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 의 싹난 지팡이 | 아론의 싹 난 지팡이 – 한홍 목사 : 갓피플Tv 191 개의 자세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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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7 KLB – 아론의 싹난 지팡이

아론의 싹난 지팡이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각 지파 지도자들의 지팡이를 가져오게 하여 그 지팡이에 각 지도자의 이름을 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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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gateway.com

Date Published: 4/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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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의 싹난 지팡이의 3가지 의미

먼저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하나님의 권위를 드러냅니다. 족장들의 지팡이는 권위를 상징합니다. 모세가 부름을 받을 때에 지팡이가 변하여 뱀이 되게 한 기적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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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revhong.com

Date Published: 11/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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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의 싹난 지팡이의 깊은 의미(작성자; 손진길 목사) – 블로그

지금까지 아론의 싹난 지팡이에 싹이 나고 꽃이 펴서 열매를 맺는 이적이 발생한 것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론은 아론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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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naver.com

Date Published: 7/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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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의 싹난 지팡이” 민수기 17:1-11 (10/07/2018)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저기 간직하여 반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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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cboston.org

Date Published: 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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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7:1-8 아론의 싹난 지팡이 – 기독신문

본문 중 8절의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기독론으로 볼 때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이는 동시에 그를 믿는 자도 이같이 부활할 것을 예표하는 말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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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idok.com

Date Published: 6/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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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새3: 아론의 싹난 지팡이(민17:1-13)

(8절) 보통나무에서는 싹과 꽃과 열매가 일시에 생겨나기 않기에 이것은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론의 마른 지팡이에서 싹이 난 것은 하나님의 능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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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likumc.org

Date Published: 12/18/2021

View: 5480

갓모닝브레드 – 아론의 싹난 지팡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역사하시는 지팡이는 싹이 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아론의 마른 나무지팡이는 교만과 시기, 질투, 원망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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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pyungkang.com

Date Published: 5/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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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의 싹 난 지팡이 - 한홍 목사 : 갓피플TV
아론의 싹 난 지팡이 – 한홍 목사 : 갓피플TV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아론 의 싹난 지팡이

  • Author: 갓피플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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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7. 11. 2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qFq3n2SLh_Y

아론의 싹난 지팡이의 3가지 의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에 모세를 지도자로 그보다 3살 많은 형 아론을 제사장으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한지 38년 정도 지났을 때였습니다. 모세와 아론의 사촌 형제 가운데 레위 지파의 고라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왜 모세와 아론만 리더십과 제사장직을 수행하는지 불만을 가지고 족장 250명과 함께 반역을 일으켰습니다(민 16장). 하나님은 이에 대하여 진노하시고 그들을 모두 지진으로 심판하셨습니다. 또 원망하는 백성들이 염병으로 인하여 14,700명이나 죽는 재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일 후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각 지파 족장의 지팡이들과 레위 지파 중에서는 아론의 지팡이를 법궤 앞에다 두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보니까 오직 아론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고 열매가 맺혀있었습니다(민 17:1-10).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먼저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하나님의 권위를 드러냅니다. 족장들의 지팡이는 권위를 상징합니다. 모세가 부름을 받을 때에 지팡이가 변하여 뱀이 되게 한 기적은 하나님이 직접 모세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애굽 왕 바로에게 보내신 권위를 보여줍니다(출 4:5). 고라는 왜 모세와 아론만 지도자직과 제사장직을 수행하는지 불만을 가졌는데 이것은 탐욕과 하나님의 권위를 부정한 불순종의 죄에 기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에 대한 예배나 제사법 그리고 사역자를 당신이 직접 정하십니다. 고라의 반역에 충동된 당시 족장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마음이 마른 막대기와 같이 메말라있었고 그 결과 원망과 불평의 바이러스에 그만 전염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죽지 않고 살려면 원망을 그치고 하나님의 말씀과 권위에 반역해서는 안됩니다(민 17:10; 고전 10:10). 우린 또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역사하시는 지팡이에만 싹이 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고라와 같은 사람들을 따라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권위로 직접 세우신 종이나 사역자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영혼이 삽니다.

