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 아리스토텔레스 : 형이상학 (Feat. 플라톤) 최근 답변 17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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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에는 두 개의 기둥이 있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인데요. 여기에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사람이 플라톤이고요, 손바닥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는 사람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였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다른 철학 체계를 제시했습니다. 그래서 플라톤에 대비하여 아리스토텔레스를 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보다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도 플라톤과 비교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이야기할 겁니다.
오늘의 주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인데요. 형이상학. 많이 들어는 봤는데 형이상학이 뭔지 잘 모르겠죠. 뭐 그냥 뜬구름 잡는 걸 형이상학이라고 그러는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래요. 그런데 형이상학이라는 용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직접 사용한 말은 아니예요.
형이상학이라는 말의 어원은 이렇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엄청나게 많은 글을 남겼는데요. 제자들이 신통치 않았나봐요. 이 양반 빼고요. 제자들이 이걸 정리를 안 해 놓은 겁니다. 그러다가 기원전 3세기 경 안드로니쿠스라는 양반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을 정리하고 있었어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에 관하여 많은 글을 남겼는데 안드로니쿠스가 글을 정리하고 여기에다가 자연학, physics 라는 책으로 묶었어요. 그런데 어떤 글들은 자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제목도 없는 정체불명의 글들이 있는 겁니다. 안드로니쿠스가 이것들을 갖다 붙일데가 없으니까 이것들을 묶어서 physics 뒤에다 붙히면서 mataphysics 라는 이름을 붙힌 겁니다. 여기에서 meta는 ~다음에 라는 의미예요. 그러니까 Physics 다음에 있는 글이라는 의미예요. 그런데 meta라는 말이 ~다음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을 넘어서 ~을 초월해서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metaphysics가 어떤 초월적인 궁극의 질문들을 다루는 학문이라는 의미가 된 겁니다. 그 후에 일본의 학자들이 Metaphysics를 번역할 때 주역의 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에서 따와서 형이상학(形而上學)이라고 번역을 했다고 합니다.
자. 그렇다면 형이상학이라는 뭘까요? 글쎄요. 형이상학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뭐 간단하게 말해서 형이상학이란 존재하는 것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들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하는 것을 무엇이라고 보았을까요? 이것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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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형이상학》(形而上學, 고대 그리스어: τὰ μετὰ τὰ φυσικά, 라틴어: Metaphysica)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술한 철학원리 책들(the principal works) 가운데 하나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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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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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 YES24

[스탠퍼드 철학백과의 항목들] 시리즈의 1권으로 코헨의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선보인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 대한 저명한 연구자인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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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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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정리 – 네이버 블로그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과 질료를 개념적으로는 구분하지만, 실제적으로 둘은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실체는 형상과 질료의 복합체인 것이다. 이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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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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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1 – 공부하는 세무사

무엇보다도 “형이상학”이라고 하는 제목 자체가 아리스토텔레스가 붙인 것이 아닙니다. 후대의 학자가 편집할 때 《자연학》 다음에 이 책을 배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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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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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 (形而上學 · Metaphysics) –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에 따르면, 형이상학은 존재의 근본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의 근본을 연구하는 부문을 “제1철학”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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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hedulife.com.au

Date Published: 1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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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읽기 – 아트앤스터디::

철학서양고대철학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읽기 · 강사 : 김진성 · 강좌구성 : 18강 | 41교시 | 13시간58분 · 수강기간 : 6개월 수강 · 제작년도 : 2009년 | 일반화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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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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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 형이상학 (feat. 플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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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 Author: 5분 뚝딱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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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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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형이상학》(形而上學, 고대 그리스어: τὰ μετὰ τὰ φυσικά, 라틴어: Metaphysica)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술한 철학원리 책들(the principal works) 가운데 하나이자 철학의 첫 번째 주요 주제였다. 형이상학의 주요 주제는 “있는 것으로서의 있는 것” 혹은 “존재 자체로서 존재”이다. 이는 무엇이 있다는 것에 대한 주장을 함으로써 증명되며, 그것이 지닌 특별한 질적 특성에 기인하지는 않는다. 아울러 형이상학은 서로 다른 유형의 원인, 질료와 형상, 보편과 개체등의 개념을 다루며 최종적으로는 제일원인에 대해 언급한다.

요약 [ 편집 ]

형이상학은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철학적 작업으로 간주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고대 그리스 철학, 일부 이슬람 철학자, 스콜라주의 그리고 단테와 같은 문학가들에게까지 깊은 영향을 미쳤다. 사실 형이상학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의 아카데메이아에서 이루어졌던 일상적 감각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을 조화시킨 작업의 결과이자 자연과학적 탐구에 대한 결과물이다. 플라톤의 일원론에 따르면 실제 사물계는 영원하고 불변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우리가 지각하고 있는 주변세계(물질계)는 일시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재적 통찰은 플라톤의 주장 곧, 명백하게 상반된 두 세계관을 조화시키는 데서 빛을 발한다. 그 결과는 경험론의 자연주의적 이해와 플라톤의 합리주의의 통합이며 이는 1천년 이상 서구 지성사를 지탱하는 근간이 되었다.

형이상학이라는 이름은 로도스의 안드로니코스가 기원전 1세기 후반 로마에서 편집 간행한 전전(全典)에서 <자연학(Physics)>의 뒤(Meta)에 놓인 위치로 해서 <자연학의 뒤의 서(Meta-Physics)>라고 불리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은 후세의 형이상학에서 의미하는 내용의 것을 ‘프로테 필로소피아(Prote Philosophia)'(제일 철학) 또는 ‘테올로기케(Theologike)'(신학)라 하여, 존재 내지 실체란 무엇인가를 해명하는 일을 중심 과제로 하여 연구에 천작하였다. 그는 존재 내지 실체란 무엇인가를 해명하는 일을 중심 과제로 하였다. 이를 위해 ‘있는 것’들에 대한 보편적이고 일차적인 것을 보이려고 하였다.

