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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에는 두 개의 기둥이 있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인데요. 여기에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사람이 플라톤이고요, 손바닥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는 사람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였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다른 철학 체계를 제시했습니다. 그래서 플라톤에 대비하여 아리스토텔레스를 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보다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도 플라톤과 비교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이야기할 겁니다.
오늘의 주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인데요. 형이상학. 많이 들어는 봤는데 형이상학이 뭔지 잘 모르겠죠. 뭐 그냥 뜬구름 잡는 걸 형이상학이라고 그러는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래요. 그런데 형이상학이라는 용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직접 사용한 말은 아니예요.
형이상학이라는 말의 어원은 이렇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엄청나게 많은 글을 남겼는데요. 제자들이 신통치 않았나봐요. 이 양반 빼고요. 제자들이 이걸 정리를 안 해 놓은 겁니다. 그러다가 기원전 3세기 경 안드로니쿠스라는 양반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을 정리하고 있었어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에 관하여 많은 글을 남겼는데 안드로니쿠스가 글을 정리하고 여기에다가 자연학, physics 라는 책으로 묶었어요. 그런데 어떤 글들은 자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제목도 없는 정체불명의 글들이 있는 겁니다. 안드로니쿠스가 이것들을 갖다 붙일데가 없으니까 이것들을 묶어서 physics 뒤에다 붙히면서 mataphysics 라는 이름을 붙힌 겁니다. 여기에서 meta는 ~다음에 라는 의미예요. 그러니까 Physics 다음에 있는 글이라는 의미예요. 그런데 meta라는 말이 ~다음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을 넘어서 ~을 초월해서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metaphysics가 어떤 초월적인 궁극의 질문들을 다루는 학문이라는 의미가 된 겁니다. 그 후에 일본의 학자들이 Metaphysics를 번역할 때 주역의 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에서 따와서 형이상학(形而上學)이라고 번역을 했다고 합니다.
자. 그렇다면 형이상학이라는 뭘까요? 글쎄요. 형이상학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뭐 간단하게 말해서 형이상학이란 존재하는 것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들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하는 것을 무엇이라고 보았을까요? 이것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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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아리스토텔레스(고대 그리스어: Ἀριστοτέλης, 그리스어: Αριστοτέλης 아리스토텔리스, 영어: Aristotle, 기원전 384년 ~ 322년)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박식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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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3/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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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 나무위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수사학’에서 글을 서론-진술부-논증부-결론의 4문단으로 구성하자고 제안했는데, 서론은 짧고 인상깊은 표현을 통해 독자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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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9/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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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지식인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 – 브런치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달변가였다면, 플라톤은 저명한 문필가였고,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스트는 만물 박사라 할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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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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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s) | 작가 & 작품 – 교보문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 플라톤과 함께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위인이다. 1998년 저명한 현대 철학자들이 뽑은 “서양철학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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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7/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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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 – YES24 작가파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스승인 플라톤과 함께 2천여 년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위인이다. 1998년 저명한 현대 철학자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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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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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스승과 제자의 신경전? 아리스토텔레스는 왜 플라톤을 …

아카데메이아를 떠나 아스소스로 여행을 떠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그늘에서 벗어나 선생으로서 독자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기원전 343년, 42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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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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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헛된 일을 하지 않는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

이 연구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의 {자연학}에서 소개되고 논의되는 ‘변화’ 또는 ‘운동’에 관한 이론이 2400년이란 시간적인 공백을 뛰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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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rm.or.kr

Date Published: 9/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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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발달사의 모든 것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뉴턴.아인슈타인 …

Eratosthenes(BC 275경-BC 194경)지리학자, 수학자. 퀴레네 탄생으로, 아테네에서 배웠다. 프톨레마이오스 3세에게 초빙되어 무세이온의 관장이 되었다. 지구의 둘레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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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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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아리스토텔레스

Ἀριστοτέλης 작가 정보 출생 384년

스타게이라 사망 322년

스타게이라 학력 아카데메이아 종교 그리스 다신교 부모 니코마코스 (부) 배우자 Pythias

Herpyllis 자녀 니코마코스, Pythias

아리스토텔레스(고대 그리스어: Ἀριστοτέλης, 그리스어: Αριστοτέλης 아리스토텔리스[*] , 영어: Aristotle, 기원전 384년 ~ 322년)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박식가로, 플라톤의 제자이며,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다. 물리학, 형이상학, 시, 생물학, 동물학, 논리학, 수사, 정치, 윤리학, 도덕 등 다양한 주제로 책을 저술하였다.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함께 고대 그리스의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였으며, 그리스 철학이 현재의 서양 철학의 근본을 이루는 데에 이바지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은 도덕과 미학, 논리와 과학, 정치와 형이상학을 포함하는 서양 철학의 포괄적인 체계를 처음으로 창조하였다.

