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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게이트》(Koreagate)는 1995년 10월 21일부터 1995년 12월 23일까지 방영된 SBS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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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게이트 박동선 사건이란 | 중앙일보
코리아게이트 박동선 사건이란 … 1976년 10월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한국 정부가 박동선씨를 내세워 70년대에 연간 50만~100만 달러 상당의 뇌물로 …
Source: www.joongang.co.kr
Date Published: 3/26/2022
View: 5492
코리아게이트
《코리아게이트》는 1995년 10월 21일부터 1995년 12월 23일까지 방영된 SBS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이다.
Source: artsandculture.google.com
Date Published: 5/12/2021
View: 3568
백악관 X파일(5) 코리아게이트-청와대 도청사건, 한미관계 최악 …
코리아게이트(박동선게이트)는 박정희 정권 말기인 1976~78년 한국과 미국의 정치권을 발칵 뒤집은 사건이었다. 1976년 10월 24일,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
Source: www.wikileaks-kr.org
Date Published: 9/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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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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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MORI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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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2.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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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게이트 박동선 사건이란
1976년 10월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한국 정부가 박동선씨를 내세워 70년대에 연간 50만~100만 달러 상당의 뇌물로 미국 의원과 공직자를 매수했다”고 보도하면서 알려진 사건. 코리아게이트(Koreagate)라고도 한다. WP가 “미 중앙정보국(CIA)이 청와대를 도청해 코리아게이트의 단서를 잡았다”고 추가 보도하자, 이 사건은 외교문제로 비화했다.
77년 2월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에서 한·미관계 조사권을 위임받은 프레이저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했다. 이 위원회는 박씨가 주한미군 철수와 대한(對韓) 원조 중단 등 한·미 현안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돈을 뿌린 것으로 보고 관련자들을 청문회에 불러 집중 추궁했다. 잠적했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과 미국에 망명한 워싱턴 중앙정보부 직원 김상근씨도 청문회에 출석했다. 이들은 박정희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재미사업가 김한조씨의 로비의혹을 추가로 폭로해 한·미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미 의회의 송환 요구에 불응하던 박씨는 면책특권을 받는 조건으로 증언에 응하기로 했다. 박씨는 78년 2월 상·하원 윤리위원회 비공개 청문회와 4월 의회 공개청문회에서 미 의원들에게 자금을 제공한 사실을 인정했다. 박씨는 기소는 됐지만 처벌은 받지 않았다. 요란했던 코리아게이트는 3명의 미 민주당 의원만 징계하는 선에서 마무리 됐다. 프레이저위원회는 같은 해 10월 한국관계 종합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조사활동을 마감했다.
청와대-백악관 X파일(5) 코리아게이트-청와대 도청사건, 한미관계 최악 상황으로 내몰다
[특별취재팀] “박동선 로비 의혹을 명쾌하게 정리해보려는 우리의 노력은 완전한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입니다.” (국무부 기밀전문)1977년 10월 22일 홀브루크 아태담당 차관보에게 보내진 국무부의 기밀전문은 “박동선 사건과 관련, 사건의 본질과 의회 절차에 관한 이슈 등 두가지 차원에서 벤자민 시빌레티 법무차관(훗날 장관)과 법무부 관리들과 협상은 벌였는데 결렬됐다”고 기록돼 있다.
코리아게이트(박동선게이트)는 박정희 정권 말기인 1976~78년 한국과 미국의 정치권을 발칵 뒤집은 사건이었다.
1976년 10월 24일,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포스트(WP)는 1면에 “서울이 미국 관리에게 수백만 달러를 줬다(Seoul Gave Millions to U.S. Officials)”는 충격적인 기사를 냈다.
당시 미국 정치권 내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인권 탄압을 방치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날로 세를 얻고 있는 상황이었다.
박동선이라는 한국인이 한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연간 50만~ 100만 달러 상당의 현금을 90여 명의 미국 국회의원과 공직자에게 전달하는 매수공작을 벌였다는 내용이었다.
