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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그룹 – 나무위키:대문

10년 후 1984년 말 장학엽 회장이 사망하기 전 장진호와 이복형 장봉용이 장익용 사장에게 경영권을 넘기라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러다가 1985년 장학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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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11/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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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그룹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진로그룹(眞露─)은 (주)진로를 모기업으로 하는 대규모 기업집단이었다. 현재는 1997년 4월 21일 외환위기 부도를 맞아서, 이후에는 그룹이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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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6/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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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흥망] ‘두꺼비 진로만 남기고’ 진로그룹과 장진호의 몰락

당시 롯데그룹, 하이트맥주 등 여러 기업에서 진로를 인수하려 했는데, 결국 2005년 진로는 하이트맥주(현 하이트진로)에 3조 4100억 원에 팔렸다. 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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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zhankook.com

Date Published: 10/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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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⑤장진호의 진로그룹

원숭이가 ‘두꺼비’로 바뀐 때가 이때다. 장학엽씨는 61년 진로그룹의 최초 계열사인 서광산업이라는 피혁회사를 설립하고 회장직에 올랐다. 진로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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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ilyosisa.co.kr

Date Published: 5/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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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진로그룹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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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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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진로그룹(眞露─)은 (주)진로를 모기업으로 하는 대규모 기업집단이었다. 현재는 1997년 4월 21일 외환위기 부도를 맞아서, 이후에는 그룹이 해체되었다. 2005년에는 M&A로 하이트맥주에 인수되었다.

역사 [ 편집 ]

1924년 합자회사인 우신고등학교 설립자 겸 진로그룹의 창업자인 우천 장학엽이 평안남도 용강군에 설립한[1] 진천양조상회 (眞泉釀造商會)가 그 기원이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옮겨가 낙동강, 금련소주를 생산하였고, 1954년 전쟁 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서광주조(西光酒造)를 세우면서 ‘진로소주’를 다시 생산해냈다[2]. 1961년 최초의 계열사인 서광산업(현재의 서광모드컴퍼니)을 설립하고, 1966년 진로주조로 상호를 변경했으며 1975년 사명을 진로 (기업)로 바꾸었으며 1985년 진로그룹의 설립자인 우천 장학엽이 향년 81세로 폐암이 걸려서 사망하여, 1985년 제2대 회장으로 장진호 회장이 취임했다[3].

1987년 계열사인 진로종합유통을 설립하였으며, 이 시점이 진로그룹의 유통업 진출의 신호탄이었고 1989년 본사를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으로 이전하였다.[4]

1992년 (주) 진로 (기업)와 미국의 쿠어스사가 50:50 비율로 합작한 진로쿠어스맥주를 설립했고 1994년 진로쿠어스맥주는 카스를 출시하였으며, 1996년 진로그룹은 대한민국의 제계 순위 24위로 오른 바 있었고, 진로그룹의 산하에 24개의 방계 및 계열회사가 있었다.[5]

계열사로 소주·위스키·매실주 등을 생산·판매하고 있는 진로 (기업)(주), 음·식료품에 (주)진로종합식품(소멸. 현 (주)펭귄종합식품, 현 하이트진로음료, 현 진로발효 로 분사됨)·진로쿠어스맥주(주)·진로식품판매(주)·고려양주(주)·진로지리산샘물(주)이, 화장품은 (주)쥬리아, 제조업에 (주)진로산업·(주)삼원, 도소매업에 (주)진로종합유통 (구 진로제약|현 비보존제약, 구 우진석유)·진로출장연회(주)·진로하이리빙(주) (현 하이리빙)·진우통신(주)·청주진로백화점·진로인터스트리즈 (현 JS전선), 건설업과 운송업에 남부시외버스터미널(주)·진로건설(주) (구 JR건설, 현 대우조선해양건설)·남부화물터미널(주)·(주)우신공영·진로엔지니어링(주) (구 LG엔지니어링|LG건설, 현 GS건설 ), 금융업에 우신선물(주)·우신투자자문(주), 광고업에 (주)GTV가 있으며, 학교법인 우천학원 (우신중학교, 우신고등학교)을 경영하였다.

