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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 – 네이버 블로그
청산리 벽계수야. 【시조】- 황진이(黃眞伊).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돌라오기 어려우니.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2/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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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속 벽계수, ‘얘기가 다르잖아!’ | 중앙일보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황진이의 시조를 통해 수없이 …
Source: www.joongang.co.kr
Date Published: 6/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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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 나무위키
벽계수와 지족 선사를 무너뜨린 뒤 송도에서 저명한 학자였던 서경덕에게 찾아가 서경덕도 유혹하려 했지만 보통 내공이 아닌 서경덕은 황진이의 유혹 …
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9/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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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가 있는 아침]청산리 벽계수야-황진이 < 출판 ... - 충청투데이
조선시대 名妓 황진이 벽계수 사모의 情 노래 청산리(靑山裡) 벽계수(碧溪水)야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明月)이 만공산(滿 …
Source: www.cctoday.co.kr
Date Published: 11/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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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黃眞伊)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황진이는 조선전기 「박연」, 「청산리 벽계수야」, 「동짓달 기나긴 밤을」 등을 지은 기녀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다. 중종 대의 인물로 직접적인 기록은 없고 여러 …
Source: encykorea.aks.ac.kr
Date Published: 1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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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황진이와 벽계수, 서경덕,임제에 얽힌 간단한 이야기?
황진이와 벽계수, 서경덕,임제에 얽힌 간단한 이야기 종실 벽계수 이종숙(李琮淑)은 세종대왕의 17번째아들 영해군의 손자로 결코 황진이의 유혹에 …
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3/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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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moon 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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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1.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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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
청산리 벽계수야
【시조】- 황진이(黃眞伊)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돌라오기 어려우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 <청구영언> <해동가요> –
【어휘풀이】
<청산리> : 푸른 산 속.
<벽계수야> : 맑은 시냇물아. 조선 종실(宗室)인 벽계수(碧溪守)라는 사람의 이름을 걸어서 중의적(重義的)으로 표현한 말.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 : 푸른 산속을 흐르는 골짜기 물.
<수이> : 빨리. ‘쉽다’의 형용사에서 부사로 전성. 쉽(어간)+이(부사화 접미사) → 쉬비(연철식 표기) → 쉬이(‘ㅂ’ 탈락) → 수이(동음 생략) → 쉬(간음화 현상)
<일도창해(一到滄海)> : 한번 넓고 튼 바다에 이름. 즉, 인생의 종말을 비유한 말.
<명월(明月)> : 밝은 달. 황진이ㅡ이 기명(妓名)으로서의 두 가지 뜻을 겸하고 있음 (중의법).
<만공산(滿空山)> : 빈 산에 가득 참. ‘공산(空山)’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임.
<어떠리> : 좋지 않으랴. 어떻겠는가? (설의법).
【현대어 풀이】
청산 속에 흐르는 푸른 시냇물아, 빨리 흘러간다고 자랑 마라.
한 번 넓은 바다에 다다르면 다시 청산으로 돌아오기 어려우니
밝은 달이 산에 가득 차 있는, 이 좋은 밤에 나와 같이 쉬어감이 어떠냐?
【해설】
조선 선조 때의 명기(名妓) 황진이가 당대의 귀족이던 이벽계수(李碧溪守)가 성격이 근엄(謹嚴)하여 여자를 멀리할 뿐 아니라, 황진이조차도 과소평가한다는 말을 듣고, 황진이가 화가 나서 그를 유인하려고 이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개관】
▶작가 : 황진이(黃眞伊)
▶갈래 : 정형시, 평시조, 단형시조, 서정시, 풍자시(諷刺詩), 연정적(戀情的), 풍유적9諷諭的).
▶성격 : 풍류적, 허무적, 향락적(享樂的), 감상적, 낭만적.
▶정조(情調) : 여인의 유혹적인 연정(戀情).
▶소재 : 백계수, 명월.
▶제재 : 벽계수, 달.
▶표현 : 은유법, 중의법, 의인법, 대조법, 설의법.
▶운율 : 음수율, 4음보, 외형률
▶배경 : 인간세사(人間世事)의 덧없는 상황, 즉 기녀생활(妓女生活)이 배경이 됨. ‘벽계수’는 당시 왕족인 벽계수(碧溪守). ‘명월’은 황진이.
▶핵심어 : 쉬어 간들.
▶주제 : 인생무상과 풍류생활 / 짧은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자.
