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주제를 찾고 있습니까 “베드로 와 고넬료 – 베드로와고넬료“? 다음 카테고리의 웹사이트 https://ppa.pilgrimjournalist.com 에서 귀하의 모든 질문에 답변해 드립니다: ppa.pilgrimjournalist.com/blog. 바로 아래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작성자 Sudeuk Jung 이(가) 작성한 기사에는 조회수 2,276회 및 좋아요 22개 개의 좋아요가 있습니다.
Table of Contents
베드로 와 고넬료 주제에 대한 동영상 보기
여기에서 이 주제에 대한 비디오를 시청하십시오. 주의 깊게 살펴보고 읽고 있는 내용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세요!
d여기에서 베드로와고넬료 – 베드로 와 고넬료 주제에 대한 세부정보를 참조하세요
베드로 와 고넬료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고넬료와 베드로의 환상(행 10:1~16) – 사도행전 큐티(수정)
오늘의 말씀 : 고넬료와 베드로의 환상(사도행전 10:1~16). * 본문요약. 백부장 고넬료가 제 9시(오후 3시) 기도 시간에 환상 중에 천사를 만납니다.
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11/27/2022
View: 4427
[가정예배 365-4월 17일] 고넬료와 베드로의 신앙 – 국민일보
기도 : 하나님 저와 우리 가족이 고넬료와 베드로처럼 겸손하고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최고로 존중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Source: m.kmib.co.kr
Date Published: 9/5/2021
View: 4304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 – 네이버 블로그
사도행전 10장에는 베드로와 고넬료라는 인물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가 쓰여있다. 위 인용문에 따르면 베드로와 고넬료는 거의 운명적으로 조우하는 …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9/29/2022
View: 9016
고넬료와 베드로(사도행전 10:1-23) < 목회 현장 ... - 크리스찬저널
고넬료와 베드로의 일화는 하나님의 사랑이 특정인(당시는 유대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과 백성들에게 향한 것임을 나타내는 말씀 …
Source: www.kcjlogos.org
Date Published: 3/4/2022
View: 6458
베드로와 고넬료 (행 10:24-38) – 기멀전
베드로는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 나라 공안 당국의 감시를 받으며 조심스럽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갈릴리 사람입니다. 고넬료는 로마 사람으로 …
Source: godpeople.or.kr
Date Published: 6/6/2021
View: 4436
베드로의 환상이해
어떻게 베드로와 고넬료가 만나는가를 지금 공부하고 있습니다. …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게 하고 또한 고넬료에게 천사를 통하여 분명히 말씀하게 했습니다.
Source: tbc10.tripod.com
Date Published: 6/26/2021
View: 4838
고넬료와 베드로(행10:34-43) 20180121 > 설교문 | 예수사랑교회
그 동안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어 오던 고넬료와 그의 가족들이었다. 그러나 성령을 모르던 저들 가족과 친척들과 친구들이 함께 모여 베드로 사도의 말씀을 듣던 중에 성령 …
Source: www.jsmc.kr
Date Published: 6/2/2022
View: 4399
20210829 사도행전 강해 (17) 고넬료와 베드로의 기도 (사도 …
고넬료와 베드로는 전혀 모르는 사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둘을 묶어 주셨습니다. 고넬료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줄 전도자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
Source: cpcgl.org
Date Published: 3/21/2022
View: 8337
주제와 관련된 이미지 베드로 와 고넬료
주제와 관련된 더 많은 사진을 참조하십시오 베드로와고넬료. 댓글에서 더 많은 관련 이미지를 보거나 필요한 경우 더 많은 관련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베드로 와 고넬료
- Author: Sudeuk Jung
- Views: 조회수 2,276회
- Likes: 좋아요 22개
- Date Published: 2018. 1. 7.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tbai98jCFI8
고넬료와 베드로의 환상(행 10:1~16)
* 오늘의 말씀 : 고넬료와 베드로의 환상(사도행전 10:1~16)
* 본문요약
백부장 고넬료가 제 9시(오후 3시) 기도 시간에 환상 중에 천사를 만납니다.
천사는 고넬료에게 욥바의 피장 시몬의 집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라고 명합니다.
고넬료는 즉시 하인 둘과 경건한 부하 한 명을 베드로에게 보냅니다.
그들이 도착할 무렵 베드로 역시 정오 기도를 하다가 환상을 봅니다.
베드로가 환상 중에 하늘에서부터 각종 짐승들이 담긴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는데,
하늘에서 이것을 잡아먹으라고 명하십니다. 베드로가 이런 부정한 것을 먹어본 일이 없다고 하자,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 하지 말라는 음성이 들려옵니다.
찬 양 : 197장(새 263) 이 세상 험하고
219장(새 540)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 본문해설
1. 고넬료가 환상 중에 천사를 만남(1~8절)
1) 가이사랴 에 고넬료 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이탈리아 부대’라 하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2) 그는 경건한 사람으로 온 가족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유대 백성들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3) 어느 날 제 9 시 (오후 3시)쯤 그는 환상 중에
하나님의 천사를 밝히(분명히, 똑똑히, 확실히) 보았습니다.
그가 보니 천사가 자기에게로 들어와서 “고넬료야!”하고 부르는 것입니다.
4) 고넬료가 천사를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하여 물었습니다.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서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바 되었으니
5) 지금 네가 사람들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라고도 하는 시몬을 데려 오너라.
6) 그는 피장(가죽 제품을 만드는 자) 시몬의 집에 묵고 있으니,
그 집은 바닷가에 있느니라”하였습니다.
7) 이 말을 하고 천사가 떠나자
고넬료는 하인 두 사람과 자기 부하 가운데서 경건한 병사 하나를 불러서
8) 모든 일을 다 이야기해주고, 그들을 욥바로 보냈습니다.
– 가이사랴(1절) :
가이사랴는 이미 빌립 집사가 먼저 선교한 곳입니다(사도행전 8:40).
가이사랴는 예루살렘에서 104km 떨어진 곳으로,
총독 관저와 로마군 사령부가 주둔해 있는 지중해 연안의 최대 항구도시입니다.
– 고넬료(1절) :
가이사랴에는 5대의 로마 군대가 있었는데, 그 중 4대는 본토인이었고 1대만 로마인 부대입니다.
고넬료는 점령군인 로마군의 고급장교였습니다.
고넬료는 자신뿐 아니라 온 가족이 경건한 신앙 가족이었고,
유대인들에게도 구제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 제 9시, 오후 3시(3절) :
제 9시(오후 3시)는 유대인의 기도시간입니다.
그런데 로마 점령군 장교인 고넬료가 유대인의 기도시간을 지켜서 오후 3시에 기도를 합니다.
–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 되어서(4절) : 아나바이노
‘상달되다’에 해당하는 ‘아나바이노’는 ‘올라가다, 오르다, 일어나다’라는 뜻으로,
고넬료의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에까지 올라갔음을 의미합니다.
기도가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고넬료의 신앙과 행실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2. 베드로가 본 환상(9~16절)
9) 이튿날 저들이 길을 가다가 욥바 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베드로는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갔는데, 그 때가 제 6시(낮 12시)쯤이었습니다.
10) 그는 배가 고파 무엇을 좀 먹었으면 했는데,
사람들이 음식을 장만하는 동안 황홀경에 빠져 들었습니다.
11) 그는 하늘이 열리고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퉁이가 끈에 매어 땅으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12) 그 안에는 온갖 종류의 네 발 가진 짐승들과 땅에 기어 다니는 것들과
공중의 새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13) 그때 “베드로야 일어나서 이것들을 잡아먹으라”하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14) 베드로가 대답하였습니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제가 한 번도 먹은 적이 없나이다.”
15) 그러자 두 번째로 음성이 다시 들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
16) 이와 같은 말이 세 번 오고 간 뒤에,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 가이사랴에서 욥바까지(9절) :
가이사랴에서 욥바까지는 약 50km쯤 떨어져 있어서
장정이 걸어서 10시간 걸리는 거리입니다.
– 그는 배가 고파(10절) :
유대인들은 보통 하루 세 번 식사를 하는데, 아침식사는 아침 기도시간인 9시 기도를 마친 후에 하고,
점심 기도는 정오(낮 12시)에 하고, 저녁 식사는 해질 무렵에 합니다.
그런데 12시 정도 기도시간에 베드로가 배가 고프다고 했으니,
베드로는 아침 기도시간에서부터 12시까지 식사도 거른 채 기도에 열중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 황홀경에 빠져(10절) : 엑스타시스
‘비몽사몽간(황홀경)’에 해당하는‘엑스타시스’는
‘무아지경, 비몽사몽, 환상, 황홀경’등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를 경험하는 신비적 초월적 심리상태를 의미합니다.
* 묵상 point
1. 항상 기도하는 시간에 환상을 본 고넬료와 베드로
1) 공식적으로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진 최초의 사건 : 로마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1절)
그동안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진 일들이 몇 번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진 최초의 사건은
베드로와 고넬료와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을 방문한 이 일로 예루살렘 총회가 열렸고,
그 총회에서 공식적으로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증거하기로 결의를 했기 때문입니다.