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도움으로 리케이온 학교에 도서관을 만들어 많은 자료를 수집하였으며 세계 최초의 동물원도 만들었다.[1] 자연과학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는 중세 학문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이러한 그의 견해는 뉴턴 물리학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게 되는 르네상스 시대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동물학 연구에서 그의 관찰은 19세기까지 정설로 인정되었다. 그의 글에는 가장 이른 시기에 이루어진 논리에 대한 형식 연구가 담겨 있으며, 이러한 그의 연구는 19세기 후반에 형식 논리학으로 구체화되었다. 형이상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800년 ~ 1400년까지의 중세시대 유대와 이슬람 전통에서 나타난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사상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기독교 신학에서는 초대교회의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에 영향을 주었고, 특히 서방교회 전통의 스콜라 철학과 관련하여 계속해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의 윤리학은 여전히 영향력이 있는데, 현대에 이르러 덕 윤리학(virtue ethics)의 출현과 더불어 새롭게 관심을 받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모든 측면은 오늘날에서 계속해서 활동적인 학문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는 스승 플라톤이 관념론적 이상주의임에 대하여 경험론적 현실주의자로 지적되고 있으며, 예술에 관해서도 플라톤과 다른 의견을 내세우고 있다. 예술을 일종의 ‘모방’으로 보는 점은 플라톤과 같으나, 플라톤이 ‘모방의 모방’으로 생각하여 이데아의 참된 인식을 흐려 놓는 것으로 인정한 데 비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신을 카타르시스(정화)시키는 것으로 보았다.[1]

아리스토텔레스가 여러 편의 품위있는 논문과 대화록을 저술했음에도(키케로는 그의 문체를 “황금이 흐르는 강”이라고 묘사하였다.)[2] 오늘날 그가 쓴 글의 대부분은 사라진 것으로 보이며, 원래 쓴 글의 3분의 1 정도만 남아있다.[3]

생애 [ 편집 ]

그리스 북부 할키디키반도에 위치한 트라키아 지방의 스타게이라에서 출생하였다. 부친 니코마코스는 마케도니아 왕 아민타스 2세의 시의(侍醫)였고, 모친인 파이스티스는 칼키스의 이민 출신이다. 왕자 필리포스 2세의 소꿉동무로 궁정에서 자랐으나 어려서 양친을 여의어 연고자인 프록세노스가 후견인이 되었다. 17세 때(기원전 367년)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에 입문하였다. 이후 플라톤의 사망시까지 약 20년 동안 그곳에서 연구에 정진, 학생 지도도 담당하였다. 이오니아 문화를 배경으로 의가(醫家)의 실증정신(實證精神) 아래 성장한 그에게 플라톤의 이데아 철학은 큰 영향을 주었다. 충실한 플라토니스트로서 출발한 그는 맹렬한 이데아 비판을 하면서도 거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그의 연구와 교수(敎授) 및 저작 활동은 대략 3기―아카데미아기(期)와 편력기(遍歷期)와 학두기(學頭期)―로 나눌 수 있다.

아카데미아기―저작은 기원전 360년경부터 시작된다. 먼저 플라톤의 대화편을 본떠서 ⟪그릴러스⟫ ⟪유디머스⟫ ⟪프로트렙티커스⟫(철학에의 권유) ⟪향연(饗宴)⟫ ⟪소피스트⟫ ⟪정치가⟫ ⟪메닉시너스⟫ 등 많은 대화편과 기타 글이 씌어져 간행되었다. 동시에 자연학을 비롯하여 그 밖의 연구도 시작되어 ⟪자연학⟫의 일부(제1, 2, 7권) ⟪천체론(天體論)⟫ 제1권과 ⟪정치학⟫ 제2권의 일부, ⟪데 아니마⟫ 제3권과 ⟪논리학⟫의 일부(⟪토피카⟫ 등)와 ⟪형이상학⟫(제12권) 등이 쓰여졌다.

편력기―플라톤이 죽기(전 347) 직전 아리스토텔레스는 참주 헤르미아스의 초청으로 아타르뉴스로 갔다. 아카데미아 학두에 취임한 스페우시포스의 수학주의(數學主義), 피타고라스주의에 만족하지 못한데다 올린토스의 함락으로 아테네에 반(反)마케도니아 운동이 일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페르시아에 대항하여 강대한 군대를 가지고 있던 참주의 보호 아래 왕의 질녀인 피티아스와 결혼하여 그 곳 가까운 아리스에 살면서 3년간을 강의와 연구로 보냈다. 학우인 에라스토스와 코리스코스도 같이 참가하였다. 여기에서 ⟪철학에 대하여⟫를 썼고 이데아나 이데아 수(數)의 비판이 시작되었다. 또 ⟪형이상학⟫ 제1, 2, 4, 5권과 ⟪에우데모스 윤리학⟫, ⟪자연학⟫ 제3-6권, ⟪천체론⟫(현재의 형태), ⟪생성소멸론⟫ 등을 썼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플라톤의 수제자 중 한 사람으로 레스보스 태생인 테오프라스토스의 알선으로 미치레네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이곳에서는 특히 생물학에 대한 연구가 발전되어 있었다.