【배경설화】
왕족 벽계수가 뭇 남성들이 진이에게 반한다는 말을 듣고 자기는 그렇지 않으리라 장담하였다. 진이가 이 말을 듣고 그를 유인해 보려고 사람을 시켜 송도에 구경 오게 하였더니 벽계수가 나귀를 타고 만월대에 이르자 진이가 곱게 단장하고 나타나 나귀 고삐를 잡고 이 노래를 부르니 웬 선녀인가 하여 저도 모르게 나귀에서 내렸다 한다.
【구성】
▶초장 : 기(起자) – 만심, 고고함의 경계 – 중의법, 의인법, 명령법.
▶중장 : 인생무상 – 절망적인 인생
▶종장 : 주제행 – 풍류적 삶의 권유
【감상】
이 시조는 당시 조선 종실(宗室)인 벽계수라는 사람이 자기는 다른 사람들처럼 황진이를 한번 봐도 침혹(沈惑)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늘 큰소리친다는 말을 듣고, 황진이가 사람을 시켜 벽계수를 유인, 개성(開城) 구경을 오게 하여, 달 밝은 밤 만월대(滿月臺)에서 이 시조를 읊어 벽계수로 하여금 도취케 하여, 타고 온 나귀에서 떨어지게 하였다고 하는 고사와 관련된 시조이다.
이 시조는 그 배경으로 보아, 인생무상을 여유 있는 마음으로 살아가자는 유혹과 권유를 담은 노래이다. 빼어난 중의법(重義法)과 은유법(隱喩法)을 써서 퇴락(頹落)하거나 속되지 않게 문맥을 살렸으며, 낭만적 생활감정을 잘 표현하였다.
이 작품의 더욱 가치 있는 점은 철학적ㆍ예술적인 깊이가 잇다는 것이다. 청산(자연)은 영원한 존재(여우언자)이며, 벽계수는 이간을 비유한 말로서, 인간은 유한자(有限者: 순간적인 존재)로서 대조를 이루어, 대자연 속의 덧없는 인생의ㅡ 한(恨)을 풀어보려는 멋 잇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 최장수 : <고등국어 1>(교학사.1980) –
이 시조를 이해하는 흥미의 초점은 그 어느 뜻으로 잡거나 내용과 가락이 임리(淋漓)하여 그칠 줄 모르는 감회와 정을 느끼게 하는 데 있다.
가령, ‘벽계수’와 ‘명월’을 말 그대로의 뜻에 따라 ‘푸른 물’, ‘밝은 달’로 보더라도 거기에는 벌써 범상(凡常)을 넘어 자연을 어떤 이치(理致)로 보고자 한 데가 있어 놀랍거니와 사람 ‘벽계수’와 기녀(妓女) ‘명월(明月)’로 풀더라도 그 뜻에 함축미가 있어서 좋다.
인생이란, 한번 죽어지면 다시 되살아오기 어려움은 천리(天理)요, 인력(人力)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매, 한가롭게 쉬었다가 떠나보내는 여유를 가져보라고 유혹한 것이다. 과연 기록에도 벽계수가 이 노래를 듣고, 노새의 등에서 떨어져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했으니, 가히 알 만하다.
<해동소악부(海東小樂府)>에는 한역시(漢譯詩)로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靑山影裡碧溪水 容易東流爾莫誇 一到滄海難再見 且留明月暎裟婆”
가람 이병기(李秉岐)는 황진이의 시조를 절창(絶唱)이라 하였다.
– 이상보 : <명시조 감상>(을유문화사.1970) –
황진이가 지향하는 문학적 가치관의 일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초ㆍ중장에서 인생의 덧없음을 전제한 뒤, 종장에서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자고 호소하고 있는 작품이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애창되는 이 작품은 황진이가 왕족인 벽계수를 유혹하고자 불렀다고 한다.
한 번 바다로 흘러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논리로 벽계수를 유혹하면서 종장에서 밝은 달과 자신으로 시상(詩想)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킨 기지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세월은 빠르고 인생은 덧없는 것이니,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자는 시조로 교훈적이고 유교적인 인습에 젖어 있던 당시의 사대부들에게 무엇인가를 일깨우는 작품이다.
