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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는 17세기 말,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메디치’를 위해 건반악기를 제작하고 있었다. 1689년경 피아노 제작에 착수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1710년경에는 피아노 3대를 완성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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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가 개발됐던 시기와 발전과정, 작곡가들의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고요. 피아노의 역사와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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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총 52개의 건반으로 구성되어 나무로 된 작은 망치가 강철 프레임에 고정된 피아노줄을 건반으로 소리를 낸다. 18세기 초 이탈리아의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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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11/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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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이야기 [1] – 탄생과 역사 – 네이버 블로그

피아노는 한 악기 장인에 의해 개발되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 토스카나 대공국의 군주 페르디난도 데 메디치의 후원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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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7/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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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발명 이야기 – 야마하 – 대한민국

피아노의 기원은 클라비코드, 하프시코드, 덜시머 같은 다양한 악기로 거슬러 올라가 … 건반 악기의 역사는 파이프를 통해 공기를 파열시켜 소리를 내는 오르간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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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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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에 가까운 건반악기 ‘피아노’는 어떻게 발명 된 걸까? – 윕뉴스

피아노 발명의 역사는 다른 악기들에 비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현악기 하프의 경우 하프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활형 하프는 기원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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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wip-news.com

Date Published: 6/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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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 나무위키:대문

이때가 되면, 피아노의 운명이 결정된다. 유명한 홀에 있었고, 위대한 피아니스트의 손을 거쳤거나 홀의 첫 그랜드 피아노였다는 등의 역사성이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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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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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일반적으로 그랜드 피아노(grand piano)와 업라이트 피아노(upright piano)의 두 종류 … 비교적 짧은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피아노가 서양음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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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encykorea.aks.ac.kr

Date Published: 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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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탄생과 변천사 – Icarus

피아노는 17세기 말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는데요. 피아노는 제작자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 가 처음 발명한 것으로 추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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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nippet-island.tistory.com

Date Published: 11/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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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역사 – 다음블로그

피아노가 발명된 것은 18세기 초의 일이지만 음악가들에게 비중있게 쓰여지게 된 것은 19세기로 접어들면서부터이다. 19세기를 피아니스트의 시대, 20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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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5/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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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피아노의 역사

  • Author: 어찌됐든김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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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3. 19.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1TPpGo-mKY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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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역사

피아노의 역사

제1기 1770년대 이전

피아노는 17세기 말,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피아노는 제작자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Bartolomeo Cristofori, 1655-1732)’가

처음 발명한 것으로 추측되며, 당시 크리스토포리는 피렌체를 대표하는 가문

‘메디치’를 위해 건반악기를 제작하고 있었다.

피아노의 전신 하프시코드, 스피넷등을 제작하던 크리스토포리는

1689년경 피아노 제작에 착수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1710년경에는 피아노 3대를 완성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당시 크기가 큰 하프시코드가 5옥타브가 넘는 소리를 낸 것에 비교하면,

4개의 옥타브로 된 이 피아노는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악기였다.

이후 크리스토포리의 제자 ‘지오반니 페리니(Giovanni Ferrini, 1699?-1758)’가

스승의 뒤를 이어 피렌체에서 피아노를 제작했다.

크리스토포리가 제작한 피아노, 1720년 <출처: Wiki-piano> 크리스토포리의 피아노 액션 <출처: Wiki-piano>

크리스토포리가 만든 피아노의 액션 구조는 피아노의 전신인 하프시코드의 액션 구조와 달랐다.

하프시코드는 현을 뜯어서 소리 내는 구조이지만,

크리스토포리의 액션은 해머(Hammer)로 현을 때리는 구조이기 때문에,

연주자는 음량을 조절할 수 있었고 이전보다 음의 크기도 커졌다.

하지만 이 해머가 연주하지 않은 다른 현을 진동시키는 문제가 발생하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댐퍼(Damper)가 고안되었다.

연주되지 않는 현의 울림을 막아주는 댐퍼는 공명에 의한 이상한 음의 발생을 막아주었다.

또한 현을 때리고 난 해머가 반사되어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서

건반과 해머 사이에 잭(Jack)을 넣어 해머가 현과 붙어있지 않도록

고안되었다. 이와 같은 크리스토포리의 해머 액션구조는 오늘날과 같은 피아노의 시초로,

이후 피아노는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한편 독일에서는 라이프치히 남쪽에서 처음으로 피아노가 만들어졌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건반악기 제작자 고트프리트 질버만(Gottfried Silbermann, 1683-1753)이

1730년대 초에 피아노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질버만 또한 크리스토포리의 디자인을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질버만의 피아노는 크리스토포리의 피아노와 비슷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당시 독일 하프시코드의 모습과 비슷했으며, 음역 또한 더욱 넓었다.

새로운 피아노에 만족하지 않았던 바흐도 훗날 질버만의 후기 피아노는 인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독일에서는 1760-70년대까지도

하프시코드와 클라비코드가 건반악기로서 여전히 인기가 있었으며

피아노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스퀘어 피아노, 1760년경 <출처: Wiki-piano>

질버만의 제자인

요하네스 줌페(Johannes Zumpe, 1726-1790)는

1760년경 영국 런던에 자리를 잡고,

크리스토포리의 액션을 이용한

스퀘어 피아노를 개발했다.

직사각형 모양의 스퀘어 피아노는 이미 독일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 피아노는 영국에서 더욱 큰 인기를 얻게 된다.

당시 하프시코드나 그랜드 피아노보다 비용 면에서 훨씬 저렴하고

건반 터치에 있어서 섬세했던 줌페의 스퀘어 피아노를 위해,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Johann Christian Bach, 1735-1782)는 소나타를 작곡했다.

제2기 1770년대~1825년

1770년경 영국에서는 스퀘어 피아노가 많은 음악애호가에게 사랑 받는 악기가 되었다.

작은 사이즈와 디자인 면에서 뛰어났던 이 악기는 그 후로 100년간 사랑 받았으며,

스퀘어 피아노는 장식 면에서도 전혀 손색 없어 가정용 악기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다.

이후로 많은 애호가들이 스퀘어 피아노를 찾으면서, 더욱 다이나믹한 피아노를 원하게 되었고,

이러한 요구에 따라 영국식 그랜드 피아노가 제작된다.

아메리커스 배커스(Americus Backers, ?-1778)와 존 브로드우드(John Broadwood, 1732-1812)가

영국 그랜드 피아노 발전에 큰 역할을 했으며,

브로드우드는 1788년 이후 줌페의 피아노를 모델로 삼아 그랜드 피아노를 생산하였다.

이 시기 피아노의 역사에 있어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보다 큰 음량을 원하는 애호가들의 요구에 따라 피아노에는 더 많은 현이 추가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보다 많은 현이 추가되면서 피아노는 더 높은 장력을 받게 되고,

이를 견디기 위해 피아노의 크기도 커지게 되었다.

그러나 과도한 장력을 견디지 못하는 피아노는 틀어지고 휘어지는 결과를 초래하여,

이러한 구조적 결함을 해결하기 위해 피아노에 철재를 접목시키는 방안이 고안되었다.

현을 묶는 힛치 핀과 음향판 사이에 쇠판을 덧붙여 피아노 외장의 틀어짐을 막으려 한 것이다.

미국의 피아 노 제작자인 알페우스 밥콕 (Alpheus Babcock, 1785-1842)은

1825년 현의 높은 장력을 견딜 수 있는 철골 피아노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브로드우드 피아노 <출처: Wiki: Broadwood Piano> 밥콕의 철골 프레임, 1825년 1830년 <출처: Wiki-Babcock piano>

한편 독일식 피아노의 전통을 이은 비엔나의 피아노는

1770년대부터 1830년대까지 유럽에서 주류를 이루게 된다.

크리스토포리와 질버만이 기술적으로 뛰어난 피아노를 선보였지만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한 것에 반해,

요한 안드레아스 슈타인 (Johann Andreas Stein, 1728-1792)은

자신의 회사에서 생산한 독일식 액션 피아노로 큰 성공을 거둔다.

