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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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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19

애가 · 1 너는 이스라엘 고관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 2 부르라 네 어머니는 무엇이냐 암사자라 그가 사자들 가운데에 엎드려 젊은 사자 중에서 그 새끼를 기르는데 · 3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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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2/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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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7/21/(화) “에스겔 19:1-14″/ 작성: 이영란

2009년 7월 21일, 화요일 <본문> 에스겔 19장 1-14절 / 찬송가: 364장(새338장) 다윗의 바른 통치로 인해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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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4/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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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화려했으나 끝은 비참하리라 (에스겔 19장) – 당당뉴스

0. 에스겔 19장 메시지요약. 화려하게 출발했던 다윗 왕조가 영원한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비참하게 멸망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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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angdangnews.com

Date Published: 5/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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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19장에 숨은 메시지 – 다음블로그

에스겔 19장에 숨은 메시지 겔19 :1~14 출처 ◈ 이사야 ◈ 예레미야, 애가 ◈ 에스겔 에스겔 19장에서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슬픈 노래를 지어 부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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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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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19: 성경 – 구약 성서 – Wordproject

장 19. 너는 이스라엘 방백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2 부르기를 네 어미는 무엇이냐 암사자라 그가 사자들 가운데 엎드리어 젊은 사자 중에서 그 새끼를 기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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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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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19장 – 교사용]

에스겔 19장. 1. 애가는 슬픈 노래다. 방백들을 위해서 슬픈 노래를 지으라는 것은 방백들이 이런 슬픔을 당하게 된다는 뜻이다. 본문의 방백은 실제로는 당시의 왕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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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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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튜 헨리 주석, 에스겔 19장 – HANGL NOCR – 한글 신기관

19:1 왕가의 몰락(1) (에스겔 19:1-9) Ⅰ. 왕가의 몰락을 통애하라는 명령이 예언자에게 내렸다. 이 왕가는 오랫동안 다윗과 그의 혈통과 맺은 왕권의 언약의 덕택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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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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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에스겔 19장 주석

에스겔 19장 주석. =====19:1. 이스라엘 방백들 – ‘방백’의 히브리어 ‘나시'(* )는 ‘높은 지위의 사람’,. ‘지도자’, ‘통치자’ 등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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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ntiochministry.tistory.com

Date Published: 2/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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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에스겔 19 장

  •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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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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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19

애가

1 너는 이스라엘 고관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2 부르라 네 어머니는 무엇이냐 암사자라 그가 사자들 가운데에 엎드려 젊은 사자 중에서 그 새끼를 기르는데

3 그 새끼 하나를 키우매 젊은 사자가 되어 먹이 물어뜯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매

4 이방이 듣고 함정으로 그를 잡아 갈고리로 꿰어 끌고 애굽 땅으로 간지라

5 암사자가 기다리다가 소망이 끊어진 줄을 알고 그 새끼 하나를 또 골라 젊은 사자로 키웠더니

6 젊은 사자가 되매 여러 사자 가운데에 왕래하며 먹이 물어뜯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며

7 1)그의 궁궐들을 헐고 성읍들을 부수니 그 우는 소리로 말미암아 땅과 그 안에 가득한 것이 황폐한지라

8 이방이 포위하고 있는 지방에서 그를 치러 와서 그의 위에 그물을 치고 함정에 잡아

9 우리에 넣고 갈고리를 꿰어 끌고 바벨론 왕에게 이르렀나니 그를 옥에 가두어 그 소리가 다시 이스라엘 산에 들리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10 네 피의 어머니는 물 가에 심겨진 포도나무 같아서 물이 많으므로 열매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며

11 그 가지들은 강하여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될 만한데 그 하나의 키가 굵은 가지 가운데에서 높았으며 많은 가지 가운데에서 뛰어나 보이다가

12 분노 중에 뽑혀서 땅에 던짐을 당하매 그 열매는 동풍에 마르고 그 강한 가지들은 꺾이고 말라 불에 탔더니

13 이제는 광야, 메마르고 가물이 든 땅에 심어진 바 되고

14 불이 그 가지 중 하나에서부터 나와 그 열매를 태우니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될 만한 강한 가지가 없도다 하라 이것이 애가라 후에도 애가가 되리라

2009/7/21/(화) “에스겔 19:1-14″/ 작성: 이영란

2009년 7월 21일, 화요일

<본문> 에스겔 19장 1-14절 / 찬송가: 364장(새338장)

다윗의 바른 통치로 인해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큰 번영과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후손들은 다윗이 걸었던 길에서 떠나 악을 행함으로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습니다. 악한 왕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가는 동시에 왕위에서 뽑혀 다시는 그 위에 앉지 못한다는 예언의 내용을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애가로 지어 부르게 하셨습니다.

암사자와 그 새끼들(1-9절), 그리고 포도나무와 그 가지들(10-14절)이 등장합니다. 두 가지 모두 유다 왕조에 대한 이미지입니다. 첫 이미지는 새끼들을 낳은 어미 사자에 관한 것입니다. 어미 사자는 그 중에서 나머지의 우두머리가 될 만한 새끼 사자를 하나 선택합니다. 그 새끼는 사자처럼 행동하면서 먹이를 찢고 심지어 사람들을 삼킵니다(3절). 그 결과 그 사자는 열방의 사냥감이 되고 결국 잡혀서 애굽으로 끌려가게 됩니다(4절). 끌려간 사자를 대신하여 어미 사자는 두 번째 사자를 지명합니다. 그런데 그 사자는 더 파괴적으로 행동함으로 젖과 꿀이 흐르던 땅은 황폐해지고 말았습니다(6-7절). 그 결과 젊은 사자 역시 열방의 사냥감이 되었고, 이번에는 바벨론의 포로로 처참하게 끌려갑니다(9절).

두 번째 이미지에서 포도나무가 등장합니다. 포도나무는 물이 풍성한 포도원에 심겨집니다. 생명을 위한 완벽한 조건이 제공된 포도나무는 실과를 많이 맺게 되며, 특별히 건강한 가지는 통치자의 홀에 적합하게 성장합니다. 높이 치솟을 만큼 자라지만 그 가지는 교만해져서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키 큰 나무의 뿌리는 뽑혀지고, 동풍에 마르고, 열매가 떨어졌습니다(12절). 건강한 가지들은 불에 타고 물이 풍성한 곳에 심겨졌던 포도나무는 메마르고 가물은 땅에 심겨집니다(13절). 파멸의 불이 그 가지들 중 하나에서 나와서 그 실과를 태웁니다. 그 결과 건강한 가지들도 통치자의 홀에 적합한 가지가 되지 못했습니다(14절).

포도나무는 유다를 의미합니다. 결국 유다는 시드기야 왕을 마지막으로 멸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완벽한 조건 가운데 포도나무를 심으셨습니다. 많은 통치자들이 포도나무 줄기에서 나왔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꼭 붙잡고 계신 분을 멀리하고 그 분의 뜻을 따르지 않고 거만함으로 결국 멸망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 결과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포도나무의 뿌리를 뽑고 마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다를 약속의 땅 밖으로, 포로의 광야에 다시 심으셨습니다.

