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 동이족 | 제갈량이 한민족을 정복할 전략을 세웠었다고? 상위 115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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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 동이족의 현자 제갈공명을 만나다 – 네이버 블로그

제갈량(諸葛亮)의 자는 공명(孔明)이고, 낭야(琅邪)군 양도(陽都)현 즉 산 … 계필씨 등을 고려해본다면 제갈씨는 역시 동이족의 성씨임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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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8/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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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갈량이 본 동이족(고구려) – Daum 블로그

제갈량이 묘사한 고구려 동이(東夷)의 민족성은 약간 예의가 없고 성격이 급하며 전투적이다. 산을 뒤에 두고 바다를 참호로 삼아 천연적 요충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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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1/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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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 나무위키:대문

… 했기 때문에 ‘한자는 동이족이 만들었으니 중국이 발명한 게 아니다. … 제갈량이 저술한 글을 묶은 것으로 되어 있는 제갈량집의 장원(將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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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3/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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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제갈공명)이 말한 한반도 정복하는 법 – 복주의꿈

정확하게는 동이족에 대한 언급인데 동이족은 중국 입장에서 동쪽 오랑캐라는 뜻으로 주로 한반도를 말함.(이때는 고구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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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r1r2r3.tistory.com

Date Published: 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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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이 평가한 한반도(넓게봐선 동이족)을 알아보자

동방의 나라(고구려,백제 신라)는 예절이 바르고 대의가 분명하며 주군을 위해서는 남보다 먼저 호위를 엄하게 한다. 그 지형을 알아보면 대개 산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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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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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은 하나님을 믿은 동이족 현자

동이족 현자를 만나다. 조조가 원소를 격파하여 중원을 완전히 장악할 무렵. 유비는 각지를 유랑하다 형주의 유표에게 의탁해 신야성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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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jv1611.egloos.com

Date Published: 12/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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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공명이 말한 동이족(고구려) – 유용원의 군사세계

제갈공명이 말한 동이족(고구려). 작성자 : 공병의꽃조립교(218.145.xxx.xxx). 입력 2011-01-22 17:13:57. 조회수 7744; 댓글 11; 추천 0 print. 동방의 나라(고구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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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emil.chosun.com

Date Published: 4/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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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 조조는 동이족 사람 – 동이문화원

제갈량이 동이족에 관해서 이런말을 했다고 합니다. “동방의 저들은 나의 지략으로 어쩔수가없다” 근데…촉이 고구려나 다른 삼국과 교전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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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iddham.kr

Date Published: 12/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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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이 한민족을 정복할 전략을 세웠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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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제갈량 동이족

  • Author: 꿀잼백과 Honeyfun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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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3. 31.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n1fb0o-LoHM

유비, 동이족의 현자 제갈공명을 만나다

풍씨족들은 고조선을 구성하는 아홉개 부족인 구이(九夷) 가운데 하나인 풍이(風夷) 인걸로 보인다. 풍씨의 조상이라는 여와씨는 중국 사서의 삽화들에 부채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나오고 여와씨는 결혼을 할 때 부채를 들고 신에게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풍씨의 부족장들은 부채를 들고 히늘에 제사를 올린 것이다. 부채는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 즉 성령의 바람을 상징한다.

아울러, 고대의 풍씨족 중에는 풍후(風后)라는 이가 있는데. 환웅을 보필한 세 신하 중 풍백(風伯)과 동일 인물로 보여진다. 그는 환웅의 아버지인 헌원(환인)의 신하였으며 병법에서의 팔진도를 창안해내고 천문을 보고 사람과 시대의 미래를 예견하는 점법인 기문둔갑을 창시하였다. 또한, 그는 중국의 역사기록상 최초의 병법가로 나온다. 그가 처음으로 병법 13편을 저술했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제갈량은 풍후의 후손이기에 팔진법의 천재였으며 기문둔갑에 능하였다.

제갈량의 고향인 낭야군은 신나라 왕망의 폭정에 반대하여 동이의 후손들이 눈썹에 붉은 칠을 하고 여모(黎母)를 따라 적미군을 거병하였던 곳이고 옛 고조선 시대에는 단군왕검의 아들인 부루 태자가 이 곳에 와서 동이족들의 추장들을 만나서 중원의 일에 관해서 의논하기도했던 곳이었다.

제갈량은 어릴 적 조조의 서주 침략과 양민 대학살로 고아가 되어 유랑하다 형주에 의탁하여 살게 되었다. 제갈량은 조조가 양민들을 죽여 복수를 하는 모습을 보고 조조는 진정한 지도자가 아니라고 여겼다.