아론의 지팡이는 또 예수님의 생명을 예표합니다. 하나님은 싹이 난 지팡이를 통하여 아론의 제사장직을 확립하게 하셨습니다. 아론과 그의 후손들은 완전한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오실 때까지 제사장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아론은 초대 대제사장으로서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입니다. 마른 지팡이에게 생명이 주어진 장소가 어디였습니까? 바로 회막 안의 법궤 앞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법궤 앞에서 우리와 만나신다고 하셨습니다(민 17:4). 아론의 싹난 지팡이로 말미암아 법궤의 물품도 완성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의 법궤이십니다. 주님은 율법의 완성자이며, 생명의 만나이시며, 우리의 부활과 생명이 되십니다.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난 것처럼 예수님은 초라한 연한 순 같았지만(사 53:2), 그 안에 생명력이 충만하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게 됩니다(민 17:5), 마찬가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고 부활과 영생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요 11:25). 예수님의 십자가는 살아있는 생명의 막대기였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이 직접 세우신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거부하게 된다면 고라와 같이 망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아론의 지팡이는 성령의 열매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생명으로 움이 돋고 싹이 난 우리들은 이제 열매를 맺어야만 합니다(민 17:8). 세례 요한이 설교한 것처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눅 3:8). 자기 의(self-righteousness)를 버려야만 합니다. 죄의 뿌리가 깊어질수록 뽑아내기가 힘듭니다. 그 뿌리가 깊어지지 않게 매일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제하여 버리실 것입니다(요 15:2). 여기에서 열매 맺지 않는 가지는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예수님을 따르지만 마음의 중심에 변화가 없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잘라내십니까? 우리는 잘 모릅니다. 예수님은 가라지 비유에서 가라지를 뽑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가라지처럼 보이지만 알곡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열매가 없어도 하나님은 오래 동안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더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하나님의 가지치기(pruning)의 과정을 인내하며 감당해야 합니다(요 15:2).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농사는 결국 자기 인생의 농사입니다(눅 10:20). 우리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성령의 9가지 열매(갈 5:22-23)와 겸손과 전도의 열매 등을 맺어야 합니다.

우리도 과거에는 죽은 나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통하여 생명의 싹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기 때문에 우린 주님의 십자가와 말씀만을 붙잡아야 합니다(요 6:63). 우리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지팡이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예수님의 생명으로 충만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는 아론의 지팡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의 깊은 의미(작성자; 손진길 목사)

