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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ine (존 레논의 음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Imagine》은 1971년 발매된 존 레논의 두 번째 정규 음반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창법, … 녹음에는 비틀즈 시절의 동료 조지 해리슨 (기타)을 비롯, 클라우스 부어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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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4/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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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ra Harnoy 첼로로 연주한 비틀즈 명곡집 – 오프라 하노이 …

오프라 하노이 – Imagine (2LP)뛰어난 연주력과 아름다운 외모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던 첼리스트 오프라 하노이.그녀가 연주하는 비틀즈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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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yes24.com

Date Published: 3/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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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로 연주하는 비틀즈 명곡집 – 오프라 하노이] [180G LP]

OFRA HARNOY – IMAGINE [이매진: 첼로로 연주하는 비틀즈 명곡집 – 오프라 하노이] [180G LP]. 최종판매가: 49,900원; 판매가: 59,000원; 할인판매가: [ 15% ] 49,9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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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hottracks.co.kr

Date Published: 2/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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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ine 비틀즈 이매진 노래 듣기 가사 해석 존레논 Beatles

이매진(Imagine)을 소개해 드려요~. Imagine (1971). 평화를 사랑했었고, 반전 사상이 잘 깃들여져 있는 노래입니다~. 사실 이 노래는 비틀즈가 19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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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6/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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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 존 레논의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이매진 존 레논 展’ 개최

… 전 세계가 열광했던 비틀즈의 리더 존 레논(John Lennon, 1940-1980)의 삶을 풀어낸 ‘이매진 존 레논 展’이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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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wtnews.co.kr

Date Published: 5/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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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ine – John Lennon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비틀즈 이매진

  • Author: But Not Y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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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3. 8.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Mu_lhMgrv8w

Imagine (존 레논의 음반)

《Imagine》은 1971년 발매된 존 레논의 두 번째 정규 음반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창법, 유쾌한 선율과 흥미로운 가사가 한데 어루어진 창작물로 미국과 영국, 모두에서 음반 차트 1위에 올라 존이 발표한 음반들 중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음반으로 오늘날 남아있다.[10] 녹음에는 비틀즈 시절의 동료 조지 해리슨 (기타)을 비롯, 클라우스 부어만 (베이스), 앨런 화이트 (드럼), 니키 홉킨스 (피아노), 짐 고든 (드럼), 킹 커티스 (색소폰), 배드핑거의 조이 몰랜드 (기타) · 톰 에반스 (베이스) 등이 참여했다. 녹음 과정을 담은 영상도 남아 있어 2000년 《Gimme Some Truth》라는 제목으로 DVD가 발매되었다.

배경 [ 편집 ]

뉴욕에서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은 짧은 잼 세션을 가졌다. 이 세션에서 존은 조지에게 자신의 다음 음반에 참여하고 싶은지 물어 보았다. 녹음은 티튼허스트 파크의 거주지에서 1주일 만에 시작되었다. 조지는 ‘그렇다’고 말했고, 녹음 세션에 친구 클라우스 부어만을 베이시스트로 초대해도 되겠느냐고 전화로 물었다.

구성 [ 편집 ]

표제곡 〈Imagine〉은 종교나 인종의 갈등에서 일어나는 증오를 무의미한 것으로 바라보며 평화를 호소하는 곡이다. 가사는 무정부주의 · 무신론 · 무소유 · 반전 등의 사상을 담고 있다. 존은 이 곡에서 이 곡을 듣는 청자들도 그의 유토피아적 상상을 공유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런 가사 내용 때문에 라디오나 텔레비전 등에서는 한 때 방송 금지가 되기도 했지만 9.11 미국 테러 사건 이후 미국의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이 곡의 주문이 폭주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소유’를 무의미한 것이라고 호소하는 밀리언 셀러의 작곡가가 큰 저택에서 그랜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음반 재킷에 담아 팔며 돈을 번다는 것을 풍자하는 기자도 있었다.[10]

존은 《Imagine》에 대해 평화를 염원하는 자신의 소명의식에 ‘사탕발림’을 한 음반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실제로 〈Jealous Guy〉나 〈Oh My Love〉와 같은 곡들은 매우 달콤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반면 〈I Don’t Want to Be a Soldier〉나 〈Gimme Some Truth〉 등의 곡들은 정치적 성향이 굉장히 강한 곡들로 각인되고 있으며 〈How Do You Sleep?〉이란 곡은 비틀즈 시절의 파트너였던 폴 매카트니를 신랄하게 공격하고 있는 가사를 담고 있어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10]