기원전 342년에는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의 의뢰와 헤르미아스의 추천을 받아 알렉산드로스 왕자의 가정교사로서 미에자로 갔다. 왕자를 위하여 호메로스를 가르쳐 주었고 ⟪호메로스 문제⟫를 썼다. 또 ⟪군주정치론⟫ ⟪식민정책론⟫도 저술하였다. 기타 그리스인에 관한 국가제도의 수집이나 기록을 하였다. 그 일부인 ⟪아테네인의 국제(國制)⟫의 태반이 1891년에 재발견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헬라스의 통일, 즉 그리스의 폴리스군과 마케도니아 제국의 통일에 열심인 애국자였고 이것이 필리포스 2세의 야심에 합치한 듯하나, 후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서 융합 정책에는 동의하지를 못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우정은 변하지 않아 알렉산드로스는 동정(東征) 중 생물학상의 표본을 위시하여 다른 선물을 보냈다고 한다. 기원전 340년 알렉산드로스는 섭정(攝政)이 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스타게이로스로 물러가 연구생활을 계속하였다. 기원전 338년 그리스 연합군이 카이로네이아에서 패배, 기원전 336년 필리포스 왕은 암살되고 알렉산드로스가 즉위하였다. 이듬해인 기원전 335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재차 아테네로 돌아왔다.

학두기(學頭期)―마케도니아의 총독 안티파트로스의 원조로 아테네 동쪽 교외인 아폴론 리케이오스 성역 중 일반에게 공개하는 김나시온을 빌려 학교를 설립하였다. 이 학교는 리케이온이라 불리었는데 이곳에서 12년간 강의와 연구로 세월을 보냈다. 오전에는 상급반 연구자를 위하여 논리학과 제1차 철학을 강의하였고, 오후에는 수사학, 정치학, 윤리학 공개 강의를 하였다. 현존하는 저작의 대부분은 이 학두기의 강의 초고이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죽음이 전하여지자 반마케도니아 운동이 재연(再燃)되었다. 마케도니아와 관계가 깊었던 그는 불경죄로 문책을 받았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하여 사전에 모친의 고향인 칼키스로 떠났다가 이듬해 위장병으로 63세의 생애를 마쳤다.

형이상학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 입니다.

문헌으로서의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로도스의 안드로니코스가 기원전 1세기 후반 로마에서 편집 간행한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에서 <자연학(Physics)>의 뒤(Meta)에 놓였기 때문에 <자연학의 뒤의 서(Meta-Physics)>라고 불리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은 후세의 형이상학에서 의미하는 내용을 ‘프로테 필로소피아(Prote Philosophia)'(제1의 철학) 또는 ‘테올로기케(Theologike, 신학)’라 하였으며, 존재 내지 실체란 무엇인가를 해명하는 일을 중심 과제로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문은 의사 가문이었으므로 이러한 그의 배경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학, 특히 생물학 영역에 관심을 갖게 하였다. 한편 플라톤의 수제자로서 이데아론의 영향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플라톤주의도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두 정신의 견제 가운데서 존재 내지 실체의 포착 방법에서도 그의 사색은 말하자면 양극 사이를 항상 크게 동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데아론을 엄격하게 비판하면서 그의 독자적인 존재론이 형성돼 오기는 하지만 신학적인 면이 완전히 불식(拂拭)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이 정리한 4원인론에서부터 그 이전의 학설은 모두 불충분한 것으로 밀어버렸고, 특히 스승인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이재성(離在性)·초월성으로 인하여 감각물의 존재와 해명에 아무런 소용이 되지 못한다고 거부한다. 더욱이 이 이데아의 감각물로의 내재화(內在化)가 그의 생애의 과제였다고 할 수 있다. 12권의 신학에서 목적론적으로 포착된 자연의 생성과 운동의 원인인 신을 부동(不動)의 동자(動者)로서 사유(思惟)의 사유, 자기 사유라고 역설하였다. Hoi ik ben Henk de vries 최고의 지혜는 오로지 인식시키기 위하여 인식한다고 하는 특권을 가지며, 무릇 모든 제1 원인을 대상으로 하는 학(學), 모든 학의 왕자, 최고선을 알며 그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유일하고 자유로운 학, 가장 신적(神的)이어서 외경될 만한 것이다. 왜냐하면 신은 모든 것에 있어서 원인의 하나이며 어떤 종류의 원리(始動因)라고 생각되며, 또 이와 같은 학은 신만이 소유할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제1 원리 원인의 학, 즉 제1 철학은 동시에 신학이기도 하다.

윤리학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니코마코스 윤리학 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도덕적 행동의 습관화를 통해 도덕적 성품을 고양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 좋은 삶)를 삶의 목표로 보고 있다. 한편 저스티스(Justice) 즉 ‘정의'(正義)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윤리학(Nicomachean Ethics) 제5권 정의론에서 정의는 동전의 양면처럼 ‘평등'(equal)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4]

논리학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오르가논 입니다.

