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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g by 장윤영
내가 엄마 품속에서 고통중에 태어났지만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날 택하시고 존귀케 하셨네
내 평생에 여호와를 섬기며 그 말씀만 따라 살아가리
주의 집에 나 항상 거하리니
원컨데 주께서 나에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소서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구하였더니
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내 간구하는 모든것 허락하셨도다
아 우너컨데 주께서 나에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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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의 기도는 어떤 기도인가요? – GotQuestions.org
야베스의 기도는 어떤 기도인가요? · 1) 하나님의 축복. 야베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모든 축복의 근원이심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은총을 구합니다. · 2) 지경의 확장.
Source: www.gotquestions.org
Date Published: 4/26/2022
View: 1502
역대상 4:10 – 야베스의 기도 성경구절 – 하나님의 약속
(역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
Source: www.light-of-truth.org
Date Published: 9/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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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파워] 야베스의 기도:고통을 은총으로 바꾸다
귀중한 자로 바꾸어주십니다. 지경을 넓혀 주십니다. 환란과 근심을 살아지게 하십니다. 다시 시작케 하십니다. 다시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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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7/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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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의 기도: 역전의 은혜(대상4:9-10)
복을 달라고 하는 기도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열심히 구하여서 기왕이면 더 잘살고 더 잘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
Source: likumc.org
Date Published: 2/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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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는 과연 어떤 기도를 했던 것일까? – 뉴스앤조이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나에게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시고, 나의 영토를 넓혀 주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시어 불행을 막아 주시고, 고통을 받지 ...
Source: www.newsnjoy.or.kr
Date Published: 9/24/2022
View: 5591
야베스의 기도 – 브런치
때를 준비하는 사람 |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
Source: brunch.co.kr
Date Published: 7/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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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의 기도 – 오늘의식탁
야베스의 기도 ·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대상 4:10) …
Source: jesuswayforyou.com
Date Published: 11/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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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야베스 의 기도
- Author: lovelys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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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10.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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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의 기도는 어떤 기도인가요?
질문
야베스의 기도는 어떤 기도인가요?
답변
야베스의 기도는 가족 계보를 정리한 역사적인 구절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역대상 4:9-10). 이 기도는 브루스 윌킨슨 박사 (Dr. Bruce Wilkinson )와 데이빗 콥 (David Kopp )의 베스트셀러 야베스의 기도: 내 삶을 기적으로 채우는 기도의 원리 (The Prayer of Jabez: Breaking Through to the Blessed Life: 2000)의 출간으로 인해 잘 알려지게 되었습니다.야베스가 유다의 자손이었다는 것, 존귀한 자였다는 것, 그리고 고통 가운데 태어났기 때문에 어머니가 “야베스” (“비통해하다” 혹은 “슬픔을 만드는 사람”의 의미)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것 외에, 야베스에 대해 알려진 것은 별로 없습니다. 야베스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보호와 축복을 구하며 울부짖습니다. “슬픔의 사람” 야베스는 언어 유희를 사용하여, 자기의 이름을 상기시키고 예감하게 하는 슬픔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역대상 4:10에 있는 야베스의 기도는 네 가지 긴급 요청을 포함합니다. 1) 하나님의 축복. 야베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모든 축복의 근원이심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은총을 구합니다. 틀림없이,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이 간구는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22:17).2) 지경의 확장. 야베스는 자신이 도전하는 모든 시도에서 승리와 번영을 얻고, 자신의 삶의 지경이 넓어지기를 기도합니다.3) 하나님 손의 도우심. 이는 야베스가 자신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구하는 방식입니다.4) 환난으로부터의 보호.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우리를…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마태복음 6:9, 13). 야베스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자신의 보호자로 여깁니다.기도 안에 담긴 야베스의 목적은 슬픔에서 자유로워지는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기도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야베스의 기도를 들으셨고, 응답하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혜를 구했던 솔로몬의 겸손한 기도 (열왕기상 3:5-14)와 같이, 축복을 구했던 야베스의 경건한 기도 또한 응답 받았습니다. 야베스가 누린 성공은 태어날 때의 슬픔보다 큰 것이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야베스의 이름을 극복했습니다.야베스의 기도는 우리 삶 속에서 기도를 우선 순위에 두어야 하는 좋은 본보기가 됩니다. 우리는 필요한 때에 도움을 얻기 위해서 늘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고, 기도 제목들을 가지고 곧장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4:16). 한나, 요나, 히스기야, 바울의 기도 – 그리고 물론 우리 주님의 본이 되는 기도 (마태복음 6:9-13) –와 함께 야베스의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선하심에 의지하며 겸손과 믿음으로 지극히 크신 이에게 나아가는 아름다운 본을 보여줍니다.
야베스의 기도 성경구절
관련된 말씀:
네가 하나님을 앙망해도 하나님이 네게 어떤 느낌이나 명확한 뜻을 주지 않을 수 있고, 더욱이 분명한 가르침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네게 한 가지 일을 깨닫게 할 것이다. 어쩌면 당장은 깨닫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은 결코 틀리지 않는다. 그렇게 실행하는 것은 규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영이 필요로 하는 일이며,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나님을 앙망하고 부르짖을 때마다 깨우침과 인도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과 영 안의 그런 상태는 정상적이고 자연적인 것이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은 사람이 마음과 영으로 하나님과 정상적인 교류를 하는 것이다.
때로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은 명확한 언어로 하나님께 어떤 것을 해 달라고, 인도하고 지켜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임했을 때 진심으로 부르짖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겠느냐? 사람의 마음이 움직여 ‘하나님, 저는 이 일을 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연약하고 소극적으로 변했습니다.’라는 생각을 할 때, 하나님은 바로 알지 않겠느냐? 이러한 생각이 들 때, 사람의 마음은 진실한 것 아니겠느냐? 사람이 이렇듯 진실하게 부르짖는다면,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겠느냐? 때로 사람이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았다고 해도 진심이 움직였다면 하나님은 응답한다. 어려움이 닥쳐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아무 데도 기댈 곳 없다고 느낄 때, 무력하다고 느낄 때, 사람은 유일한 희망을 하나님께 건다. 그럴 때 사람의 기도는 어떠하겠느냐? 그럴 때 사람의 마음가짐은 어떠하겠느냐? 참되지 않겠느냐? 거기에 불순물이 있겠느냐? 네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며 도와 달라고 간청할 때 비로소 네 마음에 진정성이 생긴다. 말은 몇 마디 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네 마음은 이미 움직인 것이다. 네가 참된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은 들어주신다. 네 기도를 들었을 때 하나님은 네 어려움을 보고 너를 깨우치고 인도하며 도와줄 것이다.