비엔나식 액션이라고도 하는 슈타인의 액션은 해머의 바운드로 인한 이중터치를 방지하는 기능을 특징으로

20세기 초까지 지속적으로 발전했다.

비엔나 액션을 사용한 피아노는 같은 시기 영국과 프랑스의 피아노보다

섬세하다는 장점을 지녔으며, 가볍고 부드러운 특징을 지녔다.

에라르 그랜드 피아노 <출처: Wiki: Broadwood Piano> 슈타인 피아노, 1775년 <출처: Wiki-Babcock piano>

음악도시 비엔나에서 활동한 모차르트와 베토벤 모두

이 비엔나 피아노로 음악을 작곡한 수혜자라 할 수 있다.

비엔나의 피아노는 부드럽고 우아한 사운드를 지녔으며, 구조 또한 가벼웠다.

오늘날의 피아노와 다르게 비엔나의 피아노는 검은 건반과 흰 건반이 서로 바뀌어 배치된 점도 눈에 띈다.

하지만 섬세한 음향을 지닌 비엔나 액션은 보다 극적인 표현을 요구하는

낭만주의 작곡가들과 피아니스트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었다.

보다 큰 음량과 표현력 풍부한 소리를 원했던 음악가들의 요구에 따라, 해머의 무게는 점점 증가했고,

섬세한 음향이 장점 이었던 비엔나 피아노는 점점 음악 청중들에게 외면당하게 된다.

제3기 1825년~현재

워넘의 업라이트 피아노, 1839년 <출처:Wiki-Wornum>

1735년경부터 1850년경까지는

업라이트-그랜드 피아노와

업라이트-스퀘어 피아노가 제작되었다.

현을 수평으로 제작하는 그랜드 피아노와 달리,

현을 수직으로 제작하는 업라이트 피아노의 경우,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이 당 시의 업라이트-그랜드 피아노와

업라이트_스퀘어 피아노는

음향판의 사이즈가 커서 울림이 좋다는 장점도 지녔다.

하지만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기에

사이즈가 너무나 크고, 나무 장식이 거추장스러워서 1850년대 이후에는 모습을 감춘다.

이 시기에는 크기가 작고 비용 면에서 좀더 경제적인 피아노를 필요로 함에 따라,

업라이트 피아노가 제작되기 시작한다.

1800년에 처음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업라이트 피아노는 이후 계속 발전되는데,

현을 교차시켜 제작시키면서 크기를 더욱 작게 할 수 있었다.

1811년 로버트 워넘 (Robert Wornum, 1780-1852)은 오늘날과 같은 업라이트 피아노를 생산한 제작자로,

1830년경에 이르러 오늘날과 같은 구조의 진보한 피아노를 선보인다.

그 이후로 계속해서 발전을 거듭한 워넘 업라이트 피아노는

1850년에만 약 5만대가 생산될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다.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 내부 <출처: Wiki-Steinway grand piano>

오늘날 세계 최고의 피아노 제조사로 꼽히는

스타인웨이에서는

1859년 저음부 현과 고음부 현을

교차시키는 교차식 현을 개발했다.

이것은 피아노에 더 많은 현을 장현하려는

애호가들의 요구를 따른 것으로,

피아노 제조사는 현의 수가 증가하는데 따른 장력 증가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넓은 옥타브를 위해 더 많은 현을 장현해야 했고, 현의수가 증가하면서 높은 장력을

견딜 수 있는 견고함과, 더 큰 해머, 강한 액션의 설계가 필요했다.

이러한 요구를 모두 만족시켰던 것이 스타인웨이의 교차식 현 설계로,

이로 인해 옥타브를 늘릴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출처: 네이버캐스트 - 정홍래> 의 글을 발췌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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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피아노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영화에 대해서는 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영화에 대해서는 그랜드 피아노 (영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피아노(영어: piano)는 대표적인 건반악기로서[1] 피아노포르테(영어: pianoforte)의 준말이다. 총 52개의 건반으로 구성되어[2] 나무로 된 작은 망치가 강철 프레임에 고정된 피아노줄을 건반으로 소리를 낸다. 18세기 초 이탈리아의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Christofori, B.)가 고안하여 독일에서 완성하였다.

역사 [ 편집 ]

오늘날 세계적으로 보급되고 있는 일반적인 유건타현(有鍵打絃)악기이다. 피아노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쳄발로와 클라비코드가 가장 많이 보급된 건반악기였으나, 1709년에 이탈리아 사람인 쳄발로 제작가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Bartolommeo Crist­ofori 1655-1731)가 쳄발로의 몸통(胴)을 써서 ‘포르테피아노’라고 이름붙인 악기를 만들었다. 이것이 피아노의 효과적인 최초의 고안이어서, 그가 피아노의 발명자로 되어 있다. 쳄발로나 클라비코드는 음이 작아 실내연주용 외는 쓰이지 않던 것이었으나 이 발명은 현을 펠트로 된 해머로 쳐서 음을 내고, 댐퍼를 붙인 것으로 거의 오늘날의 피아노와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이로써 음은 힘차고 크게 되어 넓은 스테이지의 연주나 그 밖의 악기와 조화를 이루는 합주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간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도 제조기술의 연구가 종종 있었고 18세기의 중엽(바흐나 헨델이 일생을 마칠 무렵)부터 각국에서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제작하게 되었다. 그 뒤 많은 개량이 가해졌고 특히 현이 굵어졌으며 액션(손가락의 누른 키가 현을 칠 때까지의 장치)이나 댐퍼 등의 정교한 것 등이 나오게 되어 현재의 피아노에 이르기까지 진보하였고, 피아노의 원래 이름은 피아노포르테였다.

피아노의 형태 [ 편집 ]

업라이트 피아노

피아노에는 그랜드형(Grand piano)과 업라이트형(Upright piano)의 두 가지 형태가 있고, 각각 소형에서 대형까지 여러 가지 크기가 있다. 그랜드형이 피아노 본래의 형태이며 이 형태는 쳄발로의 형태에서 생긴 것으로 음량도 크다. 피아노는 철골틀에 현을 매었고 그 틀의 뒷면에 울림판이 있어 해머로 친 현의 진동을 울림판으로 확대한다. 현은 피아노선이라고 하는 특수한 강철선으로서 낮은음부의 현은 그 선의 둘레를 구리선(銅線)으로 감아 낮은 음현일수록 굵고 높은 음현일수록 가늘다. 페달은 보통 3개가 있고 악기를 향해서 오른쪽은 보통 댐퍼 페달이라 하여 밟으면 전체 댐퍼가 일시에 현에서 떨어져서 두드린 음은 긴 여운을 가지게 된다. 왼쪽 페달은 그랜드와 업라이트와는 조금 구조가 다르나 음량을 약하게 하기 위하여 쓰인다. 피아노의 키의 수효는 52, 64, 76, 88 등 크기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으나 가장 일반적인 것은 88건이며 그 음역은 A0에서 C8까지로 7옥타브 이상이나 된다. 피아노는 건반으로 누르면서 치는 악기이다.

피아노 연주 [ 편집 ]

피아노의 가격은 700만원부터 3억원까지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현대 피아노 연주 ( 3 : 12 ) 현대 피아노로 같은 곡 연주 이 파일을 듣기에 문제가 있으면 미디어 도움말 을 참조하세요.

피아노 주법은 19세기에 극도로 발달하여 황금시대를 맞이하였다. 베토벤 이후 베버, 슈베르트, 멘델스존 등을 거쳐서 쇼팽, 슈만, 리스트, 브람스 등의 대작곡가가 피아노 음악의 알차고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다. 베토벤의 음악은 작품구성엔 우수하나 피아노라는 악기의 독특한 장점을 완전히 살렸다고는 할 수 없다. 그에 비하여 쇼팽이나 리스트의 음악은 피아노의 특징적인 아름다움을 완전히 살리고 있으며 또 양 손가락의 운동이나 페달의 효과를 극한까지 발전시키고 있다.