〈Imagine〉, 〈Gimme Some Truth〉, 그리고 〈Jealous Guy〉 등의 수록곡들은 비틀즈 시절 발표될 뻔 한 곡들이다. 〈Imagine〉과 〈Gimme Some Truth〉는 비틀즈 시절 녹음된 원곡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 1969년 《Get Back》 세션에서 연주된 테이프가 남아 있다. 〈Jealous Guy〉도 1968년 인도 체류 중에 쓴 〈Child Of Nature〉라는 곡이 원곡이며 《화이트 앨범》의 세션과 《Get Back》 세션에서 녹음한 여러 버전이 남아 있다.

반응 및 유산 [ 편집 ]

본 음반은 비평가들에게 호평 받은 이전 음반 《John Lennon/Plastic Ono Band》에 비해 아방가르드적인 요소는 줄어 있다.[11] 하지만 이것은 존에게 있어 1969년의 《Abbey Road》 이래 대중적인 음악으로의 복귀를 입증하는 가장 납득할 만한 표식이었다.[10] 1960년대 후반 격동적인 상황에서 벗어나 극단적이지 않은, 부드러운 방식으로 조화를 꾀했던 것이다.[10] 2003년 롤링 스톤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0대 명반》 순위에서 76위, 2012년 롤링 스톤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0대 명반》 순위에서 80위를 기록했다.[11][12]

곡 목록 [ 편집 ]

오노 요코와 공동 작사/작곡한 〈Imagine〉과 〈Oh My Love〉을 제외하고, 모든 곡들은 존 레논에 의해 작사/작곡하였다.

차트 [ 편집 ]

음반 판매량 인증 [ 편집 ]

국가 인증 영국 (BPI)[26] 골드 미국 (RIAA)[27] 2× 플래티넘

각주 [ 편집 ]

Ofra Harnoy 첼로로 연주한 비틀즈 명곡집

< 1부 세계정복을 향한 혹독한 고행 > 비틀스에 대한 오해가 과거에도 있고 지금도 있다. 그들이 최고의 곡조를 선보였을지 몰라도 연주력과 가창력은 제1이 아니라고. 기타 연주를 에릭 클랩튼과 비교하고 노래를 프랭크 시내트라와 비교하기 때문인가. 하지만 이것은 록을, 대중음악을 테크닉과 기능주의 관점으로만 들이대는데서 나오는 말이다. 로큰롤의 중심은 결코 연주나 작곡에 있어서 천부적 재주에 위치하지 않는다. 노력…

< 1부 세계정복을 향한 혹독한 고행 > 비틀스에 대한 오해가 과거에도 있고 지금도 있다. 그들이 최고의 곡조를 선보였을지 몰라도 연주력과 가창력은 제1이 아니라고. 기타 연주를 에릭 클랩튼과 비교하고 노래를 프랭크 시내트라와 비교하기 때문인가. 하지만 이것은 록을, 대중음악을 테크닉과 기능주의 관점으로만 들이대는데서 나오는 말이다. 로큰롤의 중심은 결코 연주나 작곡에 있어서 천부적 재주에 위치하지 않는다. 노력하는 자세와 조화를 향한 열정, 말하자면 음악에 대한 자연적 ‘감성’에 무게가 있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음악은 감성이 지성을 만든다. 비틀스가 그런 그룹이다. 비틀스는 바로 피와 땀으로 세계정복의 열매와 천재라는 칭송을 획득했다. 그들의 성공은 천재성 아닌 가혹한 고행의 결과물이다. 천재성도 피와 땀이 만들어낸 것이다. 결코 하늘이 준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존 레논과 폴이 만난 게 1957년이고 존이 ‘Hey little girl’을 쓴 게 1958년이며 가장 멋진 밴드명인 비틀스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도 1960년이다.

