 반복적인 일에서 싫증을 내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해야 한다는 결론이 납니다. 오늘 처음으로 세상에 온 것처럼, 지금 먹고 있는 크루아상을 마치 어제는 먹지 않았던 것처럼 계속해서 반복하며 살아가야만 영원히 반복되는 시간을 진정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니체는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라(Amor Fati)라고 말합니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우리는 그를 다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주어진 주사위의 결과를 받아들인 채 주사위를 다시 던지는 것뿐입니다. 비록 그것이 무의미할지라도, 나의 미래를 조금도 바꾸지 못할 지라도. 나에게 주어진 것은 지금 이 순간뿐 이기 때문입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연애 혹은 섹스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다가도, 중간중간 삶과 존재에 대한 무거운 생각들로 인해 휙휙 넘기기 어려워지는 책입니다. 이 세상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수많은 가르침 (인생은 소중하다 / 우리는 선하게 살아한다 / 삶을 성실히 살아야 한다)에 삐딱선을 타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볼 가치가 있습니다. 매일매일을 행복하게 사는 카레닌처럼, 오늘 당신의 책장 넘기는 소리가 반복에서 오는 행복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Nesnesitelná lehkost bytí 저자 밀란 쿤데라 국가 프랑스 언어 체코어 출판사 S. Fischer Verlag 발행일 1984년 (프랑스어 번역본)

1985년 (체코어 원본) 페이지 393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체코어: Nesnesitelná lehkost bytí)은 프랑스로 망명한 체코 출신의 작가인 밀란 쿤데라가 1984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아버지가 없이 자란 의사 토마시(Tomáš), 토마시의 아내이자 사진작가인 테레자(Tereza), 예술가이자 토마시의 불륜상대인 사비나(Sabina), 사비나의 또 다른 연인인 프란츠(Franz)를 주인공으로 하며 1968년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1982년부터 쓰여졌지만 쿤데라는 2년 후에 프랑스어로 먼저 출판하였으며 1985년에 체코어로 출판하였다. 1988년에는 영화 《프라하의 봄》으로 제작된 바 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주제 연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중심주제는 소설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작가는 이 중심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여러 주제들을 동원하고 있는데, 이들 중 가장 중요한 주제들은 ‘가벼움과 무거움’, ‘영혼과 육체’, ‘대장정’으로 표현되는 키치, 그리고 ‘카레닌의 미소’로 표현되는 목가(牧歌) 등이다. 그리고 소설의 중심주제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누구보다도 주인공 사비나와 관련을 갖는데, 사비나가 배반에서 배반으로 끝없는 탈출을 감행하면서 끝내 느끼는 감정이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고 존재의 공허함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토마시와 테레사, 프란츠와 사비나 간의 사랑을 그리고 있는 사랑 소설이다. 그런데 이들의 사랑은 우여곡절로 점철된 사랑으로서 주인공들 중 가장 덜 키치적인 사비나와 가장 더 키치적인 프란츠 사이의 사랑은 두 사람 간의 이른바 ‘이해되지 않는 단어들’에 의해 표현되는 몰이해의 패러독스로 인해 파탄을 맞고, 토마시와 테레사 사이의 사랑은 강자와 약자 간의 심한 불균형성과 비대칭성으로 몸살을 앓는다. 하지만 가벼운 사랑의 화신으로서 절대 강자인 토마시가 영혼과 육체의 일원적인 사랑을 고집하는 절대 약자인 무거움의 테레사에게로 하중(荷重)을 옮겨옴으로써 두 사람의 사랑은 균형을 갖추게 되고 행복을 얻게 된다. 그러나 시간의 영원회귀가 작동하는 목가적인 전원 속에서의 더 없이 행복한 두 사람의 사랑은 어이없는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으면서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여기서 우리는 한번 가면 되돌아올 수 없는 인간 존재의 일회성 앞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인생무상을 경험한다.

The main theme of Milan Kundera’s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is the title itself, i.e.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To expose the main theme author mobilizes many other themes like lightness and weight, soul and body, kitsch represented by ‘Grand March’, and idyll represented by ‘Karenin’s smile’, as shown in the Contents of the book. The main theme of the novel,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is related with the heroin Sabina first of all. She meets with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at her final stage of continuous betrayals and then she feels emptiness all around her. At this moment author raises a question: “One could betray one’s parents, husband, country, love, but when parents, husband, country, and love were gone – what was left to betray?” The goal of all her betrayals became the emptiness. Kundera’s novel is a love story between Tomáš and Tereza, between Franz and Sabina. However their loves were with many twists and turns. The love between Franz and Sabina came to failure because of the paradox of misunderstanding represented by the so-called ‘Misunderstood Words’. And the fact that their love was the love between the most kitsch oriented Franz and the least kitsch oriented Sabina anticipates that their love could hardly be completed. The love between Tomáš and Tereza is based on the extreme unbalance between the strong man Tomáš and the weak Tereza and their love was an ‘oddly asymmetrical construction’ supported by the absolute certainty of her fidelity. However the play boy Tomáš gives up his Don Juanism and accepts Tereza’s proposal to leave Prague for the country and there they find peace in the idyllic countryside, in nature, surrounded by the domestic animals and in the bosom of regularly recurring seasons. But their happiness does not last long. Soon they are killed by car accident. Here we experience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as well as the vanity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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