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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기의 경우 15일에 수소 폭발이 발생하였으나, 지진 당시 연료 자체가 장전되지 않아 냉각수가 남아 있었고 연료봉이 손상되지 않았음이 확인되었다. 폭발 원인은 3호기의 배관을 통해 흘러들어온 수소 가스 때문으로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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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앞의 방파제는 높이 6m의 파도에만 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진해일 파도의 높이는 15m였고 후쿠시마 원자력 설비는
지진과 해일의 경험이 없는 미국회사의 기술로 지어졌다.
따라서 발전설비를 지하에 설계했고 이것이 사고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full영상: https://youtu.be/FEvWQe3rSrA
#후쿠시마#원자력발전소#원전폭발
[YTN 사이언스 기사원문] https://science.ytn.co.kr/hotclip/view.php?s_mcd=1214\u0026key=202105271410161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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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 나무위키:대문
…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피해는 체르노빌 사고보다 미미하며, 실제 사망자 수의 대다수 또한 방사능과 무관한 원인이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
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3/9/2021
View: 1903
일본 원전사고의 과정과 원인 – 포항공대신문
후쿠시마 원전은 방파제로 지진해일의 파도를 차단하며 지진 피해를 막기 위해 단단한 암반 속에 원자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안전장치로 비상 발전기도 …
Source: times.postech.ac.kr
Date Published: 10/24/2021
View: 8189
“후쿠시마 원전 사고, 규제의 완벽한 실패였다” – 원자력신문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자연재해’에서 출발해 ‘인재’라는 대형사고로 발전한 인류역사에서 뼈아픈 참사로 기록하고 있다.
Source: www.knpnews.com
Date Published: 1/26/2021
View: 3474
후쿠시마 원전사고 10년, 사고 원인과 남은 문제들
저자들은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세세히 검토한 후, 그 원인을·극한 자연재해로 인한 최초의 원전 중대사고,·붕괴열 제거의 실패로 다수기에서 동시에 중대 …
Source: www.unipress.co.kr
Date Published: 1/20/2021
View: 715
후쿠시마 원전 사고 분석 (축약본) – 한국원자력학회
한국원자력학회는 후쿠시마 사고의 원인, 진행, 결과, 교훈 및 향후 대책에 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 인 조사․분석을 수행하기 위하여 ‘후쿠시마 …
Source: www.kns.org
Date Published: 9/30/2022
View: 1928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 Atomic Wiki
후쿠시마 제1발전소 1~3호기는 지진발생 전 정격출력으로 운전중에 있었기 때문에 원자로정지 후 다량의 붕괴열이 발생하는 상태임에도 전원상실로 냉각수의 주입이 불가능 …
Source: atomic.snu.ac.kr
Date Published: 4/2/2022
View: 922
후쿠시마 원전: 일본, 근로자 사망 원인 방사선 피폭 인정 – BBC
후쿠시마 원전은 2011년 3월 진도 9.0의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붕괴됐고, 이로 인해 일본 동북부 해안 공장의 냉각 시스템이 파괴돼 방사성 물질이 유출 …
Source: www.bbc.com
Date Published: 10/23/2022
View: 6489
후쿠시마 원자력발전 진재의 발생과 대책
본고에서. 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 사고원인과 진전과정, 사업자나 일본 정부의. 책임, 원자력발전 지진재해를 일으킨 근원에 대해 기술하였다. 2.
Source: www.reseat.or.kr
Date Published: 11/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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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원인
- Author: YTN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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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1. 7. 8.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GJUwQg88URk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2011년 3월 11일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으로 인해 JMA진도 7, 규모 9.0의 지진과 지진 해일로 도쿄전력이 운영하는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 1-4호기에서 발생한 누출 사고이다.[1]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함께 국제 원자력 사고 등급(INES)의 최고 단계인 7단계, 즉 심각한 사고(Major Accident)를 기록하였다. 현재도 계속적으로 원자로에서 방사능 물질이 공기중으로 누출되고 있으며, 빗물과 원자로 밑을 흐르는 지하수에 의해 방사능에 오염된 방사능 오염수가 태평양 바다로 계속적으로 누출되고 있다. 누출된 방사능 물질로 인해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인근 지대의 방사능 오염이 심각한 상황이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입니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는 도쿄전력 백 산하의 원자력 발전소이다. 1967년 9월 29일에 착공하여 1971년 3월 26일에 운영에 들어갔다. 모든 원자로는 제너럴 일렉트릭사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시공은 카시마 건설이 맡았다. 총 1-6호기가 있으며 7, 8호기의 건설도 계획 중이었으나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방사능 누출 사고로 인해 취소되었다.
사고 [ 편집 ]
・6호기가
・4호기가 사고 전 하늘에서 본 모습으로 1~4호기와 따로 떨어져 있는 5,6호기가 보인다. 1975년 촬영.・6호기가 나카무라 의 방향.・4호기가 타이라 의 방향
2011년 3월 11일 도호쿠 지방 9.0의 지진이 발생함에 따라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원전 안전을 위해서 자동으로 원자로 1-3호기가 긴급정지되었다(4호기는 분해점검으로, 5-6호기는 정기검사로 발전정지 중 이었다). 원자로 주변의 송전선로와 변전시설등이 지진으로 인해 쇼트되거나 무너져내리면서 외부 전력이 차단되었다.[2] 이에 원자로를 안전하게 정지 상태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안전계통에 전력을 공급하는 비상용 디젤 발전기가 1호기부터 6호기까지 모두 가동되었으며, 운전 중이던 1~3호기의 노심에서 발생하는 열을 제거하기 위한 비상노심냉각계통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였다.
그러나 지진발생 약 50분 후 높이 15m(컴퓨터 분석은 높이 13.1m)의 지진 해일이 발전소를 덮쳤다. 발전소 설계 당시 예상했던 지진 해일의 높이 5m를 훨씬 초과하는 것이었다. 이에 지하에 설치된 비상용 디젤발전기가 침수되어 정지하였고, 발전소 내의 모든 전기시설 역시 손상되었다(지진 해일 이전에 이미 원자로 1호기 건물 내에서의 방사선량은 급증하였다고 한다). 후쿠시마 제1 원전은 원자로 안전을 위한 최소 전력마저도 없는 블랙아웃 상태에 빠졌고, 이로 인해 원자로 냉각을 위한 냉각수 펌프 가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냉각수가 급속히 증발하여 원자로 내부 온도 및 압력이 상승하게 되었다. 결국 원전전원완전상실사고(Station Black Out, SBO)가 선언되었다.
후쿠시마 원전은 이러한 SBO 사고에 대비해, 8시간 동안 노심냉각을 유지하면서 버틸 수 있게 설계되었다. 소외전원과 비상 디젤발전기가 상실되면, 마지막으로 배터리 전원을 이용하여 발전소 상태를 감시하고, 비상설비들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가동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으나, 이 배터리도 침수되어 전원이 완전히 상실되었다. 다행히 3호기와 5호기에서는 직류배터리가 침수되지 않아 이 전력을 이용해 원자로 냉각을 위한 필수기기들을 작동시킬 수 있었고, 6호기에서는 1대의 비상디젤발전기가 가동되었다. 특히 6호기에서 한 대의 비상디젤발전기는 공기냉각으로 작동되는 것이었고,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가동이 가능하여 5호기와 6호기에 필수전원을 공급하여 비상노심냉각이 가능하였다.
