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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국어국문전공 정선태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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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두 페소아 – 나무위키:대문

포르투갈의 시인, 작가, 철학자. … 시로도 유명하지만 에세이로도 유명한데 대표적으로 ‘불안의 책(불안의 서)’이라는 작품이 그의 대표 명작 중 하나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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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2/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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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두 페소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António Nogueira Pessoa, 1888년 6월 13일 – 1935년 11월 30일)는 포르투갈의 시인이자 작가, 문학 평론가, 번역가, 철학가이며 20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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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7/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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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 YES24 작가파일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1888년 리스본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 때 가족 모두가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으로 이주했다. 1905년에 홀로 고향으로 돌아와 리스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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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yes24.com

Date Published: 3/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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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두 페소아가 말하는 ‘모든 관점에서 타자되기’ | arte365

『페소아와 페소아들』의 엮은이도 말한다. ‘알 수 없는 중간쯤 어딘가에, 그가 있다’라고.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나의 이명들은 누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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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rte365.kr

Date Published: 6/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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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서 / 페르난두 페소아 – 브런치

포르투갈로의 여행 준비를 하기 전까지는 그의 이름도, 존재도 몰랐다. 그저 포르투갈 작가 누구 없나, 긴 여행에 함께할만한 두께면 좋겠는데 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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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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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것에서 위로받고 싶으면 페소아를 읽으세요” – 한국일보

포르투갈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1888~1935). 유럽 통합 이전 포르투갈 지폐에 얼굴이 찍혀 있던 국민 영웅이자 유럽 문학 연구자들이 숭모하는 거장. 국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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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hankookilbo.com

Date Published: 12/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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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는 책]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 페르난두 페소아
[오늘을 읽는 책]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 페르난두 페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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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thor: 김용민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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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8.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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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António Nogueira Pessoa, 1888년 6월 13일 – 1935년 11월 30일)는 포르투갈의 시인이자 작가, 문학 평론가, 번역가, 철학가이며 20세기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자 포르투갈어 최고의 시인으로 손꼽힌다. 그는 영어와 프랑스어로도 글을 썼고 번역했다.

페소아는 자신의 실명뿐만 아니라 대략 75개의 다른 이름으로 많은 글을 썼다. 그는 이를 “필명”이 아닌 “이명”이라 불렀는데, 이는 각 개인의 진정한 지성을 그가 파악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반에서 보낸 어린 시절 [ 편집 ]

Pessoa’s birthplace: a large flat at São Carlos Square, just in front of Lisbon’s opera.

페소아는 리스본에서 태어났다. 1893년 7월 13일, 페소아가 다섯 살이었을 때 아버지 조아킹이 폐결핵으로 사망하였고 이듬해 1월 2일 한 살이었던 남동생 조지도 사망하였다.

1893년 12월 31일, 어머니 마리아 마달레나가 두 번째 결혼을 한 이후 페소아는 양아버지와 함께 살기 위해 남아프리카로 향했다. 양아버지는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탈의 수도, 더반에 주재하는 포르투갈 영사였다.

Last year in Lisbon before moving to Durban, 1894, aged 6.

그는 후에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어렸을 적의 일 중 나의 방향을 바꿀 수 있을 만큼 명확하고 중요했던 일은 단 하나,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어머니의 두 번째 결혼은 내가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는 또다른 일 중 하나인데, 더반 주재 포르투갈 영사였던 양아버지로 인해 더반에서 받게 된 영국식 교육은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내 운명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나에게도 중요한 일이었다. 위의 일들과 관련이 있는 항해 날짜는 (기억나는 대로 썼다.) 처음으로 아프리카에 간 날 – 1896년 1월 초에 리스본을 떠났다. 돌아온 날 – 1901년 8월 1일 오후에 더반을 떠났다. 두 번째로 아프리카에 간 날 – 1902년 9월 20일 즈음 리스본을 떠났다. 돌아온 날 – 1905년 8월 20일에 더반을 떠났다. [1]

페소아는 어린 시절 아일랜드와 프랑스 수녀들에 의해 운영되던 요셉 성모학교에서 교육받았다. 1899년 4월에는 더반 고등학교로 전학하였고, 영어에 능숙해지면서 영문학에 대한 인식을 키워나갔다. 케이프타운 대학에서 치른 대학 입시 시험에서는 최고의 영어 에세이에 수여되는 빅토리아 여왕 기념상을 받았다. 대학 입학 준비를 하던 때에 야간으로 1년간 더반 상업 고등학교에 다니기도 하였다.

Pessoa in Durban, 1898, aged 10.

그와 동시에 페소아는 영어 단편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중 몇몇은 데이빗 머릭이라는 이명으로 쓰였고 대부분이 미완성이다. 열여섯 살 무렵 C.R.애넌이라는 이명으로 쓰인 그의 시 “Hillier did first usurp the realms of rhyme…” 가 The Natal Mercury (1904년 7월 6일자) 에 실렸고, 12월에는 더반 고등학교 교지에 그의 에세이 “매콜리” 가 실렸다. 1905년 2월부터 6월, The Natal Mercury의 “The Main in the Moon” 섹션에는 그의 소네트가 네 편 이상 실렸는데, “조지프 체임벌린”, “영국에 I”, “영국에 II” 그리고 “자유”였다.

페소아는 종종 시에서 애넌이라는 이름을 여러 방법으로 차용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이명을 사용하였는데, 가장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어린 시절, 아마도 프랑스 귀족에게서 차용한 듯한 슈발리에 드 파 라는 이름이었다. 찰스 로버트 애넌과 데이빗 머릭에 이어, 페소아는 호레이스 제임스 파버, 알렉산더 서치등의 다른 이명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불안의 책의 서문에서, 페소아는 자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그는 지켜야 할 의무라곤 없는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자랐다. 어느 집단에도 속해본 적이 없었다. 학교를 다닌 적도 없었다. 어떤 단체의 일원이 된 적도 없었다.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 생각해보면 다들 그렇지 않은가? – 그가 인생에서 맞닥뜨린 우연한 상황들은 희한하게도, 무기력과 고립된 본능의 형상을 따라 본능의 모양대로 잘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2]

Pessoa in 1901, aged 13.

페소아의 동창 중 한 명은 어린 시절의 페소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그를 얼마간 알고 지냈는지 정확하게 말하는 건 힘들지만, 그와 함께 학교를 다녔던 1904년 1년 내내 그에 대해선 감탄 뿐이었다. 그때 그가 몇 살이었는지는 모르나, 아마 15, 16살 즈음이었을 것이다 […] 그는 창백하고 말랐으며 어딘가 결함이 있어 보였다. 몸집이 작았고 늘 구부정하게 서있었다. 기이한 자세로 걸었으며, 시력이 나쁜 탓에 눈도 어쩐지 기이하게 보였고 눈꺼풀은 눈 위로 지나가는 듯 했다 […] 그는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배운 게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익혀 대단한 성과를 보였기 때문에 주위로부터 똑똑하다는 평을 들었다. 같은 학급의 다른 학생들보다 어렸지만 그들과 어울리거나 앞지르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는 나이에 비해 깊고 넓게 생각했으며, 언젠가 나에게 썼던 편지에서 “대부분의 특수한 불리함이 주는 여러가지 부담”에 대해 토로하곤 했었다 […] 그는 체력을 기르는 스포츠는 하지 않았으며 여가 시간엔 책을 읽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가 너무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서 몸이 상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3]

아프리카에 온 지 10년이 지나 열일곱 살이 된 그는 리스본으로 돌아갔다. 이 여정에서 받았던 영감은 훗날 알바루 드 캄푸스의 이름으로 1915년 3월 오르페우 1호[4]에 실린 시 “Opiário” (시인이자 작가였던 그의 친구 마리우 드 사카르네이루에게 헌정되었다.) 와 1915년 6월 오르페우 2호[5]에 실린 시 “Ode Marítima” (미래파 화가 산타 리타 핀토르 에게 헌정되었다.)에 영향을 미쳤다.

리스본에서 보낸 성인 시절 [ 편집 ]

“Ibis Enterprise”, the first firm established by Pessoa, in 1909.