보다 구체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술한 형이상학의 내용에는 세 가지 핵심 질문이 있다. 첫째, 존재란 무엇이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어떻게 분류되는가? 둘째, 어떻게 어떤 대상이 지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음에도 우리가 실제 세계에서 이 변화를 경험할 수 없는가? 셋째, 이 세상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술할 당시는 고대 그리스 철학이 태동한지 200여년 남짓 했을 시기였다. 이 당시 그리스 사람들은 우리 곁에 있는 자연세계의 변화를 둘러싸고 이를 설명하기 위한 방법론과 이론들을 구체화 하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당시의 두 대조적인 이론가로는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를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주장한 바는 다음과 같다. 그가 보기에 모든 사물은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거쳐 변화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멈춰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세계는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변화를 일으키는 구조 위에 자리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파르메니데스는 감각을 배제한 이성적 사고와 그 결과로 나온 존재만이 실재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 주장에 동의한다면 우리의 이성은 고정되어 불변하고 영원한 것으로 간주된다. 나아가 이 세계는 유동적인 다양성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 하나의 진실과 실제 위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플라톤의 이론은 상반된 두 시각을 통합시킨다. 현실 세계에 있는 어떠한 대상도 불완전한 상태에 있고 변화 가능성 위에 놓여 있다. 그리고 현실 세계에 존재하므로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이 각각의 사물들은 이데아 계의 완전성을 분유 하고 있는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가령 플라톤은 의자가 많은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이데아계에는 오로지 단 하나의 완전한 형태의 의자만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60년 대략 18세 경 그가 아카데미아에서 수학 할 당시 물질에 대한 이론을 공부했다. 그는 자연학에 대한 학습내용을 곧장 형이상학이라는 개념으로 확장시켜나갔다. 그가 보기에 현존하는 모든 대상에는 변화가 있고 그 기저에는 그것을 가능하게끔 하는 원인이 있으며, 설령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대상이 있다면 변화의 결과로써 존재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가 태어나기 이전에 그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그가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질료’가 변화의 대상이라고 밝힌다. 이 질료가 소크라테스에게 소크라테스일 수 도록 ‘형상’을 부과해주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 내의 모든 대상에는 질료와 형상이 혼재되어 있음을 주장하게 되었다. 이 같은 이론은 질료-형상론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어 그는 자연스럽게 이로부터 ‘있는 것으로서 있는 것에 대한 지식의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간다. 그 결과 ‘과연 있다는것은 무엇이며, 그 있다고하는 것을 있게하는 것은 무엇인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모든 앎 중에서 가장 본질적 앎을 찾아내고자 노력했고. 결국 이들이 ‘원인’과 ‘원리’들에대한 앎이라고 주장한다. 이 앎에 대한 추구의 과정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있는 것으로서의 있는 것에 대한 지식의 존재’를 선언하고 그것의 주요한 기저와 범주를 제시한다. 이와 같은 일련의 논의가 자연스레 전개되는 과정 가운데 기체, 질료, 형상, 본질, 보편자, 능력, 활동 등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주요 개념들이 거론되고 이 개념들 사이의 연관성이 형성된다.[1]

칼 포퍼와 같이 형이상학에 대해 비판적인 학자들도 있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 ll 』

구성 [ 편집 ]

14권으로 된 본서는 그 과제를 다룬 논문의 집성(集成)이며, 처음부터 체계적 순서를 따라 써내려간 것은 아니었다. 각권 내용의 불일치에 주목하여 거기에 플라토니즘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독자적 철학에의 사상적인 발전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에겔의 연구(1923) 이래, 각각의 논문 집필 시기에 대해서 사상 발전사적으로 추정하려는 시도가 오늘날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대체로 몇몇 논문군(群)으로 분류된다.

내용 [ 편집 ]

1권은 아소스 체재 중의 철학사적 고찰, 이어서 3권은 철학 난문집, 나아가서 4권·6권이 계속되어 제1 철학의 대상인 존재로서의 존재와 존재의 다의성(多義性), 제1 철학은 보편학(普遍學)이냐 또는 신학(神學)이냐가 문제된다. 7권·8권·9권은 학두기의 실체론, 10권은 1과 다(多)의 문제, 12권은 8장을 제외하고는 초기의 신학론, 13권과 14권은 수(數)와 이데아 내지 이데아 수의 관계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13권 1-9장이 그 뒤를 받아 같은 주제가 거론된다.

