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복음 7 장 | 누가복음 7장 상위 240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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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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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누가복음 7장 – 한국컴퓨터선교회

누가복음 7장 · (눅 7:1),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 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마7:28 · (눅 7: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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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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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7:7 – 다국어 성경 Holy-Bible

누가복음 7장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 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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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olybible.or.kr

Date Published: 8/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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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7: 성경 – 신약 성서 – Wordproject

장 7.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 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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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wordproject.org

Date Published: 1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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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7 KLB – 두 가지 놀라운 기적

누가복음 7. Korean Living Bible … 7 예수님은 이 모든 말씀을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가셨다. … 7 그래서 감히 나가 뵈올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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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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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묵상. 2월 21일. 누가복음 7장. – 하늘품은교회

누가복음 7장. 진짜 은혜 받은 증거는 이런 것이다. 1. 가버나움에서 백부장의 종을 고쳐주신 사건과(1~10)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주신 사건(11~17)을 다루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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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apoom.or.kr

Date Published: 3/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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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7장 주석 – 네이버 블로그

누가복음7장. ​. 7:1-10. “1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 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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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3/3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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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7 장 – 문제와 해답]

누가복음 7 장. 1. 이 백부장이 1) 유대인이 아닌 증거와 2) 교제하기를 꺼렸던 이방인임에도 유대인 장로들이 심부름을 대신해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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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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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7 | KR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마가복음 7. 7. 1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였다가 2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의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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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6/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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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단원, 셋째 날: 누가복음 7:18~50

갈대(기다란 풀)와, 보들보들하고 값비싼 옷을 입고 궁전에서 사는 사람을 떠올려 본다. 그것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누가복음 7장 24~26절을 읽으며 예수께서 침례 요한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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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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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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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누가 복음 7 장

  •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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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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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7: 성경

장 7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 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3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을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원 하시기를 청한지라

4 이에 저희가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가로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5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6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7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8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9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를 기이히 여겨 돌이키사 좇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10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강건하여졌더라

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허다한 무리가동행하더니

12 성문에 가까이 오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 죽었던 자가 일어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신대

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 보셨다 하더라

17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18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고하니

19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가로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20 저희가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말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21 마침 그 시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소경을 보게 하신지라

2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23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24 요한의 보낸 자가 떠난 후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25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26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27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예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2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하시니

29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30 오직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그 세례를 받지 아니한지라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31 또 가라사대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꼬 무엇과 같은고

32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33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34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35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 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49 함께 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매일말씀묵상. 2월 21일. 누가복음 7장. > 매일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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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7 장 . 진짜 은혜 받은 증거는 이런 것이다 .

1. 가버나움에서 백부장의 종을 고쳐주신 사건과 (1~10)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주신 사건 (11~17) 을 다루고 있습니다 . 너무 다른 두 사람인데 , 주님께서는 백부장과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나 , 또는 이방인에게나 , 비참한 삶을 벗어날 길이 없던 과부로서 외아들까지 잃어버린 여인에게나 , 동일하게 찾아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주님의 사랑은 너무도 공평합니다 . 그리고 동일합니다 . 그 사랑이 내게는 적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주님을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자기 재산을 기부하여 가버나움에 회당을 지은 백부장은 유대인의 신임을 얻고 있었기 때문에 , 유대인의 장로들이 대신 예수님께 나아와 그의 종을 고쳐주시기를 구했습니다 (4). 주님께서 그 집에 도착하실 무렵, 백부장은 다시 벗들을 보내어 ( 종들을 보낸 것이 아니다 ) 주님이 자기 집에 들어오시거나 , 자기가 주님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 오직 말씀만으로 종을 고쳐달라고 청하였습니다 (6~7). 주님께서는 그의 청대로 종을 고치셨고,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그를 칭찬하셨습니다(9).

3. 주님은 이어 나인성으로 가셨는데 , 거기서 과부의 죽은 독자를 메고 나오는 장례 행렬을 보시고 , 과부를 불쌍히 여기시며 , 관에 손을 대셔서 죽은 아들을 살려주셨습니다 . 이 여인은 주님께 간청하지도 않았지만, 주님께서는 그녀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녀의 구하지 않은 소원을 성취해주셨습니다. 이렇듯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자격을 갖추거나, 조건을 만족시켰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히 여기심,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으로만 주어집니다. 인간은 어떤 지위와 권세를 가졌든지 , 어떤 처지에 놓였든지 , 다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 오늘 나 역시도 이 은혜가 너무도 필요한 자입니다.

4. 세례 요한은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예수님께서 진짜 메시아신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고 ,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 그것을 묻게 하였습니다 (18~23). 주님은 주님이 지금 하는 일들이 이사야 61:1~2의 성취임을 말씀하심으로써 확인시켜 주십니다.

5. 의심과 불신은 다릅니다 . 오스왈드 챔버스의 말입니다 . “ 의심은 마음의 문제다 . 우리는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 왜 그런 일을 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 그러나 불신앙은 의지의 문제이다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행하라고 하신 일에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 의심은 반드시 그 사람이 틀렸다는 표시가 아니라 그가 생각하고 있다는 표시이다 .” 세례 요한은 불신앙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다시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의문과 의심은 신앙에 있어 유익이 있습니다.