이 시조에서 ‘청산<靑山)’은 영원자로서 변함이 없는 자연을 나타내고, ‘벽계(碧溪)’는 순간자로서 쉬지 않고 변해가는 인생을 비유한 것이다. 따라서 자연의 영원에 비하여 인생은 순간적인 존재인데, 이것이 한번 늙거나 죽어지면 다시는 어쩔 수 없으니 살아 있는 동안 될 수 있는 대로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을 자연의 이치에 비추어 읊어 낸 시조이다. 벽계수는 늘, 나는 황진이를 만나더라도 다른 사람들처럼 유혹되지 않을 것이라고 큰 소리를 쳤다고 한다. 이 말을 전해 들은 황진이는 사람을 시켜 벽계수를 개성의 경치 좋은 곳인 만월대로 오게 하고 이 시조를 불렀다. 낭랑한 목소리와 함축성 있는 노래를 들은 벽계수는 그만 도취되어 자기도 모르게 타고 있던 나귀 등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황진이 속 벽계수, ‘얘기가 다르잖아!’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황진이의 시조를 통해 수없이 들었던 그 이름 벽계수. 한마디로 ‘명월인 내가 여기 있으니 다른 데 가지 말고 나와 놀아보자’는 이 시조에서 벽계수는 어쩌면 한 여성의 전폭적인 ‘작업’을 받은 매력남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렇듯 조선의 명기 황진이와 핑크빛 로맨스를 펼쳤을 것으로만 기억됐던 풍류가객 벽계수의 영 다른 모습에 시청자들이 헷갈려하고 있다. 바로 인기리에 방송중인 KBS 사극 ‘황진이’ 때문이다.
‘황진이’에서 벽계수(류태준. 사진)는 그야말로 지고는 못사는 냉혈한과, 한 사람의 목숨쯤 쉽게 없앨 수 있는 파워엘리트에 다름 아니다. 이전만 해도 툭 하면 자신을 깔아뭉개는 황진이(하지원) 앞에서 ‘굴욕’ 시리즈를 남발한 벽계수는 그런대로 귀여운 구석이 있었지만, 7일 방송분에서는 그 도를 넘었다.
바로 황진이의 스승 백무(이영애)를 결국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 황진이에게 당한 치욕을 백무를 통해 풀려는 그 치졸함과, 스승의 장형을 막기위해 자신의 첩실 되기를 청했던 황진이 앞에서 슬슬 웃는 그 징그러운 미소라니. 또한 자신의 애를 밴 황진이의 기생친구 단심(이인혜)에게는 “그 애가 내 애라는 증거가 있느냐?”고 뻔뻔하게 따졌다.
사료에 따르면 벽계수는 조선 제4대 임금인 세종의 17번째 아들 영해군의 손자로 알려져 있다. 조선의 종실인 셈. 또한 서유영의 ‘금계필담’에는 황진이와 벽계수의 이야기가 실렸으니 황진이의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를 듣다가 벽계수가 말에서 떨어졌다는 내용이다. 이에 황진이가 “이 사람은 명사가 아니라 풍류객일 뿐이다”며 가버렸다고. 이때도 실상 벽계수의 ‘굴욕’은 존재했던 것이다.
네티즌들도 이런 벽계수의 모습에 분개하고 있다. ‘황진이’ 홈피 게시판에는 “최고의 남자인 김대감과 최악의 남자인 벽대감, 비교가 간다” “벽계수 죽는꼴 마지막으로 보고 싶다” “아무리 계급이 높다한들, 인간이 덜 됐다” 등의 글이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벽계수 등장 초반, 반듯한 외모와 강한 승부근성에 “매력적이다”는 반응과는 사뭇 다르다.
[시조가 있는 아침]청산리 벽계수야-황진이
조선시대 名妓 황진이 벽계수 사모의 情 노래
청산리(靑山裡) 벽계수(碧溪水)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황진이
널리 알려진 조선시대 명기(名妓), 황진이(黃眞伊)의 작품으로 가객들로부터 가장 애창되는 노래다.
‘청산에 졸졸 흐르는 시냇물아, 쉽게 흘러감을 자랑 마라. 푸른 바다에 이르면 다시 오기 어렵거늘, 밝은 달이 빈 산에 가득 차니 나와 함께 쉬면서 놀다감이 어떻겠느냐’는 뜻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벽계수’는 당시의 왕족 이원혼(李源渾)이요, ‘명월’은 황진이 스스로를 지칭한다.
이 시조의 동기는 황진이가 벽계수를 사모하는 깊은 연정에서 비롯되었다. 황진이가 이 시조를 청아한 목소리로 읊는 동안 벽계수는 깜짝 놀라 말에서 떨어졌다는 일화가 전해 온다.
이쯤이면 작품을 끌어내는 실마리나 시를 구성하는 솜씨, 속뜻을 감추면서 비유하는 기법이 자연스럽게 무르익은 절창(絶唱)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황진이는 시와 가무, 가야금에 능숙한 미모의 기녀로서 당대 이름 높던 학자 서화담과 박연폭포, 그리고 자기를 합하여 송도(松都) 삼절(三絶)이라 할 만큼 자부심도 강하였다.