아리스토텔레스 가문에는 조부대대로 의가의 경험적·실증적인 정신의 혈통이 흘러 그것이 동력이 되어 자연학, 특히 생물학 영역에서 큰일을 하게 했다.한편 플라톤의 수제자로서 이데아론의 영향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플라토니즘의 정신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두 정신의 견제 가운데서 존재 내지 실체의 포착 방법에서도 그의 사색은 말하자면 양극 사이를 항상 크게 동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때문에 형이상학의 내용 규정에 있어서도 플라톤 주의로부터 실증 경험주의로 직선적으로 사상이 발전하였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이데아론을 엄격하게 비판하면서 그의 독자적인 존재론이 형성돼 오기는 하지만 신학적인 면이 완전히 불식(拂拭)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경험 형이상학이라고나 칭할 수 있는 것은 1권에서도 엿보인다. “모든 인간은 나면서부터 알고자 한다. 그 증거로서 감각의 애호가 간취된다. 그 뜻은 결국 감각은 그 효용을 빼고 생각하더라도 이미 감각하는 것만으로써도 애호되기 때문이므로”라고 말한다. 이 생래적(生來的)인 지식욕이 감각에서 기억으로, 기억에서 경험으로, 나아가 기술과 학문으로 발전되는 양상을 발생적으로 포착하여 “경험자보다도 기술자 편이, 또한 직공보다는 동량(棟樑)의 편이, 그리하여 제작적인 지(知)보다도 관조적·이론적인 지의 편이 한층 더 많은 지혜를 가진다”고 설파한다. 최고의 지혜는 오로지 인식시키기 위하여 인식한다고 하는 특권을 가지며, 무릇 모든 제1 원인을 대상으로 하는 학(學), 모든 학의 왕자, 최고선을 알며 그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유일하고 자유로운 학, 가장 신적(神的)이어서 외경될 만한 것이다. 왜냐하면 신은 모든 것에 있어서 원인의 하나이며 어떤 종류의 원리(始動因)라고 생각되며, 또 이와 같은 학은 신만이 소유할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제1 원리 원인의 학, 즉 제1 철학은 동시에 신학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이 정리한 4원인(質料, 始動, 形相, 目的)론에서부터 그 이전의 학설은 모두 불충분한 것으로 밀어버렸고, 특히 스승인 플라톤의 이데아(形相)론은 이재성(離在性)·초월성으로 인하여 감각물의 존재와 해명에 아무런 소용이 되지 못한다고 거부한다. 더욱이 이 이데아의 감각물로의 내재화(內在化)가 그의 생애의 과제였다고 할 수 있다. 12권의 신학에서 목적론적으로 포착된 자연의 생성과 운동의 원인인 신을 부동(不動)의 동자(動者)로서 사유(思惟)의 사유, 자기 사유라고 역설했으며, 종장을 “많은 통치자는 바람직하지 못하며 하나의 통치자야말로 바람직하다”고 결론을 맺으면서 만년에 당시의 천문학적 산정(算定)에 의한 천체 운동의 수에 맞추어 다수의 부동의 동자를 도입한 8장이 병존(倂存)하는 것은 그의 제1 철학의 복잡성을 생각하게 한다. 이데아의 내재화 노력은 존재를 실체로 좁히고 감각물을 실체로 보아 그 본질을 아토몬 에이도스(最低의 種)에 있어서 정의하려고 한 7권과, 더욱이 그러한 실체를 가능성(質料)과 현실성(形相)의 결합으로서 동적으로 포착하려고 한 8권에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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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편집 ]

↑ (철학사상 별책 제 권 제 호 7 9 , 토픽맵에 기초한 철학 고전 텍스트들의 체계적 분석 연구와 디지털 철학 지식지도 구축,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전헌상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06)file:///home/sam/Downloads/1_078.pdf

같이 보기 [ 편집 ]

참고 [ 편집 ]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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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정리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작가 새뮤얼 이녹 스텀프, 제임스 피저 출판 열린책들 발매 2004.09.10. 리뷰보기

본문 141~151 참조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식의 층위를 나눈다. 첫 번째 지식이란 감관을 통해 인지한 지식이다. 이런 종류의 지식은 감각한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지혜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에게 있어 지혜란 대상이나 현상을 감각하고 식별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과 현상의 원리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는 현상의 원리를 파악하는 학문을 “과학”이라고 부른다.

이런 과학에는 물리학, 윤리학, 정치학, 미학이 포함된다. 이들은 각각 물리세계, 윤리세계, 정치체계, 예술체계의 원리를 탐구하는 과학으로서 감각 이상의 것을 탐구하는 학문들이다. 그리고 이런 개별과학들의 상위에 있는 과학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형이상학이다. 이 형이상학은 최상의 과학으로서 실재 자체를 탐구하는 것이다.

형이상학의 탐구 대상은 원리 중의 원리, 존재하는 것 중 가장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가장 추상적인 것을 다룬다. 이런 형이상학의 특성에 따라 여러 형이상학에 관한 주제가 나누어진다.

1. 형이상학의 과제

형이상학은 “존재의 의미”를 탐구한다. 즉 형이상학의 과제는 존재와 존재의 원리와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염두에 둔 존재란 논리학, 생물학에서 다루는 구체적인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존재이다. 이것들은 술어로서의 범주에 상응하는 것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들을 실체라고 부른다. 또 존재는 동태적 과정의 산물로서 실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게 형이상학은 존재, 실체들과 그 원인과 그 과정들과 관계된다.

2. 사물의 제1본질로서 실체

대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대상의 속성을 알 때보다 대상 그 자체를 알 때 보다 완전해진다. 이 구분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질적 속성과 우연적 속성을 구분한다. 형이상학적 탐구는 바로 어떤 대상을 대상 그 자체로 규명해줄 수 있도록 하는 본질적 속성을 탐구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 입각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를 “하나의 주어에 의해 단언될 수 없으며 모든 사물을 단언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한다. 즉 실체는 어떤 대상의 기초이므로 우리는 그 기초를 알아야 그 부가적인 속성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어떤 특정한 사물은 성질들과 그 성질에 상응하는 토대의 결합체이다. 이런 주장을 전제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질과 개체의 관계를 규명하고자 한다. 이는 실체의 토대가 형상인지 질료인지의 문제를 야기한다.

