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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먼 다이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프리먼 존 다이슨(영어: Freeman John Dyson, 1923년 12월 15일 ~ 2020년 2월 28일)은 영국 태생의 미국의 물리학자이다. 양자전기역학의 이론적 기반을 닦은 인물 중 …
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8/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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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먼 다이슨 – 나무위키:대문
영국출생의 미국인 이론 물리학자. 다이슨 변환, 다이슨 급수, 리처드 파인만의 접근법과 줄리언 슈윙거의 접근법이 같다는 것을 증명하는 등 양자 …
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3/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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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먼 다이슨 – 알라딘
프리먼 다이슨(Freeman Dyson) … 20세기의 과학 부흥을 이끈 천재 물리학자이며 미래학의 전설이다. 슈뢰딩거-다이슨 방정식으로 양자역학의 발전에 기여하고, ‘오리온 …
Source: www.aladin.co.kr
Date Published: 8/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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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학위 없는’ 저명 이론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 타계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양자 전기역학의 기반을 닦은 이론 물리학자이자 과학에 관한 다양한 대중서를 집필한 작가인 프리먼 J. 다이슨 …
Source: www.yna.co.kr
Date Published: 7/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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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 96세로 잠들다 – 사이언스모니터
다이슨은 1923년 12월 15일 영국 버크셔에서 태어나 17세에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했다.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그는 학계에서 선발된 왕립 …
Source: scimonitors.com
Date Published: 12/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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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물리학의 거장들에 대한 프리먼 다이슨의 회상(1/2)
사람들은 프리먼 다이슨이 모든 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그가 지금 92살이고 지난 세기의 과학 혁명을 일선에서 지켜보았기 때문, …
Source: newspeppermint.com
Date Published: 11/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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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먼 다이슨 – YES24
프리먼 다이슨 Freeman John Dyson. 외국작가 자연과학/공학 저자 1923 ~. 1923년 12월 영국의 버크셔에서 태어난 프리먼 다이슨은 세계적인 물리학자이며 수학자이자, …
Source: www.yes24.com
Date Published: 4/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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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안될과학 Unreal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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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1.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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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프리먼 존 다이슨(영어: Freeman John Dyson, 1923년 12월 15일 ~ 2020년 2월 28일)은 영국 태생의 미국의 물리학자이다. 양자전기역학의 이론적 기반을 닦은 인물 중 하나이다. 또한 저명한 물리학자들 중 거의 유일하게 평생 박사 학위를 취득하지 않았다.
생애 및 업적 [ 편집 ]
프리먼 다이슨은 1923년 12월 15일 영국 버크셔주 크로손(Crowthorne)에서 태어났다. 1936년에서 1941년까지 윈체스터 칼리지를 다녔다. 18살이던 1940년에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고드프리 해럴드 하디 아래에서 수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영국군에 입대하여 20살의 나이에 영국 공군 폭격기 사령부에서 분석가로 일했다.[1][2] 전쟁이 끝나자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수학으로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3] 1947년에는 두 개의 정수론 논문을 출판했다.[4][5]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1947년부터 코넬 대학교 박사과정에 등록하여 한스 베테의 지도 아래 물리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6][7] 그러나 바로 연구에 뛰어들면서 이후 평생 동안 박사 학위를 취득하지 않았다.
프리먼 다이슨의 가장 널리 알려진 학문적 업적은 양자장론의 이론적 기반을 닦은 작업들이다. 그는 1949년에 양자전기역학을 기술하는 두 가지 방법, 즉 리차드 파인만의 파인만 도표를 이용한 경로적분과 줄리안 슈윙거, 도모나가 신이치로가 제안한 연산자 계산이 동치라는 것을 증명했다.[8] 그리고 파인만 도표를 가지고 재규격화 계산을 구현한 논문을 최초로 썼다. 또한 다이슨 급수라는 기법을 발명했으며, 이것은 워드-다카하시 항등식[9]으로 확장되는 기반이 되었다.
