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전 2 장 9 절 | 19851013 어둠을 향해 외치라, 베드로전서 2장 9절, 옥한흠 목사 236 개의 가장 정확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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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베드로전서 2장 – 한국컴퓨터선교회

22절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사53:9을 인용한 것으로 예수께서 무죄함과 “궤사” dovlo”(돌로스) “거짓, 교활한 술책”이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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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cm.co.kr

Date Published: 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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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2:9-10, 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목적(찬502장)

어떤 명확한 이유가 없이, 한 사람은 마지막 때에 주께서 데려가시고 나머지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하게 된다고만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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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otfreak.tistory.com

Date Published: 1/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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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백성(벧전 2:9-10) – 유평교회

본문 : 베드로전서 2장 9-10절 설교자 : 조정의. 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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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church.or.kr

Date Published: 11/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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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2

베드로전서 2. … 제 2 장 …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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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8/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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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피플 오늘의말씀_베드로전서2장9절_2017.12.27

갓피플 오늘의말씀_베드로전서2장9절_2017.12.27. 2017년 12월 27일. 14. 310. 4248.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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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gp.godpeople.com

Date Published: 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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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제사장이다(벧전 2:9,10) – 베드로전서 1 Peter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베드로전서 2장 9-10절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선정된 세대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특별한 백성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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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robinbox.net

Date Published: 6/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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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핵심2(베드로전서 2:9~10) (05) 9절 – 유니게

베드로전서 2장 9절 -. Q. 너희는 누구를 가리키나요? A.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우리. Q. 너희는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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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eunice.kr

Date Published: 4/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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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2:9) 왕같은 제사장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 … 베드로 사도는 구약 시편118편과 이사야 28장 16절을 인용하여 오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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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jonahlee.tistory.com

Date Published: 2/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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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2:9-10, 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목적(찬50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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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2:9-10, 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목적(찬502장)

베드로전서 2:9-10, 개역개정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베드로전서 2:9-10, 쉬운성경

9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이며 왕의 제사장입니다. 또 거룩한 나라이며, 하나님께서 홀로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알게 하시려고, 여러분을 어두움 가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셨습니다.

10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전에는 은혜를 몰랐지만, 지금은 은혜를 받고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목적

1. 들어가며

우리는 매일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선택이 없는 날이 없습니다. 그래서 선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짜장을 드시겠습니까, 짬뽕을 드시겠습니까?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 드시겠습니까, 소위 말하는 찍먹 하시겠습니까?

먹는 것 뿐 아니라, 교회도 선택하고 가까운 사람도 선택하고 직장도 선택하고 학교도 선택합니다. 모두 우리가 선택한 결과인 것 같습니다. 이처럼 선택의 연속입니다. 교회로 오시기 위해서도 우체국이 있는 골목으로 오시겠습니까, 아니면 고물상이 있는 좀더 넓은 길로 오시겠습니까? 아니면 복지 센터 옆에 난 길로 오시겠습니까? 모두 선택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우리가 선택하듯, 하나님께서도 선택하십니다. 특별히 신학적으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시는 것을 “하나님의 택하심”이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는 election, 히브리어로는 בחיר, 헬라어로는 ἐκλεκτός라고 하는 “하나님의 택하심”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이란, “어떤 목적을 위하여 사람들을 선택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이 담겨 있는 행동”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하심에는 항상 은혜라는 개념과 목적이라는 개념이 따라 다닙니다.

2. 하나님의 택하심

누가복음 17장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마지막 때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번개가 번쩍이듯이 주님께서도 순식간에 임하실 것이며 마지막 때가 임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 중에는, 이 마지막 때에 두 사람이 한 자리에 누웠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게 되며,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다른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게 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어떤 명확한 이유가 없이, 한 사람은 마지막 때에 주께서 데려가시고 나머지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하게 된다고만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왜인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선택하시는 것을 “하나님의 선택”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버려 두시는 것을 “유기”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의 주권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다는 의미입니다.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재산이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외모가 뛰어난지 공부를 많이 했는지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이며 자유로운 의지로 선택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중에 재산이 한 100억 있으신 분이 있습니까? 내가 영화 배우보다 더 잘생기거나 이쁘다고 생각, 아, 여러분이 계시긴 하네요. ^^ 서울대 나와서 해외 유학 후 박사 학위 가지신 분이 계신가요?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그러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재산보다 외모보다 학벌보다 더 귀한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어 이 자리에 예배 드리고 있으니, 그 무엇보다 행복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임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택하시고 불러 주셨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내가 유기된, 버려둠을 당한 그 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슬프고 괴롭겠습니까? 얼마나 절망적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우르의 번성한 고대 도시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 하브라함을 택하셨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나머지 사람들은 유기, 즉 버려 두셨습니다. 죄악의 온상지였던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건지셨습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의인으로 인정함을 받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역사의 기록 속에 남아 있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인물로 세우셨습니다.