그들은 1964년 세계를 휘몰아치기 전 최소 4-5년 밑바닥생활을 했다. 이 점에서 비틀스는 그들이 꽃을 피운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의 호시절을 타고 졸속으로 결성된 다른 그룹들과는 종이 달랐다. 그들은 그동안 무수한 오디션 실패와 해외 투어로 연주력을 다졌으며 오로지 세계정복이란 목표를 위해 눈물과 배고픔을 삼켰다. 정말 그들 말대로 손이 아프도록 기타를 쳤고 목이 터져라 노래했다. 리버풀 캐번과 저 멀리 독일 함부르크 클럽을 왕래하며 연주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지구촌 석권을 위한 숨가쁜 열정이자 가혹한 훈련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대목에서 “나는 리버풀에서 길러졌지만 함부르크에서 성장했다”는 존의 말은 너무도 유명하다. 영화 < 백비트 >에 잘 묘사되었듯 그들은 이곳 클럽무대에서 댄서들 뒤에서 반주를 했고 비좁은 단칸방에서 집단 기식했다. 그들은 그러면서 당시 서구권에서 유행하는 음악을 열심히도 챙겼다. 모르는 게 없었다. 1950년대 블루스와 로커빌리, 모타운 R&B, 틴 팬 앨리 팝, 라틴 음악 등 갖가지 계열의 곡들을 골라 커버 연주했다. 아이슬리 브라더스 ‘Twist and shout’, 스모키 로빈슨 ‘You really got a hold on me’, 캐롤 킹 ‘Chains’, 리틀 리처드 ‘Long tall Sally’, 척 베리 ‘Rock and roll music’ 등이 그 파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모든 것을 흡수해 자신들의 독창적 스타일로 빚어낼 줄 알았다. 거기서 ‘Love me do’가 ‘From me to you’가 ‘A hard day’s night’가 ‘I feel fine’’이 나왔다. 스펀지 같은 흡수력이 길러낸 창조성, 이를테면 노력에 의해 축적된 내공의 폭발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먼저 남들 곡의 템포와 볼륨을 업그레이드했고 그 작업을 통해 이후 그들만의 코드 진행감각 즉 독자적 화성을 찾아낸 것이었다.

비평가 그렉 쇼(Greg Shaw)는 말한다. “비틀스는 단지 뮤지션이 아니었다. 그들은 최초의 그리고 첫째가는 로큰롤 팬이었다. 그리고 바로 음악에 대한 지식과 헌신이 그들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다.” 감성에서 지성으로, 그리고 그 두 가지의 환상적 퓨전! 비틀스의 이 무명시절을 놓쳐서는 곤란하다. 이번에 나온 앨범 < The Beatles 1 >에서 초기 곡인 ‘Love me do’에서 ‘Help!’까지는 이 출발 이전의 워밍업 시기와 불가분의 관련을 맺는다. 실상 비틀스 초기 작품은 이 준비기를 떼어놓고는 논할 수도 없다. 하긴 연습 없이 실전을 잘 치른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리고 비틀스는 나중 실전을 연습처럼 해야한다는 진리도 잊지 않았다. 제2부 < 지구촌 전체를 손에 넣다 > 1964년 2월7일 영국의 더벅머리 네 남자가 미국 케네디 공항에 내리는 순간, 세계의 음악역사는 송두리째 바뀌었다. 유럽과 미국 뿐 아니라 지구촌 전체를 떠들썩하게 한 이른바 ‘비틀매니아’의 시작. 그것은 이후 음악의 중심이 ‘젊은이들’과 ‘대중음악’으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했다. 어른과 고전음악은 이제 뒷전으로 물러나야 했다.