6. 주님은 요한의 제자들이 떠난 후에 무리들에게 요한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 사람들이 광야에 나간 것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아니라,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 요한을 보러 나간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부드러운 옷 입고 궁궐에 있는 사람이 아닌, 약대 털옷을 입은 거친 사람 요한을 보러 갔었습니다. 그는 선지자였습니다. 구약의 어떤 선지자보다 나은 자이고, 주님을 직접 보고 소개했다는 점에서 요한보다 나은 선지자는 이전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 사역을 다 알고 믿는 세대 중에서는 , 극히 작은 자도 이렇게 의심하는 세례 요한보다 더 나은 은혜를 입고 사는 것입니다 . 옛 언약의 그림자에 갇혀 있는 요한이 , 새 언약의 영광을 보는 자보다 나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

7. 많은 사람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으나, 끝까지 세례 받기를 거부했던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에 대하여, 주님은 피리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울지 않는, 도무지 장단을 맞추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하셨습니다(32). 참 지혜는 그 지혜에 복종하여 지혜를 좇는 자들인 요한과 예수님의 제자들에 의해 그 옳음이 입증됩니다(35).

8. 죄인인 한 여인이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36~50) 이것은 마태 , 마가 ,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주간에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했다고 칭찬을 받은 사건과는 다른 사건일 것입니다 . 향유를 부은 사건은 최소 3번입니다. 주님은 시몬이란 바리새인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계셨고, 이 여인은 ‘죄를 지은 한 여자’라고 묘사된 것으로 보아 아마 창녀였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당혹스러운 사건은 바리새인 시몬과 죄인인 여인을 강렬하게 대조시킵니다. 주님은 두 사람의 태도를 비교하심으로써 신앙의 도리를 가르쳐주십니다. 주님을 더 사랑한 사람은 여인인데, 그것은 더 많이 용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사랑을 믿음이라고 표현하십니다(50). 그러나 바리새인 시몬은 자기가 주님을 대접하고 있으며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여겼겠지만(이런 인식과 자세는 은혜를 부정한다!), 여인은 자기가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여겨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고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 여인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평가는 물론, 여인 자신도 스스로 자격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겠지만, 주님은 이 여인을 높이셨고 칭찬하셨습니다. 기억하세요. 은혜는 이런 자의 것입니다.

9. 은혜를 받았다 하는 증거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 은혜를 받아서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바리새인 시몬처럼 자기의 옮음과 자기의 자랑을 가지고 주님을 만나지 않습니다 . 자기가 주님을 대접하고 있다거나 , 자기가 주님을 위해서 뭔가를 해드리고 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 오히려 은혜를 받은 사람은 겸손해서, 자기 자신이 얼마나 주님 앞에 합당하지 않은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 받은 자들은 하나 같이 말이 없습니다 .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 백부장은 주님 앞에 설 자격조차 없는 이방인임을 스스로 인정하였고. 나인성의 과부도 한 마디 말이 없이 없습니다. 향유를 부은 죄인인 여자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는 다른 문제입니다. 백부장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은 인물이었고, 죄인인 여인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둘 다 은혜를 입었습니다. 사람들의 평가보다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여기는가가 중요하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어떻게 보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높이는 교만한 자를 주님은 대적하고 낮추십니다 . 당신은 은혜 받은 자입니까 ? 스스로 낮추고 있습니까 ? 아니면 교만하여 자랑하고 자신을 드러내기를 기뻐합니까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 자신을 높이고 자랑하려고 하는 교만의 싹은 꺾어주시고, 평생토록 겸손하며, 평생토록 하나님을 사랑하는 은혜를 주옵소서.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잘 되거나 힘들거나, 높거나 낮거나,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복된 은혜와 감사와 감격이 넘치게 하옵소서. 더욱 주님을 사랑하는 은혜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누가복음7장 주석

누가복음7장

7:1-10. “1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 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3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4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5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6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7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8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9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10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

본문은 믿음에 대하여 교훈 해 주고 있다. 어떤 백부장이 있었다. 그에게 사랑하는 종이 있었는데 그 종이 지금 병들어 죽어가고 있었다. 백부장은 종을 고쳐주기 위하여 그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모두 하였지만 종의 병은 점점 더 심각해 갔다. 이때 백부장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유대인 장로 몇 사람을 주님께 보내어 자기 종을 고쳐 주시기를 청했다. 주님께서 백부장의 종을 고쳐 주시기 위하여 그 집 가까이 이르렀을 때, 백부장은 또 다른 친구들을 보내어 주님께서 자기 집에 오심을 감당하지 못하겠으므로 계신 곳에서 말씀해 주심으로 종의 병을 고쳐 주시기를 구했다. 주님은 이와 같은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함께 있는 자들에게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라고 말씀하셨다. 여기 “이 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다”는 말은 “이렇게 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백부장의 믿음을 통하여 큰 믿음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다.