하지만 결국, 원자로 1-3호기는 모든 냉각수가 증발하면서 3월 12일 노심 온도가 섭씨 1200도까지 상승하였다. 제1방호벽인 펠렛과 제2방호벽인 피복관이 고온으로 인해 녹아 내렸고, 제3방호벽인 20cm 두께의 철제 원자로 압력용기(Reactor Pressure Vessel)도 녹아 내리면서 구멍이 뚫렸다. 이로 인해 핵연료가 공기 중에 확산되기 시작하였다.[3]. 핵연료에 있는 지르코늄이 1,200도를 넘으면, 반응을 일으켜 수소를 내놓는데, 이 수소가 격납용기내 수증기와 함께 고온고압을 유지하게 되었고, 12일 1호기, 14일 3호기에서, 15일 4호기에서 수소폭발을 일으켜 격납용기를 손상시켜서 방사능의 대기 유출이 시작됐다.[4]
비상디젤발전기: 원전의 비상디젤발전기는 입증된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대부분 선박용 디젤엔진을 기초로, 대형 규모 및 중간 속도의 디젤엔진을 사용하고 있다. 선박용 디젤엔진에 비해 급속 기동·부하 운전을 하고, 연속 운전시간이 짧으며, 항상 비상 대기 중인 상태에 있으며, 신뢰도 입증을 위한 시험으로 잦은 기동운전 및 정지를 하게 되는 차이점이 있다. 비상디젤발전기는 전기·기계적 복합 구조물로, 발전소마다 설계자 및 제작자가 다르며, 운전 및 보수에 많은 시간과 인력이 투입된다. 발전소 운전 기간 중에는 운영기술지침서의 점검 요구사항에 따라 정기적으로 운전 가능성 입증 시험을 수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원전의 손상 [ 편집 ]
1~3호기는 11일 14시 46분 지진 발생 이후 14시 52분 비상 발전을 시작하였으나 격납용기의 급격한 압력저하를 완화하기 위해 관리자가 회로를 개폐하던 중, 지진 해일에 의한 침수로 비상디젤발전기가 멈춰버렸지만 1호기는 15시 37분과 2호기는 15시 41분에 모든 전원을 상실하였다. 오후 16시 44분 1호기에 비상냉각계통탱크에서 소량에 증기가 나왔다고 확인을 했다 그러나 비상냉각계통탱크가 기능이 저하가 될지도 모르고 있었다. 17시에 도쿄전력이 비상용 발전차를 출동시켰으나 교통체증으로 제때 도착하지 못했고, 18시 20분에 도호쿠 비상용 발전차 출동을 요청했으나 11일 오후 19시 30분에 1호기 냉각수 증발로 수위 저하 및 노심용융이 시작되고 있었으며 밤8시 발전차가 출발이 된지 1시 20분만에 교통정체로 인해 제떼 늦어지고 있다. 밤 21시 51분 노심용용 발생 2시간 21분이나 직원 2명은 1호기에는 원자로건물에 있는 비상냉각계통탱크를 확인하러 가는중에 방사능측정기에서 소리가 나와 직원2명은 현장에서 철수를 하였다. 비상대책본부에 요시다 소장은 1호기 건물 입단 출입금지 명령을 내렸다. 밤 11시 50분에 노심용용 발생 4시간 40분만에 1호기 주제어실에 차량용 배터리를 연결하다가 1호기 운전원이 확인중에 1호기 원자로 격납용기 압력이 600kPa 나왔다. 이때의 압력은 원자로 격납용기 설계한계압력이 넘어섰다. 12일 오전12시 6분 비상대책본부 요시다 소장이 1호기 벤트를 준비를 지시하였다. 오전 3시가 되어서야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2호기 건물앞에 전원 복구시작 몇분사이에 쓰나미 경보가 발생되었다고 비상용 발전차를 위로 대피하였다. 12일 오전4시에 비상대책본부에 본사랑 긴급영상회의 중 아침에 간 나오토 총리가 후쿠시마 제1원전을 시찰을 할 예정이었다. 12일 오전 7시 11분에 도착을 한 간총리와 원자력 안전 보안관 있는데 불구하고 간총리가 원자로 벤트작업을 준비 하지못했다고 큰소리을 쳤지만 총리가 요시다소장에게 당장 벤트작업 준비를 착수하였다. 12일에 오전9시 제1원전 1호기 원자로 격납용기 압력 벤트를 낮추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절반만 성공이 되었다. 그러나 나머지는 선량이 높아서 갈수없어 주제어실로 복귀하였지만 벤트작업을 하는 직원2명이 피폭량를 받았다. 12일 오후 1시 50분에 내부에 선량이 높아서 외부에서 원격벤트 작업을 시작하였다. 오후 2시 1분 1호기 벤트 절반만 열게 되었다. 그마저도 전력계통 전반의 침수 및 전압 불일치 등의 문제로 격납용기에 전력을 연결하는 것은 12일 15시까지 지연되었다. 15시 25분 원격벤트 작업을 재개하였지만. 그러나 12일 15시 37분 원격벤트 작업도중에 1호기에서 원자로 건물 수소폭발이 발생하였다. 이때의 폭발로 지붕만 날아갔고 내부용기는 손상이 되지 않았다. 1호기 수소폭발로 인하여 전원복구도 다시 할수 밖에 없었다. 12일 6시경 모든 연료가 붕괴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3호기는 13일 오후 9시에 노심 온도가 2800도까지 급상승하여 노심용융이 시작되었다. 3호기는 1호기처럼 벤트 절반만 열게 되었다. 결국 14일 오전 11시 1분 3호기에서 수소폭발이 발생하였다.
노심용해가 발생한지 4일만에 1호기에서는 내부의 증기가 누출되었으며 2011년 3월 16일에 냉각 작업이 시작되었다.[5] 2호기도 연료 노출 및 격납용기 파손, 노심용해가 발생하였다.[5] 3호기에서도 증기 누출이 발견되었고, 노심용융이 발생하였다[5]. 이로 인해 1~3호기의 핵연료가 바닥으로 낙하하였다[6]. 12일에는 1호기, 14일에는 3호기에서 수소폭발이 발생하였다. 도쿄전력은 14일 원자로 냉각을 위한 해수주입을 시작했다.[7] 2호기는 14일 오후 1시 25분에 냉각상실과 기능상실이 되었지만 오후 6시 2분 비상용 배터리를 가져오면서 주제어실에 연결이 되었지만 2호기 격납용기에 압력을 낮추는 SR밸브 조작을 열었지만 노심압력이 내려가지도 않았다. 그러나 오후 7시 20분 2호기가 냉각 수위가 올라가지도 않아 소방차가 연료가 떨어저 엔진이 멈춰버렸지만 원전사고지역에 방사능 수치가 높아저 소방차가 멈춰버렸다. 14일 오후 9시 9분 2호기 원자로 냉각수가 빠르게 증발이 되어 노심 온도가 2800도까지 급상승하여 노심용융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최후수단인 2호기가 격납용기 압력이 내려가지 않아 드라이웰 벤트를 작업을 검토를 하다가. 15일 오전 6시 14분 2호기에서 뭔가 흔들린 정도로 원자로 격납용기가 파손이 되어 방사능 누출이 시작되었지만, 15일 오전 7시 2호기 격납용기가 터진 후 방사능이 강하게 방출 시작이 되었있다, 그 이후 냉각수 유출 및 지하수 오염으로 인한 방사능 누출이 시작되었다
4호기의 경우 15일에 수소 폭발이 발생하였으나, 지진 당시 연료 자체가 장전되지 않아 냉각수가 남아 있었고 연료봉이 손상되지 않았음이 확인되었다. 폭발 원인은 3호기의 배관을 통해 흘러들어온 수소 가스 때문으로 여겨지고 있다.[8][9]
사용 후 연료 보관 수조의 이상 [ 편집 ]
원자로의 냉각능력이 상실되면 연료봉의 과열, 냉각수의 수위저하, 연료 피복관의 용융, 수소 발생, 격납용기 압력상승의 과정이 진행되고, 이 상태로 수십 시간 경과시 폭발의 위험이 있다. 사고 이후 1호기의 격납용기 압력은 설계강도의 1.5 배에 달했다. 이 때문에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대기에 누출될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압력을 낮추기 위해 내부의 공기를 대기로 배출하는 작업이 긴급하게 실행되었다.[출처 필요]
초기 며칠 동안 1-4 호기에서 원자로 건물의 수소 폭발 압력 억제 풀 폭발 손상, 사용 후 핵연료 수조 부근의 폭발, 기타 상세 불명의 증기 등이 연발하여 국가를 긴장시켰지만, 원자로와 사용 후 핵연료 저장 수조를 냉각시키거나 방수(해수, 나중에 더 안전한 담수)가 각종 차량 등에 의해 발생되며, 그 후 냉각 작업의 일부가 임시 펌프에 의해 수행되는 등 상황이 안정되기 시작했다[출처 필요]. 계절적으로 온도가 낮은 시기이며, 더욱이 일본에 있었던 한파에 의해 평년보다 기온이 낮은 상태로 있던 것도 온도 상승을 완화한 요인이 되었다[출처 필요].