3. 질료와 형상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과 질료를 개념적으로는 구분하지만, 실제적으로 둘은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실체는 형상과 질료의 복합체인 것이다. 이런 주장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플라톤은 보편적 형상(이데아)이 존재하고, 이 보편적 형상을 각 개체들이 분유한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이런 생각에 반대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 가지 방향으로 플라톤의 보편적 형상 개념을 공격한다. (1) 첫 번째로, 그는 보편적 형상의 존재를 인정할 경우, 만물이 형상들의 세계에서 모사되어야 하므로 설명해야할 존재가 두 배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후 오컴의 면도날이라고 불릴 원칙을 적용하여 배척되어야할 주장이다. (2) 또한 플라톤에 따르면 플라톤의 보편적 형상은 운동하지 않는데,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런 보편적 형상은 개체들에 대한 지식에 어떤 것도 더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세계는 운동으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3) 마지막으로 보편적 형상은 비물질적이기 때문에 물질인 개체들과 어떻게 연관될 수 있는지를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플라톤의 분유개념은 만족스럽지 못한 대답이라고 비판한다.

이와같은 세 가지 비판을 거쳐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적 형상 개념이 일종의 시적 개념 내지는 말장난이라는 신랄한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그는 대리석 조각가의 예를 들며 형상과 질료는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는 것임을 보인다. 그리고 이 대리석 조각가의 예시를 통해 변화의 문제가 제기된다.

4. 사물의 변화 : 4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란 새로운 발생을 내포하기에 변화의 과정에 대한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이에 따라 네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그것은 무엇에 의해 만들어지는가? 그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 만들어지는가?

조각가의 예시를 여기에 적용하면, 대답은 <1> 입상 <2> 대리석 <3> 조각가 <4> 장식용이라는 대답이 나올 수 있다. 그는 자연도 이성적인 의미에서 목적을 가진 체계라고 주장했고, 이런 의미에서 인공물과 같은 질문이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자연의 변화는 네 가지 요소를 갖는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정리한다. 그 네 가지 요소란 <1> 형상인 <2> 질료인 <3> 작용인 <4> 목적인이다.

자연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활동이다. 이런 활동은 이성적 목적을 가지고, 자연법칙이라는 작용인에 의해 성장과 소멸을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형상을 이미 소유한 개체의 존재와 그 형상을 전달하는 질료를 선제해야 한다는 점에서 형상인과 질료인도 설명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형상과 질료의 분리불가능성에 관해서도 논한다. 이렇게 모든 사물은 4원인을 가지고 변화해나가는 존재인 것이다.

5. 가능태와 현실태

그는 인간의 경우에 있어서 소년과 어른, 자연의 경우에 있어 도토리와 나무의 경우를 들며 모든 존재는 성장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가능성의 상태로 남아있는 요소를 가능태라고 하고, 그 가능성을 실현한 것을 현실태라고 한다. 모든 운동은 사물들이 가능태를 내포하고 있기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봤듯, 가능태는 현실태가 존재해야만 등장할 수 있다. 즉 운동은 현실 존재가 상정되어야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동의 최초의 시작을 일으킨 최초의 원인, 즉 부동의 동자에 대해 논하게 된다.

6. 부동의 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부동의 동자를 생각하게 된 것에는 위와 같은 논지와 더불어 그리스적 사유의 특징에도 영향을 받는다. 그리스인들은 무한소급, 무한계열을 인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완결된 것만이 완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낙시만드로스 정도를 제외하면 이런 사유는 그리스 철학자들에게 공유된 것이다. 따라서 (1) 현실태가 가능태에 앞선다는 것 (2) 무한소급을 막는 제 1원인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 종합되어 완전한 현실태로서 부동의 동자 개념이 제시된다.

이런 부동의 동자는 창조자로서의 신 개념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부동의 동자는 사유하지도 않고 운동하지도 않는, 말 그대로 원리 그 자체, 존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물론 신학적인 면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은 신학보다는 과학에 더 가까운 것이다.

보다 기술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부동의 동자를 형상으로, 세계를 실체로 간주했다. 그는 부동의 동자가 목적인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어른의 형상은 소년 속에 존재하고 소년의 변화 과정은 최종적이고 자연적인 목적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한편 목적인으로서 부동의 동자는 세계와의 연관 속에서는 작용인이 된다. 자연적인 목적을 향한 노력을 고무시킴으로써 그 작용을 영속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동자에는 운동 및 내재적 형식에 관한 무의식적인 원리가 존재했다. 이 개념은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신에 대한 철학적 설명으로 변모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1

1권

옮긴이 머리말

I권(A)

II권(α)

III권(B)

IV권(Γ)

V권(Δ)

VI권(E)

VII권(Z)

VIII권(H)

부 록 369

1.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애

2.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목록

3. 자연의 사다리(Scala naturae)