또 최강대국인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셔서 열가지 재앙과 홍해의 기적으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주시고, 애굽은 그대로 유기, 내버려 두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을 특별히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의 다른 사람들과 애굽은 버려 두셨을까요?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 7:6-7, 개역개정)

너무나도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대로 두면 죄악 속에서 혼자 허우적거리다가 빠져 죽을까봐, 너무나도 연약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나를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한 것이 없이 오직 주의 은혜로 택하심을 입었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택하심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아갑시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 15:16, 개역개정)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 세우셨습니다. 어쩌다가 우연히 우리가 얻어 걸린 것이 아닙니다. 태초부터 하나님의 질서 있고 세심한 계획과 섭리가 있었고, 그 섭리에 따라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아주 먼 옛날 하늘에서는 당신을 향한 계획 있었죠 하나님께서 바라보시고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하게 나의 손으로 창조하였노라 내가 너로 인하여 기뻐 하노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이 택하심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서 항상 겸손하게 엎드리며 감사의 찬송을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3. 베드로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바로 이 특별한 택하심의 섭리를 받은 축복된 백성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함께 본문인 9-10절을 다시 같이 읽어 봅시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 2:9-10, 개역개정)

얼마나 귀한 말씀이며 감동스러운 말씀입니까? 말씀을 준비하면서 본문의 말씀 자체에 참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 우리 모두를 특별한 계획과 섭리로 택하셨습니다. 유기, 즉 버려두지 않고 품에 안아 주시고 구원해 주시기로 작정하시고 선택하셨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냥 택하신 것이 아니라, 특별한 존재로 택하셨다고 베드로는 말합니다. 우리를 어떤 특별한 존재로 택하셨습니까?

택하신 족속이라 말합니다. 이 말은, 혈통을 말하는데, 우리가 유대인처럼 아브라함의 육적인 혈통이 아닌,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주와 하나되는 혈통, 예수와 같은 피를 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뜻입니다.

왕같은 제사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 말은 왕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또 제사장으로서 영원히 하나님 앞에 서서 영광과 찬송을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택함 받은 우리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베드로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나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특별히 구별된 영적 이스라엘이 바로 우리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서 열방 가운데 우리를 구별하여 영적 이스라엘로 세우셨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는 말은, 더이상 죄의 소유가 아닌 창조주 하나님의 소유가 된 존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가로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약속의 백성이요 구원 받은 백성,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백성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신명기 33:29를 통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 33:29. 개역개정)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섭리로 택하신 행복한 사람임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를 택하신 위대하신 하나님

4.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택하심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이란, “어떤 목적을 위하여 사람들을 선택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이 담겨 있는 행동”이라고 처음에 말씀 드렸는데 기억하시죠?

여기에서 어떤 목적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택하셨다는 말입니다. 첫째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둘째, 우리를 택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한 번 더 같이 읽겠습니다. 9-10절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 2:9-10, 개역개정)

왜 하나님의 백성으로 족속으로 왕같은 제사장으로 거룩한 나라로 소유된 백성으로 택하셨다고 말씀합니까?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하나님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이신 예수님의 아름다운 덕, 즉 복음을 선포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말합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위대한 성인이나 위인도, 소위 말하는 석가모니나 각종 신들도 하지 못한, 기이한 덕, 탁월한 일, 즉 죄로부터의 구원을 주신 예수님을 선포하고 알리기 위해 우리를 택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목적입니다.

예수가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누구에게 선포해야 할까요? 아직 믿지 않는 우리 가족에게, 직장 동료에게, 이웃에게, 우리 자녀들에게 선포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선포해야 합니다.

그 영혼을 놓고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택하여 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말보다도 사랑과 섬김의 행동으로 예수를 전해야 합니다. 허리에 수건을 동이시고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처럼, 사랑과 섬김을 통하여 감동 감화로 복음을 전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목적이요 우리의 존재의 이유입니다.