1957년부터 1961년까지는 핵추진기를 이용한 우주비행 계획인 오리온 계획에 참여하였다. 시험 기종은 보통의 폭발물을 사용했으나, 우주에서의 핵무기 사용 금지 조약에 의해 계획은 중도에 파기됐다. 이후 제러드 오닐(Gerard K. O’Neill)이 설립한 우주학 연구소(Space Studies Institute)에서 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생애의 후기에, 다이슨은 기술적으로 진보한 문명은 자신이 살고 있는 항성계의 태양을 완벽히 둘러싸 항성에서 나오는 복사 에너지를 완전히 사용하고 바깥쪽으로는 적외선을 복사할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이에 따르면 밤하늘에서 적외선을 복사하는 거대한 물체를 찾아보는 것이 외계 문명체를 탐사하는 SETI 계획의 한 방법이 된다. 다이슨은 복사 차폐물로 자그마한 운석들의 구름을 생각했지만, 과학 소설에선 이어진 고체 구조물이 선호되어 왔다. 이러한 상상 속의 구조를 다이슨 구라고 부른다. 또한 그는 다이슨 나무라는 것도 제안했는데, 이는 유전자 조작으로 혜성에서도 자랄 수 있는 식물을 말한다. 다이슨은 혜성을 조작하여 내부에 생물이 숨쉴 수 있는 대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하며, 태양계 밖으로 인간을 보낼 수 있는 서식지를 조성할 수 있다고 했다.
프리먼 다이슨은 2020년 2월 28일, 98세의 나이로 뉴저지주 프린스턴에서 생을 마감하였다.[10][11] 딸 에스더 다이슨은 기업가이자 투자자이다. 아들 조지 다이슨은 역사가로, 과학사를 연구한다.
저서 [ 편집 ]
《상상의 세계》 (Imagined Worlds)
《에로스에서 가이아까지》 (From Eros to Gaia)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 김희봉 역. 사이언스북스. 2009. ISBN 9788983712332 . (원제 Disturbing the Universe )
각주 [ 편집 ]
‘박사학위 없는’ 저명 이론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 타계
양자 전기역학 기반 닦고 ‘과학은 반역이다’ 등 대중서도 집필
프리먼 다이슨 ‘박사’ [Dan Komoda 제공]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양자 전기역학의 기반을 닦은 이론 물리학자이자 과학에 관한 다양한 대중서를 집필한 작가인 프리먼 J. 다이슨 박사가 지난달 28일 타계했다. 향년 96세.
다이슨이 60년 이상 몸담은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 고등연구소(IAS)는 그의 죽음을 발표하면서 “인간과 양자 세계를 잇는 계산을 포함한 혁명적인 과학적 통찰력으로 핵공학과 고체물리학, 페로 자성(磁性), 천체물리학, 생물학, 응용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영국에서 태어난 다이슨은 케임브리지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수학을 전공하다가 2차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공군 폭격기사령부에서 수학을 응용해 폭격 계획을 짜는 민간인 분석가로 일했다. 전쟁이 끝난 뒤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미국 코넬대학 대학원에 진학해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끈 한스 베테 교수 아래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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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빛이 물질과 작용하는 방식에 관한 이해를 심화하는 기념비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전자와 광자의 움직임을 기술하는 리처드 파인먼 당시 코넬대 교수의 방식과 그 대척점에 있는 줄리언 슈윙거 하버드대 교수의 방식이 서로 같다는 점을 증명했다. 현대과학에서 손꼽히는 업적 중 하나인 양자 전기역학(QED)에 관한 이 논문은 동료들 사이에서 노벨상을 탈 만한 가치가 있는 논문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파인먼과 슈윙거 교수는 1965년에 일본 물리학자 도모나가 신이치로(朝永振一郞)와 함께 양자 전기역학에 관한 학문적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지만, 여기에는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다.
그는 나중에 “노벨상을 바란다면 예외 없이 10년 이상 중요하고 심오한 문제에 매달려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다이슨은 학문적 업적을 넘어 우주탐사 분야의 다양한 제안과 과학 대중서 출간으로 더 널리 이름을 알렸다.
핵 추진 대형 탐사선으로 태양계 행성을 탐사하는 오리온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유전자를 조작한 식물을 심어 외계 식민지를 구축할 수도 있다고 했다.