1997년 4월 21일 외환위기로 인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실시한 진로그룹이 부도유예협약을 처음으로 적용받았으나 1997년 9월에 진로그룹은 법정관리과 화의신청 및 부도를 냈으며, 1998년 3월 진로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주)진로와 (주)진로종합식품을 비롯한 6개 계열사가 서울지방법원과 대법원이 법정관리와 화의신청개시에 대한 인가를 명령받았다.

결국 진로종합식품은 통조림 사업을 1998년 4월 전북 김제에 위치한 통조림업체인 해림에 넘겼지만[6] IMF 때문에 부도가 나자 1999년 4월 최희열 대표 등에게 “펭귄” 브랜드 경영권이 양도되어[7] 펭귄종합식품으로 상호명이 변경됐으며 2008년 말 부도를 내어 없어지자 금한이 “펭귄” 브랜드를 사 통조림을 계속 생산했으나 또 다시 부도가 나자[8] 이병진 사장이 “펭귄” 브랜드를 2012년 매입한 뒤 (주) 펭귄F&B를 설립하면서 생명이 이어지는 듯 했지만 몇 년 뒤 부도가 나자 남일종합식품산업사에서 “펭귄” 브랜드를 매입하여[9] 현재까지 생산 중이다. 그 이후 진로종합식품은 석수 사업과 음료 부문에만 전념했으나 석수 사업을 1999년 9월 진로에 양도했고[10] 2000년 파산 뒤 2006년 폐업했으며 진로종합유통은 2000년 청산절차를 거쳐 2010년 폐업했는데 제약사업본부(진로제약이 95년 1월 진로종합유통에 합병되어 진로종합유통 제약사업부로 출범)가 2000년 12월 제이알팜으로 분사했고[11] 2004년 4월 JRP로 상호변경됐으며 2014년 7월 동우약품에 인수된 후[12] 2015년 9월 이니스트바이오제약으로 상호변경됐고 2020년 9월 비보존그룹에 인수됐으며[13] 2021년 2월 비보존제약으로[14] 상호변경됐다.

그 뒤, 1999년 12월에 진로의 맥주사업부문인 진로쿠어스맥주를 OB 맥주에 매각하였으며, 2000년 2월 진로의 위스키사업부문인 진로발렌타인스가 프랑스의 위스키업체인 페르노리카사에 매각되었고, 2003년 1월에 진로가 한국증권거래소(현 증권선물거래소)로부터 상장을 폐지당했다. 2004년 4월 회사정리계획안 인가를 받아서, 2005년 하이트맥주, 대한전선, 두산, 롯데, CJ 등 10개 컨소시엄이 인수의향서를 제출하고, 2005년 4월 하이트맥주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 체결되어, 2005년 7월 진로 (기업)는 하이트맥주에 인수되었다. 또한 현재 (주)석수와 퓨리스가 하이트진로음료로 사명이 바뀌었으며 하이트맥주와 진로가 합병되어 하이트진로(주)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룹 해체 후 2004년 사기대출 및 비자금 횡령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고 출소한 장진호 회장은 중국과 캄보디아에서 10년 간 도피생활을 하다가 2015년 4월 3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향년 63세에 세상을 떠났다[15]. 지인의 언급에 따르면 지난 2일 힘들고 괴롭다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도피 중에도 은행업과 부동산개발업 등으로 재기를 노렸지만 심적 압박을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하이트진로 입니다.

같이 보기 [ 편집 ]

[비즈한국] 2004년 4월, ​진로는 1년간의 법정관리 끝에 주인 잃은 기업이 되었다. 주식은 법원의 정리계획안 인가에 따라 전량 휴지 조각이 됐다. 2003년 은행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부도가 난 후 법정관리를 겪는 와중에도 진로는 역대 최고의 영업이익과 시장점유율을 자랑했다. 매출 6900억 원, 영업이익 1930억 원, 국내와 수도권 시장점유율은 55.3%, 92.7%에 달했다. 소주를 마시는 국민의 절반 이상, 수도권에서는 10명 중 9명이 ‘두꺼비 진로’를 찾은 셈이다.​ 국민 소주가 ‘두꺼비 진로’라는 걸 보여주는 모습이다.

당시 롯데그룹, 하이트맥주 등 여러 기업에서 진로를 인수하려 했는데, 결국 2005년 진로는 하이트맥주(현 하이트진로)에 3조 4100억 원에 팔렸다. 진로그룹은 해체됐다.

