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 아바 아버지 | 마커스워십 – 아바 아버지 (소진영 인도) 상위 115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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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어 ‘아바’는 친밀함의 표현으로써 ‘하나님 아버지’를 ‘하나님 아빠’로 부를 수 있다고 해석된다. 해리스 교수는 신약학 학자로 저명한 헬라어 전문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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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ERS WORSHIP
마커스 목요예배 실황 [18.08.02]–
\” 아바 아버지 \”

* Worship Leader : 소진영
* Inst.
– E.Guitar : 임선호 / B.Guitar : 곽노연
– Piano : 정지영 / Synthesizer : 임세라
– Drums : 김현성
* Vocal
– Sop : 박은선 / Alto : 이예지 김민지
– Tenor : 김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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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워십。 www.markersworshi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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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 아버지/Unknown – 벅스

가사. 아바 아버지 아바 아버지 나를 안으시고 바라보시는 아바 아버지 아바 아버지 아바 아버지 나를 도우시고 힘 주시는 아버지 아바 아버지 아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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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usic.bugs.co.kr

Date Published: 3/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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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abba) 아버지” 의미에 대한 오해 풀기 – 뉴스앤조이

아비야, 아비야후, 요압 (AbiYAH, Abi YAHU, YoAB)은 모두 야훼는 “나의 아버지”란 뜻을 지녔다. 족장 시대의 아브람 혹은 아비람은 “존귀하게 되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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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ewsnjoy.or.kr

Date Published: 10/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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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과 적용 10] 아바 아버지 – 리폼드뉴스

신약 성경에 아람어로 소리나는 대로 ‘아바’이다. 이 말은 자기 아버지에게 사용하는 애칭이었다. 우리 말의 ‘아빠’와 똑같은 말이다. 우리 가정에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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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reformednews.co.kr

Date Published: 1/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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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Abba)는 실제로 무슨 뜻일까? – 구약장이

이 단어는 ‘아빠’의 의미로 생각할 수 있는 어린 아이적인 유치한 표현이 아닙니다. 이 단어는 아버지를 더 엄숙하고 책임감 있게 부르는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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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otfreak.tistory.com

Date Published: 1/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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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7 참 좋으신 아바 아버지 – 남가주 새누리 교회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다. 죄의 종이었고, 마귀의 자식이었다. 마치 부모없는 영적 고아처럼 이리저리 헤메이던 인생이었다. 그런데 성령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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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ingdomfc.org

Date Published: 7/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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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아버지 – 나무위키

어노인팅 ‘다리를 놓는 사람들 예배인도자 컨퍼런스 2005[1]’에 실린 타이틀곡이다. 2. 가사[편집]. 아바 아버지 아바 아버지 나를 안으시고 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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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5/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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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아바 아바 아버지 <기도송 >

아바 아바 아버지 <기도송 >. 전체듣기 · 소프라노 · 앨토 · 테 너 · 베이스 . 빛나라홈 · 곡순서 · 구입문의(전화) · 카카오톡상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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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vitnara.co.kr

Date Published: 7/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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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 아버지/Unkn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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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abba) 아버지” 의미에 대한 오해 풀기

“아버지는 가족 관계를 보호하는 가부장, 가족에게 친밀감을 주는 어머니와 달리 절대 순종해야 하는 권위를 의미.”

들어가는 말

얼마 전에 차정식 박사의 “‘아바(abba)’는 ‘아빠(daddy)’가 아니다!”라는 좋은 글이 <뉴스앤조이>에 실렸다. 그는 abba를 유아들의 용어인 ‘아빠’로 해석한 요아킴 예레미아스의 견해를 조목조목 반박한 영국의 학자 제임스 바(James Barr)의 저명한 논문 “Abba Isn’t ‘Daddy”(“아빠는 ‘대디’가 아니다”, 1988)을 소개하며 아람어 아빠(abba)는 결코 유아의 용어인 아빠(daddy)의 의도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논증해 주었다. 제임스 바는 장성한 자녀도 아버지를 부를 때 ‘abba’라 했고 마을에 사는 남자 노인을 친근하게 부를 때도, 제자가 자기 스승을 부를 때도 abba가 사용된 것을 보여 주었다. 사실, 요아킴 예레미아스의 주장은 이미 핏츠마이어 (Fitzmyer, “Abba and Jesus’ relation to God” 1985)에 의해 지적당했다. 필자는 언어적 분석에 이어서 문화적 배경으로 우리 문화와 다른 당시 아버지의 의미를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는 것은 사실 오늘날 서구사회에서조차도 드문 현상이다.