돈을 받은 정치인들의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나열한 이 기사의 파장은 실로 엄청났다. 워싱턴과 뉴욕의 언론들은 한국 정부의 미 의회 로비에 대해 연일 경쟁적인 폭로전을 이어갔다.
한 때 한국 10대 재벌그룹에 속했던 미륭상사 오너가의 막내 아들이었던 박동선은 미국산 쌀을 한국으로 수입하는 재미 한국인 실업가였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명문 조지타운대를 졸업한 박씨는 워싱턴 정가에서 모르는 의원이 없을 정도로 발이 넓었다.
특히 그가 1960년대 워싱턴 시내에 개설한 ‘조지타운 클럽’은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과 제럴드 포드 부통령까지 출입했을 정도로 주목받는 고급 사교장이었다.
박씨는 이 자리를 미국산 쌀 수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회의원들과 교류하는 장으로 활용했다.
미국 사법당국은 박씨의 이러한 활동을 한국 정부 차원의 정치적 로비로 규정하고 내사에 들어간 것이었다. 박씨의 혐의는 ‘외국인의 미국 내 로비활동 등록법(Foreign agent registration act)’ 위반에 그치는 것이었지만, 미 법무성의 칼끝은 박씨를 넘어 한국 정부를 겨누고 있었다.
미국 내 여론은 들끓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몰고 온 워터게이트 사건에 분노했던 미국인들은 의회마저 부패에 찌들었다는 언론의 폭로에 치를 떨었다. 동시에 한국은 뇌물 공여를 통해 국익을 꾀하는 나라로 인식됐다.
이를 계기로 주한미군도 철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3선개헌, 유신선포, 잇단 긴급조치 선포 등 한국 정부의 독재와 인권탄압을 보는 미국인들의 시각도 곱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론의 동향에 민감한 미 의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특히 예전부터 한국에 대해 비판적 성향을 갖고 있던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 삭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친한파였던 미국 국회의원들도 하나 둘씩 한국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주미대사관 직원들이 평소 친분이 있던 의원들과 접촉해 반한 정서를 진정시켜보려 했지만, 그들은 한국 외교관과의 접촉을 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주미 대사관과 청와대 등이 ‘박동선과 한국 정부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기타 여러 미국 내 보도가 왜곡돼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내놨지만 의혹을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박동선의 코리아게이트 사건은 한-미 관계를 최악으로 몰아갔다. [사진=연합뉴스]
1977년 6월 말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한 미 정보기관의 청와대 도청 의혹이 결정타였다. CIA가 도청을 통해 박정희 당시 한국 대통령이 박동선씨에게 미국 내 로비 활동을 지시한 정황이 포착됐다는 것이 기사의 내용이었다.
한국 외무부는 즉각 주한 미국대사를 초치해 기사의 사실 여부를 확인했지만 미 대사는 즉석에서 이를 부인했다. 그러나 이듬해 4월 윌리엄 포터 전 주한 미국대사가 CBS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 도청 사실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갈등은 재현됐다.
박동진 당시 외무장관은 리처드 스나이더 미국대사를 초치했고, 미국 측도 우리 정부의 대응에 정식으로 유감을 표시하면서 한미관계는 꼬일 대로 꼬여갔다. 그리고 이 같은 분위기가 미국 언론을 통해 고스란히 보도되면서 미국 내 반한 정서는 점점 고조돼갔다.
이런 가운데 코리아게이트는 지미 카터가 ‘인권 외교’를 내세우며 제39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더욱 큰 쟁점으로 부각됐다. 카터 대통령이 선거 기간 코리아게이트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선언했던 탓이었다.
1977년 봄부터는 미 법무성 뿐 아니라 상하원 윤리위원회와 프레이저 소위원회까지 코리아게이트 조사에 나섰다. 특히 프레이저 소위원회는 몇 년 전부터 한국 정부의 대미(對美) 로비 의혹을 집요하게 제기해온 도널드 프레이저 의원이 위원장을 맡았다.