방사능 누출 [ 편집 ]
배수구와 터널을 옆에서 본 모습. 1: 원자로 건물, 2: 터빈 발전기와 부속시설
이 사고로 인해 대기, 토양, 고인 물, 바다, 지하수에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었다. 이러한 오염은 일본 국외에까지 퍼지면서 일본 경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원자력 안전 보안원 은 4월 18일 1~3 호기에 대한 연료 펠렛 피복 관의 파괴(노심 손상)과 함께, 연료 펠렛의 용융도 일어나고 있다고 처음으로 인정했다[출처 필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녹아 내린 연료가 압력용기의 바닥에 모여있는 상황에는 이르지 않고 원자로 부근에 있는 냉각수면 부근에 굳어져 있을 수 있다고 추정하면서, 다시 임계치에 다다를 가능성도 극히 낮다고 주장했다.[10]
연료 펠렛 용융 수위 저하에 의한 과열이 일어나고 여진도 심하게 발생했다. 압력 용기의 바닥이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해도, 원자력 안전위원회 위원장이 지적했듯이[11] 피복관이 용융 연료 제어봉 주변의 틈새에서 낙하하여 격납 용기의 바닥에 다소 떨어질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다.
원자력 안전 보안원은 회견에서 녹은 연료 봉을 원자로 하단에 떨어지는 것을 붕괴라고 정의하며 붕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2011년 4월 말 기준으로 연료가 고온에 있는지 여부는 여전히 논의되고 있다.
2013년 9월 기준으로 세슘과 스트론튬이 각각 1일 60GBq이 배출되고 있다.[12] 도쿄전력 측은 기준치 이하 농도로 배출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체내에 축적될 경우 위험하다는 입장도 존재한다.[12]
방사능 오염수 누출 [ 편집 ]
후쿠시마 제1 원전에서는 매일 세슘 137과 스트론튬 90이 하루에 약 60GBq(기가베크렐)씩 태평양으로 방출되고 있다[13]. 후쿠시마 사고 직후부터 4월 7일까지에는 하루에 100TBq이 원전 배출구를 통해 유출되었으나 점차적으로 유출량이 줄어서 현재의 상태가 되었다.[14] 하지만 배출되는 방사능 오염수에는 농도 기준만이 있을 뿐 총량 기준이 없어서 야오야마 연구원은 방사능 물질이 농축될 것을 염려하였다.[13] 이에 반하여 도쿄전력 측은 방사능 오염수는 기준치 이하라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14]
방사능 오염수는 2011년 당시 원전을 식히기 위해 바닷물을 끌어 원전을 냉각시키면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오염수는 수조에 보관되고 있었으나,[15] 이 오염수가 원전 내부뿐만 아니라 오염수 저장탱크에서도 유출되고 있었다. 이 유출된 방사능 오염수가 빗물과 함께 2012년 1월부터 바다로 유출되기 시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도쿄전력이 밝혔다.[16] 이 외에도 산 쪽에서 하루 400톤의 지하수가 원전 지하를 통과하여 방사능 오염수를 만들어 낸다.[17]
8월달에 300t의 방사능 오염수 누출 사건을 조사하던 중, 원전 오염수를 저장하는 탱크 지상 강판을 연결하는 볼트가 느슨한 것이 발견되었다.[18] 또한 방사능 유출 당시 방사능 오염수 확산을 막기 위한 보의 24개의 차단 밸브가 열려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19] 차단 밸브가 열려 있어서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유출되었음이 밝혀지자, 배수 밸브를 막기로 하였다.[16] 또한,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도쿄전력은 수조의 오염수부터 먼저 빼내기로 하였다.[20]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원자력 발전소로 유입되는 지하수를 퍼올리기 위해 만들어진 우물에서 저장탱크에서 새나온 오염수 때문에 리터당 기준치보다 최대 470배 높은 트리륨이 검출되었다. 게다가 지하수를 통해 방사능 오염수도 누출되고 있다. 원전 내부의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면서 외부에 고농도 방사선 물질이 누출되었는데 이는 도쿄전력이 2년동안 방치해 둔 결과이다.[21] 또한 2013년 9월 1일에 저장탱크 3기와 배관접합부 1곳에서 70~1800mSv/h의 높은 방사선량이 검출되었다[22][23]
2013년 9월 16일에는 태풍 마니의 영향으로 오염수가 급증하자 서쪽 H9구역과 E구역, 남쪽에 있는 G4구역 등의 탱크 보 7곳의 물 1300t을 방출했다고 도쿄전력 측이 밝혔다.[24][25] 이로 인해 약 885만 베크렐이 유출된 것으로 추정되며, 바다로는 얼마나 흘러갔는지는 알 수 없다.[24] 하지만 도쿄전력 측이 세슘 농도를 파악하지 않고 베타선만을 측정하여 바다로 방출한 것에 대해서는 비판을 받고 있다.[25] 10월 3일에도 고농도 방사능 오염수가 430리터 누출되었는데, 이는 탱크에 오염수를 과다하게 넣었고, 탱크가 기울어진 것이 원인이었다.[26] 12월 25일에는 또 보에서 오염수가 최대 225t 유출되었다.[27]
2015년 5월 29일 오전 10시 8분에 현장작업자가 내압 호스에서 오염수가 새어나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도쿄전력은 “누수된 오염수가 배수로를 따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앞바다의 전용 항만으로 흘러간 것 같다”고 발표했다.[28]
2016년 3월 10일 후쿠시마 제1원전에 원자로 내부용기에 멜트다운이 콘크리트 바닥에 녹아 떨어저 발생되고 있는 핵연료덩어리 데브리스가 제거하려면 기술과 비용처리로 대책이 없었다
2021년 2월 13일 후쿠시마 앞바다에 규모 7.3 강진여파로 제1원전 5,6호기와 공용수조에서 총2800cc가 물이 넘쳤다.
2021년 중에 핵연료덩어리 데브리스 제거용 로봇 투입하였다. 원자로 내부용기에 멜트다운이 콘크리트 바닥에 녹아 떨어저 발생되고 있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사고의 심각도 [ 편집 ]
기초 지반을 통한 고농도 방사능 오염수 유출경로. 1: 원자로 건물, 2: 터빈 건물, 3: 규산나트륨 주입
대기에 노출되었을 방사성 물질의 양은 0.37 PBq 이상으로 추산되고, 4월 12일, 국제 원자력 사상 평가 척도 [21] 에 대한 잠정적인 상태 레벨 7로 평가되고 있다[29][30][31]
또한, 2 호기에서 누출되는 고농도 오염수에 포함된 방사성 물질의 양은 도쿄 전력 자료의 수량 및 농도[32]에 근거하면 2011년 4월 19일 기준으로 3.3PBq이다. 누출된 방사선이 해양과 지하수에 더이상 퍼지지 않게 하고 정화하는 것이 하나의 과제이다.