야베스의 기도:고통을 은총으로 바꾸다:한국 교회의 나침반 뉴스파워(newspower.co.kr)
역대상 4장9-10절 야베스의 기도: 고통을 은총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역대상 4장 [9]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9] Jabez was more honorable than his brothers. His mother had named him Jabez, saying, “I gave birth to him in pain.” ▲ 정준모 목사 ©뉴스파워 [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10] Jabez cried outto the God of Israel, “Oh, that you would bless me and enlarge my territory! Let your hand be with me, and keep me from harm so that I will be free from pain.” And God granted his request.오늘 말씀의 핵심은 불행한 인생을 살았던 야베스가 하나님께 구할 때, 하나님께서 그의 간구를 들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불행한 자신의 상황을 하나님께 구할 때, 하나님께서 그 불행한 상황을 바꾸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는 “우리의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혹은 “하나님이 바꾸어주십니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야베스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상황에 처한 사람입니까? 야베스 이름의 뜻은 고통(pain, trouble), 수고라는 뜻입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떤 부모가 자식의 이름을 정할 때, 나쁜 뜻을 가진 이름을 정하겠습니까? 정상적인 부모라면 자식의 이름을 지을 때, 1) 축복된 이름 2) 희망찬 이름3) 듣기 좋은 이름 4) 부르기 좋은 이름 5) 기억나는 이름을 정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자녀들 3명 이름을 지을 때, 장녀는 하나님을 찬미하는 사람이 되라고 정찬미라고 지었습니다. 또한 장남은 복의 근원이 되라고 정근원이라고 지었습니다. 막내아들은 온백성들 중에 뿌리같은 존재가 되어라고 정근민이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라, 복의 근원이 되라, 백성들 중에 뿌리가 되라 얼마나 축복된 이름, 얼마나 희망찬 이름, 얼마나 부르기 좋은 이름, 얼마나 기억나는 이름입니까? 그런데 왜 야베스의 부모는 그의 이름은 고통, 수고라고 지었을까요?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을 대표합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이름은 수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락 내리락합니다. 이름은 역사와 문서에 남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 자체, 그 사람 인간됨을 말합니다. 그런데 왜 야베스, 고통이라고 지었을까요? 야베스를 두고, 부모가, 친구가, 동네 어른이, 아는 사람들이 고통, 고통, 고통이라고 불렀을 때, 자신의 이름을 듣는 순간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이름은 듣는 순간 정말 귀를 막고 싶었을 것이고, 도망가고 싶을 것입니다. 대인기피증이 생겼을 것이고, 스스로 자신을 왕타시켰을 것입니다. 왜 야베스, 왜 고통이란 나쁜 이름, 부정적 이름을 지었을까?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은 성경을 기록할 당시 이스라엘의 시대적 정황이나 문화적 상황을 이해할 때,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시대에 사람의 이름을 지을 때,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이름을 짓을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시대가 처한 상황에 때란 이름을 짓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믿음의 조상, 열국의 아비가 되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물에서 건져냈고 장차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건저내라고 “모세”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발꿈치를 잡고 나왔고, 약삭 빠르다고 “야곱”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자식이 달라는 자신의 애절한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사무엘”이라고 지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야베스는 고통속에서 그 아들을 낳았기에 고통, 고통이라고 이름지었습니다. 수고로움 속에서 그 이들을 낳았다고 수고, 수고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면, 왜 야베스는 고통, 수고라고 이름이 불리게 되었을까요? 여기에는 몇가지 추론들이 있습니다. 해석하는 입장들이 다양합니다. 이러한 견해들이 있습니다. 1. 남편없이 자식을 나았기 때문입니다. 2. 성폭행들 당해 낳았기 때문입니다. 3. 미혼모로 낳았기 때문입니다. 4. 원치않은 임신을 했기 때문입니다. 5. 출산시 산모나 태중아기에게 생명의 위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6. 당시 사회나 국가에 큰 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등등의 추측과 학설이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제가 소개하는 사람 5명의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스티브 잡스, 레오나드 다빈치, 빌리 홀리데이, 마릴 몬로, 오프라 윈플리 등입니다. 잘 모르시나요?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들은 모두 사생아들입니다. 유복자녀가 아닌, 사생아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역사에 위대한 인물, 놀라운 영향력을 미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생아라는 불행한 자신의 인생, 고통스런 자신의 삶, 비극의 상황을 극복하고 명성을 남기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 따르면, 야베스가 고통의 인생, 수고로운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9절에 “귀중한 자”, “존귀한 자”가 되게 하셨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귀중한 자라”는 영어 성경에 “ more honorable” 입니다. 그 뜻은 “영예로운 자”, “무게가 있는 자”, “영향력이 있는 자”, “칭찬을 받는 자”,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야베스를 “고통덩어리”를 “복덩어리”로 바꾸어 주셨다 성경을 밝히고 있습니다. “문제 인생”을 “축복 인생”으로 바꾸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졸장부 인생”에서 “대장부 인생”으로 역전시켜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손가락질 받는 인생”에서 “박수받는 인생”으로, “낙제생 인생”에서 “모범생 인생”으로 바꾸어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을 바꾸어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상황과 문제를 바꾸어 주십니다. 우리는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인생을 우리 노력으로, 우리 지혜로, 우리 능력으로, 우리 방법으로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결정적인 문제를 우리는 결코 바꿀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바꾸어 주셔야만 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허락하셔야만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결재 테이블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여러분,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아시고, 분명히 깨닫고, 분명히 확신하고, 분명히, 오직, 확실하게 하나님께 우리 인생을 맡겨야 합니다. 내 인생의 굽은 길, 하나님만이 곧은 길로 바꾸십니다. 내 인생의 그늘진 길 하나님만이 밝은 길로 바꾸십니다. 내 인생의 폭풍의 바다, 하나님만이 평온의 물결로 바꾸십니다. 내 인생의 고난과 고통, 하나님만이 형통과 평탄으로 바꾸십니다. 하나님이 바꾸십니다. 하나님이 해결하십니다.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십니다. 할렐루야 2. 하나님은 어떤 자에게 고통의 인생을 바꾸어 주십니까?