각주 [ 편집 ]

같이 보기 [ 편집 ]

피아노 이야기 [1] – 탄생과 역사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피아노는 상당히 고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들의 허영심과 피아노 제작자들의 영업 – 그들은 적극적으로 할부 판매를 권했다고 합니다 – 활동으로 피아노는 빠르게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악기의 보급뿐 아니라 문화적인 영향도 있었습니다. 중산층의 폭이 넓어지면서 ‘교양’에 대한 관심도 커졌는데요. 여성들이 악기를 다루는 것은 당시 귀부인들의 교양의 척도였습니다. 여러 가지 악기가 있었음에도 피아노는 가장 선호되는 악기였습니다. 피아노는 혼자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유명한 곡들을 소화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실용적인 이유도 있었고, 오보에 등과 같이 긴 관 형태의 관악기를 여성이 입에 무는 것이 성적인 느낌을 준다는 이유로 터부시하는 것도 있었죠.

유럽에서 붐이 일었던 피아노는 그대로 미국에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수요와 공급이 모두 넘쳐나면서 피아노는 이제 귀족들, 부르주아 중산층의 전유물이 아니게끔 보급됩니다. 미국 농촌의 낡은 오두막과 길거리에까지 피아노는 전파되었고, 이제 피아노는 클래식 음악의 영역을 벗어나 재즈, 블루스, 락 같은 음악의 다른 영역에까지 넘어갑니다. 그야말로 피아노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피아노 발명 이야기

현의 진동으로 음향을 만들어낸다는 점 때문에 피아노를 현악기로 분류할 수 있지만, 해머가 현을 치는 방식이기에 타악기로 분류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피아노는 덜시머와 유사합니다.

덜시머는 중동에서 유래하여 11세기에 유럽으로 전파된 악기입니다. 덜시머는 단순한 공명 상자 위에 현을 부착한 형태입니다. 피아노와 마찬가지로 작은 해머로 현을 치는 방식이기 때문에, 덜시머는 피아노의 직계 조상으로 여겨집니다.

완벽에 가까운 건반악기 ‘피아노’는 어떻게 발명 된 걸까?

피아노 [사진제공 : 이미지투데이]

특허출원 : 그랜드 피아노 (US26532A) 연도 : 1859년 국가 : 미국 지역 : 뉴욕 이름 : 헨리 엥겔하르트 스테인웨이(Henry Engelhard Steinway)

검정색과 하얀색으로 이루어진 건반악기 피아노. 어릴 적 피아노 학원을 통해 한번쯤은 피아노를 경험해봤을 것이다. 그러나 피아노는 ‘젓가락 행진곡’처럼 쉽고 베토벤, 쇼팽, 모차르트와 같은 음악가들은 익숙하지만 정작 피아노의 원리나 역사에 대해서는 모르는 부분이 많다. 오늘 IP백과사전에서는 악기계의 혁명 ‘피아노’의 역사와 관련 특허를 알아보자.

피아노 발명의 역사는 다른 악기들에 비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현악기 하프의 경우 하프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활형 하프는 기원전 3,000년경, 아이리시 하프는 7세기, 현대적인 하프는 1720년경 발명되었다. 또한 바이올린의 경우도 1550년경 최초로 발명되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하프시코드 [사진제공 : Wikipedia]

반면 피아노는 1710년대에 만들어졌다. 현악기에서 유래한 피아노는 그 시초라고 할 수 있는 하프시코드(Harpsichord), 클라비코드(Clavichord)에서 발전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중 하프시코드는 피아노와 거의 유사하지만 음을 내는 방식에 있어 큰 차이가 있다.

두 악기 모두 줄(현)을 이용하지만 하프시코드는 줄을 뜯어서 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소리가 상당히 맑고 청량한 반면 피아노는 해머로 현을 때려 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연주자가 더욱 섬세한 음량조절을 할 수 있으며, 큰 울림으로 음의 크기가 커졌다.

피아노 에 포르테 [사진제공 : Wikipedia]

그렇다면 피아노는 언제 누가 발명했을까? 피아노는 1709년 이탈리아의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Bartolomeo Cristofori)라는 악기 제작자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당시 피렌체를 대표하는 ‘메디치’ 가문을 위한 건반악기를 제작하고 있었다. 원래는 당시 유행하고 있던 피아노의 전신인 하프시코드와 스피넷을 제작하려던 중 기존의 건반악기의 소리가 다소 둔탁해 단점을 보완한 새로운 방식의 건반악기를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Piano e porte(피아노 에 포르테)’다. 원래 이름은 ‘클라비쳄발로 콜 피아노 에 포르테(clavicembalo col piano e forte)’로 해석하면 ‘부드럽고 큰 소리를 연주할 수 있는 하프시코드’라는 의미다. 줄여서 ‘피아노 에 포르테’라고 부른다. 오늘날 그랜드 피아노와 비슷한 이 악기는 건반에 힘을 가하는 정도에 따라 음의 강약을 의미하는 셈여림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피아노 에 포르테’의 원리 [사진제공 : Wikipedia]

또한 5옥타브의 음계를 넘나들어 부피와 무게가 어마어마했던 기존의 건반악기에서 4옥타브로 줄여 무게와 부피를 줄였다. 소리는 커지고 부피와 무게가 줄어든 피아노 에 포르테는 건반악기의 새로운 바람을 불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초기에는 생각보다 큰 관심을 받지 못 했다. 초기 피아노의 소리는 다소 둔탁했으며, 당시 유명했던 바흐나 헨델과 같은 음악가들도 하프시코드의 청량한 소리를 선호했다. 이미 많은 건반악기 시장에서 그리고 작곡가들에게서 하프시코드의 인지도가 훨씬 높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피아노는 몇 번의 개량을 통해 성능이 상당히 발전된다. 소리가 나는 현을 제외한 현에서 나는 진동을 줄이는 뎀퍼(Demper), 해머가 반사적으로 돌아오게하는 건반과 해머 사이의 잭(Jack), 둔탁한 소리를 제어해주는 페달(pedals)이 개발되었다. 특히 1730년대부터 피아노를 제작했던 독일의 피아노 제작자 고트프리드 질버만(Gottfried Silbermann)은 후기에 피아노의 대중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스퀘어 피아노 [사진제공 : Wikipedia]

이후 질버만의 제자 요하네스 줌페(Johannes Zumpe)는 1760년경 영국 런던에서 스퀘어 피아노를 제작했다. 기존의 그랜드 피아노 모양과 다르게 직사각형의 모양을 한 스퀘어 피아노는 저렴하고 건반 터치감이 섬세해 영국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스퀘어 피아노의 인기가 높아져 오히려 더 풍부하고 다이내믹한 소리를 원하는 수요자들이 늘어나 아메리커스 배커스(Americus Backers)와 존 브로드우드(John Broadwood)에 의해 영국형 그랜드 피아노가 크게 발전했다.

모차르트와 피아노 [사진제공 : Wikipedia]

독일의 영향을 받은 오스트리아의 경우 1770년대부터 1830년대까지 유럽 음악의 주류를 이루게 된다. 특히 오스트리아 비엔나는 음악의 도시로 성장하는데, 그 성장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두 인물이 있다. 비엔나식 액션을 만든 피아노 제작자 ‘요한 안드레아스 슈타인 (Johann Andreas Stein)’과 피아노 천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다.

요한은 해머의 바운드로 인한 이중터치를 방지하는 기능을 추가하며 섬세하면서 부드럽고 가벼운 피아노를 제작했다. 검은 건반과 흰 건반이 반대로 위치하고 있는 특징이 있으며, 부드럽고 우아한 사운드를 자랑했다. 특히 모차르트는 이런 훌륭한 비엔나 피아노를 이용해 수혜를 입은 작곡가라고 볼 수 있다.