마땅히 공의로 다스려야 할 권력을 남용하고 부도덕적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던 사람들은 옛 통치자들만이 아닙니다. 현재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지 돌아봄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우리가 건강하고 순수하다고 평가를 내리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우리가 건강하고 깨끗하다는 평가를 내리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악취 나고 피투성이인 우리를 영원히 깨끗케 하시기 위해 주님께서 죽으셨습니다. 주님을 알고 있는 우리는 우리가 깨끗한 존재가 되었다고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죽으심을 삶으로 살아내는 사람만이 거룩하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을 주님께 칭찬받을 수 있을 때에 그 날들이 모여 우리의 모든 날들은 주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깨끗하다는 최종 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교만하지 않고, 자만하지 않고, 겸손히 진실하게 살아가는 하루 되게 하옵소서. 그 하루 하루가 모여 우리의 일생 마치는 날 주님께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듣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시작은 화려했으나 끝은 비참하리라 (에스겔 19장)

[김명섭목사의 말씀학교] 시작은 화려했으나 끝은 비참하리라 (에스겔 19장) 0. 에스겔 19장 메시지요약 화려하게 출발했던 다윗 왕조가 영원한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비참하게 멸망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의 왕족들을 위한 애가(슬픈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하신다. 남유다를 멸망으로 이끌었던 네 명의 왕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의 비참한 최후를 은유적으로 노래한다. 시작은 화려했으나 그 끝은 처참하게 몰락한 남유다 왕조를 물가에 심겨진 견실한 포도나무의 가지와 실과들이 흔적조차 없이 메말라 사라지는 모습에 비유한다. 이스라엘 왕권은 영광의 찬가로 시작했지만 최후의 모습은 슬픔의 애가로 끝나버렸다. 찬가가 애가로 바뀐 이유가 무엇일까? 에스겔은 애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명을 망각한 지도자들의 슬픈 최후를 경고하며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는 지도자들의 비극적인 말로를 노래한다. * 동영상 1. 귀족들을 위한 애가 ① (1절) “너는 이스라엘 방백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 왜 에스겔에게 슬픈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하셨나? 말로 해서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니까, 환상으로도 보여주시고, 그것마저 깨닫지 못하니까 이제 노래를 통해서라도 이해하고, 돌아오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배려와 끊임없는 사랑을 전한다. ▶ 이스라엘 방백은 누구인가? 방백은 이스라엘의 통치자와 지도자를 가리킨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왕의 자손들, 왕족, 일명 로열패밀리들이다. 이스라엘의 멸망의 가장 큰 원인은 자신의 사명을 망각한 지도자들 탓이다. 귀한 직분과 권한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지 못하는 지도자들의 비참한 운명을 노래한다. ▶ 왜 찬가가 아니라 애가인가? 본래 이스라엘 나라와 다윗의 후손들인 왕족들에게 예비 된 운명은 하나님의 축복 안에 누리는 영광의 찬가였다.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함으로 저주받은 슬픈 운명이 되고 말았다. 본래 성직(감독, 목사, 장로)은 거룩하지만 그 성직에 합당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도리어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2. 사자들의 슬픈 운명 ①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이끌었던 네 명의 마지막 왕들(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의 최후는 참으로 비참했다. 노래가사 속에 담긴 뜻을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 ‘요시야 왕’은 ‘므깃도 전투’에서 애굽에 대항하다가 전사한다. 그후 ‘하무달’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세웠으나 애굽왕 느고에 의해서 폐위된다. 애굽은 요시아왕의 또 다른 혈통인 ‘스비다’에게서 낳은 아들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우고 속국으로 삼는다. 이때 ‘갈그미스 전투’로 애굽이 패전하고 바벨론이 근동의 패권을 장악한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1차 침공으로 ‘여호야김’은 폐위되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을 세운다. 바벨론의 2차 침공으로 ‘여호야긴’은 폐위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요시야왕의 또 다른 아들(하무달과의 사이에서 낳은 여호아하스의 형제)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운다. 바벨론의 3차 침공으로 시드기야는 죽임을 당하고 남유다왕국과 예루살렘성은 완전히 멸망한다. ② (2절~4절) “네 어미는 무엇이냐 암사자라…이방이 듣고 함정으로 그를 잡아 갈고리로 꿰어끌고 애굽으로 간지라” (5절~9절) “또 취하여 젊은 사자가 되게 하니…갈고리로 꿰고 철롱에 넣어 끌고 바벨론 왕에게 이르렀나니” ▶ 사자(Lion)은 왕권을 상징한다. 첫 번째 노래는 이스라엘을 멸망으로 이끌었던 네 명의 왕들을 기록한다. 2절~4절에 등장하는 ‘애굽으로 끌려가는 사자’는 애굽왕 느고에게 패위되어 애굽으로 끌려간 ‘여호아하스’를 가리킨다. 이어서 5절~9절에 등장하는 ‘바벨론으로 잡혀가는 사자’는 느브갓네살에게 잡혀간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를 가리킨다. 노래 말 속에는 이스라엘을 최후의 멸망으로 이끌었던 네 명의 왕들(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에 관한 역사적인 사실을 담고 있다. ③ 강력한 사자의 혈통이 멸망한 이유는 무엇인가? 방백(지도자들)의 잘못이다. 첫째 이유가 (3절) “식물 움키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매”, (왕하24:19)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의 보시기에 악을 행함이라” 자기를 왕세우신 참된 이스라엘의 왕 되신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을 숭배했다. 둘째 이유가 (7절) “그의 궁실들을 헐고 성읍들을 훼파하니 그 우는 소리로 인하여 당과 그 가득한 것이 황무한 지라”, (왕하24:3~4) “또 저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그 피로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 나라와 백성을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치리하는 본래적인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악행을 행했기 때문이다. 3. 끝이 아름다운 인생 ① (10절~11절)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많은 가지 가운데 뛰어나 보이다가” ▶ 시작은 화려했으나 끝이 초라한 인생들을 본다. 최고의 환경에서 최악의 선택을 한 아담과 최악의 환경에서 최고의 선택을 한 요셉이 대비된다. 좋은 환경과 타고난 여건에도 불구하고 끝이 무너진 대표적인 인물이 야곱의 축복에 등장하는 장자 르우벤이다. (창49:3~4)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야곱의 12아들 중에 축복의 후계자는 본래 장자인 루우벤이었다. 하지만 그는 장자의 권한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해서 축복의 후계자가 되지 못했다. 끝이 아름다운 인생이 되어야 하는데 시작은 좋은데 끝이 나쁜 용두사미가 되어버리는 이유는 뭘까? ② (12절) “분노 중에 뽑혀서 땅에 던짐을 당하매 그 실과는 동풍에 마르고 그 견강한 가지들은 꺾이고 말라 불에 탓더니” ▶ 포도나무가 건실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건실함에 있었던 게 아니다. 물가에서 뽑혀진 포도나무의 운명은 한낱 부지깽이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떠난 운명, 하나님을 떠난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다. 자신을 축복하신 하나님을 저버리면 영광과 축복이 오래가지 못하고 도리어 독이 된다. 오래전 출애굽과 광야를 거쳐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이미 경고하셨다. (신8:11~20) “네가 먹어서 베풀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③ (13절) “이제는 광야, 메마르고 가물이 든 땅에 심긴바 되고” ▶ 전에는 물가에 심겨진 견실한 포도나무가 한낱 메마른 가지가 된 까닭은 무엇인가? 자기를 축복하신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저버린 까닭이다. 청지기라는 사실을 잃어버리면 이와 같은 결과에 이르게 된다. 힘주시고 물질주시고 권능을 주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린 결과다.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나라의 운명에 대한 영원한 축복과 준엄한 경고를 동시에 말씀하셨다. (왕상 9:4~9)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과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만일 너희나 너희 자손이 아주 돌이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네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숭배하면…” (14절) “권세 잡은 자의 홀이 될만한 견강한 가지가 없도다 이것이 애가라 후에도 애가가 되리라” ▶ 에스겔은 예언은 역설적이다. 이스라엘 나라가 다시 회복될 수 없다는 영원한 저주가 아니라 도리어 참된 회복의 길을 강력하게 증거 한다. 다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다시 잃어버린 은혜를 회복하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이키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냉수 한 그릇

◈에스겔 19장에 숨은 메시지 겔19 :1~14 출처

에스겔 19장에서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슬픈 노래를 지어 부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애가를 지어 부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왕들이 제대로 정치를 못해 왕과 나라가 망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14절 후반에 보면 “ 이것이 애가라. 후에도 애가가 되리라”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지어 부르라는 애가는 장송가(funeral dirge)입니다.