11절에 답이 있습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아뢰어는 영어 성경에 “울부짖었다”고 되어있습니다. “cried out”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통의 인생, 야베스가 울부짖을 때, 하나님께서 고통의 인생에서 존귀한 인생으로 바꾸어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통 속에 있는 야베스가 어떻게 했다고요? 울부짖었다고 했습니다. 몸부림 치고 매달렸다는 의미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기도의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기도의 간절성, 기도의 집중성, 기도의 믿음, 기도의 응답의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어떤 하나님께서 야베스가 기도했다고 성경을 밝히고 있습니까? 11절에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 이스라엘 하나님은 무슨 뜻이 있습니까? 약속하시는 하나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 반드시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다는 뜻입니다.
고통의 인생 야베스가 어떻게 귀중한 자, 존귀한 자로 바뀌었습니까? 하나님께 울부짖었을 때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고통에서 해결받는 길, 우리 인생의 문제가 바뀌는 길은 오직 기도입니다.
기도가 답입니다. 기도가 힘입니다. 기도가 해결입니다, 기도가 길입니다. 기도가 승리입니다. 기도가 역사입니다.
칼빈은 “기도는 믿음의 표현이다”, 기도는 믿음의 측정기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창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공급을 채울 수 있는 무한하 신용카드입니다.
토레이 “하나닌께는 우리의 수많은 수요을 채울 수 있는 무한한 공급이 있다”
패드릭 존스톤 “우리가 일하면 우리가 일해야 되지만,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기도없는 성도는 사탄의 밥입니다. 기도없으면 하나님은 바꾸어주시지 않습니다. 기도없으면 영적 파산입니다. 기도없으면 축복 스톱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길은 오직 기도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길은 끊어진 기도줄을 잇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길은 막힌 기도를 뚫는 길입니다.
현대인, 현대 그리스도인을 조소하고 야유하는 의미있는 어떤 글을 소개합니다.
“사는 공간은 넓어졌지만, 마음은 더 좁아졌다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더 많이 줄어 들었다 집평수는 커지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다.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다.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더 모자란다. 전문가는 많아졌지만 문제는 더 많이 생긴다.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얼굴은 자주 대면하지만 미운 마음은 더 커진다. 수명을 길어지지만 삶의 의미는 줄어진다. 먼 달나라가는 세상이나 가까운 이웃은 더 멀어진다. 공기 정화가는 있지만 영혼은 더 오염되어진다. 몸은 뚱뚱해지만 인품은 더욱 왜소해진다. 세계평화를 외치지만 테러전쟁은 더 심해진다. 책보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나 tv 보는 시간은 길어진다. 휴대폰 사용시간은 늘어나지만 기도시간을 바닥이 난다. 잡답시간은 아깝지 않지만 성경보는 시간은 뒤전이다. 기도없는 영혼 호흡 질환자가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교회지도자들 기도 시간은 짧고 회의 시간은 길어집니다. 남태평양 작은 섬나라 나우르 공화국 이야기 3. 울부짖는 야베스에게 하나님 그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셨습니까?
10절에 보면,
1) 고통을 복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Bless Him) 하나님께서는 기구한 인생, 파산당한 인생, 진흙탕에 곤두박질한 인생을 바꾸어주십니다. 실패의 인생을 성공의 인생으로 고통의 인생을 축복의 인생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성경에는 제 2, 3, 4의 야베스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또 다른 아베스일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야베스의 인생들이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께 부르짖었을 때, 주님께서 바꾸어주셨습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빛을 보는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죽은 딸 무남독녀 회장장 딸은 달라다굼, 죽음에서 생명으로 바뀌었습니다. 38년된 앉은뱅이 병자가 걸어나는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열두해 동안 혈류증 여인이 고침을 받은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여인이 용서의 기쁨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목마른 수가성 여인이 영혼의 생수를 얻게 되었습니다. 귀신들린 스로보니게 여인의 딸의 귀신병이 떠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무자식 한나가 사무엘을 얻는 기쁨을 얻었습니다. 핍박자 사울이 위대한 사도 바울로 바뀌었습니다.
2) 넓은 지역으로 바꾸어 주셨읍니다(enlarge his territory) 지역을 넓혀 주셨다는 것은 영향력있는 인물로 세워주셨다는 뜻입니다. 비록 고통과 고난, 역경과 파산 인생지만 하나님께 전적 매달려 울부짖고 간구하는 인생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십니다. 또한 그의 지경을 넓혀주십니다. 영향력있는 인물로 세워주시고 높혀주십니다. 오프라 윈플리 1) 가난한 미혼모의 사생아로 태어남 2) 9살 때, 사촌오빠에게 성폭행당함 3) 14살에 임신을 하여 2주만에 죽게 된다 4) 자신의 삶을 비관하여 마약에 손을 댄다. 그러나 외조모의 복음을 듣고, 신앙생활, 기도생활, 감사생활로 인생이 바뀌게 된다. 하나님은 그녀의 인생을 바꾸어 주신다. 토크 쇼의 여왕이 된다. 기부금의 여왕이 된다. 3) 하나님의 능하신 손이 함께 하시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hand be with him)
하나님의 손으로 고통의 인생을 복된 인생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손은 어떤 손일까요? 창조의 손, 축복의 손, 기적의 손, 전능의 손, 치료의 손, 심판의 손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떄 하나님의 손이 역사합니다. 우리의 손으로 바다물을 어찌 옮길 수 있습니까? 옮겨야 얼마나 옮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손의 역사로 폭퐁, 태풍, 토네이도를 이르키시면 순간에 태산같은 바다물을 옮길 수 있습니다.
4) 환란과 근심을 바꾸어 주십니다(keep him from harm) 하나님께 울부짖는자에게는 아무리 환란의 태풍이 불어와도 하나님의 능하신 손으로 막아주십니다. 아무리 근심의 비바람이 몰아치고, 고난의 쓰나미가 몰려와도 울부짖는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손으로 막아주시고 하나님께서 든든한 방파제가 되어 주십니다. 요셉을 보세요, 여호수아를 보세요, 다윗을 보세요, 다니엘 보세요 하나님께서 환란과 근심을 형통과 평강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5) 귀중한 자, 존귀한 자로 바꾸어 주십니다(more honorable) 한국사람으로 미국에서 최고의 관직을 오른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강영우 박사입니다. 백악관 정책 차관보를 지냈습니다. 그의 아들은 강진석은 세계 최고의 안과 전문의가 됩니다. 그의 둘째 아들은 아버지처럼 백안관 법률고문이 되었습니다. 그는 시력장애인이었습니다. 참으로 야베스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께 매달리고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실명을 장애가 아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위하 도구이다. 그는 no where, now here 아무곳에서 실망할 필요없다 지금 여기서 시작하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고통이 저주가 아닙니다. 새로운 축복의 통로입니다. 여러분의 아픔이 절망이 아닙니다. 기적체험의 재료입니다. 여러분의 눈물이 좌절이 아닙니다. 새역사의 제물입니다. 하나님이 바뀌십니다. 지금 저는 저의 생애가 최악의 절망의 순간에 있습니다. 야베스와 같은 나의 고통, 나의 뼈아픈 상황입니다. 그러나 제가 울부짖을 때,나의 죄악을 토설하고, 나의 교만을 내려놓고, 나의 우상을 깨드리고, 나의 메마른 영혼을 위해 탄실 할 때, 하나님께서 더욱 존귀한 자로, 더욱 소중한 자로, 더욱 지경을 넓여 주시고, 더욱 영향력있는 인물로 바꾸어 주길 줄 믿습니다. 사람에게 높힘을 받을 때, 하나님은 사람에게 짓밟힐게 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짖밟힐 때, 울부짖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높혀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회복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바꾸어 주십니다.