그녀가 남긴 시조 다섯 수는 모두 정열적이고 서정미가 풍부하여 여류 시조의 백미(白眉)로 손꼽힌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소재 ‘벽계수’와 ‘명월’에 착안한 중의법(重義法)으로 시를 구성한 점이 놀랍다. 사모하는 왕족의 이름이 ‘벽계수’인 점에 착안하고 거기에 자신의 기명(妓名)인 ‘명월’을 연결시켜 사모의 정을 함축한 놀라운 순발력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당시 사대부가 아니면 행세할 수 없었던 엄격한 봉건체제 속에서 기녀의 신분으로 시를 화답함으로써 사모의 정을 직접 전달하는 유일한 방법이 되었던 것이다.
그의 전기에 대하여 상고할 수 있는 직접사료는 없다. 따라서 간접사료인 야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계통의 자료는 비교적 많은 반면에 각양각색으로 다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너무나 신비화시킨 흔적이 많아서 그 허실을 가리기가 매우 어렵다.
황진이의 출생에 관하여는 황진사(黃進士)의 서녀(庶女)로 태어났다고도 하고, 맹인의 딸이었다고도 전하는데, 황진사의 서녀로 다룬 기록이 숫자적으로는 우세하지만 기생의 신분이라는 점에서 맹인의 딸로 태어났다는 설이 오히려 유력시되고 있다.
황진이가 기생이 된 동기는 15세경에 이웃 총각이 혼자 황진이를 연모하다 병으로 죽자 서둘러서 기계(妓界)에 투신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여부는 알 수가 없다. 용모가 출중하며 뛰어난 총명과 민감한 예술적 재능을 갖추어 그에 대한 일화가 많이 전하고 있다.
주 01)하여 거문고와 주효(酒肴)를 가지고 그의 정사를 자주 방문하여 당시(唐詩)를 주 02)하였다고 한다. 또한, 미모와 가창 뿐만 아니라 서사(書史)에도 정통하고 시가에도 능하였다. 당대의 석학 서경덕(徐敬德)을 사숙(私淑) 하여 거문고와 주효(酒肴)를 가지고 그의 정사를 자주 방문하여 당시(唐詩)를 정공(精工) 하였다고 한다.
황진이는 자존심도 강하여 당시 10년 동안 수도에 정진하여 생불(生佛)이라 불리던 천마산 지족암의 지족선사(知足禪師)를 유혹하여 파계시키기도 하였다. 당대의 대학자 서경덕을 유혹하려 하였으나 실패한 뒤에 사제관계를 맺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박연폭포(朴淵瀑布)·서경덕·황진이를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 하였다고 한다.
황진이는 사대부의 허울만 벗기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여성은 아니었다. 선전관이었던 이사종을 사랑하여 6년간 전국을 유람하였다. 한양 제일의 소리꾼이라는 이사종과 황진이와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두 사람은 거칠 것 없이 송도를 떠나 조선 팔도를 유람하며 한양과 송악에서 남녀간의 사랑을 초월한 예술 동지이자 영혼의 동반자로 인생을 함께 나눴다. 연인과의 사랑을 바탕으로 시를 지을 때면 조선 최고의 시인이 되었다. 그녀가 이사종과의 열정적인 사랑을 읊은 [동짓날 기나긴 밤]은 오늘날까지도 애송되는 옛시조이다. 동짓날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님 오신날 밤이어드란 구뷔구뷔 펴리라 이별 없는 사랑이 없다지만, 잦은 이별은 그녀의 마음을 멍들게 했을까. 소세양 과의 30일간의 사랑은 참으로 애틋하다. 황진이와 사랑을 나눈 소세양은 중종 4년에 등과하여 시문에 능했고, 벼슬이 대제학까지 오른 인물이었다. 소세양은 젊어서부터 여색을 밝혔다고 전한다. 송도의 명기 황진이가 절세 미인이라는 소문을 들은 소세양은 “황진이가 절색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그녀와 30일만 함께 하고 깨끗하게 헤어질 것이다. 만약 하루라도 더 머물게 된다면 너희들이 나를 인간이 아니라고 해도 좋다.” 황진이를 만난 소세양은 30일의 약속으로 동거에 들어갔다. 마침내 약속한 날짜가 다가오자 소세양은 황진이와 함께 이별의 술잔을 나누었다. 황진이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다가 시 한수를 소세양에게 써주었다. 그녀의 시 한수는 소세양의 마음을 움직였고, 친구들은 약속을 어긴 소세양을 인간이 아니라고 놀렸다 한다. 소세양과의 이별을 맞이하며 달빛 아래 뜰에는 오동잎 모두 지고
찬서리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구나.
