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브 하트 | 너무 잘 만들어서 중세시대로 돌아간 것 같다고 극찬한 영화[결말포함리뷰] 171 개의 가장 정확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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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작 브레이브하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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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 하트 – 나무위키

제목인 브레이브 하트(Braveheart)는 주인공 월레스가 아니라 그를 배신한 로버트 더 브루스(로버트 1세)의 별명이다. 단 이것이 윌리엄 월레스의 별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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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3/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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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하트 – 나무위키

1. 1995년 영화2. 던전 앤 파이트 드래곤나이트 북미판 각성명3. 디지몬 노래. 1. 1995년 영화[편집] · 브레이브 하트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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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7/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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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하트 | 다음영화

13세기 스코틀랜드 영웅 윌리엄의 사랑과 투쟁을 그린 영화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 왕의 폭정에 시달리던 때에 윌리엄(멜 깁슨)이 저항군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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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ovie.daum.net

Date Published: 3/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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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하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브레이브하트》(Braveheart)는 1995년 미국에서 만든 멜 깁슨 감독의 전쟁 휴먼 드라마 영화이다. Picto infobox cinema.png. 브레이브하트. Brave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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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1/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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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레이브 하트 줄거리 결말 뜻 실화 – 윌리엄 월리스와 멜 …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뜻은 줄거리에서 “용감한 마음”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뜨거운 마음을 준 사람은 브레이브 하트 실화의 실존인물인 ‘윌리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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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iss7.tistory.com

Date Published: 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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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레이브하트’의 역사적 오류와 진실 – 브런치

오락 영화인 만큼, 오류도 심하다. |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주인공이자, 스코틀랜드 독립전쟁의 영웅이기도 한 윌리엄 월레스라는 인물에 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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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runch.co.kr

Date Published: 10/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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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세계의 명화 ‘브레이브하트’ “누가 감히 영웅을 심판하는가 …

[한국강사신문 한상형 기자] 1995년 6월 17일 개봉된 멜 깁슨 감독의 ‘브레이브하트(Braveheart)’는 출연진으로 멜깁슨, 소피 마르소, 패트릭 맥구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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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lecturernews.com

Date Published: 10/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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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하트 영화 스트리밍으로 볼 수 있는 곳 – JustWatch

브레이브하트 영화를 볼 때 넷플릭스, 왓챠플레이, pooq, N스토어 등 다양한 동영상 서비스들 중 어떤 것이 좋을까요? 온라인으로 볼 수 있는 사이트를 지금 바로 찾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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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justwatch.com

Date Published: 5/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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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ch 브레이브 하트 | Full movie | Disney+

브레이브 하트. 1995. GET DISNEY+. 로맨스, 음모, 용맹함과 스코틀랜드의 자유를 위한 필사적인 전투를 감상할 수 있다. 열정과 용맹함으로 스코틀랜드 사람들을 한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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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isneyplus.com

Date Published: 12/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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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레이브 하트’ 주인공 윌리스는 실재인물? – 아틀라스뉴스

1995년에 만들어진 헐리웃 영화 ‘브레이브하트'(Brave Heart)에서 주연배우 멜 깁슨은 스코틀랜드 1차 독립전쟁(1296.3.26.~132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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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atlasnews.co.kr

Date Published: 6/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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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브레이브 하트

  • Author: 아만보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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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4. 10.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VOxLAeKUWk4

영화 브레이브 하트 줄거리 결말 뜻 실화 – 윌리엄 월리스와 멜 깁슨, 소피 마르소

영화 브레이브 하트 줄거리 결말 뜻 실화 – 윌리엄 월리스와 멜 깁슨, 소피 마르소 / ⓒ Braveheart

브레이브 하트

1995년 멜 깁슨 감독이 만든 시대극 – Braveheart

[영화 브레이브 하트 줄거리 결말 뜻 실화 – 윌리엄 월리스와 멜 깁슨, 소피 마르소]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뜻은 줄거리에서 “용감한 마음”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뜨거운 마음을 준 사람은 브레이브 하트 실화의 실존인물인 ‘윌리엄 월리스’입니다. 그는 처참한 죽음의 고통을 견디며 스코틀랜드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었고, 그 영향으로 스코틀랜드가 독립할 수 있는 개기가 되었습니다.

1305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멜 깁슨, 소피 마르소, 캐서린 맥코맥, 패트릭 맥구한 주연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글은 영화 브레이브 하트, 줄거리, 결말, 뜻, 실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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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 하트 줄거리

영화 브레이브 하트 줄거리 결말 뜻 실화 – 윌리엄 월리스와 멜 깁슨, 소피 마르소 / ⓒ Braveheart

13세기의 영국, 잉글랜드는 독립투쟁을 하던 스코틀랜드의 귀족을 불러냅니다. 그러고는 뒤통수를 쳐서 처참하게 죽여버리는 잉글랜드… 그로 인해 남은 어린 아들 윌리엄 월리스(멜 깁슨)는 삼촌에게 맡겨져 크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와 형이 끔찍한 죽음을 봤기에 그저 보통 사람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결혼할 여자를 잉글랜드 영주가 빼앗으려고 하고, 겁탈까지 당할 위기에 처하자 어쩔 수 없이 살인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아내는 잡히게 되고…

영화 브레이브 하트 줄거리 결말 뜻 실화 – 윌리엄 월리스와 멜 깁슨, 소피 마르소 / ⓒ Braveheart

잔악한 잉글랜드 영주는 월리스를 잡으려고 아내를 죽여버리고, 이에 분노한 월리스는 영주를 죽여버리면서 아내의 복수에 분노합니다. 결국 스코틀랜드 독립전쟁에 빨려들어가고 만 월리스. 이때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패트릭 맥구언)은 대규모 진압군을 보냅니다.