그의 가족은 모두 남아프리카에서 있었지만, 페소아는 외교를 배우기 위해 1905년 리스본에 돌아왔다. 그러나 병치레와 더불어 2년간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고, 주앙 프랑코 수상의 독재에 대항한 동맹 휴교로 인해 그의 학업은 끝이 났다. 그 때부터 페소아는 도서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끊임없이 읽고 홀로 공부하기 시작한다. 1907년 8월 그는 R.G. Dun & Company (현재 D&B, Dun & Bradstreet) 라는 미국의 상업 회사에서 일하게 된다. 9월에는 조모가 사망하여, 물려받은 약간의 유산으로 독립 출판사 Empreza Ibis를 설립하였는데, 이 사업은 비록 실패로 돌아가 1910년에 문을 닫았지만 ibis[6]라는 이름은 지금도 그의 중요한 상징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페소아는 제대로 끝내지 못한 자신의 학문으로 돌아와, 그가 받은 영국식 교육에 스스로 공부한 포르투갈 문화를 덧붙였다. 이전에 페소아의 의붓삼촌 산토스 로사가 어린 페소아에게 포르투갈 문학, 특히 19세기의 낭만주의와 상징주의에 대해 알려주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1908년에 벌어진 찰스 1세와 황태자 루이스 필립의 암살을 둘러싼 혁명 직전의 분위기와 1910년 10월 5일 혁명으로 인한 애국심의 표출은 페소아의 문학이 싹트는 데에 영향을 주었다.[7] 1912년 페소아는 문화 잡지 아기아에 한 편의 비평을 기고하며 문학의 세계로 들어섰는데, 당시 이 비평이 포르투갈의 지식인들 사이에 불러일으킨 토론은 세기적이었다. 1915년, 페소아와 마리우 드 사카르네이루, 알마다 네그리로스를 비롯한 예술가들과 시인들은 문학 잡지 오르페우[8]를 창간하여 모더니즘 문학을 포르투갈에 소개하기 시작했다. 단 두 호가 발간되었으며 (1915년 1분기와 2분기) 자금 사정으로 인해 3호는 발간되지 못하다가 여러 해가 지나 1984년에서야 출간되었다.[9] 오르페우에는 페소아 자신의 실명과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이명 알바루 드 캄푸스의 작품들이 실렸다.

이후 예술가 루이 바즈와 함께 아테나[10] (1924–25)라는 또다른 예술 저널을 창간하였으며, 여기에는 이명 알베르투 카에이루와 히카르두 헤이스의 작품이 실렸다. 그는 작가, 번역가, 문학 비평가, 정치 평론가로서 A Águia (1912–13), Teatro (1913), A Renascença (1914), O Jornal (1915), Orpheu (1915), Exílio (1916), Centauro (1916), Terra Nossa (1916), Portugal Futurista (1917), Acção (1919-20), Ressurreição (1920), Contemporânea (1922–26), Athena (1924–25), Diário de Lisboa (1924–35), Revista de Comércio e Contabilidade (1926), Sol (1926), O Imparcial (1927), Presença (1927 -34), Notícias Ilustrado (1928-30), Girassol (1930), Revolução (1932), Descobrimento (1932), Fama (1932–33), Fradique (1934), Sudoeste (1935) 등의 다양한 잡지와 신문에 기여했다.

산책자로서의 페소아 [ 편집 ]

열일곱살이 되어 포르투갈로 돌아온 페소아는 이후 리스본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는데, 알바루 드 캄푸스의 이명으로 쓴 시 “다시 돌아온 리스본” (1923 and 1926)에는 이 시기에 받은 영감들이 잘 드러난다. 1905년부터 1920년, 양아버지의 죽음으로 그의 가족이 프리토리아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페소아는 경제 사정과 개인적인 문제들 때문에 열네번의 이사를 했다.[11]

페소아는 자신의 이명 중 하나인 베르나르두 소아르스에 객관적인 산책자의 시선을 불어넣었다.[12] 소아르스는 두라도스 가의 사무실에 앉아 바스케스 사장 밑에서 일하는 회계사로 그려졌다. 또한 소아르스는 페소아가 오랫동안 프리랜서 번역가로서의 경력을 쌓아왔던 바로 그 번화가에 산다고 설정되어 있었다. 1907년부터 1935년에 사망하기 전까지 페소아는 스물한 군데의 회사에서 일했는데, 두 세 군데를 동시에 다니는 일도 있었다.[13] 불안의 책에서 베르나르두 소아르스는 이 장소들이 풍겼던 분위기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1910년 오르페우에 기여한 젊은 작가들과 예술가들의 성지 중 하나였던 A Brasileira 앞에는 페소아가 탁자에 앉아있는 모양의 동상이 있다. 시아두의 고급 지역에 위치한 이 카페는 오페라 하우스 앞에 있는 페소아의 출생지[14]와도 매우 가깝다.[15] 나중에 그는 코메르시우 광장에 있는 카페 Martinho da Arcada 의 단골이 되었는데, 백 년 넘게 이어져 온 이 카페는 1920-1930년대에 걸쳐 그가 개인적인 사무를 보거나 친구를 만나는 등 거의 자기 사무실처럼 썼던 곳이다.

Coffee house ” A Brasileira “, established in 1905, the year Pessoa returned to Lisbon.

1925년, 페소아는 리스본에 대한 안내 책자를 영어로 쓰기도 하였다.[16][17]

일생을 쓰다 [ 편집 ]

Pessoa in 1929, drinking a glass of wine in a tavern of Lisbon’s downtown.

젊었을 적 그는 셰익스피어, 밀턴, 포프 등의 고전파와 셸리, 바이런, 키츠, 워즈워스, 콜리지, 테니슨과 같은 낭만주의 시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18] 1905년 리스본에 돌아온 이후에는 프랑스의 샤를 보들레르와 스테판 말라르메, 그리고 포르투갈의 시인 안테루 드 켄탈, 안토니우 고메스 레알, 세자리우 베르드, 안토니우 노브르 등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나중에는 W.B.예이츠, 제임스 조이스, 에즈라 파운드, T. S.엘리엇 등의 모더니즘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받았다.[19]

그는 서른 살 전후로 보였다. 여위고 키가 큰 편으로, 앉아 있을 때는 몸이 심하게 구부정했지만 서 있을 때는 그렇지도 않았다. 옷차림을 보면 아무렇게나 걸쳐 입은 듯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아무렇게나 입은 것은 아니었다. 창백하고 별 특징 없는 얼굴에는 호기심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지만 뭔가 고뇌의 흔적이 어려 있었는데, 어떤 종류의 고뇌인지 알아채기 어려웠다. 결핍, 번민, 그리고 이미 많은 고통을 겪은 자의 체념에서 오는 괴로움 등의 여러 감정을 나타내는 듯했다. – 불안의 책 서문에서[20]

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던 무렵 페소아는 출판사에 찾아가 자신의 영문시집 “성난 연주자”(이 시집은 살아생전 발간되지 못했다)를 출판하고 싶다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러나 시집에 있던 시 중 한 편은 1920년, 권위 있는 문학 잡지 중 하나인 아테네움에 실렸으며 그 후에도 페소아는 “안티노오스”[21]와 “서른 다섯 편의 소네트”[22]등의 영문시집을 발간하였다.[23][24] 몇 친구들과 함께 그는 또 다시 출판사를 차렸는데, 올리시포 라는 이름의 이 출판사에서는 페소아의 영문시집 1-2와 3, 알마다 네그리오스의 “화창한 날의 발명”, 안토니우 보토의 “노래들”, 라울 레알의 “신격화된 소돔”[25] 등이 발간되었다. 그러나 페소아가 잡지 “동시대”에 기고했던 “안토니우 보토와 포르투갈의 미학적 이상”이라는 논문이 “소돔의 문학”이라 알려진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올리시포는 1923년에 문을 닫게 된다.[26]

페소아는 자신을 “신비스러운 애국주의자” 라고 생각했으며, 비록 군주제에 동조했으나 군주제의 부활을 반기지는 않았다. 페소아는 자기 자신을 영국 전통에 맞는 보수적인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거침없는 지식인이었으며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와 파시즘과 가톨릭을 반대했다.[27] 1917년과 1926년에 일어난 군사 쿠데타를 지지했으며 1928년 군사 독재를 지지하는 평론을 쓰기도 하였으나 1933년 포르투갈 제2공화국이 들어서자 정권에 환멸을 느끼고 1935년에는 살라자르와 파시즘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 그리고 1935년 초, 프리메이슨에 대한 글을 쓴 것을 이유로 살라자르 정권에 의해 탄압을 받기도 하였다.[28][29]

1935년 11월 29일 복통과 고열로 인해 병원에 실려 온 페소아는 다음과 같은 유서를 남겼다. “내일이 무엇을 가져다 줄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는 다음 날인 30일 오후 8시 즈음 사망하였는데, 이 때 그의 나이 47세였다. 사인은 지금도 논란거리 중 하나로, 알코올 중독[30][31][32]에 의한 간경변이나 췌장염[33][34]으로 추정되고 있다.[35]

살아생전 그는 영어로 네 권, 포르투갈어로 단 한 권의 책을 출판하였다. 그러나 그가 남기고 간 미완성 원고와 아직 출판되지 못한 글, 개요만 있는 채로의 글들이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고 지금도 이를 정리하는 작업이 진행 중에 있다. (포르투갈 국립 도서관에서 1988년까지 정리한 결과만 해도 25,574 페이지에 달한다고 한다.)[35]

사후 50년이 흘러 1985년 페소아의 유골은 바스코 다 가마, 루이스 드 카몽이스 등의 포르투갈 문호들이 묻혀 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으로 옮겨졌다.[36] 그의 초상화는 100이스쿠두 지폐에도 그려져 있다.

