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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등진 그녀의 못 다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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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민 (야구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일본 프로 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투수였고 두산 베어스 2군 투수코치였다. 5살 연상의 탤런트 겸 영화배우 최진실과 결혼했고 아들 1명과 딸 1 …
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9/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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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기 노린 조성민, 최진실처럼 40세 자살…왜? | 중앙일보
서울 수서경찰서에 따르면 조씨는 6일 오전 3시40분 서울 도곡동의 여자친구 박모(40)씨의 오피스텔 욕실에서 허리띠로 목을 매 숨졌다. 조씨는 이날 박씨 …
Source: www.joongang.co.kr
Date Published: 12/26/2022
View: 9294
조성민 마지막 말 “한국서 살길 없어” – 한겨레
2008년 최진실 자살 충격겪어. “한국에서 살 길이 없네요.” 전 프로야구 선수이자 고 최진실씨의 전남편 조성민(40)씨가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
Source: www.hani.co.kr
Date Published: 10/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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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최진실 조성민
- Author: TVCHOSUN –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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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16.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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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최진영·조성민..비운의 가족사>(종합)
39-40세 나이에 잇달아 자살..”남은 남매 어떡하나”
<그래픽> 故최진실 前 남편 조성민 자살 추정
(서울=연합뉴스) 반종빈 기자 = 6일 오전 3시40분께 고(故) 최진실씨의 전 남편인 전직 프로야구 선수 조성민(40)씨가 서울 강남구 도곡동 여자친구의 아파트에 숨져 있는 것을 조씨의 여자친구 A(40)씨가 발견했다.
@yonhap_graphics(트위터)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2008년 10월2일 톱스타 최진실 자살. 향년 40세.
2010년 3월29일 탤런트 최진영 자살. 향년 39세.
조성민 사망, 안치실 들어가는 과학수사대 (서울=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고(故) 최진실씨의 전 남편인 전직 프로야구 선수 조성민(40)씨가 도곡동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채 발견된 가운데 6일 오전 시신이 안치된 서울 강남구 도곡동 강남세브란스병원 안치실에 과학수사대원들이 들어가고 있다. 2013.1.6
2013년 1월6일 전 야구스타 조성민 자살. 향년 4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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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에 이어 남동생 최진영, 그리고 이번에는 그의 전남편 조성민까지 모두 세상을 떴다. 게다가 세 사람 모두 같은 방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믿기 어려운 비극이다. 이들의 비극적인 가족사가 충격과 함께 안타까움을 안겨주고 있다.
최진실-진영 남매는 어린 시절의 가난을 이겨내고 각기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와 인기 스타가 된 성공스토리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전해줬다.
조성민씨 아파트서 목매 숨진채 발견 (서울=연합뉴스) 고(故) 최진실씨의 전 남편인 전직 프로야구 선수 조성민(40)씨가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 한 아파트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경찰은 조씨가 화장실에서 허리끈으로 목을 맨 채로 발견됐다고 밝혔다. 사진은 조씨가 지난 2008년 최진실씨의 자살 이후 양육권과 재산권 관련해 기자회견하는 모습. 2013.1.6 << 사회부기사 참조 >>
그러나 누나 최진실이 남편과 불화 끝에 이혼한 뒤 우울증으로 2008년 10월2일 자살한 데 이어, 1년5개월 만에 동생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이들 남매의 성공신화는 슬프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최진실은 스무 살이던 1988년 한 CF에서 유명 여배우 대신 수영장에 뛰어드는 대역 연기를 펼치는 등 단역 모델을 시작으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그러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는 카피가 큰 성공을 거둔 가전 CF 이후 연예계의 신데렐라로 부상했다. 이후 20년간 큰 사랑을 받으며 연예계의 정상에 군림했다.
최진실이 연예계에서 성공하면서 최진영이 누나의 뒤를 따랐다. ‘최진실의 동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출발하기는 했지만, 그도 귀여운 외모로 호감을 사며 1990년대 다수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조연으로 활약했다.
故 최진영, 누나 곁에서 영면 (양평=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지난 2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故 최진영씨가 31일 오후 경기 양평군 갑산공원 자신의 누나인 故 최진실씨 묘역 옆에 안치될 예정인 가운데 고인의 영정이 장지에 도착하고 있다. 2010.3.31
최진실은 동생의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며 물심양면으로 지원했고, 최진영 역시 누나의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 제일 앞에 서서 해결하려 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들 남매는 연예계에서 ‘용감한 최씨 남매’로 불렸다.
특히 최진영이 배우로서 지지부진하다가 1999년 ‘스카이’라는 예명으로 1집을 내고 가수 데뷔를 했을 때는 최진실이 동생의 재기를 기원하며 종횡무진 홍보활동을 펼친 일화로도 유명하다.
최진영은 당시 “누나를 위해서라도 꼭 성공하고 싶다”고 누누이 말했다.
눈물 흘리는 최진실씨 어머니 눈물 흘리는 최진실씨 어머니
(양평=연합뉴스) 신영근 기자 = 26일 오전 故 최진실씨 유골함 절도 용의자가 검거돼 경기도 양평경찰서에서 도난당했던 최진실씨 유골을 돌려받은 최씨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09.8.26
http://blog.yonhapnews.co.kr/geenang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이들 남매의 성공 신화에는 서서히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최진실이 2004년 9월 조성민과 이혼 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최진영이 연예계에서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 것.
최진실은 정점에 있던 2000년 12월 프로야구계 톱스타인 조성민과의 결혼으로 동화 같은 러브 스토리를 보여줬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와 일본 명문 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 투수의 결혼은 국내외적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원만하지 않았다. 2004년 8월 조성민이 최진실의 집에서 폭력을 휘둘러 긴급체포되는 사건까지 불거진 후 둘은 이혼했다. 슬하에 환희와 준희 남매를 둔 상황이었다.
< 2008 화제의 인물> 최진실 < 2008 화제의 인물> 최진실
(서울=연합뉴스) 탤런트 최진실. 20년간 대중스타의 자리를 지키다가 10월2일 마흔의 나이로 자살했다. 1988년 MBC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한중록’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한 그는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멘트로 유명한 CF와 함께 연예계의 신데렐라로 급부상했다. 2000년 프로야구 스타 조성민과 결혼했다가 불화 끝에 2004년 이혼하면서 연기생활도 침체기를 맞았다. 그러나 2005년 드라마 ‘장밋빛 인생’으로 재기에 성공했고, 올초 방송된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 ‘줌마렐라’ 신드롬을 일으키며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그의 사후 자신의 성(姓)을 따랐던 두 아이의 친권과 재산관리권을 놓고 논란이 일었고, 그가 평소 앓았다는 우울증과 인터넷 상의 악성 댓글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일어나기도 했다.사진은 지난 10월 4일 오전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2일 자택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탤런트 故 최진실의 영결식.
이후 모든 연예활동을 접는 등 연기 인생에 큰 타격을 받았던 최진실은 2005년 KBS 2TV 드라마 ‘장밋빛 인생’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거기에는 그의 옆을 항상 지켜주던 최진영이 있었다.
2008년 MBC TV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 아줌마의 판타지를 자극하며 ‘줌마렐라 신드롬’을 일으킨 최진실은 당시 인터뷰에서 “진영이가 아빠처럼 조카들을 너무 잘 봐줘 고맙고, 그런 진영이가 집안을 지키고 있어 너무 든든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진실은 끝내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두 자녀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진영은 자택에서 목맨 채 숨진 누나를 제일 먼저 발견하고 누나의 목에 감긴 줄을 풀어줬다.
최진실-조성민 결혼식 영화배우 최진실과 프로야구선수 조성민이 5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결혼식을 거행하고 있다./진성철 2000.12 5 (서울=연합뉴스)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 2000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최진실은 죽어서도 편안하지 못했다. 2009년 8월4일 양평군 양수리 갑산공원에 있는 고인의 납골묘가 파헤쳐져 유골함이 도난당한 것. 유골함은 도난 21일 만에야 되찾아 원래 자리에 다시 안치됐다.
최진영은 누나가 떠난 후 남은 조카들을 돌보며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려 했다. 하지만 그는 그 와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을 많이 했고, “밤에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 밤을 꼬박 새운 뒤 아침에야 잠을 잔다”고 밝히곤 했다.
그러더니 끝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며 누나의 뒤를 따랐다. 누나가 떠난 지 1년5개월 만이었다.
구타당한 최진실 지난 1일 남편 조성민씨로부터 구타당한 것으로 알려진 탤런트 최진실이 2일 서울 강남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다./이옥현/연예/사회/
2004.8.2 (서울=연합뉴스)
<저작권자 ⓒ 2004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그로부터 3년 뒤 이번에는 조성민이 6일 오전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자살로 추정하고 있다.
조성민은 탁월한 재능에도 굴곡 많은 인생 탓에 꽃을 피우지 못한 ‘비운의 스타’로 꼽힌다.