5.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성도 여러분!

놀라운 섭리로 우리를 먼저 구원하시고, 이제는 아직 구원에 이르지 못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택하심의 목적을 기억하며, 이번 한 주간에도 나의 기도와 행동으로 먼저 복음을 전하여, 마침내 믿지 않는 가족이나 직장동료, 이웃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전하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길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택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의 택하심으로 구원을 받은 우리가 이제는 아직 구원 받지 못한 이들에게 복음을 행동으로 전하고자 합니다. 우리에게 용기와 믿음과 지혜를 주셔서, 적절하게 올바르게 사랑으로 복음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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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백성(벧전 2:9-10)

주제 : 하나님의 백성

본문 : 베드로전서 2장 9-10절

설교자 : 조정의

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오늘 본문 말씀은 ‘왜 그리스도여야 하는가’라는 주제에 대한 세 번째 말씀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버림받았으나 하나님이 선택하신 산돌이신 예수 그리스도(2:4-5)에 대해서 말씀드렸고, 그분을 거절한 자들에게 주님은 부딪치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될 것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2:6-8). 오늘은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그 위에 세우심을 받은 자들은 어떤 목적으로 부르심을 받았는지, 그 선택의 결과는 어떠한지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본문 말씀의 첫 단어는 “그러나”입니다. 이것은 위대한 반전이고 앞의 내용과 놀라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말씀은 에베소서 2:4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고 공중의 권세잡은 자를 따르며 육체의 소욕에 따라 살던 불순종의 자녀였던 우리라고 말하고,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어떠한지를 말씀합니다. 이것은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앞 구절에서(8절) 예수님은 그분을 거절한 사람에게 부딪치는 돌과 넘어지는 바위가 되셨습니다. 즉, 심판자 되신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 구절에(9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선택받은 자들입니다. 여기서 “너희”는 이 편지의 수신자들, 소아시아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특별히 믿는 자들이고(7절) 구원받은 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산돌이신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집과 같은 자들입니다(5절). 진실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이 앞에서 언급한 ‘심판을 받을 사람’과 어떤 대조를 이루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과 교회로서 어떤 부르심을 받았는지 알고 싶다면 이 말씀이 그에 대한 분명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어떤 모습으로 부르셨는지 구체적으로 나타나있습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사용한 표현들은 그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를 때 사용한 표현들입니다. 신약성경에 와서 이와 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신약의 교회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실 때에는 특별한 모습을 기대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우심을 입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인은 “택하신 족속”입니다. ‘족속’이라는 것은 어떤 민족을 말합니다. 이들은 같은 계보를 가지고 있고 같은 조상, 같은 유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같은 조상 아브라함이 있었고 같은 족보를 공유하고 있었으며 같은 유업(다윗의 왕좌를 통해 회복될 것)을 기대하고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떠합니까. 교회도 같은 족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나름의 족보를 가지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난 우리는 새 아담, 예수 그리스도라는 같은 조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족보에 들어가게 되는 권세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부르심의 한 소망을 가지고 썩지 않는 유업을 기다리는 한 족속이 되었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신 10:15).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이 뭔가 열심히 노력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셨기에 하나님의 족속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셨기에 작고 연약한 그들이 하나님의 족속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족속이 된 것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 해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택하심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어떤 신을 섬기거나 예배하는 일을 맡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실 때 제사장 나라로 부르셨습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출 19:6).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사 61:5). 다른 어떤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목적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아버지가 이방신을 섬기고 있을 때 그를 택하셔서 부르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이외의 수많은 우상에 대하여 ‘죽은 신’, ‘말 못하는 신’, ‘살아있지 않고 거짓된 신’이라고 말합니다. 오늘날에도 우상을 섬기는 많은 사람들을 봅니다. ‘나는 종교가 없다’하더라도 스스로를 신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 신, 유일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이었고 오늘날은 교회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신이 참 왕이시기에 “왕 같은” 제사장이고, 우리가 결국 왕이신 하나님과 함께 왕노릇 할 것이기 때문에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계 1:6). 썩어질 수많은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 참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씀이 교회의 모든 사람이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켰을 때 상황은 교황과 성직자가 없으면 하나님께 예배 드릴 수 없다고 말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만인 제사장’이라고 하여 성직자나 교황 없이도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하면서 이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교회 안에 직분이 필요 없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다만 교회 전체가 제사장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 개개인을 제사장으로 삼으시지는 않았습니다. 