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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편 133편 1-3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옷깃까지 내림 …
Source: ww.seomoon.org
Date Published: 8/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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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3:1~3, 시편 134:1~3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
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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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시편 133:1~3절, 134 … – 네이버 블로그
그래서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은 교회를 지칭하는 말로 이해해도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다윗에게는 예루살렘에서의 예배 회복으로 인한 공동체의 …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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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가 함께 사는 행복 – 설교요약본:열린교회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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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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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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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3편 – 대한성서공회
개역개정 · 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 3 …
Source: www.bskorea.or.kr
Date Published: 12/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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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다국어 성경 Holy-Bible
민수기 24:5 야곱이여 네 장막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번역비교]. 시편 133: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
Source: www.holybible.or.kr
Date Published: 5/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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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형제 가 연합 함 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 지요
- Author: Newsong Church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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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2.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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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 큐티 나눔터
시편 133편 1-3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본문은 형제가 하나님 안에서 연합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극적으로 묘사한다.
이는 잘 조화된 음악의 화음 같으며,
풍요로운 밀밭과도 같으며,
꿀 같이 달콤한 것이며,
아론의 수염을 적시고 옷깃을 타고 흐르는 성령의 기름과 같으며
만년설이 덮인 헐몬산으로부터 내리는 풍족한 이슬과도 같다.
133편은 아름다운 시어와 비유로 인하여
순례자들이 모여 절기를 지킬 때 형제애를 다지며 부르는 찬양이며,
많은 시인들이 인용하기도 하는 밝고 아름다운 노래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형제가 하나님의 이름 아래 하나가 되는 것을 많이 기뻐하신다.
그래서 시인은 형제가 화합하는 모습을 선하다 하며
천지 창조 때 하나님께서 보기에 좋았다는 말씀과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화합 즉 조화는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도 연결되는 것이며,
거듭난 성도가 성전의 지체로 변하는 대표적 현상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화합하는 형제들에게 복을 주신다.
본문에 의하면 그 복은 영생이다.
영생은 인류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은혜의 최종이다.
에벤에셀선교단John
시편 133:1~3, 시편 134:1~3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편 133:1~3
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3 혈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시편 134:1~3
1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섰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2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3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찌어다
법궤를 블레셋에 빼앗겨 기럇여아림에 20여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비로소 다윗성으로 돌아오게 되자 다윗은 이스라엘의 모든 형제 즉 동족들이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하나가 되고 회복되어 하나님을 예배함이 너무 좋고 아름다워서 마치 대제사장이 성직을 받을 떄 머리에 기름을 부어 그 기름이 수염을 타고 흘러 옷깃까지 내리는 것과 같이 이스라엘 공동체가 온전히 거룩하게 구별되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연합되며 이스라엘 민족의 최고지도자들로부터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주시는 축복과 생명이 하나된 이스라엘에 흘러 넘친다고 찬양합니다
성전을 순례하기 위해 각지에서 올라온 순례자들이 밤새도록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기 위해 성전 안에 남아 있던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자신들의 도착을 알리기 위해 성전 밖에서 외치면서 그들로 하여금 정성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손을 들고 신령과 진정으로 경배하고 찬양하라고 하자 성전 안에 있던 봉사자들은 성정을 순례하기 위해 찾아 온 순례자들을 향해 하나님의 성전과 임재가 있는 시온으로부터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빼앗겼던 법궤가 성으로 돌아오게 되자 그동안 중단 되었던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회복이 되고 거룩하게 구별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된 이스라엘 공동체의 연합을 기뻐하며 축복과 영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함을 보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전국 각지에서 성전 찾아온 순례자들이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들로 하여금 전심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라고 독려하자 성전 봉사자들은 창조주 하나님꼐서 그들에게 축복하시기를 축원하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빼앗겼던 법궤가 돌아오게 되자 다윗은 중단되었던 예배가 회복되고 거룩한 대제사장직을 위임받음과 같이 