피해와 영향 [ 편집 ]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인해 방사능이 공기 중, 해양 중으로 누출되었다.[33]
국제원자력연구소의 2015년 발표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대기로 방출된 방사능은 아이오딘-131이 200PBq, 세슘-137이 16PBq 정도이다. 해양으로 누출된 세슘-137은 대기에서 바다로 침적한 양과 직접 바다로 흘러들어간 양을 합쳐 10.5PBq이다.[34]
대한민국에 끼친 영향 [ 편집 ]
사고 발생지로부터 대한민국까지 직선거리는 약 1,100km이나, 사고 당시 바람이 동쪽으로 불어, 방사능 물질이 직접 날아오지 않았다. 일부 주장에 의하면 북극권을 돌아오거나 북반구를 한 바퀴 돌아서, 사고 약 20일 후(2011년 3월 31일경)에 대한민국에 도달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 측정값을 보면 일상에서 측정되는 수준보다 낮기 때문에 후쿠시마의 영향이라 할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다.(국내 전국 방사능측정소에서 측정된 공기 중 최대 농도는, 아이오딘-131이 3.12mBq/m³(2011년 4월 6일 군산), 세슘-137이 1.25mBq /m³(2011년 4월 7일, 부산)이었고, 빗물 중 농도는 아이오딘-131이 2.81Bq/L(2011년4월 7일, 제주), 세슘-137이 2.02Bq/L(2011년 4월 11일, 제주)이었다. 이러한 방사능 농도는 평소 공기 중 천연 방사성핵종의 농도(라돈 20~30Bq/m³)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빗물 중 세슘-137 농도도 일반적으로 빗물에 있는 천연방사능 농도(베릴륨-7: 1~3Bq/L, 삼중수소: 1~2Bq/L) 수준이었다)
후쿠시마 앞바다는 북쪽에서 오는 한류와 남쪽에서 오는 난류가 만나는 곳이어서 동쪽 태평양으로 밀려 나가 주류는 태평양을 건너 북미 대륙에 부딪힌 다음 남북으로 갈라져 북으로는 북태평양을 경유해 일본 쪽으로 돌아오고, 남으로는 적도 주변을 따라 필리핀 근처를 거쳐 남해 방향으로 돌아오는 데 2~3년이 걸린다. 중간에 작은 흐름은 보다 가까운 거리로 돌 수 있지만, 어느 경우든 남해안에 도착할 때까지 방사성 물질이 희석되고 가라앉아 사고의 영향은 거의 검출하지 못할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대한민국 해역의 바닷물을 검사한 결과도 사고 후 4년이 넘은 2015년 말까지 방사선량 증가가 확인되지 않았다.
초기의 반응 [ 편집 ]
일본 정부는 반경 20 km 구역을 ‘경계구역’으로 지정해 주민의 출입을 법적으로 금지하기로 했다.[35]
4월 22일,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제1원전 주변 자치단체 중 방사능 검출량이 가장 많은 이타테촌(飯館村) 전역과 가쓰라오촌(葛尾村), 나미에정(浪江町), 가와마타정(川俣町), 남 소마 시 (구 하라노마치 시)(南相馬市 [旧 原町市])의 일부 지역을 ‘계획적피난지역’으로 선정하고 다음달 말까지 피난시키기로 하였다.[36]
노르웨이대기연구소가 한반도에 방사능비가 우려된다는 예측을 내놓아서 논란이 있었다.[37] 이에 대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인체에 무해한 비가 내렸다고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38] 정부와 전문가들은 일본 방사능에 대한 한국내 일부의 지나친 우려에 대해 담배가 오히려 방사능 비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며 일축하고 있다. 박재갑 국립중앙의료원장은 “일본서 넘어오는 미량의 방사성물질에 두려워하면서도 담배에 들어 있는 방사성물질에는 둔감한 게 현실”이라며, 담배에 포함된 방사성 폴로늄(Po-210)과 방사성 납(Pb-210)이 오히려 방사능 비보다 더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담배를 하루에 1.5갑 피우는 사람의 폐 조직 검사에서 나온 폴로늄 방사선량은 1년간 300회 정도의 가슴 엑스선 검사를 한 것과 같은 수준”이라고 한다.[39]
한편, 미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등은 방사능 누출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자국민들에게 도쿄를 떠나라고 권고하고 있다.[40]
날짜별로 간단히 내용을 정리하자면, 14일 키 리졸브 한미합동훈련을 중단하고 구조작업에 투입된 미국 제7함대의 로널드 레이건호의 헬기 승무원 17명이 한시간만에 한달치 방사능에 노출되었다. 로널드 레이건호가 후쿠시마 원전에서 유출된 방사능 연기를 통과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15일에는 도쿄에의 방사능 수치가 평소보다 23배 급등하면서 외국인들의 도쿄 탈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4년간 최대 수치는 0.079 마이크로시버트였으나, 이 날 0.809 마이크로시버트까지 치솟았다. 일부 외국계 증권사들은 도쿄 증권거래소에 직원들의 안전이 확실해질 때까지 주식 거래를 중단해 줄 것을 요청했다.[41]
16일, 미국 국무부는 도쿄 일대의 자국민에 대해 철수를 권고하고 전세기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도쿄와 요코하마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및 가족들에게 대피할 것을 제안하고 출국을 허가했다.[42] 요코하마에 접해있는 요코스카에는 미국 제7함대 본부가 있으며 핵추진 항공모함의 모항이다.
17일 아사히 신문은 후쿠시마에서 400 km 떨어진 시즈오카현의 하마오카 원자력 발전소에서 세슘-134 등 5종류의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었다고 보도했다.[43] 후쿠시마 원전(오쿠마)에서 도쿄는 250km 떨어져 있으며, 도쿄 수도권일대에는 3900만명이 거주하고 있다.[44] 체르노빌 당시, 소련 정부는 최소 방사능 기준으로 1제곱미터당 55만 베크렐의 세슘이 검출된 반경 30 km의 주민들을 강제이주 시켰지만, 후쿠시마 원전에서 40km 떨어진 이타테시에서 1제곱미터당 326만 베크렐의 세슘이 검출되어, 체르노빌의 최소 강제 이주 기준의 6배를 기록했다.[45]
일본 정부는 프랑스에 원전 문제 해결을 위한 도움을 요청했다.[46]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동일본 대지진 발생 이후,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일본을 공식 방문해, 간 나오토 일본 총리와 이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47] 또한, 진도 9.0의 대지진에 후쿠시마 원전이 대부분 폭발하면서, 전 세계 각국이 원전 확대 정책을 심각하게 재고하기 시작했다.[48] 2011년 3월 14일, 스위스 연방 에너지청은 노후한 원자력 발전소를 새 원전으로 교체하려던 계획을 보류한다고 밝혔다.[49] 미국, 독일, 중화인민공화국, 인도, 오스트리아 등도 후쿠시마 사건에 크게 영향을 받아, 원전회의론이 급부상하고 있다.[50] AFP 통신은 “일본 지진으로 전 세계 원전사업이 퇴조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48] 특히, 독일 정부는 10년안에 자국의 모든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쇄할 것이라고 밝혔다.[51]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제1원전 1~3호기에서 유출된 세슘-137이 15,000 테라베크렐로, 89 테라베크렐이었던 히로시마 원폭 리틀보이의 168.5배라고 밝혔다.[52] 반면에 노르웨이 대기연구소는 세슘-137이 36,000 테라베크렐 유출된 것으로 추산했다.[53]
해산물 기피 [ 편집 ]
잇따른 방사능 오염수 누출에 따라 아베 정부는 정부가 책임지고 방사능 오염수를 처리하겠다고 밝혔으나,[54]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 유치에 지장을 주는 것을 염려하여 일본 의회는 방사능 오염수에 대한 국회심의를 9월 중순 이후로 미루기로 하였다.[22] 또, 도쿄전력에만 원자력 사고 문제의 해결의 책임을 미룬 것은 소극적인 행위라며 정권의 위기감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55] 또한 방사능 오염수 유출의 영향으로 대한민국의 소비자들은 일본산 생선에 대한 방사능 검사 확대에도 불구하고 도미, 생태 구매를 기피하고 있으며[56], 이는 대한민국 수산물 방사능 기준치가 일본의 100베크렐/Kg(유아는 50베크렐/kg)보다 높은 370베크렐/kg이어서 일본에 비해 3.7배 많은 방사능 오염물질을 가지고 있는 생선이 유통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57]
방사능 축적 [ 편집 ]
“먹어서 응원하자”라는 도호쿠 지방의 농산물을 먹어서 응원하는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토키오의 베이시스트 야마구치 타츠야는 2012년 3월, 세슘 137에 내부피폭이 되었다는 진단을 받았다.[58] 또한, 간토 지역에 위치한 이바라키현의 모리야시에서 진행된 조사에서는 18세 미만 85명 중 58명에서 자연 상태에서는 드문 세슘 134, 세슘 137이 검출되었다.[59] 2013년 8월 9일 일본 농림수산성의 조사에 따르면 세슘이 5000베크렐을 초과한 농지는 7500헥타르라고 밝혔는데, 이는 지난해의 조사에서 16%가 감소한 수치이다.[60]