공병호의 ‘대한민국 기업흥망사’에 따르면 ‘경기가 좋으나 궂으나 사람들은 소주를 마시고 그럴 때면 두꺼비 진로를 찾았고, 1970년대 국내 소주시장 1위에 오른 이후 한 번도 1등을 놓치지 않은 진로는 현금 창출이란 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가진 회사’였다. ​그런 진로가 망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무모한 다각화’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두꺼비 진로와 진로그룹의 탄생

진로그룹은 1924년 10월 3일 장학엽 회장이 평안남도 용강군에 설립한 ‘진천양조상회’에서 시작됐다. 진천양조상회는 지속된 적자 속 간판을 내렸다. 이후 장학엽은 동업자 조동식과 1927년 기양양조장을 인수해 상호를 진천양조상회로 바꿨다. 이북에서 사업을 하던 그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 월남해서 동화양조, 구포양조를 거쳐 1954년 6월 서울에 올라와 서광주조(주)를 차렸다. 1954년 7월까지 원숭이를 마스코트로 삼았던 진로는 ‘교활하고 음흉한’ 원숭이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두꺼비로 마스코트를 변경했다. ‘두꺼비 진로’가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순간이었다.

장학엽 회장은 이어 피혁 회사인 서광산업을 최초의 계열사로 두고 1961년 10월 진로그룹의 회장이 된다. 5년 후인 1966년 서광주조는 진로주조, 1975년에 (주)진로로 상호를 바꾸게 된다.

두꺼비 진로가 출시 때부터 1등은 아니었다. 당시는 삼학소주가 전국 시장을 잡고 있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자 진로양조와 삼학소주가 주류업계의 양대 산맥이 됐다. ​1965년 진로가 소주 생산방식을 희석식으로 바꾸며 둘의 격차는 좁아졌고,​ 1967년부터 진로양조가 삼학소주의 매출을 앞서기 시작했다. 진로양조는 1970년 12월부터 2004년까지 소주 시장 1위를 유지했다.

장학엽 회장은 1975년 73세의 나이에 경영에서 손을 뗐는데, 조카 장익용에게 경영을 맡겼다. 장학엽의 아들 장진호는 당시 23세로 회사를 경영하기에는 어린 나이였다.

장학엽 일가의 경영권 분쟁은 이때부터 예고된 셈이다. 장진호는 아버지가 사망하기 직전인 1984년 11월부터 이복형인 장봉용과 함께 장익용에게 경영권을 넘겨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에 장진호는 장익용 몰래 주식을 매입하고 우호지분을 모아 1985년 10월 경영권을 가져왔다. 3년 후인 1988년 장진호는 진로그룹의 회장에 올랐다. 장익용은 피혁회사인 (주)서광, 이복형 장봉용은 진로발효를 맡으며 이들의 분쟁은 마무리됐다.

#사업다각화는 결국 그룹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고

1988년 36세의 나이로 진로그룹 회장에 취임한 장진호 회장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사세를 확장했다. 장 회장은 취임 한 달 만에 탈(脫)주류 선언, 유통업 진출로 사업다각화에 뜻을 보였다.

당시 진로그룹 계열사는 9개였다. 장진호 회장은 50%에 이르는 주류 식품 부문의 비중을 30%로 낮추고 광고·유통·전선·제약·종합식품·건설·유선방송 등으로 사세를 확장했다. 진로그룹 총매출은 1987년 4100억 원에서 8년 후인 1996년 계열사 24개 도합 3조 5000억 원으로 늘었다. 1996년 진로그룹은 재계 순위 19위에 이름을 올렸다.

사업다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진로는 계열사들에게 출자금, 대여금 등으로 많은 자금을 지원했다. 하지만 2조 원대의 지원에도 신규 계열사의 경영 성과는 부진했다. 1995년 진로인더스트리즈의 부채비율은 6만 %에 달했고, 진로쿠어스맥주와 진로건설은 자본잠식에 빠졌다. (주)진로를 제외한 대부분의 계열사가 경영악화 상태였다.

무모한 다각화의 결과를 소주 판매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1997년 초부터 진로의 자금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진로그룹의 자기자본비율은 4.3%밖에 되지 않았다. 1997년 396억 원의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부도 처리됐다.