주님께서 감동하실 수 있는 큰 믿음이란 어떤 믿음인가? 그 믿음은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구원의 주님께 나가는 믿음이다. 우리가 주님께 나가고자 할 때 거기에는 언제나 여러 가지 장애들이 있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향하여 나가고 있을 때 그들 앞에 여러 장애물들이 있었던 것과 같다. 그들 앞에는 홍해, 광야, 아말렉, 요단 등이 가로 놓여 있었고 이런 것들은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장애들이었다. 백부장은 종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주님께 나가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로마인이다. 당시 로마는 이스라엘을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대하여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로마인이 이스라엘 사람을 찾아가 무엇을 부탁한다는 것은 그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이스라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로마인이 찾아오는 것을 반가워하지 않았다. 비록 당시 이스라엘이 로마에 정치적으로 지배당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변함없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로서 자신들에게 로마는 이방인이었을 뿐이다. 이처럼 로마인과 이스라엘인 사이에는 넘지 못할 민족적 장벽이 놓여 있었다. 백부장은 이 장벽을 넘지 못하고는 주님께 나갈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모든 시대 처음 주님께 나가고자 자는 사람들에게도 이와 같은 장애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삶(믿음의삶)에 대한 두려움, 낮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과 그들에게 자신이 알려지는 것 등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 있고 가족들의 반대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들이 이와 같은 외적인 장애들을 넘는다 할지라도 또 다시 내적인 장애들을 직면할 수도 있다. 영적인 무관심이나 또는 나태함 등은 주님께 나가고자 할 때 내적으로 부딪치는 또 하나의 장애가 된다. 믿음은 이와 같은 장애들을 극복하고 앞으로 주님을 향하여 앞으로 나가는 행위들로 표현 된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바로가 출애굽을 반대해도 홍해와 광야가 가로 놓여 있더라도 약속의 땅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갔듯이 구원의 주님을 향하여 앞으로 나갈 때 길이 열린다. 주님은 믿음으로 나가는 자에게 언제나 앞길을 열어 주시기 때문이다.

또한 백부장이 가지고 있던 믿음은 주님의 주권에 대해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었다. 그는 주님께 종의 병을 치료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었고 그런 능력을 사용하는 주권이 주님께 있다는 것을 믿었다. 주님께서 그들의 간청에 따라 그 집을 향하고 계실 때 백부장은 또 다른 친구들을 주님께 보내어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7:6,7)”라고 말했다. 이 말은 이방인으로서 감히 유대인인 주님을 자신의 집에 모실 수 없다는 의미다. 그래서 그는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라고 주님께 청했다. 백부장의 이 같은 말은 주님께서 자신의 집에 오지 않으실지라도 말씀만 해 주신다면 종의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의 고백이었다. 이 고백이야말로 백부장이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주님은 이와 같은 백부장의 믿음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7:9)” 이 말씀은 마땅히 주님을 구주(메시아)로 신뢰하여야 할 이스라엘이 이방인인 백부장만큼도 주님을 신뢰하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하시며 책망하신 말씀이다.

또한 백부장의 믿음은 절대적인 의탁으로 나타났다. 배를 타고 항해하는 사람은 그 배에 자신을 온전히 의탁해야한다. 그렇게 하여야 안심하고 항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부장은 주님께 종을 구원해 주시기를 구하고 그 문제를 온전히 주님께 맡기었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7:7,8)” 백부장의 이와 같은 의탁에는 주님께서 종을 고쳐 주실 것이라는 깊은 신뢰가 있었다. 그러므로 백부장은 평안을 누릴 수 있었다.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는 자는 언제나 평강을 누린다. 주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서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저가 주를 의뢰함이라(사26:3)” 쉼이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언제나 주님께 우리 자신을 의탁하는 믿음 안에서 쉼을 얻는다.

주님은 백부장을 통하여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셨다. 주님을 구원의 하나님으로 신뢰하고 그 믿음으로 모든 장애를 뛰어 넘으며 주님께로 나가는 믿음, 주님에게 구원할 힘이 있음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믿음, 그리고 주님께 간구 한 것을 주님의 뜻에 전적으로 의탁하는 믿음, 이와 같은 믿음이 주님을 감동시키는 큰 믿음이다. 주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기쁘게 받으셨고 그가 구한 대로 종의 병을 고쳐 주셨다.

7:11-17. “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12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17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주님께서 나인성으로 가실 때, 길에서 장례 행렬을 만났다. 죽은 자는 나인성에 살고 있는 한 과부의 독자였다. 주님은 과부의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그를 불쌍히 여기심으로 그에게 “울지 말라”고 말씀하신 후, 청년의 시신이 있는 관으로 가까이 가사 그곳에 손을 얹으시고 죽은 청년을 향하여 “청년아 내가 내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죽었던 청년이 살아났다. 본문은 이 모습에 대하여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7:15)”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무리들은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났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이처럼 주님이 자기들 가운데 계신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는 증거라고 믿었다.

여기 나인성은 가버나움에서 하룻길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는 곳으로 엘리사가 수넵여인의 아들을 살린 수넵 지방과 모레 언덕(The Hill of Moreh)을 사이에 있었다. 그러므로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기적에 대하여 낯선 사람들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들은 주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보며 엘리사의 기적을 회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개인이나 한 공동체가 믿음의 유산을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은 언제든지 또 다른 믿음을 수용할 수 있는 믿음의 환경을 마련해 준다. 나인성에 이와 같은 믿음의 환경이 마련된 것은 믿음의 사람 수넵여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공동체가 믿음의 사람을 가지고 있을 때, 그로 인하여 그 시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도 믿음의 환경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 공동체가 자신들의 환경을 믿음의 환경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이다.