업라이트 피아노 [사진제공 : Wikipedia]

1800년 이후 부터는 당시 귀족들이나 사용할 수 있는 고가의 악기였던 피아노에 대한 수요가 점차 부유해진 부르주아계층 또는 중산층에도 넘어오면서 좀 더 저렴한 피아노 제작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기존의 피아노들은 화려한 장식을 탈피하고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1811년부터 1850년까지는 업라이트(Upright) 피아노의 전성기로 영국의 로버트 워넘(Robert Wornum)이 아주 진보한 피아노를 선보였다. 업라이트 피아노는 초기에 업라이트-그랜드 피아노와 업라이트-스퀘어 피아노로 나뉘었는데, 작고 경제적인 피아노 수요로 업라이트 피아노로 통일되었다. 현을 수평으로 제작하는 기존 그랜드 피아노와 달리, 업라이트 피아노는 현을 수직으로 제작해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 피아노다.

부피와 가격이 줄어든 피아노는 유럽에서 누구나 원한다면 살 수 있는 악기가 되었다. 중산층에도 ‘교양’이 중시되면서 바흐, 헨델, 베토벤, 모차르트 등과 같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으며 특히 당시 여성의 악기연주 유무는 해당 여성에 대한 교양의 척도로 여겨지기도 했다.

헨리 엥겔하르트 스테인웨이의 그랜드 피아노 특허 [사진제공 : Google Patents]

이후 이미 대중화 된 피아노는 4옥타브의 한계를 넘기 위한 개발에 들어갔다. 1859년 독일계 미국인 Henry Engelhard Steinway가 만든 피아노 제작회사 ‘Steinway’에서 최초로 저음부 현과 고음부 현을 교차해 제작하는 기술을 개발하면서 옥타브를 늘릴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시대로 진입하면서 다양한 디지털 악기가 개발되었다. 일부에서는 “피아노로 만들 수 있는 곡들은 다 만들어졌다”며 한계를 지적하고 있으며, 과거에 비해 대중이 생각하는 피아노의 인지도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피아노가 들려주는 소리를 사랑하고, 피아노로부터 영감을 얻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피아노 [사진제공 : 이미지투데이]

오히려 국내에서는 요즘 시대에 임동혁, 조성진, 손열음과 같은 피아노 천재들이 각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다양한 음역대와 셈여림, 웅장함과 산뜻함을 동시에 줄 수 있는 완벽에 가까운 악기 피아노. 아마 피아노는 인류 역사에 남을 위대한 음악적 지식재산임에 틀림없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국내에서 현란한 피아노 천재들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피아노포르테(pianoforte)의 약칭이다. 음역은 7옥타브가 약간 넘으며, 88개의 건반이 있고, 평균율로 조율이 된다. 음량이 풍부하고 셈여림의 변화를 조정하기 쉬우며 여러 개의 음을 동시에 칠 수 있기 때문에 화성악기와 선율악기의 두 가지 기능을 다 갖고 있다. 독주용뿐만 아니라 반주용으로도 쓰이는 만능악기이다.

일반적으로 그랜드 피아노(grand piano)와 업라이트 피아노(upright piano)의 두 종류가 있다.

구조는 울림판기둥(wood frame), 철골(iron frame), 울림판과 줄받침(soundboard and bridge), 조율핀과 핀판(tuning pin and wrest pin plank), 현(music strings)·건반(key)·페달(pedal)·몸통(case)으로 형성되어 있다.

피아노는 14세기경 동양에서 들어와 유럽에서 널리 쓰이고 있었던 덜시머나 프살테리움, 즉 울림판에 현을 치고 타현하거나 발현하여 소리내게 하는 악기에서 유래되었다. 1610년경 해머 액션에 댐퍼가 없는 악기가 만들어졌다가, 1709년 이탈리아 쳄발로 제작자인 크리스토포리(Cristofori,B.)가 쳄발로의 보디를 사용하여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악기로 만들었다.

비교적 짧은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피아노가 서양음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요인 중의 하나는 그 조율법이 등분 평균율이라는 것과, 등분 평균율이 가지고 있는 합리성 때문이다.

즉, 피아노를 사용되기 시작한 시대의 음악은 바로크시대 음악으로, 바로크시대의 음악은 음체계 안으로부터 합리적 균등화의 가장 중요한 형태인 전조(轉調)를 필요로 하는 조성음악체계인데, 조성음악을 가능하게 하여주는 조율법이 평균율이고, 또 평균율의 장점은 피아노와 같은 건반악기에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오늘날까지 서양음악은 평균율 조율법으로 통일이 되었으며, 음악적 사고와 감각도 평균율적으로 변화되었다.

우리 나라에서 피아노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다만, 1907년 4월 『황성신문』에, “새문 밖 법인여관에서 피아니스트 신나피아헌트 양이 한국인과 함께 음악회를 가졌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는데, 이것이 피아노와 관련된 최초의 기록이다. 이로 미루어 1907년경에 피아노가 들어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기록상 피아노가 최초로 연주된 것은 1911년 신춘음악회라는 이름으로 기독인청년회관 강당에서 미국인 스나이더와 허카드가 연주한 것이 처음이다. 최초의 한국인 피아노연주자는 1915년 8월 30일 경성찬양대음악회와 1920년 12월 19일 베토벤탄생 150주년기념 음악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한 김영환(金永煥)이다.

다른 악기들이 대부분 1900년 이전에 들어왔는데 비하여 피아노가 늦게 들어온 까닭은 운반이 어려웠기 때문인 것으로 보지만, 당시 천주교와 개신교 모두 교회 내에서 피아노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도 또 하나의 이유로 보인다.

그러나 1920년대 이후 교회와 학교에서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사용한 이후, 피아노는 한국양악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즉, 피아노는 그 조율체계상 서양음악 조율체계의 수입을 뜻하고, 이 악기의 보급은 곧 평균율 조율체계의 보편화를 뜻한다. 따라서 피아노의 보급으로 말미암아 전통음악 음률체계에서 서양음악 음률체계로 그 음 감각이 바뀌게 되었다.

피아노의 탄생과 변천사

여리게 연주하라는 의미의 피아노와 세게 연주하라는 의미의 포르테가 합쳐진 ‘피아노포르테’ 의 줄임말을 악기명으로 쓰고 있는 악기가 바로 피아노인데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피아노의 탄생(제 1기 1770년대 이전)과 변천사(제 2기 1770년대~1825년,제 3기 1825년~현재)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상세히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 1기 1770년대 이전(피아노의 탄생)

피아노는 17세기 말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는데요. 피아노는 제작자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 가 처음 발명한 것으로 추측되어지고 있으며…..당시 크리스토포리는 피렌체를 대표하는 가문 ‘메디치’ 를 위해 건반 악기를 제작하고 있었는데…..피아노의 전신 하프시코드,스피넷 등을 제작하던 크리스토포리는 1689년 경 피아노 제작에 착수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1710년 경에는 피아노 3대를 완성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당시 크리스토포리가 제작한 피아노는 후대의 피아노와 비교하면 비교적 가볍게 제작되었으며 해머의 크기도 작았다고 전해지고 있는데…..당시 크기가 큰 하프시코드가 5 옥타브가 넘는 소리를 낸 것에 비교하면 4개의 옥타브로 된 이 피아노는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악기였습니다.

이후 크리스토포리의 제자 ‘지오반니 페리니’ 가 스승의 뒤를 이어 피렌체에서 피아노를 제작하였는데…..피렌체에서 활동하던 피아노 제작자들이 이베리아 반도(이탈리아가 위치하고 있는)에 까지 진출하게 되면서 크리스토포리의 디자인은 그 명맥을 계속 이어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크리스토포리가 만든 피아노의 액션 구조는 피아노의 전신인 하프시코드의 액션 구조와 달랐는데…..하프시코드는 현을 뜯어서 소리를 내는 구조였지만 크리스토포리의 액션은 해머로 현을 때리는 구조였기 때문에…..연주자는 음량을 조절할 수 있었고 이전보다 음의 크기도 커졌습니다.(이런 피아노의 장점때문에 하프시코드가 자연스럽게 쇠퇴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음.)