같은 해 7월에는 특별검사팀까지 꾸려졌다. 수석 조사관으로 임명된 것은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백악관의 비밀 녹음테이프를 입수해 닉슨 전 대통령의 사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레온 자워스키 검사였다.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았지만, 자워스키 검사는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비공식적으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특검은 별다른 수사 진전 사항도 발표하지 않은 채 몇 달 뒤 활동을 중단했다.
이런 가운데 영국 런던에 머물고 있던 박동선씨가 그해 8월 중순 한국으로 귀국했다. 미국과 영국 사법당국 간에 협조 기미를 눈치 채고 몸을 피한 것이었다.
박씨를 놓친 미 사법당국은 한국 정부에 박씨의 미국 귀환을 강력히 요청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박씨를 미국에 보내지 않는 대신, 철저한 조사 내용을 미국 측에 전달해 문제를 마무리하겠다고 통보했다.
조사 결과 박씨의 행동은 외국인의 로비활동 등록법 위반에는 해당할지언정 언론에 보도됐던 만큼 엄청난 범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미 사법당국의 수사를 계속 피한다면 마치 중대한 범죄 사실을 숨기는 것처럼 보여 오해는 더욱 커질 우려가 있었다.
결국 정부는 박씨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미국 측의 수사에 응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해결책이라는 결론에 도달, 그해 9월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박동진 외무장관이 미 국무성 측에 이 같은 입장을 전달했다.
이 때부터 박씨에 대한 미국 측 수사를 둘러싼 한미간의 외교교섭이 시작됐다. 벤저민 시빌레티 미 법무차관과 김종운 법무차관이 그해 10월과 1978년 1월 서울에서 만나 수사 장소와 수사 방식 등을 협의했다.
1978년 1월 13일, 박씨에 대한 미 사법당국의 수사가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시작됐다. 9일 동안 이어진 심문에서 박씨는 약 30여 명의 의원들에게 개인적으로 약 130만 달러 상당의 현금과 선물을 제공한 사실을 시인했다.
시빌레티 차관은 미국으로 돌아가 상하원 윤리위원회에 이 같은 수사 내용을 보고했다. 그러나 윤리위원회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일부 의원들이 박씨가 의회 조사에 적극 협조하지 않는다면 주한미군 철수보완 조치와 한국 식량원조 등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노골적인 위협에 나선 것이었다.
의회에 약한 국무성은 우리 외무부에 양해를 구하며 협조를 요청했다. 외무부 역시 미 의회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에 따라 한미 양국은 박씨의 미국 체류 기간 완전한 신분보장과 면제권 부여 등을 내용으로 하는 양해각서를 교환했고, 박씨는 그 해 2월 23일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워싱턴에 도착한 박씨는 2월 28일 미 하원 레이번 빌딩에서 비공개 증언에 나섰고, 같은 해 4월 3일에는 의사당 본관에서 열린 공개 청문회에 출석했다.
박씨는 쟁쟁한 미국 국회의원들 앞에서 조금도 굴하는 기색 없이 유창한 영어로 당당하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박씨의 모습은 듣는 이를 감동시킬 정도였다.
박씨는 자신이 미국 국회의원들에게 선물을 건넨 사실을 솔직히 인정했다. 그러나 그러한 자신의 행동은 한국인으로서의 애국심과 미국에 대한 친선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뿐 한국 정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박씨의 논리적이고 당당한 증언에 프레이저 위원장 등도 별다른 반대심문을 할 여지가 없었다. 박씨의 연설을 정점으로 박동선게이트는 마무리 수순을 밟게 된다.
코리아게이트는 박씨로부터 돈을 받은 현직 의원 1명이 유죄판결을 받고 7명이 의회 차원에서 징계를 받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박씨 역시 면책특권을 이용해 사면을 받았고, 그해 11월 1일 청문회 최종 보고서가 제출됨으로써 2년 동안 한미관계를 짓눌러온 검은 하늘에도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별취재팀= 최정미, 최석진, 이정우 기자]AT THE PRESENT TIME, WE HAVE REACHED A COMPLETE IMPASSE
IN OUR EFFORTS TO ARRANGE FOR INTERROGATION OF TONGSUN PARK.