2) 베드로를 이방인 고넬료의 집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예루살렘 총회에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거하기로 결의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유대인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유대인들의 이 고집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계속 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하여 이방인 중에서 가장 경건한 사람 고넬료와
예루살렘 사도들의 대표자인 베드로를 서로 만나게 함으로서 이 일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사도행전 11장까지 그 과정을 보게 될 것입니다.
2. 항상 기도하는 시간에 환상을 본 고넬료와 베드로
1)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 고넬료와 베드로(2~3, 9~10절)
이 만남은 고넬료와 베드로가 각각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고넬료가 제 9시(오후 3시) 기도시간에 환상을 봅니다.
환상 중에 고넬료는 천사가 자기에게 오는 것을 봅니다.
천사가 고넬료에게 그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 되었다고 말하고는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합니다.
고넬료는 즉시 하인 둘과 경건한 병사 하나를 욥바에 보냅니다.
2) 베드로에게 고넬료를 찾아가라고 명령하시는 예수님(13~16절)
그들이 욥바에 도착할 즈음 베드로 역시 정오(낮 12시) 기도시간에
지붕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다가 환상을 봅니다.
베드로는 환상 중에 하늘에서 큰 그릇이 네 귀퉁이에 끈이 매어져서 내려오는 것을 봅니다.
그 그릇 안에는 각종 짐승들과 기는 것들이 있었는데,
하늘에서 베드로에게 그것들을 잡아먹으라는 음성이 들려옵니다.
베드로는 이런 부정한 짐승은 먹어본 일이 없다며 먹을 수 없다고 하자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는 음성이 또 들려옵니다.
이런 말이 세 번 오고간 후에 그릇은 하늘로 다시 올라갔습니다.
● 묵상 :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고넬료와 베드로 모두
자신들이 늘 하고 있던 정기적인 기도 시간에 환상을 보았다는 점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항상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도 주시고 환상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이 구원의 길이고 복을 받는 길이며
하나님의 말씀과 환상도 보는 길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3.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4절)
천사는 고넬료에게 그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기도와 구제를 하나님께서 제물로 받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기도와 구제가 상달되기 위해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를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고넬료의 기도 : 매일 규칙적으로 드리는 기도(2절)
고넬료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된 것은
그가 유대인들의 습관을 따라 항상 규칙적으로 그 시간을 지켜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 어느 날 한 번 기도한 것으로는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나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
항상 일정한 시간을 내어 기도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과 만나기 위하여 스스로 정한 그 시간을 지키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세상의 그 어떤 것 보다 더 존귀하신 분임을 나타내 보입니다.
2) 고넬료의 구제 : 항상 변함없이 순전한 마음으로 하는 구제(2절)
고넬료의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된 것은, 그가 구제를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구제가 순전한 마음으로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순전한 마음으로 했다는 것은
그 구제를 바리새인처럼 자기를 과시하게 위해 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마음으로 겸손하고 조용히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제를 받는 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
남이 모르게 조용히 하는 구제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셨습니다.
4. 욥바의 피장 시몬의 집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라
1) 고넬료에게 주시는 주님의 명령 : 베드로를 청하라(5~6절)
하나님께서 고넬료의 경건함을 인정하셨다면 그에게 그냥 성령을 부어 주시면 될 것을
왜 그곳에서 50km나 떨어져 있는 욥바에까지 가서 베드로를 청하여 오게 할까요?
고넬료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만큼 간절히 사모하고 있는지를 보려한 것입니다.
그것도 하필이면 피장(가죽 제품을 만드는 자, 갖바치)의 집입니다.
유대인들조차 들어가기를 꺼리는 자의 집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로마 점령군 고급 장교인 고넬료가
그런 자의 집을 그렇게 멀리까지 가서 특별한 분을 모시듯 정중하게 초빙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2) 받기 거북한 명령이라도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가 되십시오.
아나니아에게 다메섹 직가의 유다의 집에 있는 사울에게 가서
안수하여 기도하라고 명하신 것도 아나니아에게 매우 거북한 명령이었습니다.
엘리야에게 자기를 죽이려는 아합 왕을 찾아가라고 명하신 것 역시
아주 지키기 거북한 명령이었습니다.
● 묵상 :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복을 주실 때 복 주시기 전에 우리가 거북해하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정말 자기 생명처럼 여기며 지키는지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순종하는 자가 되십시오.
묵상 중에, 설교를 듣는 중에, 대화중에,
어떤 때에라도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면 즉시 순종하십시오.
순종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복을 내리십니다.
5.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 하지 말라.
1) 베드로의 고집을 꺾으시는 주님(15절)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거의 도착이 될 무렵 베드로 역시 환상을 봅니다.
그는 환상 중에 하늘에서 큰 그릇이 끈에 매어 내려오는 것을 봅니다.
그 안에는 각종 부정한 짐승과 기는 벌레들이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그것들을 잡아먹으라는 음성이 들려옵니다.
베드로는 이런 부정한 것을 지금까지 먹어본 일이 없다며 먹기를 거부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말이 세 번 오고 간 후에 그릇은 다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2) 신앙은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뜻합니다.
신앙은 자기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자기의 주관대로 결정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버리고 내 뜻대로 기어이 이루어지도록
떼를 쓰는 기도를 능력 있는 기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말씀에서 그게 아니라고 말을 해도 자기 고집을 꺾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미 예수께서 육신으로 계실 때에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이를 위하여 예수께서 오셨다고 누누이 강조하며 말씀하셨는데,
그를 따른다는 사도들과 제자들이
아직까지도 이방인들을 개나 돼지 취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고집을 꺾기 위해 주께서 또 한 번 이런 수고를 하셔야만 했습니다.
● 묵상 :
참된 기도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하나님 뜻대로 마옵시고 내 뜻대로 하옵소서”하고 반대로 기도합니다.
이런 기도는 나무뿌리를 셋을 뽑는다 할지라도 결코 능력 있는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셨던 그 기도처럼 내 뜻을 하나님께 아뢰기는 하되,
내 뜻대로 말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해 달라고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혹시 우리도 우리의 고집을 꺾지 않고 있는 것은 없는지 자신을 살펴봅시다.
* 기도제목
1. 항상 규칙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경건한 습관을 갖게 하옵소서.
2. 비록 내가 꺼리는 것일지라도
주님의 명령이라면 순종하게 하옵소서.
3. 혹시 아직도 주님 앞에서
꺾지 않고 있는 고집이 있는지
늘 자신을 살피게 하옵소서.
[가정예배 365-4월 17일] 고넬료와 베드로의 신앙
찬송 : ‘기쁜 소리 들리니’ 518장(통 252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사도행전 10장 24∼43절
말씀 : 고넬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다 모아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들어오자 발 앞에 엎드려 절하며 그를 맞이했습니다. 얼마나 극진했던지 베드로가 “나도 사람이라”고 당황할 정도였습니다(26). 로마의 백부장인 그가 피지배 민족이요, 게다가 무식한 어부였던 사람을 이렇게 최고의 경의로 영접한 것은 베드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고넬료가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 얼마나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먼저 유대인이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이 위법임을 말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온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28).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열린 마음으로 자기의 상식과 관습을 내려놓는 사람이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고넬료는 무슨 일로 자기를 불렀느냐는 베드로의 질문에 자기가 본 것과 들은 것을 나눕니다. 나흘 전 기도시간에 천사가 나타나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와 구제를 받으시고 기억하신다고 하면서 욥바에 있는 시몬 베드로를 청해 말씀을 들으라고 명하셨던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고넬료는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다시 한 번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하나님 앞에 서는 것과 동일시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를 들은 베드로는 자신이 본 환상과 연관시켜 생각하게 됐고,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참으로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않고 당신을 경외하고 의를 행하는 사람은 모두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34∼35).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서 들려준 짧은 설교는 복음의 핵심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만유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화평의 복음”이라고 소개합니다(36). 또 갈릴리에서 시작해 유대 전역으로 퍼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 ‘성령과 능력의 기름부음을 받아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사람을 고치신 일’이라고 요약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신 가장 중요한 사역인 대속의 죽음과 승리의 부활에 대해 간증하면서 예수님을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라고 밝힙니다(42). 그리고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의 증인인 자신들에게는 예수님에 대해 전도하는 사명이 주어졌다고 밝힙니다. 또한 베드로는 모든 구약 선지자들이 증언한 것 역시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임을 부연하고 있습니다(43).
기도 : 하나님 저와 우리 가족이 고넬료와 베드로처럼 겸손하고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최고로 존중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또한 외적인 조건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권지현 목사(서울 다음세대교회)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 하더니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유숙하느냐 하거늘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이르되 내가 곧 너희가 찾는 사람인데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대 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 사도행전 10장 1~23절
사도행전 10장에는 베드로와 고넬료라는 인물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가 쓰여있다.
위 인용문에 따르면 베드로와 고넬료는 거의 운명적으로 조우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즉, 서로 비교적 먼 거리에 떨어져 있던 둘이 각각 환상을 경험한 후 필연적인 끈에 이끌려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 둘의 만남이 어떤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기에 사도행전의 작가(루가)는 이렇듯 극적인 장치를 배경으로 깔았을까?