Pessoa’s tomb in Lisbon, at the cloister of the Hieronymites Monastery since 1985.

이명들 [ 편집 ]

페소아가 6살에 처음으로 사용했던 이명은 슈발리에 드 파였다. 페소아의 또다른 자아가 된 찰스 로버트 애넌의 이름과 더불어 그는 어린 시절 판크라시오 박사, 데이빗 머릭 등의 이명을 사용하였다. 1905년 7월, 그가 리스본 대학의 학생이었을 때는 알렉산더 서치가 애넌의 자리를 대체하였다. 서치는 영국 이름이었지만 리스본에서 탄생하였으며, 페소아가 포르투갈의 문화에 제대로 적응하기까지 사용했던 과도기의 이명을 상징했다.

1910년 10월 5일 혁명 이후의 애국적인 분위기 속에서 페소아는 알바루 드 캄푸스라는, 타비라에서 태어나고 글래시고에서 졸업한 포르투갈 해군 기사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번역가 리처드 제니스는 페소아가 최소한 72개의 이명을 만들었다고 서술했다.[37] 페소아 그 자신의 말에 따르면 그는 알베르투 카에이루, 알바루 드 캄푸스 그리고 히카르두 헤이스 이 세 가지 이명을 주로 사용했다. 이명들은 모두 다른 역사와 기질, 철학, 외모, 문체를 지니고 있었으며 심지어 서명까지도 달랐다고 한다.[38]

간략한 작품 설명 [ 편집 ]

메시지 [ 편집 ]

Mensagem, first edition, 1934. , first edition, 1934.

메세지[39]는 포르투갈어로 쓰였으며, 세 파트[40]로 구성되어 44편의 짧은 시가 실린 상징적인 작품이다.

첫 번째 파트 “문장”은 포르투갈의 문장과 관련된 각 분야의 역사적 주인공들을 다뤘다. 가장 앞에 실린 두 편 “성채들”과 “문장이 그려진 방패들” 은 포르투갈의 여러 면에서 받은 영감을 그려내고 있다. 나머지 시들은 모두 역사적인 인물과 관련되어 있으며, 대부분이 대항해시대로 이어진다.

두 번째 파트 “포르투갈 해”는 대항해시대, 그리고 세바스티앙 왕의 죽음으로 몰락한 포르투갈 제국에 대해 말한다. 페소아는 마치 과거의 꿈에서 깨어나 이뤄질 수 없는 미래의 꿈에 빠져든 것처럼, 세바스티앙 왕의 생환과 더욱 부강해진 제국의 풍경 속으로 독자들을 데려 간다.

세 번째 파트 “숨겨진 사람”은 페소아가 바라보는 미래의 평화와 다섯 번째 제국(세바스티앙 왕이 생환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시작된 메시아적인 신화로, 포르투갈에 의해 전 세계가 정신적으로 통합될 것이라는 내용)에 대해 그리고 있다. “숨겨진 사람”, 즉 세바스티앙 왕에 의해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 직관적이고 신비로운 부분이 합쳐지게 된다는 뜻이다. 이 세 번째 장에서는 신에 의해 포르투갈이 인류의 운명을 이끌어 가기를 바라는 소망이 표현되고 있다.

“메시지”에 세 파트 모두에 등장하는 이 세바스티앙 왕은, 꿈을 크게 꾸는 것과 그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것 등을 상징한다.

두 번째 파트의 시 “어린 아이”의 첫 구절 “신은 바라며, 사람은 꿈꾸고, 작품은 태어난다”는 “메시지”에서 가장 유명한 인용문이다. 또한 “율리시스”의 첫 구절 “신화는 아무 것도 아니며 모든 것이다” 도 잘 알려져있다. 이 시는 이타카의 왕이었던 율리시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41]

A Águia, journal of the Portuguese Renaissance, nr. 4, April 1912. , nr. 4, April 1912.

문학 에세이 [ 편집 ]

문화 잡지 아기아는 “포르투갈 르네상스”라는 공화당 협회에 의해 1910년 12월 오포르투에서 만들어졌는데, 페소아는 이 잡지에 상당 수의 에세이를 기고하였다.[42] 아기아를 창간한 사람들은 작가이자 시인이었던 테세이라 드 파스쿠스를 중심으로 철학자 레오나르도 코임브라와 역사학자 제이미 코르테사우 등이 있었는데, 이들의 목적은 포르투갈 문화의 부흥이었다.[43] 페소아 또한 여러 편의 논문을 기고하여 이 잡지에 기여하였는데 “사회학적으로 고려된 새로운 포르투갈 시문학”, “재발한…”, “포르투갈 시문학의 심리학적 양상” 등이 있었다. 페소아는 이 글들을 통헤 포르투갈의 옛 향수가 느껴지는 문학을, 특히 테세이라 드 파스쿠스와 마리오 베이리우의 시를 찬미하였다. 페소아는 이 논문들을 시작으로 현대 유럽 문학의 감정가이자 문학의 첨단을 걷는 전문가로서 알려지게 된다. 반면, 그는 분석하는 방법이나 관념사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포르투갈에 머지 않아 카몽이스의 뒤를 이을 훌륭한 시인이 탄생하여 유럽 문화에, 나아가 인류에 중대한 기여를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44]

철학 에세이 [ 편집 ]

1905년부터 1912년 사이에 페소아가 남긴 철학 노트들에 의하면 그는 오래된 고전을 직접 읽기보다는 해설을 통해 철학 역사에 대해 배운 것처럼 보인다.[출처 필요] 그가 다룬 문제들은 모든 철학적 분야와 관계가 있으며 방대한 개념을 다루고 있어서, 여섯 줄짜리 글도 있는가 하면 여섯 페이지에 달하는 글도 있고 깊이 역시 천차만별이다.

A passage from his famous poem “Mar Português” from “Message”, in the city of Lagos, Portugal

페소아는 철학 시스템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상대적인 유심론과 상대적인 물질주의는 경험과 자료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로 “정신”이나 “물질”을 꼽는다. 절대적인 유신론자와 절대적인 물질주의자는 경험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의 객관적 실재를 부정한다. 스피노자가 주장한 물질주의적 범신론과 말브랑슈가 주장한 유신론적 범신론은 경험이 그 핵심에 물질도 정신도 없는 모든 것들의 징후임을 인정한다. 물질과 정신 모두 “환상에 불과한 징후”라고 여기는 데에서 초월주의가 등장한다. 쇼펜하우어가 물질에 대한 초월주의를 주장했고, 베르그송은 정신에 대한 초월주의를 주장했다. “제한된 형이상학의 정점”이라는 마지막 체계는 급진적으로 오지 않을 것이다. 대신 모든 분류에 대해 “전체의 핵심”이라는 모순을 취해 “진실성의 확인이 모순보다 더 진실되다”고 변호한다. 초월주의는 반드시 분류를 넘어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페소아는 이러한 범신론적 초월주의를 사용하여, 포르투갈의 옛 정취를 찾고자 하는 시문학 운동이 기존의 모든 체계를 포용하고 초월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정의했고 나아가 형이상학과 종교성이 체계 너머의 모든 것을 탐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암시했다.