오늘날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실 공예배 때는 두말할 필요 없고 개인 기도 시간에서조차 하나님을 아빠로 부르는 경우는 드물다. 실제로 몹시 가부장적이었던 고대 중동 문화에서 하나님을 아빠로 부르며 기도했다는 주장은 현실성이 없는 발상으로 보인다. 친밀감과 편안함을 주는 어머니와 달리 고대 사회의 아버지는 권위적인 분이었고 두려움 가운데 순종해야 하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이 아버지에서 쉽게 느끼는 가까움과 친밀감이란 개인차는 있겠지만 주로 현대사회의 현상이다. 당시 문화에서 오늘날 현대사회의 아빠의 친밀감을 원했다면 하나님을 오히려 어머니라 했어야 설득력이 있다.

신약의 “아빠(abba) 아버지”

신약에는 “아빠(abba), 아버지”라는 표현이 세 번 나온다.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막 14:36).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5).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6).

Abba의 의미와 발음에 대하여

우연이겠지만 아람어 아빠(abba)는 우리말의 ‘아빠’의 뜻을 포함한다. 아람어인 abba는 어린아이의 용어인 ‘아빠’와 ‘아버지’의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어린아이가 표현할 때는 아빠이며 특별한 이유 없이 보통 성인이 표현할 때는 아버지이다. 여기서 아람어 abba는 ‘압바’ 혹은 ‘아빠’로 발음할 수 있다. 천천히 발음하면 ‘압바’고 보통 혹은 빨리 발음하면 ‘아빠’가 맞다. 개역개정판에서는 개역성경의 음역 ‘아바’를 ‘아빠’로 바르게 고쳤고 표준새번역도 ‘아빠’로 음역하였는데 문제는 ‘아빠’가 아람어 음역임을 각주에서 분명히 밝혔음에도 그 뜻이 우리 말 아빠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 책임은 요아킴 예레미아스의 주장과 그를 비판 없이 받아들인 신학자와 신학, 신앙 서적들, 그리고 그런 학자에게서 비판 없이 배운 목회자, 그런 목회자에게서 배운 성도, 그 성도에게 배운 다른 성도 탓이다.

본문

오해 1. 예수는 유대의 유아들이 사용하던 용어로 하나님을 아빠라 호칭하였다?

이 문제는 차정식 박사가 얼마 전에 잘 소개한 관계로 자세한 언급은 피하고자 한다. 아람어 아빠에 대한 흥미로운 두 가지 관찰이 있다. 첫째는 오늘날 아람어 음역 아빠(abba)가 우리말의 ‘아빠’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오늘날 현대 히브리어에서 ‘abba’는 어린아이들이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되는 호칭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로 말미암아 오해가 더 커진 것은 틀림없다.

요아킴 예레미아스의 압-바(ab-ba)라는 중복어가 어린 아기들의 옹알이 음-마(im-ma)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에 대해 제임스 바(James Bar)는 그의 주장이 터무니없고 일관성이 없다고 반박하였다. 특히 요하킴 예레미아스의 사후에는 오늘날 언어전공자들에 의해 아람어 abba가 어린아이의 용어였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오해 2. 하나님을 개인의 아버지로 친밀하게 부른 경우는 예수님이 처음?

예레미아스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감히 부르지 못했기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어린아이같이 친근하게 아빠라고 부른 것에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며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더는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놀라운 친밀함으로 다가갈 수 있는 ‘아빠’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Prayer of Jesus, 96). 그러나 이는 근거 없는 주장이다.

예수님 이전에도 하나님을 개인의 아버지로 이해하였다.