1998년 9월 기준으로 (주)진로는 출자금 1208억 원, 대여금 1조 3262억 원, 지급보증금 7482억 원을 계열사에 지원한 상태였다. 총합이 2조 1952억 원에 달했다.

부도 이후 채권단에게 파산을 예방하기 위한 화의 인가 결정을 받았지만, 2003년 4월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됐다. 이후 2005년 10월 하이트맥주에 매각됐다. 진로그룹의 계열사들은 다른 회사에 인수되거나 청산절차를 밟으며 뿔뿔이 흩어졌다.

2003년 장진호 회장은 5696억 원 사기 대출, 비자금 75억 원 횡령 혐의로 구속됐다. 2004년에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5년을 받고 풀려난 그는 2005년 캄보디아로 도피해 ‘찬삼락(Chan Samrach)’으로 살았다.

몰락 이후에도 장 회장은 사업에 대한 열망을 놓지 않았다. 은행, 부동산, 카지노 등 여러 사업에 손댔다. 하지만 캄보디아에서도 탈세 문제가 불거져 2010년 중국으로 도피한다. 중국에서도 게임업체와 더불어 다양한 사업에 투자하고 현지인 법인을 통해 회사를 운영했지만 2015년 4월 3일 중국 베이징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 생전의 야심에 비해 허망한 죽음이었다.

정동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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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그룹 전성기 이끌다 몰락…장진호 전 회장(종합)

분식회계·횡령 수감생활 후 10여년간 해외도피

(서울=연합뉴스) 김아람 기자 = 오랜 떠돌이 생활 끝에 지난 3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심장마비로 숨진 장진호(63) 전 진로그룹 회장은 진로의 흥망성쇠를 함께 한 인물이다.

장 전 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 진로에 입사했다. 선친인 장학엽 회장에 이어 1988년 제2대 회장에 취임해 진로의 사세 확장을 이끌었다.

진로그룹은 한때 계열사를 20개 넘게 거느리며 재계 19위까지 올랐지만 1997년 외환위기 속에서 자금난에 빠지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무리한 사세 확장으로 경영이 악화한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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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의 모태는 1924년 고 장학엽 회장이 평남 용강에서 설립한 ‘진천양조상회’다. 이후 장씨 일가는 1951년 부산으로 내려와 ‘부산동화양조’로 상호를 바꾸고 ‘금련’이라는 소주를 생산하면서 남한에 터를 잡았다.

이어 1954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서광주조’를 발족해 전국적인 영업에 들어갔으며, 진로 소주의 상징인 두꺼비도 이때 탄생했다. 진로라는 상호는 1975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진로는 1970년 국내 소주시장 1위에 오른 이후 줄곧 시장을 석권해왔다. 국민과 희로애락을 함께 한 소주를 주력사업으로 해온 덕에 인지도도 높았다.

소주사업에 전념해 탄탄한 재무구조를 유지하던 진로가 부실의 수렁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사업 영역을 급속히 넓히면서부터다.

장 전 회장은 그룹 총수 자리에 오르고서 이듬해인 1988년 서울 서초동 본사 인근에 아크리스 백화점을 열면서 종합유통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전선, 제약, 종합식품, 건설, 금융, 유선방송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해 종합그룹으로의 변신을 시도하다 결국 1997년 9월 부도를 맞았다.

1999년 자회사 진로쿠어스맥주가 오비맥주에 매각되고, 2000년 위스키사업이 진로발렌타인스에 양도됐다.

결국 진로그룹은 2003년 법정관리와 계열사 분할 매각으로 공중 분해됐다. 이어 하이트맥주가 2005년 진로를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장 전 회장은 분식회계, 비자금 횡령 등으로 구속기소돼 2004년 10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검찰은 그가 1994∼1997년 자본이 완전히 잠식된 진로건설 등 4개 계열사에 이사회 승인없이 6천300억원을 부당지원하고, 분식회계를 통해 금융기관에서 5천500억원을 사기대출받은 혐의 등을 적용했다.

장 전 회장은 진로의 대주주였으나 2004년 4월 법원의 정리계획안 인가에 따라 진로 지분 전량이 소각됐다. 또 그의 재산도 대부분 법원에 의해 가압류됐다.