빌립보서4장 6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대하 20:12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오직 주님만 바로 볼 수 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 볼 수 밖에 없는 인생이 될 때까지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지혜, 인간의 방법, 인간의 수단을 내려 놓게 하십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오직 소망이 주께로 나옵니다. 하면서 울부짖고 간구할 때, 하나님이 바꾸어 주십니다. 회복케 하십니다. 새역사가 일어납니다. 음악의 거성 베토벤을 만든 것은 청각장애와 사랑하는 여인과 시련의 고통 때문이었습니다. 도스토에프시키를 위대한 문학가로 만든 것은 간질병과 사형수 감옥의 시련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이 위대한 사역자가 된 것은 동족의 대적과 몸의 가시의 아픔 때문이었습니다. 액할 때 온전해 집니다. 고난 때, 새역사가 일어납니다. 고통 때, 옥동자를 낳습니다. 인간은 고난 속에서 자신의 허물을 보게 됩니다. 인간은 시련 때의 자신의 연약함을 보게 됩니다. 인간의 가난의 때, 자신의 부족을 보게 됩니다. 인간의 실패의 때, 자신의 교만을 회개하게 됩니다. 인간은 낮아질 때, 하나님의 손길을 앙망하게 됩니다.
미우라 아야고(삼포능자)
빙점, 길은 여기에,빛이 있는 곳에, 이 질그릇에도, 양치는 언덕 등 놀라운 기독교 문학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 평생 질병 공격속에 살았습니다. 처녀 때부터 결핵성 척추병으로 8년간 요양소에 있었습니다. 퍼킨스병,피부병으로 평생 고생했습니다. 말년에는 암으로 고통당했습니다. 그녀는 뼈를 깍은 고통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았습니다. 눈물어린 기도로 아픔을 극복했습니다. 그 때, 그분이 성령의 감동으로 짓은 시가 있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체험하지 못할 기적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올라가지 못할 성전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앙모하지 못할 그분이 계신다. 고통과 불행의 조건을 제거해 주심도 하나님의 기적이요 은혜이지만, 이보다 더 크고 이 보다 더 값진 은혜는 , 고통과 좌절, 절망과 낙담의 상황 속에서 한결같은 말씀을 의지하여 주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가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현재 나의 삶이 야베스라고 할찌라도, 내가 지금 야베스의 인생이라고 할찌라도 주님께 나와 울부짖고 매달릴 때,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귀중한 자로 바꾸어주십니다. 지경을 넓혀 주십니다. 환란과 근심을 살아지게 하십니다. 다시 시작케 하십니다. 다시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다시 새역사의 빛이 비추게 됩니다. 다시 축복의 만나가 내리게 됩니다.
필자 정준모 목사 소개 《선교학박사(D.Miss)및 철학박사(Ph.D)》.현, 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Bible First Church) 담임, 국제개혁신학대학교(IRUS) 박사원 교수, 국제 성경통독아카데미 및 뉴라이프 포커스 미션 대표, 뉴스파워 이사 및 미주총괄지부장, 콜로라도 타임즈 및 기독일보 씨애틀 칼럼 리스트, 대구성명교회 22년 담임목사 역임 및 4200평 비전센터 건축 입당, 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 CTS 기독교 텔레비전 공동대표이사, GMS(세계선교이사회)총재 역임,GSM(미국 선한목자선교회)전 국제부대표 및 현 고문, 전 교회갱신협의회 대구 경북 대표, 한국 만나(CELL)목회연구원 대표, 총신대학교 개방, 교육 재단이사, 백석대학교, 대신대학교 교수 역임, 미국 인명백과 사전(Who’S Wh0) 및 RTS(리폼드 신학대학원)인터네셔널 리더쉽 선정, 대표 저서, 《칼빈의 교리교육론》,《개혁신학과 WCC 에큐메니즘》, 《장로교 정체성》,《기독교 교육과 교사 영성》 《생명의 해가 길리라》,《21세기 제자는 삶으로 아멘을 말하라》 등 30여 저서가 있습니다.자비량 집회 안내: 농어촌, 미자립 교회 및 선교지 “상처입은 영혼 -치유 회복 부흥집회”를 인도합니다(연락처 [email protected])
야베스의 기도: 역전의 은혜(대상4:9-10)
“하나님 내게 복에 복을 더하시고 지경에 지경을 넓히시사 모든 환난 걱정 근심 염려에서 벗어나 내가 하는 모든일을 주의 손으로 도우시사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게 하옵소서(대상4:9-10)”
수년전에 애틀랜타의 브루스 윌킨슨(Bruce Wilkinson) 목사가 쓴 야베스의 기도: 축복받은 삶으로 나아가기(The Prayer of Jabez: Breaking Through to the Blessed Life)가 출판된지 3개월만에 410만부 이상이 팔려서 USA 투데이, 뉴욕 타임스, 퍼블리셔스 위클리 선정 베스트 셀러 1위가 되었입니다. 이 책에서 윌킨슨 박사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한 우리가 당연히 하나님께 축복을 구할 수 있으며 또 축복받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기독교인들이 지나치게 축복을 간구할 경우 미신적이고 샤머니즘적이며 이기적이라는 비판이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브루스 윌킨스에 따르면 본래 하나님의 성품은 우리를 넘치도록 축복하시는 데 있으므로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고 구하지 못해서 큰 축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순전히 우리의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우화가 있습니다. 존스(Jones)라는 사람이 죽어서 천국을 가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천국 여기 저기를 안내해 주는데 한 이상하게 생긴 건물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어떤 거대한 창고(warehouse)가 있는데 이 건물은 창문은 하나도 없고 오직 문 하나만 달랑 있었습니다. 베드로에게 간청을 해서 존스는 겨우 이 창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구경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창고 안에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선반들이 빼곡이 들어 차 있는데 각 선반에는 빨간 리본이 묶여진 하얀 상자들이 깔끔하게 정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상자들은 모두 앞에 사람들의 이름이 쓰여져 있었기 때문에 존스는 자기 이름이 쓰여진 상자를 열심히 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할 수 있으면 존스가 자기 상자를 열어보지 않기를 바랬지만 존스는 참을 수가 없어서 자기 이름이 적힌 상자를 즉시 찾아 열게 되었습니다. 존스가 이 하얀 상자를 여는 동안 베드로는 깊은 한숨을 쉬면서 불쌍한 듯이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 때문일까요? 존스가 열어 본 상자 안에는 그가 이 세상에 살고 있을 동안에 하나님께서 주시기 원했던 수없이 많은 복들이 가득차 있었지만 존스는 한번도 그 복을 구한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윌킨슨은 이 예화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마태 7: 7)이라고 약속하셨는데 우리가 축복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 이 땅위에 사는 동안 마땅히 누려야할 축복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야베스는 누구이며 그가 올린 기도는 어떤 내용의 기도였습니까?