진정한 임금은 하늘을 대신하여 하늘같이 백성들을 보살펴야 하거늘 그는 백성들을 멋대로 죽이는 인정이 없는 자였다. 그는 덕이 있어서 한나라를 회복시킬 덕있는 군주를 바라고 있었다.

옛날 주나라가 혼란스러울 때 제나라(산동)의 재상 관중은 제나라 왕 환공을 보필하여 주나라 황실을 보필하고 사방의 역적 제후들을 토벌하고 민생을 안정시켰다. 관중은 비록 사치스러운 장사꾼이었지만 그의 패도정치로 인해 혼란스러운 난세는 잠시나마 멎을 수 있었다. 제갈량은 평소 자신을 관중에 비교하며 자신 역시 그렇게 천하를 구하는 책사가 되고 싶어 하였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형주의 초야에서 농사를 짓고 학문과 병법을 탐구하며 자신의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평소 자신이 동이의 풍씨족(風氏族)의 후손임을 자랑스러워하여 부채를 들고 다녔다. 그는 공자의 책들을 읽으며 큰 충격을 받았다.

첫째론 공자가 동이족의 후손이란 것이고, 둘째론 공자가 동이가 세운 나라인 은나라의 하늘 숭배 사상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경천애인(하늘을 경외하고 백성을 사랑하라)을 부르짖으며 전국시대 때 제후들에게 외쳤으나 자신의 뜻을 아무도 알아 주지 않고 난세는 계속 되자 분을 품고 죽었다는 것이며, 셋째론 그가 중국에 덕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고조선으로 가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공자가 고조선을 군자의 나라라 불렀다는 것을 보고 제갈공명은 큰 호기심을 얻고 고조선에 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공자의 후손 공빈이 쓴 동이열전 원문:

東方有古國,名曰東夷,星分箕尾,地接鮮白.始有神人檀君, 遂應九夷之推戴而爲君,與堯竝立,

옛날에 동방에 한 나라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동이이다. 그 나라의 방위는 기와 미방에 있다. 땅은 조선의 백두산에 접해있다, 단군이라는 신인이 있었는데 그를 따르고 호응하더니 아홉 부족이 추대하여 왕이 되었다. 이때가 중국의 요임금과 같은 시대이다.

논어 자한편 :

“공자께서는 구이(九夷)의 땅에서 살고 싶어하셨다. 누군가 말하기를 ‘그곳(구이의 땅)은 누추한데 어찌하시렵니까’ 라고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가 사는 곳이 어찌 누추함이 있겠는가’ (子 欲居九夷 或曰陋 如之何 子曰 君子居之 何陋之有)”

그가 형주 남양의 초당에서 집필을 시작하던 병법서 심서(心書)에는 마지막 부분에 사방 나라들에 관해서 실려있는데. 거기에는 맨 처음으로 동이(東夷)가 있다. 그는 동방의 나라들이 후례대의(厚禮大義), 즉 예가 두텁고 대의를 안다고 적었으며 상하화목 백성안락(上下和穆 百姓安樂)이라..

상하가 화목하고 백성이 평안한.. 즉 군자의 나라이므로 감히 칠 수 없다고 했다.

혹자는 유비가 제갈량을 통해 큰 세력을 쥐어서 조조 손권과 대립하는 것이 오히려 난세를 지속시키는 것이라고 보며 유비를 위선자로 보고 제갈량은 위선자에게 속아간 불쌍한 인재라고 본다.

하지만 그렇게 보는 것은 깊이 보지 않는 것이다.

조조는 황실을 보호하지만 조조의 세력은 더욱 강대해져 결국 한나라의 황실을 조조의 후손대에 찬탈하는 하극상을 범할 것이고 하극상은 또 다른 하극상을 낳아 뿌린 대로 거두어 중원은 결국 혼란스러워질 것이고 그 혼란은 백년 아니 수백년을 갈지도 모른다.

지금 이 때 유비를 도와 중원에 요 순임금 시대의 군자의 나라를 세워 동방의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 등과 화목하여 세세토록 동아시아가 상제님 안에서 화평할 길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 제갈량이 가야할 길이었다.

[스크랩] 제갈량이 본 동이족(고구려)

제갈량이 묘사한 고구려

동이(東夷)의 민족성은 약간 예의가 없고 성격이 급하며

전투적이다.