먼저 하나님을 개인의 아버지로 이해하거나 호칭한 경우는 많지 않지만, 구약과 유대문헌에서 이는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히브리어로 아버지는 아브(ab)라 하는데 이는 하나님을 부르는 YH(W)와 EL과 연결해서 사용되기도 했다. 아비야, 아비야후, 요압 (AbiYAH, Abi YAHU, YoAB)은 모두 야훼는 “나의 아버지”란 뜻을 지녔다. 족장 시대의 아브람 혹은 아비람은 “존귀하게 되신 아버지”, “나의 아버지는 존귀하시다”는 뜻이다.

포로기 이후 제2 성전기에 나타난 이름인 아비엘, 엘리압(AbiEl, ELIab) 모두 “하나님은 아버지시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해하던 문화는 유대 국가가 형성되면서 하나님을 이스라엘 민족의 아버지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장자라(출 4:22).

그는 너를 지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그는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신 32:6).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렘 31:9).

그러나 민족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왕과 같은 특정한 개인에게도 하나님은 개인의 아버지로 나타난다.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삼하 7:14).

국가가 형성되면서 개인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메시아(기름 부음 받은 자)의 중요성을 강조한 ‘왕’에 국한되기 시작했다.

저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구원의 바위 시라 하리로다. 내가 또 저로 장자를 삼고 세계 열왕의 으뜸이 되게 하며 저를 위하여 나의 인자함을 영구히 지키고 저로 더불어 한 나의 언약을 굳게 세우며 (시 89:26~28).

신구약 중간시대 유대 문헌에서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다. 우리에게 외경으로 알려진 벤 시라(Ben Sira)의 지혜서에서 하나님은 종종 그의 아버지로 불린다.

“오 주 나의 생명의 아버지 시며 주관자시어.” (헬라어)

” 나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이시여 내가 감사하리로다.” (히브리어).

“내가 주를 높였으니 주는 나의 아버지 시니이다.” (헬라어와 히브리어, 51:10).

랍비 문헌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 “라는 일인칭의 표현은 미드라쉬에서 자주 등장한다(Makh 출 20:6, Lauterbach II, 247). 물론 이 문헌들은 신약성서보다 뒤에 쓰였지만, 그 기원을 1세기 구전 전통에 근거한다.

1세기 열정주의자인 카리스마적 랍비인 하나나 벤 도사(Hanina ben Dosa)와 관련된 탈무드도 하나님이 그를 개인적인 아들로 묘사한다. (bTaan 24b/bHUL 86a).

가장 흥미로운 본문은 아마도 카리스마적인 랍비 원을 그리는 호니(Honi the Circle drawer)의 손자 하난과 관련된 아람어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아빠(abba)’로 묘사된다.

이 세상에 비가 필요했을 때 우리의 랍비들은 어린이들을 그(하난)에게 보내곤 했는데 그러면 그들은 하난의 옷자락을 붙들고는 “아빠, 아빠 우리에게 비를 주세요”라고 졸랐다. 그러면 그는 그에게(하나님) 기도했다. “세상의 주님이시여, 비를 주는 아빠와 비를 주지 않는 아빠도 구분하지 못하는 저들을 위해 무언가 하소서(bTaan23b, JJ, 21).”

예수님 이전에도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이스라엘 민족의 아버지로 그리고 개인의 아버지로 생각했다. 유대 문화에서 성인이 자신의 아버지나 하나님을 abba로 불렀을 때 그것은 어린아이가 부르는 친밀감이 아니었다. 메리 로즈 드앙겔로(Mary Rose D’Angelo)가 보여 준 것처럼 신약성경이 당시 abba를 헬라 문화에서 유아의 용어였던 파파스(papas)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그냥 보통 성인의 용어인 파테르(pater 아버지)로 번역한 사실은 abba가 결코 어린아이의 친밀감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명백하게 보여준다(Mary Rose D’Angelo. 1992). Abba가 성인의 입에서 사용되었을 때 이는 그냥 우리말의 ‘아버지’와 같이 성인의 용어일 뿐이다. 문맥에서 의미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강조하자면 어린아이의 친밀감을 지닌 ‘아빠’의 의도는 어린아이가 사용했을 때와 같은 문맥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문화에서 아버지란 어떤 의미일까?