야베스는 누구인가?
먼저 야베스는 성경에서 가장 지루한 책으로 유명한 역대기 상에 등장합니다. 특히 역대상 1―9장은 “누가 누구를 낳고” 하는 말로 연결되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족보로서 아담에서 이스라엘 12지파까지의 계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족보에는 오백명 이상의 많은 이름들이 등장하는데 야베스는 다윗왕의 혈통인 유다지파에 속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집안이 별로 뼈대있는 집안이 아니었던지 3장에 나오는 왕족의 족보에 들어가지 못하고 4장에 비로소 나오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야베스에 대하여 주목해야 할 것은 9절 후반의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고 한 구절입니다. ‘야베스’라는 이름의 뜻은 “괴롭게 하다” 혹은 “슬프게 하다”의 뜻을 가지는데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이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사실을 눈여겨봐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의 이름은 그 사람의 운명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예컨대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 ‘발꿈치를 잡은 자’ 혹은 ‘빼앗는 자’(grabber)인데 이름 그대로 그는 형 에서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또한 나오미가 그 두 아들에게 지어준 이름은 말론과 기룐입니다. 말론은 ‘병약한’(puny)이라는 뜻을 가졌으며 기룐은 ‘수척해지다’(pining)라는 뜻을 가졌는데 이 이름대로 두 사람 모두 젊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룻기 1: 1-5 참조). 솔로몬의 뜻은 ‘평화’(peace)인데 그는 이름처럼 전쟁에 한번도 나가지 않은 첫 번째 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름의 뜻이 한 사람의 운명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면, 야베스라는 이름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가 태어날 때 어머니가 난산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된 어머니가 야베스가 태어남으로서 어떻게 먹여 살릴까 경제적인 문제로 근심했을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그의 이름 뜻으로 보면 어머니로 하여금 “이제 너는 고생문이 훤하겠구나!”하는 생각으로 태어난 불행한 과거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슬픈 출생과 과거를 지닌 야베스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그가 다른 형제들보다 더욱 존귀케 되었다고 합니다. 야베스가 불행과 슬픔의 과거를 딛고 축복과 존귀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요? 그 원인은 바로 그의 담대한 기도에 있었던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의 기도를 드렸기에 그가 축복의 사람이 되었을까요?
첫째로, 야베스는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복을 달라고 하는 기도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열심히 구하여서 기왕이면 더 잘살고 더 잘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우리를 축복해주시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건강하고 잘살고 성공하고 승리하시길 원하십니다. 잠언 10: 22에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복을 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이 축복을 어떻게 누리며 살 것인가 하는 삶의 자세에 있습니다. 우리의 이기적인 정욕만 위하여 축복을 구한다면 그런 축복은 의미가 없지만 하나님과 이웃을 영화롭게 하는 축복은 우리가 반드시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야베스는 자기가 어떤 축복을 언제 어떻게 어디서 받게될 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긴 채 그저 하나님께 열심히 간구하는데 자기의 책임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 7: 7―8에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은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넘치도록 복을 채워주시길 원하시는 분인 까닭에 열심히 구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구하지 않고서는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둘째로, 야베스는 하나님께 자기의 지경을 더욱 넓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야베스가 살던 시대는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12지파에 골고루 땅의 지분을 나누어주었던 시대였습니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은 곧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땅 한 조각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목숨을 건 전쟁을 수없이 치러야 했으며 땅을 넓힌다는 것은 무한히 생육하고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지경을 넓혀달라는 기도는 단순히 이기적인 복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와 책임을 달라고 하는 비전있는 기도인 것입니다.
세 번째로, 야베스는 주의 손으로 자기를 도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지경을 넓혀달라고 간구한 뒤 그 목적을 향하여 열심히 나가다 보면 어려운 장애물이 하나 둘 출현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구한 축복은 그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기적적인 선물이 아니라 우리가 많은 수고와 고생을 한 뒤 어려운 장애물들을 잘 통과한 뒤에 주어지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와주고 계심을 확신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께서 뽑아 세우신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하나님께서 직접 임하시는 능력을 상징합니다(여호수아 4: 24과 이사야 59: 1 참조). 또한 사도행전 11: 21은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고 말함으로서 주님의 손이 함께 하심으로 초대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베스는 자기의 지경을 넓혀나가는데 있어서 주의 손이 함께 하셔야만 한다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을 절실히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열어주시고 우리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야베스는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 뜻대로 바르게 산다고 해도 환난과 시련이 때로 우리를 위협합니다. 수없이 많은 근심이 우리를 삼킬 때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한 대로 우리의 지경이 크게 넓어져 엄청난 축복을 받게되었을 때 우리는 실수해서 죄악에 빠지거나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건실한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뒤 교만해져서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저버림을 받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축복이 근심없는 축복,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는 축복이 되어야지 추한 이기심으로 일그러진 축복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축복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합하지 않을 경우 빼앗아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야베스는 불행하게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주 특별한 기도를 하나님께 올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에게 넘치는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야베스는 그 형제들보다 더욱 존귀한 사람이 되어서 유대 전승에 의하면 당대의 가장 유명한 율법학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기도함으로 고통과 수고로 가득했던 야베스의 삶이 존귀해진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런 역전의 은혜가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야베스는 과연 어떤 기도를 했던 것일까?