일단 우선 위 굵은 글씨에 대한 해설을 먼저 해보자.
– 가이사랴(가이사리아) : 과거 헤롯 대왕에 의해 건설된 도시 이름이다. 그가 이 도시를 건설한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면,
일단 정치적인 면으로 본다면 헤롯은 상당히 유능하다고 할 수 있다. 유대의 순수혈통이 아닌 헤롯이 거의 40여년을 유대의 왕으로 군림하게 된 배경에는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사실 원수에 가깝다) 옥타비아누스의 지원이 결정적이었는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 당한후 안토니우스,레피투스,옥타비아누스의 제2차 삼두정치가 시작되었을때 헤롯은 안토니우스 편에 섰지만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하자 그를 찾아가 설득에 성공하여 결국 유대의 왕위까지 오르게 된다. 이에 보답하는 측면에서 헤롯은 옥타비아누스(후에 원로원에서 ‘존엄한 자’라는 의미의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게 된다.)를 위해 도시를 건설하고 옥타비아누스(본명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다)의 이름을 붙여 그에게 헌정한다. 헤롯은 분명 수완 좋은 인물이었다.
– 고넬료(코르넬리우스) : 위 인용문에서의 주인공이 명망가 귀족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코르넬리우스는 로마의 명망가 이름이다. 대표적 인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 등장 이전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코르넬리우스 가문 출신이다.
– 이달리아(이탈리아) : 지금의 이탈리아를 떠올리면 된다. 위 인용문의 시대적 배경으로 봐서 당시 로마 황제는 티베리우스거나 칼리굴라 혹은 글라디우스일 것이다. 이 시기에 로마는 지중해 전부를 손안에 넣고 지속적으로 팽창하던 시기인데, 이 광활한 영토를 황제 직할지나 원로원 직할지 그리고 속주로 구분하여 통치하였다. 이런 명칭에는 이탈리아, 달마티아, 갈리아(카이사르가 정복했다), 아프리카, 아시아, 시리아, 히스파니아, 다키아 등등이 있다.
– 백부장(백인대장) : 대략 100명 가까운 병사를 통솔하는 로마의 군대 지휘관이다. 지금으로 본다면 위관급 정도일 것이다. 그 위로 천부장, 군단장 등이 있다. 복음서에 나오는 군대(레기온)는 로마 군 부대 단위의 명칭이다.(요즘으로치면 여단)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레기온)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 마가복음 5장 9절
- 욥바(욥빠) : 지중해에 면해있고 역사가 상당히 오래된 이스라엘의 도시 이름이다. 과거 사사기 시절에 이스라엘의 숙적 블레셋족의 근거지 였다. 골리앗은 블레셋족 출신이다. 헌데 욥바와 가이사랴는 적어도 100km이상 제법 먼거리에 떨어져 있다.
그럼 이제 본문 내용이 의미에 대해 얘기해보자.
고넬료는 가이사랴에 베드로는 욥바라는 서로 멀리 떨어진 도시에 있었는데 각각 환상을 본 후 우연이 아니라 대단히 필연적(의도적)으로 만나게 된다.
둘의 만남은 환상이 결정적 역할을 하는데 우선 고넬료의 환상은 너무 진부하여 설명이 내키지 않는다. 한마디로 뻔한 레퍼토리다.
하지만 베드로의 환상은 좀 다르다. 베드로가 진짜 환상을 경험했든 작가가 꾸며서 한 얘기든 관계없이 환상 내용엔 뭔가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그 환상이란 하늘에서 큰 보자기에 담겨(?) 각종 네발 짐승과 날짐승이 내려온다.
그리곤 하늘에서 베드로에게 그 짐승들을 잡아먹으라고 명령한다.
헌데 베드로는 불결하니 거부하였다.
불결하다는 의미는 그 짐승들이 율법에 의해 부정한 음식으로 규정된 것들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굽이 갈라지지 않았거나 되새김질을 안하는 짐승들이었나보다.
정결한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거부할 것이다.
헌데 다시 하늘에선 깨뜻한 것들을 속되다 하지 말라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런 일이 세번이나 반복된다. 그리곤 짐승들이 하늘로 올려진다.
이 의미는 아주 간단한 얘기다.
즉,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과거의 율법에 얽매여 깨끗하고(유대인) 불결한(이방인) 것을 차별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시말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데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리지 말라는 뜻이다.
초창기 사도들은 유대지역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고 점차 해외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에게도 전도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그런 활동은 사두개인이나 바리새인등의 기존 세력에 의해 차단 및 탄압 당하여 한계에 부딪치게 되었고, 결국 예수 종파의 운명은 이방인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느냐에 key가 주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할례와 율법이었다.
율법에 충실한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함께 식사조차도 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이방인의 식사에는 율법에 어긋난 음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드로의 환상 에피소드에선 그런 음식들을 먹으라 명령한다.
따라서 이 얘긴 결국 이방인에 대한 전도의 타당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 그리스도인들 입장에서는 하층민의 무지랭이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를 갖춘 고넬료 같은 이방인들을 개종시키는 것이 절실하지 않았을까?
사족1 – 로마를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바꾸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카이사르와 그의 양아들인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는 훗날 정제(아우구스투스)와 부제(카이사르)의 호칭으로 사용된다. 독일의 카이저나 러시아의 차르가 카이사르에서 왔고, 또한 독일의 아우구스부르크라는 도시는 아우구스투스에서 왔다.
사족2 – 루마니아라는 나라 이름은 로마에서 왔는데, 유래는 로마제국이 최대의 영토를 가질때가 트라야누스 황제 시절이었고 그때 루마니아 지역이 로마에 편입되게 된다.(명칭은 다키아)
사족3 – 에스파니아라는 명칭은 로마의 속주명 히스파니아에서 왔고, 아프리카와 아시아라는 명칭도 로마의 속주명에서 왔다.
사족4 – 로마제국의 전성기인 오현제(네르바-트라야누스-하드리아누스-안토니우스 피우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절에 황제는 다음 황제감을 눈여겨 봤다가 그를 양자로 삼고 그에게 제위를 물려주는 방식을 택했다. 예외도 있지만.
하지만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불초 자식 콤모두스에게 보위를 물려주고 이때부터 로마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과거 중국의 요-순 임금이 그런 방식을 택했다.(순 임금 다음이 하 왕조를 연 우 임금이다.)
그리고 공자와 함께 우리 모두는 그 시절을 태평성대의 시절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대통령이 선출되는 작금의 세태는 뭔가 문제 있는건 아닐까…?
5년 전엔 절망했고 지금은 관심도 없다 제길…
고넬료와 베드로(사도행전 10:1-23)
고넬료와 베드로의 일화는 하나님의 사랑이 특정인(당시는 유대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과 백성들에게 향한 것임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역사의 비밀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고넬료를 통해 참 기독교인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여주시고 베드로의 모습을 통해 우리들이 쉽게 범하는 자기 고집과 아집의 모습을 돌아보게도 합니다.
고넬료는 초대교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입니다. 초대교회 선교와 확장에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당시 초대사도들은 구원의 대상을 유대인에 국한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사도들과 이방인 사역에 앞장섰던 바울이 초기에 대립하였던 이유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와 베드로의 환상과 관계를 통해 하나님의 참 계획을 알게 하시고 잘못된 편견에 대해 깨우쳐 주셨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교회는 세상 속으로 향하게 됩니다.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할 점은 고넬료의 신앙과 그의 삶입니다.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경건한 삶을 살고 4절에 보면 기도와 구제에 힘쓰는 삶을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고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2절에 ‘항상’ 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의 삶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기를 스스로가 바라며 그걸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로마인으로서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억압할 수 있는 막강한 무력과 권력을 가졌지만 스스로의 것을 남용한 적이 없었습니다. 중용의 도를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겸손하였습니다.
식민지 통치하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며 노예나 하찮은 존재로 취급하지 않고 같은 인간의 심정으로 그들을 공감하려 하였고 그들의 아픔을 보살펴 주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알고 따스함을 공유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참 기독교인의 모습입니다. 함께 있으면 따스합니다. 정이 넘치는 사람이 바로 기독교인,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었습니다. 진정한 구제는 상대에 대한 배려와 지켜주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약자이지만, 흠이 있는 사람이지만, 죄인이지만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고 지켜주는 것이 바로 참 구제의 시작입니다.
베드로의 환상을 통해서는 우리 속에 있는 우리가 만들어 놓은 가치관과 이념들이 때론 우리의 성장과 하나님의 사역을 거스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온 나라와 민족, 모든 백성에게 향함을 보여주십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익숙해져 있는 가치관과 율법과 사상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오히려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속한 환경과 학습과 신앙의 교육만이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주위의 환경들은 하나님과 나를 발전시키기 위한 과정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 절대적인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유한하고 흠많고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이루어 놓은 것들을 너무 맹신합니다. 우리의 의만 의라고 주장합니다. 다행스럽게도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되고 더 큰 영적 이해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경계를 허물어갑니다.