스티븐 호킹 박사와 함께 한 다이슨 지난 2016년 4월 12일 뉴욕에서 열린 새로운 우주탐사 이니셔티브인 ‘브레이크스루 스타샷’ 발표회에 나란히 참석한 두 사람. [EPA=연합뉴스]
그는 항성의 복사 에너지가 행성계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이를 완전히 둘러싸는 거대 구조물을 만들어 항성의 복사 에너지를 받아쓰는 ‘다이슨구'(Dyson sphere)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를 고등 기술 문명의 필연적 귀결로 지적하며 지적 외계생명체를 찾는 길로 제시했다.
다이슨은 55세 때 ‘에로스에서 가이아까지'(From Eros to Gaia)를 시작으로 ‘과학은 반역이다(The Scientist as Rebel),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Disturbing the Universe) 등 다양한 대중서를 펴냈다. 2000년에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다룬 ‘종교에서의 진보'(Progress in Religion)로 종교활동 증진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템플턴 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이런 다채롭고 혁혁한 업적에도 코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지는 못했다. 박사과정 중 코넬대에서 교수로 임용됐지만,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맞지 않는다며 2년 만에 IAS로 자리를 옮겼으며, 박사학위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다이슨은 인류에 의한 지구온난화 모델에 대해 회의론을 제기하며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식물의 성장을 촉진하고 빙하기 도래를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과학계에서는 이런 주장이 과학적 근거보다는 낙관론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일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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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물리학의 거장들에 대한 프리먼 다이슨의 회상(1
20세기 물리학의 거장들에 대한 프리먼 다이슨의 회상(1/2)
사람들은 프리먼 다이슨이 모든 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그가 지금 92살이고 지난 세기의 과학 혁명을 일선에서 지켜보았기 때문, 혹은 그가 한스 베테와 볼프강 파울리에서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리처드 파인만에 이르는 20세기 물리학의 거장들과 가깝게 지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다이슨은 오늘날 과학계의 현인 중 한 명이며, 만약 과학이 어떻게 발전해 왔고 지금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가 궁금하다면, 바로 그 질문에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다이슨은 수에 대한 재능과 함께 영국에서 성장했습니다. 2차대전 동안 그는 영국 공군에서 독일의 폭격 지점을 계산하는 일을 했습니다. 전쟁 후 그는 미국으로 건너와 원자폭탄을 만든 여러 물리학자와 교류하게 되었습니다. 당대 여러 과학자와 마찬가지로, 원자폭탄에 대한 흥분은 그를 물리학으로 이끌었고, 후에 그는 원자폭탄을 이용해 태양계를 벗어날 수 있는 우주 선단의 제작을 꿈꾸게 됩니다. 그가 냉전 중에 무기로의 원자폭탄을 반대하는 인물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그는 프린스턴 고등과학원에서 60년 이상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이슨은 자신을 고슴도치보다는 여우에 비유합니다. (역주: 고슴도치는 한 가지 문제를 파고드는 사람을, 여우는 다양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는 여러 주제를 넘나드는 것이 과학자에게 더 즐거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연구를 하지 않지만, 여전히 과학과 기술이 어떻게 발전하는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이슨은 이미 우주의 많은 것이 밝혀졌다는 점에 만족하면서도, 또한 아직 물리학이 우주를 설명하는 고전 이론과 원자를 설명하는 양자 이론을 통일하지 못했다는 사실 또한 즐기고 있습니다.
내가 다이슨에게 과학계의 영웅에 대해 인터뷰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는 “나는 철학보다는 이야기를 더 좋아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나는 그와의 인터뷰에서 이야기와 철학을 모두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이슨은 시대에 뒤떨어진 박사학위 제도의 문제점이나 거대과학이 가진 문제와 같은 도발적인 주장을 이야기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지만, 시종일관 겸손함을 유지하며 유머를 섞었습니다.
Q: 선생님은 어릴 때 커서 과학자나 수학자가 될 것을 알았나요?
A: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원래는 과학보다 수학을 더 좋아했지만, 인기 있는 과학책을 많이 보게 되었고 과학에도 재미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나는 아서 에딩턴, 제임스 진스, 그리고 H.G. 웰즈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들은 과학을 흥미로워 보이게 만들 줄 알았어요. 줄 베른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한 별을 탐험하는 이야기인 헥터 세베닥을 읽은 것이 여덟 살 때일 겁니다. 나는 그 소설이 진짜인 줄 알았고, 그게 그저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무척 실망했지요.