크리스토포리의 피아노 액션

하지만 이 해머가 연주하지 않은 다른 현을 진동시키는 문제가 발생하여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댐퍼가 고안되었는데…..연주되지 않는 현의 울림을 막아주는 댐퍼는 공명에 의한 이상한 음의 발생을 막아주었고…..또한 현을 때리고 난 해머가 반사되어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서 건반과 해머 사이에 잭을 넣어 해머가 현과 붙어있지 않도록 고안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크리스토포리의 해머 액션 구조는 오늘날과 같은 피아노의 시초로 이후 피아노는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독일에서는 라이프치히 남쪽에서 처음으로 피아노가 만들어졌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는데…..건반 악기 제작자 ‘고트프리트 질버만’ 이 1730년대 초에 피아노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질버만 또한 크리스토포리의 디자인을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질버만의 피아노를 접한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는 “높은 음역에 있어서 너무 약한 소리가 나서 연주하기 어렵다.” 라고 불평을 늘어 놓았다고 합니다.

질버만의 피아노는 크리스토포리의 피아노와 비슷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당시 독일 하프시코드의 모습과 비슷했으며…..음역 또한 더욱 넓었는데 새로운 피아노에 만족하지 못했던 바흐도 훗날 질버만의 후기 피아노는 인정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독일에서는 1760~1770년대 까지도 하프시코드와 크라비코드가 건반 악기로써 여전히 인기가 있었으며 피아노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질버만의 제자인 ‘요하네스 줌페’ 는 1760년경 영국 런던에 자리를 잡고 크리스토포리의 액션을 이용한 ‘스퀘어 피아노’ 를 개발하였는데…..직사각형 모양의 스퀘어 피아노는 이미 독일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 피아노는 영국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필자가 보기에는 피아노의 역사에서 ‘요하네스 줌페’ 가 정말 중요한 인물이었다고 생각함.)

당시 하프시코드나 그랜드 피아노보다 비용 면에서 훨씬 저렴하고 건반 터치에 있어서 섬세했던 줌페의 스퀘어 피아노를 위해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는 소나타를 작곡하기도 하였는데…..하지만 줌페의 피아노는 해머가 현을 때리고 돌아오도록 하는 이탈 구조 역할을 할 장치가 없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 2기 1770년대~1825년

1770년경 영국에서는 스퀘어 피아노가 많은 음악 애호가에게 사랑 받는 악기가 되었는데…..작은 사이즈와 디자인 면에서 뛰어났던 이 악기는 그 후로 약 100 년 간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스퀘어 피아노는 장식 면에서도 전혀 손색이 없어 가정용 악기로도 자리매김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많은 애호가들이 스퀘어 피아노를 찾으면서 더욱 다이나믹한 피아노를 원하게 되었고…..이러한 요구에 따라 영국식 그랜드 피아노가 제작되었는데…..’아메리커스 배커스’ 와 ‘존 브로드우드’ 가 영국 그랜드 피아노 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으며…..브로드우드는 1788년 이후 줌페의 피아노를 모델로 삼아 그랜드 피아노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는데…..보다 화려하고 깨끗한 음색으로 주목 받은 브로드우 는 건반수가 늘어난 6 옥타브의 피아노를 생산하기에 이르렀으며…..이후 영국 런던의 피아노 시장을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 피아노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보다 큰 음량을 원하는 애호가들의 요구에 따라 필연적으로 피아노에 더 많은 현이 추가 될 수 밖에 없었지만…..그러나 예상보다 더 많은 현이 추가되면서 피아노는 더 높은 장력을 받게 되었고…..이를 견디기 위해 피아노의 크기도 커지게 되었는데요.

밥콕의 철골 프레임

그러나 과도한 장력을 견디지 못하는 피아노는 틀어지고 휘어지는 결과를 초래하여 이러한 구조적 결함을 해결하기 위해 피아노에 철재를 접목시키는 방안이 고안되었는데…..그것은 현을 묶는 힛치 핀과 음향판 사이에 쇠판을 덧붙여 피아노 외장의 틀어짐을 막으려 한 것이었고…..결국 미국의 피아노 제작자인 ‘알페우스 밥콕’ 에 의해 1825년 현의 높은 장력을 견딜 수 있는 철골 피아노까지 개발되었습니다.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리스트’ 를 떠오르게 하는 ‘세바스티앙 에라르’ 는 줌페의 스퀘어 피아노에 기초한 그랜드 피아노를 개발하게 되는데…..에라르는 오늘날 레피티션이라 부르는 장치가 포함된 이중 이탈구조를 고안하였고…..이것은 건반을 누른 뒤에 건반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뒤에도 다음 타현이 가능한 구조로 이로써 피아노 연주 테크닉이 더욱 화려하게 발전하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습니다. (에라르 피아노는 1808년에 처음 생산되었으며 이후 1821년에 영국에서 수정 보완한 그랜드 피아노로 특허 등록을 하였음.)

한편 독일식 피아노의 전통을 이은 비엔나의 피아노는 1770년대 부터 1830년대 까지 유럽에서 주류를 이루게 되는데…..크리스토포리와 질버만이 기술적으로 뛰어난 피아노를 선보였지만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을 하지 못한 것에 반해…..’요한 안드레아스 슈타인’ 은 자신의 회사에서 생산한 독일식 액션 피아노로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비엔나식 액션 이라고도 하는 슈타인의 액션은 해머의 바운드로 인한 이중 터치를 방지하는 기능을 특징으로 20세기 초까지 지속적으로 발전하였고…..비엔나 액션을 사용한 피아노는 같은 시기 영국과 프랑스의 피아노보다 섬세하다는 장점을 지녔으며…..가볍고 부드러운 특징도 가졌습니다.(‘요한 안드레아스 슈타인’ 은 이 비엔나 액션 피아노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되는데…실제 상당히 편리하게 잘 만들기도 하였음.)

음악도시 비엔나에서 활동한 모차르트와 베토벤 모두 이 비엔나 피아노로 음악을 작곡한 수혜자라 할 수 있는데…..비엔나의 피아노는 부드럽고 우아한 사운드와 함께 구조 또한 가벼웠으며…..오늘날의 피아노와는 다르게 비엔나의 피아노는 검은 건반과 흰 건반이 서로 바뀌어 배치되었다는 점도 눈에 띄는 차이점입니다.

하지만 섬세한 음향을 지닌 비엔나 액션은 보다 극적인 표현을 요구하는 낭만주의 작곡가들과 피아니스트에게는 적합하지 않았는데…..보다 큰 음량과 표현력 풍부한 소리를 원했던 음악가들의 요구에 따라 해머의 무게는 점점 증가하였고 섬세한 음향이 장점이었던 비엔나 피아노는 점점 음악 청중들에게 외면당하게 되었습니다.(필자가 보기에도 외면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함.)

◈제 3기 1825년~현재

1735년경 부터 1850년경 까지는 업라이트-그랜드 피아노와 업라이트-스퀘어 피아노가 제작되었는데…..현을 수평으로 제작하는 그랜드 피아노와 달리 현을 수직으로 제작하는 업라이트 피아노의 경우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 당시의 업라이트-그랜드 피아노와 업라이트-스퀘어 피아노는 음향판의 사이즈가 커서 울림이 좋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지만…..일반 가정에서 사용하기에는 사이즈가 너무 컸고 나무 장식이 상당히 거추장스러워서 1850년대 이후에는 결국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문양을 새겨 넣은 이 당시의 피아노는 외장에 있어서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닌 악기로 현재는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크기가 작고 비용 면에서 좀 더 경제적인 피아노를 필요로 함에 따라 업라이트 피아노가 제작되기 시작하였는데…..1800년에 처음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업라이트 피아노는 이후 계속 발전하였고 현을 교차시키면서 크기를 더욱 작게 할 수 있었습니다.(필자 개인적으로 ‘업라이트 피아노’ 의 제작도 상당히 혁신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함.)

1811년 ‘로버트 워넘’ 은 오늘날과 같은 업라이트 피아노를 생산한 제작자로 1830년경에 이르러 오늘날과 같은 구조의 진보한 피아노를 선보였는데…..그 이후 계속해서 발전을 거듭한 워넘 업라이트 피아노는 1850년에만 약 5만대가 생산된 정도로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세계 최고의 피아노 제조사로 꼽히는 ‘스타인웨이’ 에서는 1859년 저음부 현과 고음부 현을 교차시키는 교차식 현을 개발하였는데…..이것은 피아노에 더 많은 현을 장현하고 싶다는 애호가들의 요구를 따른 것으로 피아노 제조사는 현의 수가 증가하는데 따른 장력 증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였는데요.

