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의 일생 | [#정주행] 부처님의일생 : 태어나서 열반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이야기 #부처님의일생정주행 #열반에드신부처님 #Bbs애니메이션 154 개의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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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역사적으로 실존했었던 인물이며 부모형제가 있었고 아내도 아들도 있었던 것이다. 35세에 정각을 성취하고 그 후 45년간 수많은 사람에게 가르침을 베풀고 80세에 입멸하였다. 불교의 역사상 많은 붓다가 존재한다. 과거에도 붓다가 있었고 미래에도 붓다가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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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일생 – 나무위키

불경은 성경과는 달리 석가모니 부처가 언제 어디서 무슨 연유로 어떠한 설법을 했노라고 석가모니의 ‘설법’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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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6/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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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입문 – 부처님의 생애 – 능인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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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ungin.net

Date Published: 10/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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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생애 : 고타마 싯다르타에서 붓다로 | 1. 보통은 부처, 또는 붓다(Buddha)로 알려진 고타마 싯다르타(Gautama Sdhartha : BC563년~BC48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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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생애 – YES24

부처님의 생애. : 진리를 밝힌 위대한 스승. [ 보급판 ]. 유근자,조준호,박경준,정인스님,성재헌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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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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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생애를 새긴 비상 – 조각과 함께 떠나는 성지순례

부처의 생애를 새긴 비상, 인도 팔라시대 10세기, 석조, 높이 40.6cm, 구3269 석가모니 부처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촉지인 불상을 중심에 두고, 부처의 삶에서 중요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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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7/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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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부처의 일생 The Life of the Buddha – The Pale Blue Dot.

살생하지 말라(不殺生), 도둑질 하지 말라(不偸盜), 음행을 하지 말라(不邪淫), 거짓말을 하지 말라(不妄語), 술을 마시지 말라(不飮酒). 이는 첫 승가(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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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8/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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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석가모니(釋迦牟尼, 산스크리트어: शाक्यमुनि 샤캬무니)는 불교의 교조이며 다른 호칭 … 을 수행하여 35세에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고 부처(Buddha, 佛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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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8/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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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부처 의 일생

  • Author: BBS불교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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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2. 5. 7.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vYhlcOPuS1A

부처님의 생애

부처님

불교의 시작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과 가르침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석가모니라는 명칭은 ‘석가족 출신의 성자(聖者)’라는 의미이며, 부처님은 ‘진리를 깨달은 사람’ 이라는 뜻입니다.

본래 부처님의 성은 고타마이며 이름은 싯달타였는데 진리를 깨달은 이후부터 부처님(Buddha)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소리를 따서 ‘불타(佛陀)’로 적거나 혹은 뜻을 옮겨서 ‘각자(覺者)’라고 합니다만 한국에서는 ‘부처님’이라고 부릅니다. 이 밖에도 부처님은 여러 다른 명칭으로 불리는데, 전통적으로는 여래십호(如來十號)라 하여 10가지의 이름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B.C. 624에 탄생하셔서 544년에 열반하셨습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불기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해를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부처님은 석가족이 세운 카필라 왕국의 정반왕(淨飯王)과 마야(摩耶) 왕비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카필라 왕국은 지금의 인도 북부 네팔 땅에 위치한 작은 왕국으로 벼농사를 주된 산업으로 하는 농업국이었습니다. 마야왕비는 당시의 풍속에 따라 출산하기 위해 친정으로 가던 도중, 룸비니 동산에서 싯달타를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마야 왕비는 아기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났고, 싯달타는 이모인 마하파자파티에 의해 양육되었습니다. 비록 일찍 어머니를 잃은 싯달타였지만 왕자로서 모자람 없는 환경 속에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태자 싯달타는 날이 갈수록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겠다는 생각보다는 인생의 근본문제인 삶과 죽음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부왕인 정반왕은 태자 싯달타의 번민을 알고 그의 마음을 돌리려고 삼시전(三時殿)이란 세 개의 궁전을 지어 철마다

옮겨다니면서 호화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왕궁의 호화로운 생활도 싯달타 태자에게는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 했습니다. ‘사람은 왜 늙어야 하며, 또 병들고 아파야 하며, 결국은 죽어야 하는 것인가?

또한 현실은 너무나도 괴로움이 많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러한 괴로움은 왜 생기는 것이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세상의 많은 가르침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가르침만이 옳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가르침이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들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고, 이에 대한 사색과 번민은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19세에는 같은 석가족의

콜리성주의 야쇼다라공주와 결혼하였고, 아들 라훌라가 태어납니다만, 싯달타 태자의 머리 속에는 어떻게 해야 생로병사를 벗어나 해탈을 이룰 것인가 하는 문제로 늘 가득 찼습니다.

드디어 싯달타 태자는 출가를 결행하니 그의 나이 29세였을 때입니다. 출가를 한 싯달타는 스승을 찾아 나섰습니다.

당시 가장 훌륭하다고 소문난 두 명의 수행자로부터 선정(禪定)에 이르는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즉 정신통일을 하여 고요한 경지에 도달하여 해탈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정(禪定)도 깨어나면 전과 똑같은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괴로움이 없는 편안한 상태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정신통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정신작용의 완전한 정지는 죽음에 이르러야만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싯달타는 두 스승을 떠나게 됩니다.

전통적인 수행자들로부터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음을 안 싯달타는 혼자의 힘으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찾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가야의 네란자라 강가 숲 속에 자리잡고 정신적인 자유를 얻기 위한 고행을 극심하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육체적 고행으로 싯달타의 몸은 날이 갈수록 쇠약해졌을 뿐 깨달음은 얻지 못하였습니다. 드디어 그는 네란자라 강에서 몸을 씻고 고행을 그만두었습니다. 그 때 마침 지나가던 수자타라는 소녀로부터 우유로 발효시킨 죽을 받아 마시고 기운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건강해진 몸과 상쾌한 정신으로 싯달타는 보리수 그늘 아래에 앉아 참선수행에 몰입하였습니다. 며칠이 지난 새벽에 그는 드디어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 왕궁을 떠나 출가하여 수행의 길을 걸은 지 6년만이었고 그의 나이는 35세 때였습니다. 깨달은 사람 부처님이 된 것입니다.

그의 깨달음의 주요 내용은 ‘모든 것은 원인에 의해서 결과가 있는 것이며, 모든 것은 그 어느 것도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관계에 의해서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무엇이 진리인지 알지 못하는 무명(無明)’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행복과 불행은 신이나 운명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스스로가 지은 원인에 의해서 받는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은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기 위한 여행을 떠났습니다. 부처님은 부다가야의 보리수를 떠나 처음으로 향한 곳은 바라나시의 녹야원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부처님은 최초로 다섯 수행자들에게 수행의 바른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수행자는 지나친 향락에 빠져서는 안 되며, 그렇다고 극단적인 고행을 하는 것도 옳지 않으므로 두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의 길을 가라고 가르쳤습니다.

이어서 네 가지의 성스러운 진리인 사성제(四聖諦)를 가르쳐 다섯 수행자들을 깨우치게 했습니다. 그들은 부처님의 최초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이후 왕사성(王舍城)을 중심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퍼져나가 수많은 제자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국왕과 대신, 부호, 평민, 천민 할 것 없이 각계 각층의 사람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큰 감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죽음은 살아있는 모든 것에게 평등한 것입니다. 온 생애를 오로지 모든 사람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데에 바치신 부처님께서도 죽음을 맞이하셨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 자신에 의지하라 진리에 의지하고, 진리를 스승으로 삼아라. 진리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리라. 이 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니 부지런히 정진하여 고통의 속박에서 벗어나라.”

라는 가르침을 마지막으로 남긴 채 쿠시나가라 사라쌍수 아래에서 대지를 붉게 물들이는 장엄한 황혼처럼 부처님은

80세의 위대한 생애를 마치십니다.

35세에 깨달음 얻은 후, 녹야원에서의 첫 설법을 시작으로 하여, 쿠시나가라에서 80세에 열반에 들기까지 부처님은 45년 간 쉬지 않고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이와 같이 길에서 태어나시어, 길에서 고뇌를 하시고, 길에서 수행하며, 길에서 깨달음을 이루시고, 길에서 사람의 갈 길을 가르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길에서 주무시며, 길에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글자 그대로 부처님은 바로 길에서 길을 인도하신 도사(導師)였던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구도(求道)와 성도(成道) 그리고 교화(敎化)와 입멸(入滅)의

길을 걸으신 부처님의 생애는 참으로 위대하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은 정신적인 깊이와 도덕적 위대성을 지니시고, 지혜와 자비를 갖추신 분으로서 인류에게 인간의 위대성을 보여준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종교를 초월하여 부처님을 인류의 위대한 스승으로 존경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01화 들어가며 1 : 부처의 생애

1.

보통은 부처, 또는 붓다(Buddha)로 알려진 고타마 싯다르타(Gautama Siddhartha : BC563년~BC483년)는 사카족의 작은 나라의 왕자로 태어났습니다. 고타마가 씨족의 성이고, 싯다르타가 이름인데, 뜻은 ‘목적을 이룬 사람’이지요. 그가 깨달음을 얻은 후 사람들은 그를 석가모니(釋迦牟尼:Sakya-muni)라고 부르는데, 이는 ‘사카족의 성자’라는 뜻입니다. 싯다르타의 어머니 마야부인은 하얀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임신을 했답니다. 싯다르타는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은 후, 오른손으로는 하늘을 왼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하늘 위와 아래 오직 나홀로 존귀하다”고 외쳤다는데, 이 사건이 사실이 아닌 것이야 확실하지만, 종교지도자의 탄생치고 좀 거창하다 싶습니다.