다락은 높아 높아 하늘만큼 닿았는데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흐르는 물소리는 차기가 비파소리
피리에 감겨드는 그윽한 매화향기
내일 아침 눈물 지며 이별하고 나면
님그린 연모의 정 길고 긴 물거품이 되네. ● 잣나무 배 < 황진이 > 저 강 한가운데 떠 있는 조그만 잣나무 배
몇 해나 이 물가에 한가로이 매였던고
뒷사람이 누가 먼저 건넜느냐 묻는다면
문무를 모두 갖춘 만호후라 하리
小栢舟(소백주)
汎彼中流小柏舟 幾年閑繫碧波頭 後人若問誰先渡 文武兼全萬戶侯
범피중류소백주 기년한계벽파두 후인약문수선도 문무겸전만호후
* 세월이 흐른 뒤, 황진이 가 자신의 첫사랑을 생각하며 지었을 법한 시이다. ● 반달을 노래함 < 황진이 > 누가 곤륜산 옥을 깎아 내어
직녀의 빗을 만들었던고
견우와 이별한 후에
슬픔에 겨워 벽공에 던졌다오
詠半月(영반월)
誰斷崑山玉 裁成織女梳 牽牛離別後 愁擲壁空虛
수착곤산옥 재성직녀소 견우이별후 만척벽공허
* 이 시는 초당(草堂) 허엽(許曄, 1517~1580)의 시인데 황진이 가 자주 불러 황진이 의 시로 오인되고 있다는 학설도 있다. ● 산은 옛 산이로되… < 황진이 >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晝夜)에 흐르거든 옛 물이 있을손가
인걸(人傑)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는 것은 * 황진이 자신을 청산에 비유하여 변치 않는 정을 노래하고 있다. ● 청산은 내 뜻이요… < 황진이 > 청산(靑山)은 내 뜻이요 녹수(綠水)는 님의 정이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도 청산을 못 잊어 울어예어 가는고 * 황진이 자신을 청산에 비유하여 변치 않는 정을 노래하고 있다. ● 동짓달 기나긴 밤을… < 황진이 >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 외로운 밤을 한 허리 잘라내어 님 오신 밤에 길게 풀어 놓고 싶다는 연모의 정을 황진이 만의 맛깔난 어휘로 노래하고 있다. ● [ 황진이 와 화담 서경덕 ] 마음이 어린 후이니…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 운산(萬重雲山)에 어느 님 오리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 화담 서경덕 내 언제 무신(無信)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데
월침 삼경(月沈三更)에 올 뜻이 전혀 없네
추풍(秋風)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
– 황진이 * 그리운 정에 떨어지는 잎 소리마저도 님이 아닌가 한다는 화담의 시조 에 지는 잎 소리를 난들 어찌하겠느냐는 황진이 의 안타까움을 전한다. ● 청산리 벽계수야… < 황진이 > 청산리 벽계수(靑山裏 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一到蒼海)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 황진이 와 벽계수와의 이야기는 서유영(徐有英,1801~1874)의 <금계필담(錦溪筆談)>에 자세히 전한다. – 황진이 는 송도의 명기이다. 미모와 기예가 뛰어나서 그 명성이 한 나라에 널리 퍼졌다. 종실(宗室) 벽계수가 황진이 를 만나기를 원하였으나 ‘풍류명사(風流名士)’가 아니면 어렵다기에 손곡(蓀谷) 이달(李達)에게 방법을 물었다.
이달이 “그대가 황진이 를 만나려면 내 말대로 해야 하는데 따를 수 있겠소?”라고 물으니 벽계수는 “당연히 그대의 말을 따르리다”라고 답했다. 이달이 말하기를 “그대가 소동(小童)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가지고 뒤를 따르게 하여 황진이 의 집 근처 루(樓)에 올라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타고 있으면 황진이 가 나와서 그대 곁에 앉을 것이오. 그때 본체만체하고 일어나 재빨리 말을 타고 가면 황진이 가 따라올 것이오. 취적교(吹笛橋)를 지날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일은 성공일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오” 했다.