이스라엘 공동체가 최고 지도자들로부터 온 백성들에게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거룩하게 구별하심과 축복하심과 영원한 생명 주심이 이스라엘에 차고 넘친다고 찬양함을 보며, 우리가 구하는 모든 은혜와 축복은 다른 어떤 방법이나 수단이 아닌 오직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예배의 회복이며 이를 통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축복과 영생을 주심을 믿고 내가 있는 어디서나 어느 시간이나 거룩한 은헤를 향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스라엘 각지에서 성전을 찾아 온 순례자들이 밤새도록 성전에서 예배하며 봉사하는 성전 봉사자들에게 자신들의 도착을 알리며 성전 봉사자들이 영과 전리로 전심을 다해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라고 말하자 성전 봉사들이 순례자들을 향해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시온 성전으로부터 축복을 베푸실 것을 축원하는 것을 보며,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수행하면서 각자의 임무와 위치가 달라도 서로의 사역을 존중하면서 축복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축복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시편 133:1~3절, 134:1~3절, 2019년 11월 2일 성경묵상)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시편 133:1~3절, 134:1~3절)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이 한 구절이 시편 133편을 끌고 가는 핵심입니다. 2~3절은 그 아름다움을 비유적으로 노래한 것입니다. 그런데 3절에서는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이 곧 무엇입니까? 영생입니다. 구원입니다. 여기 사용된 복은 시편 1편에서 사용한 복과는 다른 말입니다. 베라카(laek]r’B;)라는 이 말은 은혜, 축복, 선물이라는 의미입니다. 번성하고 번영한다는 의미에서의 축복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의 평안을 의미하는 축복이 아니라 공동체가 아름답게 성장하고 은혜 안에서 지어져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교회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시편 133편은 다윗이 지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이 시편은 블레셋에 빼앗겼던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옴으로 인해 오랫동안 깨어졌던 백성들의 연합(聯合)이 회복된 기쁨을 노래한 시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일단 법궤가 기럇여아림, 즉 바알레유다에 있었던 시간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삼상 7:1~2절에는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20년 동안 오래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때는 사울이 왕이 되기 전입니다. 사울이 왕으로 통치한 시간이 40년입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40년이 더 지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20년 동안 오래라는 말은 대략이라는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거기다가 다윗이 왕이 되고 법궤를 옮기기까지는 또다시 상당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사울이 죽고 왕이 되는데 걸린 시간이 약 8년입니다. 예루살렘으로 왕궁을 옮기고 블레셋과 전쟁을 하고 또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니까 최소한 60여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법궤는 홀대당하고 있었습니다. 홀대를 당하게 된 배경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과 전쟁을 하면서 법궤를 부적처럼 사용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1차 패배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로들은 왜 전쟁에서 패하게 되었는지를 의논하다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 것이 아니라 법궤를 가지고 나가기로 한 것입니다. 즉 인격적인 회개와 돌이킴 없이 법궤를 사용해서 전쟁에 승리하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 그들의 신앙에 하나님은 모욕을 불사하시고 전쟁에 패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법궤는 빼앗겨서 다곤의 신전에 전리품으로 남게 됩니다. 7개월을 다곤 신전에 있는 동안 블레셋 사람들은 별의별 일들을 다 겪습니다. 자신의 신인 다곤의 신상이 여호와의 궤 앞에 엎어져 절하는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하고 다음 날은 똑같이 엎어져 있지만, 머리와 손목이 끊어진 처참한 형상이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독한 종기가 아스돗, 즉 하나님의 법궤가 있는 동네 창궐합니다. 그래서 상의한 끝에 가드로 옮깁니다. 그러자 가드에서도 독한 종기와 재앙으로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은 법궤를 돌려보내기로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 돌려보낼 것을 고민하다가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않은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 제물을 상자에 담아 보냅니다. 그러면서 그 소가 곧장 가면 하나님이 자신들을 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아니라 우연히 재앙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멍에도 메어 보지 않았고 젖 나는 소가 새끼를 떼어 놓고 가는데도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블레셋 방백들이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갔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법궤는 벧세메스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벧세메스 사람들이 법궤를 들여다보다가 죽임을 당하지 기럇여아림으로 보내져 방치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그 법궤를 블레셋의 방법대로 수레에 싣고 오려다가 실패하고 다시 석 달이 지난 후에 메어오면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다윗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답다고 노래한 것일까요? 아무래도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심점이며 하나님을 중심으로 연합되는 중요한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회복시킴으로써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가 하나님 안에서 일치하여 함께 지어져 가게 된 기쁨을 노래한 시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형제는 누구입니까? 믿음 안에서의 모든 지체를 의미합니다. 연합이라는 말이 원문에는 없지만, 연합하여 동거함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성전으로서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은 교회를 지칭하는 말로 이해해도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다윗에게는 예루살렘에서의 예배 회복으로 인한 공동체의 회복이 너무 큰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하나 되어 회복될 예배의 기쁨이 묻어나는 시편입니다. 그 이유는 “아름다운고”(1절)에 해당하는 ‘나임’(!y[in:)은 본래 ‘즐거운’ ‘유쾌한’이라는 뜻을 지닌 형용사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형제가 연합한 모습이 아름답다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표현이라기보다는, 형제가 연합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시인의 마음이 즐겁고 행복하다는 의미의 표현인 것입니다.