월리스가 중심이 된 반란군은 ‘스털링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에게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또 다른 지도자 로버트 브루스(앵거스 맥페이든)과 함께 힘을 합쳐서 잉글랜드로 쳐들어갔습니다. 그는 요크를 함락시키고 왕의 조카를 죽이면서 기세를 올렸습니다.

스코틀랜드의 독립 전쟁

영화 브레이브 하트 줄거리 결말 뜻 실화 – 윌리엄 월리스와 멜 깁슨, 소피 마르소 / ⓒ Braveheart

이때까지만 해도 스코틀랜드의 독립군들은 분열되고 주먹구구식이었습니다. 하급 귀족인 월리스는 고급 귀족인 로버트(앵거스 맥페이든)에게 이들을 단합시키는 구심점이 되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처음엔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던 로버트도 점점 감복하게 됩니다.

한편 늙고 병든 에드워드 1세는 왕자의 세자빈 이자벨(소피 마르소)를 보내 협상하자고 합니다. 하지만 에드워드 1세는 또 배신할 마음으로 대군을 모아 직접 진압하러 출병했습니다. 그동안 협상을 하던 이자벨은 월리스에게 반해버리고…

영화 브레이브 하트 줄거리 결말 뜻 실화 – 윌리엄 월리스와 멜 깁슨, 소피 마르소 / ⓒ Braveheart

그 후,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줄거리는 ​’폴커스 전투’로 전환됩니다. 잉글랜드는 또 다른 식민지인 아일랜드 부대도 이끌고 나왔습니다. 그러자 월리스는 아일랜드군을 포섭했고 전투는 승리하는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스코들랜드의 귀족들이 뇌물을 먹고 전투를 방관하는 바람에 대패하게 됩니다. 월리스는 전세를 뒤집기 위해 대장을 잡으러 돌진했지만, 어떤 기사의 방해로 이마저도 실패했습니다. 알고보니 그는 로버트였습니다.

자유를 위한 용기

영화 브레이브 하트 줄거리 결말 뜻 실화 – 윌리엄 월리스와 멜 깁슨, 소피 마르소 / ⓒ Braveheart

겨우 위기를 벗어나 탈출에 성공한 윌리엄 월리스(멜 깁슨)는 배신했던 귀족들을 하나씩 암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세력을 모아 반란군을 늘려갔습니다. 한편 양심의 가책 때문에 괴로웠던 로버트는 먼저 연락해서 만나자고 제의해 왔습니다.

다들 반대했지만, 월리스는 로버트(앵거스 맥페이든)가 친잉글랜드파인 아버지 때문에 억지로 잉글랜드의 편에 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반대를 무릎쓰고 만나러 간 월리스를 마중나온 로버트는 크게 반가워했었습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 줄거리 결말 뜻 실화 – 윌리엄 월리스와 멜 깁슨, 소피 마르소 / ⓒ Braveheart

그러나 여기서부터 영화 브레이브 하트는 결말로 급격히 기웁니다. 로버트의 아버지가 보낸 자가 숨어있다가 월리스를 잡아 갔습니다. 뒤늦게야 깨달은 로버트는 분노했지만, 결국은 월리스를 잡기 위한 미끼가 된 상황이 되고 맙니다.

잉글랜드군에게 넘겨진 윌리엄 월리스는 런던으로 끌려갔습니다. 재판에서 월리스는 자신의 왕은 스코틀랜드 왕이므로 반역죄가 될 수 없다며 오히려 당당해 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끔찍한 형벌이 예상되자 이사벨(소피 마르소)마저 자결을 권할 정도였습니다.

브레이브 하트 결말

영화 브레이브 하트 줄거리 결말 뜻 실화 – 윌리엄 월리스와 멜 깁슨, 소피 마르소 / ⓒ Braveheart

드디어 사형집행일이 밝고, 월리스는 형장에서 정말로 끔찍하게 죽게 됩니다. 사지가 찢길 때까지 계속 당겨지고, 그 사이에는 등 뒤를 갈라서 내장을 뽑아내버렸습니다. 잉글랜드인은 자비를 구걸하면 빨리 죽여주겠다고 했지만, 월리스는 끝끝내 거부하며 “자유”를 외쳤습니다.

이때 에드워드 왕은 병이 심해서 누워 있었습니다. 여기에 며느리 이사벨이 들어와서는 뱃속에서 자라는 아이는 월리스의 아이라고 밝힙니다. 놀라는 에드워드의 귀에 월리스의 비명이 들리고, 왕은 숨을 거둡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 줄거리의 나름의 복수인 셈입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 줄거리 결말 뜻 실화 – 윌리엄 월리스와 멜 깁슨, 소피 마르소 / ⓒ Braveheart

1305년 월리스가 죽은 후, 로버트는 잉글랜드에게서 군주의 작위를 받았습니다. 한동안 굴욕감 속에서 지내던 로버트는 월리스의 유품을 보다가, 마침내 투쟁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남은 스코틀랜드인들을 모아서 전투를 벌입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결국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결말은 스코틀랜드인 전체가 월리스의 영향을 받아 독립전쟁을 벌이는 것으로 끝납니다. Braveheart(브레이브 하트)의 뜻처럼 “용감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브레이브 하트의 실화에서 로버트는 독립된 스코틀랜드의 첫 왕에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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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레이브 하트 줄거리 결말 뜻 실화 – 윌리엄 월리스와 멜 깁슨, 소피 마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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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레이브하트’의 역사적 오류와 진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주인공이자, 스코틀랜드 독립전쟁의 영웅이기도 한 윌리엄 월레스라는 인물에 대해 얘기해 보자. 실제 이야기가 영화화되면서 바뀌는 부분들이 참 많은데, 이 영화도 많이 바뀐 축에 속한다.