이렇듯 신앙은 자신의 경계와 지경을 넓혀가는 것입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일이기에 어렵고 힘듭니다. 때론 의문이 일기도 하고 때론 불쾌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은 내가 성장하기 위한 필수적인 단계임을 알고 담대히 이겨나가고 오히려 긍정적인 마음으로 모험에 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넬료의 기도하며 구제하는 삶과 베드로의 지경을 넓히는 안목을 통해 여러분의 신앙이 매일매일 새롭게 성장해 가시길 축원합니다.
베드로와 고넬료 (행 10:24-38)
베드로와 고넬료 (행 10:24-38)
오늘 말씀 가운데는 두 사람의 이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입니다. 베드로는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 나라 공안 당국의 감시를 받으며 조심스럽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갈릴리 사람입니다. 고넬료는 로마 사람으로 현역 장교로 유대 나라에 파병된 군인 신분입니다. 유대 나라 중에 가이사랴 지방은 지역적으로 지중해 해변가에 위치한 항구 도시입니다. 로마에서 군인들이 배를 타고 유대 나라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닿는 장소입니다.
이곳에 로마 군 부대 본부가 있어서 유대 나라 전역을 감시, 감독하는 지휘권이 있는 유대 나라 사람들이 생각할 때 기분이 좋지 아니한 장소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나오는 두 사람은 국적상 원수가 됩니다. 하나는 지배자 중의 한 사람이요 다른 하나는 식민지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고넬료는 현역 장교로서 유대 백성을 감시하는 직분이요 베드로는 평민으로서 감시를 받는 소시민적 사람의 시민입니다. 국적이 다른 원수 관계요 직업의 차이가 큰 두 사람은 거주지도 하나는 북쪽 지역인 가이사랴요 하나는 남쪽 지역인 욥바에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만나야 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관계이며 만나봤자 피차 감정이 좋을 것이 하나도 없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하나님의 소개로 만나게 되고 그 만남은 기독교 역사를 새롭게 하는 역사의 전환점을 만들게 됩니다. 무엇이 그들을 만나게 했으며 무슨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것이 오늘 말씀의 중심이 되겠습니다.
먼저 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관계에 있으면서도 서로 공통점을 소유하고 있음이 나타납니다. 공통점은 두 사람이 똑같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넬료는 로마 사람이요 직업 군인으로서 유대 나라에 와서 살다가 유대인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믿음 생활이 얼마나 대단하고 훌륭했는지 하나님이 감동하셨다고 나타나 있습니다. 이 사도행전이라는 성경은 각 장마다 특징이 나타나는데 그때마다 인물이 하나씩 소개됩니다.
7장에서는 전체가 스데반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8장에는 빌립 집사의 전도하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9장에는 사울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는 성경 기록이 되고 오늘 10장에는 전체가 고넬료라고 하는 로마 장교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공통점은 두 사람이 똑같이 기도 시간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넬료의 기도시간이 본문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평소에 아주 잘하는 사람들도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더군다나 낮과 밤의 차이가 없어지는 요즘 같은 문화에서는 따로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에 늘 기도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사실 새벽기도 인구도 전체의 5퍼센트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고넬료는 직업 군인이라서 항상 비상근무를 해야 되는 직업의 어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대개 옛날 군대 사회는 무지스럽고 거칠고 잔인한 것이 통하는 사회가 되도록 훈련받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고요하게 신앙생활을 잘하고 기도를 드릴 수 있는 분위기가 잡혀있는 사회가 아닙니다. 게다가 이 사람은 로마 사람으로 식민지 백성을 향해 무력행사를 하기 위해서 현역의 몸으로 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식민지 백성의 종교를 받아들이고 보통 이상의 열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한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그렇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감동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베드로는 어떻게 하고 있었는가? 이렇게 나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똑같이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두 사람을 기도 속에서 연결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세 번째 공통점은 각자 환상을 보게 됩니다. 고넬료는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노라.” 이런 말을 했는데 이 기도와 구제에서 기도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고 구제는 돈이 필요합니다. 아마 우리 일상생활에서 시간을 내고 돈을 쓰는 일은 누구나 쉽지 않은 제목입니다. 그 중요한 것을 아주 잘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너무나도 감동하셔서 지금 이 고넬료에게 큰 축복을 하나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상급으로 고넬료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의 내용은 무엇인가? 베드로의 심방을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네가 지금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시간을 많이 써서 날마다 그 시간에 기도를 하고 돈을 많이 써서 구제를 했는데 어찌나 잘하고 많이 했는지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큼 잘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주 큼직할 상급을 내려주실 만합니다. “너 어려운 사람들 구제하느라고 참 돈 많이 썼다.
이제 내가 너에게 큰 재물을 선물해 주겠노라.” 하시든가 고넬로가 군인이니까 “너는 이제 진급을 해서 별을 달고 그 지휘관 생활을 훨씬 잘할 수 있도록 내가 도와주겠다.” 이래야 좋을 것 같은데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으니 베드로에게 심방을 오라고 청하라.” 이런 상급을 주었습니다. 심방 한번 오는 것이 무엇이 그리 대단해서 그런 일을 지금 시키고 계신 것인가? 베드로는 사실 그것도 모르고 자기 나름대로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여기 보면 베드로가 좀 배가 고팠다고 했습니다. 뭐 먹고 싶은 상태에서 기도를 하니까 무엇을 잡아먹으라고 하늘에서 보따리 하나가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열어보니까 자기가 일평생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유대인의 부정한 동물이 가득 찼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이런 것은 내가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나이다.” 여러분! 예루살렘에 한국 식당이 없습니다. 허가를 안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간 이후에 생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온 세상에 한국 식당이 지금 어디나 있기 때문에 음식 불편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없습니다. 돼지고기를 먹을까봐 허가를 안 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 먹는 종류가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 것들만 가득했는데 베드로에게 하나님이 그것을 잡아먹으라고 하니까 “나는 이런 부정한 동물을 한 번도 잡아먹은 일이 없나이다. 깨끗하게 살았나이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깨끗하다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두 사람의 기도 중에 환상을 보여주셔서 연결을 시켜주셨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사상과 위치가 있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두 사람이 만날 수 없는 상황을 말해줍니다. 로마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로마인은 당시 세계 정복자의 권위가 있습니다. 그들의 우월감은 유대 민족 같은 사람들은 형편없는 노예 취급을 합니다. 로마 군인 장교는 정복자의 권세를 행사할 수 있으며 명령할 수 있으며 때로는 약탈도 하고 어떤 때는 부녀자 강탈을 하고 수틀리면 죽여 버립니다. 옛날은 그러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식민지 백성에게 자기 집에 심방 한번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습니다.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시켰습니다. 고넬료는 즉시 하인을 불러서 그가 있는 욥바로 사람을 파견했습니다.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이라고 했으니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계신 베드로 선생을 빨리 모시고 와라.” 베드로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로마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유대 사람들을 멸시 취급한다면 유대인들은 종교적으로 로마인들을 멸시합니다.
“너희들은 다 부정한 사람들이야.” 유대인들은 다른 종족과 교제를 하는 그 자체가 죄라고 오늘 성경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베드로가 생각하는 로마인은 부정한 동물에 속합니다. 멸시 취급합니다. 그런데 ‘내 입안에 넣으라고 하니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그런 신학적인 의문을 생각하고 있을 때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전부 고넬료 이야기를 설명하니까 ‘아! 하나님이 나를 로마인들에게 보낸 것이다.’ 그렇게 환상을 해석하고 따라 나서서 가이사랴 고넬료 로마인의 집을 심방 온 것입니다. 욥바에서 가이사랴까지 35킬로미터 정도입니다.
먼 길로 심방을 갔습니다. 고넬료는 베드로의 심방을 맞이하기 위해서 일가친척, 친구들을 자기 집에 다 모아들이고 기다리고 있다가 베드로가 도착하니까 베드로를 보고 하나님을 만난 듯 행동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당신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는데 우리가 듣고자 모였나이다.” 행동은 어떻게 합니까? “베드로가 들어오는데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려 절하니” 로마 군대 지휘관이 식민지 백성 앞에 발까지 엎드려 절하겠습니까? 세상에서 제일 목이 뻣뻣한 사람들이 점령군의 군대 지휘관일 수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부하 다루듯 합니다.
직업에서 굳어진 행동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자기 친척 사람들을 다 모아둔 그런 자리에서 갈릴리 어부 출신 유대 식민지인에게 발까지 엎드려 절을 합니다. 자신의 위치를 완전히 평가 절하했습니다. 베드로가 뭐라고 여기 말합니까?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사람 취급을 안 하고 하나님 취급을 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말했습니다. 고넬료가 초청자로서 이렇게 오시게 된 동기를 전부 설명했습니다. “사실 내가 이 나라에 와서 당신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을 믿고 살다가 감동을 받아서 그동안 기도를 열심히 했고 나름대로 구제활동을 열심히 했더니 하나님이 나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서 복을 주셨는데 바로 베드로 사도의 심방을 받으라는 축복을 주셔서 오늘 이렇게 오시게 되었나이다.”