유엔과학위원회(UNSCEAR, 2013)와 세계보건기구(WHO, 2014)의 보고서에 따르면 ‘사고로 인해서 피해 주민들의 암발병률 증가를 관측할 수 없으나, 아동 갑상선암 발병률에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라고 한다.[61][62] 이 두 편의 보고서가 나온 지 4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으며, 따라서 현재의 시점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일본과 한국의 공간선량률 [ 편집 ]
주한 일본 대사관은 일본과 한국의 공간선량률의 페이지를 별도로 공개하고 있다.[63]
비판과 의혹 [ 편집 ]
일본 국도 288호선 중 통제된 구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진전됨에 따라 더이상 이 사고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을 포함한 환태평양 지역 전체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초기의 비판 [ 편집 ]
원자로에 냉각시스템이 멈춘 직후에 원전 폐기를 감수하고 바닷물을 조기에 투입했더라면 사태의 심각성이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운영사인 도쿄전력측이 건설비용이 한화 약 5조원 가량인 원전의 폐쇄를 결단하지 못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는 것이다. 도쿄전력은 사고발생 31시간 이후에야 해수투입을 결정했다. 일단 원자로에 정제수가 아닌, 이물질이 많이 포함된 해수를 투입하면 원자로를 더 이상 상용 운전할 수 없고 폐기처분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5월 17일 히라타 오리자(平田オリザ) 일본 내각 관방참여가 서울 시내에서 열린 강연에서 오염수 방출은 일본 독자의 판단이 아니라 미국의 강력한 요청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토로하였다.[64]
정보은폐 의혹 [ 편집 ]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에 수소폭발이 발생하기 직전까지 정보를 은폐하였다.[65] 또한, 1, 2호기의 수소 폭발과 달리 3호기는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 가공 연료(MOX 연료)가 터진 핵폭발에 의한 것으로, 비밀리에 핵개발을 추진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66]
소극적 태도 [ 편집 ]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가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도쿄 전력 사장의 경우 사고 직후 사라졌으며, 일본 수상 간 나오토도 지도력이 결여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또한 정보를 은폐하고 외부의 지원을 거부하고 있다는 견해도 존재한다.[67] 후쿠시마 원전사고 초기에 차수벽을 설치해 오염수 유출을 막을 수 있었음에도 경영파탄을 이유로 들어 도쿄전력이 차수벽을 설치를 2년간 미뤄 왔다는 것도 비판받고 있다.[68] 또한 오염수 탱크 불량이 발생하자 오염수를 줄이는 대책을 내놓기보다는 오염수를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는 소극적 대처만 나온 상태이다.[69] 일단 일본 정부는 오염원을 제거하고, 산쪽에서 오는 지하수를 차단해 오염수 생성을 막고 오염수 누출을 막겠다는 3대 원칙을 내놓았으나, 유출사고가 끊이지 않고 전례가 없으며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70]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가 통제되고 있다”던지 “오염의 영향은 후쿠시마 원전 항만 내부의 0.3km2 범위 안에서 완전히 차단되고 있다”는 말은 비판을 받고 있다.[71] 특히 도쿄만 통제가 된다면 도쿄와 후쿠시마는 다른 나라가 될 것이라면서 후쿠시마 거주의 한 여성이 이를 비판했다고 도쿄통신이 전했다.[72] 또한 도쿄통신은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오염수가 건강에 영향이 없다”는 아베 신조 일본총리의 발언에 대해 일본인 64%가 불신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도했다.[73] 머니투데이도, 야마시타 가즈히코(山下和彦) 도쿄전력 연구원이 오염수 문제는 매우 심각하며 상상을 초월한 상황이고 통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보도하였다.[74] 또한 태풍 마니 상륙시에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큰 비판을 받고 있다.[25]
수입금지 논란 [ 편집 ]
원전사고 이후, 전 세계에서 방사능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됨에 따라 사고 초기부터 일본의 농수산물 수입 금지에 대해 고려하기 시작했다.[75] 중국의 경우 10개 현의 모든 식품과 사료의 수입을 막고 있다.[76][77] 원전사고 이후 중국의 경우 일본산 농수산물에 대한 수요가 줄어서 일반 시민들은 방사능에 대한 불안 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KBS가 전했다.[78] 러시아의 경우 8개현의 수산물 및 수산가공식품 수입을 금지하고 있으며,[76] 러시아 극동 세관의 경우, 일본산 자동차 중 기준치를 초과한 경우 다시 되돌려 보내는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79] 대만의 경우 5개현에서의 모든 식품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76] 뉴칼레도니아도 12개현의 모든 식품과 사료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76] 홍콩, 마카오 등에서는 취약계층이 많이 섭취하는 일부 지역에서 생산된 우유, 유제품 수입을 금지시켰다. 미국, 필리핀, EU, 볼리비아, 브라질 등은 일부 제품은 수입금지를 하고 그 외에는 정부가 작성한 품질 보증서 및 생산 가공지 기록 조치를 취하고 있다.[76]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내의 방사능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됨에 따라 기존 8개 도도부현의 일부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2013년 9월 6일부터 8개 도도부현 전체 농수산물의 수입을 방사능 검출 여부와 상관없이 금지하는 것으로 확대시켰다. 또한 다른 현의 경우에도 검사를 확대하기로 했다.[80] 해당되는 현은 후쿠시마현, 이바라키현, 군마현, 도치기현, 이와테현, 미야기현, 아오모리현, 지바현이다.[80] 정 승 식약처장은 해류의 영향을 고려해서 북쪽에 있는 현의 수입도 금지시켰으며, 다른 현의 경우에도 세슘이 미량이라도 검출될 경우 스토론튬이나 플로토늄 등에 대한 검사증명서를 요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77] 세슘에 대한 기준치도 기존의 370베크렐에서 100베크렐로 강화시켜서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내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였다.[81]
이에 대해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과학적인 대응을 바란다며 일본의 물과 식품은 국제 기준에 맞추어 관리되고 있다고 밝혔다.[82] 일본 정부의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에 대한 항의와 해제 요구가 있은 후에 대한민국 정부는 검토해 보겠다는 원론적인 대답만을 내놓았다.[83] 이에 대한 반발로, 9월 14일에 WTO 제소를 검토한 데이 이어서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수산물 수입 금지조치에 해서 16~17일에 제네바에서 열리는 WTO 총회에서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84]
대한민국 내에서도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위험지역의 모든 식품에 대해 수입을 금지하고 있는 중국과 대만과 비교해도 정부 조치가 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정부는 중국 등이 우리보다 센 조치를 시행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효과 면에서는 대한민국이 훨씬 강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우리는 일본산 전 수입품에 대해 방사능 검사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검역조치는 우리가 훨씬 강한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정부는 방사능 검출량이 허용 기준치 이하면 수입이 허용됐던 검역 기준을 강화해 미량의 물질이라도 검출될 경우 농산물 및 가공식품과 동일하게 수입을 중단하고 비오염 증명서를 추가로 요구키로 했다. 세슘에 대한 방사능 기준도 종전 kg당 370베크렐(Bq)에서 일본과 같은 100Bq로 강화해 국민 불안을 씻어내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조치는 일본이 대한민국의 빼놓을 수 없는 교역파트너라는 점을 감안할 때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로는 가장 강한 조치로 풀이된다.