▲이 책은 자신이 구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바탕으로 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가는 삶을 일깨우기보다는 현재 자신이 바라는 것을 기도를 통해서 얻으라는 식의 기복주의적 권고에 치중해 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야베스의 기도
때를 준비하는 사람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역대상 4장 9~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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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도의 때와 응답의 때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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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고 어려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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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 기도의 응답이 늦은 것이 아니고
내가 그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 충분한 그릇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는 인간이 그릇이 되기 위해 깨지는 과정이 오래 걸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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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는 태어날 때부터 고난을 달고 태어났다
오죽하면 이름이 야베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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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는 하나님께 4가지 기도를 드린다
언제 기도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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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나님은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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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하였더니”라는 단어가 나온다
몇 개월 전 비저니어스 컨퍼런스 3회 차 강의 중에
나는 이 말씀 아니 이 단어를 가지고 마무리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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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가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
얼마나 오랜 시간 다듬어지고 만져지고 낮아졌을까
우리는 간절히 기도를 하지만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번번이 무너진다
기도의 응답은 언제 올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고
넘어짐이 반복되고 익숙해지다 보니 다시는 일어서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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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고난으로 시작했던 야베스의 인생
그는 그의 기도를 잊지 않았고
상황과 환경을 이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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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축복을 받을만한 그릇이 되었을 때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
–
하나님은 야베스를 위해 그의 기도를 응답하시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거나 계획하시지 않았다
이미 야베스에게 주실 축복을 갖고 계셨다
–
그리고 하나님의 타이밍에
야베스가 받을만한 타이밍에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
야베스의 기도는 자신의 높임과 채움을 위한 기도가 아니었다
철저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욕심을 비우는 낮아짐과 비움을 위한 기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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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야베스의 마음에 욕심, 자기 의, 고집이 모두 비워지고 낮아졌을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선한 것으로 야베스에게 부어주신 것이다
–
우리의 기도가 열매 맺기 위해선
“하였더니” 이 단어를 잘 감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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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예수님을 따르는 팬의 자세로는
이 기간을, 이 역경을, 지금 이 환경을 견디지 못한다
제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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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던 베드로처럼
야베스의 기도
브루스 윌킨슨(Bruce Wilkinson)은 최근에 인기를 모은 그의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청원은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기대하는 것과 내가 그의 능력으로 날마다 경험하는 것을 전폭적으로 변화시켰다. 사실상, 이 진리를 적용하는 수천 명의 신자들이 정규적으로 기적들이 일어나는 것을 본다.”
그럼 야베스는 과연 어떤 기도를 드렸을까요? 야베스의 기도는 역대상에 나옵니다. 역대상은 남부 유다의 다윗 왕가의 역사를 리뷰 하기 위해 아담에서 시작하여 다윗까지의 족보를 열거합니다. 역대상의 첫 아홉 장은 모두 족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족보 중에서 가장 길고 거의 무용한 듯이 보이는 부분입니다. 여기에서 유다 지파의 족장들이 소개되는데 그 중에 야베스라는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에 대한 기록은 단 두 절인데 일종의 프로파일입니다.
족보에서 짤막하게 프로파일을 넣는 것은 고대 족보 작성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에 나오는 족보에서는 가인의 자손으로 라멕을 소개하면서 그가 두 아내를 가졌고 한 소년을 죽였다는 내용의 시가 적혀 있습니다(창4:19-24). 노아의 아들들의 족보에서도 니므롯이 니느웨를 비롯하여 여러 도시를 건설했다고 말합니다(창 10:8-12). 그런데 족보에 나오는 사람마다 다 프로파일이 적힌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야베스의 경우처럼 간략하나마 프로파일이 들어 있는 사람에 대해서 주목하게 됩니다. 야베스는 라멕이나 리므롯처럼 어떤 행위로 유명한 것이 아니고 그의 짧은 기도로 유명합니다. 그는 이런 기도를 올렸습니다.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대상 4:10).
그럼 이 기도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내용을 보면 다른 기도들에 비해서 순전히 자기 중심적인 기도 같은데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대상 4:10)하셨다고 했습니다. 이 부분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한 마디로 자기가 원하는 복을 달라고 청해서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더구나 야베스가 원한 것은 자신의 지역을 넓혀 달라고 한 것이라서 더 잘 되게 해달라는 기도가 결코 나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본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평소에 복 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기복 신앙이라고 할까 봐 밖으로 드러내기를 꺼릴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이런 기도가 성경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마음이 놓이고 용기가 날 것입니다. 그래서 야베스의 기도는 인기가 있는지 모릅니다.
야베스의 기도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이름과 뜻을 먼저 생각하라거나 혹은 자기 중심의 기도를 버리라는 요구가 없습니다. 또한 응답을 해주시면 그 대가로 기도자가 하나님께 어떤 일을 해드리겠다는 서원이나 약속도 없습니다. 그저 내 지역이 넓혀져서 형통하고 근심 걱정이 다 사라지게 해달라는 기도뿐입니다. 그러니 우리 귀에 매우 좋게 들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기도가 이렇게 간단하고 쉬운 것이라면 기도에 대한 부담도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내가 평소에 올리고 싶은 기도와 별로 다를 것이 없는데 야베스의 기도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고 하니까 격려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야베스의 기도를 오해할 수 있습니다. 다음 세 가지 측면을 놓고 살펴보도록 합니다.
첫째, 야베스는 땅을 더 넓혀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야베스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셋째, 야베스는 주의 손이 그와 함께 하기를 기도했습니다
1. 야베스는 땅을 더 넓혀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야베스는 지경을 넓혀 달라고 기도했는데 이것은 자기 땅을 더 달라는 청원처럼 들립니다. 땅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의 이스라엘 사회에서도 재산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야베스가 재산을 늘리고 싶어서 땅을 더 달라고 기도했다면 문제가 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각 지파에 따라 기업의 땅으로 할당된 영역이 있었습니다(민 26:52-56). 그런데 이 땅은 원칙적으로 팔 수 없었습니다. 땅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할당받은 땅은 대대로 자기 가족에게 전수되어야 했으며 가난으로 부득이 하여 땅을 팔았을 경우에도 50년이 되면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레 25:10).