비틀스가 먼저 1963년 영국을 뒤흔들었을 때 그 광풍은 당시 내각을 발칵 뒤집어놓은 성추문 이른바 ‘프로퓨모 스캔들’도 잠재워버렸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정치 판에 관심을 깡그리 잊었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미국은 케네디 대통령이 사망한지 불과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온 국민이 실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비틀스가 오자 그런 일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 전국이 들썩들썩했다. 비틀스는 이처럼 정치 사회적 회오리마저 제압하는 엄청난 팝 폭발(pop explosion)현상이었다. 비틀스 초기 음악은 한마디로 경쾌한 로큰롤이었다. 1950년대 미국 로큰롤에 영국 특유의 셔플 리듬과 보컬 하모니를 덧입힌 스타일로, 강했으되 느낌은 밝았다. 기본 코드를 이용한 로큰롤만의 단순한 진행이었지만 1950년대의 로큰롤보다는 훨씬 템포도 빠르고 볼륨도 컸다. 본격적인 밴드중심 로큰롤의 개막이었다. 지구촌의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그들처럼 기타를 치고 드럼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비틀매니아 시대의 음악은 이처럼 ‘로큰롤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것들이었다. 영국에서 1963년 ‘From me to you’는 7주간 1위에 오르면서 당시로 볼 때는 경이적인 65만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다. 그것은 비틀스가 이후 발표한 11장의 싱글이 모두 정상에 오르는 ‘넘버원 퍼레이드’의 서막이었다. 다음 싱글 ‘She loves you’는 선(先)주문만도 31만장에 달하면서 영국에서만 160만장이 팔려나갔다. 이 기록은 폴 매카트니의 1977년 ‘Mull of kintyre’에 의해 깨질 때까지 무려 14년 간 ‘영국 최고판매의 싱글’ 타이틀을 지켰다. 같은 해 12월 발표한 ‘I want to hold your hand’는 ‘She loves you’로부터 1위 자리를 승계하며 선주문 94만장에 총 150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들의 꿈이던 미국정복을 이룩해낸 곡도 바로 이 노래였다. 이 곡은 전미차트 7주간 정상을 차지했다.

1964년 미국에서 ‘Can’t buy me love’는 판매 신기원을 이룩했다. 선주문 170만장에 발매와 동시에 모두 200만장이 팔려나간 것이다(영국에서도 첫 주 122만6천장). 굳이 판매고를 거듭 언급하는 것은 비틀스광풍을 설명하기에 그 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가공할 행진은 직접 출연한 영화의 주제곡 ‘A hard day’s night’, ‘I feel fine’, 두 번째 영화에 삽입된 ‘Ticket to ride’ ‘Help!’로 이어진다. 이 때까지 넘버원 싱글 가운데 느린 곡은 하나도 없을 만큼 그들은 당시 세대와 호흡하는 로큰롤의 대중성을 신뢰했다. ‘Help!’ 만해도 존 레논은 “원래 느린 곡조로 썼으나 대중의 반응을 고려해 빠르게 불렀다”고 밝혔다. 그 속도감을 갖춘 로큰롤에 소녀들을 미치게 한 곡 중간의 함성 ‘yeah yeah yeah’(비틀스 시대의 상징어가 됐다)으로 그들은 영국의 침공을 견인하며 지구촌을 손아귀에 넣은 것이다. 성공하기 전 그들이 주로 커버했던 곡을 골라 녹음한 폴 매카트니의 1999년 앨범 < Run Devil Run >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I got stung’를 부른 경위에 대한 폴의 설명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엘비스 레퍼토리는 아니었으나 인트로가 맘에 들었고 난 엘비스보다 조금은 더 난폭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터뜨리고 질러대는 로큰롤을 가지고 그들은 마침내 ‘최강의 로큰롤밴드’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비틀스는 더 나아가 ‘최강의 팝 밴드’가 되고자 했다. 그 비상을 알리듯 1965년 가을 때마침 현악 반주의 ‘Yesterday’가 나왔다. 제3부 < 거리의 록을 전당의 예술로 >(중기 비틀스) 엄밀히 말해서 로큰롤은 거리의 젊은이들 음악이다. 그리하여 1950년대 그것이 등장했을 때 그것은 어른들이 듣는 이전의 스윙 재즈와 스탠더드 팝 발라드와 완전히 ‘분리와 독립’의 선을 그었다.