작품 목록 [ 편집 ]

불안의 책 , 오진영 번역, 문학동네, 2015, ISBN 9788954625760

, 오진영 번역, 문학동네, 2015, ISBN 9788954625760 불안의 서 , 배수아 번역, 봄날의책, 2014, ISBN 9788996997962

, 배수아 번역, 봄날의책, 2014, ISBN 9788996997962 불안의 책 , 김효정 번역, 까치, 2012, ISBN 9788972915232

, 김효정 번역, 까치, 2012, ISBN 9788972915232 페소아의 리스본 , 박소현 번역, 안그라픽스, 2017, ISBN 9788970599076

, 박소현 번역, 안그라픽스, 2017, ISBN 9788970599076 페소아와 페소아들 , 김한민 번역, 워크룸프레스, 2014, ISBN 9788994207421

, 김한민 번역, 워크룸프레스, 2014, ISBN 9788994207421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 김한민 번역, 민음사, 2018, ISBN 9788937475245

, 김한민 번역, 민음사, 2018, ISBN 9788937475245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 김한민 번역, 민음사, 2018, ISBN 9788937475252

, 김한민 번역, 민음사, 2018, ISBN 9788937475252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김한민 번역, 문학과 지성사, 2018, ISBN 9788932034690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1888년 리스본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 때 가족 모두가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으로 이주했다. 1905년에 홀로 고향으로 돌아와 리스본 대학 문학부에 입학했으나 채 일 년도 되지 않아 학업을 중단하고는 영어 무역 서신을 번역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1912년 『아기아』에 포르투갈 시문학에 대한 글을 발표하면서 작가 활동을 시작했고, 1915년 포르투갈 모더니즘 문학의 시초라 평가받는 잡지 『오르페우』를 창간했다. 일생 동안 여러 잡지와 신문을 통해 130여 편의 산문과 300여 편의 시를 발표했고,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몇 권의 영어 시집을 펴냈다. 1934년 생전에 출간된 저서 중 유일하게 포르투갈어로 쓴 시집 『메시지』를 출간했다. 틈틈이 기록해놓은 단상들을 모아 『불안의 책』을 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간질환이 악화되어 1935년 4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후 엄청난 양의 글이 담긴 트렁크가 발견되었고, 아직도 분류와 출판이 진행되고 있다.

페르난두 페소아가 말하는 ‘모든 관점에서 타자되기’

포르투갈의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의 『페소아와 페소아들』은 70개가 넘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이명(異名)으로 남긴 산문들 중에서 알베르토 카에이루(Alberto Caeiro), 알바루 드 캄푸스(Álvaro de Campos) 등 대표적 이명 9인의 글과 페소아 자신의 본명으로 남긴 6편의 글을 엮은 책이다.

페소아와 그의 이명들이 쓴 각각의 산문들은 쉽게 읽어나갈 수 있는 글은 아니다. 그가 창조해낸 이명들의 정체성을 상상하거나, 그들이 창작한 산문들의 메시지를 페소아와 연결하여 생각해보기란 쉽지 않다. 각각의 글이 주는 내용과 무게 또한 만만치 않다. 그의 산문들 속에서 발견된 페소아는 낭만주의자 혹은 감각을 추구하는 예술가로서만 봐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자신이 살던 동시대와 밀착하여 ‘자아’와 ‘세계’에 대해서 예민하게 감각하고 사유해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나’와 ‘우리’의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과정

모든 관점을 가지는 것,

매 분마다 너 자신과 모순을 일으키면서 진실할 수 있는 것.

모든 것을 모든 방식으로 느끼는 것,모든 관점을 가지는 것,매 분마다 너 자신과 모순을 일으키면서 진실할 수 있는 것. -알바루 드 캄푸스(Álvaro de Campos), 「시간의 통로(Passagem das Horas)」중에서

페소아가 개인과 사회에 던진 질문과 사색은 우리가 일상에서 매우 보편적이라고 여겨졌거나, 익숙해진 시스템과 규율 속에서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존재들을 흔든다. 우리의 존재와 감각들이 무엇을 망각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깨닫게 한다.

또한, 일상의 모순을 기민한 감각으로 꺼내 질문 없이 살아온 삶의 존재들을 일순간 부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지각하기 어려운 삶의 모순들과 부조리함은 대체 어디에서부터 기원한 것인지, ‘나’와 ‘우리’는 누구인지, 끊임없이 진지하게 묻는 그의 목소리는 70개가 넘는 이명을 통해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페소아의 이력서에 따르면 그는 스스로를 ‘번역가’, ‘무역 회사의 해외 통신원’이라 했으며, ‘시인’ 또는 ‘작가’인 것은 직업이라기보다 소명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대목에서 매일같이 새롭고 철저한 눈과 살아있는 정신으로 ‘나’와 ‘세계’를 마주하겠다는 페소아의 강직함이 느껴진다. 예술가가 지니는 삶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지점에서 작가이자 동시에 문화예술교육 현장에 있는 내게 은 실제 교육프로그램의 방법론을 제시하는 실용주의적 서적이라기보다 참여자와 함께 예술을 통해 무엇을 경험하고 성찰할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참여자들과 깨닫고자 한 것, 나누고 싶은 경험의 중심에는 ‘나를 느끼기’라는 매우 소박해 보이는 내용과 바람이 있었다. 익숙함과 편안함 속에 존재하는 ‘나’는 오히려 그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점철된 고질적 장벽 때문에 잠재된 나, 낯선 자신을 소환하여 대면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페소아들’을 소환하려는 이유

난 존재하지 않는 패거리를 만들어냈어. 이 모든 걸 실제 세계의 틀들에 맞췄지. 서로 주고받는 영향들에 눈금을 매기고, 우정 관계들을 구체화시키고, 내 안에서, 다양한 관점들과 토론들을 경청했고, 이 모든 것으로 봐서는, 그들 모두를 창조한 사람 그러니까 나는, 가장 거기에 없던 사람이었어.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아돌푸 카사이스 몬테이루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예술은 ‘나와 세계’에 대한 질문인 동시에 고정되고 경직된 틀을 허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틀이 견고하면 견고할수록 허물기 쉽지 않고, 고정된 틀일수록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마주하기 어렵다. 페소아는 이런 지점에서 어쩌면 자신을 ‘탈 개성화’하고 ‘나’라는 중심을 없앤 투명한 자리에 ‘페소아들(이명)’을 소환함으로써 전혀 다른 삶을 경험하고 타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느끼려고 했던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나’라는 중심을 비워내고 온전히 타자가 되어봄으로써 새로운 세계관을 갖는 일은 남의 옷을 잠시 빌려 입고 남인 척하는 일시적 행위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타자가 되기란 끊임없이 경험하며 감각을 확장하는 동사적 성격을 가지며, 생생함과 실존적 충만함이 동반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자신’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여 다른 사람이 되는 과정은 세상을 보는 학습이자 동시에 공간을 이동하지 않고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여행’이기도 하다.

삶에 동의하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자신과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불안의 책』 중에서

페르난두 페소아의 주장처럼 ‘나’라는 주체는 본능적으로 독점적 존재가 되려고 한다. 낯선 타자를 몰아내려는 행위 역시 차이와 자기모순을 견디지 못하는 결과라고 엮은이는 말한다. 즉 ‘모든 것을 모든 방식으로 느끼기’, ‘타자되기’ 속에 존재하는 ‘조화’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안정과 편안함이 아닌, 고도의 긴장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는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복잡한 사회 체제와 수많은 인과들 속에서 눈으로 보이는 것 너머에 존재하는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이면들을 마주하기 쉽지 않다.

이런 지점에서 페소아가 자신의 고정된 시각이 아닌 타자의 시선과 감각을 통해 최대한 자의식을 게워내고 새로운 시각으로 거듭 세상을 바라보고자 한 것은 세상에 순응하는 것과는 정반대적 의미로써의 ‘조화’,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페소아의 ‘타자되기’와 ‘본다’라는 행위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간다움’과 ‘살아있는 감각’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질문하며 성찰을 요구한다.

‘감각의 확장’이라는 이름의 예술적 놀이

“이것만 말해주세요. 당신은 당신 자신에게 뭐죠?”

“내가 나에게 뭐냐고?”

카에이루가 반복했다.

“나는 내 감각 중의 하나지.”

나는 대답하지 않으면서 대답했다.“이것만 말해주세요. 당신은 당신 자신에게 뭐죠?”“내가 나에게 뭐냐고?”카에이루가 반복했다.“나는 내 감각 중의 하나지.” -알바루 드 캄푸스(Álvaro de Campos), 「내 스승 카에이루를 기억하는 노트들」 중에서

얼마 전 한 워크숍에서 만난 참여자들과 함께 ‘새로운 이름 짓기’라는 작명 놀이를 진행했다. 타자와 구분하기 위해 지어진 도구로써의 이름이 아닌 나다운 이름을 발견해보는 시간에서 참여자들은 비언어적 소통과 ‘본다’라는 일상의 감각을 극대화하여 서로의 모습을 관찰하고 상상하여 파트너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는 시간을 가졌다. ‘푸른 들판의 땀방울’이라는 이름부터 시작해 ‘궁금한 초원의 들꽃’, ‘연민과 열정이 가득한 반듯함’, ‘흔들리는 똘똘이 스머프’ 까지. 처음 만난 사람과 주고받은 새로운 이름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개성 그 자체였다.