이러한 이스라엘의 토지 원칙에 비추어 볼 때 야베스가 지경을 넓혀 달라고 청한 것은 부자가 되려고 땅을 더 배정받기를 원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상 땅의 배정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했을 때 이미 다 끝난 일이었습니다
2. 야베스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야베스가 하나님께 간청한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정확하게 그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기 유익을 위해서 무엇을 간구하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는 자기 가족들 중에서 가장 존경을 받았다고 했습니다(대상 4:9). 당시에는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자들은 결코 존경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야베스가 자신의 지역을 넓혀 달라고 기도한 것은 율법의 규정을 무시하고 재산을 더 늘려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었음이 분명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응답하셨다고 했으니까 야베스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어떤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지경이 넓혀지는 문제는 야베스가 겪는 환난과 근심에서 벗어나는 일과 관계된 일로 보입니다. 야베스의 영역 확대 청원은 그가 가진 고통스런 상황에서 탈피하는 것과 함께 어우러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이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족보에 기록된 프로파일은 보통 있을 수 있는 사건이 아니고 특기 사항입니다. 이것은 야베스의 일생에서도 이런 큰 구원은 단 한 번만 있었던 일이었음을 시사합니다. 그러니까 야베스는 어떤 극심한 고통에서 하나님의 크신 도우심으로 구출되었을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야베스의 족보에 들어갈 만큼 커다란 구원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야베스가 받은 기도 응답은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놀라운 뉴스였을 것입니다.
야베스는 분명 하나님의 큰 구원을 체험한 사람이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 본문에서 강조되는 것은 지경을 넓혀 달라는 청원 자체가 아니고 심한 고통과 역경에 빠진 야베스를 하나님께서 구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지경을 넓혀 달라는 기도만 드리면 소원이 다 성취되고 날마다 응답의 기적이 일어난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보다는 자기 일이 잘 된다는 쪽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를 놓고 하나님께 지경을 넓혀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 다 된다는 식으로 적용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승리주의입니다. 비록 자기 중심적인 청원이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서 청하는 것일지라도 야베스가 받은 것과 같은 기도 응답이 줄줄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가령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개척 교회의 목회자가 지경을 넓혀 달라고 기도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교인들이 갑자기 모여들고 금방 부흥이 되는 것일까요? 암 말기의 환자가 생명이 곧 끊어지려고 하는데 자신의 건강의 영역을 넓혀 달라고 날마다 간구하면 회복이 될까요? 빚더미에 앉아 파산 선고를 한 사람이 비즈니스의 영역을 넓혀 달라고 간구하면 기적이 일어나서 곧 부자가 되는 것일까요? 불경기로 경제가 어려운 때에 직장의 영역을 넓혀 달라고 기도하면 신자들은 다 취직이 된다는 말일까요?
물론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시고 능력이 크시므로 불가능한 일로 보이던 문제가 해결되게도 하시고 간절히 기도한 일이 뜻밖에 응답되게도 하십니다. 그러나 야베스의 기도를 드린다고 해서 모두 동일한 기적의 응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소아시아에서 큰 환난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그는 살 소망까지 끊어졌고 사형 선고를 받은 줄로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구출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이 사건을 놓고 큰 교훈을 배웠는데 그것은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후에도 하나님이 자기를 구해 주실 것을 바란다고 했습니다(고후 1:8-10). 사실인즉 바울은 여러 번의 위험과 역경에서 하나님의 구출을 받았습니다. 그는 야베스의 기도를 올리고 응답을 받은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도들이 다 그와 같은 응답을 받지 않았습니다. 사도 요한의 형제였던 야고보는 10년 정도의 사역밖에 못하고 헤롯 왕에게 잡혀 일찍 순교를 당하였습니다(행 12:2). 세례 요한과 스데반은 그보다 먼저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의 형제였던 요한은 오래 살면서 여러 지역으로 다니며 사역하였습니다. 베드로도 옥에 갇혔지만 기적으로 옥문이 열려서 구출되었고 장기 사역을 하였습니다(행 12:3-19). 사도들이라면 모두 복음 사역의 영역이 넓혀지도록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들은 복음 전파를 위해서 목숨을 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야베스의 기도 응답을 받아 항상 일이 잘 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응답을 받은 한 예에 불과합니다. 성경에는 기도자의 소원대로 응답을 받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바울은 사도였지만 육체의 가시가 없어지지 않았고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난의 잔이 지나가기를 기도하셨지만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바울도 처음에는 간절한 소원 기도를 올렸지만 나중에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자신들의 소원을 내려 놓았습니다.
성경에 나온다고 해서 마음에 드는 한 두 마디의 기도를 뽑아내어 모든 기도의 원칙으로 삼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그런 식의 적용은 편견과 불균형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많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야베스에게는 옳은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야베스의 기도문 자체가 다른 신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 응답을 보장받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기도의 원칙을 제시한다기 보다는 아무도 구할 수 없는 큰 곤경에 빠진 사람을 하나님이 극적으로 구해 주셨다는 교훈을 담은 것입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드러내는 것이지 야베스의 기도문을 기계적인 축복 기도의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항간에 나돌고 있는 야베스의 기도에 대한 가르침에서 시정되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표준으로 삼아야 할 기도가 있다면 항상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 할 주기도문입니다. 주님은 이 기도에서 제자들이 드려야 할 기도의 기본 원칙과 내용과 목적을 소상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기도문은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중심으로 올리는 기도입니다. 일용할 양식에 대한 청원까지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그분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일과 관계된 것입니다.
우리들의 기도는 어떤 경우에도 우리 중심이 아니고 하나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의 첫 마디는 ‘땅에 있는 나 자신’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됩니다. 하늘 아버지와 그분의 이름이 기도자의 최대 관심이어야 한다는 것을 주기도문은 가르칩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기도문은 모든 기도의 정형이며 모델입니다. 그러므로 야베스의 기도도 주기도문의 원칙과 우선 순위에 따라 해석하고 적용해야 합니다.
3. 야베스는 주의 손이 그와 함께 하기를 기도했습니다.
‘주의 손’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때에 드러나는 초월적인 능력을 상징합니다(사 59:1). 성경에서 주의 손이 함께 한 경우는 모두 하나님의 구원과 관계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바다와 요단 강을 마른 땅처럼 건넌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의 목적이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백성들에게 알게 하고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수 4:24). 사도행전에서는 안디옥에서의 전도 활동으로 많은 결신자가 생긴 것을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행 11:21) 하신 까닭이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든다면 시편 89편에 나오는 주의 손에 대한 약속입니다.
“내 손이 그와 함께 하여 견고하게 하고 내 팔이 그를 힘이 있게 하리로다”(시 89:21).
이제 본 시의 내용을 잠시 살피기로 합니다.
▶ 하나님이 그의 손으로 다윗과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즉, 다윗을 강하게 하여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왕이 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시 89:22, 23, 27).