0.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주인공이자, 스코틀랜드 독립전쟁의 영웅이기도 한 윌리엄 월레스(영어: William Wallace. 켈트어: Uilleam Uallas 노르만 프렌치 표기: William le Waleys. 생몰년: 얼추 1270년 출생 추정, 1305년 8월 23일 사망)는 영화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농노나 서민이 아니라 귀족이다.

윌리엄 월레스 1272 혹은 1276년 ~ 1305년 8월 23일. 스코틀랜드의 영웅이지만 잉글랜드에서 태어났다.

1. 대귀족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부유하게 살았던 인물이다.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입을 옷도 변변치 않아 대충 천을 몸에 두른 것 같은 생활을 하지 않았다. 일단 아버지가 말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절대 농노나 서민일 수 없었다.

나름 위대한 삼촌이 둘이 있는데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전설적인 검사가 아니라 둘 다 카톨릭 사제다. ㅋ 그리고 월레스는 어린 시절, 온 동네 여자들 겁탈하고 다니고 말썽이나 피워대던, 이른바 싹수가 노란 “양아치”였다고 한다. 사실 윌리엄 월래스도 커리어의 시작은 카톨릭 사제로 출발했다.

2. 영화에서는 신혼부부의 첫날 밤 의식을 영주에게 빼앗기기 싫어 몰래 결혼했다가 아내가 살해당하고 이거에 분노한 월레스가 본격적으로 반란을 일으키는 걸로 나오지만 월레스가 영국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 계기가 된 것은 낚시를 하던 월레스에게 잉글랜드의 병사 두 명이 시비를 걸었다가 죽임을 당한게 계기라고 한다. 이후 그와 그의 아내를 모욕한 던디의 영주를 살해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잉글랜드 세력과 대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이를 뒷받침할 정확한 역사적 근거나 사료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혹자는 그의 아내였던 마리온 브레이드풋(Marion Braidfute, 1278년 ~ 1297년)이 라낙(Lanark)의 잉글랜드 치안대장 윌리암 헤셀릭(William Heselrig)에 의해 살해를 당하면서 복수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전승되어 오는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게 오늘날 역사학자들의 관점이다.

또 다른 설은 나름 유명했던 카톨릭 사제이자 월래스의 삼촌이자 아이어(Ayr)의 치안대장이었던 로널드 크로포드(Ronald Crawford, ? ~ 1296)가 잉글랜드에 반란을 일으켰다는 명목으로 교수형에 처해지자 이에 분노한 월래스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다. 로널드 크로포드는 당시 잘 나가던 카톨릭 사제이자 아이어의 남작이었는데, 크로포드의 비호 하에 청년 월래스는 갖은 양아치짓을 하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남아있다.

확실한 것은 스털링 전투가 일어나기 이전부터 월래스가 잉글랜드를 상대로 간헐적인 전투를 벌이며 유명해졌다는 것 뿐이다.

마리온 브레이드풋이 낳은 아들이 있는데, 아들은 아버지에 비해 그리 유명하지도, 용맹스럽지도 못했는지,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는 않다. 아버지처럼 젊은 시절 망나니였다는 기록도 없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 카톨릭 사제인데 아내와 아이가 있었다고? 응. 당시 권력집단인 카톨릭의 사제들에게 이건 그냥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사제가 귀족 작위를 지니고 기사단이라 불리는 양아치들을 거느리고 다니며 갈취를 해대던 시절이니까 후후후후.

3. 1297년 9월에 벌어진 스털링 전투에서 월레스가 긴 창을 고안하여 에드워드 1세의 기병대를 격파하는 장면은 사실 1307년, 배넉번 전투에서 에드워드 2세의 기병대를 궤멸시킨 로버트 1세(로버트 브루스)가 고안한 전법이다. 참고로 스털링 전투에서는 기습을 한 영국군에 대해 방어전을 치루는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 역사는 정반대로 전개되었다.

바로 이 장면. 월래스가 고안한 전법이 아니다. 사실 스털링 전투에서 처음 고안된 전법도 아니다.

다리를 건너던 영국군에 월레스가 기습을 가해서 승리를 이끌었다. ㅋ 물론, 숫적으로 스코틀랜드 군이 상당히 열세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에서처럼 막 스코틀랜드 귀족들이 비굴하게 옹기종기 모여가지고 영국의 칙사에게 머리를 읖조아리는데 월래스가 나타나서 “니들을 전멸시켜주갔어!” 한 후에 일장 연설을 해서 군의 사기를 북돋고, 귀족들에게 “니들은 우회해서 측면이나 까라능” 뭐 이런거 전혀 없었다. 스털링 다리를 건너는 중에 좌우 양 쪽에서 스코틀랜드 군이 기습을 걸어버렸고, 아주 일방적으로, 순삭시켜버린 전투였다. 사전에 영국군의 동향을 파악한 후 전개한, 철저한 계산을 바탕으로 한 기습공격이었으며, 영국군은 영화와 달리 순식간에 쓸려나갔다. 전투같은 전투는 벌어지지도 않았다.

5. 영화에서 초지일관 찌질하게 행동하다가 월레스의 카리스마에 낚여서 스털링 전투에서 영국군 후방을 교란하고, 하지만 초지일관 찌질한 인물이기에 나중에는 월레스를 배신했다가 말 타고 성에 들어온 월레스에 의하여 침대에서 무참하게 “말에 하반신을 짓밟힌 상태에서 대가리에 철퇴를 맞고 뒈져버리는” 인물로 그려지는 앤드류 모레이(Andrew Moray)는 사실 에드워드 롱생크스에게 반기를 든 월레스를 개전 초기부터 열렬히 지지한 몇 안되는 스코트랜드 귀족 중에 하나이다. 월래스가 스코틀랜드의 수호자(A Lord High Protector of Scotland)로 발탁되기 전에 그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걸출한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Mornay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이 분. 누가 봐도 엔드류 모레이에서 영감을 따 온 것이 분명하지만 그는 이런 비열한 인물이 아니었다.