가족 내의 절대 권력을 지닌 가부장

요아킴 예레미아스는 기본적으로 아빠라는 표현이 지니는 친밀감을 하나님에게서 원했던 것 같다. 이는 가부장적 의미가 약해진 서구적 발상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친밀하신 분이다. 그러나 친밀감의 느낌을 아버지란 표현에서 찾는 것은 현대적 아버지의 의미를 당시 개념에서 찾아내는 오해다. 어느 사회학자가 마피아의 대부 (God-father)를 생각하면 고대 사회의 아버지란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때 친밀감보다 앞서는 당시의 의미는 가족 내의 절대 권력이다. 즉, 불순종하는 자식에 대한 생살여탈권을 지닐 정도로 아버지에 대한 순종의 의무는 절대적이었던 것이다.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읍의 모든 사람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신 21:18~21).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출 21:15).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출 21:17).

물론 현실적으로야 드문 경우였겠지만 부모를 거역하는 자를 사형시킬 수 있을 정도로 부모의 권위는 대단한 것이었다. 오늘날이야 자녀에 대한 체벌이 인권의 측면에서 상당히 엄격하게 규제되어 있지만, 고대사회에서 부모의 체벌은 당연하였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체벌을 동원한 엄한 훈육을 명령한다.

이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잠 23:13~14, 참조, 신 21:18~21; 잠 29:15; 사 1:6).

가족 구성원에 대한 가부장의 결정권이 절대적이었던 것은 구약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롯에게 손님의 모습으로 천사들이 찾아왔을 때 소돔의 주민은 그들을 강간하려 했다. 그때 손님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는 사람들의 성욕을 해결하도록 딸들을 내어 줄 권한을 사용하려 했다(창 19:5~8). 또한, 사사 입다가 딸을 신에게 바치는 것도 자신의 결정이었다(삿 11:30).

물론 가부장으로서 아버지는 결코 독재자나 폭군은 아니다. 그는 권력을 지닌 동시에 가족 전체를 위한 희생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로마 사회의 아버지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로마사회에서 아버지는 말 그대로 대부(God-father)적인 보호자의 의미가 강했다. 가부장인 아버지는 모든 재산(노예 포함), 심지어 통상적으로 부인과 자녀의 소유라고 여겨지는 재산들까지도 법적인 소유권을 지녔고(Bruce W. Frier and Thomas A. J. McGinn, A Casebook on Roman Family Law, 2004, 18-20), 생살여탈권과 자녀에 대한 징벌권한을 지녔기 때문이다.

로마사회의 아버지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눈으로 본다면 매우 잔인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아내의 간통이 발견될 시 아내를 죽일 권한이 있었고, 아이가 기형이나 불구일 때도 종종 살해하였다. 딸이 음란하거나 아들이 모반에 참여했을 때, 사형을 시키기도 했다. 물론 기독교 안에서 이런 잔인한 문화는 모두 거부되었다.

로마 문화에서도 가부장으로써 아버지는 가족의 혼인과 심지어 이혼에 대한 결정권이 있었다. 연애결혼이란 계몽주의 이후에나 보편화한 현상으로 고대 유대와 로마 문화에서 결혼이란 대부분 아버지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조선 시대의 우리 사회에서처럼 말이다. 양자로 입양하는 권한은 당연했고, 나중에 폐지되었지만, 심지어 자식을 매매하는 권한도 있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이르러서야 자식의 매매를 갓난아이로 제한하였다.

로마 사회는 가부장과 국가에 대한 복종 위에 건설되었다(Saller, Patriarchy, Property and Death in the Roman 1994, 106).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자녀는 아버지에게 복종(obsequium)하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었다. 사람들은 이상적인 로마 사회는 가부장과 국가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에서 현실화된다고 믿었다.

나가는 말

하나님을 아빠로 이해하는 예레미아스의 견해는 지난 세기 복잡해진 사회 분위기에서 개인주의의 외로움 속에 심리적인 불안함을 힘들어하며 유아기의 단순함과 평온함을 그리워하는 현대인들의 심리 상태에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것이 당시 독자들이 느꼈던 의미는 아닌 것 같다. 당시 가족 내에서 아버지의 첫 번째 의미는 친밀감보다는 순종해야 할 가부장으로 절대 권력과 가족관계의 보호자였다.