마치 한 편의 시 구절처럼 탄생한 각각의 이름들은 타자에 대한 다양한 상상을 허락했고, 고정적이거나 상투적인 대화가 아닌 새로운 관계 맺기의 시도가 되었다. ‘나’와 타자를 통해 발견된 새로운 이름들은 ‘내’ 몸과 현재의 삶에 귀를 기울였다는 의미만으로도 충분했다.

일반적으로 부모에게 부여받은 이름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평생 불리는 고정성을 획득하게 된다. 하지만 새로운 이름 짓기 놀이는 일상의 고정된 ‘나’로부터 잠재된 수많은 ‘복수’들을 바깥으로 소환해줌으로써 해방감을 가져다준다. 앞서, 예술이 ‘나와 세계’의 경직된 틀을 허무는 작업이라고 언급했듯이, 새로운 이름 짓기는 이런 의미에서 예술적 놀이라고 할 수 있다. ‘나’와 바깥 세계의 존재를 확장된 시각으로 인식하고 새로운 관계 맺기로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가 ‘쟁기와 칼은 손의 확장, 망원경은 눈의 확장, 책은 기억의 확장’이라고 말했듯이, 페소아에게 이명이란 감각의 확장을 의미하며, 감각의 확장은 곧 몸의 확장이 될 것이다. 『페소아와 페소아들』의 엮은이도 말한다. ‘알 수 없는 중간쯤 어딘가에, 그가 있다’라고.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나의 이명들은 누구인지.

김현주 대표의 또 다른 추천도서

1.『피로사회』 한병철

우리에게 지금 ‘깊은 심심함’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2.『타자의 추방』 한병철

지금 비밀, 유혹, 에로스, 욕망, 지옥, 고통으로부터 타자가 사라지고 있다! 3.『코르푸스』 장 뤽 낭시

기이하고 낯선 몸에 대한 사유를 할 수 있는 책. 4.『걷기의 역사』 리베카 솔닛

걷는 것을 좋아한다면 읽어보자. 5.『마지막 휴양지』 존 패트릭 루이스(글), 로베르토 인노첸티(그림)

‘추억이란 머리에 쓰는 낡은 모자, 상상력은 나를 어디로든 이동하게 하는 신발과 같아. 잃어버린 마음이여, 쉬어라’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불안의 서 / 페르난두 페소아

포르투갈로의 여행 준비를 하기 전까지는 그의 이름도, 존재도 몰랐다.

그저 포르투갈 작가 누구 없나, 긴 여행에 함께할만한 두께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으로 e-book에 담은 것이 <불안의 서> 무려 750페이지에 달한다.

결제를 하고, 아이패드에 저장을 하면서도 ‘이거 300페이지나 읽으면 선방이겠다’ 했던 책이 인생에 단 한권의 책이 될 거라는 것도 그 때는 몰랐다.

2년 전부터 메모해왔던 걸 이제서야 올려둔다. 그의 서랍 트렁크가 발견되었던 것처럼.

p.12

인생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가는 마차를 기다리며 머물러야 하는 여인숙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이 여인숙에 머물며 기다려야만하니 감옥으로 여길 수도 있겠고, 여기서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 사교장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참을성 없는 사람도 평범한 사람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숙을 감옥으로 여기는 건 잠들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방안에 누워있는 이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사교장으로 여기는 건 음악 소리와 말소리가 편안하게 들려오는 저쪽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이들에게 넘긴다. 나는 문가에 앉아 바깥 풍경의 색채와 소리로 눈과 귀를 적시며 마차를 기다리는 동안, 내가 만든 유랑의 노래를 천천히 부른다.

언젠가 우리 모두에게 밤이 오고 마차가 도착하리라. 나에게 주어진 산들바람을 즐기고, 그렇게 즐길 수 있도록 주어진 내영혼을 즐길 뿐 더이상 묻지도 찾지도 않는다. 내가 여행객들의 책에 적은 글을 언젠가 다른 이들이 읽고 나처럼 경치를 감상하며 즐거워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만약 아무도 읽지 않거나 읽었으나 누구 하나 즐거워하지 않는다 해도 무방하다.

1. 일요일밤 침대에 누워있으면 죽음의 이미지가 가까워진다. 특정한 장면이 떠오르는 것도 아닌, 그저 어둠 속에서 더욱 어두운 그림자에게서 느끼는 막연한 두려움을 혼자 마주할 때의 서늘함. 두꺼운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도 좀체 포근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2. 이것을 두고 페소아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가는 마차’, ‘마차를 기다리며 머물러야 하는 여인숙’이라는 표현으로 죽음과 삶을 정의한다.

p.13

여름날 긴긴 저녁 도심의 고요를, 특히 하루의 가장 북적이는 시간과 대조를 이루어 더욱 고요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사랑한다.

p.16

언제나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적막한 내 방에서 홀로 서글픈 심정으로 글을 쓴다. 그리고 정말 보잘것없어 보이는 나의 목소리가 혹시라도 수많은 목소리들의 본질, 수많은 삶들이 열망하는 자기표현, 그리고 일상에 매인 운명, 부질없는 꿈과 가능성 없는 희망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나를 비롯한 수많은 영혼들의 인내심을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실을 의식하는 순간 나의 심장은 힘차게 고동친다. 삶이 고양될 때면 더욱더 강렬하게 살아 있음을 느낀다.

p.23

내가 쓰는 글이 형편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의 글 덕분에 상처받은 슬픈 영혼이 잠시 시름을 잊을 수도 있으리라. 그것으로 충분하고, 혹시 충분하지 않다 해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 인생사 모든 것이 다 그러하듯.

1. 이 책은 그의 사후에 트렁크 속에서 발견된 메모들을 재구성/편집하여 출간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최대한 결을 맞추어 순서대로 편집했겠지만 계속 읽다보면 중첩되는 내용도 많고, 자기복제에 가까운 표현들이 반복되기도 한다. 또 내 생각에는 편집의 순서가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고. 이 페이지는 책의 앞 부분에 나오지만 이후 100여 페이지가 지나서 ‘생전에 책을 출판하는 일’에 대한 그의 주장과 맞닿기도 한다. 그리고 그의 생전에는 이 메모들이 세상에 나오지 않은 덕분에 지독하게 솔직해보이면서도 언젠가(사후?) 세상에 발견될 것을 염두에 둔 것인지 그만큼 솔직하지 않기도 하다. 이것마저 읽는 이로 하여금 눈치채도록 한 것이 그의 진심인가 하여 이상하게 귀여움을 느낀다. 특히 중국/여행에 대해 쓴 부분에서 잘 알 수 있다.

2. 그래서 이 부분은 결국 남의 인생에 참견하고 싶은 니즈가 전혀 없다는 그의 이야기와 배치된다. 무려 이를 통해 더욱더 강렬하게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하니까.

p.25

글쓰기는 나를 그들과 구별짓는 하나의 행위, 하나의 현실이다. 그러나 내 영혼 안에서 나는 그들과 다를 게 없다.

p.31

문학이란 예술과 사상의 결합이며 현실의 흠을 덜어낸 결과로, 인간적인 모든 노력을 기울여 이루어야 하는 목표다. 그 아름다운 날을 미사여구로 꾸민 기억 안에 잘 보존하여 순식간에 흘러가버리는 저 공허한 세상의 들판과 하늘에서 새로운 꽃과 별로 빛나게 하자.

수많은 근본적인 생각과 정말로 형이상학적인 주제에 대해 할말이 너무 많은 지금, 갑자기 피곤이 밀려오니 더이상 쓰거나 생각하지 않으련다. 말하고 싶다는 열의에 잠이 쏟아지고, 눈을 감고 내가 말할 수도 있었던 모든 것을 고양이 쓰다듬듯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p.33

행복을 느낄 만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뭔가 알 수 없는 불안이, 정체를 알기 힘들지만 어쩌면 고상한 욕망이 나를 압도했다. 어쩌면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 것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을 거부하는 밤이 만들어낸 추상적이고 발가벗은 우주만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반쯤은 피곤하고 반쯤은 불안한 상태로 사물의 신비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이해에 도달했음을 몸으로 느낀다. 이럴 때면 나의 정신은 천천히 희미해지고, 아무 형태도 없는 이상의 조각들이 의식의 표면에서 떠다니고, 불면의 얇은 막 안에서 회계장부를 작성하느라 허우적댄다. 또 어떤 때는 나를 붙잡았던 반수면 상태에서 깨어나는 동안 시적이고 종잡을 수 없는 색깔을 한 애매모호한 이미지들이 망연해하는 내 앞에서 소리도 없이 장관을 펼쳐놓기도 한다. 나의 눈은 완전히 감기지 않은 상태다. 이 불면에서 벗어나 정말로 잠들 수 있는 밤의 해변가에 밀려왔다 밀려가는 드넓은 바다의 파도가 된다면!