헐몬의 이슬처럼(2~3절)
2~3절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의 아름다움에 대한 다윗의 은유입니다. 지금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표현이지만 설명을 통해 다윗이 느끼는 아름다움을 이해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일단 “머리에 있는 기름”(2절)은 기름을 제사장의 머리에 부었던 관례를 상기시켜 줍니다. 물론 머리에 기름을 부었던 관례는 제사장 임직 뿐만 아니라 왕의 임직 시에나 선지자도 해당하였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손질하기 위해 기름을 머리에 바르기도 했습니다. 여기 기름은 제사장 위임식에서 제사장을 세울 때 거룩하게 구별하기 위해 머리에 부었던 바로 그 기름입니다. 그런데 법궤를 안치하면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모습이 아론의 머리에 부은 기름이 수염을 타고 흘러 옷깃까지 내림 같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표현입니다. 저는 이 말이 온 이스라엘이 제사장 아론처럼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별 되었다는 의미로 읽어집니다. 법궤를 안치하고 성막을 준비해서 예배를 회복하는 모습 속에서 다윗은 제사장 나라의 영광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제사장 위임식 장면을 통해 이스라엘도 같은 하나님의 축복에 참여한 자들로서 하나로 온전히 연합되어 있음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헐몬산은 안티레바논산맥의 남쪽 돌출부를 이루는 산으로 해발 약 2.770m에 이른다고 합니다. 요단의 근원을 이루는 헐몬 산은 많은 양의 이슬이 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힐몬의 이슬”은 ‘많은 이슬’을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헐몬 산의 새벽이슬 같은 수많은 믿음의 형제들이 예배하기 위해 모여드는 것을 상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다는 표현 때문입니다. 시온의 산들은 예루살렘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헐몬 산의 이슬 같은 성도들이 예배하러 모여드는 상상을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순례자의 노래(시편 134:1~3절)
시편 134편은 오랜 순례 여행 끝에 성전에 도착한 자의 감격스러운 찬양 촉구와 이들을 맞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축복이 어우러지는 감격스러운 노래입니다. 1~2절은 밤에 성소에 선 무리에게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권고하는 반면, 3절은 여호와께서 너를 축복하실 것이라는 제사장의 축복기도인 것입니다.
이 시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들’의 마지막 시편입니다. 따라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의 결론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보면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들의 기쁨과 감격이 배어 있는 노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 교통편으로 한 해에 세 번 성전에 올라가려면 얼마나 많은 값을 지불해야 했겠습니까? 그래서 성전에 온 순례자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 절로 구성된 이 시는 내용상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l~2절에서는“여호와께서”가 목적어라면, 3절에서는 “여호와”가 주어입니다. 1~2절은 그분의 이름으로 백성을 축복하는 제사장의 축복기도입니다.
시편 134편에서는 ‘축복하다’ 혹은 ‘송축하다’라는 동사가 1, 2, 3절에 모두 나타납니다. 또한 “여호와”는 1절에서 3회, 2절에서 1회, 3절에서 1회 나타나고 또한 “종들” “서다” “집” “시온” 등의 표현들은 예루살렘 성소에서 야간근무를 위해 회집한 성직자들과 관련된 것들이 이 시의 배경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1절과 2절에 반복되는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외침은 성전을 향한 순례자들의 감격과 기쁨을 엿보게 합니다.
여호와를 송축하라(1~2절)
“보라!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섰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1절)이라는 표현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상번제를 드리라는 명령에 따라 일몰 이후부터 새벽까지 성소에서 봉사하는 모든 제사장과 레위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다소 생소합니다. 그런데 불을 꺼트리지 않아야 하는 레위인의 직무를 생각할 때 반드시 밤에도 성소에서 근무하는 레위인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아침 상번제와 상소제를 드리는 그룹과 저녁 상번제와 상소제를 드리는 근무자가 달랐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제사장들은 저녁 제사를 드렸으며 밤을 새워 제단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레위인들은 곁에서 이를 수발했고, 찬양대원들은 성전 골방에 거하면서 제사의 진행에 따라 찬양 사역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에 대해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편을 살펴보면서 이 일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일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밤 근무를 하는 그룹들은 성실하게 깨어 성전을 돌보고 불이 꺼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했습니다.
저는 이 숨겨진 이야기에서 맡겨진 일에 대한 성실함을 발견합니다. 이 일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잘 드러나는 일은 아닙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소중한 일입니다. 저는 하나님 나라가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을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건설되고 유지된다고 굳게 믿습니다.