산을 뒤에 두고 바다를 참호로 삼아 천연적 요충으로 수비를

굳혔으며 상하가 화목하여 백성들이 안락하니 함부로 공략할

수가 없다.

먼저 임금과 신하, 백성들 사이를 이간하여 그들이 화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임금과 신하, 백성 들 사이에 틈이 생긴 후에도 친선을

도모하다는 것을 구실로 하여 사신을 빈번히 왕래시켜 안심시키

다가 강력한 군대로 불의에 침공해야만 이들을 정벌할 수 있다.

– 제갈량 장원

일단 이 동이가 고구려를 지칭하는것인지는 불분명하나

여기서 동이의 특성을 볼때 고구려일 가능성이 높다

과연 고구려는 제갈량의 작전처럼 망하였다

유명 외국 저술가가 쓴 책에서,

제갈량(諸葛亮 : 181~234)이 빈 성 위에서 홀로 거문고를 타면서

사마의(司馬懿 : 179~251)의 수만 대군을 물리친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과연 병법의 대가라고 하는 대목을 읽었습니다.

이 사건은 있을 수도 없고 실제로 없었던 사건인데 마치 사실처럼

묘사되어 있어서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수만의 대군이 운집해 있는데 성 위에서 총사령관이라는 자가

홀로 거문고를 타고, 더욱 가관인 것은 그 거문고의 음률을 듣고

서 살기(殺氣)를 느끼고 사마의가 철수한다? 이것이 가능한 일입

니까?

마이크 시설도 없는데다 수만의 군사들이 모여 말울음 소리,

창검 소리로 소란한 벌판에서 성위에서 타는 거문고 소리를 듣는

다?

참으로 우스운 얘기입니다.

아무리 과거의 일이지만 제갈량을 빼고 모두 바보만 살아간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어쨌든 제갈량은 역사상 유례없이 중국을 빛낸 사람은

틀림없습니다.

중국인들은 가만히 앉아서 소설책 하나로 전세계에 중국을

알렸고 중국은 멋있는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죠.

그래도 짚으로 만든 고물 조각배로 화살 십만개를 주어오고,

말 한마디에 왕랑(王朗)이 말에서 떨어져 죽고 편지 한통으로

적장을 죽이고, 동남풍을 불어오고 하는 만화(漫畵)같은 사건들을

인용하지 않아서 차라리 다행입니다.

저는 가끔 이런 내용을 사실로 믿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냉수

한 사발을 드리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출처 : 눈에 보이는 것이 다 진실은 아니다,

글쓴이 : sadko 원글보기 : sadko

메모 :

제갈량(제갈공명)이 말한 한반도 정복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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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제갈량은 워낙 유명해서 누구인지는 생략하겠음.

제갈량심서라는 책이 있음 총 50권으로 된 책인데. 그곳에는 전쟁의 기술.사람을 다루는 법.정치 거의 모든것이 소개되어 있음.

이책 마지막 쯤에 중국 주변 한반도에 대한 언급이 있음. 정확하게는 동이족에 대한 언급인데 동이족은 중국 입장에서 동쪽 오랑캐라는 뜻으로 주로 한반도를 말함.(이때는 고구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제갈량심서 장원편

동이는 예절이 바르며 의리를 지킨다.

동이의 지형은 주로 산이 많아 그것에 의지하여 성과 읍을 만들고(한반도 70%가 산지) 성 주변애는 적군을 막기위해 구덩이를 파서 물이 흐르게 한다.

바다와 가깝고 작은 강이 많아 천연의 요새마냥 견고하다(한반도는 산지가 많아서 쌀 생산량이 적은 불이익도 있지만 방어 매리트가 있음.)

왕과 신하 그리고 백성이 서로 화목단란하여 성군의 은혜를 구가하니 안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감히 함부로 공격해서는 안된다.

이처럼 한반도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조언을 담고 있다.공격하지 말라고는 하지만 만약 공격했을 경우 어떻게 동이족을 굴복시킬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한반도를 침공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제갈량은 강태공이 저술한 육도라는 책에 문벌편을 인용한다. 동이족은 군사로서 힘으로 굴복시키는것보다 내부 혼란을 키우고 서로간의 불신을 일으키는 사이 침공하면 된다고 써놓았다.

첩자들을 은밀히 침투시켜 왕과 신하가 서로 믿지 못하게 하며 백성들이 조정을 불신하게 이간책을 하라. 그리고 마침내 그들 사회계층이 서로를 불신하는 단계에 이르면 친선을 도모한다는 구실을 붙여 사회각층을 포섭하고 조정과는 수교를 하도록 하라.