후에 예언자 아시타는 이 어린 싯다르타를 일견하고 나서 이상적 군주가 되든지, 부처가 될 것이라 말하여 왕국을 물려주려는 왕의 근심거리가 됩니다. 싯다르타의 아버지는 아들이 종교지도자가 될 가능성을 봉쇄하기 위해 계절마다 번갈아 기거할 수 있는 3개의 궁전을 지어주고, 4천(혹은 4만) 무희들을 보내어 온갖 즐거움을 선사했으며, 16살에는 아쇼다라라는 예쁜 공주와 결혼도 시켰지만, 싯다르타의 운명은 아비의 기대와는 반대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감수성이 남달랐던 싯다르타는 궁 밖으로 나가 인도민중들의 고통을 느끼고 그 고통을 없앨 방법을 찾아 출가하게 됩니다.

2.

무릇 모든 종교는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 “인간의 고통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아무리 심오한 종교적 탐구라 하더라도 이 단순하고 근본적인 질문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아니 이 질문에서 벗어난 종교는 이미 현실성을 상실한 시대착오적인 종교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세속적인 대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고통은 결핍에서 오는 것이니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육체적 건강, 경제적 부, 사회적 명성, 정치적 권력의 획득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보는 거지요.

그러나 부처의 깨달음은 이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선은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보아야겠어요. 부처가 궁에서 떠날 때, 그에게는 아내와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라훌라, 뜻인즉 ‘걸림’이에요. 자식을 자신이 가야할 길에 걸림돌로 보았으니 자식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섭섭했겠네요. 아내와 아이가 자는 틈을 타 궁 밖을 나선 싯다르타는 힌두교의 여러 스승을 만나 수행하지만 깨달음에 도달할 수 없었습니다. 온갖 수행법과 고행을 통해 수행한 지 6년이 지나자, 싯다르타는 극단적인 고행방법을 통해서는 깨달음에 도달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지나친 쾌락이 위험한 것처럼 지나친 고행도 중도에서 벗어난 것이지요. 마치 악기의 줄을 너무 당기면 끊어지고, 너무 풀면 소리가 나지 않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3.

고행을 마치고 우루벨라 마을로 내려온 싯다르타는 수자타라는 여인이 제공하는 유미죽을 얻어먹고 체력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고요히 명상할 곳을 찾던 중 핏팔라나무(보리수:깨달음의 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용맹정진에 들어가지요. 예수가 광야에서 사탄에게 세 가지 시험을 당하듯, 싯다르타는 이 나무 아래에서 죽음의 신 마라[魔王]에게 세 가지의 시험을 당합니다. 첫째 시험은 엄청난 마군을 몰고 와 수행을 방해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시험은 부처가 되는 것은 헛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셋째 시험은 마라의 아름다운 딸들을 동원하여 육체적으로 유혹하는 것이었지요. 이 모든 시험을 이기고 싯다르타는 드디어 “무지는 사라지고 앎이 떠오르며, 어둠은 사라지고 빛이 떠오르는” 경지의 확연한 깨달음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성불(成佛)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지요.

하지만 부처는 이 깨달음은 다른 이들에게 전할 수 있을 지 망설이게 됩니다. 너무도 심오한 경지는 쉬 전달되지 않고, 삶에 바쁜 이들은 이 깨달음을 반기지 않을 듯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들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드디어 가르침의 길에 나섭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종교의 본질 하나를 더 깨닫습니다. 아무리 종교적 진리가 심오한 것이라 할지라도 일반인에게 소통되지 않는 깨달음은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고통 받는 세상을 외면하는 종교, 이 세상이 아니라 저 세상을 추구하는 종교, 자신들만이 아는 언어로 벽을 쌓는 종교는 진정한 종교가 아닌 셈이지요.

4.

부처의 최초의 가르침은 이전에 자신이 만났던 스승과 같이 고행을 했던 동료들에게 향해 있습니다. 처음에는 부처를 거부했던 동료들은 그의 가르침의 심오함에 빠지고 됩니다. 가르침의 핵심인 듯, 제법무아(諸法無我). “생하는 것은 모두 멸하는 법”이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 동일성을 영원히 유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존재는 가합적(假合的) 존재라는 것이지요. 이에 따르면 영원한 진리니 실체니 하는 초월적인 존재를 탐구하는 행위는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힌두교에서 이야기하는 ‘진정한 자아'[진아(眞我:Atman)]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아가 없음’[무아(無我:Anatman)]이야말로 앎의 정수가 된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앎의 경지는 일반 대중에게는 쉽게 전달될 수 없음을 느끼고, 일반대중을 위한 가르침을 따로 마련하니, 그것이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입니다. 사성제는 ‘고집멸도(苦集滅道)’의 네 가지 진리를 터득하는 것입니다. 우선 고제(苦諦)는 괴로움의 진리입니다. 인간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라는 현실적인 진단이지요. 둘째, 집제(集諦)는 이러한 고통이 바로 집착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셋째, 멸제(滅諦)는 인간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깨달음입니다. 고통이 없는 경지, 즉 니르바나(nirvana)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마지막으로 도제(道諦),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바른 방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道]를 구체화한 것이 바로 팔정도지요.

팔정도(八正道)는 바르게 보고[正見], 바르게 생각하고[正思], 바르게 말하고[正言], 남에게 해코지하지 않고[正業], 좋은 직업을 가지며[正命], 마음을 늘 건전하게 유지하고[正精進], 바르게 살펴[正念], 그곳에 마음을 집중하라[正定]는 방법론이지요. 이러한 수양법은 비단 승려들만이 지켜야할 것이 아니라 진리를 깨달으려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생활지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과 생각을 늘 성찰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무슨 아름다운 결과가 나오겠습니까?

5.

부처는 이러한 깨달음은 널리 전하면서 불교공동체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 불교공동체를 일컬어 ‘상가(sangha)’라 불렀는데, 이는 한자로 음역되면 승가(僧家)가 되는 것이지요. 부처의 공동체는 도시로부터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곳에 장소를 구하고 걸식과 명상과 가르침으로 공동체를 운영해갑니다. 부처 역시 몸소 걸식을 행함으로 무소유(無所有)을 실천합니다. 진정한 깨달음 이외에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이 도저한 경지가 바로 불가의 정신인 것이지요.

부처는 깨달음 후 45년간을 가르치다가 80세에 열반에 듭니다. 부처 사후 제자들이 모여, 부처님의 말씀과 해석, 승가의 행동원칙 등을 정리하게 되니, 그것이 바로 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의 삼장(三藏)이 되었지요. 이후 불교는 부파불교, 대승불교 등으로 자신의 모습을 변신해갔고, 비록 인도에서는 점점 쇠퇴되어갔지만, 중국, 우리나라, 일본 등 동양의 여러 나라에 전파되어 다양한 전통을 형성하게 됩니다.

6.

특히 중국에서 형성된 선(禪)불교의 전통은 깨달음 이외에 어떠한 권위도 인정하려 하지 않는, 심지어는 부처나 스승의 권위마저도 깨달음을 위해서는 의심하는 살불살조(殺佛殺祖)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시면 어떠셨을까요? 자신이 구성한 종교가 자신을 죽이는 이 역설적 종교가 바로 불교입니다. 이 도저한 부정의 정신이야말로 부처가 깨달은 무아(無我)의 경지의 다름 아닌 셈이지요.

<금강경> 6장에는 이러한 대목이 있습니다.

“나의 설법이 뗏목의 비유와 같음을 아는 자들은 법조차도 마땅히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이 아님에 있어서랴”

그 유명한 뗏목의 비유인데요. 진리를 가르치는 말은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일 뿐 그것을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이지요. 그런 점에서 볼 때,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을 절대화하게 되면 또 다른 집착에 빠지게 되는 것이고, 그것은 마치 강을 건넌 후 뗏목을 이고 가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음에 빠지게 되는 셈이지요.

7.

<금강경>은 이렇게 끝납니다.

모든 지은 법이여!(一切有爲法)

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거품과 같고 그림자 같네.(如夢幻泡影)

이슬과 같고 또 번개와 같아라.(如露亦如電)

그대들이여 이 같이 볼지니.(應作如是觀)

또한 부처도 자신의 임종을 맞으며 이러한 유언을 남기셨다 합니다.

“나아가라, 게으르지 말고 나아가라, 부지런히 나아가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너 자신을 등불로 삼고 나아가라.”

부처님의 생애

출판사 리뷰

◎ 우리도 부처님처럼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입니다.

불자는 부처님의 삶을 본받아 부처님처럼 살아가기를 서원한 사람들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부처님의 삶을 바르게 본받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부처님의 생애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삶 속에는 불교의 위대한 사상과 가르침 그리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거룩한 삶의 표본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 종단본 《부처님의 생애》

부처님의 삶에 관한 수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불소행찬》이나《불본행집경》등의 한문본 경전을 번역한 책이나 외국학자들이 쓴 저작물을 번역한 책이 주를 이루다가 최근에 들어 우리나라 학자와 스님들이 쓴 부처님의 일대기가 출판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 저작물이라는 점에서 보편적 입장을 대변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하여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에서는 종단적 차원에서 부처님의 생애를 조명하기로 하고 불타론 관련 전공학자 일곱 분을 편찬위원으로 위촉하여 종단본《부처님의 생애》를 편찬하게 되었습니다. 종단본《부처님의 생애》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감동적으로 부처님의 삶을 전달

《부처님의 생애》는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탄생과 성장부터 마지막 유행(遊行)과 입적에 이르는 전 과정을 전기적 서술양식으로 상세하게 기술하였습니다.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내용보다 부처님의 삶을 감동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하여 학문의 대상으로서의 부처님이 아니라 귀의 대상으로서의 부처님을 발견하고 불자가 지향해야 할 삶의 사표(師表)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둘째,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

부처님의 삶을 평이한 문체와 이야기 형식으로 기술하여 독자들이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습니다. 전문적인 내용도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풀어 놓아 독자들이 부처님의 사상과 가르침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셋째, ‘불타론’ 전공자들의 공동작업으로 편찬

《부처님의 생애》는 국내외에서 불타론을 전공한 전문학자들을 중심으로 편찬위원회를 구성하여 공동 작업을 통해 편찬되었습니다. 개인적 사견은 최대한 배제하고 학계에서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 내용을 담았습니다.