외환위기 와중에 진로그룹이 부도나면서 모든 것을 잃은 장 전 회장은 진로를 되찾으려는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외자를 유치하거나 자신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기업을 앞세워 진로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도 일각에서 제기됐다.

그러나 장 전 회장은 분식회계와 사기대출 등으로 거액의 공적자금을 낭비한 책임이 있는 범죄자인데다가 정서적으로도 다시 경영활동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경영인으로 복귀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고 진로를 되찾기도 어려워졌다. 결국 그는 집행유예로 풀려나고서 2000년대 중반부터 기약 없는 해외 도피 생활에 들어갔다.

장 전 회장은 10여년간 캄보디아, 중국 등을 떠돌며 생활했다. 외국에서 은행, 부동산 개발회사, 카지노 등을 운영하며 재기를 노렸지만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13년에는 기업 회생을 위해 마련했던 거액의 자금을 횡령했다며 옛 진로그룹 임원을 검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장기 도피 생활로 몸과 마음이 지친 장 전 회장은 평소 지인들에게 자신에 대해 잘못 알려진 점이 많다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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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가계도 4탄(하이트진로,SPC,필라,아모레퍼시픽)

대한민국 대기업 재벌 가계도편입니다.하이트진로그룹 가계도,필라 윤윤수 회장 가계도,SPC그룹 가계도,아모레퍼시믹 그룹 가계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하이트진로그룹 가계도

故 박경복(명예회장)과 아내 김수희 사이에 박순혜(미국이민), 박문효(하이트진로산업 회장)과 아내 조미량 사이에 박세진(연암 대표), 박세용(송정 이사)가 있습니다.

박문덕(그룹 회장)과 아내 김미정 사이에 박태영(하이트진로 전무)와 박재홍(하이트진로 일본법인 상무)가 잇습니다.

하이트진로 그룹의 계열사로는 하이트진로(주), 하이트진로음료(주), 하이트진로홀딩스(주), 서영이앤티(주), 하이트진로산업(주)가 있습니다.

필라 윤윤수 화장 가계도

윤태흠과 어머니 박수하 사이에 윤윤수(휠라글로벌 및 아쿠쉬네트 회장,2남 5녀 중 막내)와 윤윤수의 아내집안은 이주영과 김옥형 사이에 태어난 이효숙(케어라인 대표, 4남 2녀 중 장녀)가 아내입니다.

자녀로는 윤근창(휠라 USA CFO)와 며느리 노은정 사이에 1남 1녀가 잇고, 윤수연과 사위 이성훈(휠라코라아 CFO)가 잇습니다.

윤윤수회장의 인맥을 보면 서울고 인맥으로는 김석원(전 쌍용그룹 회장), 최인호 작가, 임내규(전 산자부 차관), 박성현(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김석(삼성증권 회장)이 있습니다.

한국외국어대 인맥으로는 최동호(대영학원 이사장), 권순한(전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이 있습니다. 칠원윤씨의 인맥으로는 윤상현(새누리당 의원), 윤병철(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윤영달(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이 잇습니다. 정계 및 재계의 인맥으로는 정세균(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구본무(LG그룹 회장), 박연차(태광실업 회장), 유정현(미래에셋앱스 자산운용 PDF 대표), 박상진(삼성SDI 사장)이 잇습니다.

휠라코리아 계열사로는 에이치엠앤드디홀딩스, GLB홀딩스, 휠라 룩셈부르크, 매그너스홀딩스, 아퀴쉬네트홀딩스, 매그너스홀딩스2, GLBH 코리아가 잇습니다.

SPC그룹 가계도

故 허창성(SPC그룹 명예회장)과 어머니 김순일 사이에 허영선(전 삼림식품 회장), 허영희(전 SPC 고문), 허영인(SPC그룹회장)과 아내 이미향(이원만 코오롱그룹 창업주 막내딸) 사이에 아들 허진수(파리크라상 전무)와 며느리 박효원(박용욱 이생그룹 회장 장녀) 사이에 아들 2명이 있습니다.

허희수(비알코리아 전무)와 며느리 안리나(안용찬 애경그룹 부회장 장녀) 사이에 딸 한명이 잇습니다.

허영덕(전 웰가 부회장), 허영석(SPC그룹 고문), 허영한(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허영우(전 성일화학 SPC그룹 계열사 전무)가 있습니다.