비틀스도 초기 로큰롤의 영웅들인 척 베리, 리틀 리처드, 버디 할리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에 영향을 받은 로큰롤(전에 지적한 듯 좀 더 강하긴 했지만)을 구사했다. 초기에 그들은 기타로 곡을 썼고 그래서 그 때의 곡들은 업 비트의 장조계열 곡들이었다. 그러나 ‘제5의 비틀’이라는 프로듀서 조지 마틴을 만나면서, 그로부터 피아노의 미학을 터득하면서 그들은 느린 단조계열의 발라드 팝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 거리의 록은 완전히 근사한 전당의 예술로 ‘신분상승’했다. 그것을 상징하는 곡이 ‘Yesterday’ ‘Eleanor Rigby’ 그리고 앨범 < Rubber Soul > < Revolver >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였다. 또 하나의 변화는 가사였다. 이전의 그들의 신나는 로큰롤에 담긴 노랫말이라곤 고작 젊은 남녀의 풋사랑에 대한 얘기들이었다. 한마디로 ‘소년이 소녀를 만나는’ 내용이 주종이었다. 그러나 미국에 와서 포크와 통기타의 영웅 밥 딜런(Bob Dylan)을 경험하면서 그들은 가사의 중력을 절감했다. 특히 존 레논에게 이 부분의 충격은 절대적이었다. 갑자기 비틀스 노래는 사랑타령에서 ‘사색과 인생’으로 바뀌어갔다. 중기의 대표적인 노래들인 ‘Girl’ ‘In my life’ ‘Eleanor Rigby’는 이전 노래와는 확실히 깊이가 달랐다. 비틀스는 싱글 중심이 아닌 앨범 중심으로 음악작업의 축을 전환했다. 곡도 커버 버전은 완전히 걷어치우고 철저히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 콤비(더러 조지 해리슨)의 자작으로 앨범을 채우기 시작했다. 평자들이나 대중들 할 것 없이 일제히 비틀스의 최고 명반으로 중기작품들을 거론하는 이유는 이런 저간의 상황이 있다. 물론 무엇보다 음악이 너무도 우수하다는 점이 작용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얼마 전 영국인들 20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권위 있는 ‘버진 올 타임 톱 1000 앨범’ 여론조사가 말해준다. 이 리서치에서 < Revolver >가 당당 1위를 차지했으며 < Sgt. Pepper’s.. >는 3위, < Rubber Soul >은 34위에 올랐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당시 미국 문화계 인사들과 히피들 사이에 급속히 퍼져나간 싸이키델릭(psychedelic) 풍향이다. 환각과 약물로 이미지화된 이 흐름은 기존의 지배적 가치와 이데올로기에 대해 반기를 들고 문화적 대안(代案)을 찾고자 한 일종의 ‘문화운동’이었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의식확장을 위해 약물 LSD를 실험했고 동양종교를 탐색했고 갖가지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해 항의의 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들의 최종적 캐치프레이즈는 ‘사랑과 평화’였다. 버진 조사에서 1등을 뺏겼지만 여전히 팝 역사상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1967년 앨범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는 바로 싸이키델릭과 히피의 ‘안티’ 성향을 농축해낸 작품이었다. 이와 함께 그들은 다시 시사주간지 ‘타임’의 커버스토리를 장식했다(타임에 커버로 두 번 등장한 대중가수는 비틀스밖에 없다). < The Beatles 1 > 앨범은 넘버원 곡들만 수록해 싱글을 내지 않은 이 앨범의 레퍼토리들이 수록되어있지 않지만 대신 ‘Yellow submarine’ ‘All you need is love’로 그 메시지와 분위기를 희미하게 맛볼 수 있다. 중기의 포크와 싸이키델릭 시대를 통해 비틀스는 ‘자기 음악중심’을 확립했다.

단순한 성공공식으로 일관하면서 실험을 배제하는 여타 그룹들과는 달랐다. 초기에 그토록 흔하던 히트싱글 발표도 가급적 자제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음악의, 소위 얼터너티브를 찾아 실험하고 탐구했다. 오늘날에도 비틀스가 최강의 그룹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것도 이 시기의 ‘음악혁명’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비틀스의 이러한 성과의 뒷면에는 그룹의 결속력의 약화라는 음지가 존재했다. 4인 각자의 개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정서적으로 하나의 그룹 아닌 ‘존 폴 조지 링고’로 흩어지면서 비틀스는 말기를 맞는다. 물론 그러면서도 그들은 명반 생산을 게을리 하지는 않지만.. 제4부 < 미래의 기약-4분의 4는 역시 하나! >(말기 비틀스) 1968년 자신들의 음반사 애플(Apple)을 설립했을 때, 그리고 애플의 첫 싱글 ‘Hey Jude’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을 때 비틀스의 웅대한 새 출발은 이상하게도 그룹의 결속력 와해로 이어졌다. 비틀스라는 우산 아래 뭉쳤던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독자 영역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에 그룹을 대표하던 존은 비틀스 아닌 필생의 동반자 오노 요코와의 관계에 빠져 들어갔으며, 폴은 그룹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넷 가운데 단연 최강자로, 실세로 솟아났다.