그런데 에스겔 19장의 애가는 일반적인 장송가와 두 가지가 다릅니다.

첫째, 사람이 죽은 후에 부르는 장송가는

보통 그 사람의 나쁜 점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훌륭한 점을 기억하며 노래를 부릅니다.

그런데 에스겔 19장의 애가는 유다의 마지막 왕들의 나쁜 점만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잘 한 점은 하나도 없습니다.

둘째, 일반적인 장송가는 사람이 죽은 후에 부르지만,

에스겔 19장의 애가는 유다 왕국이 완벽히 죽기 전에 부르라는 것입니다.

죽지도 않았는데 장송가를 부르라는 말입니다.

에스겔 18장에서 하나님이 너희가 망하고 죽는 것은 너희 조상죄 때문이 아니라

너희 죄 때문이니 돌이켜 회개하고, 완전히 망하는 일이 없게 하라고 했음에도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경고를 업신여기고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멸망을 자초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애가가 나오고 멸망한 것은 칠 년의 간격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죽은 목숨과 마찬가지이므로 장송가를 지어 부르라는 것입니다.

에스겔의 애가는 두 이미지를 사용해서 작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는 <사자새끼>입니다.

-또 하나는 <포도나무>입니다.

▲우리에게는 사자새끼와 포도나무는 아무런 감각이 없고 느낌이 없습니다만

유다 백성에게는 ‘사자새끼’와 ‘포도나무’는 매우 친숙한 이미지입니다.

그 이유는 창세기 49장에 야곱이 넷째 아들 유다를 축복할 때

‘사자새끼’와 ‘포도나무’의 이미지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열두 아들과 딸 하나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147세에 죽었습니다.

애굽에 건너 올 때가 130세이고,

애굽에 건너 와서 요셉으로 말미암아 17년을 살았습니다.

147세가 되어 열두 아들을 축복합니다. 이것이 창세기 49장에 기록되었습니다.

창세기 49:8~12절까지는,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를 향해 축복의 예언이 나와 있죠.

야곱이 유다를 축복하는 것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첫째 부분은 <사자새끼>의 축복이고, 둘째 부분은 <포도나무>의 축복입니다.

<사자새끼의 축복>은 하나님이 유다 지파에게 왕권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왕의 지팡이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게 되면 유다 지파에서 왕이 모두 나왔습니다.

남유다의 왕들은 유다 지파에 속한 다윗의 속한 후손들이 모두 왕이 되었죠.

<포도나무의 축복>은 포도나무가 열매를 너무 많이 맺어 사람들이 실컷 먹고,

또 포도즙을 짰는데 포도주가 너무 많아 이 포도주로 옷을 빨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빨랫물로 쓸 정도로 풍성하게 남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이 유다에게 모든 백성이 너에게 복종할 것이고,

번영과 풍요와 기쁨과 평화를 축복으로 받게 될 것이라는 축복을 한 것입니다.

◑에스겔 19장 애가

창세기 49장부터 시작하여 에스겔 19장에 오니깐

원래 축복과는 다른 현실이 되었습니다.

‘사자새끼’는 모두 포로가 되었고, ‘포도나무’는 모두 뽑히게 되었습니다.

이 예언은 유다 역사의 마지막 부분, 즉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에

네 왕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예언입니다.

남 왕국에는 이십 명의 왕이 있었습니다. 그 중 16번째 왕은 요시야였습니다.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요시야 왕은 산당을 모두 제하고, 우상을 파괴하고,

구약 시대의 종교 개혁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요시야는 아들 셋을 두었는데, 모두 못된 아들이었습니다.

요시야의 세 아들이 유다 역사에 마지막 왕이 되면서

유다 역사는 패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여호아하스는 3개월을 통치하였고,

여호야김은 11년을 통치하였고,

여호야긴은 3개월을 통치했고,

시드기야는 11년 동안을 통치했습니다.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시드기야는 요시야의 아들이고

여호야긴은 여호야김의 아들, 요시야의 손자입니다.

네 왕이 못된 왕이 되어

유다 왕국은 B. C 587년 바벨론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19 :2절, “ 부르기를 네 어미는 무엇이냐 암사자 라.

그가 사자(열방)들 가운데 엎드리어 젊은 사자 중에서 그 새끼를 기르는데”

여기서 ‘암사자’는 누구를 가리킵니까?

침례교의 유명한 존 길(John Gill) 목사는,

암사자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백성 전체가 사자들 가운데 엎드러져 있습니다.

사자는 열방국가를 말합니다.

열방국가들 사이에 이스라엘이 엎드리면서, 젊은 사자새끼들을 기릅니다.

▲ 19 :3~4 <여호아하스>

“그 새끼 하나를 키우매 젊은 사자 가 되어,

식물 움키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매

이방이 듣고 함정으로 그를 잡아 갈고리로 꿰어 끌고 애굽 땅으로 간지라”

이스라엘이 젊은 사자새끼를 키웠는데

그 사자새끼는 17대 왕 여호아하스 왕인 것입니다.

요시야 왕의 둘째 아들인 여호아하스가, 형님보다 먼저 왕이 되었습니다.

이 여호아하스는 그만 폭정과 악정을 행했습니다.

사람을 살리라고 왕을 세웠더니 사람을 삼켜버린 것입니다.

고통을 주는 왕이 되어 애굽 왕 바롯느고가 와서 여호아하스 잡아

애굽으로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 19 :5 <여호야김>

“암사자가 기다리다가 소망이 끊어진 줄을 알고

그 새끼 하나를 또 취하여 젊은 사자가 되게 하니”

두 번째 젊은 사자(cub)가 또 나옵니다.

미국에 여러 야구팀 중 시카고 커브스(Chicago Cubs)가 있습니다.

시카고 커브스는 시카고의 사자새끼라는 뜻입니다.

두 번째 사자에 대해서 학자들은 여러 의견을 냅니다만,

두 번째 사자는 여호야김인 것이 분명합니다.

여호야김은 요시야 왕의 첫째 아들입니다.

그런데 둘째인 여호아하스에게 왕위에서 밀렸습니다.

맏아들인 여호야김은 아우에게 왕위를 밀릴 정도로 변변치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똑똑하지 못한 인물이었습니다.

사람이 똑똑하지 못하면 착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여호야김은 똑똑 치도 못하고, 착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당시 국제 정세가 변하는 것입니다.