베드로는 모든 이야기를 듣고 34절에 보면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사실 베드로는 유대니즘이나 내셔널리즘에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도 아브라함의 혈통 후손에게만 전해야지 이방 사람에게는 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상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 ‘아! 로마인에게도 복음을 전하라고 하는 것이다.’ 깨달았다고 비로소 발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일장 설교를 했더니 설교 도중에 성령이 각 사람에게 임하여서 거기 모인 사람들이 다 그 시간에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두 사람의 만남이 무슨 역사 창출을 해냈는가? 유대나라 사람이 아닌 다른 민족으로서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은 것이 8장에 에티오피아 간다게 여왕의 국고를 맡은 내시이고 10장에 와서 고넬료가 최초의 사람들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베드로는 유대인의 국수주의 민족관에 사로잡혀서 타민족에게 복음 전할 생각을 절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으로 베드로는 선교 사명을 깨닫고 로마를 향한 눈이 비로소 열리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로마 백부장으로서 세 사람이 예수님과 바람직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이 발견됩니다. 마태복음 8장에 하인이 병들었을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와 길에서 만나 간구한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내가 만나보지 못했다.” 이렇게 칭찬하시고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현장 지휘하던 백부장 지휘관이 그 변하는 초자연적 내용을 보고 “이는 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오늘 성경말씀 고넬료 백부장과 베드로의 만남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 이 말씀을 정리해보겠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환상이 보입니다. 반드시 베드로나 고넬료같이 똑같지 아니하여도 영적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장래 일에 대한 역사 비전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전을 보십시오. “나는 꿈이 있다.” 그 꿈이 얼마 안가서 이루어집니다. 이게 기도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도적 관찰입니다. 그 다음에 구제는 하나님의 기억에 남을 만큼 상달되는 힘이 있다는 것이 여기 나타납니다.
어떤 청년 하나가 이민을 와서 살게 되었는데 방송을 들었습니다. “지금 어떤 사람이 신장 이식이 필요한데 기증자가 필요하다.” 이 청년이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내가 왜 이 방송을 듣게 되었는가 나도 선한 일을 한번 해야지.’ 그리고는 병원으로 달려가서 종합 검사를 하고 가능했기 때문에 서슴지 않고 자기 배를 열고 하나를 떼어서 환자에게 주어서 그 환자는 아주 건강하게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 청년은 자기 수술비로 190만원 정도를 지불하고 소리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 가족들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 사람을 찾아야지요. 찾아보니까 주유소에서 종업으로 일하고 있는 청년이었습니다. “어휴! 어떻게 알았습니까?” “네! 잠간 계세요. 지금은 제가 일이 바쁩니다.” 그리고 그 주유소 가스통에다 “알 필요 없음.” 그리고 어디론가 살아져 버렸습니다. “그의 마음 하나님 기억에 남았으면 됐음.” 이게 구제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제일 큰 상급은 무엇인가? 영적 은혜입니다.
그렇게 많이 기도하고 돈 많이 쓴 것에 대한 상급이 베드로 사도 심방 와서 설교 한번 듣는 것인가?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가? 대단합니다. 만약 고넬료에게 하나님께서 다른 것을 주신다고 하셨다면 오히려 실망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그런 것은 안주셔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대로마의 지휘관이라는 권세도 내게 있고 돈도 내게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영적 은혜를 고귀하게 내려주신 것에 대한 감격입니다.” 그 가족들은 로마 사람으로 최초로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고넬료는 자기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자기 고국인 로마로 돌아갔고 베드로는 땅 끝까지 전도를 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역시 로마로 갔습니다. 역사가 흐르고 또 흘렀습니다.
유대 땅에서 활동하던 두 사람은 로마 땅에서 같이 활동하다가 주어진 자기들의 생을 거기서 둘이 마감했습니다. 그들이 뿌린 복음의 씨앗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자라고 또 자라서 마침내 고넬료의 집안 세례로부터 시작한 복음의 전파는 로마를 세계 복음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세계 교회 중심의 대성당을 건축하고 지하에 자기 무덤을 만들고 안장되어 있습니다. “너희들은 가난한 약소민족 노예 신분들이야! 나는 대로마 점령군의 지방 사령관이다.”
하고 베드로를 보지 않고 하나님같이 보았던 한 이방인의 신앙이 그렇게 잔인하게 핍박을 가하던 대로마를 뒤집어엎는 기초 공사가 되었고, “너희는 부정한 동물이야. 영적으로 야만 족속이야.” 하고 무시하던 베드로가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깨달음을 통해서 절대 금물인 이방인에게 과감하게 세례를 준 것이 세계 교회 역사의 변화 지점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매동 갈보리교회가 바로 욥바의 기도실이 되고 가이사랴 기도 장소가 되어서 우리 모두의 만남이 세계 복음화의 기초 역할이 되는 축복이 계속되어 지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은 역사하십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을 통해서 세계 역사의 전환점을 삼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하나님의 교회와 일꾼들을 선택하여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가고 계심을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 중심에 서서 하나님의 역사 진행에 쓰임을 받는 주의 청지기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고넬료와 베드로(행10:34-43) 20180121 > 설교문
고넬료와 베드로(행10:34-43) 2018. 1. 21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그 좋은 영향이 나의 삶에 미치게 마련이다. 좋은 부모를 만나고 좋은 스승을 만나고 좋은 친구를 만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좋은 사업의 동료를 만나고 좋은 영적 지도자를 만나고 좋은 선배를 만나는 것은 복 중의 복이다.
성경의 인물들로 하면 모세와 여호수아의 만남, 엘리야와 엘리사의 만남처럼 말이다. 예수의 12제자들을 보라. 베드로나 안드레 형제, 요한과 야고보 형제들과 같은 갈릴리의 어부들이 예수 만나서 기독교 역사에 길이 빛나는 사도의 반열에 세움 받고 쓰임 받지 않았나. 사도 바울이 다메섹 성으로 가던 길에서 예수 만나서 초대 교회의 위대한 이방 선교의 중심에 세움 받는 사도가 되지 않았나. 사도 바울의 13편의 편지가 성경에 기록될 정도이니 그만한 복을 받은 인물이 신약 시대에 그 어느 누가 또 있나.
로마 이달리야 부대의 백부장이었던 고넬료는 욥바에 선교 방문 중이던 사도 베드로를 초청하게 되면서 삶이 한 차원 달라졌다. 예전에 경험한 적이 없던 성령을 받게 되었다. 그 동안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어 오던 고넬료와 그의 가족들이었다. 그러나 성령을 모르던 저들 가족과 친척들과 친구들이 함께 모여 베드로 사도의 말씀을 듣던 중에 성령을 받았다. 방언도 하고 하나님을 높여 드리게 되었다. 성령을 먼저 받고 나중에 물로 세례 받는 새로운 영적 경험을 모두가 다 같이 하게 되었다.
예수께서 사도행전 1장 8절에 말씀하신 예언이 점점 성취되어 가는 장면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고 하신 말씀대로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이스라엘 밖의 주변 도시와 주변 나라들에 이르기 까지 점점 부활의 복음이 전파되고 성령이 역사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욥바의 베드로는 자기를 찾아 온 고넬료의 부하들을 집안에 들였다. 하루를 묵게 한 후에 다음 날 욥바를 출발해서 가이사랴 까지 갔다. 드디어 고넬료가 베드로 사도를 만나는 역사적인 순간이 찾아 온 것이다.
모여 겸손히 기다림.
우리가 누구를 만나기로 약속하고 기다릴 때에는 잠깐 만 늦어도 시간이 엄청나게 길게 느껴진다. 요즘도 그러한데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누구를 기다린다는 것을 상상해 보라. 도착하기 전 까지는 전혀 연락할 수단이 없던 시절이니 말이다. 도착해야 도착하는 것이고 도착할 날짜에 도착이 안 되면 별의 별 상상을 다하게 되는 것이 그 당시의 형편이었을 것이다.
하인들과 경건한 부하를 가이사랴에서 욥바까지 심부름 보내 놓은 고넬료는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 모아 놓고 베드로 사도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살아오면서 누구를 간절히 기다려 본 적이 있는가. 그 기다림이란 것이 주는 느낌이 어떠한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고넬료와 그의 가족들과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이 모인 곳에 마침 베드로가 도착하였다. 고넬료는 기쁜 마음으로 베드로 사도를 맞아 들였다. 고넬료는 베드로 사도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하며 맞아 들였다. 그 때 베드로는 고넬료를 일으켜 세우며 말하였다. “나도 사람이라.”이것이 무슨 말인가. 그렇지 않나. 당시의 로마 백부장이면 군대의 낮지 않은 지위를 가진 고급 장교이다. 그런 저가 사도 베드로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베드로 사도를 정중하게 맞아 드렸다. 태도는 마음의 표현이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태도나 인사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오히려 당황스럽게 한다. 그러나 백부장 고넬료는 진심으로 사도 베드로를 존중하고 환영하는 뜻에서 무릎을 꿇고 절하며 맞아 드린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나도 사람이요.”라고 대답하므로 인간미가 훈훈하게 풍기는 장면을 보였다. 생각해 보라. “그럼 나는 주님의 사도이고 당신은 일개 로마 군대의 장교일 뿐이지.”, “절할 마음이 있으면 더 정중하게 땅에 엎드려 절하게…” 뭐 베드로 사도가 이런 자세로 백부장 고넬료의 엎드려 절하는 절을 받았다면 분위기가 어떻게 되었겠나.