벽계수가 그 말을 따라서 작은 나귀를 타고 소동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들게 하여 루에 올라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한 곡 탄 후 일어나 나귀를 타고 가니 황진이 가 과연 뒤를 쫒았다. 취적교에 이르렀을 때 황진이 가 동자에게 그가 벽계수임을 묻고 “청산리 벽계수야…” 시조 를 읊으니, 벽계수가 그냥 갈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리다 나귀에서 떨어졌다.
황진이 가 웃으며 “이 사람은 명사가 아니라 단지 풍류랑일 뿐이다”라며 가버렸다. 벽계수는 매우 부끄럽고 한스러워했다. 한편 구수훈 (具樹勳, 영조 때 무신)의 <이순록(二旬錄)>에는 조금 달리 나와 있다.
-종실 벽계수는 평소 결코 황진이 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말해왔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황진이 가 사람을 시켜 그를 개성으로 유인해왔다.
어느 달이 뜬 저녁, 나귀를 탄 벽계수가 경치에 취해 있을 때 황진이 가 나타나 “청산리 벽계수야…” 시조 를 읊으니 벽계수는 밝은 달빛 아래 나타난 고운 음성과 아름다운 자태에 놀라 나귀에서 떨어졌다. ● 어져 내 일이야… < 황진이 >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던가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어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 이별의 회한을 노래한 것으로 황진이 가 시조 의 형식을 완전히 소화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 시조 이다. ● 奉別蘇判書世讓(봉별소판서세양) 소세양 판서를 보내며 < 황진이 > 月下梧桐盡(월하오동진) 달빛 아래 오동잎 모두 지고
霜中野菊黃(설중야국황) 서리 맞은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구나.
樓高天一尺(누고천일척) 누각은 높아 하늘에 닿고
人醉酒千觴(인취주천상)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流水和琴冷(유수화금랭) 흐르는 물은 거문고와 같이 차고
梅花入笛香(매화입적향) 매화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워라
明朝相別後(명조상별후) 내일 아침 님 보내고 나면
情與碧波長(정여벽파장) 사무치는 정 물결처럼 끝이 없으리. * 소세양이 소싯적에 이르기를, “여색에 미혹되면 남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황진이 의 재주와 얼굴이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는 친구들에게 약조하기를 “내가 황진이 와 한 달을 지낸다 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자신이 있네. 하루라도 더 묵는다면 사람이 아니네”라고 호언장담을 하였다.
그러나 막상 송도로 가서 황진이 를 만나보니 과연 뛰어난 사람이었다. 30일을 살고 어쩔 수 없이 떠나려 하니, 황진이 가 누(樓)에 올라 시를 읊었다. 이 시를 듣고 소세양은 결국 탄식을 하면서 “나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더 머물렀다.
이 때 황진이 가 읊은 시가 바로 <봉별소양곡세양(奉別蘇陽谷世讓)>이다. ● 別金慶元 (별김경원) 김경원과 헤어지며 < 황진이 > 三世金緣成燕尾 (삼세금연성연미) 삼세의 굳은 인연 좋은 짝이니
此中生死兩心知 (차중생사양심지) 이 중에서 생사는 두 마음만 알리로다
楊州芳約吾無負 (양주방약오무부) 양주의 꽃다운 언약 내 아니 저버렸는데
恐子還如杜牧之 (공자환여두목지) 도리어 그대가 두목(杜牧)처럼 한량이라 두려울 뿐. ● 朴淵瀑布 ( 박연폭포 ) < 황진이 > 一派長川噴壑? (일파장천분학롱) 한 줄기 긴 물줄기가 바위에서 뿜어나와
(용추백인수총총) 폭포수 백 길 넘어 물소리 우렁차다
飛泉倒瀉疑銀漢 (비천도사의은한) 나는 듯 거꾸로 솟아 은하수 같고
怒瀑橫垂宛白虹 (노폭횡수완백홍) 성난 폭포 가로 드리우니 흰 무지개 완연하다
雹亂霆馳彌洞府 (박난정치미동부) 어지러운 물방울이 골짜기에 가득하니
珠?玉碎徹晴空 (주용옥쇄철청공) 구슬 방아에 부서진 옥 허공에 치솟는다
遊人莫道廬山勝 (유인막도려산승) 나그네여, 여산을 말하지 말라
須識天磨冠海東 (수식천마관해동) 천마산야말로 해동에서 으뜸인 것을. * 황진이 가 자신을 포함한 송도삼절 의 하나로 꼽을 정도로 사랑한 박연폭포. 송도의 기생이었던 황진이 는 물론 이곳을 자주 방문하여 풍류를 즐겼을 것이다.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유려한 표현은 박연의 장관을 짐작케 한다.