1. 그렇지만 그도 불면과 불안을 겪고 있는 사람이다. 마음이 아프다.

p.37

불현듯 다가온 초가을에는 앞당겨 일어나는 사건처럼 어둠이 빨리 내려앉기 때문에, 마치 하루 일과가 더 늦게 끝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럴 때면 나는 날이 어두워지고 있으니 곧 일이 끝날 거라는 기대감을 일하는 도중에도 즐긴다. 어둠은 밤이고 밤은 곧 휴식, 귀가, 자유를 의미하니까.

1. 정말 서유럽의 여름밤은 밤 9시가 넘도록 해가 지지 않았다. 내가 갔던 5월 중순에도 일몰시작이 9시 즈음, 완전히 해가 넘어가려면 밤 10시나 되어야 했다.

2. 역시 직장인 마음은 직장인이 제일 잘 안다. 그도 이 글을 쓰면서 낮에는 월급쟁이로 살고 있었다.

p.41

한 구석에 던져진 물건 같고, 길에 떨어진 넝마쪽 같은 천덕스러운 존재인 내가 삶 앞에서 그렇지 않은 척한다.

모든 사람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그들이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은 모든 불가능한 것들 중에서 가장 불가능하게 여겨지므로 날마다 열망하는 것이고, 슬픈 순간마다 체념하는 것이다.

자신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느낄 때 그 느낌을 표현하기란 어려운 일이고, 나는 영혼이 독립적인 실체라는 것을 인간의 언어로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세상에 태어나 의식을 갖게 된 이후로 참으로 오랫동안 나는 내가 아닌 사람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 갑자기 다리 한가운데서 깨어나 강물을 굽어보며 그 어떤 순간보다 내가 확실히 존재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p.43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때때로 죽음의 예감이 스치고 지나갈 때가 있다.

p.44

그렇다면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죽음의 불가사의함이야 어차피 내가 꿰뚫어볼 수 없으니 그만두고, 삶이 멈출 때 육신의 감각이 궁금하다. 인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어렴풋이 두려워할 뿐이다. 보통 사람들은 삶의 전투를 잘 이어간다. 그러다 늙거나 병들면 자신이 심연이라고 인정한 무의 심연을 두려워하며 거의 쳐다보지 않는다. 이 모두가 상상력이 부족한 탓이다. 특히 죽음이 일종의 잠이라는 생각이야말로 재고의 가치가 없다. 죽음은 잠과 닮은 점이라곤 전혀 없는데 왜 그런 말을 할까? 잠의 핵심은 깨어나는 데 있으나 알다시피 죽음은 그렇지 않다. 만일 죽음이 잠과 비슷하다면 죽음에서 깨어난다는 개념도 있어야 한다. 죽음은 우리가 아는 무엇과도 닮지 않았는데, 어느 누구도 죽음이나 죽음과 비교할 만한 것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을 볼 때마다 나는 죽음이란 길을 떠나는 일 같다고 생각한다. 시체는 그가 떠나면서 남긴 옷과도 같다. 누군가 떠났고 그동안 입고 있던 유일한 겉옷은 그에게 더이상 필요가 없었다.

1. 불안으로 잠들기 어려운 밤(오늘밤은 잠들 수 있을까), 누군가 깨어있었으면 하는 헛된 바람을 가져왔다. 넓고 넓은 우주 한 가운데 혼자 있는 기분이 고통스러워서. 앞으로는 차라리 이 페이지를 펼쳐보자.

p.45

이제와 깨닫거니와 때로는 행복했고 때로는 만족스러웠던 모든 순간마다 나는 항상 슬펐다.

p.46

무기력을 나는 일종의 위생관념의 결여라고 이해할 수 밖에 없다. 몸을 씻듯 운명도 씻겨주고, 옷을 갈아입듯 삶도 갈아줘야 한다.

나 같은 운명적인 돼지들은 자신의 무기력에 깊이 매료되어 일상의 진부함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머물러 있는데 홀로 앞으로 나아가는 내 운명을 거닐게 하고, 나는 따라가지 않는데 홀로 흘러가는 내 시간을 거닐게 한다. 나의 지루함을 달래는 유일한 방법은 지루함에 대한 짧은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p.53

형체없는 권태가 숨통을 조인다.

나는 그라사 또는 상 페드로 드 알칸다라에서 달빛 아래 고요한 도시의 불규칙적이고 장엄한 풍광을 내려다볼 때만큼의 감동을, 들판이나 자연을 볼 때에는 느끼지 못한다. 나는 햇빛 눈부신 리스본 거리의 다채로운 꽃들만큼 아름다운 꽃을 본 적이 없다.

p.58

나처럼 인간의 마음을 뒤흔드는 그런 유혹을 비웃는 사람마저도, 유명인사가 된다는 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이 된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승리를 거두는 건 얼마나 찬란한 일인가를 종종 생각해본다.

p.59

솔직하고 당당하게 고백한다… 샤토브리앙의 문장들은 종종 내 생각을 그대로 목소리로 옮겨놓은 것 같고, 라마트린의 시구들은 종종 나의 자기 인식을 위해 쓰인 것 같아서 되풀이해 읽었다.

독서로 자유를 얻는다. 독서로 객관성을 획득한다. 나는 내가 되기를 멈추고, 산만하게 흩어져있는 존재가 되기를 그만둔다. 내가 읽는 것은 때때로 나를 짓누르는 보이지 않는 의복 같은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를 뚜렷하게 드러내는 명료함이고, 만물을 비추는 태양이고, 고요한 대지에 그림자를 드리운 달이고, 바다로 이어지는 거대한 공간이고, 녹색 이파리를 흔드는 나무의 견고함이고, 농장 연못에 깃든 평화이고, 포도나무 덩굴이 우거진 해안의 비탈길이다.

p.60

독서로 자유를 얻는다. 독서로 객관성을 획득한다. 나는 내가 되기를 멈추고, 산만하게 흩어져있는 존재가 되기를 그만둔다. 내가 읽는 것은 때로 나를 짓누르는 보이지 않는 의복 같은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를 뚜렷하게 드러내는 명료함이고, 만물을 비추는 태양이고, 고요한 대지에 그림자를 드리운 달이고, 바다로 이어지는 거대한 공간이고, 녹색 이파리를 흔드는 나무의 견고함이고, 농장 연못에 깃든 평화이고, 포도나무 덩굴이 우거진 해안의 비탈길이다.

p.67

자신의 삶을 어느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는 이는 축복받은 자다.

p.77

샤토브리앙과 비에이라 중에서 한 작가의 책만 읽어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비에이라를 선택할 것이다.

1. 내 평생에 남은 날들 중 한 권만 읽어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책을 선택할 것이다.

p.79

나는 인생에서 위안을 얻지 못하기에 이런 생각들을 떠올리며 위안으로 삼는다. 그리고 테주 강으로 향하는 이 저지대의 거리를 걸어가는 육체와 영혼의 방랑자인 내가, 이미 기울어버린 태양의 다채로운 빛을 받아 다른 세상의 영광처럼 찬란히 빛나는 도시의 높은 곳들을 바라볼 때, 상징은 현실과 하나가 된다.

p.80

아, 나의 고향 리스본!

1. 네, 고작 나흘 머물렀지만 나의 리스본이라 부르고 싶은 그런 곳.

p.81

가끔 나는 자의식에 대한 지리학이 발달할 미래의 가능성을 놓고 흥미로운 생각에 잠긴다. 언젠가는 자신의 감각을 연구하는 미래의 역사가들이 자의식에 대해 취하는 행동을 토대로 정밀한 과학을 와ㅏㄴ성할 수 있을거라고 믿는다. (중략) 이 내면의 공간은 또다른 새로운 차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아마 언젠가는 과학적인 연구로, 모든 것은 같은 공간의 다른 차원일 뿐이고, 따라서 온전히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은 것은 없고, 우리는 어떤 차원에서는 육체로 살고 어떤 차원에서는 정신으로 산다는 것을 밝혀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어딘가 다른 차원이 있어 지금 여기와는 다른 삶을, 여기와 똑같이 현실로 인식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p.82

부드러울수록 애무가 아닌 것 같은 애매모호한 어떤 손길이 변덕스러운 오후의 바람이 되어 내 이마와 이성을 향해 불어오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를 힘들게 하는 이 권태감이, 상처를 긁지 않도록 막아주는 옷처럼 그래도 한순간이나마 위안을 준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

1. 페소아는 평생 모쏠이었다고 알고 있는데.

p.89

많은 작가들이 그러하듯 내게도 글쓰는 체계와 규칙을 세우고 싶다는 비뚤어진 욕구가 있다. 사실 체계와 규칙을 두기 전부터 글을 써왔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중략)

첫째, 느끼는 것을 말할 때는 정확히 느낀 대로 쓴다. 분명하다면 분명하게, 모호하다면 모호하게, 혼란스럽다면 혼란스럽게 쓴다. 둘째 문법은 도구일 뿐, 법칙이 아님을 명심한다. (중략)

이렇게 문법을 초월한 승리자로서 “나를 존재시킨다”고 말하리라. 이 짧은 두 마디 안에 나의 철학을 구현했다. 마흔 개의 문장을 써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철학과 언어학에 더이상 무엇을 요구하겠는가?