참고문헌 375

찾아보기 395

무엇보다도 “형이상학”이라고 하는 제목 자체가 아리스토텔레스가 붙인 것이 아닙니다. 후대의 학자가 편집할 때 《자연학》 다음에 이 책을 배치하면서 그렇게 명명한 것 입니다. 《형이상학》이라는 책을 후대의 학자가 편집했다는 말 은 《형이상학》이라는 책이 독립된 단행본(또는 강의록)들의 묶음임을 의미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완결된 저작을 의도하고 쓴 것이 아닙니다. 《형이상학》은 제1권부터 제14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에서 가장 먼저 쓰인 것으로 알려진 부분이 제12권입니다. 있음과 운동 원리에 관한 독립적으로 완결된 강의로 이루어져 있고, 영원한 원동자라든가, 질료인, 형상인 등과 같이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핵심 개념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이상학》을 읽는다고 하면 무엇보다도 제12권을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제1권은 앎, 지혜(sophia)가 무엇인지를 규정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것에 더하여 선대 철학자들에 관한 논의가 들어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많은 경우 자신의 저작에서 선대 철학자들의 학설을 소개합니다. 물론 선대 이론을 있는 그대로 소개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이런 소개를 통해서, 자신의 저작을 남기지 않았거나 남겼다 해도 망실된 이들의 이론을 알 수 있습니다. 제2권은 철학연구에 대한 일반적 고찰과 탐구내용에 따른 방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철학 공부는 무엇이고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를 논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제3권은 일종의 강의 노트입니다. 철학이 다루어야 할 의문들에 대한 개관이 담겨 있습니다. 제4권은 흔히 말하는 존재론에 관한 기초를 다루고 있습니다. 존재론 일반 및 제일 실제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4권은 형이상학을 공부하고자 할 때 제12권 다음으로 열심히 읽어야 할 부분 입니다. 제5권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편집한 일종의 철학용어 사전입니다. 제6권은 제일 철학의 성격과 대상에 대해서 다룹니다. 제7권, 제8권, 제9권, 이 셋은 따로 따로 떨어져 있기는 하나 한 묶음 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두 실체에 관한 논의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10권은 존재, ‘하나’ 등에 관한 강의록입니다. 제11권은 《자연학》 제3권과 제4권에 있는 글을 가져다 모아둔 것입니다. 제13권은 플라톤의 이데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논증하고 있습니다. 제14권에서도 이 논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은 형이상학의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선과 악의 문제 등을 형이상학적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달리 말해서 플라톤에서처럼 좋음의 이데아 등이 초월적인 것으로 논의되지 않습니다. ‘자연학에서 인간학으로 전환’한 플라톤 철학에서는 무한정자로서의 인간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인간에 대해 논의하면서 인간 공동체(koinonia)를 다루게 되었고, 이는 좋음의 이데아가 상정되는 《국가》에서의 논의로까지 전개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가치의 문제를 초월적으로 논의하지 않습니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 《철학고전강의》, p180~182

I권

980a~980b

1. 앎은 감각에서 시작해서 기억과 경험과 기술을 거쳐 학문적 인식에 이른다

모든 사람은 본성적으로 알고 싶어한다. 다양한 감각에서 오는 즐거움이 그 징표인데, 사람들은 필요와 상관 없이 그 자체로서 감각을 즐기고 다른 감각보다 특히 눈을 통한 감각을 즐기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행동을 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아무 행동 의도가 없을 때도 ━ 사람들 말대로 ━ 만사를 제쳐두고 보기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감각들 가운데 시각이 우리가 사물을 아는데 가장 큰 구실을 하고 많은 차이점들을 밝혀준다는 데 있다. 동물들은 본성적으로 감각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그 중 몇몇의 경우에는 감각으로부터 기억이 생겨나지 않는데 반해, 몇몇의 경우에는 생겨난다.

980b~981a

반면 인간종족은 기술과 추론에 의해 살아간다. 사람들에게는 기억으로부터 경험이 생겨나는데, 왜냐하면 똑같은 일에 대한 여러 번의 기억은 마침내 하나의 경험 능력을 낳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험은 학문적 인식이나 기술과 거의 동질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학문적 인식과 기술은 경험을 통해 사람들에게 생겨난다.

981a

그런데 실제 행동과 관련해서 보면, 경험은 기술과 아무 차이가 없어 보이며, 오히려 우리는 유경험자들이 경험 없이 이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보다 더 능숙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게 된다(그 이유는, 경험은 개별적인 것에 대한 앎이지만, 기술은 보편적 인 것에 대한 앎이요, 모든 행동과 생성은 개별적인 것과 관계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의사는 ━ 부수적인 뜻에서가 아니라면 ━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칼리아스, 소크라테스 또는 그렇게 불리는 것들 가운데 어떤 사람, 곧 사람임이 속하는 것을 치료한다. 그래서 만일 어떤 사람이 경험 없이 이론만 가지고 있다면, 그는 보편적인 것은 알지만 그에 속하는 개별적인 것은 알지 못해서, 치료할 때 자주 잘못을 범하게 되는데, 치료받아야 할 대상은 개별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학문적인 앎과 전문적인 앎이 경험보다 기술에 더 많이 속한다고 생각하며, 기술자들이 유경험자들 보다 더 지혜롭다고 믿는데, 지혜는 어떤 경우에나 학문적인 앎을 따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앞의 사람들은 원인을 알지만, 뒤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유경험자들은 사실은 알지만 이유를 알지 못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이유와 원인을 알기 때문이다.

982a

또한 어떤 학문 분야에서나 더 엄밀하고, 원인들에 대해 가르치는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이 더 지혜롭고 학문들 중에서는 자기 목적적이요 앎을 목적으로 선택된 것이 파생적 결과들을 위해서 있는 것보다 지혜에 더 가까우며, 더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 예속된 것보다 지혜에 더 가까우니, 그 까닭은 지혜로운 자는 지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지시를 내리고 그가 다른 사람의 말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 그의 말을 따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혜와 지혜로운 자에 대해 이런 종류의 관념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안다는 특징은 필연적으로 보편적인 학문을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에게 속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이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 밑에 놓여 있는 것들을 모두 알기 때문이다.

987a~987b

6. 플라톤의 철학. 이 철학은 질료인과 형상인만을 활용한다

지금까지 말한 철학들에 뒤이어 플라톤의 연구가 출현했는데, 이 연구는 많은 점에서 앞 사람들을 따랐지만 이탈리아의 철학자들과 구별되는 고유한 점들이 있다. 플라톤은 젊은 시절 처음으로 크라튈로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의견들에 친숙하게 되었다. 이런 의견들에 따르면 모든 감각물은 언제나 흘러가는 상태에 있어서 이것들에 관한 학문적 인식은 존재하지 않는데, 그는 나중까지 이런 생각을 그대로 견지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윤리적인 것들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자연 전체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두지 않았지만, 윤리적인 것들에서 보편자를 찾고, 최초로 정의 들에 생각의 방향을 맞추었다. 플라톤은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정의는 감각물들이 아니라 그와 다른 것들에 대해서 성립한다고 생각했다. 즉 그는 감각물들은 언제나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 중 어떤 것에 대해서도 공통의 정의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플라톤은 그런 종류의 있는 것들을 이데아들이라고 불렀고, 모든 감각물은 그것들과 떨어져 있으면서 그것들에 따라서 이름을 얻는다고 말했다. 형상들과 같은 이름의 여러 사물들은 관여에 의해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관여’란 말을 쓰면서 이름만 바꿨을 뿐이다. 왜냐하면 피타고라스 학파는 있는 것들이 수들의 모방에 의해서 있다고 말하는데, 플라톤은 이름만 바꾸어, 관여에 의해서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형상들에의 관여나 모방이 어떤 것인지는 공동의 탐구과제로 남겨두었다.