당시 표기법에 따라 Andreu de Moray, Andreas de Moravia, Andrew de Moray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인물은 로버트 브루스 스코틀랜드 대공 휘하의 이름난 향였으며, 월래스의 심복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그는 영화에서 그려진 것과 달리 정치적인 지지기반이 약했던 월래스를 처음부터 후원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와 이름이 같은 그의 아들 역시 로버트 1세(로버트 브루스)를 보필하여 독립전쟁에 참전하였으며, 영화 종반에 잠깐 그려지는 “제 2차 스코틀랜드 독립전쟁”에서 스코틀랜드의 수호자로 활약하였다.

영화에서는 로버트 1세가 월래스가 그의 부하들에게 기사 작위를 주는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 역사 상에서 그 둘이 직접 대면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모레이가 수 차례 로버트 1세에게 간청을 하지만, “아니 ㅆㅂ 내가 뭔 저런 생양아치를 만나야 됨?” 했다. 후술하겠지만, 이미 어마어마한 재산과 권력과 잉글래드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군사력을 지닌 로버트 1세 같은 걸출한 인물에게 있어 윌리엄 월래스는 그저 골칫거리에 불과했다.

참고로 모레이는 영화에서처럼 월래스를 배신한 후 끔살당한게 아니라, 스털링 전투 중에 부상을 입고 후방에서 요양하던 중 영국군에게 포로로 잡혀 극심한 고문 끝에 죽었다. 죽는 그날까지 월래스를 배신하지 않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실제 역사에선 정말 멋진 인물이었는데 영화에서는 오락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찌질한 인물로 묘사되었다. 아니, 실제 역사에서 Mornay 혹은 Locklan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6. 월레스의 군대가 무슨 서민집단으로 이루어진 게릴라 같은 느낌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중무장한 기사들과 향사들로 이루어진 부대였다. 당대 스코틀랜드의 엘리트란 엘리트는 다 모인 집단이었다. 대장이 어릴 적 생양아치였다는 걸 제외하면 말이다. ㅎㅎ

이런 생양아치들이 아니었다는 이야기. 근데 뭐, 영아치들이 정규군 상대로 이기는게 비쥬얼적으로 더 드라마틱하잖아? ㅋㅋ

7. 스코틀랜드 독립전쟁은 사실 전제군주에 대항한 자유인의 역사..라기 보다는 실제론 잉글랜드의 왕 vs 스코트랜드 귀족 간의 정치싸움에 불과했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잃었고, 이후 백년 전쟁 기간 동안 스코틀랜드가 프랑스와 내통하면서 오랫동안 북부 지방에 의한 견제에 시달렸다. 이는 엘리자베스 1세가 등극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8. 소피 마르소가 29살 때 연기한 이사벨라는 남몰래 월래스와 그의 군대를 지원하고 또 나중에는 거의 연인이 된 것처럼 묘사되지만 사실 실제 역사에서 둘이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오오 이게 10살의 비쥬얼이라니 오오

에드워드 1세(에드워드 롱셍크스)가 스코틀랜드와 전쟁을 벌이던 그 시기에 이사벨라의 나이는 고작 10살에 불과했고, 런던의 성에서 밖으로 나온 적도 거의 없다시피했다. 단, 서민들의 삶을 보기 위하여 시찰을 나갔다가 휴대하고 있던 모든 금붙이와 보석들을 서민들에게 나누어졌다는 것은 사실이다. 영화에서 이 에피소드를 지들 입맛에 맞게 각색했을 뿐이다.

9. 스코틀랜드 뿐만 아니라 모든 적대 세력들에게 “비열하고 잔인무도한 왕”이었던 에드워드 1세이지만, 사실 영국 입장에서는 그 평가가 상당히 좋은 인물이다. 그의 치세는 영국이 프랑스와 거의 대등한 입장에 서게 되고 영국의 유럽에 대한 영향력이 강화되었으며, 의회를 존중하고 귀족들과 성직자들, 그리고 서민들의 권위를 지키는데 앞장섰지만, 스코틀랜드와의 전쟁에서 결국 북부에 대한 지배권을 잃어버린 인물이다.

영화에선 악역으로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걸출한 인물이었던 에드워드 1세.

10. 에드워드 1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게 되고 결국 글이 다소 길어지는데, 그냥 하겠다. ㅋㅋ 서기 1189년, 리처드 1세가 즉위한다. 사자왕, 혹은 사자심왕(Richard the Lionheart)이라 불린 그 사람이다. 헨리 2세의 아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국말을 단 한마디도 못했던 이 사람은, 영국을 통치하기보다는 그 한평생을 십자군 전쟁과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소모했다. 재위 기간 중 사자왕 리차드가 영국에 머문 것은 단 6개월. 그래서 영국 내부의 통치는 그의 동생이었던 존이 도맡아하고 있었다.

1199년, 리차드가 사망하고 존이 영국의 왕이 되었는데.. 당시 프랑스의 왕이자, 영국 왕실의 분열을 꾀해왔던 필립 2세가 방해공작을 펼치기 시작한다. 필립 2세는 참고로 사자심왕 리처드가 유럽에서 사망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인물이며, 리처드를 유럽에 고립시키기 위해 존을 지원하여 그가 왕위를 찬탈하려는 시도를 하게끔 획책한 인물이기도 하다. 프랑스 역사상 최초로 “프랑스의 왕(Roi de France)” 칭호를 받은 인물이기도.