게시판 최근 손진길목사 설교문 아론의 싹난 지팡이의 깊은 의미(작성자; 손진길 목사) 소지기 ・ URL 복사 본문 기타 기능 공유하기 신고하기 제목; “아론의 싹난 지팡이의 깊은 의미”(민17:1-10, 요11:23-27, 히9:4) 설교일; 주후 2020년 11월 29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11월 27일 작성) 히브리서의 저자는 지성소에 비치가 되어 있는 유일한 성물인 언약궤와 그 뚜껑인 속죄소 안에는 3가지의 보물이 들어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 언약의 돌판,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입니다(히9:4); ​ 그런데 솔로몬 대왕이 예루살렘성전을 건축하고 언약궤를 지성소에 들여놓을 때에는 모세의 언약의 돌판을 제외하고 나머지 보물들은 벌써 사라지고 없습니다(대하5:10). 뿐만 아니라 주전 586년에 다윗왕조의 유다왕국이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말았기에 성전의 보물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오늘날 성물들이 전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왕하25:13-16). 그렇다면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는 무엇이 남아 있는 것일까요? 한마디로 여호와의 성물들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그것의 의미가 성경의 기록으로 살아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성물들이 내포하고 있는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생애를 통하여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생생하게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저는 오늘의 본문을 중심으로 다음 세가지 사항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민수기 제17장에 기록되어 있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의 의미가 무엇인가? 둘째, 그 의미가 예수님의 부활과 영생에 관한 설명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가? 셋째, 언약궤 안에 보관된 세가지 보물 곧 만나와 돌판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제부터 구체적으로 하나씩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출애굽 제2년 봄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10정탐꾼의 가나안 정찰보고를 듣고 절망에 빠지고 맙니다.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자신들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가 없는 거인들의 땅이라고 예단합니다. 따라서 얻을 수 없는 땅으로 자신들을 인도하는 여호와를 불신하고 패할 수 밖에 없는 전쟁을 사전에 피하기 위하여 지도자를 교체하고자 합니다; ​ 이스라엘 12지파의 장로들과 지휘관들의 행동이 여호와신앙에서 이탈한 것임을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모세의 시종인 여호수아가 강력하게 지적하지만 백성들의 불신앙은 여전합니다. 오히려 갈렙과 여호수아를 돌로 쳐서 죽이고자 나섭니다. 그것을 보시고 여호와께서 강림하셔서 반역의 주동자들을 모조리 처단하고나서 모세를 통하여 심판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고 마십니다. 반역에 참여한 죄를 물어 20세 이상 어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출애굽 40년까지 광야를 헤매다가 전부 죽고 만다는 것입니다; ​ 그 결과 하루에 80명이상의 어른들이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맙니다. 참고로 계산의 방법이 다음과 같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들은 20세 이상인 남자들 곧 장정들이 60만명이나 됩니다(출12:37). 또 그만한 수의 여인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120만명의 어른들이 출애굽 2년부터 40년까지 광야에서 죽게 됩니다. 120만명 나누기 14,235일(365일 곱하기 39년)을 하면 평균 84명 정도가 매일 광야에서 향년을 맞이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비극을 맞이하는 운명이 되지만 그래도 이스라엘 12지파의 장로들과 지휘관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기 보다는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의 책임을 더욱 추궁하고자 합니다. 그 방법이 두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가 고라의 반역 사건입니다. 또 하나는, 아론의 대제사장직에 대한 도전입니다. 조금 설명을 해봅니다. 모세의 사촌인 고라가 불만세력을 선동하여 모세의 지도체제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고라는 개인적으로 사촌인 아론의 집안만이 모세의 도움으로 제사장의 직분을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것이 불만입니다; ​ 자신의 집안도 그만한 자격이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론의 집안을 제사장 가문으로 선택하신 여호와의 주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 행위입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심판을 받고 맙니다; ​ 고라의 반역사건에 동참한 세력이 둘입니다; 첫째가 르우벤 지파의 장로들입니다(민16:1). 그들은 12지파의 앞장을 유다지파가 서고 있는 것이 불만입니다(민2:9). 이스라엘의 장자가 자신들의 조상인 르우벤인데 어째서 4남에 불과한 유다의 자손들이 여전히 득세를 하고 있는가? 하는 불평입니다; ​ 둘째가 이스라엘 12지파 군대의 지휘관 250명입니다(민16:2). 그들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군부의 지도자들이 북벌에 나섰을 때 최고지도자인 모세가 여호와께 승전의 기도를 드려주지 아니하여 호르마에서 대패하고 말았다고 원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 군부의 잘못을 반성하지 아니하고 모세에게 모든 잘못을 뒤집어 씌우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심판과 판결이 있었고 모세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군부의 지도자들은 뒤늦게 최고지도자인 모세의 허락을 구하지도 아니한 채 일방적으로 북벌에 나선 것이기 때문입니다(민14:39-45). 여호와께서는 고라 도당의 반역사건을 강력하게 다스리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아론의 대제사장 권한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불만은 자신들도 때로 성령의 임재로 예언을 하기도 하며 이제는 율법의 지식도 상당한데 어째서 아론만이 성소에서 가장 가까이 여호와를 섬길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러한 백성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가 있을까요? 그때 사용하신 여호와의 방법이 바로 ‘아론의 싹난 지팡이’입니다. 이스라엘 12지파의 지도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십니다; “12지파의 지휘관들은 각자 지팡이 하나씩을 취하여 자신들의 이름을 적고 증거궤 앞에 두라. 레위 지파는 아론의 이름을 적어 둔다.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선택한 제사장 집안의 지팡이에서는 싹이 날 것이다. 그와 같은 여호와의 이적을 보게 되면 백성들은 모든 원망을 그치고 여호와의 뜻에 따라 죽음의 심판을 면하도록 하라”(민17:2-7, 10절 요약). 여기서 여호와의 이적은 “이튿날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열매가 열린 것”입니다(민17:8). 아론이 제출한 지팡이는 마른 나무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재질이 이미 죽은 나무입니다. 그런데 고목나무에 꽃이 피는 것 정도가 아니라 어떻게 죽은 나무에 생기가 들어가서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일까요? 그러한 기적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 핵심은 죽은 자의 부활입니다. 따라서 그 의미의 연장선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부활의 말씀이 요한복음 제11장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르되 주여 그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11:23-27). 둘째로, 예수님의 부활과 영생의 말씀은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어떻게 연결이 되고 있는 말씀일까요? 한마디로, 마른 지팡이 곧 죽은 나무가 다시 살아나서 열매를 맺는 것은 창조주 여호와의 권능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왜냐하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죽은 자를 살리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은 스스로 부활하여 영생을 향유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러한 존재가 있다고 한다면 그 자는 창조주의 아들의 영광을 얻은 자일 것입니다. 그와 관련하여 이제는 예수님이 친구 나사로를 무덤속에서 불러내시는 내용을 잠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과 3일후 무덤속에서 부활하신 사건이 예루살렘에서 발생하기 얼마전에 근교인 베다니에서 나사로의 부활사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나사로의 부활사건과 예수님의 부활사건의 차이를 웅변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 나사로는 부활한 다음에 다시 향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결과 그는 다시 무덤속으로 들어가고 맙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에게 영생을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 점은 예수님께서 벌써 요한복음 제5장 제24-29절에서 상세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나사로의 경우와 다릅니다. 3일후 무덤속에서 부활하여 그 영생의 몸으로 베다니에서 40일후에 그대로 승천을 하시기 때문입니다(눅24:50-51, 행1:9-10); 그리고 제자들에게 두가지 약속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하나가, 재림의 약속입니다(행1:11). 또 하나가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여 또다른 보혜사로 성령님을 성도들에게 보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요14:16). 예수님께서 얻으신 그 부활과 영생의 몸 그리고 승천이 장차 성도들에게 그대로 임한다고 하는 사실을 사도 바울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3:10-12). 흔히 세상사람들이 고목나무에 꽃이 핀다고 말합니다. 그 의미는 죽은 것처럼 보이는 고목나무에서 새싹이 돋아나오고 있는 것이 신기하여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그 경우와는 다릅니다. 그것은 고목나무가 아니라 완전히 죽은 나무가 부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주권에 속하는 창조의 권능이라고 하는 것은 죽은 것을 되살리는 온전한 부활의 능력입니다. 그 다음 그 부활의 몸을 입고서 영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놀라운 미래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성도들에게 믿음의 소망 가운데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언약궤에 보관이 되고 있는 것 세가지는 그 순서로 보아, 만나와 모세의 두 돌판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입니다. 만나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이 세상에서 주고 있는 물질적인 양식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매일 공급되는 양식을 위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마6:11). 그 다음으로 성도들이 영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이 필요합니다(마4:4). 그러므로 성도들은 시내산의 모세처럼 또는 회막 안의 모세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영적으로 만나 그 말씀을 들어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모세의 두 돌판이 상징적으로 전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은 영육간의 양식을 모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의 믿음의 결정체는 역시 부활과 영생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부활이란 선민들이 말하고 있는 죽은 다음의 부활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제11장에서 베다니의 마르다가 바리새인 랍비들로부터 배워서 그런지 그와 같은 죽은 다음의 부활에 관하여 알고 있으며 그것을 예수님께 말하고 있습니다(요11:24). 하지만 그것은 마치 아론의 싹난 지팡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단지 죽은 다음에 발생하는 부활만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성도들의 관심사항은 그 정도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살아 생전에 그 부활과 영생의 은혜를 다소나마 맛볼 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활과 영생을 영적으로 믿음안에서 미리 맛보고 누릴 수가 없을까요? 그와 같은 관점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6). 살아 생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믿으며 그 제자로 살아간 성도들은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영생에 들어갈 수가 있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어째서 그것이 가능할까요? 요컨대,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여 또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성도들에게 보내어 주시기에 그와 같은 일이 영적으로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생전에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훗날 그와 같은 사실을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지금까지 아론의 싹난 지팡이에 싹이 나고 꽃이 펴서 열매를 맺는 이적이 발생한 것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론은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주님의 부활과 영생을 미리 말하고 있는 일종의 예표이며 나름대로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구약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묵상하시면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영생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그리스도의 부활과 영생에 참여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인쇄