국제 정세가 변하면, 어느 줄에 서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애굽이 중동 지방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다가

바벨론이 애굽을 치고 중동 지방의 패권을 바벨론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B. C 605년 갈그미스 전투).

19 :6~7 ‘그가 사자들 가운데서 어울리며, 젊은 사자가 되었다.

그가 사냥하는 것을 배워, 사람을 잡아 먹으며 그들의 거처를 모두 파괴하니,

성읍들이 황량해지고 그의 으르렁대는 소리에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이 황폐해졌다.’

여호야김이 국민들에게 중과세를 하고, 폭정을 저질렀다는 뜻입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야김에게

바벨론에 조공을 드리고, 복종해야 살 수 있다고 예언을 했습니다만,

하나님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칼로 잘라 불에 던져버렸습니다.

똑똑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의 말씀도 듣지 않은 것입니다.

여호야김은 애굽에게 조공을 바치기 위해서 백성에게 세금을 강요했습니다.

그리하여 백성은 도시를 떠나 영락한 처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호야김은 애굽과 손잡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몇 해 전에 애굽은 요시야를 죽였기 때문입니다.

여호아하스를 포로로 잡아간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은, 애굽 편이었습니다.

쉽게 바벨론 편으로 돌아설 수 없었습니다.

여호야김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무시한 것이, 그의 결정적 실수였습니다.

그래서 계속 친 애굽 정책을 펼쳐나간 것이, 더 큰 화를 불러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호야김은 똑똑하지 않은 자이며, 착하지도 않은 자였습니다.

역대하 36장 6절입니다. “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와서 치고

저(여호야김)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아래구절도 역시 여호야김에 대한 애가 입니다

19 :8~9 “이방이 둘려 있는 지방에서 그를 치러 와서 그의 위에 그물을 치고

함정에 잡아 갈고리로 꿰고 철롱에 넣어 끌고 바벨론 왕에게 이르렀나니

그를 옥에 가두어서 그 소리로 다시 이스라엘 산에 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여호야김의 최후는 성경에 알려진 바 없습니다.

다만 아래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되었으리라고 추측합니다.

렘22:19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 밖에 던져지고 나귀 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

▲이렇게 되자 마지막으로 <시드기야>가 등잡합니다.

19 :10 “네 피의 어미는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

물이 많으므로 실과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며”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포도나무인 이스라엘은 실과가 많고, 가지가 무성합니다.

그런데 이 포도나무 에서 견강한 가지 하나 가 나왔습니다.

견강한 (견고하고 강한) 한 가지는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입니다.

앞서 겔 17 :6절에서도 ‘포도나무’는 시드기야를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본문 12절에 보면 이 견강한 가지가

분노 중에 뽑혀 버렸습니다.

그리고 동풍은 동쪽에서 온 바벨론 왕을 말합니다.

‘분노 중에 뽑혀서 땅에 던짐을 당하매 그 열매는 동풍에 마르고

그 강한 가지들은 꺾이고 말라 불에 탔더니..’ 19 :12

바벨론 왕은 11년 통치하던 시드기야를 잡아서 두 눈을 뽑아 버리고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시드기야가 왜 망했습니까? 본문 14절에 보면

가지에서 불이 나와 포도나무를 살라버리고 말았습니다.

멸망을 자초한 것입니다.

바벨론에 항복하지 않고 대항하다가 화를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B. C 587년 바벨론의 3차 침공에 의해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권세 잡을 만한 견강한 가지가 더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에스겔 19장의 숨겨진 메시지 – 여호야긴

에스겔 19장에는 라인 사이에 기록된 메시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책에 기록된 줄 사이에서 (행간을 읽는다고 말을 하지요)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읽어야 합니다.

에스겔 19장에서 사자새끼도 망하고 포도나무도 망했으면

창세기 49장에서 하나님이 유다를 축복하신 축복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거짓말이라는 것입니까?

어떤 신학자는, 창 49장은 조건적인 축복인데

이스라엘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아, 무효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창세기 49장을 보면 어떤 조건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축복입니다.

▲그런데 에스겔 19장을 잘 보면 언급하지 않은 한 사람 이 있습니다.

바로 요시야 손자,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 왕입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3개월 왕 노릇 하다가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여호야긴은 바벨론에서 37년 동안 옥살이를 했습니다. 렘52 :31~34

바벨론도 정권이 바뀌어서 새로운 왕이 등장했습니다.

바뀐 왕이 여호야긴을 옥에서 풀어주고, 자신의 식탁에 불러 먹을 것을 주고,

평생 왕 대접을 해 주었습니다.

여호야긴은 이렇게 바벨론에서 잘 살다가 늙어 죽었습니다.

여호야긴은 다른 이름으로 ‘여고냐’, ‘고니야’라고도 합니다.

그는 에스겔 19장에 나와 있지 않으나, 열왕기, 역대기, 마1장에 나옵니다.

마태복음 1장 12절입니다.

“바벨론으로 이거 한 후에 여고냐 (여호야긴)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1차 귀환 주역)을 낳고”

여호야긴은 바벨론의 포로 되어서 장가들어서 자식을 계속 낳았습니다.

자식을 낳았는데 그 자식의 계보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했습니다.

창세기 49장에서 축복하신 것이,

에스겔 19장에서 인간이 완전히 망가뜨렸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실패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호야긴을 통해서, 그가 바벨론에서도 왕 대접을 받게 하시고,

그 가문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참된 유다 지파에서 사자가 되고,

참된 포도나무가 된 줄로 믿습니다.

▲요한계시록 5 :5절입니다.

“장로 중의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유다 지파의 사자가 이겼고, 다윗의 뿌리가 이겼다고 말합니다.

에스겔 19장에서 완전히 패배했는데, 요한계시록 5장에 가니 이겼다는 것입니다.

인간 왕은 모두 실패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실패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 (설교의 주제)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로 하나님 나라를 열어 놓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을 이기신 영생의 나라, 불의를 이긴 의의 나라,

전쟁에서 이긴 평화의 나라, 패망을 이긴 영원불멸의 나라에 왕이 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유다 지파의 사자, 참된 사자는 위대한 승리자이십니다. 패배하지 않습니다.

인간 왕(지도자)들은 모두 실패했을지라도

참된 유다 지파의 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마치는 말

이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면 부를 노래는 ‘애가’밖에 없습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1926년에 윤심덕이라는 일본 여자 유학생이 있었습니다.

국비로 유학을 갔습니다. 이 사람이 대중 가수의 효시가 되었습니다.

윤심덕이 일본에서 연애하다가 시련을 당했는지 몰라도, 애가를 지었습니다.

「사의 찬미」라는 아주 슬픈 노래입니다.

“광막한 황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는 무엇을 찾으러 왔느냐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평생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녹수청산은 변함이 없건만 우리 인생은 나날이 변한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평생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윤심덕은 이 노래를 부르고 나를 봐도 소망 없고, 너를 봐도 소망 없고,

돈과 명예를 봐도 소망이 없다 하여

1926년에 자신의 애인과 대한해협에 몸을 던졌습니다.

세상과 사람을 보면 만족함과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절망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유다 지파에 사자요,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기셨기 때문에 울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보면 소망이 없어도 예수님을 믿으면 소망이 생기고, 기쁨이 생깁니다.

현세에서도 복을 받게 되고, 내세에서도 영원한 축복의 소망을 주시고

죽었다 할지라도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소망을 주십니다.