《분석론 전서》(Prior Analytics)의 편찬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식논리학의 선구자적인 위치를 점하게 되었으며 그가 창안한 개념은 19세기에 수리논리학 분야에서의 발전이 있기까지 서양 논리학의 주된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칸트는 그의 저서 《순수이성비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에 관한 이론이 연역 추론의 핵심적인 부분을 모두 설명하고 있다고 기술하였다.

조금 더 설명을 추가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 중에서 가장 유명한 예는 ‘삼단 논법’이다. 삼단 논법은 연역적 추론에 바탕한 논증이다. 삼단 논법은 두 개의 전제로부터 결론을 이끌어 내는 추론적 방법이다.[5]

자연관 [ 편집 ]

그의 스승인 플라톤과 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보편성을 향해 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스승 플라톤이 보편성은 특정한 것에서 멀리 떨어져 존재하며, 이와 같은 보편성은 그들의 원형(原型) 또는 전형으로써 주장하였던 것과 대조적으로 특정한 것에서 보편성을 발견하였고 그것을 사물들의 본질(essence of things)이라 칭하였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철학적인 방법이란 특정한 현상에 대한 연구로부터 본질에 관한 지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포괄하며, 이는 플라톤의 이데아 또는 형상(form)이라 불린 것에 관한 지식으로부터 이들과 유사한 형태로의 관상(contemplation), 다시 말해 인식하는 양식에 이르기까지의 하향적인 과정을 취한 플라톤의 방법과 차이를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형상(form)’은 여전히 현상에 대한 무조건적인 기초를 가리키지만 이와 동시에 특정한 사물에 ‘구체화’되어 있다. 플라톤의 방법이 선험적인 원칙으로부터의 연역 추론에 기반해 있는 것이라면, 그의 방법은 귀납적이면서 연역적이라 할 수 있다.[6]

그가 사용한 용어 중에 ‘자연 철학(natural philosophy)’이라는 말은 자연계의 현상을 탐구하는 철학의 한 부분이며, 이는 현대의 물리학, 생물학 등의 분야를 포괄한다. 현대에 들어서 철학(philosophy)은 윤리학이라든지 논리가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형이상학(metaphysics)과 같은 보다 더 포괄적이고(generic) 모호한 분야에 한정되었다. 현대의 철학은 자연계에 관한 경험적인 연구를 과학적 방법이라는 용어를 활용하여 제외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반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인 활동 분야는 지적 탐구(intellectual inquiry)의 모든 분야를 넘나든다.

4원소설 [ 편집 ]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4 개의 원소는 다음과 같다:

뜨겁고 건조한 성질을 지닌 불 (Fire)

(Fire) 차갑고 건조한 성질을 지닌 흙 (Earth)

(Earth) 뜨겁고 습한 성질을 지닌 공기 (Air)

(Air) 차갑고 습한 성질을 지닌 물(Water)

하지만 물이 수소원자 2개와 산소원자 1개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밝혀지고, 공기도 사실 산소, 질소 등등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며 흙도 여러 분자로 이루어졌다는 게 밝혀지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이 틀렸다는 게 증명되었다.

사원인 [ 편집 ]

운동하고 변화하는 감각적 사물의 원인 연구를 자연학이라 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에 4가지 원인을 들었다(四因論). 그는 재료의 측면, 형상의 측면, 작용의 측면, 그리고 목적의 측면에서 그 원인을 답하였다.

질료인은 대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나타낸다. 따라서 탁자에 대한 재료의 측면은 나무이며, 차에 대한 재료의 측면은 고무와 철이 되는 것이다. 행동을 나타내는 용어가 아니며, 어떤 특정한 것이 다른 것보다 우위에 위치하는 것 또한 아니다. 둘은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즉, 책상은 나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책상이 있는 것이다.

형상인은 그 대상이 무엇인지, 즉 정의, 형태, 특성이나 원형(原型, archetype)에 의해 결정되는 것들을 나타낸다. 기초적인 원리나 일반적인 법칙에 의거한 설명을 활용한다. 형상인은 인과관계의 필수적인 것만을 언급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질, 물건이 존재하기 이전에 누군가가 가지는 청사진이 더 간단하고도 형식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즉, 책상은 책상의 형상을 띠고 있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작용인은 변화 또는 변화의 끝이 처음 시작되는 것에 관한 것이다. 무언가가 만들어지게 만드는 무언가와 무언가가 변화를 겪게 만드는 변화’를 결정하며, 살아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함으로써 변화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판단 근거로 작용한다. 인과 관계에 관한 현대적인 이해를 반영하며, 특정한 현상 또는 요인으로서의 근거에 관한 개념을 포괄한다. 즉, 책상은 어떤 목수가 이 책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목적인은 사물이 있는 목적에 관한 것이며, 여기서 말하는 목적은 목적성을 띄거나 그렇지 않은 것 모두를 포함한다. 목적인은 대상이 원래 쓰이는 용도에 관한 것이다. 즉, 책상은 위에 누워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위에 책을 놓고 책을 읽기 위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개념은 또한 의지나 동기, 합리적인 것, 윤리적인 것과 같이 행동에 대한 목적을 부여하는 정신적인 원인에 관한 현대적인 개념을 포괄한다.