“아론의 싹난 지팡이” 민수기 17:1-11 (10/07/2018)

아프리카 오지에서 죽어 가는 생명들을 구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슈바이처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한번은 흑인 환자들을 위한 모금 운동을 하기 위해 고향에 들렸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위대한 성자를 마중하기 위해 기차역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1등 칸이나 2등 칸에서 나오리라는 마중객들의 예상과는 달리 허름한 3등 칸에서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사람들은 왜 편안한 자리를 마다하고 굳이 허름하고 비좁은 3등칸을 이용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 열차엔 4등 칸이 없더군요.”

아무나 아프리카 오지에 가서 선교를 할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슈바이처 처럼 낮은 곳을 찾는 것이 삶의 습관이 된 사람들만 가게 되나 봅니다. 아니 이런 사람들만이 가서 참 선교를 하게 될줄 압니다. 흑인 원주민보다 더 낮아지려고 하니 슈바이처의 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최고의 치료를 받곤 했을줄 압니다.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 가득찰 때 비로서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이 찾아 올 것입니다. 아니 우리 크리스챤들이 이런 삶을 살 때 평화가 찾아 올 것입니다.

그런데 슈바이처와 같이 낮아지는 삶을 사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을 보면 잘 알수 있습니다. 요즘 수요여성공부에서 민수기를 공부하고 있는데 저도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있습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통해 여러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법궤 안에 세 가지를 넣어두라고 하셨습니다. 당연히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이구요. 그 다음으로는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가 담긴 항아리입니다. 세 번째로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입니다. 한편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지 않을수 없었던 이야기가 오늘 본문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을 먼저 살펴 보면, 한 마디로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신 동기는 인간들의 시기 질투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시키시고 광야를 통과케 하시는데 지도자로 모세와 아론을 세웁니다. 처음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할 때는 모세와 아론을 잘 따랐습니다. 처음에 잘 따르던 이들이 이제 광야 생활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아론의 자손을 제사장으로 세우시니 드디어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합니다. 민수기 16:1, 2절 말씀을 보면,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 있는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

두 그룹이 불만을 터뜨리는데 한 사람은 고라이고 또한 그룹은 이를 따르는 르우벤의 자손들입니다. 그리고 고라는 제사장이 된 아론의 사촌입니다.

사촌인 아론과 그의 자손들이 제사장이 되고 자기와 자기 자손은 제사장들이 시키는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는데 정확히 바로 고라 이야기입니다.

또 한 그룹은 르우벤의 자손들입니다. 르우벤은 야곱의 12 아들중 맏아들입니다. 야곱의 장자인 셈입니다. 그런데 자기네가 누구의 명령을 들어야 합니까? 레위 지파에 속한 모세의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르우벤 자손들은 장자 자손인 자기들이 모세의 지도를 받아야 하는게 못마땅 했던 것입니다.

결국 아론의 사촌인 고라와 야곱의 장자 르우벤의 자손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반항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지위관 250명이 합세합니다. 결과만 말씀드리면 민수기 16:49절 말씀입니다.