가부장(Paterfamilias)의 절대 권력(paterpotestas)이 중시되었던 문화를 배경으로 볼 때 예수님께서 큰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abba 아버지라 부르신 모습은 가족 내의 절대 권력을 지닌 ‘보호자(patron)’ 하나님께 외친 것이다. 옛날 우리 사회에서도 아버지란 한편 무섭고 절대 순종해야 할 대상이면서 동시에 나를 절대적으로 보호하시는 분이라는 의도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물론 당시에도 아버지란 용어에 친근감의 느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처럼 그리 강한 친근감의 느낌이 들지는 못한다. 아버지란 가족을 목숨 바쳐 보호하는 이요, 순종의 대상이다.

일반적으로 abba는 예수님의 기도 생활에 독특하게 나타난 가족 관계의 일상적인 용어이다. 사도 바울은 ‘아빠(abba) 아버지’란 호칭을 두 번이나 성도의 기도에 반복함으로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이러한 독특한 가족관계를 자녀 된 성도들이 공유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롬 8:15; 갈 4:6). 특히 로마서에서 열광적인 예배의 분위기 속에 무서워하는 종의 영이 아니라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빠(abba) 아버지”라 “부르짖었다”(krazo, 롬 8:15)는 것은 하나님을 특별한 아버지, 예수님이 체험한 절대적 보호자이신 같은 아버지로 강렬하게 체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또한 예수께서 느끼신 그리고 초대교회의 신도들이 체험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누리는 것이다. 예수의 기도에 근거한 “아빠, 아버지”는 예수님이 체험한, 순종해야 할 하나님 아버지의 절대 권위와 그의 보호하심과 관계가 있다.

이민규 / 한국성서대학교 신약학 교수

‘아바’(Abba)는 실제로 무슨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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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en Engle(copy editor for Faithlife)의 글을 의역하였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있었을 때, 유대인 아이들이 그들의 아버지들과 함께 걸으면서 떠드는 것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 아이들이 자신들의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내 마음이 녹아 내리곤 했습니다.

“아바! 아바!”

* 주 : 실제로 유대인들 아이들은 아버지를 부를 때 “ 아바 ” 라고 합니다 . 제가 이스라엘에 있었을 때도 저희 아이들이 저를 ‘ 아바 ’ 라고 불렀습니다 .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그렇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

그 아이들이 자신들의 아버지를 부르는 단어인 ‘아바’는, 마치 나의 아이들이 내가 주목해 주길 바랄 때 나의 세컨드 네임을 부르며 내가 대답할 때까지 ‘엄마, 엄마! 어~~~엄~~~마!” 라고 부르는 것과 같음을 확신합니다.

하지만 ‘아바’는요? 아바는 좀 다릅니다.

‘ 아바 ’ 의 기원들

다니엘 5:2, 11, 13, 18 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아람어에서 온 것으로 알려진 단어인 ‘아바’는 히브리어 단어들 중에 ‘아버지’란 의미를 가진 ‘아브’(אב)와 유사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미국의 어린이들이 “파파”(papa)나 “대디”(daddy)라고 아빠를 부르는 것과 비슷하게, 어린 아이가 아버지를 친근하게 부르는 구어체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록일의 루터교 신학자인 요아킴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는 아바가 일상적인 대화에서 사용하는 어린이들의 단어라고 설명하며 예수님이 하나님에 대한 마음의 표현을 위해 쓴 단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마치 어린 아이가 아버지에게 하듯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친근하게 부르셨다. 예수님은 자신만만하고 조심스럽게, 그리고 동시에 경건하고 순종적으로 하나님을 아바로 부르셨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Joachim Jeremias. New Testament Theology. (SCM Press LTD, 1971), 67.).

그러나 그러한 내용들이 아바의 의미일까요?

신약 성경에 나타난 아바

‘아바’라는 용어는 신약 성경 중에서 마가복음 14:36, 로마서 8:15 그리고 갈라디아서 4:6 등 오직 3번만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용어는 오직 예수님과 바울에 의해서만 사용되었습니다. 각각의 사용된 구절들에서 아바는 ‘아바’의 형태가 아니라 헬라어로 번역이 되어 있는데, “아버지”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인 ‘호 파테르’(ho patēr)로 번역되었습니다.