부활해서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영생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지파에서 나온 참된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성령을 주셔서

성령으로 우리의 영혼을 인도하시고 삶을 지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유다 지파의 사자이신 예수님은 이기셨습니다 . 결코 패배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이 이기셨으니 우리도 넉넉히 이길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에게 소망을 주시는 유일한 분입니다.

세상에서 인간에게 소망을 주는 것이 있습니까? 돈과 명예가 소망을 줍니까?

사랑도 소망이 안 됩니다.

그러나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the Lion of the tribe of Jude)인 예수 그리스도,

다윗의 뿌리(the Root of David)가 이기셨으므로

우리는 울지 않고 이 땅에서 살다가, 영원한 영생의 축복에 들어갈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시시각각, 일분일초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이 이기신 것처럼 넉넉히 이기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에스겔 19: 성경

장 19

너는 이스라엘 방백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2 부르기를 네 어미는 무엇이냐 암사자라 그가 사자들 가운데 엎드리어 젊은 사자 중에서 그 새끼를 기르는데

3 그 새끼 하나를 키우매 젊은 사자가 되어 식물 움키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매

4 이방이 듣고 함정으로 그를 잡아 갈고리로 꿰어끌고 애굽 땅으로 간지라

5 암사자가 기다리다가 소망이 끊어진 줄을 알고 그 새끼 하나를 또 취하여 젊은 사자가 되게 하니

6 젊은 사자가 되매 여러 사자 가운데 왕래하며 식물 움키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며

7 그의 궁실들을 헐고 성읍들을 훼파하니 그 우는 소리로 인하여 땅과 그 가득한 것이 황무한지라

8 이방이 둘려 있는 지방에서 그를 치러 와서 그의 위에 그물을 치고 함정에 잡아

9 갈고리고 꿰고 철롱에 넣어 끌고 바벨론 왕에게 이르렀나니 그를 옥에 가두어서 그 소리로 다시 이스라엘 산에 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10 네 피의 어미는 물 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 물이 많으므로 실과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며

11 그 가지들은 견강하여 권세 잡은 자의 홀이 될만한데 그 하나의 키가 굵은 가지 가운데서 높았으며 많은 가지 가운데서 뛰어나서 보이다가

12 분노 중에 뽑혀서 땅에 던짐을 당하매 그 실과는 동풍에 마르고 그 견강한 가지들은 꺾이고 말라 불에 탔더니

13 “이제는 광야, 메마르고 가물이 든 땅에 심긴바 되고”

14 불이 그 가지 중 하나에서부터 나와서 그 실과를 태우니 권세 잡은 자의 홀이 될만한 견강한 가지가 없도다 이것이 애가라 후에도 애가가 되리라

메튜 헨리 주석, 에스겔 19장

19:1

왕가의 몰락(1) (에스겔 19:1-9)

Ⅰ. 왕가의 몰락을 통애하라는 명령이 예언자에게 내렸다. 이 왕가는 오랫동안 다윗과 그의 혈통과 맺은 왕권의 언약의 덕택으로 찬란한 모습을 유지했었다. 그러므로 그 왕가의 사향과 몰락은 “우리 하나님의 언약” 의 가치를 아는 모든 사람에 의해서 애도되는 것이 마땅하다. 다윗과 맺은 그 언약을 오래 설명한 후에(시 89:3, 20 이하), 그의 가문의 부패와 황무에 대한 애통의 말이 나온다(38, 30절). “그러나 주께서 주의 종의 언약을 미워하사 그 관을 땅에 던져 욕이 되게 하셨나이다.” 본문은 유다의 왕들을 “이스라엘의 방백들” 이라고 일컬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영광이 감퇴되어, 단지 방백들처럼 되었으며, 그들의 순수함도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왕들” 로서 부패하고 우상을 숭배하게 되었다. 예언자는 그들을 위해 “애가를 지어야” 했다. 즉, 그는 마치 자기가 그것을 마음에 간직했다가 글로 써서 전해 준 자들에게도 그렇게 하기를 바라는 자처럼, 그들의 비통한 몰락을 서술해야 했다. 또 우리 자신이 먼저 감동받지 않고서 어떻게 남들이 감동받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사역자들은, 담대히 멸망을 예언하면서도 “환란의 날을 바라지” 않은 자처럼 죄인들의 멸망을 통애해야 한다. 그는 이스라엘의 방백들에게 충고를 하라는 지시를 받지 않으나(그것은 이미 오래되었고, 또 자주 헛되이 끝났다), 그 명령이 포고되었으니, 그들을 위해 “애가를 지어야” 했다.

Ⅱ. 무슨 말을 할지에 대해 지시를 주었다.

1.

그는 유다 왕국을 “암사자” 에 비유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열방 중에 여왕으로 앉았던 이전 상태와는 비교하면 너무나 엄청나게 전락된 것이다(2절). “네 어미는 무엇이냐?” 네 어미는, 오 왕이냐?(우리는 그의 어미 백성이 그에게 씌웠던 솔로몬의 왕관을 읽을 수 있다. 아 3:11) 네 어미는, 오 유다냐? 왕가는 왕국에 대해 어미 곧 보육하는 어머니와 같다. 그녀는 사납고, 잔인하며, 굶주린 “암사자” 이다. 그들이 저들의 신성을 버렸을 때는 곧 저들의 인간성마저 잃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자” “인간도 돌아보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사자들 가운데 엎드렸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홀로 거하지 않으며, “열방과 섞여 그들의 하는 일을 배울 것이라” 고 말씀하셨다. 그녀는 “젊은 사자 중에서 그 새끼를 길렀다. 즉 당시 동방의 엉터리 임금들이 사용했던 폭군의 도를 젊은 방백들에게 가르쳤고, 그들의 머리를 때맞추어 절대 전제 권력에 대한 관념으로 채웠고, 그들은 신하들을 노예로 삼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신념을 주입시켰고, 그들의 자유와 재산이 자기들 임의대로 됨을 가르쳤다. 이처럼 “암사자는 젊은 사자 중에서 그 새끼를 길렀도다.”

2.

그는 유다 왕들을 “사자의 새끼” 에 비유해야 했다(3절). 야곱은 유다, 특히 다윗 족속을 “사자의 새끼” 에 비유해야 했다. 사자의 새끼는 강하고 외부의 원수에 대하여 담대했다(창 49:9 . “그는 늙은 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과 약속을 지켰더라면, 하나님께서도 그들에게 사자의 권능, 위엄, 지배력을 본존해 주셨을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 즉 “유다 지파의 사자” 에게서 이루어질 일이었다.

그러나 이 “사자 새끼들” 은 자신의 신하들에게 강하고 담대하며, 잔학하며, 저들의 땅과 자유를 수탈했다. 이처럼 폭정을 막아 주는 보호자이어야 할 자들에게서 두려움을 맞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렇지 않고는 굴복하지 않았을 그들에게 대해서 하나님이 잘 하신 일이다.

여기서 애도되는 것은 이렇다.