아론과 레위 지파를 통해 제사장 직분을 맡기신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교회 역시 제사장 나라로 부르셨지만 그 교회 안에 감독과 교사, 여러 일꾼들을 세우시고 일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나라”입니다. ‘나라’의 특징은, 같은 법이 존재하고 문화와 관습이 비슷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나라로 부르실 때 그들에게 법을 주셨습니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신 7:6). 자기 백성을 거룩하게 구별하기 위해 주신 법이 율법입니다. “거룩한”의 의미는 ‘특별히 구별된’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외에 수많은 백성들이 있었지만 이들을 특별히 따로 떼어서 구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도덕적으로 거룩한 삶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들을 불러내신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6). 교회는 당연히 거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따로 구별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과 가치관이 적용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함을 요구하시기 때문이며 그분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땅을 내 소유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저 내 집이라고 말하면 내 것이 될까요. 무엇을 내 소유로 하려면 돈을 주고 사야합니다. 그래서 “소유된”이라는 말씀은 값을 주고 샀다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하나님이 값을 지불하고 그 백성들을 자신의 것으로 사신 것입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출 19:5).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말 3:17).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소유였습니다. 교회 역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교회를 사셨습니다. 우리는 내 시간, 내 인생, 내가 누리고 싶은 것, 내 욕심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조상은 예수 그리스도요, 우리의 기업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고, 다른 신이 아니라 참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에 의해 구별된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나라이고 피 값으로 사신 하나님의 소유된 교회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8절에 있는 자들과 비교해보겠습니다. 그들은 사단의 족속이고 어둠의 족속이며 멸망의 기업을 이어받을 자입니다. 그들은 공중에 권세 잡은 자를 따르고 사단과 자신의 욕심을 섬기는 자들입니다(엡 2). 하나님에 의해 구별된 자들도 아니고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도 아닙니다. 이들은 영원한 멸망으로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9절의 사람들은 이와 반대로 하나님의 영광의 기업을 이어받을 자입니다. 우리가 8절에서 9절로 넘어오게 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성소의 휘장을 담대히 지나 하나님께 직접 예배 드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하게 씻김을 받고 그 피로 사신 바 되어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멸망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왜 반드시 그리스도여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러한 모습으로 부르신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9절). 우리를 이렇게 놀라운 모습으로 변화시키신 이유는, “선포”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 한 번 기록되었는데 ‘밖으로’와 ‘알리다’의 합성어입니다. 우리가 아는 이 놀라운 사실을 밖으로 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놀라운 것들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알려주는 것을 말합니다. 자랑할 내용은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졌다는 것은 구원의 경험을 표현할 때 자주 사용됩니다. 우리를 어둠 가운데 있었는데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창세기 1장을 기억하게 합니다. 칠흙 같은 어둠, 죽음과 같은 세상에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무존재 상태의 세상에 빛이 들어온 것입니다. 또한 어둠과 빛을 이야기할 때, 날 때부터 소경인 장님을 눈뜨게 하시던 주님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죽은 상태에서 생명을 얻은 것이고,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된 것입니다. 거짓이 가득한 세상에서 참 진리로 나아가게 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신 것이 빛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교회는 정치적인 의견을 피력하거나 환경을 지키기 위해, 가난한 사람을 돌보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게 하신 하나님을 세상에 전파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10절). 아마도 소아시아 성도들이 이방인들이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하는 구절입니다. 이 말씀의 궁극적인 의미는 영적인 변화입니다. 영원한 멸망으로 가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모든 사람들은 8절에서 말하는 영원한 멸망으로 가던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기초 되시는 분, 하나님이 선택하신 분, 그분 위에 우리가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거짓으로 가득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말하면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 천주교는 재림이 없다고 말하고 동성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합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만 구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가장 위험한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복음을 미워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메시지가 얼마나 가치가 있고 중요한 말씀인지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은 복음을 무너뜨리려고 하지만 예수님 스스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이 말씀을 4글자로 하면 ‘예수영생, 불신진노’입니다. 너무 과한 메시지인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 간단하고 명료한 메시지는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복음의 핵심입니다.

베드로전서 2

산 돌과 하나님의 백성

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ㄱ)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ㄴ)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ㄷ)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갓피플 오늘의말씀_베드로전서2장9절_2017.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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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친구를 우연히 만나 전도를 하게된 신학생. 하지만 친구가 허리를 다치게 된다. 남자는 친구가 하나님을 만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친구를 위해 치유기도를 시작한다….