존과 폴 간의 균형이 깨진 것을 의미하는 이러한 ‘헤쳐’ 상황은 비틀스를 ‘존과 폴의 그룹’에서 ‘폴의 그룹’으로 재편했다. 조지 역시 자신의 음악세계에 액센트를 두기 시작했고 곡을 쓰지 못했던 링고도 마침내 ‘Don’t pass me by’나 ‘Octopus’s garden’과 같은 곡을 써내면서 자신감을 획득했다. 애플사에서 낸 첫 앨범 < The Beatles >(일명 화이트 앨범)는 불가피하게 ‘한지붕 네가족’의 앨범이 되어 나왔다. 자신이 쓴 곡을 녹음할 때 다른 멤버들은 그룹동료가 아니라 거의 세션 맨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비틀스의 재정문제를 관장하는 사업고문 발탁을 놓고 존 조지 링고와 폴 간의 입장차이가 불거지면서 멤버들간의 갈등도 노출되었다. 존과 폴은 모든 면에서 가령 예를 들면 결혼날짜와 장소와 같은 문제에서도 사사건건 경쟁적 심리전을 전개했다. 말기에서 비틀스가 차지한 차트 넘버원 곡들은 존의 ‘The ballad of John & Yoko’ ‘Come together’, 조지의 ‘Something’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폴이 주도적으로 쓴 곡이었다. 폴의 작곡 감각은 이후에도 접하기 어려울 만큼 이 시기에 절정에 달했다. 해산 직전에 나온 ‘Let it be’나 ‘The long and winding road’를 드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이 곡들은 비틀스 작품이기보다는 폴의 솔로 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폴의 천재성은 말기의 앨범 < The White Album > < Abbey Road >에 유감 없이 발휘되었다. 굳이 싱글이 아니었어도 전자의 ‘Obladi oblada’ ‘Martha my dear’ ‘I will’, 후자에서는 ‘You never give your money’ ‘Golden slumber’ ‘She came in through the bathroom window’ 등 그가 주조한 곡들은 어떤 싱글보다도 사랑을 받았다.

기습적인 비틀스 해산 기자회견을 가진 것도 폴이었다. 전설의 4인들은 해산 후에도 각각의 길을 걸으면서 누구 할 것 없이 1970년대의 어떤 싱어 송 라이터나 팝 스타들보다 굵직한 행보를 보였다. 네 사람 모두 차트 넘버원 곡을 기록했다. 그룹 출신으로 솔로활동에서 멤버 모두가 1위 곡을 가진 그룹은 비틀스밖에 없고 이는 앞으로도 깨질 수 없는 기록이 될 것이다. 그 가운데 윙스(Wings)라는 그룹을 만든 폴의 히트행진은 비틀스 업적을 거의 재현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존 폴 조지 링고를 아무리 개별적으로 기억하려고 해도 사람들은 언제나 비틀스라는 집합으로 기억한다. 말기 이후가 ‘4분의 4’이었을지언정 대중의 뇌리에는 언제나 ‘하나’였다. 그리고 영원히 하나임은 비틀스 재결합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관측을 깨고 1995년 폴 조지 링고가 투합해 존의 노래 ‘Free as a bird’ ‘Real love’를 만들어 내놓았을 때 다시금 입증되었다. 여기서 링고 스타의 비틀스론(論)을 들어보자. “우린 신비로웠고 그것은 텔레파시였다. 우리가 녹음실에서 작업했을 때…그걸 묘사하기란 정말 어렵다. 우린 넷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였다. 우리 모두의 마음은 언제나 동시에 움직였다.” 신기하게도 비틀스는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에 묻히지 않고 갈수록 위대성과 가치가 증대한다. 미국 브라질 쿠바 일본 그리고 한국을 가리지 않고 < The Beatles 1 >가 전 세계적으로 판매열풍을 일으키고있다는 사실은 뉴 밀레니엄 첫 스타가 비틀스라는 것을 말해준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1960년과 2000년 사이의 40년 세월의 간극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 비틀스는 언제나 있었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은 불로(不老) 불사(不死) 불패(不敗)의 그룹이다.