(1)

(2)

이 암사자의 새끼 중 하나인 여호아하스의 죄악과 파멸이다. 그는 “젊은 사자가 되었다” (3절). 즉 그는 왕이 되었다. 그런데 그는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기 위해서 왕이 되었다고 생각했으며, 그 자신의 야망, 탐욕, 복수 등 마음에 품고 있던 것들을 만족시켰다. 그리고 그는 곧 모든 종류의 폭정의 기술을 익혀버렸다. 그는 “식물 움키기를 배워 사람을 삼켰다” 고 했다. 그가 권력을 손에 쥐자 이전에 어떤 모양으로든 그를 거역했던 모든 사람들은 그의 원한을 샀고 그의 분노에 희생되었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느냐? 그는 폭정을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이방이 들었도다” (8절). 처음에 그는 왕관을 쓰려고 얼마나 맹렬히 달려갔는가, 어떻게 그가 의롭고 신성한 자들을 모두 짓밟았으며, 그들과의 모든 약정을 깨뜨렸는가를 열방이 들었다. 그래서 그를 위험한 이웃으로 여기고, 그를 기소하였다. “그 식물을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 그것을 치려고 여러 목자가 불려왔다” 고 했다(사 31:4). 그리고 그는 맹수로써, “함정으로 인해서 잡혔다.” 그 자신의 신하들은 감히 자기들의 자유를 수호하려고 분기할 수 없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곧 그의 폭정을 끝낼 외국 세력을 일으키사, 그를 “갈고리에 꿰어 끌고 애굽땅으로 갔다.” 여호아하스는 그리로 포로되어 갔고, 그후의 소식은 들을 수 없다.그의 후계자 여호야김이 범한 같은 범죄와 몰락이다. “유다 왕국은 얼마 동안은 여호아하스가 애굽에서 돌아오리라 기대했으나, 마침내는 실명하였다. 그래서 그 후 “그 새끼 하나를 또 취하여 젊은 사자가 되게 하였다” (5절). 그리고 그는, 그의 형의 운명을 보고 경계심을 가져 공평과 절제로 자기의 권력을 쓰거나 그의 백성의 이익을 추구하는 대신에, 그의 형의 전철을 밟았다. “그는 여러 사자 가운데 왕래하였다” (6절). 그는 자기처럼 흉악하고 광포한 자들과 이야기하며, 그들에게서 수단을 배웠다. 마치 르호보암이 경솔하고 머리가 뜨거운 젊은 사람들의 충고를 들었던 것과 같았다. 그리고 그도 곧 “식물 움키기를 배워 사람을 삼켰다” (6절). 그는 그의 신하들의 땅을 취했고, 그들에게 벌금을 물리고 투옥했으며, 강탈과 불의, 압류와 몰수, 벌금과 과료 등으로 자기 보고를 채웠으며, 자기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그는 사람들이 숨겨놓은 재산이 무엇인지, 또 그들이 쌓아놓은 보물이 어디있는지를 찾아 내는 기술을 습슥했다. 그는 그들이 “그들의 돈을” 숨겨두며, 가끔 “그들 자신” 을 숨겨두었던 “황무한 곳들” (7절)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 두 가지를 다 찾아 낼 줄을 알았다. 그리고 그의 압제에 의하여 그는 “성읍들을 훼파했다.” 그 거주민들은 하는 수 없이 온 가족이 안전한 곳으로 이사할 수밖에 없게 되어, 성안에 주민이 없게 되었다. “땅이 황무했고,” 시골 마을이 황폐하게 되었다. 또 비록 다량의 산물과 모든 좋은 것이 가득했으나, 백성들은 “그 우는 소리로 인하여” 두려워서 모두 떠나갔다. 그는 마치 사자가 숲의 모든 짐승들을 떨게 하고(암 3:8), 그의 무시무시한 표효에 의하여 그들을 놀라 엉겁결에 넘어지게 만들며, 결국 그들을 도망갈 만한 경황이 없어서 쉽사리 그의 먹이가 되게 하듯,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를 두려워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다. 그는 욱박지르고 위협하고, 크게 말하고, 백성을 협박하여 가진 것을 강탈했다. 이리하여 그는 자신의 세력을 확립한 것으로 생각했으나,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했으니, 단지 그 자신의 파멸을 재촉했을 뿐이다(8절). “이방이 이웃 지방에서 그를 치러 왔다.” 그의 거짓된 권세를 억제하려고, 동맹을 맺어 그들의 공동 안전을 모색하러 나선 것이다. 또한 “그들은 그의 머리 위에 그물을 치고,” 그를 대적할 계획을 짰다. 하나님께서 여호야김에게 아람인, 모암인, 암몬인, 그리고 갈대아인의 군대를 보내었다(왕하 24:2). 그래서 그는 “저들의 함정에 잡혔다.” “느부갓네살은 저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갔다” “느부갓네살은 저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갔다(대하 36:6). 그들은 쇠창살 안에 이 사자를 넣고, “쇠사슬로” 묶어서, “끌고 바벨론 왕에게 이르렀다” (9절).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의 소리가 다시 이스라엘 산에 들리지 않았다.” 그의 폭정은 끝났다. 그는 비록 사자와 같아서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용자들의 두려움” 이었으나, 이제는 “나귀같이 매장당하였다” (렘 22:19). 하나님의 의는, 다른 자들을 두렵게 하고 노예로 삼았던 자들 자신이 두려움을 당케 되고 노예가 되는 때에 드러난다. 또 교화를 위해 주어진 그들의 권력을 파괴를 위해 남용하여 스스로 맹수처럼 되어, 마치 “부르짖는 사자와 주린 곰들” 이 되는 때에, 하나님의 의는 인정받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자(솔로몬은 그처럼 “악한 통치자들이 가난한 백성을 압제한다” 고 말한다. 잠 28:15). 이것은 이스라엘처럼 그들의 “손을 모든 사람에게” 펼치던 자가 마침내 “모든 사람의 손을 그에게 펼치게” 하는 격이된다. 유혈을 즐기는 폭군들이 평안히 죽는 법이 별로 없다. 그들은 피를 보게 된다. 이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왔다(왜냐하면 그것은 그렇게 될 만하기 때문이다).

[스크랩] 에스겔 19장 주석

에스겔 19장 주석

=====19:1

이스라엘 방백들 – ‘방백’의 히브리어 ‘나시'(* )는 ‘높은 지위의 사람’,

‘지도자’, ‘통치자’ 등을 뜻한다. 맛소라 본문에는 이 단어가 복수형으로 되어 있으나

70인역(LXX)은 단수형으로 읽고 있다. 70인역의 독법을 따르는 학자들은(Ewald,

Hitzig) 그 단어가 시드기야 왕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맛소라 사본의 독법을 따라 ‘방백들’이 유다의 왕들 중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긴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한다(Cooke, Wycliffe, Delitzsch).

애가 – 일반적으로 애가는 슬픈 곡조의 성격을 띠는 시 형식으로 구성되는데, 위클

리프(Wycliffe)는 이에 대하여 세 박자로 된 긴 행(行)에 이어 두 박자로 된 짧은 행

이 뒤따르는 형태로 이루어진다고 진술한다(애 1장;암 5:1-3). 하나님께서 에스겔로

하여금 방백들에 대한 애가(哀歌)를 짓도록 한 것은 이들이 나라를 통치하는 고귀한

신분으로서 백성들을 다스리고 인도할 뿐만 아니라 잘 목양(牧羊)해야 함에도 불구하

고 범조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바, 범죄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교훈을 나타

내기 위함이다.