“고라의 일로 죽은 자 외에 염병에 죽은 자가 만 사천 칠백 명이었더라.” 곧 고라와 르우벤의 자손의 교만으로 인해서 이렇게 비참한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에게 크게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17:2, 3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지파가 지팡이 하나씩을 가져 오되 지팡이에 각 지파의 이름을 쓰게 합니다. 예를 들어 르우벤 시므온 유다… 베냐민. 그런데 예외가 있습니다. 레위 지파는 아론의 이름을 쓰게 합니다. 이처럼 이름을 쓰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4, 5절 말씀입니다.

“그 지팡이를 회막 안에서 내가 너희와 만나는 곳인 증거궤 앞에 두라.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에게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열두 지팡이를 증거궤 앞에 놓습니다. 그리고 하룻밤을 지냅니다. 모세는 밤새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12 지팡이 중에 한 지팡이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날 것을 생각하며 깊은 잠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궁금했을 것입니다. “싹이 나면 어떤 싹이 날까 어떻게 날까?’ 등등…. 아울러 또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면 더 이상 아무 소리 못하겠지….’ 8절 말씀입니다.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모세는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모세는 싹만 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싹이 나고 꽃이 피어서 열매가 열렸는데 살구 열매가 열렸습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는데 살구 나무 열매가 맺힌 것을 보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놀랐을 것입니다.

마른 지팡이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 것을 보고 안 놀랄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특히 그렇게 놀랐을까요?

사실 성막 안에 여러 성구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촛대입니다. 촛대의 모양이 살구나무입니다. 살구꽃으로 장식되어져 있습니다.

촛대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인데 살구꽃으로 장식된 이유가 있습니다. 정확히는 아몬드 꽃인데 아몬드 꽃의 원어적 뜻은 ‘awakening’입니다. 아몬드 꽃은 추운 겨울에 잎이 나기 전에 먼저 꽃이 핍니다. 가장 먼저 피는 꽃으로서 봄이 올 것을 알려주는 꽃입니다.

그래서 촛대도 아몬드 꽃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빛이 비추는 곳은 아몬드 꽃처럼 새로운 봄이 옴을 알려준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아론의 지팡이에 살구꽃 아니 아몬드 꽃이 피었습니다. 모세는 새로운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아론의 지팡이 안에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보게 된 것입니다. 아론의 지팡이는 결코 죽은 지팡이가 아니었습니다. 아론의 지팡이는 새로운 봄이 오는 것을 알려주는 지팡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모세는 모든 지팡이를 각각의 지파들에게 나눠 줍니다. 각 지파 족장들은 자기들의 지팡이와 아론의 지팡이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더 이상 아론과 모세를 괴롭히지 말자.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이다,’ 사실 이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를 9절 말씀이 밝히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저기 간직하여 반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생각이 듭니다. 만일 단순히 그들로 인해 죽지 않게 하신다면 이처럼 살구꽃이 피고 열매까지 맺히게 하실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냥 처음 말씀하신대로 싹만 나게 하셨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죽은 지팡이에 아무 싹이라도 나면 그 누구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을 부정할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살구꽃이 피고 열매도 열리게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지난주 한인 목회실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영어권 목회자들과 만나서 미래의 한인 목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침 경건회 시간에 한 영어권 목회자가 은혜로운 설교를 해서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중 이런 표현을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긴 하지만 참으로 보지 못한다”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사실 두 가지 영어 단어로 말했는데, 많은 사람이 look은 하지만 see를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종종 “I see”라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이는 ‘알았다’라는 뜻입니다. 곧 look은 겉을 보는 것이지만 정말 안까지 보는 것은 see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look만 하고서 다 본 것처럼 산다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는 새교우 환영반이 있는데 첫 시간은 서로 돌아 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3, 4분하게 하십니다. 자기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는 우리는 look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우리는 see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론의 지팡이에 살구꽃을 피우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look으로 끝내지 말고 see를 하라는 뜻입니다. Look만 한 사람은 어떤 교훈을 받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아론과 모세에게 반항하면 죽는 거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싹이 나게 하신 첫번째 이유입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본 사람들은 모두 깨달았을 것입니다.

‘잘못하면 죽는구나….’

그런데 그보다 한 단계를 더 넘은 사람 곧 ‘see’한 사람들은 어떨까요? 그들은 죽음을 넘어 생명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세우신 이유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구나….’ 깨닫게 됩니다. 그 꽃핀 지팡이에서 이스라엘의 희망을 봅니다. 온 인류의 미래를 봅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슈바이처의 4등칸을 찾는 모습에서 우리는 희망을 느끼지 않습니까? 삶의 희망을…. 흑인들의 희망을, 아니 거기서 더 나아가서 인류의 희망을…..

아이러니칼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교만을 통해 새로운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교만해서 아론과 모세를 배반했습니다. 그들의 지도권을 거부했습니다. 250명의 장군이 두 사람을 죽이려 한 것입니다.