여기 나인성에서 일어난 기적은 구원을 필요로 하는 인간에 대한 주님의 심정을 가장 잘 묘사해 주고 있다. 본문을 보며 우리의 심상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장례 행렬일 것이다. 장례 선두에서 직업적으로 곡하는 자들은 독자를 잃어버린 과부의 슬픔을 더해 주었을 것이다. 이 슬픈 장면(場面)이 우리의 마음에 깊이 파고드는 것은 이 슬픔이 단순히 한 과부의 슬픔으로만 생각되지 않는 것은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마치 장례 행렬을 통하여 묘사되는 슬픔과 같기 때문일 것이다. 주님은 과부의 슬픔을 깊이 동정하시고 그에게 “울리 말라”고 위로해 주셨다. 그리고 주님은 그의 죽은 아들을 다시 살려 주셨다. 이 짧고 단순한 이야기는 장례 행렬로 묘사 할 수 있는 인간의 슬픈 삶의 여정에 대하여 주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심정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주님은 이처럼 슬픈 삶의 여정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에게 대하여 깊은 동정심을 가지고 계시다. 그리고 이 동정심은 주님으로 하여금 우리의 삶에 참여하게 하여 우리를 슬픔으로부터 구원해 주셔서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시는 원천이 된다. 선지자 스바냐는 이런 주님의 긍휼하심을 가장 아름다운 시적인 언어로 이렇게 묘사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나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3:17)”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대하여 “불쌍히 여기다”라고 하시는 말씀은 주님의 우리에게 대한 심정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께 나갈 때 그의 긍휼하심을 구하는 것은 구원을 바라는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들 가운데 가장 합당한 태도일 것이다.

7:18-23. “18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니 19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20 그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21 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23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주님은 사람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7:23)”라고 말씀 하셨다. 여기 “실족하다”라는 말은 “함정에 빠지다” “덫에 걸려 넘어지다”는 뜻이며, 주님으로 인하여 실족한다는 것은 영적으로 실족한다는 의미다. 우리는 삶의 여정에서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하여 실족할 때가 있지만 다른 어떤 것으로 인한 실족함보다 신앙 문제로 인한 영적 실족함이 우리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다. 다른 이유들로 인하여 오는 실족함은 신앙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신앙의 문제로 인하여 오는 실족함은 쉽게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기도해야 한다.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도 신앙의 문제로 인하여 실족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감옥에 갇혀 있던 세례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을 통하여 주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소식을 통하여 들은 주님의 모습은 세례 요한이 지금까지 생각해 오던 메시야로서의 주님의 모습과 달랐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제자들을 주님께 보내어 “오실 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고 물었던 것이다. 세례 요한의 물음은 “주님! 당신이 참으로 세상에 오실 구주이십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라는 의미다. 주님은 세례 요한의 물음에 대하여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7:22)”라고 말씀 해 주시며, 또한 그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다.

세례요한은 주님으로 인하여 실족해 있었다. 세례요한은 주님의 길을 예비한 자다. 그는 광야에서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함으로 사람들에게 구주를 맞이하도록 준비시켰고, 또한 세상에 처음으로 주님을 구주로 소개한 자였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세례요한을 여인이 낳은 사람들 중에 가장 큰 자라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 세례요한이 지금 주님으로 인하여 실족할 위기에 처해 있다. 이것은 영적 문제로 인하여 오는 실족함은 영적으로 어린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성숙한 사람에게도 올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줄로 생각하고 있을 때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 우리를 영적으로 실족하게 하는 것은 주님에 대한 우리의 오해다. 세례 요한은 영적인 사람이었으나 주님에 대하여 바르게 알지 못했다. 그는 다른 유대인들이 주님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던 것처럼 주님을 정치적인 해방자로서, 이스라엘을 모든 압제자들로부터 자유하게 해 주실 분으로 알았다. 그러나 소문을 통하여 주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들었을 때 자신이 생각하고 있었던 주님과는 다른 분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주님이 참으로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메시아인지 의심하게 되었고, 자신의 제자들을 주님께 보내어 그 사실을 확인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주님이 성경에서 계시해 주고 있는 주님과 다를 때 우리는 영적으로 실족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구약에서 이와 같은 한 예를 찾을 수 있다. 아람의 나만은 나병으로 인하여 고통 가운데 있었을 때 그의 종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야를 찾아가면 자신의 병이 치유함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많은 예물을 가지고 엘리야를 찾아갔다. 그는 아람의 관리라는 신분으로 찾아가면 크게 환영을 받을 수 있고 특별히 준비한 거룩한 의식을 통하여 자신의 병을 치유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선지자 엘리야를 찾아갔을 때 그의 기대와는 완전히 달랐다. 나와서 맞이해 주지도 않았고, 치유를 위하여 특별한 의식도 베풀어주지도 않았다. 선지자는 다만 그에게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면 나을 것이라고 말 해 주었을 뿐이었다. 나만이 엘리야에게 기대했던 것과 실제로 엘리야가 그를 위해 해 준 것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나만은 실족했다. 그는 선지자 엘리야에 대하여 대단히 분노했고 다시 아람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곁에 있는 지혜로운 신하의 권고로 인하여 선지자의 말에 따라서 요단에 가서 몸을 씻음으로 나병으로부터 치료함을 받았다. 여기 중요한 것은 나만이 자기 생각을 버리고 선지자의 말을 따랐을 때 그가 치유함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만의 예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모든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 대부분도 주님을 자기중심적으로 이해함으로 영적으로 실족한다.