194㎝의 당당한 체구에서 뿜어내는 강속구를 앞세운 그는 1996년 고려대를 졸업하면서 계약금 1억5천만 엔을 받고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명문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조성민-최진실커플의 다정했던 시절 1일 협의이혼하며 완전결별한 조성민-최진실커플의 다정했던 모습. 지난 2000년 7월 결혼발표 당시의 모습이다./자료/문화/연예/
2004.9.2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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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7월 처음 1군 무대에 올라 주로 불펜에서 경험을 쌓은 그는 1998년 본격적으로 선발로 나서 야구 스타로 활약했다.
그러나 1999년 팔꿈치 수술을 받은 이후 기나긴 부상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 재기에 실패해 2002년 요미우리를 떠났다.
화제 속에 맺어진 최진실과의 결혼도 파경으로 끝났고 그 과정에서 폭행, 외도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제빵 사업가와 해설가 등으로 활동하던 그는 2005년 한화에 깜짝 입단했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이후 이런저런 사업에 손을 대는 듯했던 그는 2011년 두산 2군 코치로 새 출발, 지난해 말까지 선수들을 지도했다. 하지만 지난달 초 두산과의 재계약은 포기했다.
조성민까지 떠나면서 최진실-조성민의 자녀 환희와 준희는 부모를 모두 잃게 됐다.
환희와 준희는 그간 외할머니 정옥숙 씨가 양육해왔다.
최진실의 사망 후 조성민이 두 자녀의 양육권, 친권을 놓고 유족과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2008년 12월8일 외할머니인 정씨에게 두 아이에 대한 양육권과 재산권 등 모든 권리를 넘겼다.
엄마에 이어 함께 살던 외삼촌의 죽음은 두 아이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남매는 주변의 보살핌 속에 이를 극복하고 지난해 9월 KBS 2TV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의 ‘패밀리 합창단’에 출연해 엄마처럼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밝히는 등 밝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둘은 합창곡으로는 엄마의 생일이 12월24일이라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을 골랐다며 노래를 들려줬고, 최진실을 향해 “좋은 재능과 외모를 줘서 감사하다”며 “하늘에서 행복하세요”라는 메시지를 전해 애틋함을 자아냈다.
하지만 엄마와 외삼촌에 이어 아빠마저 세상을 뜨면서 이들 남매는 또다시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과 마주하게 됐다. 외할머니 정씨 역시 아들, 딸에 이어 사위까지 잃으면서 다시 큰 고통을 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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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민(趙成珉, 1973년 4월 5일 ~ 2013년 1월 6일[2])은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야구 코치, 방송인이다. 일본 프로 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투수였고 두산 베어스 2군 투수코치였다. 5살 연상의 탤런트 겸 영화배우 최진실과 결혼했고 아들 1명과 딸 1명을 낳았으며 최진실과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이혼하였다.
초등학교 시절 야구부원이 된 후 신일고등학교 야구부원으로 출전하여 1991년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을 거두어 스타로 관심을 받았으며,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재학 중에도 야구선수, 국가대표 야구선수로 활약했다. 1995년부터 2002년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활약했으나 1998년, 1999년 오른쪽 팔꿈치 부상으로 2002년 자진 은퇴하였다. 이후 이혼 사건에 휘말리면서 국내 야구계에서 외면 당하다 2005년 한화 이글스에 복귀했으며 2007년 방출 당했다. 한때 방송 야구 프로그램의 해설 위원 등으로 활동하였고, 2008년 사업을 하기도 했으나 실패하였다. 2013년 1월 6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오피스텔(원룸)에서 자살하였다고 한다.[3]
생애 [ 편집 ]
프로 입단 전 [ 편집 ]
조성민은 1973년 4월 5일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마동(현 광진구 중곡동)에서 은행원으로 한일은행 인천지점장 등을 역임한 조주형과 유영숙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조주형은 은행가로 활동하기 전, 한때 정구 국가대표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서울 용마초등학교에 입학,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부원으로 활동하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강동구 둔촌동으로 이사하여 둔촌초등학교로 전학, 계속 야구부 부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신일 중학교로 진학한 후에도 그는 야구부원으로 활약하였다.
신일중학교를 거쳐 신일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1991년 8월 야구 청소년 대표 선수로 발탁되었다. 1992년 4월부터 1995년 8월까지는 프로야구 청소년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했다. 이때 그는 한·미·일 국제 청소년 야구(1991년)와 하계 유니버시아드(1993년), 아시안 게임(1994년)에 출전하였다. 1991년 9월에는 황금사자기 고등학교 야구대회에 신일고등학교 선발 투수[4] 로 출전하여 광주일고를 누르고 우승하는데 기여했다. 91년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에서 그는 봉황기 우수투수상과 홈런상 등을 동시 수상하였다. 1993년 3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 대학 재학 중에도 대학 야구부원으로 활약했다. 1993년 5월 20일부터 5월 29일에는 신일고등학교 야구부 주전으로 경향신문 주최 제 42회 백호기전국종합야구선수권대회에 우완으로 출전하였다.
프로 입단 후 [ 편집 ]
일본 프로 야구 시절(1996년~2002년) [ 편집 ]
1995년 5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재학 중 일본의 야구단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고, 같은 5월 그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선택하였다.[5]
고려대 경영학과(1992학번)를 졸업하고 199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계약금 1억 5천만엔, 연봉 1,200만엔의 조건으로 입단하였으며 본인에 앞서 정순명 황규봉이 아마추어 출신 한국인 일본 프로야구 진출 선수가 될 뻔 했지만[6] 대학 진학으로 무산됐다. 계약 기간은 7년이었다.[7] 1997년 한때 일본 프로야구 올스타 후보의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1997년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여 1승 2패 11세이브 평균 자책점 2.89를 기록, 가능성을 보였다. 1998년 선발 투수로서 전반기에 7승을 거두어 일본 프로야구 올스타전에 선발되었지만, 이 때 팔꿈치 부상을 당해 내리막길을 걸었다.
1998년 7월 오른쪽 팔꿈치 부상으로 2번의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였다.[8] 1999년 2월 다시 오른쪽 팔꿈치를 부상 당했다. 그는 쉽게 부상에서 회복되었으나 재기에 실패하고, 부상 이후 실적이 부진하였다. 2000년 12월 최진실과 결혼했다.[8] 그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 시절 빠른 직구와 포크볼 위주의 투구를 하였다. 일본 프로 야구 통산 11승 10패 11세이브, 방어율 2.84를 남기고 2002년 10월에 요미우리를 자진 퇴단하였다. 퇴단 이후 그는 대한민국의 야구계로 진출하려 하였으나 교섭 과정에서 실패하면서 장기간의 공백기를 갖게 되었다. 2002년 12월 최진실과 파경에 이르자 그는 또 “다시 야구를 하고 싶다”며 야구 복귀를 꿈꿨으나 그마저 좌절되었다.[8]
공백 기간 [ 편집 ]
2002년 9월 부인 최진실과 함께 서울 서초구 잠원동 G주택 분양 광고에 관련하여 소송을 제기했다.[9] 조성민과 최진실이 살던 서울 서초구 잠원동 G주택 주민 17명이 허위 분양광고와 시공상 하자로 인한 추가 보수 비용 발생을 문제 삼아 2002년 9월부터 M건설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하였다.[9] 이때 최진실과 조성민도 함께 피소당했다. 2004년 2월 잠원동 G주택 주민들의 승소 후, G주택 6층을 각각 2분의 1씩 지분율로 나눠서 분양 받은 최씨와 조씨는 1인당 729만원씩의 손해배상액을 받게 되었으나 미납한 분양대금 1000만원과 상계해 1인당 229만원씩을 받게 됐다.[9]
조성민은 2003년과 2004년에 신인드래프트 참가 신청서를 냈으나 모든 구단들로부터 외면 당했다.[10] 2004년 초 공백 기간을 갖다가 그해 4월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신인 1차 드래프트를 신청한 뒤 지명하는 구단이 없자 2차 지명을 아예 포기했던 조성민이 1년 후 다시 그라운드에 서기 위해 1년 반만에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갔다.[11] 조성민은 2004년 4월 초부터 서울 강남 도곡동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하루 3시간의 강도높은 웨이트트레이닝을 하하였다.[11] 피트니스 전문강사로부터 1년치 ‘몸 만들기’ 프로그램을 받은 조성민은 “나의 마지막 이정표는 야구다. 1년만이라도 한국 프로무대에서 뛰고 싶다”며 “올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해 다시 한번 국내 프로 야구단의 문을 두드리겠다”고 말했다. 주말을 빼고 5일간 빠짐없이 피트니스 센터를 찾고 있는 조성민은 하루 30분의 러닝으로 몸을 푼 뒤 잃었던 ‘근육 만들기’에 열중하였다.[11]
한국 프로 야구 시절(2005년~2007년) [ 편집 ]
2005년 5월, 계약금 없이 연봉 5천만 원의 조건으로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여 주로 불펜 투수로 활동했다.[12] 그는 김인식 감독의 주선과 부름을 받고 다시 복귀하였다. 당시 한화 관계자는 “김인식 감독의 요청에 따라 조성민 영입을 검토하게 됐다”고 말했다.[10] 조성민은 3-5로 뒤지고 있던 7회에 한화의 세 번째 투수로 등판해 1과 1/3이닝동안 공 22개를 던지고 마운드를 내려갔으나 그 사이 팀이 역전하는 바람에 데뷔전에서 첫 승을 신고했다.[13] 이후 한화에서 그는 컨트롤 위주의 투구를 하였다. 2007년 시즌이 끝난 뒤 한화 구단으로부터 방출된 뒤 은퇴하였다.