백부장 고넬료는 예절이 정중한 인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사도 베드로도 주변 사람들을 동등한 인격으로 대할 줄 아는 겸양한 모습이 일상의 예절에 배어 있었다. 처음 만나는 사이에 서로에게 보인 훈훈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벤살렘 교회를 섬길 때에 과거에 대한민국해병대 부 사령관을 지낸 예비역 소장 김기홍 장군을 교회의 간증 예배에 모신 적이 있다. 그는 그 당시 해군 교회 소식의 장로였다. 그는 화기 소대장 시절 월남전의 짜빈동 전투 승리 신화의 주인공이다. 1967년 2월 14일부터 그 다음 날까지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 대한민국 해병대와 월맹군의 격전이 벌어졌다. 월맹군의 수는 2,400명 이상이었다. 우리나라의 해병대는 장교 10명 사병 284명 다 해서 294명이었다. 그런데 십대 일의 전쟁에서 우리 군대가 크게 이겼다. 이 전쟁 기록은 위키백과 사전에도 나온다. 우리 군대는 15명이 전사하고 33명이 부상당했다. 그러나 월맹군은 234명이 전사하였다. 불가능할 것 같던 전쟁은 우리 해병대의 승리로 끝났다. 이것이 월남전의 전사에 기록된 ‘짜빈동 전투’이다. 이 전쟁으로 그 당시의 소대장이었던 김기홍은 일 계급 특진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경상도 시골 두메산골 마을에서 자라난 그는 1960년에 해군 사관학교에 입학한 것은 경사였다. 군대에는 그의 고등학교 선배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두메산골 시골 고등학교의 영광이었다. 그런 그가 장군이 되고 해병대 부사령관 까지 지냈다. 그 모든 간증의 바탕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고백이었다. 얼마나 겸손하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구수한 경상도 매너를 지녔던지 20여년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 분을 생각하면 “그는 장군 출신이지만 참으로 겸손한 분이셨다.”는 기억이 새롭다. 그의 간증은 나라 안팎에 수 백 번의 초청을 받고 또 받았다. 이제는 연세가 꽤 많을 것이다.
김기홍 장로는 간증집회 중간에 찬양을 불러 은혜를 더 한다. 김 장로는 “가난한 산골 마을에 태어나 절망, 좌절, 배고픔으로 생활하다 13살 때 예수를 믿고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고 간증했다. “지독히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장군 장로가 된 이야기, 월남전에서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전쟁을 치룬 이야기, 군대 내에서의 확고한 믿음생활, 상관의 압력에도 해병교회를 건축한 이야기, 예수의 증인이 되어 간증하는 삶이 된 이야기”등을 들은 기억이 요즘도 생생하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사람이 교만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약4:6)고 하였다. 이는 잠언 3장 34절의 말씀을 인용한 말씀이다.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내 주변의 그 누가 교만하게 행동하면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나. 그러나 겸손하고 부드럽고 온유하면 누구나 다 좋아하지 않나. 예수는 자신을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으로 소개하였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30)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이나 사회생활 하는 중에도 매사에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온유하고 겸손한 주님의 모습을 배우고 실천하는 성숙한 성도들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매주 좋은 읽을거리와 은혜로운 볼거리를 카톡으로 보내 주는 남자 권사가 있다. 그는 지난 주중에는 이런 글을 보내 주었다.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한다. 즉, 하루를 보내고 일을 끝마칠 시간이 되면 낙타는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등에 있는 짐을 내려지길 기다린다. 또 새날이 시작되면 다시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이 얹어주는 짐을 잔등에 실리길 기다린다.
주인은 낙타의 건강상태와 기운과 체력을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낙타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만 짐을 얹어 준다. 낙타는 주인이 얹어주는 짐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 인생도 그러하지 않나. 나의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내 형편에 적합한 인생길의 짐을 실어 주신다. 하나님은 나의 체질과 형편을 잘 아신다. 그리고 내가 감당할 만한 짐을 지고 가게 해 주신다. 넘어지고 쓰러지면 손 붙잡아 일으켜 세워 주신다. 한 낮의 뙤약볕 아래서는 쉴만한 물가와 그늘을 찾아 안식하게 해 주기를 원하시는 분이 나의 삶의 주인이신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그러므로 우리 각 사람은 나의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겸손하게 무릎 꿇는 삶을 시시 때때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새에게는 날개가 무거운 짐일 수 있으나 새는 그 날개로 인해서 원하는 창공을 훨훨 날아서 원하는 곳으로 날아다닐 수 있고 날아 갈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고통이나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의 고통으로 인하여 영원하고 완전한 구원에 이르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주의 모든 말씀을 듣기 원하는 이들.
유대인인 사도 베드로가 이방 사람에게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유대의 율법으로 하면 율법을 어기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베드로가 용감하게 먼 길을 찾아 가서 가이사랴에 주둔하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인 고넬료의 집을 방문한 것은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런 행동이 가능하였던 것은 욥바에서 정오기도 시간에 기도하던 베드로에게 보여주신 환상 때문이었다. 베드로는 차근차근 자신의 경험을 그들에게 이야기 하였다. 세 번이나 똑 같은 환상이 반복되었다. 그러한 체험 이후에 베드로는 결심하였다. 베드로는“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천사를 통한 주의 말씀 앞에 순종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나. 이 땅의 모든 인류는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 피부색이나 언어나 인종이나 문화나 하나님을 만나기 이전에 그 어떤 종교에 사로 잡혀 있었든지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누구나 다 평등하다.
베드로 사도의 말을 들은 고넬료는 정중하게 베드로를 환영하는 인사말을 하였다. 며칠 전에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체험한 내용과 천사의 가르침에 대한 간증도 하였다. 고넬료는 인사말의 끝에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행10:33)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정도에 따라서 결정된다. 교회 생활을 오래 하였어도 말씀의 은혜를 받지 못하면 늘 그냥 그런 상태에 머물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서 내 심령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레마’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지지 시작할 때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바라기는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예배의 매 시간 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지길 축원한다.
예배 시간의 말씀 선포를 사람의 말로 받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고넬료의 고백을 보라. 사도행전 10장 33절에 “우리는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고백하였다. “하나님 앞에” 라는 이 태도가 얼마나 소중한가. 고넬료는 베드로를 하나님께서 그 멀리 욥바에서 자신들의 곁으로 보내신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고 정중한 예절로 맞아들이고 베드로를 통하여 선포될 주의 말씀을 듣고 은혜 받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사도행전 10장 34절부터 43절까지의 말씀이 베드로의 설교 내용이다.
베드로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 내용이 무엇이었는가.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은 어느 나라의 사람이든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어느 누구라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받아들이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유의 주님이시다.
하나님은 예수를 통하여 화평의 복음을 전하셨다.
하나님은 세례 요한을 먼저 보내셔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셨고 물로 세례를 베풀게 하셨다.
하나님은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다.
예수는 온 갈릴리와 유대의 마을을 다니며 선한 일을 행하셨다.
예수는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다.
그 모든 것들이 가능했던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나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사도들과 전도자들은 예수께서 유대 땅과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모든 일의 증인들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나무 십자가에 못 박고 매달아 죽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흘 만에 예수를 다시 살리셨다.
그러나 부활 하신 예수의 모습은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오직 택하신 증인들에게 보여 주신 것이다.
나 베드로와 몇몇 제자들은 갈릴리 해변에서 부활 하신 주님을 모시고 조반을 먹은 적도 있다.
부활하신 예수는 우리에게 명하셔서 백성들에게 전도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셨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증언한 이들이다.
예수를 믿는 자들은 누구나 다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게 된다.
이것이 베드로의 설교 내용이다. 어떤가.
우리가 이런 설교 말씀을 대할 때에 성령이 임재하실 만한가.
우리 다 같이 542장 찬송, “구주 예수 의지함이”를 부르자.
구주 예수 의지함이 심히 기쁜 일일세
영생 허락 받았으니 의심 아주 없도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구주 예수 의지함이 심히 기쁜 일일세
주를 믿는 나의 맘을 그의 피에 적시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구주 예수 의지하여 죄악 벗어버리네
안위받고 영생함을 주께 모두 얻었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구주 예수 의지하여 구원함을 얻었네
영원무궁 지나도록 주여 함께 하소서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믿음 더욱 주소서
성령의 강림.
이와 같은 베드로 사도의 설교 말씀을 경청하는 가운데 성령이 임하였다.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임하시는 주의 영이시다. 사도행전 10장 44절에 보면,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려 오셨다.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문을 열고 들으면 누구나 다 성령 받고 방언하고 하나님을 높이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받아들여지면 성령이 임하고 인생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고 삶의 태도가 달라지고 삶의 우선순위가 달리지게 된다.