제염작업과 피해 복구 [ 편집 ]
2012년부터 원전 반경 20km 이내 지역을 제외한 방사능 제염작업과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건물들의 수리, 재건축 작업이 시작되었다. 2012년 4월, 그동안 고리야마시에 임시 사무소를 설치했던 가와우치촌이 기초자치단체 중 최초로 귀촌 선언을 한데 이어, 히로노정도 마을 사무소를 이와키시에서 히로노 정으로 다시 옮겼다. 방사능 제염작업은 집 지붕을 고압 살수로 씻어내고 오염된 흙을 불도저 등으로 긁어내어 완전 봉인한 후 별도의 장소에 보관하는 방식인데, 이 작업으로 인해 이이다테 촌의 서부 지역은 방사능 수치가 많이 낮아졌다. 한편, 원전부지 내부에서는 원자로 안정화 작업이 계속되고 있고, 건물 해체 작업이 본격화되었다.
특히, 1호기에는 방사능 물질이 더 이상 새어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덮개가 설치되었다. 제일 문제는 4호기의 사용후 연료봉 1500개를 안전하게 회수하는 것인데, 이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원전 폐쇄 작업의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2040년까지 원전 완전 해체를 목표로 지금까지도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원전 부지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방사능 오염수도 문제인데, 도쿄전력은 이를 정화해 바다에 버리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지만, 후쿠시마 현민들의 반대가 심해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다. 그외의 방사능 오염지역에서도 제염작업으로 인해 나온 방사능 쓰레기를 보관할 중간 저장시설이 없어 비닐봉 인된 채 주변에 방치되어 있다.
2013년 8월 일본 정부는 차수벽을 설치하여 방사능 누출을 막는 것이 실패하자 1.6킬로미터 길이의 벽을 설치해 땅을 얼리는 방법으로 누출을 막을 계획을 진행했다
제염복구 지원 업체 [ 편집 ]
편의시설 지원 업체 [ 편집 ]
로손 (원전사고지역 편의점 운영)
같이 보기 [ 편집 ]
각주 [ 편집 ]
외부 링크 [ 편집 ]
일본 원전사고의 과정과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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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이하 원전) 운용사인 도쿄전력이 제1원전 2호기 원자로의 콘크리트 격납용기 내부 조사에서 촬영한 사진을 분석한 결과, 일부 공간에서 방사선량이 시간당 최대 530시버트(Sv)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는 사람이 1분간 직접 노출될 경우 즉시 사망할 수 있는 초고농도의 방사선 수치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6년이 지났지만 처리되지 못한 방사능과 갈 길 먼 원자로 처분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이런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도대체 무슨 사고이고 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2011년 3월 11일 금요일 오후 2시 46분, 일본 동북부 미야기 현 오시카 반도 동남쪽으로 130km 떨어진 앞바다에서 규모 9.0의 대지진이 일어났다.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제1원전의 총 6기의 원자로 가운데 1, 2, 3호기는 가동 중에 있었고, 4, 5, 6호기는 점검 중에 있었다. 대지진 발생 후 1, 2, 3호기 원자로가 자동으로 정지 됐지만, 그 후 오후 3시 27분경부터 지진해일이 덮쳐 1호기부터 3호기까지의 모든 교류전원이 상실됐다. 그뿐만 아니라 지진해일의 영향으로 1호기의 원자로 중심부인 노심이 노출됐고 이는 노심 손상으로 이어졌다. 그다음 날인 3월 12일 토요일 오후 3시 36분경에는 1호기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났고, 이틀 뒤에는 3호기 수소폭발, 15일에는 4호기 수소폭발과 폐연료봉 냉각보관 수조 화재 등이 발생해 방사성물질을 포함한 기체가 대량으로 외부로 누출됐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제 1원전의 사고 수준을 레벨 7로 공식 발표했다. 이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만든 0~7까지의 국제원자력 사고등급(INES) 중 최고 위험 단계로 1986년 발생한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같은 등급이다.지진해일 이후 일본 정부는 유엔 산하의 국제원자력기구 감시단을 초대해 후쿠시마 원전에서 계속되고 있는 위기를 처리할 방법과 재발 방지책을 모색했다. 다른 원전과 마찬가지로 후쿠시마 원전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설계됐지만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같은 위협은 항상 존재했다. 후쿠시마 원전은 방파제로 지진해일의 파도를 차단하며 지진 피해를 막기 위해 단단한 암반 속에 원자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안전장치로 비상 발전기도 있어서 전기가 끊겨도 계속 가동할 수 있게 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지진이 발생한 시점에 원자로는 정상적으로 자동 정지됐고 표준 절차에 따라 비상 발전기가 작동됐다.하지만 이 모든 안전 조치도 후쿠시마 원전을 보호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원전을 설계할 때 지진해일에 대한 충분한 고려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1~4호기를 건설했을 때 기술자들은 공장 부지의 높이를 25m나 낮춰 원전 밑에 있는 암반에 원자로 건물을 고정할 수 있었다. 이 방법은 지진에 의한 붕괴를 막을 수는 있었지만, 지진해일의 위협에는 취약했다. 지진해일의 위협을 막기 위해 설계자들은 원전 주변에 최대 6m에 가까운 파도를 막을 수 있는 방파제를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 지진해일로 인한 범람을 고려하면 파도의 높이는 14~15m에 달했고, 파도는 원자로 건물과 원전 부지를 휩쓸고 지나갔다. 지진해일용 방파제는 너무 낮았고, 이 단순한 설계 결함이 일련의 끔찍한 사고로 이어졌다. 수천 톤에 달하는 바닷물이 밀려오며 디젤 발전기 대부분이 물에 잠겼다. 디젤 발전기들은 터빈 건물 밑과 부지 내의 다른 저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광범위한 침수에 매우 취약했다. 지진으로 인해 모든 외부 전력이 끊겼고, 비상용 디젤발전기, 배터리마저 지진 해일에 의해 전원이 끊겼다. 이 때문에 기술자들은 대형 원자로 격납용기에서 발생한 엄청난 열을 제어하지 못했다.격납용기 내부, 원자로 깊은 곳에서는 핵반응이 열을 생성하고 이때 발생한 증기가 터빈을 돌려 에너지를 만든다. 동시에 과열을 막기 위해 냉각수를 공급해준다. 하지만 전기가 끊기면 원자로의 과열을 막아주는 냉각수를 흘려보내지 못하고 원자로에서는 핵반응이 계속되면서 열을 내뿜는다. 결국, 원자로 안의 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노심용해 현상이 일어났고 녹아내린 연료봉에서 엄청난 방사능이 방출됐다.그뿐만 아니라 원자로 설계 자체 때문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원자로 연료봉 안에는 수 톤에 달하는 핵연료가 들어 있고, 표면엔 희귀금속인 지르코늄(Zr)이 칠해져 있어서 과열을 막는 동시에 지속적인 핵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온도가 상승하면 지르코늄의 반응도 활성화되는데 노심에는 지르코늄이 아주 많아 그 당시 노심이 과열되면서 수증기, 물과 격렬하게 반응하며 수소를 생성했다. 당시 원자로 내부 온도는 2,800도까지 상승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지르코늄과 수증기의 반응을 촉발할 수 있을 만큼 높은 온도다. 가연성 높은 수소가 위험 수준까지 축적되자 전문가들은 원자로를 감싼 콘크리트 용기에 구멍을 뚫어 수소를 배출했는데 이때 연료봉의 방사성 물질도 함께 누출됐다. 또한, 수소는 안전밸브를 통해 서서히 외부로 빠져나갔지만 모든 수소가 실외로 빠져나가지는 못한 채, 배출된 상당량이 건물 상부에 모였다. 그 후 수소가 쌓이며 1호기와 3호기에서 대형 폭발이 일어났고 4호기에선 치명적인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규제의 완벽한 실패였다”
겐키 야가와 도쿄대 명예교수…규제기관보다 높았던 ‘동경전력’ 지적
지난 7일 ‘원전안전성증진 심포지엄’…원전종사자 안전문화 중요 깨달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수소폭발 당시 모습 /사진출처=대한민국 정책정보지 위클리 공감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자연재해’에서 출발해 ‘인재’라는 대형사고로 발전한 인류역사에서 뼈아픈 참사로 기록하고 있다.