Q: 대학 때 왜 수학이 아닌 물리학을 택하게 되었나요?
A: 한 가지 이유는 원자폭탄 때문입니다. 나는 전쟁 당시 영국에 있었지요. 우리는 원자폭탄이란 걸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갑자기 히로시마에 폭탄이 떨어졌고 전쟁이 끝났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마무리한 그 물리학자들에게 커다란 감사의 마음을 느꼈고 폭탄을 만든 물리학자들을 만나 그들이 무엇을 연구하는지 알고 싶었죠.
Q: 당시 선생님에게 영웅이었던 과학자가 있었나요?
A: 물론이죠. 매우 인기 있는 책을 쓴 생물학자인 J.B.S. 홀데인이 그중 한 명입니다. 그는 매우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죠. 내가 캠브리지에서 알게 된 하디, 리틀우드, 베시코비치도 위대한 수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루 종일 당구만 친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베시코비치는 훌륭한 당구대를 가지고 있었어요. 나는 운 좋게 어릴 때 아버지가 당구대를 사주셨기 때문에 이 그룹에 바로 낄 수 있었습니다. 수학자들과 이야기하고 싶으면, 나는 당구를 시작했고 곧 대화는 수학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Q: 2차대전이 끝나고 1940년대 후반, 선생님은 코넬 대학원으로 진학해 당시 물리학의 거장이던 한스 베테와 일하게 되었죠. 그가 선생님의 멘토가 된 건가요?
A: 그렇습니다. 그는 매우 훌륭한 분이셨죠. 학생들을 매우 잘 다뤘습니다. 지도해야 할 학생이 무척 많았지만,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너무 어렵지도 않고 너무 쉽지도 않은, 딱 적절한 문제를 내주었습니다. 멘토로 삼기에 이상적인 분이었지요. 나는 그에게 많은 빚을 졌어요.
Q: 선생님이 받은 적절한 문제는 무엇인가요?
A: 나는 당시에 막 떠오르던 문제인 양자 분자 동역학과 관련된 문제를 받았습니다. 컬럼비아의 한 실험 그룹이 전쟁 중에 개발한 도구를 가지고 수소 원자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마이크로웨이브는 전쟁 중에 레이더를 위해 개발되었지만, 또한 양자 역학을 높은 정확도를 가지고 연구할 수 있는 도구였죠. 윌리스 램이 이끄는 그 그룹은 수소 원자를 건드린 후 수소의 에너지 레벨을 매우 높은 정확도로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는 고전 양자 역학과 맞지 않았고, 새로운 것이 필요하던 참이었는데 베테는 문제가 뭔지를 알았던 것이죠. 원자가 가진 전자기 파장에 대한 반응을 원자의 움직임과 결합하면 실험 결과와 맞는 값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베테는 여러 단순한 가정을 통해 대략적인 값을 계산했고 비슷한 값을 얻어냈습니다. 그는 내게 같은 계산을 더 정확하게 하라고 시켰지요.
Q: 그때 선생님은 리처드 파인만을 만났고, 그와 함께 양자 전기동역학을 만들게 되었군요.
A: 나는 그와 동료로 일한 것은 아니에요. 물론 그에게 많은 것을 배웠죠. 그는 젊은 교수였고 나는 그저 한 명의 학생이었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고, 물론 그는 천재였습니다. 그는 한편으로 다른 사람 앞에서 무언가를 하기 좋아했기 때문에 늘 관객을 필요로 했습니다. 나는 즐겁게 그 관객 역할을 맡았습니다.
Q: 파인만은 다른 과학자들과 어떻게 달랐나요?
A: 그는 극히 독창적이었습니다. 그는 과학을 이해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다른 누구와도 달랐어요.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는 한 번도 수식을 전개하지 않았어요. 대부분의 물리학자는 수식을 전개하고 이를 통해 답을 얻어내지만, 파인만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파인만은 수식도 없이 바로 답을 썼어요. 그는 수식 대신 그림을 몇 개 그렸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마법처럼 보였죠. 그는 머릿속에 그런 그림들이 있었고, 종이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작은 그림 몇 개를 그렸어요. 나는 파인만이 한 일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하는 일을 하곤 했습니다.