자신이 느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는 사람은 문법에 복종하라. 자신의 표현을 좌우할 수 있는 자는 문법을 이용하라.

p.93

엎드려 울 수 있는 무릎, 거대하고 형체가 없고 한여름 밤처럼 드넓은, 그러면서도 아늑하고 따뜻하고 여성스러운, 어느 난롯불 옆의 무릎… 생각할 수 없는 것들과, 뭔지 모를 실패와,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일으키는 안타까움과,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소름 끼칠 정도로 엄청난 의심을 떠올리며 그 무릎에 기대어 울어봤으면….

나의 인위적인 생각들을 깨끗이 없애고 지혜를 다 모으고 애정을 담아서, 입맞추고 싶도록 소중한 장난감인 단어와 이미지와 문장 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으면 나는 크고 슬픈 방, 심오하도록 슬픈 방에서 철저히 혼자이고 너무나 작고 나약한 존재가 된다!….

나의 비참함을 끌고 다니는 이 거리들, 웅크리고 앉아 누더기 사이로 파고드는 차가운 밤바람을 맞는 계단들, 이 모든 것은 언제 끝나려나? 언젠가는 신이 나를 찾아와서 그의 집으로 데려가 따뜻하게 안아주고 사랑을 베풀어주려나…. 가끔 그런 생각을 하며 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에 겨워 운다… 하지만 이 거리에 찬 바람이 불어오고 낙엽이 길 위에 떨어지는데…. 눈을 들어 아무 의미도 없는 하늘의 별들을 바라본다….. 결국 나는 다시 홀로 남아, 어떤 ‘사랑’도 나를 데려가 양자로 삼아주지 않고 그 어떤 ‘우정’도 나와 놀아주지 않는, 가련한 버려진 어린아이가 된다.

너무나 춥다. 버려진 나는 너무나 피로하다. ‘바람’이여, 내 어머니를 찾아다오. 이 ‘밤’에 내가 모르는 집으로 나를 데려가다오… 거대한 ‘침묵’이여, 나의 유모와 나의 요람과 나를 재우던 자장가를 돌려다오…..

p.97

사랑에 바랐던 것은 언제나 머나먼 꿈으로 있어달라는 것뿐이었다.

p.105

내가 바로 그런 순간을 겪고 있다. 나는 적어도 살아 있기는 한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처럼 이 글을 쓰고 있다.

산다는 것은 물질의 형이상학적 실수 같고, 무기력이 저지르는 실수 같다.

p.110

오늘날 월등하게 지성적인 인간에게 남은 유일한 행로는 포기하는 것이다.

p.111

천재든 거지든 자신이 원한느 걸 모른다면 똑같은 무능력자다. 나는 결국 회계사무원에 불과한데, 나 자신을 천재라고 소개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다. 나는 무엇이든 원하는 존재가 될수 있지만 그러려면 뭔가를 원해야 한다. 성공은 성공하는 것이지 성공할 조건을 갖추는 게 아니다. 넓은 땅이라면 어디든 궁궐을 세울 수 있지만 궁궐이 지어지기 전엔 아무것도 아니다.

p.115

누구나 무언가에 중독되어 있다. 나는 존재 자체에 깊이 도취돼 있다.

p.115

낭만적 사랑이란 영혼과 상상력이 만든 옷이며 우연히 나타난 사람에게 입혀놓고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옷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p.118

우리 인생이 다른 사람에게 불가사의한 것이 되도록 꾸려가기. 다른 사람들보다 우리와 가까이 있는, 우리를 잘 아는 사람이 우리를 더 모르게 하기. 나는 그렇게 내 인생의 형상을 만들었다.

p.119

글을 쓴다는 것은 잊는 것이다. 문학은 인생을 무시하는 가장 유쾌한 방식이다.

p.121

<아미엘의 일기>를 읽을 때마다 마음이 아픈 것은 나 자신 때문이다.

아미엘이 친구 셰레가 영혼의 열매를 ‘의식에 대한 의식’이라고 묘사했다고 기술한 대목을 읽었을 때, 그것은 바로 내영혼에 대한 언급 같았다.

p.123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만 해도 멀미가 난다.

나는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것들을 이미 다 보았다.

나는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것들을 이미 다 보았다.

풍경은 반복된다. 기차를 타고 짧은 나들이에 나선 나는 바깥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는 일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재미있어했을 책을 멍하니 들여다보는 일을 불안스럽게 헛되이 반복하고 있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어렴풋이 멀미가 나고 움직이면 상태가 악화된다.

여행은 느낄 줄 모르는 이들이나 하는 것이다.

p.126

병적인 감성을 지닌 항해자인 우리는 이렇게 말하리라. 인생을 살 필요는 없으며 느낄 필요만 있다.

p.129

분개하지 않는다. 분개는 힘 있는 자들이나 하는 것이니까. 체념하지 않는다. 체념은 고귀한 자들이나 하는 것이니까. 침묵하지 않는다. 침묵은 위대한 자들이나 하는 것이니까. 나는 힘 있는 자도, 고귀한 자도, 위대한 자도 아니다. 나는 고통스러워하고 꿈을 꾸는 사람이다. 나는 나약한 자라서 그저 불평만 한다. 나는 예술가라서 나의 불평으로 노래를 만들며 놀고, 내 꿈들을 더 아름다워보이도록 배열하며 논다.

p.131

설문지의 괄호 안을 나의 지적 성장에 문학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준 인물로 채워야 한다면 당연히 세자리우 베르드부터 시작하겠지만,

p.137

여행은 무엇이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 모든 석양은 그저 석양일 뿐인데 그것을 보러 콘스탄티노플까지 갈 필요는 없다. 여행을 하면 자유를 느낄 수 있다고? 나는 리스본을 떠나 벤피카에만 가도 자유를 느낀다.

p.139

이따금 완화시킬 어떤 방법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지독한 삶의 피로가 감각 한가운데로 갑작스럽게 솟구쳐오를 때가 있다. 그 피로를 치료하기 위한 방법 중 자살은 효과가 의심스럽고, 자연스러운 죽음은 그것이 의식의 종말을 의미한다 할지라도 충분하지 않다. 이런 피로가 몰려오면 삶의 중단(가능할 수도 있고 불가능할 수도 있다)보다 더 무섭고 심오한 것을 원하게 된다. 즉 처음부터 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기를 원하게 되는데,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p.141

나는 이루어질 리 만무하고 특별한 일을 꿈꾸는 사람들보다 접근 가능하고 합리적이고 이루어질 법한 일을 꿈꾸는 이들이 더 딱하다. 원대한 꿈을 꾸는 사람들은 좀 미쳐 있기 때문에 자기가 꿈꾸는 것을 믿으며 행복해한다. 아니면 그들은 단순이 몽상가라 영혼의 음악 같은 공상이 별 의미 없이 그들을 달래준다. 하지만 가능한 것을 꿈꾸는 이들은 진짜 환멸을 느낄 가능성이 다분하다. 로마 황제가 될 수 없는 건 크게 실망할 일이 아니지만, 매일 아침 아홉시경 거리에서 마주치는 재봉사 아가씨에게 한 번도 말을 걸지 못한느 일은 나를 비참하게 만든다. 불가능한 꿈은 처음부터 우리의 접근을 막지만, 가능한 꿈은 우리 삶에 개입하고 그 꿈을 이루려는 방향으로 삶을 진행시킨다.

p.145

그러나 나는, 이 덧없는 삶에서 아무것도 아닌 나는, 실제로 글을 쓰고 있기에 먼 훗날 내 글이 읽히리라 상상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1.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2018).

p.153

더이상 잘 쓸 수도 없으면서 왜 나는 글을 쓰는가? 글을 씀으로써 지금보다 더욱 열등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쓸 수 있는 것을 쓰지 않는다면 무엇이 남을까? 뭔가를 이루려 하는 나는 열망에 찬 평민이다.