III권

998a

(vi) 유들이 사물들의 첫째 원리들인가, 아니면 사물들에 내재하는 부분들이 첫째 원리들인가?

이런 문제들과 관련해서 진리에 이르기 위해 어떤 설명을 제시해야 하는지는 커다란 의문이지만, 원리들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즉 우리는 유들이 요소들이자 원리들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각 사물에 내재하는 첫째 구성 부분들이 원리 들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예컨대 목소리의 요소들과 원리들에 해당하는 것은 목소리들을 이루는 첫째 구성부분들이지, ‘목소리’라고 하는 공통적인 것이 아니다.

998b

(vii) 유들이 원리들이라면, 최상의 유들이 그런가 아니면 불가분적인 것들이 그런가?

더욱이 설령 유들이 최고 수준의 원리들이라고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긴다. 유들 가운데 첫째가는 것들을 원리들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아니면 불가분적인 것들에 대해 술어가 되는 최종적인 것들을 원리들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왜냐하면 이 문제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만일 언제나 보편자들이 더 높은 수준의 원리들이라면, 유들 가운데 최상의 것들이 원리들일 것인데, 왜냐하면 이것들은 모든 것들에 대해서 술어가 되기 때문이다.

999a

무엇 때문에 우리는 개별적인 것들과 떨어져서 그런 성질의 것이 있다고 생각해야 할까? 그런 것은 모든 것들에 대해 보편적으로 술어가 된다고 말하는데 그쳐서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999a

(viii) 개별적인 것들과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이 있는가?

이런 물음들과 이어져 있으면서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어렵고 이론적인 고찰의 필요성에서 볼 때 가장 절실한 의문이 있는데, 이제 이것에 대해 논의할 차례이다. 만일 개별자들과 떨어져서 아무것도 없고 개별자들은 무한하다면, 그 무한한 것들에 대해 어떻게 학문적 인식을 얻을 수 있을까? 왜냐하면 하나이자 동일한 어떤 것이 있고 보편적인 어떤 것이 주어져 있는 한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일 이것이 필연적이고, 마땅히 개별자들과 떨어져서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면, 필연적으로 개별자들과 떨어져서 유들이 ━ 최종적인 것들이든 첫째 유들이든 ━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과 관련해서는 방금 의문을 제기한바 있다.

999b

(A) 그런데 만일 개별자들과 떨어져서 아무것도 없다면, 지성적인 것은 전혀 없고 모든 것은 감각 가능할 것이며 어떤 것에 대해서도 학문적 인식이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가 감각을 학문적 인식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더욱이 영원한 것도 운동하지 않는 것도 없을 터인데, 그 이유는 모든 감각물은 소멸하고 운동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원한 것이 전혀 없다면, 생성도 불가능하다. […] 더욱이 만일 질료가 생겨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복합체에 앞서) 있다면, 어떤 특정한 시점에서 그 질료가 생성을 통해 되는 것, 즉 실체가 (처음부터) 있어야 한다는 것은 더욱더 이치에 맞는데, 왜냐하면 이것도 질료도 없다면, 전혀 아무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일 이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면, 복합체와 떨어져서 어떤 것, 즉 형태나 형상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1000a

(x) 가멸적인 것들과 불멸적인 것들의 원리들은 같은가?

지금 사람들에게나 이전 사람들에게나 어떤 것 못지않게 어려운 문제가 남아 있는데, 그것은 가멸적인 것들과 불멸적인 것들의 원리들이 동일한가 다른가라는 의문이다. 만일 그것들이 동일하다면, 어떻게 어떤 것들은 가멸적이고 어떤 것들은 불멸적인가, 어떤 이유 때문에 그런가? 헤시오도스의 추종자들을 비롯해서 모든 신학자들은 자신들의 눈에 그럴 듯해 보이는 생각을 해냈지만, 우리들의 관심사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들을 원리들로 삼으면서 신들로부터 모든 것이 생겨 났고 넥타와 암브로시아를 먹지 않은 것들은 죽는다고 말하는데, 이들은 분명 자신들에게는 친숙하게 이런 말들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런 주장은 당장 이 원인들을 다른 데 적용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볼 때 우리의 이해 능력을 벗어나게 된다. 그 이유는 이렇다. 만일 불멸하는 것들이 즐거움 때문에 그것들에 손을 댄다면, 넥타와 암브로시아는 결코 그들의 있음의 원인이 아니다. 반면 그것들이 (살아) 있기 위해 그것들에 손을 댄다면, 어떻게 영원한 것들에 음식을 필요로 하겠는가? 신화적으로 꾸며낸 생각들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논증을 통해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귀를 기울여, 동일한 것들로부터 유래함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있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본성상 영원하고 어떤 것들은 소멸하는지 캐물어 보아야 한다.

1000b

엠페도클레스에 따르면 싸움은 소멸의 원인이면서 그에 못지 않게 있음의 원인이라는 결론이 따라 나온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랑도 있음의 원인에 그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다른 것을 하나의 상태로 끌어모음으로써 그것들을 소멸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변화 자체의 원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그것들이 본성상 그렇다고 말할 뿐이다.