넷째, 내용의 정확성과 풍성함을 위해 여러 불전 문헌을 참조

부처님의 삶을 정확하게 담아내기 위해 《불소행찬》과 《불본행집경》 같은 한문 불전은 물론 빨리본과 싼쓰끄리뜨본 등 다양한 원전과 최근에 발간된 단행본까지 폭넓게 참조하였습니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 여러 불전의 기록이 상이할 경우 편찬회의를 통해 토론과 학술적 검증을 거쳐 부처님의 삶을 가장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내용을 선택하였습니다.

◎ 부처님의 삶을 바르게 이해하는 길잡이

지난 2년 동안 10차에 걸친 편찬 회의와 두 차례에 걸친 워크숍을 통해 크게는 부처님의 발자취를 집대성하고 작게는 글자 한 자 한 자까지 세심하게 살피며 인간적이면서 초인간적인 부처님의 모습을 담아낸 《부처님의 생애》는 부처님의 삶을 바르게 이해하는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부처의 생애를 새긴 비상 – 조각과 함께 떠나는 성지순례

여기 이국적인 불비상(佛碑像)이 한 점 있습니다. 위가 둥근 자그마한 평면 한가운데 가부좌를 튼 불상이 편안하게 앉았고, 그 밑의 여러 개 화면에는 조그만 인물들이 오밀조밀 들어차 있습니다. 화면 가장 꼭대기에서 팔로 머리를 받치고 누워 있는 와불(臥佛)과 가운데 불상을 중심축으로 양쪽에도 다양한 자세의 작은 불상들이 정연하게 배치되었습니다. 공간을 한 치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듯, 빈틈없이 체계적으로 채운 이 조각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있을까요?

부처의 생애를 새긴 비상, 인도 팔라시대 10세기, 석조, 높이 40.6cm, 구3269

석가모니 부처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촉지인 불상을 중심에 두고, 부처의 삶에서 중요한 나머지 일곱 가지 사건을 주변에 배치한 조각입니다.

부처의 삶을 여덟 장면으로 담아내다

이 불비상은 인도 동부의 벵갈(Bengal)과 비하르(Bihar) 주를 중심으로 약 8-12세기에 걸쳐 번성하였던 팔라(Pāla) 왕조 때의 작품입니다. 팔라 왕조가 불교의 큰 후원자였던 덕분에 팔라 왕조 치하 동인도 지방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불교조각이 만들어졌습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독특한 조각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의 생애를 여덟 장면으로 표현한 ‘팔상(八相)’ 조각입니다. 부처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인 ‘불전(佛傳)’을 소재로 만든 조각은 이미 일찍부터 등장했지만, 이것을 여덟 개의 사건으로 정리하여 한 화면에 표현한 ‘불전팔상(佛傳八相)’ 조각이 크게 유행한 것은 팔라시대였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작품이 그 대표적인 예 가운데 하나인 것이지요.

비상의 두광부분.

두광에는 불교 가르침의 요체를 나타낸 연기법송이

산스크리트어로 새겨져 있습니다. 팔라시대 불상에는 이처럼

연기법송이 새겨진 예가 많습니다.

각 장면을 하나씩 살펴볼까요? 우선 가장 먼저 시선이 가는 것은 가운데에 자리한 큰 불좌상입니다. 불상은 오른손을 아래로 내리고 손가락 끝으로 땅을 짚는 ‘촉지인(觸地印)’ 자세를 취하였습니다. 바로 부처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일화, 보드가야(Bodhgaya)에서의 ‘성도(成道)’ 장면을 표현한 것입니다. 부처의 머리 뒤에는 두광(頭光)이 표현되었고, 그 둘레에 연기법송이 새겨져 있습니다. 두광 위에 표현된 나뭇잎은 이곳이 보리수 아래임을 알려줍니다. 보리수 윗부분에 놓인 침상에서 오른쪽 팔로 머리를 받치고 누워 있는 와불은 쿠쉬나가라(Kuśinagara)의 사라쌍수 아래서 부처가 열반(涅槃)에 든 사건을 나타냅니다. 누워 있는 부처의 머리와 발밑에 앉은 두 인물은 아마도 스승의 죽음을 슬퍼하는 제자들일 것입니다.

열반 장면의 바로 아랫단에는 거의 똑같은 모습의 두 불입상이 보입니다. 그중 관람자를 기준으로 오른쪽에 있는 상은 라자그리하(Rājagṛha)에서 부처가 술 취한 코끼리를 얌전하게 만든 사건, 일명 ‘취상조복(醉象調伏)’을 나타냅니다. 불상의 오른쪽 발아래 조그맣게 웅크리고 있는 귀여운 코끼리가 이것을 알려줍니다. 똑같이 생긴 반대쪽 불상은 상카시야(Sāṅkāsya)에서 일어난 ‘도리천강하(忉利天降下)’를 표현한 것입니다. 부처는 도리천에 있는 자신의 어머니 마야부인에게 설법을 한 브라흐마와 인드라의 호위를 받으며 보배로 이루어진 계단을 통해 지상으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부처 왼쪽에 선 인드라가 받쳐 든 긴 일산(日傘)의 가리개가 부처의 머리 위로 조그맣게 보입니다.

‘취상조복’과 ‘도리천강하’ 장면 아랫단에는 똑같이 ‘전법륜인(轉法輪印)’의 손갖춤[手印]을 취한 두 구의 불좌상이 있습니다. 둘 중 ‘도리천강하’ 장면 아래에 있는 불좌상은 사르나트(Sārnāth)의 사슴동산[鹿野苑]에서 부처가 처음으로 설법한 일화인 ‘초전법륜(初轉法輪)’을 나타냅니다. 설법을 하는 것은 진리의 수레바퀴[法輪]를 굴리는 것에 비유되므로, 이 장면에도 대좌에 조그맣게 사슴동산을 상징하는 사슴 두 마리와 법륜을 표현하였습니다. 한편, 쌍둥이처럼 닮은 반대쪽 불상의 대좌에는 사슴과 수레바퀴 대신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상은 쉬라바스티(Śrāvastī)에서 부처가 외도(外道, 불교 외의 다른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 앞에서 신통력을 발휘한 사건인 ‘대신변(大神變)’을 나타낸 것으로, 대좌에는 부처가 보인 기적에 놀라 손을 모으거나 엉덩방아를 찧는 외도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1. 비상의 세부 모습

술을 먹고 난폭하게 날뛰며 부처를 해치려 한 코끼리 날라기리(Nālāgiri)는 부처의 신통력에 감화되어 그의 발밑에 얌전히 엎드렸다고 합니다.

2. 비상의 세부 모습

부처에게 꿀을 가득 담은 발우를 바치고 기쁨에 겨워 날뛰던 원숭이는 그만 우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아랫단에 있는 나머지 두 사건을 살펴볼까요? 관람자를 기준으로 왼쪽, 즉 초전법륜 장면 아래 여성이 서 있는 부분은 룸비니(Lumbinī)에서 일어난 부처의 탄생 장면입니다. 오른팔을 들어 나뭇가지를 잡고 있는 여성은 부처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이고, 그녀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이제 막 아기 부처가 태어나고 있습니다. 끝으로 오른쪽 맨 아래 장면은 바이샬리(Vaiśālī)에서 원숭이가 부처의 발우에 꿀을 가득 담아 바친 이야기인 ‘원후봉밀(猿猴奉蜜)’입니다. 대좌 아래에는 꿀이 담긴 발우를 바치는 원숭이와, 뱀의 똬리처럼 표현된 우물 위로 삐죽 솟은 원숭이의 다리가 보입니다. 일부 불전에는 부처에게 꿀을 바친 원숭이가 기쁨에 겨운 나머지 춤을 추다 우물(혹은 구덩이)에 빠져 죽었고, 이후 꿀을 바친 과보로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간결하고 대칭적인 표현이 빚어낸 아름다움

각 장면은 최소한의 장치만으로 알아볼 수 있도록 매우 간결하게 표현했습니다. 가령 전법륜인을 취한 불상 밑에 사슴과 수레바퀴를 작게 표시하여 ‘초전법륜’이라는 사건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식이지요. 흥미로운 것은 가운데의 성도 장면입니다. 촉지인 불상의 대좌 바로 아래 작은 화면에는 왼손에 물병을 받쳐 든 여인과 오른손으로 머리를 짚고 있는 여인이 있습니다. 이들은 각각 성도 당시 부처가 깨달음을 얻을 자격이 있음을 몸소 증명한 대지의 여신과 부처를 유혹하는 데 실패하고 실의에 빠진 마왕의 딸로, 이 두 인물은 팔라시대 촉지인 불상의 대좌에 자주 등장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이 조각에서 또 하나 돋보이는 점은 대칭성입니다. 가장 아랫단을 제외하면 같은 위치에 있는 두 불상은 모두 쌍둥이처럼 닮은 모습입니다. 뿐만 아니라 촉지인 불상의 대좌에 보이는 사자와, 두 손을 모은 봉헌자의 모습까지 정확히 대칭을 이루고 있지요. 이러한 대칭적 구성은 조각을 질서정연하고 안정적으로 보이게끔 합니다. 그러면서도 중앙의 불좌상과 대좌는 거의 환조에 가깝게 입체적으로 만들어져, 평면적인 느낌을 최대한 줄이고 조각에 리듬감을 부여합니다. 또한 여덟 가지 사건이 시간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아마 팔라시대 조각가들은 시간적·교리적 측면만큼이나 조각을 아름답고 안정적으로 만드는 구성을 궁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조각을 보며 떠나는 성지순례

불비상에 묘사된 여덟 개의 사건 가운데 탄생, 성도, 초전법륜, 열반 네 가지 사건은 부처의 생애에서 뼈대가 되는 중요한 사건들입니다. 일찍이 초기 경전, 특히 열반경(涅槃經) 계통의 경전들에서도 부처를 예경(禮敬)하려는 자는 이 네 사건이 일어난 곳을 생각하고 순례할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각각의 사건이 일어난 장소인 룸비니, 보드가야, 사르나트, 쿠쉬나가라에는 일찍이 스투파(탑), 석주(石柱), 불당 등이 세워져 불교도들이 찾는 성지가 되었습니다. 네 곳의 성지는 이후 8, 16, 32, 80 등 8의 배수를 중요시하는 불교 전통에 따라 여덟 곳으로 확대되었고, 각 장소를 대표하는 이야기가 추가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라자그리하(취상조복), 바이샬리(원후봉밀), 쉬라바스티(사위성신변), 상카시야(도리천강하) 네 장소와 사건은 어떤 이유로 선택된 것일까요? 이에 대해 정확히 밝혀진 바는 아직 없습니다. 다만 이 장소들은 부처가 활동하던 당시부터 중요한 곳이었거나 부처와 인연이 깊은 곳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위성신변이 일어난 쉬라바스티의 경우 부처가 활동하던 당시 인도를 통치하던 16대국 가운데 코살라(Kosala)국의 수도가 있던 곳이자, 부처가 성도 후 가장 긴 시간을 보낸 곳이었습니다.