[설교] 나는 제사장이다(벧전 2:9,10)

2014.04.04. 갈보리크리스천아카데미 채플설교

나는 제사장이다

이승선

우리 다함께 일어나서 하나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베드로전서 2장 9-10절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선정된 세대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특별한 백성이니 이것은 너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께 대한 찬양을 너희가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지나간 때에는 백성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긍휼을 얻지 못하였으나 이제는 긍휼을 얻었느니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나는 제사장이다”입니다. 우리 함께 따라해 보실까요? “나는 제사장이다.” 아멘.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서론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는 누구인가?”라고 스스로 묻는 질문에 스스로 어떻게 답하느냐가 아주 중요합니다. 축구선수 박지성이 과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에 소속되어 있을 때, 한 기자가 인터뷰를 하면서, 경기에 나갈 때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박지성 선수는 망설임 없이, “그라운드에 나갈 때는 언제나 나 자신이 최고의 선수라고 생각하면서 나간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세게 최고의 선수들과 맞설 때에도 전혀 위축되거나 물러서지 않는 플레이를 하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우리가 만약 자기 자신에 대해서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는 정말 형편없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나 자신에 대해서 “나는 사랑을 받고 있는 행복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정말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것은 단지 머릿속의 생각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들의 삶 속에 실제적인 변화를 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에서, 성경은 우리를 다음과 같이 부르고 있습니다. “너희는 선정된 세대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특별한 백성이다.”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힘입어 이렇게 선생님과 함께 고백해 봅시다. “나는 선택된 세대이다.”, “나는 왕가의 제사장이다.”, “나는 거룩한 민족이다.”, “나는 특별한 백성이다.” 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나에 대하여 부르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아멘!

우리 함께 10절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너희가 지나간 때에는 백성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긍휼을 얻지 못하였으나 이제는 긍휼을 얻었느니라.

이 말씀처럼, 우리가 처음부터 하나님의 백성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놀라운 긍휼과 은혜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는 선택된 세대가 되었고, 왕가의 제사장이 되었으며, 거룩한 민족이 되었고, 특별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부터 이번 주말 만이라도, 매일 아침에 이렇게 외치면서 하루를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선택된 세대이다. 나는 왕가의 제사장이다. 나는 거룩한 민족이다. 나는 특별한 백성이다. 원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이렇게 되었다. 나는 제사장이다.”

제사장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 우리는 4가지 표현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선정된 세대, 왕가의 제사장, 거룩한 민족, 특별한 백성, 이렇게 4가지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특별히 말씀의 제목과 같이 “나는 제사장이다.”라는 부분을 집중해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우리 함께 베드로전서 2장 5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너희도 살아 있는 돌들로서 영적 집으로 건축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도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제사장이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자격도 없고, 오히려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기에 마땅했던 자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의 십자가 보혈과 부활을 통해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제사장이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희생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구약의 제사장과 달리 눈에 보이는 양들과 염소들의 제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제사장입니다. 영적 희생물이란 우리의 감사와 찬양과 섬김과 봉사와 희생과 우리들의 시간과 에너지, 우리의 힘과 마음과 생각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는 어떤 희생물을 드려야 합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영적 희생물을 드려야 합니다. 나 스스로 만족스러운 희생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영적 희생물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희생물이라는 것은, 우리 자신의 육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님을 통하여, 주님의 생명을 통하여 흘러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된 것을 의미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위한 용도로 구별되어진 것이 바로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기 위하여 구별되어 있어야 하고, 우리의 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용도로 구별되어 있어야 하고, 우리의 입은 오직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형제자매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권면하고, 진리의 말씀을 말하기 위하여 구별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손은 주님을 섬기는 일에 구별되어 있어야 하고, 우리의 발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장소로 나아가기 위하여 구별되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바로 이러한 제사장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되라고 노력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말씀에 따라서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제사장이다.”