ON THE FIRST ISSUE OF SUBSTANCE, THE ROKG WAS UNWILLING
TO AGREE TO ARRANGEMENTS FOR INTERROGATING TONGSUN PARK IN A
THIRD COUNTRY AND THEN HIS APPEARING IN TRIALS IN THE UNITED
STATES. THE KOREAN PROPOSAL TO INTERROGATE TONGSUN PARK IN KOREA
THROUGH KOREAN INTERMEDIARIES WAS REJECTED BY OURSLEVES. FURTHER
THE POSSIBLE FALL BACK OF INTERROGATING OF TONGSUN PARK IN
KOREA DIRECTLY BY U.S. OFFICIALS WAS NOT PROPOSED BY ROKG,
PROBABLY BECAUSE WE MADE IT CLEAR THAT DEPOSITIONS TAKEN AND
INTERROGATIONS IN KOREA WITHOUT ACCESS TO TONGSUN PARK IF
NECESSARY IN U.S. WERE NOT ADMISSABLE AS EVIDENCE IN U.S.
CRIMINAL TRIALS.
THE SECOND ISSUE INVOLVED PROCEDURES FOR ASCERTAINING
TONGSUN PARK’S INTENTIONS WITH RESPECT TO LEAVING KOREA AND
URGING HIM TO DO SO. IN THE FINAL MEETING, THE ISSUE BROKE
DOWN ON THE QUESTION OF LOCATION OF A TALK BETWEEN TONGSUN
PARK AND THE U.S. JUSTICE DEPARTMENT OFFICIALS WITH THE KOREANS
INSISTING ON A NEUTRAL GROUND SUCH AS A HOTEL AND CIVILETTI
INSISTING UPON HAVING THE TALKS TAKE PLACE AT THE EMBASSY. FULL
DETAILS ON THESE AND OTHER QUESTIONS, OF COURSE, ARE AVAILABLE
TO YOU THROUGH CIVILETTI.
THROUGHOUT THE TALKS, THE KOREANS STUCK TO THEIR FAST POSITION
OF INSISTING THAT THE FINAL ARRANGEMENTS DEPENDED UPON FREE WILL
OF TONGSUN PARK AND HIS WILLINGNESS TO GO TO A THIRD COUNTRY
AND THE U.S. THIS GAVE ADDED EMPHASIS TO THE QUESTION OF
ASCERTAINING HIS INTENTIONS. KOREANS WOULD NOT AGREE TO REACH AN
AGREEMENT ON PROCEDURES FOR INTERROGATION AND THEN USE THIS
AGREEMENT AS A MEANS OF PERSUADING PARK TO LEAVE KOREA.
OBVIOUSLY UNDERLYING THE KOREAN POSITION WAS DEEP
CONCERNS, PARTICULARLY AT THE BLUE HOUSE, REGARDING LOSING
CONTROL OVER TONGSUN PARK IF HE LEFT KOREA. IN MY JUDGMENT,
THESE CONCERNS RELATE ONLY IN PART, AND PERHAPS IN LESSER PART,
TO HIS ACTIVITIES IN WASHINGTON AND AS MUCH TO HIS KNOWLEDGE AND
QUITE POSSIBLY PARTICIPATION IN CORRUPT ACTIVITIES IN BOTH KOREA
AND ESPECIALLY JAPAN. ACCORDING TO INTELLIGENCE SOURCES, THE
JAPANESE ANGLE APPARENTLY LOOMS LARGE IN KOREAN VIEWS. KOREANS
ARE NOT CONFIDENT WE CAN LIMIT INTERROGATION OF PARK TO EVENTS
RELATING TO U.S.