2007년 10월 22일 한화로부터 방출을 통보 받은 뒤 서울 집에서 지내며 지인들 외에는 연락을 끊고 지냈다.[14] 당시 한화의 한 관계자는 얼마전 통화를 했는데 당분간은 그냥 쉬면서 지내고 싶다고 했다 한다.[14] 이후 그는 여러번 현역으로의 복귀하였으나 야구단들은 그를 외면하였다.
배우 최진실과 결혼 [ 편집 ]
조성민은 배우 최진실과 2000년 12월 5일 백년 가약을 맺었다. 조성민-최진실 커플은 2000년 12월 5일 오후 5시 하얏트 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보도진과 하객등 약 1천 5백 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려한 결혼식을 시작했다. 이 날 결혼식은 국내 유명 연예인과 일본 프로야구 스타들이 대거 참가했으며, 사회는 이경규가 주례는 윤영섭 고려대학교 시절 은사가 맡았다.[15][16] 신랑 조성민은 신부에게 바치는 사랑의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 사랑하는 당신 진실에게, 앞으로 지금까지 보다 더 험난한 길이 우리 앞에 있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 정말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를 바랍니다. 우린 이제 혼자가 아닙니다. 두눈 감을 때까지 영원히 당신을…당신만을 사랑하겠습니다.
내 기력이 다했을 때 그대의 사랑으로 여기까지 살아왔노라고 말하겠습니다 ”
최진실은 ‘남편 조성민에게 보내는 편지’로 “나 최진실은 신랑 조성민을 보호하고 이 세상 끝날 때까지 당신만을 사랑하며 아끼겠습니다. 야구선수인 남편을 위해 아낌없이 내조할 것을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야구 관계자들에게 약속합니다.”라고 화답해 하객으로 참석한 야구 관계자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또한, 최진실은 어머니 정옥순께 드리는 감사의 편지에서 “어제 많이 울었다. 많이 서툴고 엄마가 보기엔 어려 보일지 모르지만 잘할 자신있다. 결혼을 맞이하고서야 어머니와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내가 없는 집에서 외롭게 지낼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저려온다.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은혜에 감사한다.”며 동생 최진영에게는 엄마를 잘모시라고 당부하였다.[17]
스포츠와 연예계, 스타의 결혼으로 화제를 모은 두 사람의 결혼식은 최진실의 당시 소속사인 이스타즈를 비롯해 한국통신, 인터넷 MBC 등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 되었다. 생중계로 방송되는 결혼식 때문에 부부는 오후 2시부터 진행된 리허설에 참가했다. [18] 당시 한국의 경제 위기 상황 속에 ‘하루 밥 벌어 먹고 살기도 어려운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하루 결혼식에 엄청난 거액을 쏟아부어도 되느냐, 자신이 어렵게 살아왔다면 어려운 사람의 심정도 좀 알텐데 그럴 수가 있느냐, 공인으로서 과소비를 과시하는 태도는 비난 받아야 한다’는 라며 서민들을 좌절케 했다는 여론과 호화로운 결혼식을 생중계를 통해 자세하게 보도한 방송사에 대한 비난도 있었다. [19]
당시 한국의 경제 위기 상황 속에 ‘하루 밥 벌어 먹고 살기도 어려운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하루 결혼식에 엄청난 거액을 쏟아부어도 되느냐, 자신이 어렵게 살아왔다면 어려운 사람의 심정도 좀 알텐데 그럴 수가 있느냐, 공인으로서 과소비를 과시하는 태도는 비난 받아야 한다’는 라며 서민들을 좌절케 했다는 여론과 호화로운 결혼식을 생중계를 통해 자세하게 보도한 방송사에 대한 비난도 있었다. 결혼은 양가의 반대로 쉽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조성민은 자살시도를 하기도 하였다. 병원에서 입원했으며 구단의 퇴출을 우려하여 감기몸살로 위장을 하였다.
2000년 11월 15일 혼인신고를 하고, 2000년 12월 5일 결혼한 이후, 8개월만에 2001년 8월 3일 첫째 환희가 출생하였고, 2002년 12월 18일 조성민의 이혼선언기자회견으로 파경 위기를 맞은 최진실은 2003년 3월 1일 청담동의 M산부인과에서 혼자서 둘째 준희를 출산하였다.[20]
생애 후반 [ 편집 ]
은퇴 후 [ 편집 ]
이혼과 재혼 [ 편집 ]
2005년 7월, 조성민은 ‘불륜’ 상대자로 지목 받았던 심미영과 결혼하였다.[24] 2010년 10월, 조성민의 아버지 조주형은 조성민과 심미영에 대해 “두 사람 관계는 정리된 걸로 안다. 두 사람은 10개월째 별거 중이다”라고 말했다.[25][26] 2011년 12월, “대법원 법인 등기부를 통해 확인한 결과, B업체 대표 이사는 심미영이고, 조성민은 2010년 10월 26일 B업체의 사내 이사로 취임했고 2010년 11월 2일 정식으로 등기부에 등재되었다”라는 사실이 알려졌다.[27]
2008년 사업에 투자 먹음직닷컴, SMC21 등을 운영하였으나 모두 사업에 실패하였다. 그해 MBC 방송 ESPN 야구해설위원으로 출연하였다.
2008년 10월, 조성민은 최진실의 두 자녀가 물려받은 유산을 관리하는 것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면서 사회적 반발을 샀다. 그 와중에 배우 우연희가 조성민의 배우자라는 허위사실이 유통되었고, 그로 인해 우연희는 얼굴도 알지 못하는 시민으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으며 또한 우울증도 앓았는데, 그 피해사실을 《MBC 스페셜》에 출연하여 공개하였다. 한편, 우연희의 본명은 심은우였고, 우연희의 둘째 아들 이름은 조성민이었다.[28][29][30] 2010년부터는 XTM 야구해설자로 활약했고 폰앤컴퍼니 스포츠사업부 전문위원도 겸했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는 두산 베어스 2군의 재활코치로 활동하였다.
사망 [ 편집 ]
2013년 1월 6일 새벽, 조성민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에 위치한 지인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이는 이 지인이 0시 5분부터 3시 34분까지 외출한 동안 발생한 것이었다.[31] 이 지인은 조성민의 여자친구였던 사람이었는데, “2013년 1월 5일에 오피스텔 안에서 조성민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이별을 통보했다. 1월 6일 0시 5분경 다른 친구와 약속이 있어 외출 후 용무를 마치고 귀가하여 위 상황을 확인하였다”라고 경찰조사에서 진술했다.[31]
1월 6일 오전 서울 수서경찰서에 따르면 조성민 씨는 숨지기 전 A 씨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32] 당시 경찰에 따르면 그는 A 씨와 교제한 뒤 수시로 A 씨의 집을 드나들었고, 한 번 방문하면 며칠씩 머무르기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경찰조사에서 “조 씨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다 ‘헤어지자’고 말했다”라고 진술했다.[32] 그는 숨지기 전 A 씨에게 카카오톡으로 생애 어려움에 대한 메시지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32] 그의 나이 향년 41세였다.