장군들의 손에 든 창 칼 앞에서 아론의 지팡이는 갈대 지팡이와 같았을줄 압니다. 아무 쓸데 없어 보이는 아론의 지팡이를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을 배반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살리고자 하시는 의지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한편 그것을 넘어서 생명의 축제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see를 하는 자들에게…. See를 하는 자들은 아론의 지팡이를 통해서 새로운 희망의 세계를 보게 된 것입니다.

오늘 세계 성찬 주일이자 정의 평화환경주일로 지킵니다. 우리가 오늘 성찬식을 거행한 이유는 빵과 잔을 보면서 look으로 끝내지 말고 see를 하기 위함입니다. 보이기에는 빵과 잔이지만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님의 살과 피를 보기에 오늘 성만찬에 참여한 것입니다.

그러면 빵과 잔을 먹고 마신 우리들은 정의 평화 환경 주일을 맞이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look에서 see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많은 분들이 잘 아실줄 압니다. 현재 태평양 바다에는 쓰레기들로 새로운 섬들이 생겨 있습니다. 영어로는 garbage patch라고 하는데, 스크린을 보시면,

이처럼 태평양에 플라스틱으로 인해 생긴 큰 섬들이 있습니다. 이 섬들을 우리는 먼저 look해야 합니다. look하는 사람들은 결단하시게 될줄 압니다. ‘계속 이러다 보면 우리 모두 죽겠구나.’ 우리는 좀 더 플라스틱이나 스트로폴들을 사용하는 것을 자제하셔야 할줄 압니다.

그런데 한 단계 더 나아가서 see를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공해를 보고 look에 멈추지 않고 see를 하는 분들을 소개해는 동영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자연을 보며 희망의 세계를 느끼곤 한 성 프란시스의 태양의 찬가입니다.

오! 감미로워라, 가난한 내 맘에 한없이 샘솟는 정결한 사랑

오! 감미로워라, 나 외롭지 않고 온 세상 만물 향기와 빛으로

피조물의 기쁨 찬미하는 여기 지극히 작은 이 몸 있음을

오! 아름다워라, 저 하늘의 별들 형님인 태양과 누님인 달은

오! 아름다워라, 어머니이신 땅과 과일과 꽃들 바람과 물

갖가지 생명 적시는 물결, 이 모든 신비가 주 찬미, 찬미로

사랑의 내 주님을 노래 부른다.

자연을 look한 것을 넘어 see한 성 프란시스의 시입니다.

성 프란시스가 요즘도 살아 있다면 인간의 교만으로 망가진 자연 세게를 보면서 어떻게 하셨을까요?

먼저 look했을 것입니다. 인류의 멸망을 경고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곧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곧바로 see했을 것입니다. 동영상에서 보신 강에 흐르는 플라스틱으로 공원을 만드는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look과 동시에 see를 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아론의 지팡이를 보여주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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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7:1-8 아론의 싹난 지팡이

본문 중 8절의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기독론으로 볼 때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이는 동시에 그를 믿는 자도 이같이 부활할 것을 예표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법궤 내에 두게 하셨습니다.

또 교회론으로 볼 때에는 부활에 근거하며 주님의 몸된 교회는 8절 말씀처럼 움도 돋고 순도 나고 꽃도 피고 살구 열매도 열리는 살아 약동하는 교회, 증거를 지닌 교회가 돼야 함을 교훈합니다. 이는 개인적으로도 신앙인에게는 이같은 증거가 나타남을 뜻합니다.

갈 5:22-23에도 하나님의 사람에겐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맺힘을 말씀했습니다. 성도의 신앙과 생활에는 생명이 약동하여 움이 돋고, 순이나 잎이 무성하고, 아름다운 꽃과 향기가 있고 그리고 모든 이를 기쁘게하는 충실한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아론 그는 하나님께서 지목하신 자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세상에 증거하기 위해 지목된 자입니다.

오늘 아론은 그의 삶에 이같은 증거가 없을 때에 16:1-2처럼 고라, 다단, 아비람 그리고 250명의 유명한 족장들이 당을 짓고 대적하고 거역함이 일어나 많은 어려움과 손실을 당했고 세인들에게도 덕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는 그때만 아니라 지금도 그러합니다. 성도에게 신앙의 증거가 없을 때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도전을 받게 됩니다. 또 이웃, 친지, 가족, 불신자, 이방 종교로부터도 도전을 받습니다.

『네가 하나님을 믿느냐? 생명의 종교를 가졌느냐? 그렇다면 그 증거가 어디에 있느냐?』고 도전을 받을 것이며 교회안에서도 아론의 때처럼 내분이 일어날 것입니다. 당을 짖고 대적하고 거역함이 일어날 것입니다. 생명력이 없을 때 마귀는 역사합니다. 또 증거없는 신앙은 속화 될 수밖에 없음을 오늘 본문이 말씀합니다.

실제로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난 증표가 있은후 모든 자들의 입이 다물어졌고 대적이 그쳤습니다. 10월의 개혁의 달을 맞아 우리 각자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역사하시는 증거가 있는지 그리고 그 증거가 가족들, 교우들, 친지와 이웃들이 증명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교회는 늘 이같은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입니다.