THERE IS NO DOUBT THAT THE ULTIMATE DECISION NOT TO MAKE
CONCESSIONS TO U.S. POSITION RESTED WITH PRESIDENT
PARK. PARK APPARENTLY REMAINS CONVINCED THAT HE CAN RIDE OUT THE
STORM. BUT, THERE ARE MANY IN KOREA, INCLUDING INFLUENTIAL
FIGURES, WHO ARE NOT AS CONVINCED BY ANY MEANS AND WHO ARE CONCERNED
BY THE REPERCUSSIONS TO PARK HIMSELF IF IT APPEARS HE IS
PROTECTING A FEW VESTED INTERESTS AT THE EXPENSE OF HIS COUNTRY.
BUT EVEN AMONG THESE, THE INCLINATION STILL REMAINS, AS A MATTER
OF NATIONAL PRIDE, AND SOVEREIGNTY TO REACH A COMPROMISE INVOLVING
INTERROGATION IN KOREA AT LEAST INITIALLY, LEAVING OPEN THE
POSSIBILITY OF INTERROGATING HIM IN A THIRD COUNTRY OR THE U.S.
AT A LATER POINT.
WHERE DO WE GO FROM HERE? I TALKED BRIEFLY TO THE FOREIGN
MINISTER THIS MORNING AND FOUND HIM VERY DISCOURAGED, PARTI-
CULARLY REGARDING OUR INSISTENCE AT THE FINAL TALKS ON SPEAKING
TO PARK ONLY IN THE EMBASSY, GIVEN THE PRECEDENCE OF KOREAN
ACCESS TO KIM SANG-GUN AND SONG HO-YOUNG AT THE STATE
DEPARTMENT. HE ALSO FELT CIVILETTI’S DEPARTURE WAS ABRUPT
AND I EXPLAINED THE BASIS FOR BOTH OUR POSITIONS. I WOULD
ADD PARENTHETICALLY THAT I AM PERSONALLY DISAPPOINTED THAT WE
WERE UNWILLING TO TALK TO PARK IN A NEUTRAL
CORNER, ALTHOUGH I RECOGNIZE IT WOULD NOT HAVE BEEN A CONCLUSIVE
INTERVIEW. I URGED FORMIN TO REVIEW CAREFULLY RECORD OF
JUSTICE-JUSTICE TALKS WITH OBJECTIVE OF RECONSIDERING ROKG
POSITION ON MEETING OUR LEGAL REQUIREMENT.
ALTERNATIVES FACING US ESSENTIALLY ARE TO TAKE A MUCH MORE
SECRET
FORCEFUL STANCE VIS-A-VIS KOREA IMMEDIATELY OR LETTING THE
PRESENT SITUATION FESTER. THE FIRST ALTERNATIVE OF COURSE
POTENTIALLY INVOLVES VERY SERIOUS CONSEQUENCES FOR OUR INTERSTS
HERE. THE SECOND ALTERNATIVE WOULD PERMIT THE HOUSE ETHICS COMMITTEE
ANDD OTHER PRESSURES GENERATING FROM U.S. TO TAKE THEIR TOLL
IN KOEA. EVENTS IN THE U.S. ARE ALREADY WIDENING THE CIRCLE
HERE WHO BELIEVE THAT NEW EFFORTS TO COMPROMISE MUST BE WORKED OUT.
I HAVE ALREADY INITIATED EFFORTS TO HAVE SENIOR KOREANS BRING
GREATER SENSE OF REALITY REGARDING THE RISKS INVOLVED TO THE AT-
TENTION OF PRESIDENT PARK AND WILL CONTINUE TO PURSUE THIS LINE.
WHILE I RECOGNIZE A DEEP SENSE OF FRUSTRATION AND DISAPPONT-
MENT WITH KOREAN POSITION, I WOULD STILL FAVOR THE SECOND ALTERNA-
TIVE, LETTING THE UNHAPPY EVENTS THEMSELVES BUILD THE PRESSURES ON
KOREA WITH THE HOPE THAT THEY WILL COME UP WITH A COMPROMISE
WE CAN LIVE WITH. WITHIN THIS FRAMEWORK, I REALIZE THAT
ADMINISTRATION MUST MAKE ITS DISSATISFACTION PUBLICLY KNOWN,
ALTHOUGH IT IS EVIDENT TO THE KOREANS.