주님은 영적으로 실족한 세례요한에게 자신을 바르게 계시해 주심으로 그의 실족함으로부터 구원해 주셨다. 이와 같은 사실은 주님을 바르게 아는 것만이 영적 실족함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부지런히 배우고 주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을 새롭게 할 때 영적 실족함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7:24-35. “24 요한이 보낸 자가 떠난 후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25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26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니라 27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2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29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30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그의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31 또 이르시되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 32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33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34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35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주님을 떠나갔을 때 주님은 무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니라(7:25,26)”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하여 무리에게 광야에 나갔던 목적을 물으심으로 그들로 하여금 잃어버린 메시지를 다시 찾도록 하셨다.

그들이 잃어버린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세례요한이 전한 메시지였다. 그들은 선지자가 전하는 말씀을 듣기 위하여 광야에 나갔지만, 자신들이 어째서 그곳에 왔는지조차 잊어버리고 다시 돌아왔다. 만일 그들이 진정으로 선지자의 메시지를 듣기 위하여 광야로 나갔다면 선지자가 증언한 메시야에 대하여 무관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들에게 세례요한이 전한 메시야에 대하여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라고 물으신 것이다.

주님은 계속하여 그들에게 만일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려고, 또는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다면 그들의 수고는 헛될 뿐이라고 말씀 해 주셨다. 이스라엘의 무리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나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보기 위해서 광야에 갔다면 그것은 잘못 선택한 것이었다. 광야에는 세레요한이 전하는 메시지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는 광야에 갔었음에도 불구하고 세례요한이 전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즉 그들의 몸은 광야에 나갔지만 그곳에 간 목적을 상실한 것이었다. 그래서 주님은 무리에게 또 한 번 광야에 나갔던 이유를 물으시고 그들이 잃어버린 메시지가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은 주님의 말씀은 환경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영적이며 삶의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모든 시대 사람에게 큰 도전이 된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광야에 갔지만 선지자의 메시지를 듣지 못했던 것처럼 오늘의 시대에도 예배에 참여하여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고, 봉헌하고, 말씀을 듣지만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스라엘의 무리들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본질적인 것을 잃어버린 모든 시대를 향하여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라고 물으시는 것이다.

주님은 무리에게 세례요한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7:28)” 세례요한은 메시야의 길을 예비한 자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이것보다 영광스런 일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주님은 세례요한에 대하여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고 말씀하셨다. 즉 세례요한이 여자가 낳은 자들 가운데 가장 큰 자였지만 천국에서 극히 작은 자가 세례요한보다 더 크다는 것은 그도 세상에 사는 동안 유한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나 세상과 대조되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도 세상에 존재하는 제한을 받지 않는다. 즉 우리가 세상에서는 극히 작은 자로 여겨질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지극히 큰 자로 인정받는다는 의미다.

주님은 세례요한의 메시지를 거부하고, 메시야이신 자신의 메시지조차 거부하고 있는 이 세대에 대하여 장터에서 놀고 있는 철없는 아이들의 놀이에 비유하셨다. 아이들은 장터에서 잔치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 가운데 한 편은 잔치의 흥을 돋우기 위하여 피리를 불었다. 이때 다른 한편에 있는 아이들은 피리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어야 잔치놀이가 이루어 질 수 있었는데 춤을 추어야 할 아이들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므로 춤을 추지 않는다. 이렇게 할 때 잔치 놀이는 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이들은 이제 장례놀이를 한다. 한편의 아이들은 죽음의 슬픔을 나타내기 위해서 애곡 하였다. 그러나 다른 편의 아이들은 가슴을 치지 않는다. 이처럼 다른 편의 아이들이 놀이에 적절한 반응을 나타내지 않음으로 결국은 이 놀이도 깨어졌다.

주님은 이와 같이 동일한 내용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두 개의 비유를 말씀하신 후 이 두 개의 비유는 바로 세례요한의 메시지에 대하여 반응하는 무리들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며 또한 주님 자신의 메시지에 대하여 반응하고 있는 무리들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말씀해 주셨다. 실제로 세례요한이 와서 금욕적인 방법을 취하며 무리들에게 메시야를 영접하기 위하여 회개하라고 메시지를 전했을 때 사람들은 귀신들렸다고 말하며 그의 메시지를 거절했다. 그러나 주님은 세례요한과는 반대로 소외된 자들을 찾아서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므로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시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셨는데 사람들은 이런 주님에 대하여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주님의 메시지를 거절했다. 그러나 무리가 거절한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하락해 주신 가장 귀한 은혜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구원의 메시지를 거부하게 하였는가? 그들의 자아였다. 죄로 인하여 부패해진 자아는 영적인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오직 육적인 안락함만을 찾는다. 그러므로 영적인 것이라면 금욕적이든 은혜로운 것이든 어느 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세례요한의 메시지를 거절한 것은 그의 메시지가 금욕적인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 아니고 영적인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만일 이스라엘이 세례요한의 메시지를 거절한 요구가 단순히 금욕적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면 은혜로운 방법으로 하나님 나라를 전한 주님의 메시지는 환영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거부한 것은 영적인 것에 있었기 때문에 세례요한이 금욕적 방식으로 영적인 것을 전한 메시지도 그리고 은혜로운 방식으로 영적인 것을 전한 주님의 메시지도 모두 거부한 것이다. 여기 중요한 교훈은 세상이 주님을 거부하는 것은 결코 방법적인 문제로 인한 것이 아니고 영적인 문제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신앙의 표현은 시대마다 다양하게 나타났다. 장로교적인 신앙 형식이 그 시대의 주류가 되었던 적이 있었고 오순절교적인 신앙의 형식이 그 시대의 주류가 되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어떤 형식으로 신앙을 표현하든지 그것이 영적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세속적인 사람들은 어떤 신앙의 형식이든지 영적인 것을 요구한다면 거부한다. 이런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영적 분별을 할 수 있도록 이끌 어 줄 것이다.