희생물

제사장의 역할은 바로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과연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어떤 헌물을 드려야 할지 한 번 말씀을 통해 4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 희생물로, 우리 함께 히브리서 13장 15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계속해서 찬양의 희생을 하나님께 드리자. 그것은 곧 그분의 이름에 감사를 드리는 우리 입술의 열매니라.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계속해서 찬양의 희생을 드리자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그분의 이름에 감사를 드리는 입술의 열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주님의 이름에 감사를 드려야 합니까? 그분께서 우리를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를 걸고 우리를 변함없이 지켜주시며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그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찬양의 희생물을 드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숨을 쉬는 것이 은혜이고, 건강한 팔과 다리를 가진 것이 은혜입니다. 오늘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이 은혜이고, 친구들과 사랑하는 선생님과 즐겁게 대화하고 생활할 수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받을 자격이 있어서 받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입에서는 늘 찬양의 희생물이 흘러 넘쳐야 합니다. 우리는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려야 하는데, 무엇보다 찬양의 희생물을 드려야 합니다. 찬양의 희생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오늘의 우리의 존재의 목적이며, 살아 있는 이유입니다.

또한 두 번째 희생물로, 우리 함께 마가복음 12장 33절을 보시겠습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각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자기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를 드리는 번제 헌물과 희생물을 다 합친 것보다 나으니이다, 하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상의 희생물은 바로 마음을 다하고 지각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희생물을 원하십니다. 겉으로 어떤 많은 일들을 하거나, 그럴싸한 겉모습을 가지는 것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진심어린 사랑과 마음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 드려야 하는 것은 어떤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돈을 들여서 사야하는 것도 아닙니다. 남들은 할 수 없는 어떤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다만 우리의 사랑과 마음을 원하십니다.

세 번째로 우리 함께 시편 51편 17절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희생물은 상한 영이라. 오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이 말씀은 다윗이 범죄한 이후에 기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희생물은 바로 상한 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상한 영이란 겸손하고 하나님 앞에서 통회하며, 진심으로 돌이키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늘 넘어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쉽게 넘어지고 실패하는 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러할 때에라도 우리는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상한 영입니다. 진심으로 돌이키고 회개하는 마음을 주님께서는 결코 물리치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넘어졌느냐, 실패하였느냐가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넘어지지 않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넘어진 이후에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한 영, 통회하는 마음을 희생물로 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함께 마지막 희생물로 로마서 12장 1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너희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 그것이 너희의 합당한 섬김이니라.

마지막으로 우리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희생물은 바로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살아 있는 희생물로 받기를 원하십니다. 과거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드려지는 모든 희생물은 죽여서 피를 쏟고 각을 떠 부위별로 잘라내어 하나님 앞에 불로 태웠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의 몸을 살아 있는 희생물로 받기를 원하십니다.

살아 있는 희생물이라는 것은, 우리가 오늘 살아 있지만, 마치 제단 위에서 불타는 제물처럼,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하여 하나님 앞에 완전히 드려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몸을 희생물로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몸을 드린다는 것은, 우리의 눈, 코, 입, 귀, 손과 발을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도록 내어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영적 희생물로 드리기를 원합니다.

정리

우리 함께 말씀을 정리하면서, 계시록 5장 10절을 보시겠습니다.

또 우리 하나님을 위해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으니 우리가 땅에서 통치하리이다, 하더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셧습니다. 우리는 왕가의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겉모습은 선생님이고, 학생일지라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영적 희생물을 드려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제사장으로, 하나님께 넘치는 희생물을 감사로 드리기 원합니다. 찬양과 사랑의 마음과 상한 영과 우리의 몸을 온전히 드리기 원합니다.

(베드로전서2:9) 왕같은 제사장

(베드로전서2:9) 왕같은 제사장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인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앞에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주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이라’ 말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택함을 받은 거룩한 자녀로서 하나님의 기업을 받기까지 온전히 순종하라 권면하며 그 방법으로 항상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베드로전서 2장입니다. 2장에는 베드로 사도만이 사용하는 특별한 언어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바로 산돌’이라는 단어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구약 시편118편과 이사야 28장 16절을 인용하여 오늘도 우리 가운데 살아계신 주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1장 서두에서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러므로’라는 말은 1장의 전체적인 주제를 언급한 것으로 새로운 내용을 전개하는 접속사입니다. 또한 여기서 ‘버리라’는 헬라어는 ‘옷을 벗다(laying aside) 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 말은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에게 유혹을 당할 때 옷을 벗어버린 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의 의미는 우리의 인격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는 악독과 궤휼로 가득차던 속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만 놓고 생각해보드라도 인생이 이처럼 더럽고 추잡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한 자녀의 형상을 본받고 있습니다만 이 땅의 모든 인간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더럽고 악한 심령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그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햐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롬3:10-18)기록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2절에서 갓난 아이들과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하였습니다. 여기서 베드로 사도는 성도의 성장을 어린아이를 양육하는 일에 비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신령한 젖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기 때문에 어린아이와 같이 그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린아이를 생각할 때 정말 천사가 따로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어미의 사랑의 젖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말과 세상을 배우는 동안 점점 그 인격은 천사의 틀에서 벗어나고 맙니다.