그렇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잃어버리는 일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상실이기에 다들 스스로를 잃어버리며 산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기쁨 없이 나를 잃어버린다.

p.159

만일 내 안의 모든 예술성을 한데 모은 위대한 표현력이 허락된다면 잠을 숭배하는 글을 쓰고 싶다. 내 인생을 통틀어 잠자는 행복보다 더 큰 쾌락을 알지 못한다.

p.166

나는 겁을 먹은 채 삶을 증오하고, 매혹에 빠진 채 죽음을 두려워한다.

나는 뭔가 다른 것이 될 수 있는 무none가 두렵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인 동시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무none가 두렵다. 마치 거기에 끔찍한 공포와 공허가 뒤섞여 있는 것처럼, 나의 영혼과 육체의 영원한 호흡이 관 안에서 멈춰버리는 것처럼, 그 안에 불멸성이 갇혀 산산조각나는 것처럼 두렵다.

p.167

지금까지 쓴 모든 글을 한 문장, 한 문장씩 천천히 맑은 정신으로 다시 읽는다. 그러면서 전부 다 헛소리이고, 차라리 쓰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p.170

리스본을 한 번도 떠나보지 못한 사람이 전차를 타고 벤피카까지 간다면 마치 무한대로 가는 여행처럼 느낄 테고, 어쩌다 신트라까지 가는 날에는 화성에라도 가는 기분일 것이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여행자는 길을 떠나 5천 마일 이상을 가면 새로운 것을 전혀 발견하지 못하는데, 항상 새로운 것만 마주치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새로운 것이 계속되는 일상의 일부가 되고, 두번째로 발견한 새로움 이후에는 새로움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은 바다에 빠지고 만다.

존재가 단조롭지 않도록 존재를 단조롭게 만들자. 지극히 무미건조한 것들로 일상을 채워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재미나게 하자.

나는 아무것도 아니므로, 모든 것이 되는 상상을 할 수 있다.

p.176

우리는 죽음이다. 우리가 삶이라고 여기는 것은 실제 삶의 잠이고, 진정으로 우리인 것의 죽음이다. 죽은 자들은 태어나는 것이지 죽는 게 아니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바뀌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다고 생각할 때 사실 우리는 죽은 것이다. 우리가 죽을 때 삶이 시작된다.

p.178

말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나는 지금의 모든 걸 그리워하게 될 미래가 그립다.

p.186

일과를 행하는 시간이 족므이라도 바뀌면 영혼은 차가운 신선함과 더불어 약간은 불편한 쾌감을 감지한다. 매일 여섯시에 퇴근하던 사람이 어쩌다 다섯시에 직장을 나서면 정신적인 여유를 경험하는 동시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안타까움 비슷한 걸 느끼기 마련이다.

때때로 나는 서글프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언젠가 내가 더이상 살아 있지 않은 미래에, 지금 내가 쓰는 이 글들이 찬사를 받는 날이 오고, 마침내 나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진정한 가족들 사이에서 태어나 사랑받을 수 있을거라고. 하지만 그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나기 한참 전에 나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죽은 자가 살았을 때 겪었던 냉대를 애정이 보상해줄 수 없을 때, 나는 단지 우표 속 초상으로 이해될 것이다.

아 이미 너무 길어져버렸다. 남은 500여 페이지와 그 그사이의 메모는 또 언젠가 이어서 쓰기로 한다.

리스본의 벨렘수도원. 페소아가 잠들어 있는 곳.

Fx Factory에 있던 큰 서점에서. 페소아를 리스본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의 글을 아는 사람들과 함께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무척 인상적인 독서모임 시간.

“뜻밖의 것에서 위로받고 싶으면 페소아를 읽으세요”

포르투갈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1888~1935). 유럽 통합 이전 포르투갈 지폐에 얼굴이 찍혀 있던 국민 영웅이자 유럽 문학 연구자들이 숭모하는 거장. 국내엔 ‘불안의 책’ 또는 ‘불안의 서’로 번역된 아포리즘 산문집의 저자 정도로 알려져 있는, 기이함으로 정평 난 천재. 혹은 광인.

페소아는 요 근래 문학출판계의 뜨거운 이름이 됐다. 그 뜨거움의 8할을 김한민(39) 작가가 만들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그는 현재 가장 권위 있는, 어쩌면 유일한 국내 페소아 연구자다. 그는 “페소아를 포르투갈어로 읽고 싶어서” 포르투갈 포르투대학에서 페소아 문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는 ‘페소아 빠’다. 페소아 산문집 ‘페소아와 페소아들’(2014)을 번역하고 산문집 ‘페소아: 리스본에서 만난 복수複數의 화신’(2018)을 썼다.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김 작가를 만났다.

페소아는 시, 산문, 정치평론, 희곡까지, 글을 가리지 않고 썼지만, 스스로를 시인이라 규정했다. 미완의 시를 합해 2,000~3,000편을 남겼다. 국내에 소개된 시집은 ‘양치는 목동’(1994)뿐이다. 그나마 절판된 지 오래다. “하지만, 아름다우면서 인쇄되지 못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뿌리들이야 땅 밑에 있을 수 있어도/꽃들은 공기 중에서 그리고 눈앞에서 피는 거니까.”(페소아 시 ‘만약 내가 일찍 죽는다면’ 일부) 페소아의 예언이 이제야 제대로 도착한 걸까. 김 작가가 페소아 시선집 세 권을 최근 한꺼번에 냈다.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이상 민음사)와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문학과지성사)다.

모두 포르투갈어 원역본이다. 페소아의 시는 어렵기로 이름 났다. 시를 ‘이명(異名)’으로 썼다는 사실까지 더하면, 페소아의 시는 더욱 난해해진다. 이명은 이름, 나이, 외모, 직업, 기질, 문체가 모두 다른, 페소아가 창조한 가상의 작가 혹은 문학적 정체성. 페소아는 평생 100명 넘는 이명을 만들었고, 위대한 시인으로 인정받은 이명은 ‘페소아’를 합해 5명쯤이다. 페소아의 시 세계가 ‘신비의 미로’라 불리는 이유다. 민음사본엔 알바루 드 캄푸스, 알베르투 카에이루, 리카르두 레이스부터 페소아까지, 포르투갈어로 시를 쓴 4대 이명의 시 약 120편이 고루 담겼다. 세계적 페소아 전문가들이 낸 시선집 8권에 공통적으로 실린 시들을 뼈대 삼았다. 문학과지성사본은 페소아가 본명으로 내려다 출판을 마무리하지 못한 시집 ‘시가집’에서 약 80편을 추렸다.

김 작가가 번역한 건 사실상 시인 네 명의 시. 스스로도 “무모한 도전에 가까웠다”고 했다. 놀랍게도, 그가 포르투갈어를 배운 건 2013년쯤부터다. 그는 미술보다 인문학을 더 좋아하는 서울대 미대생이었다. 글∙그림 작가를 하다 페소아에 빠졌다. 페소아를 찾아 포르투갈로 떠났다.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서인지, 페소아 같은 언어의 이명을 타고난 건지, 그는 한국어를 포함해 6개 국어를 한다. 스페인어를 하는 그는 포르투갈어를 어렵지 않게 배웠다. 아무리 그래도, 5년 만에 시집 번역이라니.

김 작가는 포르투갈에서 페소아의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미국의 페소아 권위자 리처드 제니스와 한 동안 함께 살기도 했다. 페소아의 삶으로 시를 해석했다. 그는 “발로 뛴 번역, 열정이 커버한 번역”이라고 했다. “문맥의 정확성만 염두에 두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번역했다. 내 개성이 조금도 배어들지 않게 하려 애썼다. 운율, 라임까지 살리긴 어려워서 상당 부분 포기했다. ‘위대한 작가는 최악의 번역에도 저항하는 힘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페소아라면 번역을 망쳐도 중간은 갈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내 작업이 국내 페소아 연구의 문을 여는 첫 단계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

시집은 역시나, 어렵다. ‘관통하는 뭔가’를 찾는 게 쉽지 않다. “의미나 스타일을 파악하려 하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아무 쪽이나 펼쳐 읽는 게 방법이다. 페소아에 따르면, ‘시란 결국 없는 것’이다. 이명의 ‘복수(複數)성’을 끌어안고 즐기면 된다. ‘온 우주만큼 복수가 되어라’라고 페소아는 말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왜 페소아를 읽어야 하나. “우리는 모두 조금씩 페소아다. 풍부한 내면과 다양성을 갖고 있지만 사회는 그걸 허용하지 않는다. 페소아는 닫힌 우리를 열어 준다. 페소아는 우리가 익히 예상하는 것들을 부인한다. 머리가 말랑말랑해지고 싶은 사람, 뜻밖의 것에서 위로 받고 싶은 사람에게 페소아를 권한다.”

최문선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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