넓은 옥타브를 위해 더 많은 현을 장현해야 했고…..현의 수가 증가하면서 높은 장력을 견딜 수 있는 견고함과 더 큰 해머 그리고 강한 액션의 설계가 요구되었습니다. 이러한 요구를 모두 만족시켰던 것이 바로 스타인웨이의 교차식 설계로…..이로 인해 옥타브를 늘릴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고…..이후 스타인웨이는 총철골과 교차식 현의 피아노를 제작하는 피아노 제작사로서 현재까지도 최고의 피아노 제조사로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현재는 두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스타인웨이 피아노’ 가 독보적으로 좋은 것 같음.)

피아노 역사

오르간이 파이프나 리드에 공기를 보내어 소리를 내는 기명악기인데 대하여, 피아노와 클라비코드 그리고 하프시코드는 현의 진동으로 소리를 내는 현명악기(絃鳴樂器)이다. 현명악기는 클라비코드 -> 하프시코드(쳄발로) -> 피아노로 발전하였다. 피아노(piano) 피아노(piano)는 피아노포르테(pianoforte)의 줄임말로 오늘날 널리 보급되고 있는 일반적인 유건타현(有鍵打絃)악기이다. 피아노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쳄발로와 클라비코드가 가장 많이 보급된 건반악기였으나, 1709년에 이탈리아 사람인 쳄발로 제작가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Bartolommeo Crist­ofori 1655-1731)가 쳄발로의 몸통(胴)을 써서 ‘클라비첸발로 콜 피아노 에 포르테’라는 악기를 고안한 것이다.

클라비첸발로라는 악기는 이탈리아에서는 쳄발로, 영국에서는 하아프시코오드, 프랑스에서는 클라브상 이라고 불리웠다 . 크리스토포리는 피아노(piano,여린 음)와 포르테(forte, 센 음)가 붙여질 수 있는 쳄발로라는 뜻으로 위와 같이 불렀던 것이며 후에는 ‘피아노 포르테’로, 그리고 더 간단하게 ‘피아노’라 불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피아노의 효과적인 최초의 고안이어서, 그가 피아노의 발명자로 되어 있다. 쳄발로나 클라비코드는 음이 적어 실내연주용 외는 쓰이지 않던 것이었으나 이 발명은 현을 펠트로 된 해머로 쳐서 음을 내고, 댐퍼(펠트세로 음향을 정지시키는 것)를 붙인 것으로 거의 오늘날의 피아노와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이로써 음은 힘차고 크게 되어 넓은 스테이지의 연주나 그 밖의 악기와 조화를 이루는 합주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간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도 제조기술의 연구가 종종 있었고 18세기의 중엽(바흐나 헨델이 일생을 마칠 무렵)부터 각국에서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제작하게 되었다. 그 뒤 많은 개량이 가해졌고 특히 현이 굵어졌으며 액션(손가락의 누른 키가 현을 칠 때까지의 장치)이나 댐퍼 등의 정교한 것 등이 나오게 되어 현재의 피아노에 이르기까지 진보하였다. 피아노에는 그랜드형(grand piano)과 업라이트형(upright piano)의 두 가지형이 있고, 각각 소형에서 대형까지 여러 가지 크기가 있다. 그랜드형이 피아노 본래의 형이며 이 형은 쳄발로의 형에서 생긴 것으로 음량도 크다. 피아노는 철골틀에 현을 매었고 그 틀의 뒷면에 울림판이 있어 해머로 친 현의 진동을 울림판으로 확대한다. 현은 피아노선이라고 하는 특수한 강철선으로서 낮은음부의 현은 그 선의 둘레를 구리선(銅線)으로 감아 낮은 음현일수록 굵고 높은 음현일수록 가늘다. 페달은 보통 2개가 있고 악기를 향해서 오른쪽은 보통 댐퍼 페달이라 하여 밟으면 전체 댐퍼가 일시에 현에서 떨어져서 두드린 음은 긴 여운을 가지게 된다. 왼쪽 페달은 그랜드와 업라이트와는 조금 구조가 다르나 음량을 약하게 하기 위하여 쓰인다. 피아노의 키의 수효는 52, 64, 76, 88 등 크기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으나 가장 일반적인 것은 88건이며 그 음역은 가2음에서 다5음까지로 7옥타브 이상이나 된다. 클라비코드(Clavichord) 클라비코드(Clavichord)는 16세기부터 19세기 초엽에 걸쳐 유럽에서 널리 쓰인 유건타현악기(有鍵打絃樂器) (건반이 있어 현을 치는 악기, 피아노 따위) 이다. 오르간 외에 바로크 음악에 보통 쓰인 건반악기는 클라비코드와 쳄발로의 두 가지이다. 쳄발로와 함께 피아노가 생기기 이전에 가장 애용된 건반악기이다. 클라비코드는 건반을 누르면 일종의 지렛대가 움직여 그 끝에 붙어 있는 탄젠트라고 하는 놋쇠막대로 현이 구분되어 필요한 음높이를 만들면서 동시에 가볍게 현을 때려 진동시키게 장치되었다. 구조는 모든 건반악기 중에서 가장 단순한 것으로 외관은 직사각형의 상자형으로 가로 150cm, 세로 50cm, 깊이 15cm 정도의 것이 표준이며, 소형은 발이 없다. 그 특징은 음량은 매우 적으나 음에 셈여림의 자유로운 변화를 줄 수 있고 부드러운 음빛깔과 더불어 표정이 풍부한 노래하는 듯한 가락을 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음량이 약하기 때문에 연주회장이나 합주에는 적합하지 못하다. 그러나 그의 섬세한 음빛깔의 음영과 셈여림의 변화를 줄 수 있는 점은 쳄발로보다 우수하여 바흐 등은 이 악기를 좋아해서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이나 2성 3성의 <인벤션>은 클라비코드의 작품이다. 클라비코드는 고대 그리스의 모노코드에서 발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뒤 현의 수효가 증가하였고 마니코르디움(manich­ordium), 또는 클라비코르디움(clavichordium)이라고 하였다. 탄젠트가 붙어 있는 건반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14세기 후반이라고 한다. 클라비코드는 16세기의 에스파냐, 17, 18세기의 독일에서 가장 많이 쓰였으나 프랑스, 영국, 플랑드르에서는 버지널이나 쳄발로가 더욱 많이 쓰였다. 하프시코드(harpsichord) 하프시코드(영어 : harpsichord) 또는 쳄발로(독일어 : Cembalo)는 피아노의 전신인 건반악기이다. 하프시코드보다 작은 것으로 버지날, 스피넷, 클라비코드, 클라브생 등이 있다. 16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가장 번성한 건반악기이며 모양은 현재의 그랜드 피아노를 닮았다. 그러나 피아노와는 발음기구가 다르며, 피아노는 해머로 현을 치는 데 반해 쳄발로는 픽(플렉트럼)으로 현을 탄다. 픽은 새의 깃대(羽軸)라든가 또는 굳은 가죽조각으로 되어 있다. 클라비코드에 비하면 음은 예리하고 강하며, 음량도 풍부하지만 클라비코드나 피아노같이 건반의 터치로 음의 셈여림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이러한 결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건반을 2단 또는 그 이상으로 하든가 또는 페달이나 스톱으로 음색이나 음량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 악기에는 섬세한 셈여림의 변화나 크레센도 또는 디미누엔도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음을 낼 수 있는 악기로서, 바로크 시대의 음악에서는 19세기의 피아노같이 독주악기로서도, 또한 합주에서도 중심적 악기였다 쳄발로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1400년경의 문헌에는 클라비침발륨(clavicymbalum)이라는 이름이 있다. 이는 더 오랜 옛날의 현악기 침발륨에다가 오르간에 사용하고 있던 건반(claves)을 장치한 것을 의미한다. 쳄발로에 관한 최초의 정확한 보고는 1511년, 제바스티안·비르둥의 저서에 나타나 있다. 처음에는 가죽만으로 되어 있던 픽(pick)은 1500년경부터 새의 날개깃의 대(軸)가 가죽과 더불어 픽의 재료로 등장하였다. 1500년경부터 1800년경 사이에 여러 가지 형과 구조를 한 악기가 각기 다른 이름으로도 존재하였으나 크게 그랜드형과 업라이트형으로 나누어지며, 그랜드형 가운데 긴 날개를 가진 대형의 것을 하프시코드, 클라비쳄발로(이탈리아), 클라브생(프랑스)이라 하였고, 직사각형의 상자를 가진 것을 버지널(virginal) 스피네토(spinet), 5각형 또는 사다리꼴을 한 것을 스피네토라고 하는 등 형태의 명칭은 복잡하다. 18세기 후반에 쳄발로는 점차 피아노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19세기에는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으나 19세기 말경부터 부활하여 현대의 요구에 적합한 악기도 제작되었고 바로크 음악의 부활과 더불어 현대에 있어서는 다시 많이 쓰이고 있다. 20세기 초에 정격 연주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다시 하프시코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내용출처_ 위키백과사전 오르간(organ) 리드오르간 파이프오르간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오르간이라고 부르는 경우에는 리드오르간 (reed organ) 을 가리키나 원래는 파이프오르간 (pipe organ)을 일컫는 말이다.