사신왕래를 빙자하여 정보를 캐내고 이것이 무르익게 된다면 군사를 일으켜 불의에 침공을 해야 동이족을 정복할수 있다.

실제 당시 고구려가 국력 최고조인 위나라를 선빵쳤다가(지금으로 말하면 미국 선빵친거임. 우리 민족 다시는 없을 깡다구 국가 ㄷㄷ) 수도까지 밀리지만 결국 밀어낸적이 있다 이토록 고구려의 군사는 강하고 지형은 험했던 것이다.

이세민도 고구려를 힘으로 정복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다시는 고구려를 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다.

하지만 이토록 강성했던 고구려를 무너뜨린것은 제갈량의 계책이었다. 연개소문의 아들들은 서로 불신하며 내전하였으며 백성은 조정을 믿지 못하였다.같은 민족인 신라를 포섭하여 손을 잡고 고구려를 침공하자 어이없이 고구려는 무너져 버렸다.

역사는 반복이 된다.중국이 직접적으로 한반도를 침략하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북공정 역사조작 중국사이버전사 여론호도 국정간섭 등으로 사회각기 각층에 침투하여 사회를 분열시키고 스스로 우리가 무너지게 하는것을 경계해야 한다.

한줄요약: 제갈량: 반도인들은 분열시키는게 쥐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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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공명이 말한 동이족(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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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공명이 말한 동이족(고구려)

동방의 나라(고구려,백제 신라)는 예절이 바르고 대의가 분명하며 주군을 위해서는 남보다 먼저 호위를 엄하게 한다. 그 지형을 알아보면 대개 산을 의지하여 성읍을 만들고, 성주위에는 적군이 침공할때 항쟁하기위해 구덩이를 파서 물이 흐르고 또 바다가 많다.

풍관(馮官)들이 말타는 솜씨가 빠르고 강할뿐만 아니라 地勢는 산수가 많아서 험조(險阻)하여 요새 마냥 견고하다. 주군과 신하 그리고 백성들은 상하(上下)가 화목단란하여 성군의 은혜를 구가(謳歌)하여 안락하다. 그런 까닭으로 감히 건드릴 수 없다.

만약에 동이를 침략할 계획을 세우려면 주군과 신하 그리고 백성간의 이간책(離間策)을 써서 그들 사이에 틈이 생기게 해야 할것이다. 틈이 생긴 후에도 친선을 도모 한다는 구실을 붙여 그들과 수교(修交)하여 사신의 왕래를 빙자하면서 이쪽에서 강력한 군사로 불시에 침공을 해야만 할 것이다.

① 동이(東夷)의 사적 고찰

제갈공명이 후한에 봉직했을 때는 서기 220년대 였다.

이 시대에 동방은 어떤 나라들이 있었는가를 역사적으로 고찰해보면 제갈공명이 가지고 있던 대외 정치관을 알 수 있고, 따라서 그때 있었던 동방의 나라들이 어떠한 정치를 했으며, 또한 그나라의 형세가 어떠했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촉나라의 유비(劉備)는 전한(前漢)의 왕실 후손이다. 그는 항상 황건적의 혼단과 혼란에 빠져가는 나라를 개탄했고, 이를 틈타서 조신들이 암중모색, 권력상잔으로 혼란해 질때 근왕병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유비는 왕위에 오른 후에도 항상 존주사상(尊周思想)의 바탕 위에서 나라를 제도, 정치를 했기때문에 후대 사학자들은 제갈공명이 유비를 도와 비록 삼분천하(三分天下) 밖에는 못했지만 그들의 치적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제갈공명이 만고에 뛰어난 제상이라고 후대에 와서 특히 당,송이래 사가들이 평한다. 중국은 오늘에(신해혁명이후 50여년)이르러 동방천하를 거의 점령했지만, 그당시에는 물론 하나라와 진나라등의 통일국가 시대에도 그렇게 큰영토를 갖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즉, 한나라 초기와 그 후대까지도 중국의 영토란 요동(遼東)은 물론 요서(遼西)땅도 미치지 못하는 그 서쪽에 만리장성을 쌓고, 또 태원, 돈황, 이북, 그리고 서편, 대월씨등 서역제국이 점거하여 나라를 세우고 있었다.