SPC 그룹이라면 조금 생소한 그룹인데 그 계열사들을 보면 알수 잇을듯 합니다. 계열사로는 SPC삼립, 비알코리아, 샤니, 에스피씨팩, 파리크라상, 호남샤니가 있습니다.

아모레퍼시픽 그룹 가계도

서성환(아모레퍼시픽그룹 창업주)와 아내 변금주 사이에 서송숙과 그의 자녀 박상정,박선정,박우정,서혜숙과 남편 김의광(목안갤러리.박물관 관장) 사이에 자녀 김근종,김우종, 서은숙과 남편 최상용(고대구로병원 단담췌외과 교수) 사이에 자녀 최환석,최양희, 서영배(태평양개발 회장)과 아내 방혜성(태평양학원 이사) 사이에 자녀 서상점.서수연,서상욱, 서미숙의 자녀 최범식, 최연식, 서경배(아모레퍼시픽 그룹회장)과 아내 신윤경(신춘호 농심회장 막내딸) 사이에 자녀 서민정(미국 코넬대 경영대학원 재학중), 서호정(미국 코넬대 재학중)이 잇습니다.

아모레레시픽의 화장품으로는 설화수, 라네즈, 마몽드, 에뛰드, 이니스프리, 아이오페, 헤라, 려, 아이오페가 있습니다.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⑤장진호의 진로그룹

[일요시사=경제1팀]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산다.’

잘 나가던 기업이 망했다는 소식은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런데 망한 재벌이 ‘깡통’을 찼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IMF 이후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줄줄이 공중분해 됐지만 해당 기업에서 중책을 맡았던 경영진과 그 가족들은 멀쩡히 잘 살고 있다. 미리 ‘주머니’를 채워놔서일까.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망한 기업’ 수뇌부들의 현주소를 조명해봤다.

‘두꺼비 소주’ 신화 진로는 1924년 10월 평안도 용강군에서 진천양조상회라는 이름으로 창업주 장학엽씨에 의해 설립됐다. 진천양조상회의 심벌은 ‘원숭이’였다. 평안도 지방에서는 원숭이가 복을 상징하는 영특한 동물로 여겨졌기 때문에 심벌로 선택되어진 것인데 원숭이 좌우로는 쌀이 있어서, 쌀로 빚은 복주를 마시면 복을 누리며 장수한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 회사

말아먹은 아들

장학엽씨는 50년 12월 월남해 1년 뒤 부산 동화양조, 52년에는 부산 구포양조를 설립했다. 54년 장학엽씨는 고향과 부산에서의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서광주조를 차렸다. 원숭이가 ‘두꺼비’로 바뀐 때가 이때다. 장학엽씨는 61년 진로그룹의 최초 계열사인 서광산업이라는 피혁회사를 설립하고 회장직에 올랐다.

진로라는 이름이 탄생한 것은 66년. 서광주조는 66년 진로주조로 상호를 변경했다가 75년 진로로 상호를 바꿨다.

50년대까지만 해도 소주 업계는 전남 목포에 기반을 둔 삼학소주가 장악하고 있었다. 한때 전국시장점유율 65%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던 삼학소주가 진로에게 밀리기 시작한 때는 65년 진로가 생산방식을 증류식에서 희석식으로 전환하면서부터다.

70년 12월 진로는 소주 시장 1위를 차지하면서 한국의 대표 주류회사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진로는 85년 장학엽씨가 사망하기 전인 84년 11월에 불거진 경영권 분쟁으로 일대위기를 맞았다.

이미 경영권 분쟁은 75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장학엽씨가 자신의 5형제 가운데 둘째인 학섭씨의 장남 익용씨에게 그룹을 맞길 때부터 예고돼 있었다. 장학엽씨의 아들 진호씨가 당시 나이 23세로 경영을 맡기에는 어린나이였기 때문이다. 익용씨는 ㈜진로 사장, 진로위스키 회장, ㈜서광 사장을 역임하면서 실질적인 회장직을 수행했다.