필립 2세는 리처드 1세가 유럽에서 브레타뉴에서 얻은 아들, 아서가 영국왕실의 정당한 계승자라고 주장하면서, 존이 영국 왕실의 전통을 무시하고 왕위를 넘본다고 비난하며 존을 프랑스로 소환하려했다(형식상의 문제이긴 했지만, 당시 프랑스와 영국의 관계는 명나라와 조선의 관계와 비슷했다) 그리고 이에 분개한 존은(그는 필립2세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했다) 프랑스 원정에 나서지만, 연전연패를 거듭한 끝에 아키텐과 노르망디 지역을 몽땅 빼앗기고, 로마 교황과도 충돌을 일으켜 카톨릭 교회에서 파문을 당하며, 전쟁 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대폭 올린 세금에 불만을 품은 귀족들과 성직자들에게도 배신을 당하여, 결국에 왕권을 대폭 축소시키고 봉건귀족들의 권리를 인정해주는 이른바 권리 장전, 즉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에 서명하게 된다.

1216년 10월 19일, 존의 아들인 헨리 3세가 즉위한다. 헨리 3세는 자신의 여동생을 프랑스의 왕가도 아닌, 그냥 일반 귀족 집안에 시집을 보내야 했을 정도로 그 정치적 기반이 약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매제가 된 시몽 드 몽포르가 그의 치세 동안 실질적인 섭정으로 영국 왕실을 좌지우지했다. 헨리 3세는 귀족들을 대함에 있어서도, 시몽 드 몽포르를 대함에 있어서도 그릇된 판단을 자주 하였고, 결국에는 귀족들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가 루이스(Lewes) 전투에서 시몽 드 몽포르에게 패배하여 귀족들과 향사로 이루어진 영국 의회가 창설되는 굴욕을 맛 보게 된다. 하지만 이어 즉위한 에드워드 1세에 의하여 시몽 드 몽포르 역시 실각하고 만다.

시몽 드 몽포르의 반란을 제압하지만, 에드워드 1세는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에드워드 1세는 영국 의회를 오히려 강화시키고, 자신의 지지세력으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상하정치계급의 화합을 이루어냈고, 귀족들과 기사, 향사들의 권익을 성직자들로부터 지켜냈으며, 윌리엄 월래스라는 골칫덩어리를 처리하고, 영화에서처럼 이사벨라의 저주를 들으며 시름시름 앓다 죽지 않고 ㅋㅋ 월래스 사후 2년 뒤인 1307년, 로버트 브루스가 스코틀랜드 귀족들과 함께 전군을 이끌고 다시 전쟁을 일으키자, 이를 정벌하기 위해 친정을 하여 북부로 진군하던 도중 사망하였다. 스코틀랜드를 복속시키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었는지, 그의 아들 에드워드 2세에게 “내 시체를 불태워 그 재를 가죽 부대에 넣어 군사들과 함께 진군하고, 북부를 모두 장악하면 그 재를 스코틀랜드에 묻으라”는 아주 비장한 유언을 남긴다.

여담이지만, 에드워드 1세의 별명은 롱생크스(Longshanks). 중세 영국 영어로 그 뜻은 “롱다리”라는 뜻이다. 다리만 긴게 아니라 키도 크고 팔도 길었다 한다.

11. 그러나 소심한 아들 에드워드 2세는 아비의 유언을 지키지도 않았고, 바로 철군한다. 영화 브레이브하트의 맨 마지막 장면은, 1314년에 벌어진 배넉번 전투(Battle of Bannockburn)의 일부를 그린 것이다.

로버트 1세가 이끄는 스코틀랜드 군 1만과, 에드워드 2세가 이끄는 2만5천의 영국군이 격돌한 전투이다. 스코틀랜드 군의 사망자가 고작 400명에 불과했는데(부상자까지 포함하면 4천여명), 영국군은 중무장기사 700명을 모두 잃고, 보병 1만명이 궤멸당한다. 스코틀랜드의 실질적인 국가에 해당하는 “Flower of Scotland”라는 노래는, 바로 이 배넉번 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베넉번에 가면 이런 간지 작살의 로버트 1세의 동상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영화 내내 아주 소심하고 감정적이고 우유부단하고, 그러나 순수한 인물로 그려지는 로버트 1세는, 사실 겁나 엘리트 교육을 받은 후계자에 두뇌회전이 빠르고, 전략과 전술에 능하고, 전사로서도 그 기량이 당대의 기사들에 비해 월등했으며, 판단력과 온갖 모략과 술수를 쓰는데 당대 끝판왕 수준이었던 인물이다. 윌리엄 월래스를 막 띄워줄려다보니 모레이는 배신자가 되고 브루스는 찌질이가 되었는데, 참 흥행을 위해서라긴 하지만 이런 역사 왜곡은 솔직히 받아들이 힘들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아일랜드인들, 그들인 월래스의 독립전쟁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로버트 1세의 실질적인 “꼬붕”들이었기 때문에 참전을 했다. 당시 로버트 1세의 아일랜드 귀족들에 대한 영향력은 설명할 길이 없을 정도로 넘사벽 수준이었다.

이 로버트 1세, 에드워드 1세, 2세, 3세의 스코틀랜드 침공을 모두 막아낸 인물이다. 실질적으로 영국의 Plantagenet 왕조의 몰락을 가져온 인물이기도 하다. 상당히 전략적인 마인드를 탑재한 인물로, 에드워드 1세와 2세를 농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협력도 했던 인물이다.

이 사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제갈량의 두뇌를 탑재한 마초? 곽봉효의 두뇌를 탑재한 봉선? 혹은 서애 유성룡이 칼 들고 무쌍을 펼치는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실제로 거의 그런 수준의 인물이었다.

아 그리고.. 존 왕이 잃어버린 모든 영토는, 그로부터 1백여년이 흐른 1415년, 헨리 5세가 아쟁쿠르(혹은 애진코트, 혹은 애긴코트. Battle of Aggincourt)에서 프랑스군을 궤멸시키고, 이후 1417년과 1421년의 원정을 통하여 프랑스를 도륙하면서 되찾게 된다.