SNEIDER UNQUOTE VANCE. *
IN ESSENCE THE NEGOTIATIONS UNDERTAKEN BY CIVILETTI AND THEJUSTICE DEPARTMENT OFFICIALS BROKE DOWN ON TWO ISSUES, ONEDEALING WITH SUBSTANCE AND THE SECOND DEALING WITH PRELIMINARYPROCED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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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게이트》(Koreagate)는 1995년 10월 21일부터 1995년 12월 23일까지 방영된 SBS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이다.
트리비아 [ 편집 ]
토요일 오후 8시 50분부터 2회 연속 방송됐다. 해당 드라마의 시간대가 신설되면서 《옥이 이모》는 1995년 10월 22일부터 일요일 2회 연속 방영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한편, 1996년 초 방송된 《부자유친》을 토,일 오후 8시 50분으로 바꾸게 되어[1] 당초 기획된 32부작에서 12편 축소된 20회로 막을 내려야 했는데 연출자(고석만)가 다큐멘터리에 충실하려 고집했으나 정치권의 격변에 휘말려 드라마의 순수성이 훼손되어 조기종영에 동의했다.
등장 인물 [ 편집 ]
참고 사항 [ 편집 ]
담당 PD 고석만이 MBC를 떠나 프리랜서 선언 후 SBS로 이적한 뒤 처음 연출한 작품이었는데, 이 때문에 고석만 PD가 연출자로 낙점된 [2] MBC 6.25 특집 드라마 <현악 6중주>의 편성이 불발됐다.
MBC 6.25 특집 드라마 <현악 6중주>의 편성이 불발됐다. 1995년 10월 17일 SBS 8 뉴스 시간에 해당 드라마의 시사회 광경과 주요 장면을 보여준 데 이어 첫 방영 날인 같은 해 10월 21일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중계방송 시간에도 캐스터가 여러 차례 방송 사실을 강조하여 비난을 샀다. [3]
방송위원회로부터 시청률을 의식한 지나친 흥미 위주의 제작으로 시청자들의 역사인식을 그릇되게 할 수 있다고 판단되어 ‘TV 드라마에 대한 일반권고’ 조치를 받았다. [4]
지나친 폭력 묘사로 방송위원회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았다. [5]
신한국당 허화평 의원은 해당 작품과 MBC 제4공화국이 당시 합동수사본부 측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MBC 강성구 사장, SBS 윤세영 회장과 드라마 PD, 작가 등 관련자 16명을 서울지검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6]
당초 계획에 32부작이었으나 유신시대의 정면 해부를 다짐했던 정치극의 큰 줄기를 외면했다는 지적 등을 받으며 [7] 시청률 부진을 면치 못하여 20부작으로 축소 방영되었다. [8]
시청률 부진을 면치 못하여 20부작으로 축소 방영되었다. 고석만 PD는 해당 드라마의 실패 후 SBS와 결별한 뒤 독립 프로덕션 드림써치를 설립하여 시대극 《제이슨 리》를 제작할 예정이었으나 [9]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10] 무산되는 수모를 겪었고 급기야 부친상까지 당했다. [11]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무산되는 수모를 겪었고 급기야 부친상까지 당했다. 배역에 맞지 않는 배우들로 캐스팅해서 문제점이 발생했다. 특히 전두환 역의 정종준은 실제 전두환이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인 것과는 대조되게 비만이었으며 장태완 역의 김동현 역시 선량하지만 힘있는 인상의 장태완과는 달리 험상궂은 인상이다. 육영수 역의 고두심 역시 육영수 보다 되려 김옥숙을 더 닮았으며 키가 매우 컸던 육영수와는 달리 고두심은 키가 매우 작다. 또한 실존인물 이순자가 상당한 추녀임에도 불구하고 이순자 역의 견미리는 미인이다.
같이 보기 [ 편집 ]
각주 [ 편집 ]
외부 링크 [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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