총수 과욕·탐욕으로 무너진 ‘두꺼비 신화’

장본인 장진호 캄보디아·중국서 호의호식

84년 말, 장학엽씨가 병환이 심해지자 진호씨와 장학엽씨의 이복형 봉용씨가 익용씨에게 이제 경영권을 넘겨줄 때가 됐다고 말했지만 거절당하고 만다. 이에 진호씨는 익용씨몰래 주식을 매입하고 우호지분을 끌어 모아 85년 10월 주총에서 경영권을 손에 넣게 됐다. 그의 나이 33세 때의 일이다.

이후 익용씨는 ㈜서광을, 봉용씨는 소주 원료를 생산하는 진로발효를, 진호씨는 진로그룹을 맡는 것으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88년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장진호 진로그룹 회장은 ‘탈주류’를 선언하고 빠른 속도로 사업다각화에 나섰다.

80년대 후반에만 종합광고업에 진출하고 연합전선, 진로위스키, 진로종합유통, 진로백화점, 진로제약, 진로건설 등을 인수하거나 설립했다. 91년에는 수출입 전문회자 JRI를 설립하고 식품회사인 펭귄과 진로음료를 합병해 진로종합식품으로 상호를 변경했으며 한국터미널과 진로유통을 합병해 진로종합유통을 설립했다.

92년에는 진로쿠어스맥주를 설립해 94년 ‘카스’를 생산개시했으며 영국 그랜트와 합작해 위스키 시장에 진출했다. 중국 북진그룹과 합작으로 총 20억달러 규모의 종합빌딩 타운 개발사업에도 진출했고 청주 제2백화점 착공, 홈비디오와 멀티미디어 사업에도 참여했다. 96년 말 기준 진로그룹은 총 24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순위 19위의 재벌로 급부상했다.

그룹 무너뜨린

‘탈주류’선언

이러한 사업다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진로는 계열사들에게 출자금, 대여금 등으로 엄청난 자금을 지원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97년 초부터 진로의 자금 사정이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97년 4월 기준 진로그룹의 부채총액은 은행권 1조200억원, 제2금융권 2조5000억원 등 총 3조7000억원에 달했고 자기자본비율은 4.34%에 불과했다. 24개 계열사 중 10여 개 사는 적자였다.

위기탈출을 위해 진로는 트럭터미널과 남부터미널, 아크리스백화점 청주 진로백화점 등 계열사들을 대거 처분, 총 1조2000억원을 마련해 구조조정자금으로 사용키로 했고 상업은행과 서울은행에 추가융자를 요청, 각각 600억원, 400억원을 빌렸다.

“진로일가, 아직도 막강한 재력 자랑”

그러나 경기침체로 계열사와 부동산 매각은 쉽지 않았고 은행들은 추가지원을 거부했다. 이렇게 되자 정부가 나섰다. 강경식 당시 부총리는 막 구상단계에 있던 부도방지협약을 적용, 진로 살리기에 나섰다.

하지만 완성되지 않았던 부도방지협약은 은행권보다 제2금융권의 대출비중이 높은 기업에 부도방지협약이 적용되면 제2금융권이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고, 이를 의식한 제2금융권이 대출회수에 나설 경우, 오히려 부도를 촉진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큰 문제점이 있었다. 진로그룹이 여기에 딱 들어맞았다.

검찰 수배 받고도

술집·카지노 운영

예상대로 채권은행들은 진로그룹의 모든 어음 지급을 동결하고 긴급자금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제2금융권은 경쟁적으로 어음을 돌려 자금을 회수하려 했다.

마침내 진로는 97년 4월21일 조흥은행 서초동지점에 돌아온 어음 213억원과 상업은행 서초동지점에 지급 제시된 당좌수표 83억원을 결제하지 못해 최종 부도처리되고 말았다. 이후 채권단에 의해 화의 인가 결정을 받았지만, 결국 2003년 4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진로그룹의 계열사들은 청산절차를 밟거나 타사에 인수되거나 일부 사업부문이 양도되는 형식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주력 기업인 진로는 하이트그룹에 인수되어 하이트진로그룹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으며 진로건설은 대우조선해양에 인수되어 대우조선해양건설로 새롭게 태어났다.

진로쿠어스맥주는 OB맥주에 인수되었다가 OB맥주 또한 구조조정 차원에서 폴란드 인터브루사에 지분을 넘겨 실질적 소유권은 외국의 다국적 맥주회사로 넘어간 상태다. 진로엔지니어링은 LG그룹으로 넘어가 LG ENC로 새출발했고 청주진로백화점과 진로하이리빙은 개인 소유로 넘어갔다. 기타 계열사들은 대부분 청산됐다.