지금껏 많은 언론에서 다뤄졌듯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원인은 핵분열에 의한 폭발이 아니다. 지진으로 전력 공급이 중단되고 이어지는 지진해일로 원자로 비상노심냉각 기능이 상실되면서 원자로에 냉각수 공급에 차질이 생겼으며, 냉각재 수위가 낮아지면서 연료봉이 노출되어 온도가 상승하였으며 고온에서 연료봉 피복재가 산화함으로써 수소가 발생했다.
이때 발생한 수소는 원자로에서 격납용기 내부로 배출되어 모이는데, 격납용기 보호(파손 방지)를 위해 수소를 격납용기 외부로 방출하는 과정에서 누출된 수소가 격납용기를 둘러싼 건물인 원자로건물 상부에 축적되고 공기와 반응해 폭발(수소폭발)하면서 방사능이 누출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원자력계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각종 안전장치를 차단한 상태로 무리한 시험 강행으로 발생한 중대사고로 원자력 안전문화의 출발지였다면,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설계기준 초과 자연재해로 인한 사고로 극한상황에서의 대처 능력의 확보가 필요한 점은 결국 규제의 완벽한 실패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3월 11일 지진과 해일의 습격을 받고 4시간여 만에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는 냉각수 공급이 되지 않아 반응로의 물이 증발해 줄어들었고 연료봉이 녹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쿄전력 사장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이 때문에 초동 대처할 시간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또 12일에는 1호기가 첫 수소폭발을 일으키자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에 바닷물을 주입하기로 결정”했지만 도쿄전력은 발전소 폐기가 우려돼 이를 무시했다. 공공성보다 이윤을 중시한 민간기업의 한계였다.
이후 3, 4호기 순으로 수소폭발이 이어지면서 그로인해 휘발성 방사성물질인 요오드, 세슘 등이 환경에 방출됐다. 이에 보다 못한 미국이 “일본 정부의 대처가 미온적”이라며 빠른 해결을 촉구하기 시작했고 일본 정부는 자위대의 CH-47헬기와 고압 소방차, 경찰의 특수 살수차 등을 주수작업 투입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6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관료제의 비효율’과 ‘동경전력과 규제기관의 기형적 관계’ 등이 도마에 오르지만 대체로 전문가들의 의견은 ‘자연재해’가 아닌 분명히 ‘인재’라는 점이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경위 /인포메이션 그래픽(Information graphics)=한국원자력문화재단 제공
◆자만심이 불러온 ‘인재’, 안전의 새옷을 입히다
결국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원자력 안전에 대한 자만심에서 벗어나 설비 자체의 신뢰성뿐만 아니라 ‘사람중심(원전종사자)의 안전문화’를 깨닫게 했다. 또 기술적인 조치 이전에 심층방어 개념의 확장, 제도적 건전성 등 안전 기준을 전면 재검토하고 안전규제를 위해 새로운 대안도 마련됐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일본의 안전신화’가 무너지는 상황을 가까이에 지켜본 한국은 원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우려가 깊다. 설상가상 지난해 원자력 관련시설이 밀집된 경주지역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하면서 자연재해와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정치권과 국민의 눈높이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국내 원전의 지진 대비 현황과 안전문화의 중요성, 일본의 사고 이후 원전 가동과 후쿠시마 주민 건강실태 등을 알아볼 수 있는 심포지엄이 열려 관심을 끌었다. 한국수력원자력(사장 이관섭)은 지난 7일 경주시 보문단지 내 경주화백센터(HICO)에서 ‘2017 원전 안전성증진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심포지엄에 발제자로 동경전력 후쿠시마 사고조사 검증위원회 위원장과 일본학술회의 원자력사고대응 분과위원장을 지낸 겐키 야가와(Genki Yagawa) 일본 도쿄대학교 명예교수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극한재해에 대비한 원전안전성 확보 방향을 발표했다.
특히 겐티 야가와 교수는 “후쿠시마 원전을 제외하고 당시 진앙(震央)지로부터 더 가까웠던 오나가와 원전을 비롯해 50여기가 넘는 원전들이 안전하게 대처해 피해가 적었던 이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오나가와 원전은 모든 원전과 배수펌프가 해수면 14.8m 위에 위치했고 지진대비 강화조치가 2010년 6월 완료됐으며, 외부로부터의 5개 전원 중 1개가 정상 작동됐다. 또 지진과 쓰나미 발생 후에 약 360여명의 지역주민이 발전소내로 대피해 위기를 모면했다. 이는 원전 안전이 단순한 설비 가동연수보다는 운영관리, 즉 원전종사자의 안전문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 겐티 야가와 교수는 “후쿠시마 사고는 일본 원자력계가 ‘일본의 원자력발전소는 안전하다’는 기본가정에 빠져 안전체계가 효과적이지 못했던 데에서 발생한 제도적 실패(Institutional Failure)로 규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동경전력을 비롯해 원자력(전력)산업계 뿐 아니라 규제기관과 정부(중앙정부 및 지자체 등)의 기형적인 역피라미드 관계가 명백히 잘못된 구조였으며, 이 같은 상황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라는 인류의 최대 참사를 불러왔다”면서 “이해관계자 모두가 지속적인 안전개선의 추구를 공통의 목표로 삼고 제도적(규제) 측면의 결함에 대한 문제제기와 서로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안전성 확보 체계를 강화해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韓‧美‧日 전문가, 미래의 안전 패러다임 모색
한편 국내외 원자력 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한 이날 심포지엄은 ‘주요 안전이슈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주제로 전문가 발표와 토론을 통해 국내외 원전의 안전이슈와 안전성 증진 결과 등을 조명하고 국민의 안심이라는 원자력계 과제와 향후 방향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이날 심포지엄에 연사로 나선 장순흥 한동대 총장은 원자력발전은 전기 에너지원 중 환경영향이 가장 적으며, 안전관리를 철저히 하면 지속가능한 발전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민이 우려하고 있는 지진과 관련해 한국은 규모 7.0이상의 지진 발생가능성은 낮으며, 가동원전을 대상으로 수행하고 있는 스트레스테스트 결과와 같이 현재의 원전 내진 설계기준은 안전에 문제가 없을 정도라고 밝혔다.
이어 손명선 원자력안전위원회 안전정책과장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주요 원자력안전 정책 및 제도 개선내용을 소개하고 제2차 원자력안전종합계획(2017~2021년)을 통해 원전사업자 역할을 강화하고 규제역량을 높이는 등 원전에 대한 엄정한 안전관리를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주제발표에서는 원자력 안전을 위한 다양한 내용들이 발표됐다. 미국, 일본, 한국의 안전문화 및 원자력학계, 의과대학 교수, 원전 운영회사 전문가 등이 극한재해 대비 안전성 확보 방안, 운영인력의 역량과 안전문화 향상 트렌드, 후쿠시마사고 이후 일본 정책과 주민 건강영향 평가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원자력·항공 안전문화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나지메딘 메시카티(Najimedin Meshkati)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 교수는 원전운영에서 인적역량과 안전문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원전의 안전 운영뿐만 아니라 복합적인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비상상황 대처능력도 안전문화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고 밝혔다.
또 켄슈케 요시하라(Kensuke Yoshihara) 일본 간사이전력 안전처장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에서는 새로운 안전기준에 따라 안전조치가 진행됐고 이후 원전제로 정책이 페기돼 원전을 재가동한 현황 등을 설명했다.
일본 방사선재해 의료전문가인 아츠시 쿠마가이(Atsushi Kumagai) 후쿠시마 의과대학 교수는 ‘후쿠시마 사고이후 거주자 건강 영향 평가’를 발표하여 일본의 방사선 수치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의 전문가로 참석한 정범진 경희대 교수(원자력공학과)는 지난 2월 한국이 전세계에서 8번째로 ‘원전 누적운전(Reactor-year) 500년’을 달성한 성과를 발표하며 향후 지속적인 원자력 기술의 발전을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과제를 제시했다.