▶ 다윗이 하나님을 그의 아버지 하나님과 구주로 부를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시 89:26).
▶ 다윗과 그의 후손의 보좌를 영원히 세우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시 89:29, 36)
이 약속들은 다윗의 아들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예수님과 함께 하여 순종의 삶을 사셨고, 자기 백성의 구속을 위해 십자가 고난을 당하셨으며, 부활로 사탄의 능력을 깨뜨리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머지 않아 주님은 왕 중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완성시키기 위해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용례들에서 ‘주의 손’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소원 성취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구속 활동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베스가 주의 손이 자기를 도와서 환난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은 개인적인 고통의 문제를 넘어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연결된 것이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야베스가 자기 가족들 중에서 가장 존경을 받았다고 지적된 것은 그가 평소에 자아 중심적인 축복 사상에 젖어서 산 사람이 아니고, 항상 하나님의 일을 앞세우고 자신의 문제를 생각한 사람이었음을 시사합니다. 그가 만약 순전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자기 영역의 확장에만 급급한 사람이었다면 결코 존경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나의 영역”을 넓혀 달라고 기도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보다 큰 구원의 목적과 일치되는 것이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곧 주기도문의 정신입니다. 주기도문에는 일용할 양식에 대한 요청도 나오고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는 간구도 나옵니다. 악으로부터의 보호와 용서를 비는 청원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기도문은 첫 번째 청원인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와 뜻을 다른 모든 청원에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야베스의 기도 요청도 이러한 가르침의 문맥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바울도 “너희가 먹고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가르쳤습니다.
자기 영광을 위해 야베스의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께 아무런 영광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진정으로 ‘주의 손’이 함께 하기를 원해서 올리는 기도라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십자가로 세우신 주님의 나라가 신속히 완성되며, 온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일과 연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복을 받기 위해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하시는 복의 근원이십니다. 그러나 자신의 야망 달성을 위해 하나님을 끝없이 조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요술이 아닙니다. 날마다 이 기도를 반복한다고 사업이 잘 되거나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야베스의 기도 자체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야베스의 기도가 성경에 나오는 다른 기도들 보다 더 힘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의 계획과 선한 뜻에 달린 것입니다. 때로는 기도의 응답이 늦추어질 수도 있고 혹은 이 세상에서 받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들의 모든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와 뜻에 초점을 맞춘 것이어야 합니다. 개인의 복지를 위한 것일 때에도 우리 자신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목적과 동기가 주기도문의 기도 정신과 일치하는지를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자기 확장을 위해 기도를 했더니 하나님이 들어 주셔서 성공하여 걱정 없이 잘 살았다는 간증이 아니고, 환난 중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얼마나 크게 드러났는지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계속해서 복을 달라고 구하면 영역이 넓어지고, 영역이 확대되면 자원과 능력도 커지며, 위기에 봉착했을 때에도 주의 손이 돕기를 믿음으로 구하면 만사형통한다는 식의 승리주의는 일방적인 해석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하나님을 위해 바르게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영역을 확장하는 것만이 하나님을 위해서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되 자기에게 주어진 소명의 한계를 알고 자신이 허락받은 영역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누구나 야베스의 확장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처럼 능력 있는 사람도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시 131:1).
하나님을 위한 일에도 욕심을 부릴 수 있습니다. 신령한 사역일수록 교만과 야심과 욕심의 우상이 어른거립니다. 우리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겸손히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능력만 주시면 다 할 수 있다는 말은 극단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개인에게도 모든 일을 다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지 않습니다. 오직 죄가 없는 예수님 한 분에게만 모든 것을 다 감당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우리들이 긍정적인 희망을 품고 그의 기도를 모방하면 승승장구한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들은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신뢰해야 하고 긍정적인 자세로 주님의 일에 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 중에 하나는 절제입니다. 절제가 없으면 균형을 잃고 극단이 되기 쉽습니다. 또한 마음이 교만하기 시작하면 모든 일을 다 감당할 수 있을 듯이 착각합니다.
우리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며 야베스의 기도를 올려야 하지만 야베스의 기도가 자기 성공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식의 기도들은 비록 겉으로는 응답을 받은 듯이 보일지 몰라도 우리들의 족보에 특기 사항으로 기재될 프로파일이 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어떤 목적과 의도로 야베스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까? 자기 지경을 넓혀 달라고 기도한다면 어떤 종목을 놓고 기도하시겠습니까? 개인이 받은 소명에 따라서 주님을 더 많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위한 것일 수도 있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돈을 더 벌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손이 닿아야 하는 부분은 외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부족한 성품의 영역도 있고, 성경 이해의 영역도 있으며, 선행과 사랑의 영역도 있습니다.
당신은 내적인 변화를 위해 야베스의 기도를 드린 적이 있습니까? 야베스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근심에서 벗어나기를 원했습니다. 당신은 어떤 종류의 근심을 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근심거리에서 벗어나는 일이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와 뜻에 어떻게 연결되고 있습니까? 자신의 내적 변화가 더디고 영적 성숙이 잘 되지 않아서 근심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 것에서 구출되기 위해 자신의 영성의 지경을 넓혀 달라고도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돈이 많아서 잘 살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나 돈은 큰 책임을 얹어 줍니다. 돈의 청지기 직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당신은 여러 큰 일을 맡고 싶습니까? 그러나 크게 되고 이름이 나는 일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는 자도 많지 않습니다. 그런 일을 소원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문제는 자신의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와 뜻에 따라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경을 넓혀 달라는 기도는 내 꿈이 아니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열망이어야 합니다.
◐ 하나님은 나의 영적 무기력이나 비전의 결핍에 대해 피곤해 하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감당하지도 못할 것을 바라면서 올리는 그칠 줄 모르는 강청에도 피곤해 하십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시려는 영역에 관심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그 이상을 넘어가려는 것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 하나님의 방법과 때를 무시하는 것도 그릇된 일입니다.
◐ 무절제하고 비현실적인 비전도 죄가 됩니다.
◐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무엇이든지 거머쥐려는 태도는 자기 영광을 위한 미성숙한 이기심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푯대를 향해 달리는 것과 다른 것입니다(빌 3:14). 바울의 푯대는 자신이 세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세운 것이었습니다. 그의 푯대는 자기 영역의 확대가 아니고 십자가의 고난으로 구원의 능력을 드러내시는 주님의 영역이 자신의 삶 속에서 넓혀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의미에서 주의 손이 함께 하셔서 우리들의 지경이 넓혀지고 주님의 이름에 영광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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