박연폭포는 현재 개성시 개풍군(開豊郡) 천마산(天摩山) 기슭에 있다. ● 滿月臺懷古 (만월대회고) 만월대 를 생각하며 < 황진이 > 古寺蕭然傍御溝 (고사소연방어구) 옛 절은 쓸쓸히 어구 옆에 있고
夕陽喬木使人愁 (석양교목사인수) 저녁 해가 교목에 비치어 서럽구나
煙霞冷落殘僧夢 (연하냉락잔승몽) 연기 같은 놀(태평세월)은 스러지고 중의 꿈만 남았는데
歲月嶸破塔頭 (세월쟁영파탑두) 세월만 첩첩이 깨진 탑머리에 어렸다.
黃鳳羽歸飛鳥雀 (황봉우귀비조작) 황봉은 어디가고 참새만 날아들고
杜鵑花發牧羊牛 (두견화발목양우) 두견화 핀 성터에는 소와 양이 풀을 뜯네.
神松憶得繁華日 (신송억득번화일) 송악의 번화롭던 날을 생각하니
豈意如今春似秋 (기의여금춘사추) 어찌 봄이 온들 가을 같을 줄 알았으랴 ● 松 都 (송 도) 송도를 노래함 < 황진이 > 雪中前朝色 (설중전조색) 눈 가운데 옛 고려의 빛 떠돌고
寒鐘故國聲 (한종고국성) 차디찬 종소리 는 옛 나라의 소리 같네
南樓愁獨立 (남루수독립) 남루에 올라 수심 겨워 홀로 섰노라니
殘廓暮烟香 (잔곽모연향) 남은 성터에 저녁연기 피어 오르네 * 황진이 는 옛 고려의 수도인 송도에서 태어나 평생을 송도를 중심으로 살았다. 남아 있는 몇 편 안 되는 황진이 의 시 중에 두 편이 송도를 노래한 것이다. ● 相思夢 (상사몽) 꿈 < 황진이 > 相思相見只憑夢 (상사상견지빙몽) 그리워라, 만날 길은 꿈길밖에 없는데
?訪歡時歡訪? (농방환시환방농) 내가 님 찾아 떠났을 때 님은 나를 찾아왔네
願使遙遙他夜夢 (원사요요타야몽) 바라거니, 언제일까 다음날 밤 꿈에는
一時同作路中逢 (일시동작로중봉) 같이 떠나 오가는 길에서 만나기를 * 이 시는 김안서 작사, 김성태 작곡으로 <꿈길에서> 라는 제목의 가곡으로 만들어졌다. ● 서경덕의 시조 *< 성옹지소록 >에 보면 황진이 가 거문고를 즐기는 모습이 나온다.
– 황진이 는 성품이 소탈하여 남자와 같았으며 거문고를 잘 타고 노래를 잘 불렀다.
-평생에 화담 선생을 사모하여 반드시 거문고를 메고 술을 걸러 선생의 거처에 가서 한껏 즐기다가 돌아가곤 했다.
*서경덕 또한 거문고를 즐겼으며, 거문고에 대한 몇 편의 시를 남기고 있다. 그의 성리설은 우주의 근원과 현상세계를 모두 ‘하나의 기(一氣)’로 파악하였는바, 그는 이 하나의 기를 ‘태허(太虛·우주 생성 이전의 상태)’ 개념으로 표출하고 ‘선천(先天)’과 일치시켰다. 모든 현상세계가 생성되어 나오는 동정(動靜) 생극(生克)의 계기는 이 하나의 태허 속에 내포되어 있으며, ‘기’가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이라 해석한다. 그는 ‘이(理)’를 ‘기’의 위에 두기를 거부하고 ‘기’가 생성 작용하는 ‘후천(後天)’의 현상세계에서 그 정당성을 잃지 않게 하는 자기통제력으로 파악하였다.
즉 ‘이’는 ‘기를 주재하는 것’이라 하여, ‘이’를 ‘기’의 한 속성으로 한정한 것이다. 그가 <줄 없는 거문고에 새긴 글>과 <줄 있는 거문고에 새긴 글>을 나란히 지었던 것도 바로 소리 없는 가운데 소리를 듣는 음악의 본체와 소리 속에서 음률의 조화를 즐기는 음악의 응용으로, ‘태허―선천과 동정―후천’의 구조로 이루어진 그의 기철학적 세계를 생생하게 암시해주는 것이다. 無絃琴銘(무현금명) 줄 없는 거문고에 새긴 글 <화담 서경덕> 1.琴而無絃, (금이무현) 거문고에 줄이 없는 것은
存體去用. (존체거용) 본체(體)는 놓아두고 작용(用)을 뺀 것이다.