자연학 [ 편집 ]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質料, 휠레)와 형상(形相, 에이도스)간의 상호작용이라는 생각으로 자연을 해명하려고 하였다. 질료는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한 원소재로서 이것이 형상에 의해서 형태가 주어짐으로써 비로소 구체적인 사물이 되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였으므로 그는 관찰이나 경험을 플라톤과는 달리 중요시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는 모든 분야에 이르고 있지만, 500종 이상의 동물을 관찰, 기록하고 분류하였다. 《동물지(動物誌)》 9권, 《동물 부분론》 4권, 《동물 발생론》 5권 등을 저술하고, 형상과 질료의 철학으로 설명하였다. 암컷은 재료 즉 질료를, 수컷은 계획 즉 형상을 제공하고, 생물의 성장에 따라서 형상이 완성하고 더욱이 그것은 “자연은 불필요한 일은 하지 않는다”라 하는 관점에 입각한 해부학적 구조, 발생학적인 기관 발달의 연구를 했다. 그의 날카로운 관찰은, 고래나 평활(平滑), 상어의 태생(胎生)을 발견하였고, 꿀벌의 생태나 닭의 부화 등의 정밀한 기록을 남겼다. 이와 같은 성과에 입각하여 생물의 분류를 하였고, 또 생물의 종(種)은 식물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완전도를 늘린다고 하고 생물의 11개의 계급을 만들었다. 이것이 ‘자연의 계단’이라는 생각이며, 완전도는 발생학적인 기준에 의거한 것이었다.

생물학에 이어서 그는 물리학, 천문학으로 고찰을 진행시켰는데, 경험·관찰 혹은 생산 기술과의 관련은 생물학과 비교하면 훨씬 적었다. 따라서 그 성과도 역시 생물학에 비해서 뒤떨어져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가 파급시킨 영향은 매우 크며, 근대 과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적 학문의 부정(否定)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는 물질은 연속적이며, 허공(진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反)데모크리토스적 입장을 취하고, 모든 땅 위의 물질은 흙·물·공기·불의 4원소로 되었으며, 이것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참된 원소인 제1질료가 열냉·건·습의 4개 기본적인 형상 2개씩을 얻어서 생성된 것이다. 제1질료가 열·습을 얻어서 기(氣)로, 건·열로 불, 건·냉으로 흙, 습·냉으로 물이 된다. 이 4원소는 그에 의하면 단일체이며, 4성질은 분리시킬 수 있으므로 상호의 변환은 가능해진다. 이 이론이 연금술을 장기에 걸쳐서 밑받침하였던 것이다.

천계(天界)를 만드는 원소는 아이테르로서, 땅 위와는 다르듯이 지상과 천체의 운동도 서로 다르다. 항성과 행성은 지구를 중심으로 하여 계속해서 등속 원운동을 하고 있다. 원은 완전한 도형이며, 원운동은 완전하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지상의 물체가 갖는 운동은 본질적으로 상승이거나 낙하, 즉 직선운동이라고 보고, 천체와 지구의 운동을 마주 놓았다. 지상의 물리학을 천계에 적용시킬 순 없는 것이지만 이 생각은 결국 17세기 뉴턴에 의해 뒤집힐 때까지는 정통적(正統的) 학리로서 인정되고 있었다. 또 그의 역학에서는 자유 낙하의 속도는 무게에 비례하고 공기의 저항에 반비례하는, 즉 무거운 것일수록 빨리 낙하한다는 견해를 취하지만, 이것이 갈릴레이에 의해서 부정된 사실은 유명하다.

광학 [ 편집 ]

동시대의 철학자들과 비교했을 때, 아리스토텔레스는 몇몇 광학에 관한 뛰어난 이론의 소유자였다. 기원전 350년에 쓰여진 그의 저서 ‘난제들'(Problemata)에 초창기의 카메라에 해당하는 암상자에 관한 가장 오래된 설명이 담겨 있다.