촉지인불좌상, 인도 보드가야 마하보디(Mahabodhi) 대불당 주존

팔라시대에는 부처의 성도와 성도지인 보드가야를 상징하는 촉지인 불좌상이 크게 유행하였습니다.

한편, 다른 장면보다 성도 장면이 유독 가장 크고 비중이 높게 묘사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팔라시대에 보드가야가 성지로서 누린 인기와 연관이 있습니다. 성도는 부처의 생애는 물론 불교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 사건입니다. 성도를 기점으로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사람이 비로소 ‘부처(붓다Buddha, 깨달은 자)’라는 선각자가 되었기 때문이지요. 바로 그 성도가 일어난 장소인 보드가야는 7세기 이후 최고의 불교 성지로 떠올랐고, 보드가야와 성도를 상징하는 촉지인 불상 역시 가장 중요하고도 보편적인 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울러 이러한 촉지인 불상은 삼장법사 현장 등의 구법승들에 의해 동아시아로도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사실 교통과 통신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에도 머나먼 성지순례의 길을 떠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이 조각이 만들어진 천 년쯤 전에는 더욱 녹록치 않은 험난한 여정이었겠지요. 아마도 당시의 불교도들은 이 불비상을 보며 여덟 곳의 성지와 각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을 떠올리고, 위대한 선각자를 생각하며 믿음을 다지지 않았을까요. 말하자면 이 팔상조각을 보면서 부처의 발자취를 좇는 ‘간접 성지순례’를 떠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BBC 부처의 일생 The Life of the Buddha

[BBC 다큐] The Life Of Buddha – 붓다의 생애

BC 500 년 경 , 한 젊은 왕자가 여행을 시작했다 . 그는 고통과 번뇌를 지나 열반으로 향하는 여행을 하고 있었다 . 우리 모두가 꿈꾸는 영원한 지복 ( 至福 ) 을 향해 . 평화의 상징 , 자비의 상징 , 비폭력의 상징 . 그는 붓다였다 .

그는 호화로운 궁전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 , 그가 가진 특권은 원하는 모든 탐닉을 가능하게 했다 . 그러나 그는 궁극의 지혜를 얻기 위해 이 모든 것을 포기했다 . 그는 마음 속의 어두운 회랑을 여행하여 마음 속에 있는 악과 직접 대면했다 . 그는 첫 세계 종교를 창시했다 . 오늘날 4 억 명의 신도가 따르는 종교 , 명상을 통하여 완전한 평화와 행복에 도달하는 종교 , 궁극적인 실재를 깨닫기 위한 우리 자신의 잠재력 , 우리 자신의 노력 그리고 그의 삶에 관한 일들은 가장 위대한 이야기를 만들었고 붓다를 세계 최고의 불멸의 아이콘으로 남게 했다 . 입멸한지 2500 여 年 후에도 붓다의 가르침은 여전히 살아있다 .

높은 정신적 평온에 관한 붓다의 가르침과 명석함은 혹자에겐 종교로 , 혹자에겐 철학으로 , 심지어 정신 치료법으로까지 보이기도 한다 . 어떤 이들은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묘사한다 . 불교는 마음에 관한 과학이라는 것이다 . 오늘날에도 붓다의 가르침은 2500 여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시대에 유효하게 상응한다 . 다른 종교들과 달리 , 불교는 마음에 집중할 뿐 , 절대적 신이란 존재를 가지지 않는다 . 대신에 위대한 스승 , 붓다나 깨달은 자가 있을 뿐이다 .

달라이 라마는 붓다를 ‘ 평화의 상징 , 자비의 상징 , 비 폭력의 상징 ‘ 으로 이야기 한다 .

# 고고학적으로 발견한 붓다

100 여년 전까지 붓다의 삶은 서구에 알려지지 않은 채로 있었다 . 대영 제국이 인도를 점령하고 식민지화 했을 때 붓다가 태어난 그 나라에선 불교가 거의 쇠퇴하였으며 힌두 왕들과 무슬림 침략자에게 이미 파괴된 상태였다 . 붓다 기원과 그의 삶이 있었던 장소들은 모든 이들에게 잊혀져 있었던 것이다 . 영국의 식민지 고고학자들의 인도 북부에 대한 탐험이 시작되고서야 비로소 그들의 발견들을 통해 붓다의 삶이 역사적 사실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

1860 년경 , 한 무리의 고고학자들이 붓다의 삶과 관련된 장소들을 확인해 나가기 시작했다 . 한 곳은 붓다가 실지로 태어난 곳인 룸비니 , 또 하나는 붓다가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인 가필라 國 (Kapilavastu) 였다 .

네팔의 국경 지역에서 좀 떨어진 마을에서 석주 ( 石柱 ) 가 발견되었다 . 석주의 문장은 고대 바라문 문자로 적혀있었고 언어는 인도 북부의 지방 방언이었다 . 해독된 비문의 내용에 따르면 비문이 새겨진 석주가 있는 바로 그곳이 붓다 , 그 깨달은 자가 태어난 곳임를 가리키고 있었다 . 이것은 붓다가 단순한 전설의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의 첫 번째 조각이었다 . 그는 실존 인물이었던 것이다 .

네팔의 국경 부근에서 발견된 석주

고대 불경에서는 붓다의 출생지는 룸비니 , 유년기를 보낸 곳은 카필라라고 언급한다 . 카필라는 오늘날 네팔의 ‘틸라우라콧’이라는 곳에 남아있는 고대 도시 유적이라고 생각된다 .

# 붓다의 탄생과 그에 대한 예언

2500 여 년 전 , 인도 북부는 여러 왕국과 국가로 분열되어 있었다 . 붓다의 아버지 , 슈도다나 (Sudhodana, 정반왕 淨飯王 ) 는 샤키아족 ( 석가족 釋迦族 ) 의 왕이였다 . 그는 히말라야 산기슭 근처의 왕궁에서 왕국을 다스렸다 . 그의 부인은 마야 왕비였다 . 전설에 의하면 보름달이 뜬 밤에 , 먀야 부인은 특별한 꿈을 꾸었다고 한다 . 그 꿈은 붓다로 알려진 특별한 존재가 곧 지상에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것이었다 . 전설에 따르면 사천왕이 마야 왕비를 침대에서 히말라야 산으로 모시고 올라갔고 사천왕은 마야 왕비를 신성한 향수를 뿌려주고 천상에 피는 꽃들로 장식해주었다고 한다 . 여섯 개의 상아를 가진 하얀 코끼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 상아에 연꽃을 꽂은 채 마야 왕비의 태내로 들어갔다고 한다 . 붓다가 마야 부인에게서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

붓다는 태어날 시간과 장소를 스스로 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그 남자 아이의 이름은 싯타르타였는데 , 모든 소원이 성취된다는 의미였다 . 그러나 싯타르타의 어머니는 출산 후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 싯타르타는 이모에게서 키워졌다 . 가족들은 브라만 성직자들과 믿을만한 왕궁의 한 예언자를 불러서 어린 왕자의 미래를 점치게 했다 . 그는 싯타르타의 몸에서 위대한 표식들 – 길상 ( 吉相 ) 을 찾아냈다고 한다 . 그 중에는 싯타르타의 발에 있는 바퀴 문양 ( 법륜 法輪 ) 도 있었다 . 붓다는 출생할 때 몸에 소위 32 가지 길상 ( 吉相 ) 을 지니고 태어났다고 한다 . 그런 길상들은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의 몸에만 나타난다고 한다 . 하나는 붓다가 될 사람 , 다른 하나는 세계를 지배할 황제 …

싯타르타의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흥분하였다 . 그는 자신의 아들이 위대한 통치자가 되기를 바라며 , 종교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것들을 볼 수 없게 막는데 노력을 기울인다 .

# 붓다 , 유년기의 명상 체험과 청년기의 깨달음

싯타르타가 9 살이 되었을 때 그의 아버지는 매년있는 경작 축제를 축하를 위해 나갈 수 있도록 허락했다 . 그는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 왕궁 성벽 너머의 현실에 관한 첫 견문은 싯타르타가 세상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하는 문을 열어주게 된다 . 그리고 그것이 그의 삶의 전향점이 되었다 . 싯타르타는 밭을 가는 농부를 목격하게 된다 . 그는 흙과 노력 , 몸부림 그리고 이런 고된 일의 반복을 보게 된다 . 이것은 왕궁에서는 결코 보지 못한 것이었다 . 축제에서 슬쩍 빠져나온 그는 혼자가 되어 명상에 잠긴다 . 그는 마음이 명상에 잠기게 됨을 느꼈다 . 농부가 쟁기질을 하지 않았더라면 새는 벌레를 먹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그는 모든 것들이 연관되어 있고 모든 행동들이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 이런 단순한 관찰이 나중에 후에 카르마 ( 업 業 ) 로 알려진 그의 가르침의 중요한 초석이 된다 . 이런 심오한 생각들에 싯타르타의 마음이 집중되자 그는 후에 깨달음으로 향하는 첫걸음이 된 무아지경의 경지로 빠져들게 된다 .