非誠去用, (비성거용) 정말로 작용을 뺀 것이 아니라
靜基含動. (정기함동) 고요함(靜)에 움직임(動)을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
聽之聲上, (청지성상) 소리를 통하여 듣는 것은
不若聽之於無聲, (불약청지어무성) 소리 없음에서 듣는 것만 같지 못하며,
樂之刑上, (악지형상) 형체를 통하여 즐기는 것은
不若樂之於無刑. (불약악지어무형) 형체 없음에서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
樂之於無刑, (악지어무형) 형체가 없음에서 즐기므로
乃得其 , (내득기 ) 그 오묘함을 체득하게 되며,
聽之於無聲, (청지어무성) 소리 없음에서 그것을 들음으로써
乃得其妙. (내득기묘) 그 미묘함을 체득하게 된다.
外得於有, (외득어유) 밖으로는 있음(有)에서 체득하지만,
外得於無. (내득어무) 안으로는 없음(無)에서 깨닫게 된다.
顧得趣平其中, (고득취평기중) 그 가운데에서 흥취를 얻음을 생각할 때
爰有事於絃上工夫 (원유사어형상공부) 어찌 줄(絃)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가?
2. 不用其絃, (불용기현) 그 줄은 쓰지 않고
用其絃絃律外官商. (용기현현율외관상) 그 줄의 줄소리 밖의 가락을 쓴다.
吾得其天, (오득기천) 나는 그 본연을 체득하고
樂之以音. (락지이음) 소리로써 그것을 즐긴다.
樂其音, (락기음) 그 소리를 즐긴다지만,
音非聽之以耳, (음비청지이이)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요,
聽之以心. (청지이심)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
彼哉子期, (피재자기) 그것이 그대의 지표이거늘
曷耳吾琴. (갈이오금) 내 어찌 거문고를 귀로 들으리?
琴銘(금명) 거문고에 새긴 글 <화담 서경덕>
1. 鼓爾律, (고이율) 그대의 가락을 뜯으며
樂吾心兮, (락오심혜) 나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諧五操, (해오조) 여러 가지 곡조를 고르되
無外淫兮 (무외음혜) 밖으로 지나치진 않는다.
和以節, (화이절) 강단으로써 조화시키어
天其時兮, (천기시혜) 날이 가고 사철이 바뀌듯하며,
和以達, (화이달) 통달함으로써 조화시키어
鳳其儀兮. (봉기의혜) 봉황새도 법도를 따라 춤추게 한다.
2.鼓之和, (고지화) 그것을 뜯어 조화시킴으로써
回唐虞兮, (회당우혜) 요순시대로 돌아가며,
滌之邪, (척지사) 사악함을 씻어냄으로써
天與徒兮. (천여도혜) 자연과 융화되는 사람이 된다.
操?洋, (조아양) 높다란 소리?넓은 소리를 타지마는
人孰耳兮. (인숙이혜) 그 누가 귀담아 듣겠는가?
繁而簡, (번이간)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有如味兮. (유화미혜) 간략한 데 뒷맛이 있느니.
偶吟(우음) 우연히 짓다 <화담 서경덕> 殘月西沈後(잔월서침후) 잔월도 서쪽으로 진 뒤에
古琴彈歇初(고금탄헐초) 오랜 거문고 타기를 비로소 쉬네
明喧交暗寂(명훤교암적) 밝고 소란함과 어둡고 적막함이 섞이니
這裏妙何如(저리묘하여) 이 속의 오묘함이 어떠하냐
● 청초 우거진 골에… <백호 임제> * 황진이 의 임종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백 호(白湖) 임제(林悌, 1549~1587)이다. 평생 황진이 를 못내 그리워하고 동경하던 그는 마침 평안도사가 되어 가는 길에 송도에 들렀으나 황진이 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절망한 그는 그길로 술과 잔을 들고 무덤을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다음의 시조 를 지어 황진이 를 애도했다.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紅顔)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盞)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조정의 벼슬아치로서 체통을 돌보지 않고 한낱 기생을 추모했다 하여 백호는 결국 파면을 당하며 얼마 지나지 않아 임종을 맞게 된다. 슬퍼하는 가족들에게 “내가 이같이 좁은 나라에 태어난 것이 한이로다” 하고 눈을 감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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