12. 마지막으로.. 킬트.

13-14세기의 스코틀랜드인들은 킬트를 입지 않았다. 아니 킬트라는 의복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대중적인 옷은 결코 아니었다. 스코틀랜드에서 킬트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말엽 이후부터이고, 군복으로 최초로 사용된 것 또한 1623년 이후의 이야기다. 물론, 킬트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는 것은 스코틀랜드의 전통이 맞긴 하지만, 중세 스코틀랜드를 다루는 모든 매체에서 킬트를 입고 돌아다니는 장면이 나오면 무조건 빼박 역사 오류이자 고증 오류다.

뭐, 그렇다구. 후후후후

EBS 세계의 명화 ‘브레이브하트’ “누가 감히 영웅을 심판하는가? 멜깁슨, 소피 마르소 주연”

[사진 출처=네이버 영화] [한국강사신문 한상형 기자] 1995년 6월 17일 개봉된 멜 깁슨 감독의 ‘브레이브하트(Braveheart)’는 출연진으로 멜깁슨, 소피 마르소, 패트릭 맥구한 주연, 캐서린 맥코맥, 앵거스 맥페이든, 브렌단 글리슨, 데이비드 오하라, 이안 배넌 조연, 평점 정보로 네티즌 평점 9.27을 받은 177분 분량의 미국 액션영화다.

네이버 영화가 소개하는 영화 ‘브레이브하트’의 줄거리를 알아보자.

“누가 감히 영웅을 심판하는가?”

1280년, 스코틀랜드. 윌리엄 월레스 얘기를 해주지. 잉글랜드 사학자들은 날 거짓말쟁이라고 하겠지만, 역사는 그를 매단 자들에 의해서 쓰여진거야. 스코틀랜드의 왕이 후계자 없이 죽자, 무자비한 이교도로 이름 난 잉글랜드 왕 롱생크가 스코틀랜드 왕을 자처했어. 스코틀랜드의 귀족들은 그와 싸웠고, 또 왕위를 놓고 서로 싸웠지. 그러자 롱생크가 휴전 회담을 위해 모두를 초대했어. 무기 없이, 시종 한명만 데려오도록 말야. 그 지방 농민 중에 자신의 땅을 경작하는 말콤 월레스란 자가 있었지. 그에겐 두 아들이 있었는데, 존과 윌리엄이었어.

13세기 말엽,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왕가는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스코틀랜드 왕이 후계자 없이 죽자, 잉글랜드는 왕권을 요구하며 스코틀랜드에 포악한 정치의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한다. 폭정으로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잇달아 죽음을 당하게 되고, 윌리엄 월레스(William Wallace: 멜 깁슨 분)는 폭정을 피하여 고향으로 멀리 보내어져 양육된다. 그가 성장하여 고향에 돌아왔을 때 월레스의 조국 스코틀랜드는 여전히 잉글랜드의 전제 군주 롱생크(Longshanks – King Edward I: 패트릭 맥구한 분)의 핍박과 탄압 시달리고 있었다.

[사진 출처=네이버 영화]

이때 윌리엄 월레스에게는 그에게 운명적인 사랑의 여인인 머론(Murron: 캐서린 맥코맥 분)을 만나게 되고 그와 결혼하나, 잉글랜드의 폭정에 머론은 잔인하게 처형된다. 월레스는 머론의 죽음을 복수하게되고 그 과정에서 하나 둘씩 모여드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을 모아 용맹과 투지로 무장한 저항군을 이끄는 지도자가 된다. 잉글랜드는 월등한 군사력을 앞세워 스코틀랜드를 침략해오고 역사적인 스털링 전투에서 월레스의 군대는 잉글랜드에 큰 승리를 거둔다. 월레스 군대의 용맹함에 당황한 롱섕크는 휴전을 제의하게 되고, 롱섕크는 왕자 에드워드(Prince Edward: 피터 핸리 분)의 무기력함에 공주 이사벨(Princess Isabelle: 소피 마르소 분)을 화해의 사절로 보내게 된다. 비록 정략적인 만남이었지만 이사벨은 월레스의 애국심과 용맹함에 매혹되고, 그녀는 잉글랜드의 침공 사실을 월레스에게 알려주기에 이르는데.

[사진 출처=네이버 영화]

폴커크 전투에서 두 왕조는 다시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된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기사들의 충성심은 이미 잉글랜드에 돈으로 매수된 빛바랜 충성심으로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에 치명적인 패배를 당하게 되고, 목숨만 건진 월레스는 다시 군대를 정비하려하나 롱섕크의 계략에 결국 월레스는 잉글랜드에 포로로 잡히게 된다. 결국 월레스는 런던으로 보내지고, 잔인하게 공개처형의 운명을 맞는다. 이사벨 공주 조차도 월레스를 구할 수 없었으며, 위대한 영웅은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외치며 의연하게 죽음을 맞는다. 월레스의 죽음에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윌리암 월레스의 숭고하고 의로운 정신을 마음 속에 새기며 베노번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을 격퇴시킨다. 스코트랜드는 많은 희생을 치룬 대가로 소중한 자유를 얻게 된다.

[사진 출처=네이버 영화]

월레스는 죽은 뒤 갈기갈기 찢겨서 머리는 런던 다리에 걸렸고, 팔과 다리는 영국의 네군데 변방에 경고용으로 보내졌는데, 롱생크가 기대했던 효과는 없었다. 서기 1314년, 스코틀랜드 애국자들은 굶주림과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베녹번 전투에 임했다. 그들은 스코틀랜드인 답게 싸웠고 그들의 자유를 쟁취했다.

영화를 본 한 관람객은 다음과 같은 리뷰를 남겼다.