IV권

1003a

1. 우리의 목적은 있는 것 자체에 대한 탐구이다

있는 것을 있는 것인 한에서 그리고 그것에 그 자체로서 속하는 것들을 이론적으로 고찰하는 어떤 학문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개별 학문들 가운데 어느 것과도 같지 않은데, 그 이유는 다른 학문들 가운데 어떤 것도 있는 것을 있는 것인 한에서 보편적으로 탐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학문들은 있는 것의 한 부분을 떼어내서 그것에 속하는 부수적인 것을 이론적으로 고찰하는데, 예컨대 수학적인 학문들이 그렇다. 우리는 원리들과 최고의 원인들을 찾고 있기 때문에, 분명 그 자체로서 이런 것들을 갖는 어떤 자연적인 것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래서 만일 있는 것들의 요소들을 찾는 사람들이 찾았던 것이 바로 그런 원리들이라면, 그 요소들은 필연적으로 있는 것에 속하되, 부수적인 뜻에서가 아니라 그것이 있는 것인 한에서 속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있는 것인 한에서 있는 것에 속하는 첫째 원인들을 파악해야 한다.

1003a

2. 그러므로 우리는 첫 번째 뜻에서 있는 것, 즉 실체를 탐구하고, 하나와 여럿, 그것으로부터 파생되는 반대자들, 그리고 있는 것과 실체에 속하는 부수적인 것들을 탐구해야 한다

‘있는 것’은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이지만, 하나와의 관계 속에서, 즉 어떤 하나의 자연적인 것과의 관계 속에서 쓰이는 것이지 동음이의적으로 쓰이는 것이 아니다.

1003a~1003b

‘건강한’은 모두 건강과의 관계 속에서 쓰이는데, 어떤 것은 건강을 지켜준다는 뜻에서, 어떤 것은 건강을 낳는다는 뜻에서, 어떤 것은 건강의 징후라는 뜻에서, 어떤 것은 건강의 수용자라는 뜻에서 그렇게 불리고, ‘의술적’이라는 말 역시 의술과의 관계 속에서 쓰인다.

1003b

그러므로 있는 것들을 있는 것들인 한에서 이론적으로 고찰 하는 것은 하나의 학문의 과제임이 분명하다. ━ 그러나 어디에서나 학문은 주로 첫째 가는 것을 다루며, 다른 것들은 그것에 의존하고 또 그것에 의해 그 이름을 얻는다. 그런데 만일 이것이 실체라면, 철학자는 마땅히 실체들의 원리들과 원인들을 소유해야 할 것이다.

VI권

1025b

1. 신학, 즉 있는 것 자체에 대한 학문은 다른 이론적인 학문들, 즉 수학이나 자연학과 다르다

우리는 있는 것들의 원리들과 원인들을 탐구하되, 분명 있는 것인 한에서 그렇게 한다. 왜냐하면 건강이나 좋은 상태에는 원인이 있고, 수학적인 것들에도 원리들과 요소들과 원인들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사고의 학문이나 사고에 일정한 방식으로 관여하는 학문은 모두 ━ 더 엄밀하거나 더 단순한 ━ 원인들과 원리들을 다룬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있는 것의 일부, 즉 있는 것의 한 유에 국한해서 그것에 대해 연구할 뿐, 무제한적인 뜻에서 있는 것, 즉 있는 것인 한에서 있는 것에 대해서는 연구하지 않고, ‘무엇’에 대해서도 아무 설명을 하지 않은 채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은 뒤 ━ 어떤 학문들은 그것을 감각에 분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학문들은 ‘무엇’을 전제로 취한다 ━ 그런 방식으로 자신들이 다루는 유에 그 자체로서 속하는 것들을 ━ 더 필연성이 있거나 더 취약한 ━ 논증을 통해 밝힌다. 그러므로 실체와 무엇에 대해 논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런 종류의 귀납을 통해 분명히 드러나는데, (실체와 ‘무엇’에 대해서는) 다른 방식의 해명이 있다. 이와 같이 개별 학문들은 그들이 연구하는 유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니, 그 이유는 어떤 것이 ‘무엇’인지와 그것이 있는지 여부를 밝히는 것은 하나의 동일한 사고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1025b

자연에 대한 학문도 있는 것 가운데 한 유를 대상으로 삼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운동과 정지의 원리를 자기 안에 갖고 있는 실체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 실천적인 것도 제작적인 것도 아니다(왜냐하면 제작적인 학문들의 경우 그 원리는 제작하는 사람 안에 있으니 지성이나 기술이나 어떤 능력이 그 원리 에 해당하고, 행동들의 경우 그 원리는 행위자 안에 있으니 선택이 그 원리이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행동의 대상과 선택의 대상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모든 사고가 실천적이거나 제작적이거나 이론적이라면, 자연에 대한 것은 이론적인 것이겠지만 그 대상은 운동할 수 있는 것과 대다수의 경우에 적용되는 정식에 따라 규정되기는 하지만 분리가능하지 않은 실체일 것이다. 하지만 본질과 정식이 어떤 방식으로 있는지를 간과해서는 안 되는데, 그것이 없다면 탐구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의되는 것들과 ‘무엇’에 해당하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딱부리와 같은 방식으로 있고, 또 어떤 것들은 볼록함과 같은 방식으로 있다. 딱부리는 질료와 결합되어 있는 반면 (왜냐하면 딱부리는 볼록한 눈이기 때문이다), 볼록함은 감각적인 질료 없이 있다는 점이 그 둘의 차이다.