교육 사상 [ 편집 ]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적인 생활의 영위에 교육목적을 두었다. 그는 개인이 타인과 접촉할 때 이성에 의해 모든 행위를 하도록 하는 교육체계를 요망했다. 인간의 최고기능은 사고와 행위를 이성적으로 하는 데 있다고 보고, 과학과 철학을 통한 이성의 훈련을 주장했다. 다음으로 그는 행복한 생활을 이룩하는 데에 교육의 목적을 두었다. 그는 모든 인간 행위의 궁극적 목적을 행복이라 보고, 이 행복은 중용(中庸)이란 덕과 이성적인 행동을 할 때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교육은 이성을 통해서 중용의 덕을 가진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는 국민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성원(成員)으로 교육할 수 있는가를 중심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하고, 교육을 통하여 행복을 성취하고 국가에 유능한 인물을 양성해야 한다고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유교육을 중요시하였다. 자유교육은 직업적(생산적) 교육이 아니고 여가를 이용하여 자유인으로서의 교양을 함양토록 하는 교육인데, 이를 위한 교육으로 읽기·쓰기·셈하기·음악·체육 등을 들었다. 그에 의하면 책을 읽는 것은 문화인의 교양을 쌓는 것이며, 음악은 한가한 시간을 유쾌하게 보내기 위한 것이고, 체육은 건전한 신체를 갖게 하여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이었다. 그의 자유교육은 신체의 노동보다 정신의 활동을 더 중요시한 것이었다. 그는 교육의 조직이나 내용은 아동의 성장형태에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유아에게는 동물놀이·신체적 활동·이야기 등으로 교육시키며, 14세 이전의 아동들에게는 도덕적·신체적 교육을 중시하여 체육·음악·독서·쓰기 등을 가르치되 이론이나 법칙의 교설(敎說)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행동을 통한 안정된 습관을 확립케 하기 위해서만 가르쳐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또 21세가 될 때까지의 청년들은 수학·문학·천문·음악·문법·시·수사학·윤리학·정치학 등 지적인 학습을 시켜야 하며, 21세 이상의 대상자들에게 과학과 철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방법은 자연발달에 의하여 불합리한 것에서 합리적인 것으로 지향하는 것이었다. 처음의 불합리한 신체적 교육에서 점차로 합리적인 정신적 교육을 지향하며, 정신교육에 있어서도 불합리한 욕망에서 합리적인 이성으로 옮겨져야 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신체적 교육에서 습관으로 향상하고, 다시 마지막으로 이성의 교육에 도달하게 하는 방법이 진정한 교육방법이라고 했다. 즉 체육(體育)·훈육(訓育)·교수(敎授)의 3분야로 나누었던 것이다.

여성관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여성관 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여성관은 중세 말기까지 그를 절대 권위로 신봉한 서양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고로 여성사에서도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다.

저작 [ 편집 ]

논리학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오르가논 입니다.

범주

명제

분석론 전서

분석론 후서

변증론

소피스트적 논박

자연학

자연학

천체에 관하여

생성과 소멸에 관하여

기상학

영혼에 관하여

자연학 논문집 감각과 감각 대상에 관하여 기억과 생각해냄에 관하여 잠과 깨어있음에 관하여 꿈에 관하여 잠 속의 예언에 관하여 장수와 단명에 관하여 젊음과 늙음, 삶과 죽음에 관하여 호흡작용에 관하여

동물 탐구

동물의 부분들에 관하여

동물의 움직임에 관하여

동물의 앞으로 움직임에 관하여

동물의 발성에 관하여

형이상학

윤리학, 정치학

니코마코스 윤리학

대 윤리학

에우데모스 윤리학

정치학

아테네인들의 정치체제

수사학, 시학

각주 [ 편집 ]

참고 문헌 [ 편집 ]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1,지식인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

Plato Won 作

라오콘 군상,헬레니즘 문명의 대표작

그리스 철학의 황금기를 말하자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3대 철학자들이 활동했던 시대를 말합니다.

“숙고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라고 말한 소크라테스는

성찰하고 사색하는 삶을 인류에 제안합니다 .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의 관심 대상이

우주와 자연의 생성 원리였다면 ,

소크라테스는 철학의 주제를 인간의 삶으로

이동시킨 장본인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철학 사상을 전수받은 플라톤은,

감각기관 으로 느끼는 너머 에 진리의 세계가 있다는

이데아 사상을 제시합니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17세 때

플라톤이 세운 학문기관인 아카데미아에 입문하여

20년 동안 플라톤의 철학사상을 전수받고

자신만의 철학 체계를 정립합니다.

15세기 이탈리아 대 문호인 신곡의 저자,

단테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지식인들의 스승”이라

극찬하였습니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 키케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을 ” 황금이 흐르는 강”

이라고 비유하기도 하였습니다.

2 , 400년 동안 인류 지성사에 지적 호기심을

자극시켰던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 그리스 철학

황금기의 대미를 장식하였으며 인류의 학문 체계를

오늘날과 같이 정립한 대철학자였습니다.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달변가였다면,

플라톤은 저명한 문필가였고,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스트는 만물 박사라

할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로서

BC 3 84년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의

스타게이로스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마케도니아 왕의 주치의로 ,

아리스토텔레스는 의사라는 아버지의 직업에

영향을 받아 자 연과학 분야에서도 큰 학문적

성과를 내게 됩니다.

17세 때 아테네로 유학을 가서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아에서 20년 간 수학한 아리스토텔레스는

” 아카데미아의 날카로운 지혜“로 불릴 만큼

학문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가장 뛰어난

수제자로 플라톤 철학 사상을 전수받습니다.

하지만 플라톤의 철학 사상이 너무 이상적이라

현실에서는 적용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경험적 관측에 기반한 자신만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사상을 정립시켜 나갑니다.