사후 [ 편집 ]
2013년 1월 12일, 조성민의 유서가 조성민의 부모의 집에서 발견되었고, 이 유서에는 자신의 유산은 자신의 누나 조성미에게 남긴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조성민의 사망 장소와 조성민의 유서가 발견된 장소가 다른 것에 대해 경찰은 “사건이 발생하면 현장에서 기본적으로 유서를 찾는 작업을 한다. 하지만 컴퓨터, 입고 있는 옷 등을 토대로 확인하지 압수수색을 하듯이 샅샅이 뒤지지 않는다. 고인의 유품이 정리되는 과정에서 모든 짐들이 양수리 쪽으로 모아졌고,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유서가 나온 것 같다”라고 말했다.[33][34] 한편, 조성미는 여성잡지 2013년 2월호를 통해 조성민이 심미영과 이혼한 상태였다고 밝혔다.[35] 그러나 구청 기록 열람등을 통한 실제적인 기록 조회에 의하면 조성민은 사망당시 심미영과 법적으로 혼인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논란과 의혹 [ 편집 ]
조성민은 2000년 12월에 배우 최진실과 결혼식을 올렸고[36], 최진실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조성민은 최진실과의 결혼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자살 시도 등의 행위를 보여 주었고, 최진실과의 이혼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행위를 보여 주었다.[37] 조성민은 2002년 12월에 가출을 하였고[38], 2002년 12월 18일 오후 2시에 이혼하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그 자리에서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하였다.[39] 2004년 9월에 최진실과 ‘협의상 이혼’을 하였다.[40][41][42] 이후 2005년 7월에 ‘술집 마담’으로 알려진 심미영과 혼인신고를 하였다.[24][43][44]
불륜 의혹 [ 편집 ]
2002년 12월, 조성민은 이혼하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조성민은 자신이 왜 최진실과 이혼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기자들에게 설명하면서 최진실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들을 하였다. 그 과정에서 조성민은 자신이 ‘불륜’을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밝혔는데, 그 때 ‘술집 마담’ 심미영을 언급하면서 자신과 심미영은 ‘불륜’ 관계가 아니라 ‘친구이자 동업자’ 관계라고 말하면서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몰았다. 심미영도 기자들과 인터뷰를 가졌는데, 그 인터뷰에서 심미영은 자신과 조성민은 ‘불륜’ 관계가 아니라 ‘술집 마담’과 ‘손님’의 관계라고 말하면서 조성민이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몰아가는 일을 도왔다. 조성민과 심미영은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몰아가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부적절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자백해 버렸다. [38] [41]
이에 최진실도 조성민의 주장에 대해 해명·반박하는 인터뷰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최진실은 조성민과 심미영은 ‘불륜’ 관계가 맞다고 확인해주었고 이혼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표명하였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이혼 숙려 기간을 가진 후에 이혼을 결정내렸다. 2008년 10월,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진실의 두 자녀는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는데, 그 유산을 관리하는 것에 대해 조성민이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면서 조성민의 이혼과정이 사회적으로 다시 주목을 받았고, 시사주간지 시사IN의 주진우 기자는 이런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여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을 인터뷰하였다. 2008년 11월, 주진우는 정옥숙을 인터뷰하면서 조성민의 이혼과정을 확인하였고 그 과정에서 최진실의 이혼 서류를 입수하였으며 그 이혼 서류에 심미영의 서명이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38][41][45][46]
부인 폭력 논란 [ 편집 ]
2002년 11월, 조성민은 임신 7개월 무렵이었던 최진실을 폭행하였다. 당시 조성민은 이 사건에 대해 쌍방 폭행이라고 주장하였다. [41]
2004년 8월, 조성민은 최진실의 집을 찾아가 최진실을 폭행하였고, 이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이후 최진실은 조성민을 상대로 주거 등에 대한 접근 금지 신청을 냈고, 법원은 이 신청을 받아들였으며, 조성민은 2개월 간 최진실의 집 100m 이내에 대해 접근이 금지되었다.[47][48][49] 당시 조성민은 이 사건에 대해 쌍방 폭행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을 해명·반박하기 위해 최진실은 자신의 멍든 얼굴을 언론에 공개하였고, 이로 인해 광고주로부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했으며, 그 법정 공방이 2010년 2월에 마무리되었다. 이 법정 공방을 통해, 조성민의 폭행 사실은 인정되었고, 최진실이 그 폭행을 유도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법원은 최진실이 자신의 멍든 얼굴을 언론에 공개한 행위에 대해서는 그 책임을 물어 모델료 일부를 광고주에 반환하도록 판결을 내렸다.[50] 그런데 2010년 10월, 언론을 통해 조성민은 6년 전에 자신이 저질렀던 이 폭력 행위에 대해 그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을 하였다.[37]
채무 논란 [ 편집 ]
2002년 8월과 10월, 조성민은 사업 투자자금 명목으로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과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으로부터 돈을 빌렸다. 2002년 12월, 조성민은 최진실과 이혼하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이후 그 빌린 돈에 대해서 증여라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한 조치로 정옥숙과 최진영은 2003년 2월에 조성민에게 채무변제를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내었고 2003년 4월에 조성민을 상대로 2억 원의 대여금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 2004년 8월, 법원은 조성민으로 하여금 1억 원은 정옥숙에게, 8750만 원은 최진영에게 배상하라고 판결을 내렸다.[41][51][52] 최진영의 경우는 주식으로 양도된 것을 감안하여 책정한 액수였다.[53][54][55]
허위 사실 유포 논란 [ 편집 ]
2002년 12월, 조성민은 언론을 통해 최진실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자신의 자식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발언하였다. 이후 2008년 10월에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진실의 두 자녀는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는데, 조성민은 그 유산을 관리하는 것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려고 함으로써 6년 전에 자신이 허위사실을 유포했음을 공공연하게 자인하였다. [45] [46] [56] [57]
2003년 10월, 조성민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진실과의 이혼 협의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였고, 위자료와 양육권 문제 등이 적힌 이혼합의서 초안을 언론을 통해 공개하였다. 조성민은 이혼합의서 초안을 공개하면서 “거액의 위자료와 양육권·친권 포기를 요구하는 등 최진실이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을 제시해 결국 이혼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라고 말했다. 이에 최진실은 해당 언론사, 해당 기자, 조성민 등을 상대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민사상·형사상 소송을 제기하였다. 최진실은 이 소송에 대하여 “조성민은 고의적으로 사생활을 유포해 인격권을 침해했다. 조성민은 이혼합의서 초안을 공개하기 전에도 마치 내가 돈 때문에 이혼문제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양 10억 원, 13억 원 등 위자료 금액을 임의대로 발설해 치명적인 상처를 줬다. 이번 사태뿐만 아니라 위기에 처한 부부의 사생활 문제를 끊임없이 화제 기사로 다뤄온 모든 스포츠신문들의 보도 행태에 분노를 느낀다”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58][59][60][61] 한편, 조성민이 사적인 문서를 언론을 통해 공개한 것은 이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2003년 2월,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과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은 조성민의 사기 행위에 대한 조치로 조성민에게 채무변제를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내었는데, 이후 조성민은 스포츠신문들과의 인터뷰를 자청하여 언론을 통해 그 내용증명 문서를 공개하였다.[62][63]
친권포기각서 작성 [ 편집 ]
2004년 9월에 이혼 협상을 할 때, 최진실은 조성민에게 제기했던 각종 소송들을 취하해 주었고 조성민이 졌던 각종 빚들을 변제해 주었다. [64] 이에 조성민은 친권을 포기하였고 친권을 포기한다는 각서도 작성하였으며 그 각서에 대해 공증도 받았다. [42] [65]
이에 조성민은 친권을 포기하였고 친권을 포기한다는 각서도 작성하였으며 그 각서에 대해 공증도 받았다. 최진실과 이혼 협상을 할 때, 조성민은 최진실의 자녀들과의 면접교섭권은 인정받았으나 이혼 이후 면접, 교섭은 하지 않았다.[41] 2008년 9월, 조성민은 언론을 통해 자신의 배우자에게 미안해서 최진실의 자녀들을 만나지 않는다고 하였다.[66] 이 발언은 면접교섭권을 누릴 권리가 있는 최진실의 자녀들을 향한 하나의 메시지로서, 친권포기각서 작성의 의미를 말해주는 것이었고, 친권을 영구히 포기하였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행위였다.[67][68][69]
기타 [ 편집 ]
한때 그의 불륜상대라는 루머가 돌았던 영화배우 우연희의 둘째 아들이 그와 동명이인이었다.