1026a

자연학이 이론적인 학문이라는 사실은 이로부터 분명하지만, 수학도 이론적인 학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운동하지 않고 분리가능한 것들을 다루는지는 지금으로서는 분명치 않다. 몇몇 분야는 분명 (수학적인 대상들을) 부동적인 한에서 그리고 분리가능한 한에서 이론적으로 고찰한다. 하지만 만일 영원하고 부동적이고 분리가능한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을 아는 것은 이론적인 학문에 속하는 일이 분명하지만 그것은 자연학의 일도 [자연학은 운동하는 것들을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수학의 일도 아니고 그 둘보다 앞서는 학문의 몫이다.

1026a

그러므로 세 분야의 이론적인 철학, 즉 수학과 자연학과 신학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신적인 것이 어딘가에 속한다면, 분명히 그것은 본성적으로 그런 것 안에 속하고, 가장 고귀한 학문은 마땅히 가장 고귀한 유에 대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론적 학문들은 다른 학문들에 비해 더 선택할 가치가 있지만 이론적인 학문들 중에서는 그 학문이 더 선택할 가치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첫째 철학이 보편적인지 아니면 어느 하나의 유, 즉 특정한 자연물에 대한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수학적인 학문들 사이에서도 탐구 방식이 동일 하지 않아서, 기하학과 천문학은 특정한 자연물을 대상으로 삼는 반면, 보편적인 학문은 그것들 모두에 공통적이기 때문이다).

김진성: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읽기

강좌정보

본 강좌는 서양철학사의 주저인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에 담긴 핵심적인 내용을 우리말 번역으로 읽어보면서, 철학이 무엇인지, 형이상학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데 목적을 둔다. 따라서 본 강좌는 텍스트 강좌임과 동시에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더 나아가 서양철학에 대한 입문 강좌의 성격을 띤다.

형이상학’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형체가 없는 학문을 다루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뜻을 빌어 왔다. 그러나 이 말 자체가 형이상학적이다. 이 말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형이상학’, 즉 ‘TAMETA TA PHISICA'(타 메타 타 피시카)라는 이 책의 제목은 아르스토텔레스가 붙인 것이 아니라, 기원전 1세기 후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을 최초로 편집한 안드로니코스(Andronikos)가 붙인 것이다. ‘자연학적인 저술들(타 피시카)’ ‘뒤에(메타)’ 위치시켰다는 뜻이다. TA가 관사이기 때문에 빼서

‘Metaphysica’라는 이름이 나오게 된다.

이름에 관해서는 여러 논쟁이 있어왔다.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용어를 썼다는 주장도 있다. 더 나아가서

meta라는 말을 넘어선다(trans)라는 의미로 해석해서 초월의 의미가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자연학적인 저술 뒤에 오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이런 자연적인 대상을 넘어서는 것들을 다룬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의 번역을 따르면 ‘형이상학’ 이 책은 초자연학, 자연학을 넘어서는 이론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을 ‘으뜸철학’이라고 했다. 형이상학이라는 것은 다루는 대상 자체가 자연학보다 더 우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북쪽, 마케도니아라는 지역의 스타게리로스라는 도시에서 384년에 태어났다. 의사집안에 태어나 부유하게 자랐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애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아카데메이아 시기(B.C 367~347) 아리스토텔레스는 B.C 367년에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Academeia)에 입교를 한다. 여기에 들어가서 천문학, 수학 등 여러 가지 이론을 배우게 된다.(오히려 플라톤이 없는 상태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독자적으로 사유를 하고, 이데아론에 대해서 비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지 않았느냐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2. 방황의 시기(B.C 347~335) B.C 347년에 플라톤이 사망한다. 플라톤이 사망하고 스페우시포스(Speusippos)라는 사람이 이끌어가게 되는데, 이것에 마음이 상한 아리스토텔레스가 아카데미아를 떠났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론적인 면에서 부딪쳤고, 마케도니아 출신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이후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소스를 거쳐, 서정시인 사포의 고향인 미틸레네라는 곳에도 갔다가 고향인 마케도니아 쪽으로 간다. 3. 리케이온 시기, 장인의 시기(B.C 335~322) B.C 335년에 아테네로 돌아와 자기의 학원을 설립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리케이온(Lykeion)이다. B.C 323년 알렉산더 대왕이 죽고, 반마케도니아 감정이 일어나게 된다. 아리스토텥레스는 마케도니아의 후원을 받고 활동했던 인물이라 피신해서 어머니의 고향인 칼키스로 가게 된다. 그곳으로 피난을 갔다가 B.C 322년 세상을 떠나게 된다. 리케이온에서 실제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시간은 12년 정도가 되는데 , 이 시기에 사상적으로 원숙한 모습이 드러났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에서 질문하는 근본 물음은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이 있음의 의미를 파헤치면서 그는 ‘있는 것’들의 으뜸가는 원인(또는 원리)들을 찾아 나선다.

있는 것들에는 오늘날의 표현으로는 물체들, 마음들(혼들), 사람들, 보편자들, 수들, 사실들 따위가 속하며, 이런 탐구 과정에서 그는 이런 것들이 모두 다 똑같은 의미에서 있는지 아니면 서로 다른 어떤 의미에서 또는 다른 정도로 있는지를, 그리고 있는 것과 관련된 개념들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묻는다.

그 결과 있는 것들 중에서도 실체가 양, 질, 관계 등의 다른 모든 범주들의 원인으로, 실체들 중에서도 으뜸 실체인 꼴(형상)이 다른 모든 실체들의 원인으로, 으뜸 실체 중에서도 영원불변의 신이, 천구들을 움직이는 이성(nous)들과 더불어 있는 것들 모두의 궁극적인 원인으로 드러난다. 신은 모든 존재와 변화의 끝에 ‘자신은 움직이지(변하지) 않으면서 다른 모든 것들을 움직이는 으뜸가는 것’(부동의 원동자)으로서 서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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