친 구와 진리가 충돌할 때는 친구도 소중하지만

진리를 따르라는 자신의 신념을 실천한

아리스토텔레스, 그는 BC 335년 아테네

동쪽 지역에 “리케이온”이라는 학교를 설립하며

아테네 젊은이들을 가르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리케이온 시절,

제자들과 주변을 산책하며 주 로 대화와 토론 위주로

학문을 전수하였는데, 이들을 거닐 소( 逍 ) ,

소요학파라고도 부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필립포스 2세의 초청을 받 아 마케도니아의 왕자 를 7년 간 가르치게 되는데,

그 가 바로 최초로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뿐 아니라 자연과학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학문적 업적을 남겼는데 ,

오늘날의 논리학, 물리학, 정치학, 심리학, 형이상학, 기상학, 수사학, 윤리학 등의 학문체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에서 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그리스가 멸망하면서

아랍으로 넘어가 보존되어 있다가 12세기

중세시대 때 화려하게 부활하여 17세기 까지

서양철학의 근간을 이루며 서양 철학사상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최고의 목적”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아리스토텔레스,그는

2,400년 전 이미 자연과학을 학문으로 체계화

시켰고, 그의 강의록인 논리학, 정치학, 윤리학

등의 이론은 인간의 가치와 이해를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다양한 학문의 세계를 연 위대한

선각자이자 지성인의 스승인 대 철학자 입니다.

ᆢ Plato Won

#1. 지식인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s)

작가소개

기원전 384년에 그리스 마케도니아 지방의 스타게이로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니코마코스는 왕의 주치의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릴 때 죽었다. 17세 때 어머니마저 여의자 후견인 프록세노스는 스승 플라톤이 있던 아테네의 아카데메이아로 그를 보냈고, 거기에서 20년간 머물렀다. 기원전 347년에 플라톤이 죽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카데메이아를 플라톤의 조카 스페우시포스에게 맡기고, 철학의 후원자였던 소아시아 아소스의 왕 헤르메이아스에게 갔다. 거기서 헤르메이아스의 조카 피티아스와 결혼해 딸 하나를 두었다. 기원전 342년에는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2세의 초청으로 훗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된 왕세자의 가정교사가 되었다. 기원전 335년, 다시 아테네로 돌아와 자신의 독자적인 교육기관 리케이온을 세웠고, 이것이 소요학파(逍遙學派)의 기원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 대부분은 이 기간에 쓰였다. 기원전 323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고 나서 아테네에 반마케도니아 정서가 강해지자 불경죄로 고발당한다. 이에 에우보이아의 칼키스로 떠나, 그다음 해 62세의 나이로 죽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 플라톤과 함께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위인이다. 1998년 저명한 현대 철학자들이 뽑은 “서양철학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의 지성과 관심 분야의 폭 그리고 깊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그가 다룬 분야는 논리학, 형이상학, 인식론, 심리학, 윤리학, 정치학, 수사학, 미학, 동물학, 식물학, 자연학, 철학사, 정치사 등으로 아주 넓었다. 대표 저서로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포함, 『수사학』, 『시학』, 『형이상학』, 『정치학』, 『자연학』, 『범주론』, 『명제론』 등이 있다. 그리스에서는 선악보다 훨씬 폭이 넓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여기서 “좋은 것”은 본성에 부합하는 것을 가리키며, 저자는 인간에게 가장 좋고 즐거우며 행복한 것이 무엇인지를 귀납적으로 추적해나간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

스승인 플라톤과 함께 2천여 년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위인이다. 1998년 저명한 현대 철학자들이 뽑은 “서양철학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최고의 목적”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년에 북부 그리스 마케도니아 지방의 스타게이로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니코마코스는 왕의 주치의였다고 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릴 때 죽었다. 그가 17살 때 어머니마저 죽은 뒤 후견인인 프록세노스에 의해 아테나이에 있는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로 보내졌고, 거기에서 20년간 머물렀다.

기원전 347년에 플라톤이 죽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카데메이아를 플라톤의 조카인 스페우시포스에게 맡기고, 철학의 후원자였던 소아시아 아소스의 왕 헤르메이아스에게 갔다. 거기서 그는 헤르메이아스의 조카인 피티아스와 결혼해 딸 하나를 두었다. 기원전 345년에 헤르메이아스가 페르시아인들에게 살해되자, 그는 레스보스 섬의 미틸레네로 갔고, 거기에서 수제자이자 가장 가까운 동료가 된 테오프라스토스를 만났다. 기원전 342년에는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2세의 초청으로 나중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된 왕세자의 가정교사가 되었다.

기원전 335년에 그는 다시 아테나이로 돌아와서, 자신의 독자적인 교육기관인 리케이온을 세웠고, 이것이 소요학파의 기원이 된다. 이 시기가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그가 쓴 책들과 글들 다수는 이 기간에 쓰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지성과 폭과 깊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가 다룬 분야들은 논리학, 형이상학, 인식론, 심리학, 윤리학, 정치학, 수사학, 미학, 동물학, 식물학, 자연학, 철학사, 정치사 등으로 아주 폭이 넓었다. 그의 대표적 저서로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형이상학』, 『자연학』, 『정치학』, 『범주론』, 『명제론』, 『수사학』, 『시학』 등이 있다.