오르간의 기원은 상당히 오래 되었다. 리코더 ·피리 등을 음계순으로 나열해 만든 피리류, 즉 시링크스 나 팡적(pan-pipe) 등은 기원전 수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것들은 모두 입으로 부는 것들이다. BC 265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다에 살았던 크케시비오스 는 물의 힘으로 일정한 압력을 보내는 송풍장치를 만들어 돌핀이라고 하는 삼각판(三角瓣)을 사용해 손가락으로 연주할 수 있는 시링크스를 발명하였다. 이것을 물 오르간이라고 불렀는데 오르간의 원시적인 모양으로 여겨진다. 물 오르간은 후에 아라비아인이나 그리스인의 애호를 받아 차차 개량되었다. 물에 의한 송풍장치는 점차 풀무로 대체되어 뉴매틱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는 그시스에서 로마로 전파되어 8∼9세기 무렵부터 그리스도교회 에서 많이 쓰이게 되었다. 교회악기로서의 오르간은 14∼15세기에 크게 발달하여 대형(大型)의 것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파이프 오르간의 기초는 이 시대에 확립된 것으로 16세기의 르네상스시대에는 구조적인 개량도 이루어졌다. 교회용뿐 아니라, 일반 음악용의 포지티프도 많이 제작되어 합창음악이나 현악기 · 관악기와 의 합주 등에 많이 쓰였다. 이 시대에 파이프나 스톱은 거의 오늘날 쓰이고 있는 것과 비슷하게 제작되고, 17∼18세기의 바로크시대는 오르간의 전성기로 악기의 왕자로서 거의 완전한 모습을 나타내게 되었다. 내용출처_ 네이버 백과사전

바흐의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음악수첩” 중 “미뉴에트” 쳄발로 연주..

◎ piano 피아노

피아노의 발명은18세기 사람들에게 하나의 혁명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건반악기인데도 큰 소리를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리 자체를 크고 작게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기능은 당시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이 악기의 이름은 약하고 강하다는 뜻의 피아노포르테(Pianoforte)가 되고, 이 말이 줄어 피아노가 된다.

악기의 계통별로 보면 피아노는 건반이 있는 현악기로 분류된다. 건반의 수는 7옥타브와 3도를 포함하는 88개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뵈젠도르퍼 풀 사이즈 연주용 피아노는 폭넓은 저음을 얻기 위해 가장 낮은 건반 아래에 4개의 저음 건반을 더 갖기도 한다.

피아노가 발명된 것은 18세기 초의 일이지만 음악가들에게 비중있게 쓰여지게 된 것은 19세기로 접어들면서부터이다. 19세기를 피아니스트의 시대, 20세기를 지휘자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도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에서 차지하는 피아노의 비중을 간접적으로 나타내주는 말이다. 쇼팽과 리스트는 당대에 알려진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서 피아노를 통해 자신들의 창작세계를 주로 펼친 대표적 인물들이다. 그들의 음악 속에는 피아니즘과 다이내미즘이 하나로 구현되어 있으며, 따라서 피아노 하나로 표현해 내는 음의 세계가 1백여 명의 단원이 소리내는 오케스트라의 소리에 못지 않은 압도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쇼팽과 리스트의 피아노 창작세계가 사실로 구현될 수 있었던 원인 중에서 ‘창작 이전의 창작조건’으로서 피아노라고 하는 악기의 존재 자체를 간과할 수 없다. 만약 피아노라는 악기가 없었다면 쇼팽과 리스트의 그 화려하고 풍성한 울림과 환상적인 피아니즘은 작곡가의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을 것이다.

피아노의 현은낮은 음은 단선, 중음은 복선이며, 고음으로 올라가면 한 음에 세 개의 현이 쓰인다. 따라서 피아노 조율이라는 단어가 갖는 기본적인 의미는 같은 음을 내는 둘 혹은 세 개의 현의 높이를 일치시키는 것과, 한 옥타브 안의 열두 음을 맞추고 이를 기준으로 하여 전체 88개의 음의 상대적 음높이를 맞추는 작업을 뜻한다. 그 외에 건반이 안 나오거나 소리가 안 나는 것을 손보는 것은 조율이 아니라 수리라고 해야 옳다.

피아노의 현의 수는 220개 전후이며, 이 현들을 당기고 있는 힘의 합은 20톤이 넘는다. 코끼리 한 마리가 당기는 힘이 보통 6.5톤이므로 코끼리 세 마리분이 된다. 나무로는 이 힘을 지탱하기 어렵기 때문에 피아노 현을 매는 프레임은 주물로 부어 철골로 만든다. 그리고 이 프레임을 공명판에 붙여 공명을 얻어낸다. 공명판은 나뭇결이 곧은 가문비나무를 주로 쓴다. 그러나 공명은 공명판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피아노 몸체 전체와 다리에까지 진동이 전해져서 소리를 울려준다.

오늘날 피아노는가장 쓰임새가 많고 대중적인 악기로 자리잡고 있다. 피아노가 이러한 지위를 갖게 된 데에는 몇 가지 뚜렷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피아노를 통해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피아노 자체의 레퍼토리가 무궁무진하다는 점이다. 셋째는 피아노가 거의 모든 악기의 반주를 할 수 있다는 점이며, 마지막은 피아노가 교육용 악기로 압도적으로 많이 쓰인다는 점이다. 이때 교육용 악기로 쓰인다는 점에서 피아노는 고대의 기타라와 모노코드, 원시 오르간 및 수도원 학교의 허디 거디에 해당되며, 반주악기로서는 고대의 아울로스, 중세의 오르간과 초창기 현악기들,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의 류트가 가졌던 위치를 차지한다. 음악가라기보다는 음악을 할 수 있는 교양인의 취미악기로서 피아노는 고대의 기타라와 북유럽의 하프 및 16세기의 류트를 대신한다.

낭만주의 시대 피아노는 요즘 피아노와 같은 원리

한편 피아노가 발명되기까지는 피아노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하프시코드와 클라비코드가 피아노 발명 이전의 발명 조건으로서 먼저 존재하고 있었다. 이 당시에 주로 사용되었던 하프시코드는 건반에 연결된 격철로 현을 뜯어서 소리를 내기 때문에 음량조절이 안되고 큰 소리를 얻을 수도 없었다. 클라비코드는 현을 뜯는 것이 아니라 건반에 연결된 탄젠트(핀으로 이해하면 된다)로 현을 바로 때리도록 되어 있는 것이 다른 점이었지만 큰 음량을 얻을 수 없었다는 점에서 같은 단점을 갖고 있었다.