그러므로 제갈공명의 지혜는 능수 능란 하였지만 중국천하란 지극히 작은 영토에 불과 했던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대 사가들은 지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화 사상에 젖어 중국사가들의 천하관을 웅대하고 크게 생각해서 역사의 왜곡를 저질렀다.(고려 김부식의 사기가 대표적인 모화사상의 사서임)

② 동이의 열국

유비가 촉나라 왕으로 등극하고 제갈공명이 재상으로 있을때는 서기 220년대로서 그 당시 동방에는 고구려의 연우(延優)가 왕에 올라 산상왕 재위 20년이요, 신라는 나해 이사금왕 재위 20년이며, 백제는 구수왕 재위 연간에 해당된다. 또 전기 고구려, 백제, 신라 외에도 고조선의 후인들은 중국 동쪽과 북쪽으로 읍루(揖樓) , 선비(鮮卑), 오환(烏桓)등의 씨족들이 존립해 있었다.

중국<사기>의 동이전과 제갈공명의 <심서(心書)>동이편에 고구려,백제,신라를 구별하지 않고 통틀어 동이(東夷)라고 한것은 춘추전국시대 때 공자가 고조선을 동이(東夷) 라 했고, 동이족은 성현(聖賢)의 나라라고 했던 그 사례를 들어 요동에 있는 나라는 모두 같은 씨족의 나라로 보고 총칭하여 동이(東夷)라 한것으로 판단된다.

③ 예절의 나라

동이는 예절이 바르고 의리를 지킨다.

제갈공명은 동이편에서 후예대의(後禮大義)라는 존대한 문자를 인용했다.

제갈공명은 항상 오, 위나라와 싸울때 그들 나라는 예절과 신의가 없어서 응징한다는 구실로 출병을 했다한다.

그러한 제갈공명이 동이(東夷)의 나라들은 예절이 후하고 대의가 있다고 찬양한 것은 그가 동방의 여러 나라를 숭상한 것을 뜻한다. 만일 제갈공명이 중국의 모화사상에 젖은 학자들마냥 동이를 변방의 오량캐라고 멸시하는 사상이었다면 “후예대의”란 문자는 쓰지 않았을 것이다.

또, 주군을 위해서는 목숨을 초개같이 알고 호위을 하며 잘 싸운다는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지형을 말할때 의산참해(依山塹海)라 했는데 이 귀절도 고대 동방제국 즉 고구려, 백제, 신라등의 지리와 산성, 또는 도읍을 정확히 알고 말한 명석한 구절이다.

물론 중국의 고대 성읍이나 산성도 산과 바다 또는 강을 의지 했지만 그당시 유적으로 보아 요동성일대와 고구려, 백제, 신라의 도읍과 성지는 반드시 산수(山水)를 끼고 형성되었고 또 강이 있던 없던 성주위로 참호를 파서 물이 흐르게 했다. 그러므로 고구려의 성지는 제갈공명이 동이편에 지적한대로 준험하고 견고하게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까닭에 중국의 위나라를 위시하여 당나라에 이르기까지 20여차례를 침공해 왔지만 그때마다 참패의 고배를 마셨던 것이다.

제갈공명이 동이는 상하가 모두 화목하고 백성은 안락하다고 지적했다.

제갈공명이 동방을 얼마만큼 동경했으며 또 자신의 최고의 이상으로 했던 정치를 동이편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 있는 글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많은 병서, 전략서중에서 <삼략(三略)>과 <황석공소서>에서도 “만민은 상하가 화목하고 백성은 안락하다”했다.

제갈공명은 동이(東夷)를 평할때 성현의 나라로 보았다.

그렇다면 제갈공명이 동이를 침공할 계략을 세운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제갈공명은 강태공의 <육도>문벌편을 인용했다.

즉 첩자를 침투시켜 주군과 신하들 사이에 이간작전을 써서 내부의 혼란을 틈타 침공하면 된다고 했다.

바로 이전략은 당나라 이정과 이세적이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죽은 후 그 아들 남생과 남건간에 이간책을 써서 성공하여 고구려는 싸움도 제대로 못하고 당나라에 당했고 고구려는 폐망 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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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국의 삼국시대때 과연 우린 뭘했을까???란 막연한 궁금증에 여러가지를 찾아다닙니다만

중국의 삼국지 정사에도 동이족 얘기가 많이 나오더군요 공손씨가 고구려와 동맹을 맺으려 했었다 등과

손권이 고구려의 도움으로 위나라를 치려고 했었다 등등 말이죠

이런 대충적인 얘기는 아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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