기원전 323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자, 아테나이에서는 반마케도니아 정서가 강해지고 그는 불경죄로 고발된다. 그렇게 해서 그는 에우보이아의 칼키스로 떠났고, 그 다음 해 6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자연은 헛된 일을 하지 않는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

고대의 사상이 현대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고대의 유물처럼 단지 미적인 가치를 지닐 뿐이다. 하지만 고대의 사상 가운데 어떤 부분은 분명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시금 성찰해보아야 할 실질적인 내용을 제시해준다. 이런 점에 대한 자각으로 인 …

고대의 사상이 현대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고대의 유물처럼 단지 미적인 가치를 지닐 뿐이다. 하지만 고대의 사상 가운데 어떤 부분은 분명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시금 성찰해보아야 할 실질적인 내용을 제시해준다. 이런 점에 대한 자각으로 인해, 최근에 들어서나마 서양고대철학에 대한 연구가 국내에서도 활성화되고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형이상학적인 주제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나 자연철학에 관한 논의는 아직도 전무한 상태이다.

이 연구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의 {자연학}에서 소개되고 논의되는 ‘변화’ 또는 ‘운동’에 관한 이론이 2400년이란 시간적인 공백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제공하는 자연관(우주관)과 자아관이 무엇인가를 성찰하는데 목표를 둔다. 인간은 자연 내부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므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자연’을 운동과 정지의 근원으로 보고, 또한 ‘자연세계’ 또는 ‘자연 만물’을 그런 근원을 지닌 존재자들로 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은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바라보는 관점(자아관)으로 이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에서 우주의 생성, 변화 또는 운동의 이유, 무생물의 본성, 생물의 본성, 자연 개념 등에 대해 논의하며, 그 논의에는 등속도 운동이론, 지구 중심설, 본성이론, 목적론 등의 이론이 포함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적 이론의 기반은 “자연은 헛된 일을 하지 않는다.”는 목적론적 사고이다. 그 사고는 결국 무생물과 생물을 포함한 자연물 일반의 존재가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런 논의는 {영혼에 관하여}에서는 생물 일반의 운동 능력에 관한 논의로 이어지며,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는 인간의 운동 능력에 대한 집중적이고 본격적인 논의로 이어지고, {형이상학}에서는 천체와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자연물의 제일 운동원인으로서의 신에 관한 논의로 심화된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적 이론들에 대한 이해는 그의 심신이론과 생물학, 그리고 윤리학과 형이상학을 이해하기 위한 토대라는 점에서 자못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위의 저술들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 형성은 자기보다 앞서 살았던 철학자들의 이론들을 고찰하고 허점을 지적한 뒤, 그 허점을 보완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의 이론을 제시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구축된 그의 이론은 중세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충분한 실험과 관찰을 동반한 과학 문명이 급속히 발전하기 시작한 근대에 접어들면서 갈릴레오, 뉴턴, 다윈, 하비 등의 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미숙하거나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고 거부해왔다. 결과적으로 근대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극복하는 시기로 종종 규정되어 왔으며, 과학적인 측면에 관한 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그에게서 배울 것은 전혀 없는 듯이 보였다. 물론, 맨눈으로 천체와 주변환경을 관찰했던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망원경과 현미경을 통한 자연물 관찰에 기초한 근대 철학자들의 연구가 많은 경우 더 정확하리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적 연구가 종종 주도면밀하고 정확한 면모를 보인다는 점을 제외하고라도, 그의 자연철학은 가공되지 않은 인간의 가장 순수한 사고 능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우선적인 가치를 찾아볼 수 있다. 한편으로, 그의 이론이 그릇되었다 하더라도, 어떤 점에서 그릇되었음을 밝혀내는 과정은 우리가 미래에 동일한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또한 그의 자연철학적 이론은 우리가 근대와 현대를 거쳐 살아가면서 놓치거나 경시해왔던 자연관 다시금 고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기회는 결국 현대에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환경문제 등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치유책을 마련하기 위해 필요한 자연관을 확립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자연관은 끊임없이 소외되어온 인간의 가치를 재고할 기회가 될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따라서 인간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먼저 올바르게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자연학}을 토대로 하고 그밖에 {생성과 소멸론}, {천체에 관하여} 등의 자연철학적 저술을 참고하여, ‘변화'(또는 ‘운동’)의 가능성, ‘변화’의 원리, ‘자연’의 의미, 무생물과 생물의 차이점, 생물을 ‘자동(운동)자’ 또는 ‘자기 운동자’라고 부르는 이유(즉, 자동자의 내적 분석), 지상의 운동과 천체의 운동의 차이점에 관한 논의를 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적 이론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논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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