바울의 용례

바울은 로마서 8:15와 갈라디아서 4:6에서 ‘자녀들’ 혹은 ‘하나님의 아이들’로서의 성도들의 위치를 설명하기 위하여 ‘아바 호 파테르’(아빠 아버지)를 사용하였습니다.

로마서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갈라디아서 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이 구절들에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성도들이 사용하는 ‘아빠 아버지’라는 용어는 매우 친밀한 가족적인 용어라는 점입니다.

예수님의 용례

마가복음 14:36에서, 예수님은 체포되시기 바로 직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빠”와 “아버지”(Patēr) 혹은 ‘아빠, 아버지”라는 두 호칭들을 쓰시며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 또한 “아버지”(Patēr)라는 단어를 사용하심으로써 매우 친밀하게 하늘에 계신 자신의 아버지를 부르셨습니다(요 17:1).

마가복음 14: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요한복음 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던 장면인 마태복음 6:9-13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 (Patēr hēmōn, 마 6:9와 눅 11:2)라고 부르셨으며 제자들에게도 똑같이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마태복음 6:9의 두번째 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또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하시며 거룩함의 깊이에 대해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부르고 있는 대상이 거룩한 만유의 주인이심을 다시 기억하게 해 주는 신성한 부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동의하고 있습니다.

아바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

제임스 바(James Barr)는 자신의 신학적 연구 잡지에 쓴 자신의 글에서 “아바는 “아빠”(Daddy)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신약 성경에서 저자들이 ‘ 아빠 ’(Daddy) 의 뉘앙스를 알고 있었다면 쉽게 그렇게 표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 하지만 사실 , 아바의 뉘앙스는 ‘ 아빠 ’ 가 아니라 “ 아버지 ” 라는 것을 신약 성경 저자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 ‘ 아바 ’ 의 의미 자체가 “ 아빠 ” 라기보다는 “ 아버지 ” 의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여러 증거들이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시대에는 좀더 형식적이고 격식을 갖춘 언어와 구별되는 친숙하고 구어체적인 언어에 속한 단어가 “ 아바 ” 였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 이 단어는 ‘ 아빠 ’ 의 의미로 생각할 수 있는 어린 아이적인 유치한 표현이 아닙니다 . 이 단어는 아버지를 더 엄숙하고 책임감 있게 부르는 단어입니다 .

마이클 S. 하이저(Michael S. Heiser)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학자들은 아람어인 ‘ 아바 ’ 가 첫째 , 어린이들에 의해서만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라 주로 어른들에 의해 사용되는 단어라는 사실 , 그리고 둘째 , 비록 다정한 단어이긴 하지만 유치할 정도로 함부로 말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라는 중요한 해석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

그리고 대럴 보크(Darrell Bock는 강조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이 ‘ 우리 아버지 ’ 이시기 때문에 사랑을 담은 단어인 아바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 무례하게 함부로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경계해야만 하며 이 단어를 사용할 때에도 하나님의 위엄을 충분하게 인정하며 사용해야만 합니다 .

비록 ‘아바’라는 용어가 친밀감을 나타내는 용어이긴 하지만, 하나님을 ‘파파’ 혹은 ‘아빠’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격하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또한 온 우주의 주인이시며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모든 숨겨진 것을 드러내시는 분이시자 숨겨진 모든 것을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유의 주이시며 이 땅의 모든 만물들이 경외해야만 할 위대한 왕”이십니다.

아이들이 오늘날 예루살렘에서 자신들의 아버지를 “아바”라고 부를 때, 그 단어는 분명히 ‘아빠’ 혹은 ‘파파’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가 2천여년 전 예수님과 바울이 똑같이 사용하였던 아람어라는 사실로 인해 가슴이 벅찹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빠’를 뜻하는 ‘아바’라는 단어가 우리의 입술에 어색하게 느껴지도록 할 필요는 없습니다(아마도, 지나치게 조심해서 쓸 필요가 없다는 뜻).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자신의 자녀들로 삼아 주시고 우리가 그처럼 신밀하고 가족적인 이름으로 부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일입니다. ‘아바’가 하나님의 거룩함과 함께 우리를 양자로 삼아 주신 친밀감을 표현하는 용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단어에 대한 가장 올바른 사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육신의 아버지들과 같은 아버지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만 높고 영화로우신 완전한 아버지를 원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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