Q: 선생님은 박사 학위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렇지요?
A: 그렇죠. 나는 운이 좋았습니다. 그런 불필요한 과정을 피할 수 있었으니까요.
Q: 박사 학위를 원하지 않았나요?
A: 전혀요. 나는 박사 제도를 싫어합니다. 나는 그 제도가 사람들의 삶을 파괴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나와 같이 일했던 사람 중에 끝이 좋지 않았던 사람을 세 명이나 알고 있습니다. 한 명은 자살했고, 두 명은 정신 병원으로 갔습니다. 내가 박사제도를 비난하는 것은 그런 점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에게 비극을 안겨주지요.
Q: 왜 그랬나요? 박사 과정이 사람을 갉아먹기 때문인가요?
A: 그렇죠. 그리고 이는 대부분의 사람이 전혀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박사 제도는 19세기 독일 학계를 위해 고안된 것인데, 그 상황에서는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상황에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너무 긴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이 연구자가 되기를 원치 않음에도 연구자가 되고 싶은 척해야 합니다. 지금은 일종의 노조원 자격증이 되었고, 동시에 매우 파괴적이며, 특히 여성에게 불리합니다. 여성에게 5년에서 10년의 세월을 낭비하는 건 남성에게보다 더 치명적입니다.
Q: 가족을 이루는 문제 때문일까요?
A: 그렇죠. 인간에게는 생물학적 시계가 있습니다. 여성에게 이는 더 빨리 돌아가지요.
Q: 당시 프린스턴에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을 포함한 수많은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인슈타인을 알았나요?
A: 아니요, 그는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세미나에도 오지 않았고, 점심시간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요. 우리는 그가 산책하는 것을 매일 보았습니다. 전 세계가 그를 요구했고, 이 때문에 그는 무척 바빴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 매일 찾아왔지요. 높은 위치의 사람들이 그를 방문했고, 그는 젊은 연구자들에게 인사할 시간이 없었을 겁니다.
Q: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타입이 아니었다는 식으로 들리네요. 그러니까 새로운 세대와 이야기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 아니었다는 뜻이죠?
A: 그렇습니다. 그는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에게 중요한 것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그가 지속했던 본인의 연구 주제였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인 것으로 그는 그 일에도 뛰어났습니다. 그는 국가 간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였고, 그 역할을 잘 해냈습니다.
Q: 전쟁과 평화 같은 문제 말이지요?
A: 그렇죠. 그리고 시민의 자유에도 관심을 가졌지요.
Q: 처음 프린스턴에 도착했을 때, 선생님은 아인슈타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나요?
A: 당연히 나는 그를, 과학자로 그리고 공인으로 엄청나게 존경했지요. 우리는 그가 위대한 사람이란 것을 알았지만, 또한 그를 일종의 과거의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과학의 새로운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요. 우리가 아는 한, 우리는 그에게 우리가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도 아마 비슷하게, 곧 우리 젊은 사람들에게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Q: 과학에서 그의 시간이 지나갔다는 뜻이죠?
A: 바로 그렇습니다. 그는 전쟁 후 출발한 물리학의 버스를 놓친 거죠.
Q: 닐스 보어는 종종 고등과학원을 방문했습니다. 그와도 알고 지냈나요?
A: 네. 그는 아인슈타인과 전혀 다른 스타일이었죠. 보어는 아인슈타인과 비슷한 나이였지만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냈어요. 그는 모든 사람들과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모든 것에 관심을 가졌고, 그 주제들을 잘 알고 있었으며, 우리에게 좋은 조언을 주었어요. 그는 분명 과학계의 한 영역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세미나에 참석했고, 점심에도 모습을 보였지요. 우리는 그와 여러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Q: 프린스턴을 방문한 다른 수많은 물리학자가 있지요. 볼프강 파울리는 어땠나요?