멜깁슨이란 명감독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나 할까요? ‘더 페이스’란 그의 첫 작품도 분명 감동적인 작품이었지만 뭔가 부족함을 느끼며 큰 흥행을 하지는 못했었는데요. 이 영화는 멜깁슨의 카리스마있는 연기력과 소피 마르소의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갈망의 멋진 앙상블로 잊을 수 없는 명작의 탄생에 이르게 됩니다. 자유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갈망과 권력에 대한 욕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함을 확연히 구분하여 주며 삶보다 중요한 그 이상의 무언가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가는 브레이브 하트.

[사진 출처=네이버 영화]

영웅은 시대가 만든다는 말을 아름다운 영상 속에 담은 이 영화는 진정한 영웅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궁금증에 대한 확실한 답변을 보여줍니다. 비극적 결말로 더욱 빛나는 완벽한 스토리는 ‘희망’ 이라는 미래에 대한 주인공들의 마지막 외침으로 비극 아닌 비극을 만들어 냅니다.

지금의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당연시 되는 자유의 소중함과 권력의 무지함, 인간의 나약함에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는 짧지만 긴 여운을 주는 삶의 윤활유와 같은 영화입니다. 삶에 무력함을 느끼는 분이시라면 이 영화를 권해드립니다. 그리고 뜨거운 심장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진 출처=네이버 영화]

연출 및 주연을 맡은 멜 깁슨(Mel Gibson)은 1956년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영화배우 겸 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1977년 영화 <썸머 시티>에서 조연으로 데뷔했다. 1979년부터 조지 밀러 감독에 의해 <매드 맥스>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며 이름을 알리기 이후 <매드 맥스 2·3>에 이어, 1987년부터 <리썰 웨폰> 시리즈에 출연하며 <리썰 웨폰 2·3·4>까지 흥행에도 성공했다. 이외에도 <매버릭>, <전선 위의 참새>, <햄릿>, <컨스피러시>, <왓 위민 원트>, <싸인> 등의 작품을 통해 터프함, 섹시함, 친숙함 등 다양한 연기 변화를 보였다.

1990년대 들어 영화감독으로도 성공을 했는데, 자신이 연출·제작·주연한 <브레이브하트>로 1996년 제6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고, 최우수작품상과 최우수감독상을 포함 5개 부문을 수상했다. 같은 해 제53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도 감독상을 받았다.

오늘 16일(토) 22시 45분 EBS1 세계의 명화에서 영화 ‘브레이브 하트’가 방송된다.

브레이브하트 영화 스트리밍으로 볼 수 있는 곳

시놉시스

13세기 말, 스코틀랜드 왕이 후계자 없이 죽자 잉글랜드는 왕권을 요구하며 스코틀랜드에 포악한 정치의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한다. 윌리엄 월레스(멜 깁슨)는 폭정을 피하여 멀리 보내져 양육된다. 그가 성장하여 고향에 돌아왔을때 스코틀랜드는 여전히 잉글랜드의 군주 롱생크(패트릭 맥구한)의 핍박과 탄압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운명적인 사랑의 여인 머론(캐서린 맥코맥)을 만나 결혼하지만, 잉글랜드의 폭정에 머론은 잔인하게 처형된다. 월레스는 머론의 복수를 다짐하고, 하나 둘씩 모여드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을 모아 용맹과 투지로 무장한 저항군의 지도자가 되는데…

영화 ‘브레이브 하트’ 주인공 윌리스는 실재인물?

민요와 전설로 내려오는 스코틀랜드 독립의 전설적 지도자…패전후 사형

1995년에 만들어진 헐리웃 영화 ‘브레이브하트’(Brave Heart)에서 주연배우 멜 깁슨은 스코틀랜드 1차 독립전쟁(1296.3.26.~1328.5.1.)의 영웅 윌리엄 월리스(William Wallace) 역을 맡았다.

영화의 스토리는 13세기 말 잉글랜드의 전제 군주인 롱섕크의 탄압을 받고 있던 스코틀랜드에서 윌리엄 월리스(멜 깁슨)가 민중의 지도자가 되어 잉글랜드와 전쟁을 벌인다. 위협을 느낀 잉글랜드 왕 롱섕크는 월리스에게 휴전을 제의하고, 화해의 사절로 이사벨 공주(소피 마르소)를 파견한다. 이 만남에서 이사벨 공주는 월리스에게 사랑을 느끼고, 잉글랜드의 계략을 월리스에게 알려 준다. 그러나 월리스는 동료의 배신으로 전투에 패해 포로가 되어 런던에서 공개 처형을 당한다. 월리스의 죽음에 고무된 스코틀랜드는 그의 숭고한 정신을 받들어 베노번 전투에서 잉글랜드에 승리를 거둔다는 줄거리다.

영화 ‘브레이브하트’의 장면 /1MDb

월리스는 실존인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영화 ‘브레이브하트’는 그가 죽고 172년후에 쓴 블라인드 해리(Blind Harry)가 쓴 전기를 기초로 했기 때문에 역사라기보다 소설에 가까운 내용이다. 분명한 것은 스코틀랜드 민중들 사이에 월리스는 영웅이고, 그에 관해 관한 어떤 과장도 사실로 믿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민중 영웅이 그러하듯, 월리스의 출생연도와 어린 시절에 관해서는 분명한 게 없다. 전설에 따르면, 월레스는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몰고온 잉글랜드 치안대장을 살해하고, 그의 사지를 절단하면서 잉글랜드에 대한 복수극을 시작한다.