2003년 9월 자신이 소유하던 진로 주식 119만9474주(8.14%)를 포기한다는 각서를 쓰고 경영권에서 물러난 장진호 전 회장은 5496억원을 사기 대출받고 비자금 7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수차례 재판 끝에 장 전 회장은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5년형을 받고 풀려났다. 하지만 2005년 2월 가족들과 함께 캄보디아로 출국했다. 그 직후 다른 비자금 건으로 검찰의 수배를 받았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장 전 회장은 이미 2002년 ‘찬삼락’이라는 현지 이름을 취득한 상태로 진로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캄보디아행을 계획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분별한 사업다각화로 그룹 공중분해

소주는 경쟁사, 맥주는 외국사에 매각

캄보디아에서 장 전 회장은 ‘ABA은행’을 운영했다. ABA은행은 지난 1996년 진로그룹에 의해 설립된 은행으로 현지에서는 ‘한국의 은행’으로 통했다. 그러나 이 은행은 진로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때 채권단 관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장 전 회장은 은행 뿐 아니라 부동산 개발회사, 경견장, 스몰카지노, 단란주점까지 손을 댔다. 금융 브로커로 알려진 김재록씨와 함께 소주회사를 설립하는 ’55 프로젝트’도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 전 회장은 현재 세금 미납액과 각종 금융 기관의 체납액, 벌금 등 수백억원이 넘는 빚이 있다. 그럼에도 장 전 회장이 아무 제약 없이 현지에서 사업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훈센 총리의 장녀 ‘훈마나’의 비호 덕분이었다. 훈마나는 캄보디아에서 정치권력은 물론 언론까지 장악하고 있어 장 전 회장은 훈마나와 모종의 거래관계를 맺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장 전 회장은 ABA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탈세를 하는 등 ‘먹튀’ 전략을 쓰는 바람에 캄보디아 관리들에게 신뢰를 잃어 그는 현재 캄보디아를 떠나 중국으로 건너간 상태다.

지난해 2월에는 장 전 회장이 중국 북경 왕진 소재에 체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장 전 회장은 이곳에 머물면서 중국인 사장을 앞세워 법인을 둔 게임 업체 ‘이다양광’에 투자, 운영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장 전 회장의 근황을 보도한 언론에 따르면 장 전 회장이 투자한 이다양광 게임사에서 최근 게임 개발에 착수했던 개발자들이 몇 개월 동안 임금이 지급되지 않아 국내로 복귀한 상태다. 장 전 회장은 현재 중국 게임업체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업에 투자를 하고 있으며 현지인 법인을 통해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80년 역사의 진로그룹을 공중 분해시킨 장본인은 아무 걱정 없이 화려한 도피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서 해외서도

잘 먹고 잘 산다

국내에 남아있는 장 전 회장의 가족들도 탄탄한 재력을 자랑하고 있다. 2011년 사망한 장 전 회장의 이복형인 장봉용 전 진로발효 회장의 부인 서태선씨는 27.%의 진로발효 주식을 보유해 최대주주에 올라있으며 올해 21억원을 배당받아 여성 배당부자 7위에 올랐고 자녀 진혁씨와 진이씨는 각각 18.3%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사촌형인 장익용 회장은 여성 정장 제조업을 하는 ㈜서광을 이끌고 있다.

한종해 기자

<진로그룹은?>

▲1924년 진천양조상회 설립

▲1954년 서광주조(진로) 설립

▲1970년 소주시장 1위

▲1985년 장학엽 창업주 사망

▲1988년 장진호 회장 취임

▲1980년대 새그린, 연합전선, 진로위스키, 진로종합유통, 진로백화점, 진로제약, 진로건설 인수 및 설립

▲1990년대 초 진로쿠어스맥주, 진로베스토아, 진로종합식품, 진로인터스트리즈, 여성전문 케이블 텔레비전, 진로하이리빙, 진로지리산샘물 등 계열사 확장

▲1997년 부도

▲1998년 화의 인가 결정

▲2003년 4월 이후 법정관리, 계열사 매각 및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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