A: 나는 그와 매우 친했어요. 물론 내가 스위스에서 그와 함께 지낸 적이 있기 때문이죠. 그는 취리히의 교수였습니다. 나는 취리히에서 6개월을 지냈고, 그를 매일 만났지요.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는 점심을 먹은 뒤 산책하기를 좋아해 내게 같이 산책을 권했고 우리는 여러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수많은 이야기를 알았고 농담도 매우 잘했습니다. 그는 젊은 사람들과 계속 어울렸습니다.
Q: 그와 산책할 때 물리 이야기를 주로 했나요? 아니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나요?
A: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심리학을 좋아했어요. 그는 융의 친구였습니다. 자신이 융에게 직접 정신분석 받은 일을 자주 이야기했지요.
Q: 볼프강 파울리와 칼 융 사이의 우정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더군요. 융은 다양한 초자연적 현상을 믿었고 파울리도 그렇다고 하고요.
A: 맞습니다. 그는 여러 가지 이상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유머 감각이 뛰어나기도 했어요. 그는 한 번도 지나치게 진지하지는 않았어요.
Q: 파울리가 과학자로서 특별했던 점은 무엇일까요?
A: 그를 다른 이들과 구별 지은 가장 큰 특징은 그의 거침없는 독설이었습니다. 모두 그를 두려워했지요. 그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심술궂게 굴었어요. 내가 취리히에서 그를 처음 만났던 때가 기억납니다. 그는 여러 사람에게 막 스위스로 온 줄리안 슈빙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지요. 슈빙거는 당시 뛰어난 연구 결과를 발표했던 똑똑한 미국의 젊은 학자였죠. 그는 파인만의 라이벌이었고, 두 사람은 당대의 손꼽히는 천재였습니다. 파울리는 슈빙거가 이야기한 모든 것은 어느 정도 말이 되지만, 다이슨의 논문은 말이 안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나는 그때 친구였던 마커스 피어츠와 등장했는데, 그는 눈을 반짝이며 파울리에게 다가가 “여기 내 친구 프리먼 다이슨을 소개합니다”라고 말했지요. 파울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음 괜찮아요. 그는 독일어를 모르니까.” 사실 나는 독일어를 알았어요. 어쨌든 그건 재미있는 만남이었고 우리는 첫날부터 친구가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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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틸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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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먼 다이슨
프리먼 다이슨 Freeman John Dyson
외국작가 자연과학/공학 저자 1923 ~
1923년 12월 영국의 버크셔에서 태어난 프리먼 다이슨은 세계적인 물리학자이며 수학자이자, 뛰어난 미래학자다. 20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수학자인 고드프레이 하디 교수의 제자로, 순수수학에만 매진했던 스승과는 달리, 응용수학자로서도 입지를 굳혔다. 프린스턴대학을 비롯한 여러 학교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는 한편, 프린스턴 고등학술연구소와 미국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활동했다. 이러한 활동을 토대로 그는 과학계의 동향이나 이론, 연구 프로젝트를 대중 강연과 자신의 책을 통해 일반인과 공유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과학의 현재를 설명하면서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를 상상하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다이슨은 진화를 거친 인간의 새로운 종, 인류의 이주를 통한 우주 식민지 건설을 비롯하여 외계문명의 가능성에 관한 독특한 이론을 내세웠고, 과학 기술의 급격한 발전이 인류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파헤치는 일에 주력했다. 다방면의 호기심, 창조적 열정과 자유로운 사고를 겸비한 성찰적 과학철학자로서의 면모는 그로 하여금 대중에게 과학을 말하는 방법을 아는, 선천적인 이야기꾼으로서 남다른 역할을 가능케 했다고 평가된다.
그는『상상하는 세계Imagined Worlds』(1997)에서 과학의 진보가 그에 버금가는 윤리적 진보를 동반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커다란 혼란과 불행에 부딪칠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태양, 지놈, 그리고 인터넷The Sun, the Genome and the Internet』(1999)에서는 기술만능주의로 치닫는 현 사회에 대한 성찰과 미래 예측을 담았다. 과학 분야의 저술에 대한 공로로 루이스 토마스 상을 받았고,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인정받아 템플턴 상을 받았다. 그 밖의 저서에 『무한한 다양성을 위하여Infinite in All Directions』(1988)『에로스에서 가이아까지』(1992)『생명의 기원Origins of Life』(1999)를 비롯하여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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