2002년 12월, 조성민은 최진실이 임신 중에 담배를 피웠다는 발언을 하였는데, 이 발언은 최진실에 대한 험담으로서, 자신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했지만, 정작 자신은 임신부를 폭행하는 등 대놓고 태아를 공격하는 행위를 하였다. [41] [70]
2008년 12월 2일, 시사IN의 주진우 기자는 SBS 《좋은 아침》에 출연해 최진실의 아들 최환희가 조성민에게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71] 2009년 6월 25일, 조성민은 SBS 《좋은 아침》에 출연해 최진실의 자녀들과 교회에서 만나고 있고 최진실의 어머니와도 아이들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고 말했다. [72]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은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조성민이 최진실의 자녀들과 만나고 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며 아이들이 조성민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조성민이 아이들과 만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73] 2009년 8월 31일,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은 티브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조성민이) 교회에 매주 나와 아이들을 만난다고 하는데 만난 적 없다. 난 본 적도 없다. 교회에서 혼자 아이들을 지켜보는지는 알 수 없다. 이렇다 저렇다 말 나오는 것도 싫고 그냥 상대하기 싫다”라고 말했다. [74] [75]
2009년 6월 25일, 조성민은 SBS 《좋은 아침》에 출연해 최진실의 자녀들과 교회에서 만나고 있고 최진실의 어머니와도 아이들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고 말했다.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은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조성민이 최진실의 자녀들과 만나고 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며 아이들이 조성민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조성민이 아이들과 만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09년 8월 31일,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은 티브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조성민이) 교회에 매주 나와 아이들을 만난다고 하는데 만난 적 없다. 난 본 적도 없다. 교회에서 혼자 아이들을 지켜보는지는 알 수 없다. 이렇다 저렇다 말 나오는 것도 싫고 그냥 상대하기 싫다”라고 말했다. 강남중앙침례교회는 최진실의 유가족들이 다니는 교회였는데, 조성민은 2009년 1월부터 이 교회에 출석했고 2009년 6월에 ‘기독교 어린이 야구 영성 캠프’를 기획했으며 이 캠프에 대해 강남중앙침례교회를 협력단체로 하고 강남중앙침례교회의 전도사 4명이 참가한다고 홍보했다. 과거의 행실로 인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조성민이 한다는 이유로 또 상업적인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 때문에 조성민의 ‘야구 영성 캠프’에 대해 개신교 내부에서 비판적인 여론이 있었다. 2009년 7월 17일, 기독교 언론사 뉴스앤조이는 조성민의 ‘야구 영성 캠프’에 관해 심층 취재 보도했고 조성민의 홍보 내용과 다른 점이 발견되었다. [76] [77] [78] [79]
2006년 영화 맨발의 기봉이에 카메오로 야구선수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연보 [ 편집 ]
1973년 4월 5일 서울특별시 출생
1991년 프로야구 청소년국가대표 선수
1992년 ~ 1995년 프로야구 국가대표 선수
1995년 ~ 2002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
1998년 일본 프로야구 올스타 헌정, TV는 사랑을 싣고 출연(12월 4일)
2000년 최진실과 결혼
2002년 10월 요미우리 자이언츠 은퇴
2002년 12월 최진실과 결별
2004년 다시 국내 프로야구 출전 준비
2005년 문화방송 ESPN 야구해설위원
2005년 ~ 2007년 한화 이글스 선수
2008년 문화방송 ESPN 야구해설위원
2008년 SMC21 대표
2008년 먹음직닷컴 대표
2010년 ~ 2011년 XTM 야구해설자
2010년 ~ 2011년 폰앤컴퍼니 스포츠사업부 전문위원
2011년 ~ 2012년 두산 베어스 2군 재활코치
2013년 1월 6일 서울 자택에서 사망
출신 학교 [ 편집 ]
1986년 서울둔촌초등학교
1989년 신일중학교
1992년 신일고등학교
1996년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가족 관계 [ 편집 ]
아버지 : 조주형(1947년 ~ , 은행원)
어머니 : 유영숙(1948년 ~ )
누나 : 조성미
아내 : 최진실 (1968년~ 2008년)
2000년 12월 결혼 , 2004년 9월 이혼
아들 : 최환희(조환희) (2001년 ~ )
딸 : 최준희(조수민) (2003년 ~ )
참고 자료 [ 편집 ]
《주기자》. 푸른숲. 2012년. ISBN 9788971848784
《엄마가,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웅진윙스. 2011년. ISBN 9788901124339
관련 항목 [ 편집 ]
각주 [ 편집 ]
재기 노린 조성민, 최진실처럼 40세 자살…왜?
고(故) 최진실씨의 삼오제가 열린 2008년 10월 6일 경기도 양평의 갑산묘지공원에 도착한 조성민(6일 사망)씨가 멀리서 최씨의 묘를 바라보고 있다. [중앙포토]
프로야구 선수, 남편, 아버지, 사업가, 지도자….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풀리지 않았던 탓일까. 한때 ‘당대 최고 투수’란 평가를 받았던 야구 스타 조성민(40)씨가 6일 컴컴하고 조그마한 욕실에서 파란 많았던 생을 홀로 마감했다. 다섯 살 연상의 전 부인 고(故) 최진실씨가 산 햇수(40년)만큼 살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방식도 최씨와 같았다. 주변에선 “인생이 참 아이러니하다”라고 말한다.
서울 수서경찰서에 따르면 조씨는 6일 오전 3시40분 서울 도곡동의 여자친구 박모(40)씨의 오피스텔 욕실에서 허리띠로 목을 매 숨졌다. 조씨는 이날 박씨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았으며 그 직후 석류음료를 섞은 소주 2잔을 마셨다고 한다. 이후 모친에게 “저도 한국에서 살 길이 없네요. 엄마한테 죄송하지만 아들 없는 걸로 치세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여자친구에게도 “내 인생에 마지막이 자기와 함께하지 못해서 가슴이 아프다. 꿋꿋이 잘 살아”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따로 남긴 유서는 없었다. 김청수(40) 수서경찰서 형사과장은 “외부 침입 흔적이나 타살 흔적으로 볼 만한 외상 등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씨의 지인들은 “현역 은퇴 이후 사업 실패, 여기에 2011년 두산 베어스에서 시작한 지도자 재계약까지 불발된 상황에서 여자친구의 이별 통보가 적잖은 충격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정확한 사망 시간을 파악하기 위해 7일 부검하기로 했다.
조씨는 1995년부터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98년 팔꿈치 부상으로 이듬해 수술을 받으며 슬럼프에 빠졌다. 조씨는 2000년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최씨와 결혼해 화제가 됐지만 이후 끊임없는 불화와 이혼 등으로 구설에 오르다 2004년 3년10개월 만에 이혼했다. 2002년에는 요미우리에서 방출되면서 야구인생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혼한 최씨가 2008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후 조씨는 최씨의 유족들과 두 자녀에 대한 친권, 최씨가 남긴 유산 소유권 분쟁에 휘말렸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12)·딸(10) 남매는 외할머니가 길러왔다. 그런 와중에 최씨의 남동생 최진영씨 역시 2010년 자살했다.
조씨는 2011년 두산 베어스 2군 재활코치로 계약하며 지도자로 재기를 시도했지만 지난해 11월 초 후배와의 폭행 사건으로 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이어 같은 달 말 재계약에 실패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고려대 안암병원에 마련됐다.
윤호진·하남직 기자
조성민 마지막 말 “한국서 살길 없어”
여자친구 집서 숨진 채 발견
2008년 최진실 자살 충격겪어
“한국에서 살 길이 없네요.”
전 프로야구 선수이자 고 최진실씨의 전남편 조성민(40)씨가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조성민씨가 6일 새벽 3시40분께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여자친구 박아무개(41)씨의 오피스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박씨는 욕실에서 목을 맨 조씨를 발견한 뒤 119에 신고했다. 이후 조씨는 새벽 4시10분께 강남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숨진 상태였다. 조씨의 빈소는 이날 오후 서울 성북구 고대안암병원에 차려졌다.
여자친구 박씨는 “6일 0시5분까지 함께 있다가 다른 친구와 약속이 있어 외출한 뒤 3시40분께 돌아와 보니 숨져 있었다”고 경찰에 말했다. 수서경찰서는 “외부 침입 흔적이 없어 자살로 보이지만 정확한 사인을 확인하기 위해 부검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성민씨는 숨지기 직전 어머니와 여자친구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0시11분께 어머니에게 “저도 한국에서 살 길이 없네요. 엄마한테 죄송하지만 아들 없는 걸로 치세요”라는 문자메시지를 전송했다. 5분 뒤 여자친구에게는 “내 인생에 마지막이 자기와 함께하지 못해서 가슴이 아프다. 꿋꿋이 잘살아”라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겼다. 조씨의 어머니는 충격을 받아 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6일 오후 조성민씨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 도곡동 강남세브란스병원 안치실 앞에 취재진이 몰려 있다. 이정아 기자 [email protected]
일본의 명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었던 조성민씨는 2000년 배우 최진실씨와 결혼했으나, 2004년 파경을 맞았고 최진실씨가 2008년 자살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최진실씨의 동생으로 조카들을 무척 사랑했던 최진영씨마저 2010년 자택에서 목을 매면서 조성민씨는 심리적으로 더 위축됐다. 조씨는 지난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날, 그리고 최근 또 한차례 아들(13)과 딸(11)에게 “옷 따뜻하게 입어라”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두 아이의 양육권과 친권은 외할머니에게 있다.
2002년 요미우리 은퇴 뒤 조성민씨는 야구선수로서의 꿈을 되살리려고 했다. 2003·2004년에는 국내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 응했으나 아무도 그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선수 생명이 끝난 것처럼 보였던 조씨가 기회를 잡은 것은 2005년. 당시 ‘재활 공장장’이라 불리던 김인식 한화 감독이 그를 영입했다. 하지만 구위가 회복되지 않아 입단 뒤 2007년까지 3년간 35경기에서 출전해 3승4패, 평균 자책점 5.09를 남긴 채 글러브를 벗었다. 이후 방송 해설가로 나서기도 한 조씨는 2011~12년 프로야구 두산의 2군 코치로 선수를 지도했으나 지난해 말 재계약을 포기했다.