=====19:2

네 어미는 무엇이냐 – 여기에서 ‘네 어미’란 비유적인 말로서 혹자는 요시야 왕의

부인이며, 여호아하스 왕의 모친인 하무달(왕하 23:31;24:18)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나

(Herrmann, Orelli), 일반적으로는 유다 왕국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본다(Wycliffe,

Cooke, Bruce, Delitzsch, Dyer). 이와같이 한 국가 또는 지역을 ‘어미’로 묘사한 곳

은 이 외에도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시 87:5, 6;사 50:1;호 2:4, 7;4:5). 한 국가 또

는 지역이 ‘어미’로 묘사된 것은 그 국가 또는 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이 그곳에서

출생하고 안주하며 나아가서 그곳에 예속되기 때문인 것 같다.

암사자라 – 혹자는 창 49:9이나 민 23:24 등에 유다나 이스라엘에 대해 예언된 ‘암

사자’라는 말을 따른 것으로 추측한다(Plumtre). 그러나 무엇보다도 본 구절에서 유다

왕국을 ‘암사자’로 묘사한 것은 사자가 백수(百獸)의 왕으로서 강하고 용맹한 바 유다

왕국의 강함과 용맹성을 나타내기 위함이다(Wycliffe, Leale). 이와 달리 혹자는 암사

자를 잔인하고 강포한 존재로 보기도 하지만(Calvin, Plumtre) 내용상 지지받기 힘들

다. 특히 ‘암사자’란 다음에 언급되는 ‘사자들’이나 ‘젊은 사자’와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이 사자의 생산성(生産性) 또는 양육성(養育性) 등의 뜻을 함축한다.

사자들 가운데 엎드리어 – 여기에서 ‘사자들’이란 유다 왕국 주위에 거하고 있는

이방 열국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엎드리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바츠'(* )는

‘(네 다리 모두를 모으고) 쭈그리다’, ‘기대다’, ‘휴식하다’의 뜻을 지닌다. 이로 보

아 본 구절은 암사자가 다른 사자들 가운데서 편안히 거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서 유다 왕국이 이방 열국 가운데 안연히 거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칼빈

(Calvin)은 여기에서 사자가 잔인하고 무서운 존재로도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유다 왕국이 주위 이방 열국들과 마찬가지로 안일하게 타락한 상태에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 설명은 유다 왕국 말기에 국한된 것이기에 타당하지 않다.

그 새끼를 기르는데 – 여기에서 ‘그 새끼’란 여호아하스를 가리킨다(3절 참조).

=====19:3

그 새끼 하나를 키우매…삼키매 – 이는 젊은 사자의 포악성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서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악하게 행동한 것을 가리킨다(왕하 23:30-32). 특히

본 구절은 그가 동족을 학대하고 압제하며 나아가서 살해까지 한 것을 암시한다.

=====19:4

이방이 듣고…애굽 땅으로 간지라 – 여기에서 ‘이방’이란 애굽 왕 바로느고를 가

리킨다. 그는 앗수르를 치러 가는 자신을 대적하는 유다 왕 요시야를 죽이고 대신 그

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그의 후임 왕으로 옹립하였다(왕하 23:29, 30;대하 35:20-24).

그러나 유다 왕 여호아하스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살지 못하고 악하게 행하자 하나

님은 당신의 주권적인 섭리에 따라 애굽 왕 바로느고를 올라오게 하여 그를 애굽으로

사로잡아 가게 하셨다(왕하 23:31-34;대하 36:2-4).

=====19:5

그 새끼 하나를 또 취하여…되게 하니 – 본 구절에서 ‘새끼 하나’란 비유가 유다

의 어느 왕을 가리키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 되지 않는다. (1) 6-8절에 언급된

내용으로 보아 유다 왕 여호아하스를 계승하여 그 후임으로 왕이 된 여호야김을 가리

킨다(Calvin, Bruce). (2) 9절의 바벧론으로 끌려간 사실을 볼 때 여호야김 이후의 왕

여호야긴을 가리킨다(Wycliffe, Plumtre, Cooke, Dyer). 이상의 견해 중 여러 가지 정

황으로 볼 때 두 번째 견해가 옳은 것으로 보인다. 성경의 족보에서 ‘아들’이란 표현

이 ‘손자’에게도 적용되듯이 여기서도 ‘새끼’가 반드시 ‘아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19:6

젊은 사자가 되매…왕래하며 – ‘젊은 사자’로 비유된 여호야긴 왕이 권력을 잡은

후에 이방 여러 나라들과 교제하며 교류한 것을 가리킨다. 당시 국제적인 정세는 느부

갓네살 왕 휘하의 바벧론이 애굽을 패퇴시키고 근동 지방의 패자로서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왕하 24:7).

사람을 삼키며 – 여호야긴 왕이 백성에 대해 압제와 학대로 악정(惡政)을 한 것을

가리킨다(3절 참조). 열왕기 저자는 그에 대해 ‘그 부친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왕하 24:9)고 기록했다.

=====19:7

그의 궁실들을 헐고(* , 예다 알메노타우) – 이는 문자적

으로 ‘그가 그의 과부들을 알다’의 뜻이다.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크게 두 가지로 분

류된다. (1) 문자 그대로 유다 왕 여호야긴이 유다의 과부들을 범한 부정한 행위를 가

리킨다(Delitzch, Leale). (2) 사본가(寫本家)들이 성경을 옮겨 쓸 때 잘못하여 실수

한 것으로서 본 구절의 ‘과부들’은 ‘성읍들'(궁성들)로 읽혀져야 한다. ‘알다’란 ‘창

피를 주다’, ‘굴욕을 느끼게 하다’로 읽혀져야 한다. 위의 두 견해 중 전후 문맥의 흐

름에 따르면 (2)가 더 타당하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탈굼역(Targum)및 70인역(LXX)외

에 많은 영역본들(NIV, RSV, NASB)도 후자의 의미를 취하고 있다. 아마 여호야긴 왕은

자기의 정치적인 대적들을 학대하고 멸하면서 그 궁성들까지도 헐었던 것 같다.

성읍들을 훼파하니…황무한지라 – 여호야긴 왕이 백성들을 학대하고 그 거주지 성

읍들을 훼파한 학정으로 인하여 유다 땅이 황량케 됨을 암시한다. 본래 유다 땅은 ‘젖

과 꿀이 흐르는 땅'(출 3:8, 17)으로서 풍요와 안식을 누리기에 적함한 곳이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황무케 되었다는 것은 여호야긴 왕의 학정과 그로 인한 피폐함의 정

도를 잘 보여준다.

=====19:8

이방이 둘려 있는 지방에서…잡아 – ‘이방’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고임'(*

)은 복수형이다. 따라서 이는 유다 왕국 주위의 많은 이방 나라드를 가리킨다. 이들은

여호야긴을 직접 잡아서 바벧론으로 끌고간 것은 아니지만 바벧론의 세력을 등에 업고

여호야긴을 공격했던 것 같다. 사실 바벧론이 유다를 공격할 때 그 군대의 상당수를

유다 주변의 이방 나라에서 뽑았을 것이다. 본절은 이런 사실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

다. 그런데 혹자는 본절이 유다 왕국을 침입한 아람, 모압, 암몬 등의 침공 사건을(왕

하 24:2) 언급한 것이라고 주장한다(Calvin). 이것은 본장의 내용에 부합되지 않는다.

=====19:9

갈고리로 꿰고 철롱에 넣어 – ‘철롱’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수가르'(* )는

‘에워싸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동사 ‘사가르'(* )에서 나온 말로 ‘우리’를 뜻한

다. 여기서는 사냥한 짐승이나 포로된 사람을 운반하기 위해 철이나 나무로 만든 우리

를 가리킨다.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고대 앗수르의 앗술바니팔(Assurbanipal, B.C.