주님은 이 비유의 결론으로서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7:35)”고 말씀하셨다. 문맥의 흐름에 비춰볼 때 여기 지혜란 영적인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세례요한의 메시지와 주님의 메시지는 모두 여기 지혜에 속하는 것들이다. 이런 메시지들은 전달하는 형식이 어떠하든지 반드시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한다. 비록 세례요한이 먹고 마시는 것을 금하는 금욕적인 형식을 취할지라도 그 메시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에 이르게 하여 메시야를 영접하도록 인도하고 또한 주님의 메시지가 사람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은혜로운 형식을 취할지라도 그 메시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여 은혜 가운데 살도록 인도한다. 그러므로 이런 의미에서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하심을 얻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것과 영적이지 않을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로 인도한다. 즉 영적인 것은 그 형식이 어떠하든지 반드시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한다. 그러나 육적인 것은 그 형식이 어떠하든지 사람들을 부패한 곳으로 나가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행위가 영적인지 아닌지를 분별하기 위하여 그 결과를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주님께서도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20)”고 말씀하신 것이다.

7:36-50.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49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본문은 한 바리새인이 주님을 초청하였을 때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두 인물을 통하여 주님은 우리에게 형식적인 신앙과 참된 신앙의 모습을 보여 주시고 이와 같은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지를 말씀해 주고 있다.

우리의 주님에 대한 신앙은 형식적이거나 또는 참된 것일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은 형식적이거나 또는 참되거나 둘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의미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의 신앙이 한번 형식적이거나 참되다면 언제까지나 그런 상태에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주님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따라 언제나 우리의 신앙은 이 두 사이를 오고 갈 수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항상 참되고 진실한 신앙이다. 주님은 본문에서 두 사람을 통하여 우리에게 신앙의 양면성을 보여 주시고 그것을 거울삼아 참된 신앙으로 성장해 가기를 요청하신다. 형식적인 신앙과 참된 신앙의 모습은 각각 어떠한가?

우리는 바리새인의 모습 속에서 형식적인 신앙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리새인은 주님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구주로서 존경하여 초청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주님을 초청해 놓고도 이스라엘 가정에서 손님을 영접할 때 행하였던 가장 일반적인 예의도 갖추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손님을 맞이할 때 세 가지 관습에 따랐다. 하나는 손님에게 발을 씻을 물을 주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유목민들로서 거친 땅을 샌들을 신고 다니기 때문에 집에 들어올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발을 씻을 물이었다. 그러므로 손님에게 물을 제공한다는 것은 손님을 맞이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예의였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손님에게 입맞춤으로 존경을 표했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 주었다. 이와 같은 관습이 그 나라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예(禮)였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주님을 손님으로 초청하였지만 이러한 예들 중 한 가지도 행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얼마나 주님을 무시하였는지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는 결코 주님을 존경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태도는 당시 모든 바리새인이 주님에 대하여 가지고 있었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을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리새인이라는 말 자체가 일반 사람들과 “분리된 자” “구별된 자”를 의미하고 있다.

바리새인은 이스라엘이 헬라화 될 때 그것에 반대하여 이스라엘 민족성을 지키려고 했던 자들로서 스스로 구별된 자라고 생각했고 그들만이 이스라엘의 참된 공동체로 생각했다. 그들은 율법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 지키려 했고 그것으로 인하여 항상 자신들을 거룩한 존재로 생각했다. 이와 같은 의식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기준(義)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게 했고 자신들에 대해서는 언제나 특권의식을 갖게 했다. 이런 특권 의식은 주님을 구주로 보지 못하게 하였고 주님을 초청해 놓고도 초청한 손님에 합당한 대접을 할 수 없게 한 것이다.