허승 정환봉 기자 [email protected]
조성민,최진실 죽은지 3년만에 애인집서 왜…
이별 통보받은 후 여자친구 집에서 목매 숨져…죽기 전 모친에 “아들 없는 걸로 치세요” 문자
▲ 숨진 조성민씨가 1996년 최고의 유망주라는 평가를 받으며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해 활동하던 시절.
연합뉴스
▲ 2000년 12월 ‘세기의 결혼식’이라는 축복을 받으며 5세 연상의 톱스타 최진실씨와 결혼식을 올리던 모습.
▲ 故최진실 前남편 조성민 자살…엄마, 외삼촌 이어 아빠마저…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 고(故) 최진실씨의 전 남편 조성민씨의 빈소가 6일 오후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연합뉴스
6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301호. 환하게 웃고 있는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열두 살, 열 살 남매 상주는 상복도 갈아입지 못한 채 눈물만 흘렸다. 엄마, 외삼촌에 이어 아빠마저 세상을 뜨면서 남매는 충격에 빠져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고(故) 최진실씨의 전 남편인 전직 프로야구 선수 조성민(40)씨가 이날 새벽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진실씨가 자살한 지 약 3년, 최씨의 동생 진영씨가 자살한 지 약 2년 만이다. 조씨의 시신이 안치된 강남 세브란스병원에는 오전부터 유가족과 조씨의 지인들이 속속 병원을 찾았다.숨진 조씨를 처음 발견한 여자 친구 박모(41)씨가 가장 먼저 병원을 찾았다.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달려온 박씨는 오열했다. 잇단 비극에 가족들은 황망해하는 표정이었다. 조씨의 작은아버지는 “사흘 전까지 씩씩한 목소리로 통화했는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침통해했다.오후 늦게 고대 안암병원에 차려진 고인의 빈소에는 야구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삼성라이온스 포수 진갑용(40)씨는 “새해에도 문자를 주고받았는데 정말 믿을 수 없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고인과 한화 이글스에서 한솥밥을 먹은 포수 신경현(38)씨는 “(조)성민이 형이 1일 문자 메시지를 보내와 전화를 했다”면서 “목소리가 좋지 않기에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더니 ‘기분이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성민’이 누군가 했다”면서 “알아차리고 나서는 소름이 돋았다”고 덧붙였다.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이날 오전 3시 40분쯤 서울 강남구 도곡동 여자 친구 박씨의 아파트 욕실 샤워기 거치대에 가죽 허리띠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조씨는 전날 밤 박씨 집에서 박씨와 함께 술을 마셨고 박씨는 다른 약속이 있어 외출했다가 돌아와 조씨가 숨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조사 결과 조씨는 숨지기 전 박씨로부터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던 것으로 파악됐다.조씨는 자정 무렵 어머니에게 “저도 한국에서 살길이 없네요. 엄마한테 죄송하지만 아들 없는 걸로 치세요”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5분 뒤에는 여자 친구에게 “함께하지 못해서 가슴이 아프다. 꿋꿋이 잘 살아”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조씨는 탁월한 재능에도 굴곡 많은 인생을 겪은 탓에 비운의 스타로 꼽힌다. 194㎝의 체구에서 뿜어내는 강속구를 앞세운 그는 1996년 고려대를 졸업, 일본 프로야구 명문 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1998년 선발 투수로 인기를 끌었지만 1999년 팔꿈치 수술을 받은 후 기나긴 부상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2000년 12월 화제 속에 맺어진 톱스타 최씨와의 결혼도 4년 만에 파경으로 끝났다. 2004년 8월 고인이 최씨에게 폭력을 휘둘러 긴급 체포되는 사건까지 불거진 뒤 이혼했다.이혼 후 모든 활동을 접었던 최씨는 드라마로 재기에 성공하는 듯했으나 2008년 10월 2일 끝내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겨진 남매를 돌본 이는 동생 진영씨였다. 그러나 그 역시 누나의 뒤를 따랐다. 누나가 떠난 지 꼭 1년 6개월 만이었다.기구한 이들의 가족사에 네티즌들은 충격과 안타까움을 쏟아냈다. 트위터 아이디 ‘hyuk***’는 “아이들이 눈에 밟혔을 텐데 무책임했다는 말보다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더는 불행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추모했다.천근아 세브란스병원 청소년정신과 교수는 “가족이 자살하면 남은 가족 역시 문제해결 방식으로 자살을 배우게 돼 모방자살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경찰은 조씨의 친어머니, 박씨 등 주변인을 상대로 조씨가 숨지게 된 경위를 조사 중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사인 확인을 위해 7일 오전 조씨의 시신을 부검한다.명희진 기자 [email protected]김정은 기자 [email protected]
에니어그램 성격차이 최진실(1번) vs 조성민(7번)
* 이 글은 알려진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판단한 것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실제 현실의 모습은 다를 수 있음을 인지하시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에니어그램은 사람들의 관계를 설명할 때 유용하다. 진짜 맞지 않은 사람이 잘 사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고, 정말 잘 맞을 것 같은 사람이 만나지 말았어야 할 인연이 되기도 한다. 조성민은 1973년 4월5일생, 최진실은 1968년 12월24일생이다. 두 사람은 모두 솔직한 성격의 소유자. 최진실은 연예인이라는 직업상 연기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명도나 직업적 특성에 비해 비교적 거짓 없는 인물로 호평받아 왔다. 최진실은 거짓말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었는데, 조성민은 거짓말을 자주 하는 사람이었다. 반대로 조성민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억압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인데, 최진실은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1990년대 최고의 아이콘이던 최진실은 2000년 5살 연하의 야구선수 조성민과 결혼했다. 조성민은 애완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최진실이 생일선물로 사준 벅스헌트종 강아지 한 마리를 집에서 키우게 되었다.
최진실의 일기장
최진실의 필적을 분석해보면, 글자들의 자간이 너무 촘촘한 것으로 보아 자신에 대한 자책이 높아보인다. 게다가 ‘ㅣ’ 필압이 눌러서 쓴다.
그러나 3년 9개월 만인 2004년 9월 이혼했다. 이후 대중은 둘이 헤어진 사유에 대해 주목했다. 우선 둘다 결혼 준비가 안된 상황이었고, 서로를 너무나 모르는 상태였다. 그리고 에니어그램의 성격 유형으로도 상극이었다.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최진실의 아버지는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었으며, 엄마는 그 때문에 불광동에서 포장마차를 했고, 엄마를 돕겠다고 새벽 신문배달을 하던 최진영, 여고를 졸업하고 호텔신라에 취직해 안내직을 하고, 모델이 되겠다고 충무로를 발이 부르트도록 헤매던 시절, 최진실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 서운함, 그리고 미움 등이 떠올렸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생활에서 생긴 ‘파트너 역할을 못하는 남성에 대한 분노 감정’을 해결하지 못하고 결혼했고, 결혼 생활에서 남자와 분노의 감정을 주고 받는 일을 되풀이 할 수 밖에 없었다.
이혼 당시 주목할 것은 조성민의 폭행사건이다. 2004년 8월1일 조성민은 최진실을 찾아가 폭행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그를 현행범으로 체포했지만, 당시 쌍방 폭행이라 주장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최진실은 아파트 광고 모델 계약을 맺었던 건설업체로부터 30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한다. 그들의 이혼사유를 두고 조성민의 책임에 무게가 실려있던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었다.
사망 하루 전에도 광고 촬영을 하는 등 활동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 날 오후 2시부터 4시30분까지 서울 강남의 한 스튜디오에서 ‘장미빛 인생’에서 호흡을 맞춘 손현주와 함께 제약광고를 촬영했다. 그러나 “몸이 좋지 않다” “힘들다”며 예정된 스케줄을 다 소화하지 못하고 중간에 촬영을 중단했다. 탤런트 손현주씨는 최진실의 사망소식을 접한 뒤 “촬영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얼굴이 무척 안 좋아 보였고 힘들어해서 2시간 정도만 촬영하고 중도에 그만뒀다”며 “몸이 너무 안 좋다, 클로즈업 샷은 이달 말에 한 번 더 만나서 찍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날 최씨는 촬영을 마친 후 스태프들과 식사를 하고 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준호에게 전화해 “세상이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비관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진실과 함께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시즌2’를 준비하고 있던 정준호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뭐가 뭔지 정신이 없다”며 “어제 전화가 와 ‘준호씨, 세상이 어떻게 나를 사채업자로 몰아갈 수 있느냐’ ‘이건 정말 아니지 않냐’며 한동안 하소연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진실에게 “신경 쓰지 말아라. 뭐 그런 걸 신경 쓰냐. 이겨 내라. 그런 일 잘 이겨내지 않았냐”고 격려를 해줬다며 “그녀가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이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사채업자를 내세워 최근 자살한 안재환에게 25억원을 빌려줬다는 악성 루머에 시달려왔다. 그 전에 사망한 채로 발견된 탤런트 안재환 사채관련 루머에 휩싸여 왔으며 사채 관련 루머를 퍼뜨린 증권사 직원 백모씨가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최씨가 이같은 악성 루머와 관련해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10년 3월에는 최진실의 동생인 가수 겸 배우 최진영, 2013년 1월에는 전 남편 조성민이 각각 스스로 삶을 마감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조성민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참 안되었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좋으나 싫으나 아빠인데 자식에게 그래도 살아있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될 텐데…
조성민의 글씨를 분석해보면, 필적의 속도가 빠르면서 흘려쓰고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을 보면 정형화된 일보다 자유로운 일이 맞아보인다. 그래도 투수가 다른 선수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어서 거기에서는 성과를 보인 듯 싶다. 하지만 자간이 좁은 것으로 봐서는 자존심이 무척 센 것으로 보인다. 누구에게 지기 싫어했던 것이 연상부인에게 굽히지 못한 것 같다. 정형화되지 않은 그 때 그 때 다르게 쓰는 것으로 보아 아직 아이와 같은 성향이 보인다.