젊은 왕자의 행동은 왕을 크게 동요시켰다 . 싯타르타가 세상을 통치하는 군주가 되던지 깨달음을 얻은 선각자가 된다는 예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싯타르타의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을 물려받아 왕이 되기를 바랬다 . 싯타르타가 성장해 감에 따라서 아버지는 아들이 왕궁 내에만 머무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모든 것들을 했다 . 아들이 살기에 완벽하게 매혹적인 세상을 궁궐 내부에 창조하려고 하였다 . 왕자가 성년에 이르자 아름다운 시녀들이 제공되었다 . 음악과 육체적 아름다움으로 왕자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였다 . 싯타르타가 16 세가 되었을 때 왕은 야소다라 공주라는 왕자의 아름다운 신부감을 발견했다 . 싯타르타는 그녀의 선택을 받기위해서 경쟁해야했다 . 왕은 그의 아들이 뛰어난 솜씨로 경쟁에서 싸워 이기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 .

싯타르타의 아버지는 그에게 아름다운 시녀들을 제공하여 세상의 즐거움을 탐닉하게 했다 .

싯타르타는 왕에게 궁궐 밖 외출을 허락해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 아들의 소원을 더 이상 거절하는 것이 힘들어지자 왕은 생각다못해 왕궁의 주변에 있는 아들의 눈에 거슬릴만한 모든 것들을 안보이도록 만들었다 . 마치 헐리우드 영화 셋트장처럼 병자 , 빈민 , 노인들은 모두 치워졌다 . 젊은 왕자에게는 고통없는 환상적인 것만 보여지도록 한 것이다 . 이런 아버지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싯타르타의 바깥세상의 첫 체험은 준엄한 현실을 드러나게 했다 . 순진한 동심을 가지고 그는 차나 (Chana) 와 함께 나섰다 . 차나는 왕자의 마부이자 가이드였다 .

왕자는 네 번의 여행을 하고 네 가지 징후를 볼 것이라고 왕궁의 예언자에 의해 예지되었다 . 초기의 불교 경전은 이 이야기에 큰 중요점을 두고 있다 . 각각의 여행이 싯타르타에게 그에게는 숨겨져왔던 삶의 일면들을 드러내게 되었다

첫 번째 여행에서 싯타르타는 그의 아버지 영향권에서 떨어져 있는 나라를 방문하게 되었다 . 그는 노인이 고통스럽게 마을을 걸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 그는 차나에게 저 노인은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었다 . 그러자 차나는 인간이 늙어가는 생리를 설명했다 . 싯타르타는 놀랬다 . 늙는 것은 피할 수 없고 , 우리 모두에게 일어남을 알았기에 … 싯타르타에게 있어서 현실이 잔인한 세상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 불행과 고통이 삶의 모든 면을 지배하는 듯 보이는 세상의 모습을 …

두 번째 징후는 싯타르타가 질병에 찌들린 모습의 병자를 만나게 되면서 부터였다 . 차나에게 누구나 병에 걸리는가를 물어보고 그는 또다시 충격을 받았다 . 우리 모두가 병에 걸릴 수 있다는 잔인한 진실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 그를 둘러쌌던 환상의 보호벽들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

젊은 왕자가 더 멀리 나갈수록 , 더욱 끔찍한 삶의 모습들을 직면하게 되었다 . 이제 그는 거적에 매어진 시체를 보게 되는데 이 시체가 화장 ( 火葬 ) 용 장작더미로 옮겨지는 것을 목격한다 . 이 이야기는 싯타르타가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것을 알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사후에 누구나 윤회를 겪는다는 브라만교의 믿음을 알게했다고 한다 . 고통과 죽음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윤회 . 거기에는 어떤 끝도 없어보이고 , 끔찍하고 불가피한 삶의 반복에 어떤 해결책도 없어 보인다 .

( 영리한 젊은이로 성장하였음에도 그런 것들을 하나도 몰랐다는 것은 개연성이 떨어져 보일수도 있다 . 보다 중요한 점은 직접 대면할 인간이란 존재가 지닌 근본적 문제들로 인해 우리에게 닥쳐올 엄청난 충격을 전해준다는 것이다 . 그것은 당장 무언가를 해야할 정도로 매우 위급한 것이다 )

그러나 네 번째 징후는 명확히 싯타르타의 미래에 관한 것이었다 . 그 징후는 남루한 옷차림으로 바루를 들고 구걸을 하러가는 남자였다 . ” 왜 어떤 자는 구걸하고 방랑하기 위해 세상의 즐거움을 포기하는가 ?” 왕자가 물었다 . 차나는 그 사람은 실재와 부딪히기 위해서 그런 즐거움들을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 그리고 이 고통스런 존재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

네 가지 징후에 관한 이야기 ( 사문유관 四門遊觀 ) 는 어떤 존재론적 절감을 삽입하기 위한 효과적인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 우리 모두는 늙을 것을 알고 있다 . 우리 모두는 병들 것을 알고 있다 . 우리 모두는 죽을 것을 알고 있다 . 이렇게 머리 속으로는 알고 있지만 하루동안 앉아서 가슴으로 절감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 타인이 병들고 죽는 것과는 다르다 . 내가 늙고 , 내가 병들고 , 내가 죽을 것을 말한다 . 이 이야기는 존재론적 절감을 처음 접하는 순간을 묘사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 . “ 당신은 죽게 될 것이고 , 그것을 알고 있으며 맛보게 될 것이다 .”

# 속세를 버리고 깨달음을 향하여 …

네 번째의 여행 후 싯타르타가 왕궁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마음은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동요했다 . 그는 무상함의 의미를 배웠고 그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무상함을 보았다 . 싯타르타는 그의 가족들을 떠나야함을 알게 되었다 . 그를 괴롭히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 싯타르타는 삶의 고통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났다 . 어느 이야기에서는 잠들게 되는 안개가 보내져서 경비병을 잠들게 하고 차나와 함께 왕궁의 동쪽을 통해 탈출했다고 전한다 . 아노마 강변에서 그는 보석 장신구를 떼어내고 옷을 넝마로 바꿔입고 긴머리를 잘랐다고 전해진다 . 그는 차나에게 그것들을 왕궁으로 돌려주라고 말했다 . 싯타르타는 처음으로 혼자였다 . 그는 마침내 왕궁 생활의 거짓된 세계에서 탈출한 것이다 . 고통이 보이지 않도록 치워져있는 거짓된 세계를 벗어난 것이다 .

속세를 떠나는 싯타르타 ..

싯타르타는 알게 되었다 . 그를 둘러싼 고통들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이들을 규율하고 있는 브라만교에 도전해야한다는 것을 … 브라만 계급의 사회적 위치는 새로운 사조가 도전해오기 전까지는 확고한 채로 남아있었다 . 힌두교의 모태인 브라만교에 의문이 제기되는 때가 온 것이다 .

붓다는 브라만에 동의하지 않았다 . 그는 누구도 브라만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했으며 , 누구라도 바르게 살면 브라만이 될수 있다고 말했다 . 누구도 천민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고 그르게 살게됨으로써 천민이 될 뿐이라고 말했다 . 이것은 현대 우리 사회의 속담인 “ 진정한 신사는 특별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 다만 훌륭하게 행동하는 사람일뿐이다 ” 라는 것과 흡사하다 .

싯타르타는 북부 인도 멀리까지 구도 여행을 하게 되었다 . 그는 대안이 될 삶의 방식을 찾고 있었다 . 주위에서 목격해온 고통들을 극복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 그는 명상의 방법에 집중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 그리고 당대의 최고 스승들을 찾아나선다 . 싯타르타는 명상에 있어서 큰 진전을 보여서 다섯 명의 추종자가 생길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

그는 다른 방법으로 가혹한 고행과 금욕을 시도했다 . 단식과 씻지 않음 , 장시간 숨을 멈춘 채로 명상하는 것들을 포함한 것이었다 . 그는 아사 직전에 단식을 포기했다 . 싯타르타의 다섯 추종자들은 단식을 중단한 것을 보고 그를 버리게 되었다 . 그제서야 그는 어린 시절의 명상을 기억해 낸다 . 그가 찾던 마음의 상태에 이르도록 할수 있는 것은 중도 ( 中道 ) 였던 것이다 .

# 명상을 통하여 깨달음으로 …

붓다가 택한 방법은 소위 “ 몸에 대해 알아차리기 ” 라고 한다 ( 위빠사나 Vipassana 로 보임 ). 이것은 몸을 무시하지도 않고 , 강하게 얽매이지도 않는다 .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 ( 中道 ) 인 것이다 . 싯타르타는 부다가야라는 곳에 이르렀다 . 여기서 그의 고행은 끝을 맺는다 . 그는 나무 아래에 앉아서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결코 자리를 뜨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

나무 아래에서 명상하는 싯타르타 …

“ 살이 썩고 , 뼈가 부러지더라도 깨달음으로 이르는 길을 발견할 때까지는 절대로 이 자리를 뜨지 않으리라 ”

그는 더 이상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지 않았다 . “ 더 고통스럽게 하지 않더라도 삶은 이미 고통스럽다 ”, “” 오직 고요히 만물을 생각하고 삶을 생각하게 하자 ”. 들숨과 날숨의 서서한 움직임에 주목함으로써 그는 마음에 촛점을 맞추기 시작했고 단지 코 주위의 몸 안에 존재하는 섬세한 감각에만 집중한다 . 이런 방법으로 마음을 조용하게 이끌고 고요하고 , 안정되고 , 집중되고 , 정화되도록 했다 . 싯타르타의 마음은 아주 집중되어 무의식의 어두운 곳까지 성공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 그리하여 마지막 최대의 고통과 직면하게 된다 . 마왕 마라 (Mara) – 자아의 제왕이자 환영이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

마왕 마라가 기독교의 사탄과 다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 왜냐하면 그는 유혹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 그리고 그리고 유일신에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 마라는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순수하게 정신적인 저항력이다 .