바울은 히브리서에서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벌써 선생이 되었어야 할텐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먹을 자가 되었도다”하였습니다.

바울의 염려는 성장하지 않는 성도들에게 촛점을 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베드로 사도는 성장하지못한 그 원인은 바로 구원과 관계 된 것으로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먹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우리 교회들이 다시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수를 믿음으로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아이들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문제는 오랜세월 교회생활 속에서도 성도들이 성장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성도들을 향하여 ‘너희를 기를 때에 신령한 자들과 같이 할 수 없어서 어린아이들과 같이 젖으로 하였다’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 다시 태어난 어린 아이들인 것입니다. 모두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먹고 자라야 할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3절에서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하였습니다.

*산돌되신 머릿돌

베드로 사도는 4절에서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산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의 상태를 역설법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자 하여 산돌이신 하나님을 저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께서 하루는 요즘 미국에서 들어와 분당 수지 인근에서 히트를 치고 있다는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들려 주었습니다. 참으로 고운 목소리와 인물이 출중한 사십대 중반의 목사로서 많은 미사려구를 사용하며 말끝마다 영어를 사용하는데 그가 사용하는 영어와 미사려구는 도대체 왜 사용하는 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설교를 듣고 있는 사람들은 아멘 아멘을 하며 마치 그를 자기 신랑처럼 바라 보고 있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5절에서 “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하였습니다. 여기서 신령한 집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거서 베드로는 성도들이 모두 친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제사장이 되기를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께서 십자가 위에 고난을 받으실 때 예루살렘의 성전의 지성소를 가린 휘장이 둘로 쪼개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까지 성도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아론지손 중에서 택함을 받은 제사장이 짐승의 피를 갖고 들어 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대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으로 산제사를 드려 단번에 우리의 죄를 소멸하셨기 때문에 더이상 지성소를 가리는 휘장은 필요없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친히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6절에는 “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28장 16절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여기서 모퉁이 돌이란 집을 지을 때 그 집을 지탱해 주는 기초 춧춧돌을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 한 것으로 예수께서 이 땅에 세워진 하나님의 집의 머리돌 즉 추춧돌이심을 언급한 것입니다. 바울은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지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2:20) 증거하였습니다.

이제 베드로 사도는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비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한 것이라”

이 말씀은 선택의 주권이 각 사람에게 있음을 의미한 것입니다. 이 상황은 마치 요철(凹凸)과 같아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부딪히는 돌이나 거치는 돌이라도 우리에게는 구원의 반석이 되신 것입니다. 여기서 부딪히는 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대적하는 자들을 의미하며 ‘거치는 반석’이란 그의 말씀으로 시험을 받아 넘어지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거룩한 나라 왕같은 제사장

베드로 사도는 9절에서 ”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인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기록 하였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유대인에게 한 말씀입니다만 지금 이글의 수신자는 우리와 같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선택하여 믿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따라서 베드로는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제사장이라는 입장을 재조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나아가던가 또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제사장이 있어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율법의 가르침이였고 또 그들은 대제사장의 예배 인도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대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지성소로 들어 갈 수 있도록 휘장을 갈라 주셨으므로 우리는 모두 제사장과 같이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 즉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제 더이상 밖에서 죄에 두려워하며 대제사장의 중보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두가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으신 것은 ‘빛 가운데로 들어 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증언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복음전도자의 역활을 말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원래부터 이방을 비추는 하나님의 빛이였습니다. 따라서 믿는 우리는 세상을 비추는 빛인 것입니다.

10절에는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기록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로 얼마나 긍지를 갖게 하는 말씀입니까? 바울은 보라 너희가 새 것이 되었도가 하였습니다.