아래의 ㅁ자를 보면 밑이 뚫여있는 것으로 보아서 끝이 흐려지는 책임감이 약해보인다. 왠만해서는 비관하지 않는 낙관적인 사람인데 참 안타깝다. 결혼하는 사람은 대부분 보면 같은 성향보다 다른 성향이 만나서 맞춰서 살아야 하는데, 서로 배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결혼은 배려이고 존중이다.
에니어그램에서는 통합/비통합 최대한 서로 피하기
자유분방한 7번 유형 남자는 야무진 1번 유형 여자에 끌릴 수 밖에 없다. 조성민이 최진실에게 끌린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진실에게 더 잘 어울리는 남자는 편안하고 균형적인 9번 유형이었다. 짝사랑이 모두 그렇듯 대부분의 관계는 불행으로 끝나며 한쪽과 한쪽의 값이 극단적이다. 그 결과는 이성과의 관계 뿐만 아니라 동성간의 오랜 우정, 스승과 제자 사이, 어떤 이론에 감명을 받은 사람의 사고의 변화 등에서 모두 일어난다. 에니어그램에서 통합과 분열 방향이란 사실은 인간이 가장 피해야 할 인간관계를 나타낸다.
결혼 관계 상극과 상보에 대한 글은 아래를 읽어보세요.
https://brunch.co.kr/@yooncohg/109
결별 선언한 최진실·조성민 커플 상반된 입장 쌍방 인터뷰
■ 글·이영래 기자([email protected]), 윤고은 ■ 사진·조영철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3.01.08 17:00:00
지난 2000년 12월 세인들의 뜨거운 관심과 축복 속에 결혼한 톱스타 최진실과 야구스타 조성민이 결별 위기에 처했다. 지난 12월18일 두 사람은 각각 기자회견을 갖고 ‘파경’에 대한 상반된 입장을 피력했다. “가정을 지키고 싶다”는 최진실과 “진흙탕에 뒹굴더라도 같이 살 수 없다”는 조성민, 두 사람이 속속들이 털어놓은 파경 내막.
2000년 12월5일 결혼한 최진실·조성민 커플은 결혼 2년만에 결별의 위기를 맞았다.
12월19일 밤, 조성민은 최진실을 만나러 갔으나 최진실이 만나기를 거부, 그냥 돌아왔다. 다음날 조성민은 “대화로 해결하고 싶다. 하지만 이혼하겠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여성동아 2003년 1월 469호
최진실(35)·조성민(30) 커플이 결혼 2년 만에 결별 위기에 처했다. 두 사람의 갑작스런 결별 선언은 12월17일 새벽에 있었던 사건 때문에 벌어졌다. 조성민은 1년 전부터 압구정동 B유흥주점의 마담 신씨와 가까운 관계가 됐다. 조성민과 신씨는 오해를 받을 만한 사이가 아니라고 각각 밝혔으나 최진실은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해왔다. 그러다 최진실이 지난 12월17일 새벽 3시, 매니저와 동행(조성민은 기자와 경찰관을 동행했다고 주장했다)해 신씨의 빌라를 덮친 것.당시 신씨의 빌라 주차장엔 조성민의 차가 서 있었으나 조성민은 같은 빌라에 있는 선배 집에 있었다고 밝혔다. 이 일 이후 조성민은 최진실이 “나를 파멸시키려 한다”며 이튿날인 12월18일 오후 2시 강남 도산공원 앞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결별을 선언했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최진실 또한 오후 5시 몇몇 기자와 만나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았다.최진실은 일단 ‘가정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보였으나 조성민은 “가정을 지킬 생각이 있는 사람이 왜 경찰관, 기자와 함께 그 집을 덮쳤느냐?”며 반드시 이혼하겠다는 입장이다. 상반된 두 사람의 주장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해봤다.-왜 오늘 갑자기 결별 선언을 하게 됐나.“그간 관계도 안 좋았고, 헤어지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최진실이 임신 8개월이라 애를 낳으면 이혼하려고 했다. 하지만 어제, 12월17일 일을 당하고서 가만히 내 할 일만 하고 있다가는 어떻게 당해도 당하겠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처음엔 가까운 기자들에게만 이야기하려 했는데 일이 커졌다.”-문제가 된 ‘17일 상황’에 대해 설명해달라.“알고 지내는 신모라는 여자가 있다. 그 마담과 내 관계를 의심한 최진실이 기자와 경찰들을 데리고 12월17일 새벽, 그 집을 덮쳤던 것으로 안다. 나는 그 빌라에 있는 아는 선배 집에서 잤다. 17일 최진실의 소속사 직원이 기자를 사칭해 나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요청했다. 어차피 인터뷰를 하면 다 알려질 일이라 생각해 알고 지내던 기자들에게 연락했다. 그러던 중 내게 전화했던 사람이 기자가 아니라, 그녀 소속사 직원임을 알게 됐다.”-신씨와 어떤 관계였나.“대화 상대였고, 친구였다. 처남 최진영도 신씨와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다. 신씨와 메일을 주고 받기도 하고 친하게 지냈다. 메일 내용이 오해받을 여지는 있었다. 술집에서 농담처럼 ‘여보야’ ‘자기야’하는 호칭을 썼는데 메일을 보내면서 그런 표현을 썼다. 내 메일을 우연히 본 우리 누나가 최진실에게 ‘성민이에게 여자가 있는 것 같으니 잘 좀 하라’며 충고했던 것으로 안다. 그 이후 최진실이 신씨와 내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해, 신씨를 우리 집에 반강제로 데려다놓고 삼자 대면을 요구하는 등의 행동을 했다. 처남은 그 술집에서 내가 신씨와 같이 있다며 행패를 부렸다. 하지만 나는 신씨와 전혀 그런 사이가 아니다.”-평소 최진실과의 사이는 어땠나.“결혼 초부터 좋지 않았다. 그녀는 항상 ‘우리 헤어지자’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다. 더욱이 11월6일 일본에서 내 이삿짐이 도착했을 때 크게 싸운 뒤로 관계가 더더욱 좋지 않았다. 그녀는 내 짐을 보고 ‘답답해서 1분도 못 견디겠으니 본가로 보내라’고 성질을 부렸다. 그리고 시집에까지 전화해 같은 내용을 말했다. 그래서 그날 크게 싸웠다. 그녀는 손톱으로 날 할퀴었다. 내 티셔츠가 다 찢어질 정도여서 한대 때렸다. 그리고 밀고 당기고 하는 실랑이도 있었다. 그건 잘못했다.”-무엇 때문에 주로 싸웠나.“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성격 문제다. 결혼 전에는 성격이 소박한 줄 알았다. 하지만 사치, 허영심, 오만함, 게으름 등 성격상 많은 문제들이 있었다. 안티 사이트 같은 데 그녀에 대한 비방글이 올라와서 고소한 적이 있다. 그때도 사건을 저지른 여학생 부모에게 ‘당신 딸이…’ 운운하며 지나친 행동들을 했다. 스타로서 문제가 있는 행동이고 보기 민망했다. 그런 점들을 살면서 알게 됐다.또 내조를 할 줄 모른다. 워낙 떨어져 살아서(두 사람은 2년간의 결혼생활 중 1년 7개월을 떨어져 살았다) 살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사치가 심하다. 같이 쇼핑을 하고 오면 꼭 싸웠다. 입지도 않는 옷을 왜 그렇게 많이 사는지 모르겠다. 상표도 안 뗀 옷도 많다.”-참을 수는 없었나.“특히 귀국하고 나서 안 좋은 소문들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런 소문들 때문에 많이 괴로웠다. 또 신씨에 대한 그녀의 행동도 참을 수 없었다. 반강제로 아무 죄도 없는 신씨를 왜 집으로 끌고갔는지 모르겠다(신씨는 한 스포츠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내 의사에 상관없이 거의 납치되다시피 해 만난 적이 있다. 최진영에게 내 차의 운전석을 내줬더니 문을 걸어 잠그고 최진실 집으로 내달렸다. 그 과정에서 실랑이도 있었지만 평소 친분이 있는 최진영이 ‘나를 믿어달라, 한번만 내가 하라는 대로 해달라’고 부탁해 순순히 따랐다”고 이 상황을 설명했다) 신씨에게 면목이 없다. 그리고 그녀의 평소 언행도 문제였다. 남편을 우습게 여기는 것은 기본이고 ‘살면서 복수하겠다’는 말을 자주 썼다.”-아이는 어찌할 셈인가?“그녀가 진정 어머니의 자격이 있다면 그녀에게 양육권을 양보하겠다.”최진실(35)이 12월18일 오후 8시 청담동의 소속사 사무실에서 입을 열었다. 임신 8개월째인 최진실은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인터뷰에 응했다. 다음은 최진실과의 일문 일답.-문제의 발단이 무엇인가.“9월말 귀국했을 때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11월6일 일본에서 성민씨의 짐이 들어오는 날 크게 싸웠다. 일본 아파트가 45평이라 짐이 아주 많다. 