마라는 마군 ( 魔軍 ) 들을 풀어 싯타르타를 공격하였다 . 그들은 불화살을 그에게 쏘았다 . 그러나 날아오는 도중 싯타르타는 그것들을 연꽃으로 변하게 했고 , 해를 끼치지 못하고 그의 주위에 떨어졌다 . 실패를 하자 마라는 싯다르타를 유혹하기 시작한다 . 그는 매혹적인 딸들을 이용하였다 . 싯다르타는 죽음이면서 동시에 욕망이기도 한 , 마왕 마라에게 공격당했다 . 프로이드적인 관점에서 보면 욕망은 죽음이고 , 죽음은 곧 욕망이다 . 사실 마왕 마라는 그에게 세 딸들을 제시했다 . 이들은 욕망과 혐오를 동시에 나타내는데 이것은 둘 다 똑같이 나쁜 것입니다 . 수치로 인해 멀리한다면 혐오가 될 것이고 , 반대라면 욕망의 노예가 될 수도 있었다 . 그러나 그는 완벽하게 고요하고 무관심할 수 있었다 . 어떤 끌림도 거부도 없이 그들을 응시할 뿐이었다 . 마라의 딸들의 얼굴은 싯타르타의 눈앞에서 썩어가기 시작했다 . 마왕의 딸들은 그런 후 땅속으로 사라져버렸다 .

마라의 딸들에 의해 유혹을 받고 있는 싯타르타 …

사실 붓다의 인식한 마라는 붓다 자신의 일면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 이런 모든 인식이 그의 깨달음이었다 . 그가 마왕을 물리쳤을 때 땅이 떨렸다고 전해진다 .

# 깨달음 , 그 이후 …

싯타르타가 35 세가 되었을 무렵에 네 가지 Jana 를 통과하여 깨달음에 이른다 . 그리하여 붓다 즉 , 깨달은 자가 되었다 . 그는 그 후 절대적 지복의 상태로 나무 밑에서 7 일을 더 보냈다 .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제되고 감도높은 마음의 상태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 이런 높은 경지에서 붓다는 생노병사의 불가피한 윤회를 벗어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 집착을 제거한다면 불만과 고통도 삶에서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삶의 고통과 좌절의 주요 원인은 욕망과 집착이라는 것이다 . 그래서 원하는 것과 실제 사이에는 항상 불일치가 생긴다는 것이다 . 붓다가 나무밑에서 얻은 통찰은 불교의 창시가 되었다 .

붓다는 그의 지혜를 4 가지 진리 , 사성제 ( 四聖諦 – 苦集滅道 ) 로 요약했다 . 이것은 모든 불교도의 믿음의 근간이 되었다 . 첫 번째 진리는 인생은 고통이란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 苦 – 고통 ). 두 번째 진리는 고통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다 ( 集 – 집착 ). 세번째 진리는 의사와 같은데 붓다는 집착에 대한 치유법이 있음을 밝힌다 ( 滅 – 멸 ). 네 번째 진리는 처방을 내리는 것이다 ( 道 – 도 ). 어떻게 병을 치료하고 깨달음 또는 열반에 들것인지를 가르친다 . 궁극적인 목적은 집착 , 무지 , 탐욕 , 증오 , 망상에서 해방되는 완전한 大 자유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 윤회의 모든 원인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깨달은 자가 죽게될 때에는 시공과 인과를 초월하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 이것을 大 자유의 상태라고 한다 .

그의 추종자들이 늘어가자 승가 ( 僧伽 , Sangha) 라고 불리는 공동체가 설립된다 . 불교도들은 깨달음의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불경을 암송하는 것을 수행에 특별한 효험이 있는 것으로 여긴다 .

‘ 부지런히 수행하고 , 항상 깨어있으라 ’

불교를 두 마디로 설명해 본다면 , “ 깨어있음을 수행하라 ” 이다 . 깨달음으로 이르는 길은 마음에 집중하는 것과 그리고 계율을 엄수함으로부터 시작한다 .

살생하지 말라 ( 不殺生 ), 도둑질 하지 말라 ( 不偸盜 ), 음행을 하지 말라 ( 不邪淫 ), 거짓말을 하지 말라 ( 不妄語 ), 술을 마시지 말라 ( 不飮酒 ). 이는 첫 승가 ( 僧伽 , Sangha) 에서 붓다가 확립한 오계 ( 五戒 ) 이다 .

9 년이 지난 후에 그가 버렸던 왕궁과 가족들에게 돌아갔다 . 아버지는 붓다가 끼친 마음의 깊은 상처에 대해서 용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슈도다나 王 ( 정반왕 淨飯王 ) 은 아들의 구도가 중요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 그의 계모 ( 이모 ) 조차 승가에 참여하길 간청했다 . 그리하여 그녀는 역사상 최초의 비구니가 되었다 . 붓다는 그의 가족들을 다시 한 번 버렸다 . 그는 가르침을 위해 나섰고 , 사십년간 이어졌다 . 보리수 아래에서 얻었던 지혜를 그의 제자들에게 전한 것이었다 . 그러나 떠나기 전 그는 아들을 승려로서 받아들였다 . 붓다는 그의 추종자들을 승가에서 모여 살도록 했다 . 그들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 승려는 독신이어야하고 모든 개인적인 욕망을 포기해야한다 .

수세기에 거쳐서 , 그의 메세지는 여러 가지 다른 전통들에 의해서 각각의 여러 번역들과 수도 ( 修道 ) 관습들로 변해왔다 . 붓다는 비록 속가 신도라 할지라도 영원한 지복 ( 至福 ) 과 궁극의 지혜에 이르는 길을 따를 수 있다고 가르쳤다 .

대다수의 서구인들은 출가를 통해 불교에 입문하지 않는다 . 그들은 속세에서도 수행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인 , 명상을 통해 입문한다 . 많은 서구인들이 불교의 명상에 특별히 끌려한다 .

어떤 불교 학교들은 붓다는 초인 ( 超人 ) 이고 神 에 필적하는 신비한 인물이며 기적을 행했던 자라고 믿고 있다 . 다른 학교들은 붓다는 단지 인간일 뿐이고 바로 그 점이 그의 가르침에 힘을 더하게 된다고 믿고 있다 .

# 붓다의 말년 , 그 이후 … 세계 종교로 성장

붓다는 말년에 척추 통증으로 겪게된다 . 그는 다양한 육체적 병과 쇠약도 겪게된다 . 붓다는 80 세에 이르러 보편적인 질병인 식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 사망 직전 그는 이 세상에서 열반으로 향한 여정의 깊은 삼매 ( 三昧 ) 에 빠져들었다고 말해진다 . 붓다 입멸 후 , 그의 가르침을 기록하여 후대에 전하기 위한 회의가 소집되었다 . 이들은 여러 세대의 승려들에 의해서 수세기에 걸쳐서 성심으로 배워지고 전수되었다 . 붓다의 시신은 화장 ( 火葬 ) 되었다 . 그리고 그의 사리들은 보존되었다 . 사리들은 200 년 후 불교에 귀의한 인도의 첫 황제 아쇼카 왕에 의해서 소중히 안치되었다 . 그는 방대한 기념물과 탑을 건설했고 붓다의 일생과 관련된 중요한 장소를 표시하기 위해 기둥을 세웠다 . 아쇼카왕은 불교의 실질적인 전파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되었을 뿐 아니라 후대에 불교에 귀의한 아시아의 통치자들이 본받아야할 귀감이 되었다 . 후대의 아시아 통치자들은 아쇼카를 이상적인 왕이자 불교의 후원자로 여기게 되었다 .

수세기동안 한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퍼지는 식으로 불교는 성공적으로 전파되고 자리잡게 되었다 . 오늘날 붓다의 삶과 관련된 성지들은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 들인다 . 순례자들은 부다가야에 모여들어 붓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 그가 그랬듯 영원한 평화와 행복 , 고통과 죽음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를 희망하고 있다 .

의식 ( 儀式 ) 이나 개인 숭배의 무용함을 설법했던 붓다가 사후에 개인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아이러니이다 . 그것도 역사상 현존하는 가장 큰 개인 숭배가 되었으니 말이다 . 불교 사원들은 세계 각처로부터 각자의 다른 전통을 대표하여 부다가야에 세워지게 되었다 . 불교는 그 모든 각기 다른 형태에도 불구하고 보리수 나무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 한 왕자가 견성을 하고 성불한 바로 그 장소로 …

붓다는 찰나 ( 刹那 ) 에 깨달음을 얻었다 . 이렇게 눈 깜짝할 순간에 , 찰나 ( 刹那 ) 는 깨닫는 그 순간이다 . 그 순간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 그 특별한 순간은 첫 세계 종교를 탄생시켰다 . 神 이 없는 종교 , 열반에 이르는 길이 누구에게나 각자의 마음 속에 있음을 알리는 종교의 탄생이었다 .

출처 : http://blogger630.blogspot.com/2017/04/bbc-life-of-buddha.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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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釋迦牟尼, 산스크리트어: शाक्यमुनि 샤캬무니 )는 불교의 교조이며 다른 호칭으로는 세존 · 석존 · 불 · 여래 등 10가지 존칭과 본명인 싯다르타 가우타마가 있으며, 서양에서는 흔히 가우타마 붓다(영어: Gautama Buddha)라고 칭한다.