IMAGINE [이매진: 첼로로 연주하는 비틀즈 명곡집 – 오프라 하노이] [180G LP]

DISC 001

DISC 002

음반정보

뛰어난 연주력과 아름다운 외모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던 첼리스트 오프라 하노이.

그녀가 연주하는 비틀즈의 명곡집 “이매진” 이 세계 최초 LP 발매 되었습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비틀즈의 대표곡 Yesterday, Hey Jude, Michelle, 등을 비롯하여 존 레논의 대표곡이자 앨범 타이틀인 Imagine 등 19곡의 비틀즈의 명곡들을 담고 있습니다.

– For the fisrt time on LP

– 180 gram audiophile vinyl pressed by Pallas (2LP Gatefold)

– 2021 Newly Remastered (Digital Remastering, OriJIn Mastering Lab)

– 한국 기획 독일 수입 완제품 LP

Imagine 비틀즈 이매진 노래 듣기 가사 해석 존레논 Beatles – 암살사건

실제로 그의 둘째 부인, 일본인 여자 오노 요코와 함께1973년 만우절 날에 스스로 하나의 새로운 국가를 건설했다고 만천하에 공표하기도 했었는데요~

유엔(UN)에는 정식 회원국 신청까지 했었습니다.^^;

비틀즈 존 레논의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이매진 존 레논 展’ 개최

[내외통신]정석철 기자=보헤미안 랩소디 열풍에 더불어 20세기 후반의 전설적인 가수들이 다시 인기를 얻고 있는 가운데, 전 세계가 열광했던 비틀즈의 리더 존 레논(John Lennon, 1940-1980)의 삶을 풀어낸 ‘이매진 존 레논 展’이 주목을 받고 있다.

존 레논 전시회 포스터

이번 전시는 존 레논의 전속 사진 작가인 밥 그룬(Bob Gruen), 앨런 태넌밤(Allan Tannenbaum)의 사진 작품과, 30년 이상 존 레논의 예술작품과 유품을 수집해 온 Micheal-Andreas Wahle의 소장품 등 총 410여점으로 구성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전시다.

존 레논은 비틀즈를 이끈 음악가이자 예술가, 그리고 사회운동가로 활동하며 대중들에게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존 레논은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Ono Yoko)를 배우자로 맞이한 후 함께 평화 운동 “BED-IN” 퍼포먼스, “WAR IS OVER” 캠페인 등 평화의 의미를 알려 왔다. 이후 그는 1980년 12월, 향년 40세에 한 팬이 쏜 총에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남긴 예술과 메시지는 현대에도 끊임없는 자극을 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함께 세상에 전달하고자 했던 평화 퍼포먼스를 전시장에서 체험해 볼 수 있도록 구성하여, 관람객이 직접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되어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존 레논의 사진과 유품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존 레논의 이면의 모습,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아티스트로서의 존 레논도 만날 수 있다. 리버풀 미술대학에서 시각예술을 전공한 존의 재치있고 상상력이 넘치는 작품들은 뉴욕 MoMA 미술관에 영구 소장품으로 전시될 만큼 높은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존의 작품들은 기발하면서 유머가 있는 동시에 매우 서정적이며 시적이다. 시대를 대변했던 존 레논의 자화상 같은 작품은 한결 같이 그가 평화를 사랑했음을 보여준다.

BED IN 퍼포먼스

또한, 관람동선에 따라 존 레논의 음악을 온전히 들을 수 있는 전시구성과 음향시설은 이번 전시가 기존의 작품 전시회와 차별화된 점이다. 예술의 전당 음향팀과 함께 전시장 내에 오디오를 설치하여, 전시를 관람하는 동안 관람객들이 존 레논과 비틀즈의 명곡에 집중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청음실은 사운드 플랫폼 ODE와의 협업으로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으로 꾸며져 명곡 “이매진(IMAGINE)”의 감동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음악과 더불어 이 공간에서는 존 레논이 “이매진”을 작곡했던 피아노도 선보여 감동을 전한다.

존 레논의 피아노

존 레논의 짧지만 방대했던 삶을 음악, 예술 그리고 사랑으로 풀어낸 이번 전시에서는 존 레논이 생전에 다양한 예술적 노력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와 발자취를 음악과 함께 즐길 수 있다. ‘이매진 존 레논 展’은 오는 3월 10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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