그래서 난 둘째도 태어나니까 일단 필요한 것만 빼고 나머지는 양수리 시집에 보관하자고 했다. 그런데 성민씨는 ‘내가 짐을 싸갖고 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면서 그 짐들을 발로 툭툭 차며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말다툼이 커졌다.”-맞았는가.“급기야 성민씨가 내 뺨을 두대 때리고 밀치면서 내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스무바퀴 정도 굴렀다(최진실은 ‘집에 구를만한 계단이 없다’는 반박이 있자 “밀고 넘어지는 상황이 여러번 반복됐다는 말이 와전됐다”고 밝혔다). 임신중인 나를 때린 것이다. 다른 것보다 아기가 걱정돼 시누이에게 울면서 전화를 해 함께 병원으로 갔는데 다행히 아기에게는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난 얼굴이 부어터지고 온몸에 멍이 들었다.”-조성민이 이혼을 요구했나.“그날 이후 이유 없이 이혼하자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너무 황당한 일을 당했지만 그래도 참아보려고 했다. 그러다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어떻게 알았나.“다른 사람도 아닌 시누이가 알려줬다. 11월 중순쯤 시누이가 울면서 ‘성민이에게 여자가 있다’고 말해줬다. 시누이가 성민씨의 이메일을 봤는데, 어떤 여자와 주고받은 연서가 있었던 것이다. 서로 쓴 호칭이 ‘여보’ ‘자기’였다. 알고봤더니 내 동생(최진영)은 이미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다.”-시부모는 그 사실을 알고 어떻게 했나.“시아버님이 그 사실을 알고 야단을 치자, 성민씨가 ‘처 자식은 버려도 그 여자는 못 버린다’고 말했다.”-별거하고 있나.“12월5일 결혼 기념일에 짐을 싸가지고 나갔다. 양재동에 있는 자기 사무실(C&C컴퍼니)에서 기거하고 있다. 그런데 그 여자네 집이 사무실 바로 옆에 있다.”-그 여자는 어떤 사람인가.“도곡동 D빌라에 혼자 사는 여자다. 한번은 밤중에 성민씨 휴대전화로 메일이 들어왔다. ‘여보야 나 그냥 자고 있을테니 집으로 들어와’라는 내용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찍힌 번호로 다시 걸어봤더니 그 여자가 받더라. ‘뭐 하는 분이냐’고 물었더니 ‘술집 나가요’라고 답하더라. 그날부터 성민씨는 잘 때도 휴대전화를 옆에 끼고 잤다.”-12월17일 새벽 그 여자 집을 찾아갔나.“어제(17일) 새벽에 느낌이 이상해서 그 집에 갔다. 지하 주차장을 뒤졌더니 성민씨 차가 있더라. 다리에 힘이 풀렸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시부모님께 전화를 해 ‘어머니가 좀 말려주세요’라고 부탁했다. 그때 솔직히 간통으로 고소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부모님이 야단치면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이혼할 것인가.“성민씨가 어제도 전화를 걸어와 이혼을 요구했다. 난 ‘내 뱃속에 애가 있다. 그리고 첫째 환희는 이제 겨우 17개월이다. 못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럼, 내가 이혼하게 해주겠다’고 하더라. 그래도 두 아이의 아빠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이혼이라는 게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가정을 지키고 싶다. 둘째가 아빠 없이 태어나게 하고 싶지 않다. 성민씨가 나는 안 보고 자식만 보고 산다고 해도 지금까지의 문제를 덮고 살 수 있다.”-제과점에 투자한 3억원을 돌려달라고 했다는데.“전혀 그런 일 없다. 안 살 생각이었으면 벌써 돈을 달라고 했을 것이다. 엄마, 나, 진영이가 각각 1억원씩 넣었는데 얼마전 진영이가 돈을 빼고 싶어하길래 ‘그러지 마라. 용돈이 없으면 내가 줄게’라며 1천만원을 줬다.”-예전부터 불화가 있었다던데.“일본에서 들어오기 전까지는 정말 좋은 남자였다. 환희한테도, 내게도 너무 잘했다. 연애시절에도 성민씨의 여자관계에 관한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고 이번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1%도 여자관계에 대해 의심한 적이 없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하니까 나는 물론이고 온 가족이 충격을 받았다.”-조성민은 ‘아내의 성격에 질렸다’고 말했다.“짐 때문에 싸운 후에 ‘널 감당하기 힘들다’고 하더라. 왜냐고 물었더니 ‘무섭다’고 하더라. 그래서 처음엔 반성했다. 임신한 여자한테 그런 짓을 할 정도라면 이 남자 뭔가 단단히 문제가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여섯장이나 되는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당신이 말한 불만을 다 인정한다. 앞으로 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성민씨는 ‘그것도 싫다’고 했다. ‘네 속에 또 다른 네가 있을 텐데 겉으로 거짓된 모습은 싫다’고 했다. 그런데 알고봤더니 여자가 있었던 것이다.”최진실은 인터뷰 도중 실신하여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현재까지 외부와의 모든 접촉을 끊고 있는 상태.이후 이번 ‘파경 선언’의 발단이 된 12월17일 상황에 대해 관심이 모아졌다. 과연 조성민을 파멸시키려는 최진실의 음모가 있었던가, 아니면 단순히 겁을 주기 위해 최진영이 경찰, 기자와 같이 왔다고 한 것을 조성민이 그대로 믿으면서 벌어진 일인가.최진실은 매니저와 동행했을 뿐, 간통죄로 고소할 생각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다만 최진영이 겁을 주기 위해 “누나가 경찰, 기자를 데리고 신씨 집으로 갔다”고 말한 것을 조성민이 곧이 곧대로 믿으면서 생긴 일이라는 것.그러나 조성민은 12월20일 기자와 가진 전화통화에서 “사실이 무엇이건 나는 ‘경찰, 기자를 데리고 갔다’는 말을 최진영에게 들었다. 그리고 최진실은 우리 어머니에게 아침 7시30분에 전화해 ‘경찰, 기자와 같이 신씨 집에 와있다’고 난리를 쳤다. 더 웃긴 건 12월17일 전직 모 스포츠신문 간부가 내게 ‘다 알고 있다’며 전화를 해온 일이다. 그 사람은 전직 기자일 뿐, 기자가 아니며 최진실 소속사와 각별한 관계인 것으로 안다. 때문에 내가 기자회견을 소집한 것이다”며 어찌됐건 책임은 최진실측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또 “12월19일 밤 9시30분 집으로 돌아갔으나 사설 경호원을 집앞에 세워두고 만나주지 않았다. 대화로 해결하겠다. 하지만 이혼할 마음에는 변화가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한편 최진실은 “12월17일 선배 집에 있었다면 그 선배가 누군지, 몇호에 사는지 밝혀야 할 것이다. 간통죄로 고소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바람 피는 남자를 어느 아내가 가만두겠는가? 집으로 온 조성민을 만나지 않은 건 서로 안정을 찾은 뒤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이혼할 생각은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조성민의 어머니는 “집안 망신이다. 이혼하려면 조용히 할 것이지, 성민이가 이렇게 일을 크게 벌여 당황했다. 성민이를 야단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며느리(최진실)도 문제가 있다. 어디 시어머니에게 아침부터 전화를 걸어(12월17일 오전 7시30분경 경찰, 기자와 함께 신씨 집을 덮쳤다고 전화한 날) 그런 난리를 피울 수 있느냐? 증거를 못 잡았으니까 이제 와서 그러는 것이지, 당시 며느리의 태도를 보면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었다. 두 사람 일은 두 사람이 해결할 것이다. 나는 모르겠다”는 입장이다.두 사람의 주장이 상충되는 바가 많아 현재로선 진실이 무엇인지 확실히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런 상황에 이르기 전, 두 사람이 대화로 원만한 해결점을 찾을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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