샤캬족의 국가인 샤캬 공화국(현재의 네팔)에서 국왕 슈도다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인간의 삶이 생로병사가 윤회하는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자각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29세 때 출가하였다. 처음에는 다른 수행자의 수행법을 따라하거나 고행을 하였으나 이는 무의미하고 중도가 긴요함을 알았다. 부다가야의 보리수 밑에서 선정을 수행하여 35세에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고 부처(Buddha, 佛陀)가 되었다. 이후 인도의 여러 지방을 편력하며, 포교와 교화에 힘썼고, 쿠시나가라에서 80세 나이로 입멸하였다.

호칭 [ 편집 ]

샤캬족의 성자라는 의미에서 “샤캬무니”(산스크리트어: शाक्यमुनि) 또는 한자 음차인 “석가모니”(釋迦牟尼)라고 불리고, 줄여서 “샤캬”(산스크리트어: शाक्य) 혹은 “석가”(釋迦)라고 한다. 역할에 따라 부처님, 부처, 석가모니, 석가세존, 석존, 세존, 석가, 능인적묵, 여래, 불타, 붓다, 불(佛) 등 다양하게 불린다.[1] 이는 모두 깨달음을 성취한 존재와 관련이 있다.[2] 본명은 싯다르타 가우타마(산스크리트어: सिद्धार्थ गौतम, Siddhārtha Gautama 싯다르타 가우타마 , 팔리어: Siddhattha Gotama 싯다타 고타마 , 한국 한자: 悉達多 喬達摩)로 “가우타마”는 성이며, “싯다르타”는 이름이다. 가우타마 싯다르타라고도 한다. 싯다르타는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으로 “소원성취” 혹은 “모든 소원을 이루게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성씨인 가우타마에 깨달음을 성취한 존재라는 뜻의 “붓다(불타 · 불 · 부처)”를 더하여 “가우타마 붓다”(Gautama Buddha)라고도 한다.[주해 1]

생애 [ 편집 ]

역사적 배경 [ 편집 ]

기원전 6세기경 현재의 네팔 남부와 인도의 국경 부근 히말라야 기슭에 카필라바스투(가비라성, 지금의 네팔 티라우라코트)을 중심으로 샤캬 공화국이 있었다. 싯다르타는 그 나라의 왕 슈도다나(Suddhodana, 정반왕)와 마야 부인(Mahamaya) 사이에서 태어났다. 샤캬 공화국은 일종의 혼합정체가 행해지고 있었다. 라자라는 수장을 교대로 선출하는 독립된 자치 공동체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코살라 왕국에 예속되어 있었다.

탄생 [ 편집 ]

싯다르타의 탄생을 표현한 부조.

슈도다나는 오랫동안 아들이 없었는데, 왕비가 6개 이빨을 가진 흰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서 임신했다. 마야 부인은 출산이 임박하자, 당시 풍습에 따라 친정인 데바다하(Devadaha, 구리성)로 향했는데, 음력 4월 8일[주해 2] 룸비니에서 꽃이 만발한 무우수 나뭇가지를 잡고 오른쪽 겨드랑이 밑에서 석가모니를 낳았다.[2] 이때 하늘에서 오색 구름과 무지개가 피었으며, 가릉빈가(迦陵頻伽)가 아름다운 소리로 왕자의 탄생을 축하하고, 구룡이 나타나 몸을 닦아 주었다. 석가모니는 태어나서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었는데, 그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올랐고,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외쳤다. 이는 “우주안에서 오직 나만이 높다. 삼계가 모두 괴로움이니, 이제 내가 그들을 편안하게 하리라.”라는 뜻이다.

유년 시절과 결혼 [ 편집 ]

싯다르타는 생후 7일 만에 어머니 마야 부인을 여의고 이모인 마하파자파티(Mahapajapati)의 손에 자랐으며, 뛰어난 지혜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성장하면서 진리에 관해서도 명상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궁전 안의 안락함이 모든 인간의 생활인 줄 알았다. 어느 날 궁 밖으로 나와 밭갈이하는 농부를 보고 인간들이 수고해야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인간 사회의 고통을 깨달았다. 그리고 새에게 잡아먹히는 벌레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으며, 쇠약한 노인을 보고는 인생의 무상함을 느꼈다. 태어나서 병들어 신음하고 죽어야 하는 생로병사의 운명에 슬픔을 금치 못하였다. 석가의 이러한 우울한 심정을 눈치챈 부왕은 혹시 아들이 당시의 많은 젊은이들처럼 출가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16세의 나이에 콜리야 왕국의 공주 야쇼다라(Yaśodhara)와 혼인시켰다.[2] 이후 아들을 낳았는데 수행에 방해가 된다며 이름을 “라훌라(Rahula)”라고 지었다.[3] 부왕은 많은 미녀들을 시켜 주야로 향연도 베풀었으나, 오히려 출가를 재촉하는 동기만 되었다.

출가 [ 편집 ]

29세가 되던 해 어느 날 밤, 번뇌에서 벗어나려면 깨우쳐야 한다고 결심하고서 가족에게 무언의 이별을 고한 채 출가하였다. 이 출가에는 여러 동기가 중첩되어 작용했지만, 가장 강력했던 요인은 “무상한 이 세상의 괴로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다르마를 추구하려는 끊임없는 열정이었다. 싯다르타 왕자가 카필라바스투 성 동문 밖에서 노인, 남문 밖에서 병자, 서문 밖에서 죽은 자, 북문 밖에서 승려를 만났다는 불전의 사문유관(四門遊觀) 이야기는 무상고(無常苦)에 대한 강렬한 자각을 의미한다. 아들 라훌라가 있으니 후계자에 대한 근심은 하지 않게 된 싯다르타는 시종 차닉(車匿)을 데리고 백마를 타고서 성문을 빠져나갔다.

고행 [ 편집 ]

싯다르타는 시종과 헤어지고 나서 브라만 고행자의 가르침을 받아 단식하고 고행하였다. 그는 정신을 통일하려고 허리를 땅에 대지 않고 결가부좌 유지하는 등 온갖 고행을 하였으나 해탈에 이를 수 없음을 깨닫고서 혼자 성지를 찾아 수행하기로 하였다. 그는 삭발하고, 옷 갈아입고 구걸하면서 남쪽의 마가다 왕국을 향해 갔다. 마가다 왕국의 수도 라자그리하(Rajagrha, 王舍城)는 정치, 경제의 중심지였고, 많은 수도자가 모이는 곳이었다. 여기에서 브라만교의 행자(行者)에게서 요가를 배웠으나, 역시 정신적으로 만족하지 못하였다. 이번에는 네란자나 강(Nairanjana, 尼連禪河) 부근에서 단식과 불면의 고행을 하였다. 싯다르타가 생존한 당시에는 선정 수행, 고행 수행으로 크게 두가지 수행법이 존재하였는데 싯다르타는 다양한 고행을 철저히 이행하였다.[4]

한때 부왕으로부터 사람이 와서 귀국을 권하였으나, 석가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부왕은 석가의 환국을 단념하고 5명의 현자를 뽑아 태자를 수행하게 하였다.[2] 이 기간이 6년이었는데, 이러한 육체적인 고행도 효험이 없음을 알고 그만두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고행을 같이하던 5명의 수도자도 떠나갔다.

고행으로 인한 상념들에서 벗어난 수행 [ 편집 ]

석가는 목욕을 하고 심신을 맑게 하여 마을 처녀가 갖다 준 젖과 죽을 마시고 체력을 회복하였다. 그것을 본 5명의 수도자는 석가가 타락했다고 여겨 떠났다는 설도 있다.[4] 이후 부다가야 근처에 있는 우루베라 촌의 보리수 밑에 풀을 깔고 법좌를 정하여 빨랑까좌(교족좌)[5]를 하고 깨닫지 못하면 그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조용히 내관(內觀)의 고행을 계속하였다. 이 고행은 일체의 공리적 관념을 버리고 자기 마음 속에 있는 욕망을 끊어 없애며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함이었다. 이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도를 닦는 마음을 좌절시키려고 달려드는 마라 파피야스와의 싸움으로 묘사되었다.

깨달음 [ 편집 ]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야에 있는 마하보디 대탑.

35세 되는 해의 12월 8일 이른 새벽(남방불교의 전설에는 바이샤카월의 만월이 된 밤)에 드디어 ‘대각(大覺)’을 이루고 생·로·병·사의 본원을 끊어 없애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이것은 어떠한 번뇌에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 정적(靜寂), 즉 열반의 세계를 체현(體現)한 것이며, 올바른 자각을 얻어 눈을 뜬 부처가 된 것을 의미했다.

포교 [ 편집 ]

싯다르타가 처음으로 설법한 다섯 비구가 법륜에 경의를 표하는 모습

우주의 진리를 깨닫고는 보리수 밑에 대좌하여 7일 동안 12연법을 달관하여 모든 의혹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한동안 깨달음의 경지를 혼자 즐기다가 얼마 후 이러한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고자 하였다. 우선 지난 날에 같이 고행하던 5명의 수행자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바라나시 교외의 사르나트(鹿野苑)를 방문하였다. 그들 5명은 고행을 그만둔 석가를 경멸했으나 이내 쾌락과 고행의 양극단을 배제한 중도의 설법에 감화되었다. 이 최초의 설법을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붓다의 제자가 된 5인의 비구(比丘)가 생기면서 불(佛)·법(法)·승(僧)의 불교 교단이 성립하였다.