지난 월 화 수, 삼일 간 50여명의 목회자들과 함께 시간을 가졌다. 어떤 목사는 자신은 20대 때부터 밤무대에서 베이스 기타를 치며 세상의 한 가운데서 살았다고 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은혜를 받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졌다. 성령을 받았다. 막내 동생 같은 이들 사이에 끼어 앉아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다. 지금은 부부 목사로 아내와 함께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며 산다고 했다. 그는 그의 과거 경력처럼 구수한 입담을 갖고 있었다. “저 쪽 동네에서 이 쪽 동네로 전향했지만 아직도 어색하고 부족한 것이 많다”고 고백하며 겸손하게 말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 속에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 달라진다. 늘 교회에는 다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큰 은혜를 받을까봐 마음 문을 꼭 닫고 있으면 하나님의 살아 역사는 말씀이 내 심령에 들어 와서 은혜를 끼칠 수가 없다. 길가와 가시밭과 돌짝밭의 마음 상태로는 성령이 임하기 어렵다. 좋은 땅이 되어야 100배로 결실하게 되는 것이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임해야 성령이 임하게 된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은 하나이다. 분리해서 설명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 받고, 성령 받고 나면 그보다 더 기쁘고, 그보다 더 신나고, 그 보다 더 흥분되고, 그 보다 더 좋은 경우란 없다.
성령이 임하고 나면 생각이 바뀌고, 취미가 바뀌고, 습관이 바뀌고, 관심사가 바뀌고, 말이 바뀌고, 우선순위가 바뀌고 모든 것이 바뀐다. 성령 받고 나면 옛 사람이 사라지고 새 사람이 된다. 우리가 새 옷 사면 옛날 땀내 나는 낡은 옷을 벗어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지 않나. 이처럼 성령이 임하고 나면 이전의 내 모습은 사라지고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올 1월 새해맞이 축복기도 성회로 첫 주 수요일 밤 예배 시간에 모였다. 그 시간에 선교 간증한 몽골의 김석환 선교사의 이야기 중에 “참새는 자기 날개 힘으로 날아 보려 하기 때문에 멀리 날지 못하지만 독수리는 날개의 힘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람의 기류를 타고 날아가기 때문에 별 힘을 들이지 않고 높게도 날 수 있고 멀리도 날수 있다”는 설명이 은혜가 되었다. 그렇다. 성령이 임한다는 것은 그런 상태이다.
사도행전 10장 44절에 ‘성령이 내려 오셨다’고 하였다. 그렇지 않나.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다. 그 시간에 하늘 문이 열리고 하늘에서 비둘기와 같은 성령이 예수 위에 내려와 임하였다. 하늘 위에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 받고, 성령 받고 나니 이렇게 좋고, 이렇게 변하고 이렇게 기쁘다고 고백한 찬송 가사가 있다. 감리교 목사요 신학자요 교육가였던 이호운(1911-1969) 목사의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이다. 436장 찬송이다. 그가 작사한 또 다른 찬송이 “부름 받아 나선 이 몸”이다.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옛것은 지나고 새 사람이로다
그 생명 내 맘에 강같이 흐르고 그 사랑 내게서 해같이 빛난다
영생을 누리며 주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주 안에 감추인 새 생명 얻으니 이전에 좋던 것 이제는 값없다
하늘의 은혜와 평화를 맛보니 찬송과 기도로 주 함께 살리라
영생을 누리며 주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산천도 초목도 새 것이 되었고 죄인도 원수도 친구로 변한다
새 생명 얻은 자 영생을 누리니 주님을 모신 맘 새 하늘이로다
영생을 누리며 주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주 따라 가는 길 험하고 멀어도 찬송을 부르며 뒤 따라 가리라
나 주를 모시고 영원히 살리라 날마다 섬기며 주 함께 살리라
영생을 누리며 주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온 교회와 모든 성도들이 어른 아이 남자 여자 노인 청년 구분 없이 누구나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 받고 성령 받아서 나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죄악을 이기며 살아가는 천국 백성의 삶을 살아가길 축원한다. 아멘
20210829 사도행전 강해 (17) 고넬료와 베드로의 기도 (사도행전 10장 1-23절) – 코너스톤장로교회
고넬료가 기도 중에 환상을 통해 천사의 지시를 받음
신약시대의 이스라엘은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였습니다. 로마 황제는 팔레스틴 지역을 다스리는 총독을 파견하였고, 그로 인해 유대지역과 사마리아 지방을 관장하는 로마의 총독은 ‘가이사랴’라 이름하는 항구 도시에 거주하였습니다. 식민지에 사는 현지인들로부터 로마 총독을 보호하기 위해 가이사랴에는 각각 천명으로 구성된 로마 부대 5개가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그 다섯 개의 부대 중 하나의 이름이 바로 ‘이탈리아 부대’였습니다. 이 이탈리아 부대의 병사들은 식민지에서 차출한 병력이 아니라 로마에서 온 정예 병력이었습니다. 특수 부대입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이 이탈리아 특수 부대에 소속된 백부장 ‘고넬료’(Cornerlius)라는 인물입니다. ‘백부장’이란 계급은 로마 보병이 진급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직위입니다. 꽤 높은 사람이죠. 백부장들은 대부분 실전 경험이 풍부했으며, 매우 엄격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로마 군대의 장교들은 식민지 사람들을 깔보고 무시하고 적대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주인공 고넬료는 달랐습니다. 그는 로마 군대의 장교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종교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경건한 사람으로써 기도에 힘썼고, 가이사랴에 사는 현지 유대인들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행 10: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행 10: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사도행전은 고넬료의 경건함을 세 가지로 증거합니다. 첫째, 그와 그의 온 가족이 함께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당시 로마는 올림푸스의 12신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유피페르, 유노, 미네르바, 아폴로 같은 신들입니다. 고넬료는 이탈리야 출신의 이방인입니다. 그러나 비록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으나,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어찌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는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가족들과 함께 나누며 살겠습니까? 고넬료가 그의 가족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아내와 아이들 다 데리고 함께 교회 와서 신앙생활 했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가 얼마나 팔레스틴 지역에 머물러 있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그는 로마의 다신교를 버리고 유대인들이 섬기는 유일신인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고넬료는 가이사랴에 사는 백성을 많이 구제했습니다. 2절에 사용된 ‘많이’라는 단어는 그가 남을 돕는 일에 돈을 아끼지 아니하고 나누어 주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다른 사람들에 비해 특출나게 많은 구제를 했음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고넬료가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 당시 로마 장교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하여 식민지 백성들을 착취했던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고넬료는 오히려 자기 돈을 들여 가난하고 굶주린 유대인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이러한 구제의 삶은 그가 경건한 사람임을 잘 보여줍니다.
셋째, 고넬료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여기 2절에서 그가 “항상 기도했다”라는 말은 고넬료가 하나님께 매일 기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코너스톤 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매일 같이 기도하고 계십니까? 식사기도 말고, 지나가듯 하는 짧은 기도 말고, 정해진 시간을 구별하여 하는 기도 말입니다. 바쁜 일상 가운데서 그렇게 시간을 구별하여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우리 스스로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고넬료는 매일 같이 시간을 구별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2절에 사용된 ‘항상’이란 단어는 삶의 모든 일과 상황 속에서, 언제 어디서나 기도하기에 힘쓴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상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또한 어떤 자세와 마음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지 하나님은 세밀하게 보시고 또 그에 따라 역사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은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곳에서도 날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고넬료와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님의 뜻대로 이웃들을 위해 살아감으로써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루는 고넬료가 평소 습관에 따라 정해진 시간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 날 고넬료의 인생에서 잊지 못할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3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행 10: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우리는 3절 말씀을 통하여 고넬료가 날마다 기도하던 때가 제 구 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왜 하필 제 구 시였을까요? 일단 본문에서 말하는 제 구 시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으로 바꾸면 오후 3시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합니다. 아침 9시, 정오, 오후 3시입니다. 이 중 오늘 본문에서 고넬료가 기도하던 제 구 시, 즉 오후 3시는 제사장이 저녁 희생 제사를 드리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 분향하는 시간입니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이 시간에 기도함으로써 제사장의 희생 제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오후 3시 기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이방인인 고넬료가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오후 3시에 기도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의 마음 상태를 잘 보여줍니다.
매일 오후 3시에 기도하던 고넬료… 그는 그 날 환상 중에 하나님의 사자 곧 ‘천사’를 보게 됩니다. 그가 본 환상은 비몽사몽간에 보여진 모호한 것이 아니라 매우 분명한 하나님의 계시였습니다. 천사가 고넬료에게 전해준 말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봅시다. 4절입니다. “(행 10: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여기서 천사는 우리 모두가 주목해서 봐야할만한 사실을 고넬료에게 가르쳐줍니다. “고넬료야, 하나님께서 네 기도를 들으셨다. 하나님께서 네가 가난한 사람들을 도운 것을 보셨으며, 너를 기억하고 계신다.” 때로는 아무도 없는 골방에 들어가 눈을 감고 한참 기도하고 나도, 내 삶에 크게 바뀐 것이 없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기도 무용론에 빠지기도 합니다. “기도해도 아무런 소용없는 것 아닐까?”, “기도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그런데 고넬료 앞에 나타난 천사는 고넬료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제단 위에서 제물을 태울 때 나는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께서 기쁘게 흠향하시는 제사가 되듯이, 고넬료의 기도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제사로 하나님께서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과 위로가 됩니까? 기도할 때 고넬료를 기억하시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천사는 고넬료의 구제 행위도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고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웃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우리의 삶을 유심히 살펴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나와 내 가족만 챙기는 제한적인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리하셨듯이, 마음이 힘든 사람들에게는 손을 내밀어 위로해 주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는 것, 이웃을 향한 작은 섬김도 주님은 기억하십니다. 잠언 19장 17절을 말씀을 보면 가난한 사람을 도우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갚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잠 19:17) [쉬운성경 번역] 가난한 자에게 베푸는 일은 여호와께 빌려 드리는 것이니, 그분이 후하게 보상하신다.” 고넬료가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웃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을 섬긴 시간들을 하나님은 다 기억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이웃을 섬기며 도와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섬김을 기억하시고 우리의 선행을 넉넉하게 갚아 주십니다.