얼마전 주간 지면을 통해서 본 세계 종교 현황에 이슬람교도들이 11억8천만명, 로마가톨릭이 10억, 힌두교도가 8억, 불교도가 3억6천, 기독교 신도가 약2억9천이란 보도를 보았고 또 국내의 기독인의 숫자도 정체 내지 감소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속히 개인과 교회전반의 신앙에 대해 구체적인 재점검을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점검의 기준은 초대교회에 비추어 점검할 것입니다. 초대의 예루살렘 교회나 안디옥 교회 그리고 당시의 대다수의 교회는 내외적 성장과 변화 그리고 칭찬으로 교회가 날로 확장해 왔습니다. 칭찬을 들으며 하나님의 나라는 꾸준히 발전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이 그 증거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의 진단과 처방은 무엇입니까. 더 하나님 중심 더 말씀 중심 더 교회 중심의 신앙을 위해 개혁한 우리에게 적어도 로마 가톨릭보다는 더 많은 구원 사역의 결실이 있어야 하고 종교 개혁 당시보다 더 많은 개혁의 결실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진단과 처방에는 여러 가지 안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의 정치와 제도 그리고 신학의 방향 등 여러 가지 진단과 그에 대한 처방도 많겠지만 가장 우선 해야 할 것은 하나님 말씀으로 자신을 먼저 정확히 진단함 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광야 교회가 여러 가지 문제로 얽혀 큰 시련 중에 있지만 가장 먼저 사역자들 자신부터 진단하고 치료해 나갈 때 모든 문제는 평정되고 교회는 그 사명을 다시 힘있게 감당해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도 우선 사역자 자신부터 진단해 가야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정체된 교회의 해답이 보일 것입니다. 본문에서 진단 및 치료점을 찾아봅시다.

8절의 아론의 싹난 지팡이의 증거가 있기 위해 4절을 보면 3가지 교훈을 얻게 됩니다. 1)아론의 그 지팡이를 희막 안에 두었다는 것입니다. 희막 안이란 지성소에 두었다는 말씀이고 지성소에 두었다는 말씀은 우리의 신앙에 증거가 있으려면 뜰의 신앙이나 성소의 신앙이 아닌 지성소의 신앙이어야함을 교훈하는 것입니다.

지성소 신앙이란 구속신앙에 근거하여 자원하는 신앙으로 하나님께 더 충성하고 싶고 더 쓰임받고 싶고 드려도 드려도 아쉽고 더 헌신하고 싶은 그러면서도 감사한 신앙이 지성소 신앙일 것입니다. 형식이 아니라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어떤 직분때문에서가 아니라 우러러 나오는 마음으로의 신앙일 것입니다. 기도에도, 찬양에도, 전도에도, 봉사에도, 예배에도 지성소 신앙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먼저 지성소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2) 내가 너와 만나는 곳인, 이는 면전의 생활을 말씀합니다. 구약의 족장 요셉은 언제나 하나님 면전의 생활을 가졌습니다. 부모님 밑에 있을 때에도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에도 옥중에 있을 때에도 총리로 있을 때에도 언제나 하나님 면전의 신앙을 가졌습니다.

사람을 의식하기에 앞서 먼저 하나님을 의식하는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과의 끝없는 영적교통의 생활을 중단없이 계속했습니다. 그런 신앙에 생명력 이 있는 법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오늘도 무소부재하심을 믿고 나부터 면전의 생활을 교통의 생활을 에녹처럼 요셉처럼 철저히 소유해야겠습니다.

3) 증거궤 앞에 두라, 즉 철저히 말씀에 입각한 신앙생활 말씀을 뜻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역사 없는 이유는 말씀을 떠나서 신유나, 이적이나, 신비한 체험이나 사랑의 역량이나 물질 등, 세속조건 등을 의지하므로 하나님의 증거가 희귀합니다. 증거의 신앙을 위해 말씀이 육신되신 예수님처럼 말씀과 일치하는 신앙을 가질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4장 12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증거의 신앙을 위해 철저히 말씀을 지켜 이루는 신앙이 됩시다.

바울사도는 빌 11:13절에서 그리스도안에 있을때에 자족도, 일체의 비결도, 내게 능력 주시는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했습니다. 내가 그 말씀지키면 그분 내 기도를 들어 주실 것입니다.

4) 이 증거의 신앙 생명력의 신앙을 위해 마지막으로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은 8절 첫머리의 ‘이튿날’이라는 말씀입니다. 이튿날이란 말씀은 지팡이를 밤새도록 두었다는 말씀이요 즉 성도는 밤을 잘 선용하라는 말씀입니다. 밤의 의미는 낮의 반대의 개념으로도 볼 수 있고 또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경제적으로도 혼돈의 를 뜻하기도 합니다. 즉 밤은 「잠자는 시간」 「허비의 시간」 「어둠의 시간」 「혼돈의 시간」 「죄악과 고난의 시간」 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선진들은 이 밤의 시간을 잘 선용했습니다. 남이 쉴 때 다 쉬고, 남 잘 때 다 자고 남이 명절이라고 휴가라고 다 놀 때 같이 다놀면 언제 기도하고 무슨 역사를 기대하겠습니까?