그러면 어쩌서 바리새인은 주님을 초청하였는가? 어쩌면 그는 잘 알려진 선생을 자기 집에 초청하여 사람들에게 자신을 과시하고자 했거나 아니면 당시 바리새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으로부터 흠잡을 것을 찾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주님을 이와 같이 대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주님께서 바리새인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해 주기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였지만 우리도 바리새인처럼 주님을 무시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바리새인이 주님을 초청하였을 때 주님은 바리새인이 어떤 사람인지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초청에 응하셨다. 이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위함이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을 구주로 초청했을 때 주님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복된 삶으로 인도해 주시기 위하여 우리의 구주로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이와 같은 주님의 사랑을 잊어버리고 바리새인과 같이 주님을 무시하며 산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의 매일의 삶을 살펴보면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주님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하루 생활 가운데 주님과 얼마나 함께 하고 있는가? 무슨 일을 하거나 결정할 때 그 분의 말씀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이처럼 하루의 삶을 돌아볼 때 우리들 가운데 대부분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살고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이야말로 우리가 주님을 무시하며 살고 있다는 증거다. 다만 우리가 주님을 필요로 할 때만 바리새인처럼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말할 때뿐이다. 주님은 바리새인의 모습을 통하여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여 주심으로 주님에 대한 우리의 그릇된 행위를 돌이킴으로 참된 신앙에 이르기 원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또 다른 한 사람을 통하여 바리새인과는 다른 신앙의 모습을 본다. 바리새인이 주님을 초청했을 때 그 자리에는 초청 받지 않은 한 여인이 있었다. 그는 바리새인과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으며 모든 사람에게 죄인으로 알려진 여인이다. 그가 무슨 잘못으로 사람들에게 죄인으로 알려져 있는지는 모르지만 본문에는 그를 “죄를 지은 한 여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죄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주님을 찾아갔다. 우리는 당시 주님을 초청한 바리새인 가정의 분위기를 상상해 볼 때 이 여인이 그곳으로 주님을 찾아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바리새인의 집에는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그의 친구들만 초대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의로운 사람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조차도 그들에게는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 하물며 동네에서 죄를 지은 자로 알려진 한 여인이 초대 받지도 못한 그곳에 갔다고 생각해 보라. 그 집에 초대 받은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멸시를 받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주님을 만나기 위하여 그 집에 갔다. 참된 신앙은 이와 같이 주님에 대한 열정으로 나타난다. 어떤 어려움과 장애가 있더라도 주님을 만나 뵐 수 있다면 그것을 극복하고 나간다. 그러므로 여인의 행동은 그 자체가 믿음이었고 그 여인의 이와 같은 행동은 모든 시대 믿음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다.

또한 이 여인에게는 주님에 대한 감동이 있었다. 성경은 이 여인에 대하여 우리에게 어떤 정보도 주지 않고 있다. 다만 그가 죄를 지은 자라는 사실만을 말해 주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그는 사마리아 여인처럼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고 있었지만 주님을 만나 자유함을 얻은 자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드려도 주님의 크신 은혜를 갚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여인에게는 이처럼 은혜에 대한 감동이 있다. 이 감동이 여인으로 하여금 주님을 위하여 소중한 옥합을 깨뜨리게 한 것이다.

우리는 더 귀한 진주를 얻기 위하여 우리의 모든 소유를 팔수는 있지만 보다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옥합을 깨트린다는 것은 주님의 주님 되심을 고백하는 믿음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2020. 9. 5. 서신교회 목사 양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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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였다가 2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의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3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어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4 또 시장에서 돌아 와서는 물을 뿌리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준행치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6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9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10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11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13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14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15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16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17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19 이는 마음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에 들어가 뒤로 나감이니라 하심으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 20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하나 숨길 수 없더라

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리니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찌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경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10단원, 셋째 날: 누가복음 7:18~50

예수께서는 침례 요한을 칭찬하시고, 그가 당신의 성역을 위해 길을 예비했음을 증거하셨다.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과 함께 식사를 들고 계실 때, 회개하는 한 여인이 예수님에 대한 신앙과 사랑을 나타내 보였다.

누가복음 7장 29~35절 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었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은 그분의 가르침을 거부했다고 나온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가르친 것이든, 침례 요한이 가르친 것이든에 관계없이 그들이 진리를 거부했다고 설명하셨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누가복음 7장 28절 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수님은 하나님 왕국에서 권리가 가장 작은 분으로 간주되었으며, [외형적으로 보기에] 그분을 선지자로 믿기에는 자격도 가장 작은 분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분은 마치 ‘너희 중에 극히 미약한 자로 여겨지고 있는 자는 요한보다 큰 자이니, 그는 나니라.’하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2007], 82쪽 )

예수께서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하리라”( 누가복음 7:27 )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보다 수백 년 전에 기록된 “[메시야] 앞에서 길을 준비할” “사자”( 말라기 3:1 )에 대한 예언을 인용하신 것이었다. 이들 성구에서 다음을 알 수 있다. 침례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을 위해 길을 예비하고 그분에게 침례를 베풀도록 예임된 선지자였다.

예수께서는 침례 요한이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 누가복음 7:26 )라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7장 27~28절 을 읽으면서, 침례 요한이 선지자들 가운데서도 특별한 이유를 찾아본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갈대와 달리, 침례 요한은 자신의 간증과 사명을 실천하는 일에서 굳건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광야에서 살았으며, 낙타 털로 만든 매우 거친 옷을 입었다. 요한은 육체적인 편의를 추구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원했다.

갈대(기다란 풀)와, 보들보들하고 값비싼 옷을 입고 궁전에서 사는 사람을 떠올려 본다. 그것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누가복음 7장 24~26절 을 읽으며 예수께서 침례 요한에 대해 뭐라고 가르치셨는지 찾아본다.

침례 요한에 대해 기억나는 사실을 최대한 많이 경전 학습 일지에 적는다.

누가복음 7:36~50 예수께서 바리새인 시몬과 함께 식사하시는 동안, 한 여인이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기다

여러분은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지 궁금해해 본 적이 있는가?

누가복음 7장의 나머지 부분을 공부하면서, 여러분이 용서받을 수 있을지 알고자 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진리들을 찾아본다.

누가복음 7장 36절에는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서 베푸는 잔치에 초대했다고 나온다. 이런 잔치에서 손님은 낮은 식탁 둘레에 있는 방석에 앉거나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발은 식탁 바깥쪽으로 뻗는다. 또 가난한 사람들이 잔치에서 먹고 남은 음식을 가져가는 일이 허용되었기 때문에, 초대받지 않은 사람들이 잔칫집에 들어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제임스 이 탈매지, 예수 그리스도, 265쪽 참조)

누가복음 7장 37~39절을 읽으면서, 이 잔치에 초대도 받지 않은 채 들어온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본다.