그 무렵 스코틀랜드 왕은 알렉산더 3세(King Alexander III)였다. 알렉산더는 20년간 스코틀랜드를 통치하면서 잉글랜드의 침공을 잘 막아냈지만, 1286년 낙마 사고로 급사했다. 불행하게도 그에게는 1명의 공주와 2명의 왕자가 있었는데, 모두 일찍 죽었다. 유일한 후손은 맏딸이 노르웨이 왕에게 시집가서 낳은 마가렛이란 세살배기 외손녀였다.

스코틀랜드 영주들은 알렉산더 3세의 유일한 혈통인 마가렛에게 임금자리를 맡기고 대리인을 내세워 섭정통치를 했다.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가 이 틈을 노렸다. 에드워드 1세는 아들 에드워드 2세를 마가렛과 약혼시켰다. 하지만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4년후인 1290년 어린 마가렛이 노르웨이에서 스코틀랜드로 가던 도중에 사망했다.

스코틀랜드 왕가의 정통 혈통이 끊어지면서 14명의 왕위 후보자가 왕실과 사돈에 팔촌이라고 주장하며 난립했다. 이중 존 베일리얼(John Balliol)이라는 자가 잉글랜드 왕의 지지를 얻어 스코틀랜드 왕에 올랐다. 조건은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를 스코틀랜드 최고영주로 대우해주는 것인데, 이는 사실상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의 속국임을 인정하는 조치였다.

1292년 스코틀랜드 왕에 즉위한 베일리얼은 이내 배신을 때렸다. 잉글랜드 국왕은 베일리얼에게 사사건건 런던에 와서 설명하게 하고, 영토의 일부를 떼어 갔다. 잉글랜드는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면서 병력을 지원하라고도 요구했다.

그러자 스코틀랜드 왕 베일리얼은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와 비밀 동맹을 맺고 잉글랜드 북부를 공격했다. 하지만 패전했다. 1296년 베일리얼은 재위 4년만에 폐위되고 런던탑에 유폐되었다. 잉글랜드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 왕실의 상징인 스콘석(stone of Scone)을 가져가 사실상 스코틀랜드를 병합시켰다.

현재의 스털링 다리 /위키피디아

이제부터 스코틀랜드 민중의 영웅 월레스가 등장할 차례다. 그는 아내를 욕보인 잉글랜드 치안대장을 살해한 이후 산발적인 저항운동을 벌였다. 그는 스코틀랜드 민중의 지지를 얻었다. 월리스와 40인의 동료는 게릴라식 매복작전을 성공하며 에버딘, 퍼스, 글래스고우, 스콘, 던디, 그리고 북부지방을 차례로 해방시켰다.

1397년 8월 월리스는 스털링(Stirling)에서 앤드루 모레이(Andrew Moray)와 연합했다. 결정적인 승리는 그해 9월 11일 스털링 다리 전투(Battle of Stirling Bridge)였다.

스코틀랜드 독립세력은 기사 300명에 불과했고, 5천~6천명이 농민군이었다. 이에 비해 잉글랜드 군은 기사 2천명에 7천명의 정규 보병으로 구성되었다. 양적으로, 질적으로 잉글랜드 군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잉글랜드군은 스털링의 포스강에 놓여 있는 다리를 서둘러 건넜다. 병력의 절반 정도가 다리를 지날 무렵, 스코틀랜드 민병대가 다리를 급습했다. 다리가 기사 두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아 잉글랜드의 기병들이 한꺼번에 지나갈수 없었다. 결국 다리를 사이에 두고 둘로 갈라졌다. 둘로 갈라딘 잉글랜드 병사들을 스코틀랜드 농민군이 각개 격파했다. 지휘관은 살해되어 가죽이 벗겨졌다. 마침내 다리가 무너지면서 다수의 잉글랜드 군이 물에 빠졌다. 물에 빠진 기사들은 무거운 갑옷의 무게 때문에 익사하거나 간신히 물가로 나와도 살해되었다. 잉글랜드 군은 100명의 기사가 죽고 5천명의 보병을 잃었다.

스코틀랜드 에버딘의 월리스 상 /위키피디아

스털링 다리 전투에서 대승을 걷은 후 월리스는 영주들로부터 ‘스코틀랜드의 보호자’(Guardian of Scotland)라는 지위를 얻었다. 이로써 월리스는 스코틀랜드 군과 민병대의 지휘자로서, 런던탑에 갇힌 베일리얼 국왕의 대리통치자 또는 섭정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위세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듬해 1298년 4월 1일 폴커크 전투(Battle of Falkirk)에서 잉글랜드 군에 참패했다. 이 전투에서 스코틀랜드군은 많은 수를 잃었고, 월리스는 겨우 탈출에 성공했지만 그의 명성은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영주들은 월리스에게서 ‘스코틀랜드의 수호자’ 칭호를 박탈하고 잉글랜드 에드워드 1세와 협상을 시도했다.

월리스는 이때부터 도망을 다닌다. 한때 프랑스로 건너가 필리프 4세의 지원을 요청하기도 하고, 스코틀랜드 독립을 호소하기 위해 로마를 다녀오기도 했다.

7년 동안 그는 숨어 지냈다. 그러던중 1305년 8월 5일 글래스고우 근방에서 잉글랜드에 부역하고 있던 스코틀랜드 기사에게 체포되어 잉글랜드 군에 넘겨졌다. 그는 런던으로 이송되어 웨스트민스터에 갇혔다.

웨스트민스터에서 재판을 받는 월리스 /위키피디아

잉글랜드는 그에게 반역죄의 죄명을 쒸웠다. 하지만 월리스는 “나는 한번도 에드워드에게 복종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반역할 수조차 없다”고 항의했다. 그에게 왕은 런던탑에 갇힌 스코틀랜드 국왕 베일리얼이었다.

1305년 8월 23일 월리스는 벌거벗겨진 채 런던 거리에 끌려 다니다가 마침내 사형당했다. 그의 애국적인 독립 투쟁은 스코틀랜드의 민중에게 민요로,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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