669-626년)의 사냥 장면을 나타낸 부조(浮彫)에는 생포된 사자르 나무틀로 만들어진

우리 안에 넣어 옮기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Cooke). 이는 ‘젊은 사자'(5, 6절)로 비

유된 여호야긴이 사냥된 짐승처럼 포로로 잡혀 바벧론 왕에게로 끌려가게 된 것을 잘

나타내 준다. 또한 포로로 잡혀가는 여호야긴의 처참성과 연약성을 엿보게 해주기도

한다.

바벧론 왕에게 이르렀나니…옥에 가두어서 – 유다 왕 여호야긴이 바벧론 포로로

잡혀간 것을 가리킨다(Wycliffe). 그는 약 석 달 동안 유다 왕으로 악하게 통치하다가

바벧론 군대의 침입으로 그 모친과 신복들과 함께 바벧론에 포로로 잡혀갔었다(왕하

24:10-16).

그 소리로…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 7절을 참조해 볼 때, 땅을 황무케 하는

젊은 사자의 우는 소리가 이스라엘 산지에 들리지 않게 한다는 뜻이다. 이는 곧 백성

들을 학대하고 그들의 삶의 터전을 황량케 했던 여호야긴 왕의 잔악과 강포가 더 이상

이스라엘 땅에 미치지 못하게 함을 암시한다.

=====19:10

네 피의 어미는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 – 두 개의 히브리 사본은 ‘네 피’를

‘네 포도원’으로 읽고 있다. 이럴 경우 본 구절은 ‘네 어미는 네 포도원에서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로 해석된다. 이 독법이 자연스럽기는 하나 다른 히브리 사본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따라서 본 구절은 맛소라 사본을 비롯한 대부분의 히브리 사본처

럼 ‘네 피에 있어서 네 어미는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로 읽혀져야 한다. 그렇

다면 여기서 ‘네 피에 있어서 네 어미’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즉 2절

에서와 같이 ‘어미’는 유다 왕국을, ‘네 피’는 유다의 왕통을 비유한다. 따라서 본 구

절은 처음 유다 왕통에 의해 세워질 당시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매우 견실했음을 암시

한다. 그리고 보다 구체적인 의미에서는 유다 열왕의 표본이 된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성실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실행했음을 가리킬 수 있다.

물이 많으므로 – 물은 성경에서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해

주는 매개체로 비유된다(시 1:3). 여기서는 이스라엘 족속들이 이 땅에서 생활하는데

충분할 만큼 공급되는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상징한다(17:5 참조). 신약에서는 이것

이 하나님의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했다(요 4:14;계 22:1, 2).

실과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며 – 이스라엘이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세력면에서 번성

하여 강하게 되었음을 가리킨다.

=====19:11

그 가지들은 견강하여…홀이 될만한데 – 여기의 ‘가지’란 단어는 10절의 ‘가지’와

다른 것이 사용되었다. 10절의 ‘가지'(* , 아네프)가 나무를 무성하게 하는 역할

에 적용된 반면 본 구절에서의 ‘가지'(* , 마토트)는 줄기에서 뻗어나온 가지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가지’는 다윗을 이은 유다 왕통을 상

징한다(Leale, Plumtre, Lange). 에스겔은 17:6, 7에서는 유다 왕 시드기야를 ‘포도나

무’에 비유한 적이 있다. 이와 달리 혹자는 여기에서 ‘가지들’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하며 ‘홀’이 이스라엘(유다)의 왕을 뜻한다고 주장한다(Calvin). 그러나 이 해석

은 전체 내용상 지지를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가지’는 다윗의 위를 이은 유다의 왕

가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한편 ‘홀’은 흔히 왕이나 권세자들이

그 권세와 권위의 상징으로서 지니는 조그마한 막대기를 가리킨다(창 49:10;암 1:5).

그 하나의 키가…높았으며…뛰어나서 보이다가 – 여기에서 ‘그 하나’란 본장의

문맥의 흐름상 유다의 여호야긴 왕을 이어 왕이 된 마지막 왕 시드기야를 가리킨다

(Wycliffe, Herrmann). 그는 유다를 11년 동안 통치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악한 행위와

반바벧론 정책을 펴다가 느부갓네살에 의해 폐위당했다(왕하 24:18-25:7). 한편 ‘높았

으며’나 ‘뛰어나서’란 표현에 대해 혹자는 시드기야를 상징하는 가지가 주위의 여러

가지들보다 뛰어나게 솟아오른 것을 나타내는 말로 이는 시드기야 시대의 왕국이 정

치, 경제적인 측면에서 탁월하며 번창한 가운데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Calvin). 그러나 당시 유다 왕국이 정치적 격동기에 있었으므로(왕하 24:13, 14) 이

견해는 지지받기 어렵다. 오히려 그 두 단어는 실제로 왕위에 오를 수 없었으나 조카

여호야긴을 대신해서 왕이 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19:12

분노 중에 뽑혀서…당하매 – 본 구절은 포도나무가 온전히 파괴당해 소생할 가능

성이 전혀 없는 상태에 처해진 것을 뜻하는데 이는 시드기야 왕이 당한 패망의 처참성

을 잘 묘사해 주고 있다. 그는 바벧론 군대에 사로잡혀 두 눈이 뽑힌 채 바벧론으로

포로되어 끌려갔었다(왕하 25:7).

그 실과는 동풍에 마르고…탔더니 – ‘동풍’이란 바벧론 군대를 상징한다(17:10).

이와 같은 본 구절은 유다 백성들이 바벧론 군대의 침입으로 피폐해지고, 유다의 왕통

이 끊어지게 된 사실을 가리킨다(Plumtre).

=====19:13

메마르고 가물이 든 땅에 심긴 바되고 – ‘메마르고 가물이 든 땅’이란 바벧론 지역

을 상징한다. 시드기야 왕이 바벧론으로 사로잡혀 가 이제는 이전에 누렸던 풍요로움,

정치적인 권력 등을 누리지 못하고 삭막하고 피폐한 상태에 처해진 것을 암시한다. 특

히 본 구절은 시드기야 왕의 소생 불능의 상태, 즉 다시 이전의 권력의 상태로 되돌아

올 수 없음을 암시한다.

=====19:14

불이 그 가지 중 하난에서부터 나와서 – 여기에서 ‘불’이란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

이심이니라'(히 12:29)에서 엿보여지는 바와 같이 징벌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킨

다. 그리고 ‘그 가지 중 하나’란 시드기야 왕을 가리킨다. 이로 볼 때 본 구절은 시드

기야 왕의 죄악과 하나님의 섭리에(렘 25:1-11;38:14-23) 거스린 반바벧론 정책으로

인해(왕하 24:19, 20;25:1)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결국 그 불길은 온 이스라엘(유다)

백성들에게까지 미치고 그들의 풍요로운 삶을 황폐케 한 사실을 뜻한다.

권세 잡은 자의 홀이…없도다 – 이는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바벧론 군대에

의해 포로로 잡혀가고 유다 왕국이 패망함으로 더 이상 육신적 다윗 왕가의 후손 중에

는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자가 없을 것임을 암시한다. 다만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그

리스도께서 영원하신 왕으로서 다윗의 위를 이어 세세토록 왕노릇 하신다(마 1:1;눅

1:32, 33).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 대우인력 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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