이같은 하프시코드나 클라비코드의 단점을 극복한 피아노의 구조적 핵심은 액션이라 부르는 시스템이다. 액션은 피아노에서 건반을 눌렀을 때 이 움직임이 해머에 전달되고, 이 해머가 현을 때려 소리를 내기까지의 기계장치를 말한다.

액션 발명 초기에는 슈토스메하니크(stossmechanik) 방식과 프렐메하니크(prellmechanik) 방식의 두 가지 액션이 개발되어 사용되었다. 그중 프렐메하니크 방식은 하이든, 모차르트, 훔멜, 체르니, 베버 등 빈의 음악가들에게 널리 애용되어 독일식이라 부르는데, 터치가 가볍다는 점 때문에 경쾌하고 투명한 소리를 이상으로 하는 고전시대의 빈 악단을 풍미했다. 그러나 이 방식은 해머가 건반 뒤쪽 위에 있어 건반을 누르면 해머 자루의 뒤끝이 퉁겨져 현을 치는 방식이어서 소리가 작다는 결점이 있었고 이 결점을 끝내 극복하지 못해 낭만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점차 사라지고 말게 된다.

한편 슈토스메하니크 방식은 피아노의 선반쪽에 붙어 있는 해머자루의 밑둥을 건반이 쳐올리도록 되어 있어 풍부한 음량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 방식은 피아노를 처음 고안한 크리스토포리, 프랑스의 마리우스, 독일의 슈뢰더 등에 의해 개발되어 영국에서 베커스와 브로우드 등에 의해 발전되었기 때문에 영국식이라 불린다. 이 방식이 꾸준히 발전되어 오늘날 사용되는 피아노도 이 슈토스메하니크 방식의 원리에 따른다.

피아노가 혁명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해도(그 혁명성 때문에) 사람들이 갑자기 피아노를 좋아하게 되지는 않은 것 같다. 평균율 24곡을 작곡한 바흐도 1726년에 질버만이 제작한 피아노를 처음 보았을 때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으며,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Op.27까지의 초판에 ‘클라브생 또는 피아노포르테를 위하여’라는 부제를 붙인 것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피아노가 대중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18세기가 저물면서였다. 그 첫 징조는 바흐의 아들인 C.P.E. 바흐이다. 그는 포츠담에 있는 프레데릭 대공의 궁정에서 처음 피아노를 보았고, 그에 대한 좋은 인상을 글로 남기기도 했다. 1780~1787년 사이에 그로서는 마지막 소나타 작품인 5곡의 소나타 모음을 피아노를 위해 작곡했다. 그리고 1786년 런던에서 최초로 피아노로 공개 독주회를 열었다.

그 이후로 피아노의 사용이 증가해 고전시대 작곡가들에게서는 피아노가 중요한 악기로 취급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사용하던 피아노는 앞서 설명한 프렐메하니크 방식으로 된 피아노이기 때문에 지금의 피아노와는 그 음량과 음색이 다르다. 40곡이 넘는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는 물론 모차르트의 17곡의 소나타와 수많은 협주곡들이 모두 이 독일식 피아노를 염두에 두고 작곡되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오늘날의 피아노로 모차르트의 소나타를 연주하면서 ‘모차르트의 원래 의도를 해석’해 낸다고 말하는 것에는 처음부터 어떤 모순의 요소가 깃들어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낭만주의 시대의 피아노는 요즘의 피아노와 같은 원리에 의한 것이므로 연주사적인 측면에서 훨씬 큰 연계성을 갖고 있다고 보겠다.

최근 들어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피아노 음색의 변화에 관심을 갖는다. 피아노의 기본 음색은 사용된 나무와 쇠, 섬유 둥의 질과 제작기술에 따르지만, 연주중에도 페달을 사용하여 음색의 변화를 얻을 수 있다. 음색의 변화를 극한으로까지 몰고 간 사람은 존 케이지로서 피아노에 이물질을 끼워 완전히 다른 소리를 만들어 내는가 하면 피아노에 손도 대지 않는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계적인 측면에서 피아노는 거의 진화를 끝냈다고 볼 수 있다. 남은 문제는 어떻게 하면 피아노의 수명을 늘려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처럼 시간이 갈수록 값이 비싸지는 피아노를 만들 것이냐 하는 것이다.

<피아노의 종류>

그랜드 피아노

1. 건반과 현이 같은 평면에 있고 해머가 현을 아래에서 때리는 구조물, 해머에 전달되는 에너지의 낭비가 적다.

2. 해머가 아래에서 현을 치기 때문에, 자체 무게로 자연스럽게 돌아오고 빨리 다음 타현을 준비할 수 있다.

피아니시모, 포르티시모에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강약의 폭이 넓다.

.빠른 트릴이나 연타가 잘 된다.

.애프터 터치가 깨끗하게 느껴진다.

3. 댐퍼도 자체 무게로 내려와 현을 누르기 때문에 정확히 음을 멈출 수 있다.

4. 소프트 페달을 밟으면 액션 전체가 미끄러져 현을 때리는 해머의 위치가 변하므로 음량이 작고 부드러워 질 뿐만 아니라 음색도 변화 시킨다.

5. 소스 테누토 페달을 사용하면 특정 음만을 울리게 할 수 있어 음악에 보다 풍부한 뉘앙스를 줄 수 있다.

6. 향판은 현의 길이에 대응한 자연적인 형태.

. 전 음역을 통하여 음의 균형(balance) 및 화성(harmony)의 느낌과 풍부한 음색을 만든다.

. 부드럽게 잘 울리는 소리가 난다.

. 음정감도 깨끗하다.

7. 본체의 밑에서 소리가 퍼지는 것뿐만 아니라, 윗 뚜껑을 열면 훨씬 소리가 개방적이 된다.

. 치면서 한음 한음 직접 귀로 확인할 수 있다.

업라이트 피아노

1. 건반의 움직임을 일단 수직 방향으로 전달, 다시 수평으로 현을 치는 힘을 주기 위해 해머에 전해지는 에너지의 낭비가 그랜드에 비해 크다.

2. 해머가 현을 수평으로 치기 때문에 원래대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스피링 등의 힘을 빌려야 한다.

건반에서 손가락을 떼어 건반이 전체적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다음 타현이 힘들어지므로 트릴 등의 힘을 빌려야 한다.애프터 터치가 명확하게 느껴지지 않으므로 표현상의 섬세한 뉘앙스를 전하기 힘들다.

3. 댐퍼도 액션의 움직임에 연결되어 움직이며 용수철의 힘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음을 멈추는 효과도 약간 떨어진다.

4. 소프트 페달을 밟으면 해머가 현에 가까운 위치에서 타현하게 되므로 음량이 작고 부드러워 진다.

5. 머플러 페달에 의해 전체의 음량을 대폭 감소 시킬 수 있다.

6. 향판의 모양은 장방향 이라는 설계의 제약을 받는다.

. 고음부, 저음부에서는 자연스러운 배음이 나기 힘들다.

7. 전체가 상자처럼 되어 있어서, 소리가 분명치 않은 경향이 있다.

. 직접 음을 확인하기 어렵다.

생상스 /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

오스트리아 Hallstatt의 잔잔한 호수

Saint-Sans / Swan (LP) Cello : Jacqueline Du Pre Harp : Osian Ellis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클린느는 3살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악기 소리 가운데 첼로음을 지적하며 그 소리를 내고 싶다고 졸랐다고 한다. 네살때 자기 키만한 첼로를 선물 받았고 다섯살때부터 본격적인 첼로공부를 시작한 그녀는 카잘스와 토르틀리에,로스트로포비치에게 사사해 어린 나이에 금세기 첼로계의 흐름을 두루 섭렵할 수 있는 행운을 잡았다. 자클린느 뒤프레는 16세되던 1961년 런던에서 공식 데뷔 무대를 가졌고 65년에 뉴욕에 데뷔했다.이후 그녀는 세계적인 첼리스트로 각광을 받으며 활동하다가 23세이던 68년 가족이 탐탁치 않게 여기던 다니엘 바렌보임과 결혼했고 28세 되던 73년 다중경화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15년간 첼로없이 살다가 4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불운의 천재 첼리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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