주제발표에 이어 박윤원 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과 조홍섭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등이 참여한 패널토론에서는 ‘자연재해와 원자력안전’의 관점에서 세계 원자력의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과제와 향후 방향이 제시됐고 원자력안전이라는 공감대 확산을 위한 다양한 의견이 논의됐다.
이날 심포지엄에 참관했던 원자력계 복수의 관계자들은 “사고 초반부터 바닷물이라도 부어 원자로를 냉각하는데 중점을 뒀다면 원전의 수소폭발과 같은 사고는 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결국 동경전력이 서른 시간 가량을 헛되이 보낸 것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 관계자들은 “3대 중대사고의 공통점은 취약한 안전문화였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제는 사람에 대한 투자, 결국 안전문화에 대한 연구와 투자가 더 깊이있게 다뤄져야 할 것”이라면서 “원자력안전도 결국은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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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개요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중대사고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국의 스리마일아일랜드 원전사고,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 그리고 최근에 발생한 일본의 후쿠시마(Fukushima)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여기에서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중대사고를 중심으로 사고의 원인과 전개과정, 그리고 사고의 영향과 교훈을 살펴보기로 한다[1]].
원자력발전소 개요와 사고 전 운전조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Fukushima Daiichi 원전)는 후쿠시마현 후타바군 오오쿠마쵸와 후타바쵸에 위치하고 있으며, 6기의 비등형경수로가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1~3호기는 정격출력으로 정상운전 중이었고, 4~6호기는 정기검사로 핵연료가 원자로에서 인출되었거나(4호기) 장전이 완료된(5호기 및 6호기) 상태였다. 4호기는 대규모 보수공사 관계로 원자로 압력용기 안에 있던 핵연료가 모두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에 이송되었으며,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에는 6,375개의 사용후핵연료가 저장되어 있었다. 아래 표는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현황을 요약하고 있다.
사고의 발생과 진행
2011년 3월 11일 14시 46분 동경 북동쪽으로 370km에 위치한 도호쿠(東北) 지방 부근 해저에서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하였다. 진앙지로부터 150km 거리의 해변에 위치하고 있는 후쿠시마 제1발전소는 매우 높은 강도의 지진이 감지되어 운전중인 발전소 3기가 모두 자동으로 정지되었다(14시 46분). 지진의 발생에 따른 원자로의 자동정지는 정상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으나, 문제는 후쿠시마 제1발전소 인근의 송전 철탑 등이 심각한 손상을 받아 발전소가 소외전원을 공급받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진 발생 약 52분 후(15시 38분) 후쿠시마 제1발전소에 14~15m 높이의 쓰나미(Tsunami, 지진해일)가 도달하였다. 이렇게 높은 쓰나미는 부지고(높이)가 10m인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모든 발전소 건물을 약 4~5m 깊이로 침수시켰다. 침수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보조건물의 낮은 위치에 설치된 비상디젤발전기, 무정전설비와 배전반이 침수됨으로써 발전소에 비상전원을 공급할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되었다(15시 42분). 발전소의 소내・외 전원이 모두 상실한 발전소의 전원 완전상실(Station Blackout)로 분류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 1~4호기가 소외 전력망과 비상전원(디젤발전기, 배터리)의 사용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운전원은 임시 배터리를 주제어실에 설치하고 최소한의 발전소 상황파악과 제어를 시도하였다. 또한 사고 후 10여일 만에 발전소로 공급되는 송전망과 연결되었으나 발전소 전력계통의 심각한 손상으로 장기간 전원공급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에 따라 발전차를 이용하여 임시 전원을 사용하였고, 1~4호기의 비상냉각을 위한 냉각수는 소방차를 이용하여 주입하였다. 5호기와 6호기의 경우 쓰나미에 의한 피해가 상대적으로 약하였고, 이들 호기가 공용으로 사용하는 1대의 비상디젤발전기가 운전가능하였기 때문에 전원 공급으로 최소한의 운전이 가능한 상태였다. 또한 3월 25일 이후 발전소로 소외전원을 공급함으로써 신속하게 안정화되었다.
수소폭발에 의한 원자로건물 파손
후쿠시마 제1발전소 1~3호기는 지진발생 전 정격출력으로 운전중에 있었기 때문에 원자로정지 후 다량의 붕괴열이 발생하는 상태임에도 전원상실로 냉각수의 주입이 불가능함에 따라 원자로의 핵연료가 적절하게 냉각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노심에서 냉각수가 증발하고 노심이 노출(고온에서 핵연료 용융으로 진전)되면서 다량의 증기와 수소가 발생하여 격납용기 내부의 압력을 증가시켰다. 압력이 증가하면 격납용기가 파손될 우려가 있어 1호기의 경우 제일 먼저 증기방출을 실시하였다.
증기가 격납용기 밖으로 방출되면 원자로건물 내부를 거쳐 외부로 방출하게 되는데, 방출되는 증기에 수소가 섞여 있었고 수소가 원자로건물의 상부에 모여서 일정농도 이상에 이르게 되었다. 대기압 하에서 수소체적이 약 4%를 넘으면 연소가 일어나고 약 15%를 넘으면 폭발이 일어나게 된다. 2011년 3월 12일 15시 36분 1호기 수소폭발로 원자로건물 상부가 파괴되었다. 또한 3호기는 3월 14일 11시 1분 수소폭발을 일으켜 원자로건물이 심하게 파손되었고, 2호기는 3월 15일 6시 10분 수소폭발을 일으켜 격납용기 아래쪽이 파손되었다.
비상대응과 사고수습
일본 정부는 3월 11일 19시 3분에 방사선비상을 선포하고, 21시 23분부터 발전소에서 반경 3km 지역의 주민에 대한 소개(Evacuation)를 시작하였으며 10km 이내의 주민에 대하여 옥내 대피하도록 하였다. 3월 12일 5시 44분에는 10km 반경의 주민에 대한 소개가 시작되었으며, 18시 25분에 소개 지역을 20km, 그리고 3월 25일에 30km로 확장하였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 1~3호기 수소폭발 이후 더 이상의 노심손상을 막기 위해 해수 주입이 결정되고, 소방설비를 이용해서 해수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해수의 주입은 소금이 축적되면서 노심의 유로를 막거나 주입하는 노즐을 막을 우려가 있으며, 부식성이 강해 기기나 구조물의 건전성 저하를 야기할 수 있다. 사고 초기 담수공급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해수를 주입하였으나, 이후에는 담수를 자위대 보급선과 미군 바지선 등으로 공급받으면서 담수주입으로 전환하였다.
2011년 3월 말부터 외부전력 복구 작업이 순차적으로 완료되면서 엔진을 이용해서 펌프를 가동하던 방식을 전동모터를 이용한 펌프가동으로 전환하여 냉각수를 주입하였다. 사고 초기 원자로와 격납용기로 주입된 냉각수가 발전소 건물 하부에 모여 해양 등의 환경으로 방출되었으나, 사고 수습이 진행되면서 주입된 냉각수를 다시 정화하고 냉각하여 재순환하는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
사고의 교훈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지금까지 지진, 쓰나미, 홍수, 태풍 등의 외부사건에 대응할 수 있도록 발전소를 설계하고 운영하여 왔으나 예상을 초월하는 외부사건의 가능성과 이로 인한 대형사고로의 진전을 현실적으로 보여준 사고이다. 또한 지금까지 단일 발전소의 대형사고와는 달리 동일한 위치에서 다수 호기가 공통원인에 의하여 동시에 대형사고를 야기하였다는 점에서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으며, 원자력안전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사고 발생과 전개, 수습과정을 통하여 안전과 관련된 현안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외부사건에 대응할 수 있는 발전소의 설계
중대사고의 예방과 완화를 위한 발전소의 안전설계 및 운영
전원완전상실 등의 비상상황에서의 소외 대응체계
심각한 사고 상황에서의 비상대책
동일부지에 다수호기 운전 안전성
중대사고 상황에서의 사용후핵연료 냉각
중대사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발전소 운전원의 교육・훈련
방사성물질의 방출을 초래하는 사고 후의 방사능 감시
비상상황에서 대중에 대한 방사선방호
비상상황에서의 의사소통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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