* 제사장의 삶의 도리(11-17)

이제 베드로 사도는 택함 받은 제사장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도리를 설명하여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하였습니다. 먼저 주를 믿는 우리는 모두 이 땅의 나그네됨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세상은 이제 잠시 후면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베드로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하였습니다. 참으로 이것은 매우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인간은 모두 그 육체된 본성의 욕정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우기 세상은 날이갈수록 우리의 육체를 향하여 달려 오고 있어 우리가 잠시 눈을 감은 사이에 우리의 육체는 죄 속으로 빠져 들고 맙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육체의 정욕과 우리의 영혼과의 문제가 직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에 우리 안에 그의 거룩한 성령을 주셔서 이제 우리 자신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계신 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너희는 음행을 피하라 하였고 너희의 몸은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산 하나님의 성전이라 하였습니다. 또한 바울은 모든 죄는 몸밖에 있으나 음행은 몸 안에서 짓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육체대로 살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를 제사장으로 세우신 일에 대하여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 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하였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문제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선한 생활을 하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매주 교회에 나아가 기도하며 주를 찬양하며 예베를 드리고 있습니다만 그들이 세상 가운데 빛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세상사람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주의 영광의 날에 그 앞에 나아갈 것을 믿고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다 반듯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아가 선악간에 행한 일을 판단 받는다 기록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성도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고민하고 지금으로부터 무엇을 다시할 것인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제도에 대하여(13-17)

이제 베드로 사도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권면합니다. 베드로가 지금 이러한 말을 우리에게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의 세상사는 모습이 그만큼 잘못되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하였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이미 바울 사도를 통하여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모든 권세에게 복종하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잘못하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권세에 대하여 그 세상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대항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세상에 임할 박해를 염두에 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터키나 북유럽과 소련 그리고 중국이나 북한 동포들을 생각하면 처음 그들은 우리와 같이 자유롭게 예수를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민족들이 자유를 버리고 체제의 이념을 선택함으로 이제는 예수를 믿지 못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당시 로마는 그리스도인들을 심히 박해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 갈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때에 잘못하면 그리스도인들이 떼를 지어 대항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세상의 제도에 순복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생명이 오직 주께 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유함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자유에 대하여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것도 자유라 말하고 더러운 일도 자유라고 말합니다. 요즘 우리나라에도 시대적 역행을 하는 사례가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자유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망종이며 자유의 훼방인 것입니다.

세번째로 베드로는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 하며 왕을 공경하라’하였습니다. 그 당시 네로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을 무참히 죽였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을 마음놓고 살아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왕을 공경하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왕의 권세를 주께서 다스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기록하였습니다.

* 그리스도인의 생활질서(18-25)

네번째로 베드로 사도는 범사에 주인에게 순복하고 까다로운 자에게도 그리하라 하였습니다. 그당시는 로마시민 보다 노예가 더 많던 시절입니다. 더구나 성도들의 많은 사람들이 노예 출신이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노사간의 균형이 무너진 것입니다. 물론 사주들의 지나친 횡포도 있지만 그렇다고 오늘날처럼 노사분규가 일어난다면 결국은 소경 제 닭 잡아 먹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애메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우니라”하였습니다. 참으로 얼마나 숭고한 말씀입니까? 우리가 죄를 짓고 매를 맞아도 참아야 하는데 선한 일을 하다가 매를 맞는다면 하나님 앞에 얼마나 떳떳하겠습니까?

끝으로 베드로 사도는 주께서 죄없으신 분으로 죄인이되어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것은 우리에게 본이 되어 우리로 그를 따라 오게 하심이라 증거하며 “조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기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며”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주께서 잡히시던 날 베드로는 말고의 귀를 베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칼을 거두게 하시고 그의 귀를 고쳐 주셨습니다. 주께서 받으신 고난은 그것을 피하실 능력이 없으셨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제 위대한 증거로 우리를 깨우칩니다. ”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칙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하였습니다.

먼저 그의 죽으심은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심입니다. 이것은 더이상 죄에 속하지 않고 우리의 신분이 의인으로 전환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가 채칙을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영혼의 모든 질고와 고통이 해결된 것을 말합니다. 이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가 되어 우리는 그의 평안에 거하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 왔느니라”하였습니다. 양은 좋은 꼴과 물을 먹이고 짐승으로부터 지켜 줄 참 목자가 필요합니다. 양들은 스스로 살아 갈 수 없는 가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지키는 목자 안에 있음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 누구도 우리를 그의 손에서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 왔다’는 말씀은 다시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자유는 그의 감독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길잃은 양으로 목자를 만난 것이지 아직도 우리는 그의 보살핌 속에 있는 양들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감독이 필요합니다. 아직도 우리를 헤치려는 영혼의 파괴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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