천사는 고넬료에게 구체적인 지침을 전달해주었습니다. 5-6절말씀을 봅시다. “(행 10: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행 10:6)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하더라” 천사는 고넬료에게 욥바로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라고도 하는 시몬이라는 사람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또한 천사는 현재 베드로가 ‘피장 시몬의 집’, 즉 가죽 제품을 만드는 시몬이라는 사람의 집에 묵고 있으며, 그 집은 바닷가 근처에 있다고 구체적으로 말해주었습니다. 천사가 떠나자 고넬료는 즉시 집안 하인 두 사람과 자신의 부하 병사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택하여 천사가 전하여 준 모든 일을 이야기해 주고, 그들을 욥바로 보냈습니다. 고넬료가 머물고 있는 가이사랴에서 욥바는 약 50km (31마일) 떨어져 있습니다. 도보로 쉬지 않고 걸어가면 열 두 시간 정도 걸어야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고넬료가 배드로에게 보낸 세 사람은 하루 약 여섯 시간씩 걸어서 1박 2일 여정으로 욥바에 갔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기도 중에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지시를 받음
다음 날 저희가 욥바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베드로는 정오 시간 기도하기 위해 지붕에 올라갔습니다. 9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행 10:9)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 시더라” 앞서 우리가 경건한 고넬료의 삶에서 살펴보았듯이, 경건한 사람들의 삶 속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시간과 장소를 정해 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베드로도 시간과 장소를 정해 놓고 매일 같이 부지런히 기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속 베드로는 제 육 시, 즉 낮 12시에 지붕에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베드로가 기도하기 위해 올라간 지붕은, 평평한 곳으로 팔레스틴의 가옥 형태를 살펴보면 그곳이 제일 조용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받지 않고 묵상하고 기도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고넬료가 그리했던 것과 같이 베드로 역시 기도하는 가운데 환상을 보게 됩니다. 10-11절을 봅시다. “(행 10:10)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행 10: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0절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본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말에서 ‘비몽사몽’이란 말은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하기 힘든 상태 혹은 꿈처럼 어렴풋한 의식을 가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성경 원어에 사용된 ‘엑스타시스’라는 단어는 뚜렷한 의식 상태를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영적으로 몽롱한 상태에 빠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영적으로 각성하여 현상을 잘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환상 속에서 하늘이 열리고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퉁이가 끈에 매달려서 땅으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그 그릇 안에 무엇이 있나 살펴 보았습니다.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행 10: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베드로가 하늘에서 내려온 보자기 안을 보니 율법에서 먹지 말도록 금해 은 정한 짐승과 곤충과 새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레위기 11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먹을 수 있는 동물은 땅에 사는 짐승의 경우 새김질하고 동시에 발굽이 갈라진 짐승입니다. 바다에 사는 생물의 경우 비늘과 지느러미가 둘 다 있는 것만 먹을 수 있습니다. 왜 이러한 생물만이 정결하다고 간주되는지 그 이유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땅에 사는 생물의 경우, 정한 짐승에는 소, 양, 염소, 사슴, 노루 등 주로 풀을 먹고 살고, 비교적 온유하고 평화스러운 동물들이라는 사실만 알 수 있습니다.
13-1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행 10: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행 10:14)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행 10:15)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행 10: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 환상 중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그것들을 잡아먹어라.” 아마도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시험하신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이 동물들 잡아먹기를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주님,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속되고 부정한 것은 한 번도 먹은 일이 없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또 다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아라.” 이와 똑같은 환상이 무려 세 번이나 반복된 뒤에 보자기는 다시 하늘로 들려서 올라갔습니다. 이 환상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환상을 통해서 배드로에게 부정한 짐승을 깨끗하게 하셨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짐승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부정하게 여겨지던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깨끗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백성이 될 수 있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베드로는 이 환상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기도가 끝난 후 베드로는 지금 자신이 본 환상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뜻을 아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이 때 마침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가 머물고 있는 집을 찾아왔습니다. 이들은 집 문 밖에 서서 ““베드로라는 시몬이 여기 계십니까?”라고 크게 소리쳐 물었습니다.” 지붕 위에서 기도하는 베드로는 자신을 찾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조금 전 그에게 나타난 환상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 때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세 사람이 너를 찾고 있다. 일어나 내려가거라. 그들은 내가 보낸 사람들이니, 주저하지 말고 그들을 따라가거라.” 지붕에서 내려온 베드로는 세 사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내가 그대들이 찾는 사람, 베드로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러자 그 사람들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희는 고넬료라는 로마 백부장이 보낸 사람들입니다. 고넬료는 의로운 사람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모든 유대인들에게도 존경을 받는 사람입니다. 한 거룩한 천사가 고넬료에게 나타나 당신을 집으로 모셔다가 당신이 하는 말씀을 들으라고 분부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멀리 서 온 이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그가 머무는 집에서 유숙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저희와 함께 고넬료가 머물고 있는 가이사랴로 함께 떠났습니다.
만일 베드로가 기도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기도하는 가운데 받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었더라면, 그는 이방인 고넬료의 집으로 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율법의 정결규정에 의하면 유대인은 이방인하고 식사 교제를 할 수 없고, 생활 교제도 금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베드로가 기도하는 가운데 그의 생각과 태도를 변화시키셨습니다. 그의 인식을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를 만나러 길을 나서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들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기도하는 고넬료와 기도하는 베드로에게 동시에 환상을 보여주심으로써 그들이 서로 만나게 되는 사건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하심 가운데 일어난 결과입니다. 고넬료와 베드로는 전혀 모르는 사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둘을 묶어 주셨습니다. 고넬료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줄 전도자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하나님은 그에게 최고의 전도자 베드로를 붙여 주셨습니다. 고넬료가 기도하는 동안 그에게 가장 필요할 것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에게는 기도하는 동안 그가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으로서 다음에 가야할 사역의 방향으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들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만일 우리 삶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베드로와 고넬료처럼 시간과 장소를 구별하여 매일 같이 기도하며 살아가십시오. 그 때 우리 삶은 하나님의 선명한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고넬료에게 가장 필요한 전도자 베드로를 붙여 주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사람을 붙여 주십니다. 베드로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상황을 열어 주십니다. 기도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앞서 우리는 기도하는 고넬료를 찾아온 천사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성경에서 천사가 나타나는 장면들을 살펴보면 역사의 중요 전환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주의 택하신 자들을 특별하게 인도하실 때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또한 선지자들과 사사들에게 새롭게 사명을 주시거나 말씀을 주실 때 나타났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천사가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기 위해서 나타났고, 또한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승천을 알리기 위해서 나타났습니다. 이와 같이 천사는 아주 특별한 때 나타났습니다. 자, 그렇다면 본문 속 기도하는 고넬료에게 천사가 나타났다는 사실은 오늘 이 본문이 성경에서 중대한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바로 이방인에 대한 구원의 확장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향하고 있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제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땅 끝까지 증거되는 그 신호탄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8장을 보면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가 빌립 집사의 전도를 통해서 이방인으로서 최초로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공식적으로 교회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넬료가 베드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나서, 세례를 받고 성령께서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임하실 때 기독교의 역사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기독교 공동체가 공식적으로 이방인들에 대한 선교에 대한 문을 열게 되는 놀라운 계기가 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땅 끝까지 주님의 복음이 전파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넬료와 베드로의 삶처럼 우리들의 삶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풍성한 삶이 되겠습니까? 성령께서 일으키시는 역사의 파도를 타고 주와 함께 사역할 수 있다면 얼마나 큰 기쁨이겠습니까? 그 모든 것은 바로 기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들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들의 삶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정해진 시간과 장소를 두고 기도하고 계십니까?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주님의 역사를 위해 쓰임 받는 이 시대의 베드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키워드에 대한 정보 베드로 와 고넬료
다음은 Bing에서 베드로 와 고넬료 주제에 대한 검색 결과입니다. 필요한 경우 더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의 다양한 출처에서 편집되었습니다. 이 기사가 유용했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베드로와고넬료
- 동영상
- 공유
- 카메라폰
- 동영상폰
- 무료
- 올리기
베드로와고넬료
YouTube에서 베드로 와 고넬료 주제의 다른 동영상 보기
주제에 대한 기사를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베드로와고넬료 | 베드로 와 고넬료,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