이후 45년간 라자그리하와 슈라바스티(Sravasti, 舍衛城)를 중심으로 비교적 넓은 범위에 걸쳐 설법을 해나갔다. 붓다의 가르침은 심원하면서도 상대에 따라서 문답 형식이나 비유 또는 인연 설화(因緣說話)를 활용하고, 평이한 말로 친절을 다하여 설법했으므로 점차 제자가 늘어났다. 경제적으로 돕는 귀의자도 나타나서 마가다의 왕 빔비사라가 가란타의 동산에 건물을 짓고 헌납하니 승가람의 시초가 되었다. 이를 죽림정사라고 부른다. 사위성에도 기원정사라는 큰 절을 세워 사부중의 완성을 보았다.

입멸 [ 편집 ]

싯다르타의 죽음을 표현한 부조.

80세의 고령이 될 때까지 설법을 그치지 않았는데, 파바시에서 받은 공양이 잘못되어 심한 이질(식중독)을 앓았다. 고령인데다 금식을 자주 했었기에 장이 매우 약한 탓이었다. 병이 위독함을 깨달은 붓다는 최후의 목욕을 마치고 사라(沙羅)나무의 숲속으로 들어가 북쪽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누워 발을 포갠 다음 밤중에 제자들에게 최후의 가르침을 폈다. 이후 쉬지 말고 수행에 임할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조용히 쿠시나가라에서 입멸하였다. 유골과 사리는 왕후, 귀족들이 분배하여 각자의 나라에 가지고 가서 탑파를 세우고 봉양하였다.

“ 스스로를 섬으로 삼아 스스로에 의지하며 살아라.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고. 진리를 섬으로 삼아 진리에 의지하라.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고. ” — 《대열반경》

생몰년 [ 편집 ]

석가모니의 생몰년도는 아직까지 불분명하다. 주류 역사가들은 대체로 그가 기원전 563년 무렵에 태어나 기원전 483년 무렵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불교에서는 부처의 탄생과 반열반을 기원전 624년 ~ 544년으로 보고 있는데, 불교에서 사용하는 달력 체계인 불기가 석가모니가 탄생한 해가 아니라 빠리닙바나(반열반)에 든 해부터 계산하기 때문이다.

사상 [ 편집 ]

3고와 8고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삼고 입니다.

우리가 여기에 태어났다는 것은 바로 아픔의 뿌리이다 (生). 태어나서 늙게되는 것은 또한 아픔이다 (老). 살아가면서 병이 들면 아픔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病). 삶을 언젠가는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것에 아픔을 깨닫는다 (死).

사랑하고 헤어지는 아픔을 깨닫는다 (愛別離). 미워하고 한숨지으며 아픔을 깨닫는다 (怨憎會). 무엇을 얻고자 하나 얻지 못하면서 아픔을 깨닫는다 (求不得).

사람으로 태어나 가진 다섯 가지 조건에서 비롯되는 아픔을 깨닫는다 (五取蘊).

연기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연기 (불교) 입니다.

연기설이란 “이것으로 생하면 저것이 생하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 너와 나와 만남도 바로 깊은 인연의 까닭이다. 네가 있으니 내가 있는 것인 만큼 자타가 불이(不二)함을 깨달아 머무름이 없는 자비를 실천할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연기(緣起)”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인연으로 인하여 생겨난다”는 뜻이다.

此有故彼有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此起故彼起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긴다. 此無故彼無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此滅故彼滅 이것이 멸하기 때문에 저것이 멸한다. — 雜阿含, 卷13

자비 [ 편집 ]

“ 우주 만물과 타인들과의 불가피한 인과 관계를 깨닫게 되면, 내가 소중하듯 남도 소중함을 알게 되고, 나의 기쁨을 같이 기뻐하게 되고, 남의 슬픔도 같이 슬퍼하게 된다. ”

자비란, 연기를 깨달을 때 나타나는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사랑. 다시 말해 자타불이(自他不二)를 전제로 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뜻한다. 진정한 자비란, 인간에게만 국한시키지 않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 즉 미물에까지 미치는 사랑을 의미한다.

사성제 [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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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제란 곧 욕심이 없으면 고통이 사라지고 올바른 수행생활로 열반과 해탈에 이를 수 있음을 가르치는 불교 핵심의 진리로서 여러 불교교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苦)성제 : 모든 것은 다 고통이다

집(集)성제 : 그 고통은 바로 탐욕과 진노와 어리석음에서 비롯된다.

멸(滅)성제 : 번뇌와 무명을 모두 끊어 버린 절대평화, 절대자유 해탈의 경지를 가리킨다.

도(道)성제 : 멸의 세계에 이르기 위한 “여덟 가지의 올바른 수행 생활”을 설명하여 팔정도의 방법이 있다.

팔정도 [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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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도란 지나친 쾌락과 지나친 계율, 고행을 금지한 중도로서의 여덟 가지 바른 수행법이다.

정견: 불법의 진리인 사성제(四聖諦)를 바르게 인식 정사유: 올바르게 사유 정어: 올바르게 사유하고 그에 따라 말함 정업: 올바르게 사유하고 그에 따라 행동함 정명: 올바른 생활방식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 정정진: 바른 마음가짐으로 노력하는 것 정념: 실체와 사고· 감정의 움직임에 대하여 깨어 있는 것 정정: 바른 선정으로 심신을 조용히 갖고 무상무아(無常無我)를 깨달음

삼법인 [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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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법인은 불교의 중심 사상으로 일체 존재의 세 가지 특성인 무상(無常), 무아(無我), 고(苦)을 말하며 나중에 일체개고가 열반적정으로 대체되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것이 덧없이 변한다. / 변화만이 유일하다. 제법무아(諸法無我): 영원한 자아의 본체란 있을 수 없다. / 힌두 전통의 Atman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체개고(一切皆苦):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하리라 집착하면 모든 것이 다 고통이다. / 영원한 만족은 없으며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열반적정(涅槃寂靜): 애욕의 불길을 완전히 끄면(열반) 영원히 고요한(변함없는) 진리의 자리가 드러난다(적정). 제행무상과 제법무아를 깨달고 상대적인 유위세계를 초월하면 무위세계인 열반에 이르러 적멸의 고요함을 누린다.

제자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십대제자 입니다.

불타의 제자 중에서는 특히 10대 제자가 손꼽힌다. 지혜가 제일이었던 사리불(舍利佛, Sariputra), 신통력의 목건련(Maudgalyayana), 집착이 없고 투철한 마하가섭(摩訶迦葉, Mahakasyapa). 천안력(天眼力)을 가진 아나률(阿那律, Aniruddha), 제법개공(諸法皆空)을 잘 깨우친 수보리(須菩提:Subbuti), 설법에 능한 부루나(富樓那, Purnamaitrayaniputra), 토론을 잘하는 가전연(Katyayana), 계율을 굳게 지키는 우바리(優婆離,Upali), 들은 것이 많아 잘 외우는 아난다(阿難, Ananda), 행지(行持)가 면밀한 나후라(羅候羅, Rahula)가 그들이다.

다른 이름(10호)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십호 입니다.

석가모니는 불교 경전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에 따라서 다음의 이름으로 대칭되기도 한다. (로마자 표기는 산스크리트어 표기)

여래(如來, Tathāgata): 문자 그대로는 “그렇게 가신 분”의 의미. 붓다 자신은 자신을 여래라고 불렀고 또 남들에게 그렇게 부르라고 했다.

아라한(阿羅漢, Arhat): 세상 사람들의 공양과 존경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분.

정각자(正覺者, Sambuddha): 올바로 깨달음을 얻은 분. 길게는 무상정등각자 (無上正等覺者 Anuttara Samyaksambuddha) 혹은 정등각자(Samyaksambuddha)로 일컬어짐.

명행족(明行足, Vidyācarana Sampanna): 하는 일에 허물이 없는 분.

선서(善逝, Sugata): 뛰어나게 참됨에 다다른 분.

세간해(世間解, Locavit):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분.

무상사(無上士, Anuttara puruşa): 가장 높은 자리에 계신 분.

조어장부(調御丈夫, Puruşadamya sārathin):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

천인사(天人師, Śāstā devamanuşayānām): 신들과 사람들을 가르치시는 분.

세존(世尊, Bhagavat): 세상에서 가장 높이 받들어지는 분.

팔만대장경에서는 제자들이 석가모니를 “세존이시여”, “존자시여”, “여래께서” 등으로 부르고 있다.

힌두교 에서의 관점 [ 편집 ]

드와르카의 힌두교 신전에 있는 붓다의 불상

힌두교에서는 일반적으로 고타마 싯다르타를 악마나 악인이 베다의 가르침으로 올바른 수행을 하여 힘을 얻지 못하도록 그들을 (힌두교 입장에서는 그릇된 가르침인) 불교로 인도하여 파멸시키기 위해 나타난 비슈누의 9번째 다샤바타라로 간주하지만,[6][7][8] 불교 또한 힌두교의 종파 중 하나로 간주하는 힌두교인들은 붓다를 힌두교의 종교개혁가로서 존경하는 경우도 많다.[9] 하지만 이는 힌두교의 특성상, 자신의 가르침 속에 자신보다 뛰어난 모든 교리와 인물들을 포섭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중 문화 [ 편집 ]

만화 [ 편집 ]

같이 보기 [ 편집 ]

주해 [ 편집 ]

↑ · · 맹가로 부르지 않고 “선생”을 뜻하는 “자(子)”를 붙이는 것과 동일하다. “가우타마 붓다”(Gautama Buddha)와 같은 호칭법은 예수 를 칭할 때 “메시아”라는 뜻인 그리스도 를 더하여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거나 공자 맹자 등의 원래 이름인 공구맹가로 부르지 않고 “선생”을 뜻하는 “자(子)”를 붙이는 것과 동일하다. ↑ 당시의 음력 4월 8일은 현재 역법에 따르면, 음력 2월 8일에 해당하지만, 오래된 관습으로 아직도 불교 종주국인 인도와 한국 등에서 음력 4월 8일을 석가탄신일로 지내고 있다.

각주 [ 편집 ]

참고 자료 [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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