그 여인이 구주의 발을 씻고,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서 그분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 보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향유 담은 옥합”(누가복음 7:37)은 값비싼 향유가 담긴 병이었다.

누가복음 7장 39절에 따르면, 시몬은 그 여인이 하는 행동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가?

시몬의 생각을 알아차리신 예수께서는 채무자 두 사람과 채권자 한 사람에 관한 비유를 가르치셨다. 채권자는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고, 채무자는 돈을 빌리는 사람이다. 채무자는 채권자에게 돈을 갚기로, 또 만일 갚지 않으면, 감옥에 가겠다는 합의를 한다.

누가복음 7장 40~43절을 읽으면서, 비유에 나오는 각 사람이 누구를 나타내는지 생각해 본다.

다음 도표를 경전 학습 일지에 그린다. 비유에 나오는 각 사람이 누구를 나타내는가에 따라 바리새인 시몬, 여인, 예수님을 빈칸에 적는다. (“채무자” 난에는 3번 과제에 대한 답을 적을 수 있도록 공간을 남겨 둔다.)

채권자 = 오십 데나리온을 빚진 채무자 = 오백 데나리온을 빚진 채무자 =

이미지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임스 이 탈매지 장로는 예수님 시대에 잔치를 베푸는 주인이 일반적으로 손님들에게 보이는 환대에 관해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귀빈들에게는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그 당시의 습관이었다. 즉 귀빈을 환영의 입맞춤으로써 맞아들이고 발에 묻은 먼지를 씻을 물을 떠다 바치며 머리와 수염에 바를 기름을 준비하는 것이 상례였다.”(예수 그리스도, 264~265쪽)

누가복음 7장 44~46절을 읽으면서, 시몬이 예수님을 자신의 잔치에 맞이한 방식과 그 여인이 예수님을 대한 방식 사이의 차이점을 찾아본다.

경전 학습 일지에 그려 둔 도표에, 시몬이 예수님을 대한 방식과 그 여인이 그분을 대한 방식 사이의 차이점 몇 가지를 해당 난에 적는다.

예수께서는 시몬을 오십 데나리온을 빚진 채무자에 간접적으로 비유함으로써 그도 또한 죄를 용서받아야 할 필요가 있음을 넌지시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7장 47~50절을 읽으면서, 그 여인이 어떤 것 때문에 용서를 받을 수 있었는지 알아본다. 원한다면, 찾은 내용에 표시한다.

이미지 십이사도 정원회의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그 여인의 신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실상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녀는 죄가 많지만 나를 믿고, 죄를 회개했으며, 내 제자들에게서 침례를 받았으므로 그녀의 죄는 침례의 물속에서 모두 씻기었느니라. 이제 그녀는 한때 불결했으나 지금은 깨끗해진 사람으로서 무한한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나를 찾아온 것이라. 그녀의 감사는 끝이 없고 그 사랑은 측량할 수 없나니, 이는 그녀가 사함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니라.’”(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 vols. [1965–73], 1:265)

이 기사에서 배울 수 있는 몇 가지 원리는 다음과 같다. 신앙을 행사하여 주님께 사랑과 헌신을 보일 때, 우리는 그분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 주님의 용서를 받을 때, 우리는 그분을 한층 더 사랑하게 되고 그분을 섬기고자 하는 소망으로 가득 차게 된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엘 앤더슨 장로는 우리 모두가 받을 수 있는 사랑과 용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간증했다.

이미지 “이 대회에 참석한 수만 명의 사람들은 각자 개인적인 합당함과 의로움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는 우리 모두의 축복입니다. 우리 각자는 우리의 죄를 용서받음으로써 구주의 자비로운 팔을 느껴야 합니다. 수 년 전, 저는 어떤 사람을 만나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만나기 오래 전에 그는 방탕한 삶을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잘못된 선택 때문에 그는 교회 회원 자격을 상실했습니다. 이제는 교회로 돌아온 지 오래되었으며 계명을 충실히 지키고 있었습니다만, 과거에 했던 행위들이 계속 뇌리에 남아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와 만났을 때 성약을 위반한 일에 대한 수치심과 깊은 후회를 그에게서 느꼈습니다 접견한 다음에 저는 그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신권 축복을 주었습니다. 입을 떼기도 전에 저는 그를 향한 구주의 사랑과 용서를 느꼈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축복이 끝난 후 우리는 서로를 얼싸안았습니다. 그는 숨기지 않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지은 죄가 얼마나 이기적인 것이든에 상관없이 회개한 자를 감싸 안는 구주의 사랑의 팔과 자비는 놀라웠습니다. 저는 구주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실 수 있으며, 또한 간절히 용서하고 싶어 하신다는 점을 간증드립니다. 충만함을 안 후에 멸망을 택한 몇몇의 죄를 제외하고,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우리 각자가 죄에서 돌이키고 그리스도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특권입니까. 신성한 용서는 복음의 가장 감미로운 열매 중 하나이며, 우리 마음에 죄책감과 고통을 없애 주고, 그 대신 기쁨과 양심의 평안을 선사합니다.”(“회개하여 … 내가 너희를 고치게 하라”, 리아호나, 2009년 11월호, 40~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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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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