삼상 3:3 사무엘은 어릴때부터 성전서 밤을 지새웠습니다. 시77:2 성왕 다윗은 밤에 손을 들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대상 17:3 선지자 나단도 밤에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대하 1:7, 7:12 지혜자 솔로몬도 밤을 워 기도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언제나 밤을 지새워 기도하셨습니다.

성도는 말세에 밤 시간을 잘 선용할 것입니다. 죄악 때, 고난의 , 환란 때에 밤을 지세워 기도할 것입니다. 아무리 영적으로 혼돈하고 마귀가 역사하며 시련의 때를 당해도 밤을 깨울 때 사명을 감당할 힘과 지혜를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들어 증거자로 쓰실 것이고,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아무리 마른 막대기라도 증거와 생명 역사 있을 것입니다.

밤 시간을 깨웁시다 살구나무는 「깨우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혁의 달을 맞아 나부터 살구나무 「솨케드」 「깨우다」의 신앙을 가집시다. 그럴때에 증거는 절로 나타날 것이며 또 내가 살 때 교회는 개혁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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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의 싹난 지팡이

아론의 싹난 지팡이

민17:8

생명의 말씀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250명의 고라 일당들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지도력에 불복함으로써 결국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론을 제외한 11지파의 지팡이는 마른 지팡이였지만 아론의 지팡이만큼은 생명의 지팡이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지팡이는 우리의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론의 지팡이에만 싹이 나게 함으로써 불신과 원망의 씨앗을 근원적으로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백성들이 완전히 모세와 아론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권위에 굴복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역사하시는 지팡이는 싹이 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아론의 마른 나무지팡이는 교만과 시기, 질투, 원망과 불신의 지팡이가 사라지고 생명의 지팡이만이 영원히 남아 소리치고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이 내용을 볼 때 바로 각자 나 자신이 마른 막대기와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마른 나무 지팡이같은 존재라 할지라도 예수를 믿음으로 싹이 나고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 살구 열매가 열리는 존재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순이 나고 꽃이 피는 것은 ‘깨어있다’는 뜻입니다. 생명 없는 마른 나무에 열매가 맺혀 ‘소생’하였습니다.

움은 오늘이 아니라 내일입니다. 아침입니다. 성장을 의미합니다. 꽃을 향해 전진합니다. 미래의 열매를 내다보는 웃음입니다. 이 움은 썩은 고목과 같은 내 속에서 새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시작되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순은 식물의 싹입니다. 그곳에서 줄기와 가지와 잎과 꽃과 열매가 생기게 됩니다. 순은 씨가 땅에 떨어져 죽을 때 나타나는 열매이기에 부활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연한 순’으로 말씀하셨습니다(사53:2). 순은 연약한 존재이지만 생명적인 요동이 멈추질 않는 존재입니다. 순은 땅 속에 있을지라도 단단한 땅을 뚫고 빛을 향해 자라가는 불가항력적인 요동이 있습니다.

<기도제목>

움이 돋고 싹이 난다는 것은 생명과 부활에 대한 상징입니다. 아론의 마른 나무 지팡이에 이러한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처럼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생명의 역사가 움터올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Aaron’s Budded Rod

Numbers 17:8

The Word of Life

“Now on the next day Moses went into the tent of the testimony; and behold, the rod of Aaron for the house of Levi had sprouted and put forth buds and produced blossoms, and it bore ripe almonds.”

Korah and 250 leaders rebelled against God’s chosen leaders and ultimately against His authority. From this incident, God made Aaron’s dry rod sprout and put forth buds among the 12 rods. Aaron’s rod represents our living Lord, Jesus Christ.

God resolved the question of His chosen leaders by having the dry rod sprout and bud. After this, the people acknowledged Moses and Aaron’s positions and submitted to God’s authority. God said, “It will come about that the rod of the man whom I choose will sprout”. Aaron’s rod abolished rods of pride, jealousy, envy, grumbling, and disobedience and showed that only God’s eternal rod will remain.

There are many times in lives when we are dry like the rods. However, by faith in Christ, God will make our dry rods to sprout and put forth buds, producing blossoms, and bearing ripe almonds. When the rod sprouts and buds, we are alert and awake. Trees without life will be made alive to bear fruits.

Sprouting is today and not tomorrow. It is the morning. It describes developing and leads to budding. There is hope in the future with blossoms. Sprouting represents Jesus changing our fruitless state to be made alive. Budding is the beginning of blossoming and leads to vines, branches, leaves, flowers, and fruits. Blossoming represents resurrection where the seeds will drop to the ground and bear fruits. Jesus described Himself as a tender shoot (Isaiah 53:2). The shoot may be weak but contains life. While the shoot is buried under the ground, it will make its way out of the hardened ground toward the sun.

“Prayer Request”

키워드에 대한 정보 아론 의 싹난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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