밤에 성전에 도착한 순례자들은 이 시와 같은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묵묵히 감당하고 있는 직분자들을 향한 사랑과 애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 ‘밤에’라는 말이 복수로 표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룻밤이 아닌 여러 날입니다. 그래서 여기 밤에라는 표현은 늘 깨어 있을 것과 하나님의 일들을 감당하는 순간순간 빠지기 쉬운 상념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그분을 송축하라는 격려의 의미도 담겨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온도, 즉 뜨거움과 열정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성실하게 유지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뜨겁게 며칠보다는 성실하게 평생 해야 하는 것이 신앙생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여기 제사장들이 감당했던 이 소중한 사역은 우리 신앙생활이 가야 할 길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순례자들이 성전을 향해 외치자 화답이 돌아옵니다.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밤을 새우며 성전을 돌보던 제사장들이 하는 말입니다. 예배자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합당한 지극한 예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할 때 손을 들라는 것은 기도와 찬양을 드리는 자세로 정성을 다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들어 올리는 상징적 행동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가 찬양할 때 혹은 기도할 때 손을 드는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마음에 감동이 있고 은혜가 있을 때 손을 듭니다. 따라서 손을 들어 하나님을 송축하라는 것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요구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예를 표하라는 요구이기도 합니다. “송축하라”라는 말은 바락, 혹은 바라크(&r’B;)라는 히브리어로 ‘찬양하라’는 기본적인 뜻을 가지지만 같은 의미의 다른 단어들과는 달리 찬양의 행위와 마음의 자세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무릎을 꿇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성전에서 봉사하던 제사장들은 순례자들이 온 마음과 인격을 다해 하나님을 높여 드리라고 초청하는 것입니다.
네게 복을 주시리라(3절)
그럴 때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이라는 말부터 주목해야 합니다. 이 말 역시 앞에 사용된 바라크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전심으로 찬양하는 것이 복이라는 말입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그것이 곧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순례자들에게 하나님을 전심으로 송축할 때 그 마음 자체를 축복으로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요? 시인은 이 복을 주시는 분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에게 그 예배 자체가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입니까? 이 복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 창조의 결과로 존재합니다. 따라서 예배자가 누리는 이 축복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며 하나님 창조의 솜씨라는 신앙고백입니다. 그 복은 시온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순례자를 향한 위로의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성전이 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기 순례자들처럼 하나님의 성전을 찾아 순례하지 않아도 됩니다. 또한, 여기 제사장들처럼 성소의 불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이 그림 언어들은 오늘을 사는 성도들에게 던지는 화두입니다. 예루살렘을 찾아 순례했던 순례자들의 거룩한 열정과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성실했던 제사장의 삶을 묵상하면서 현재 우리 신앙생활을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자신들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우리에게 맡겨진 일들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들로서 성소의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자리를 성소로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삶의 예배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바로 축복입니다.
누군가는 깨어서 자리를 지켜야 찾아오는 순례자들이 은혜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해 보십시오. 우리 시대, 우리 교회도 누군가는 깨어서 자기 자리를 지켜야 유지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누군가가 바로 저와 여러분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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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시편 133:1~3절, 134:1~3절, 2019년 11월 2일 성경묵상)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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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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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서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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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벤에셀선교단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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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 큐티 나눔터
시편 133편 1-3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본문은 형제가 하나님 안에서 연합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극적으로 묘사한다. 이는 잘 조화된 음악의 화음 같으며, 풍요로운 밀밭과도 같으며, 꿀 같이 달콤한 것이며, 아론의 수염을 적시고 옷깃을 타고 흐르는 성령의 기름과 같으며 만년설이 덮인 헐몬산으로부터 내리는 풍족한 이슬과도 같다. 133편은 아름다운 시어와 비유로 인하여 순례자들이 모여 절기를 지킬 때 형제애를 다지며 부르는 찬양이며, 많은 시인들이 인용하기도 하는 밝고 아름다운 노래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형제가 하나님의 이름 아래 하나가 되는 것을 많이 기뻐하신다. 그래서 시인은 형제가 화합하는 모습을 선하다 하며 천지 창조 때 하나님께서 보기에 좋았다는 말씀과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화합 즉 조화는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도 연결되는 것이며, 거듭난 성도가 성전의 지체로 변하는 대표적 현상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화합하는 형제들에게 복을 주신다. 본문에 의하면 그 복은 영생이다. 영생은 인류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은혜의 최종이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시편 133:1~3절, 134:1~3절, 2019년 11월 2일 성경묵상)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시편 133:1~3절, 134:1~3절)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이 한 구절이 시편 133편을 끌고 가는 핵심입니다. 2~3절은 그 아름다움을 비유적으로 노래한 것입니다. 그런데 3절에서는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이 곧 무엇입니까? 영생입니다. 구원입니다. 여기 사용된 복은 시편 1편에서 사용한 복과는 다른 말입니다. 베라카(laek]r’B;)라는 이 말은 은혜, 축복, 선물이라는 의미입니다. 번성하고 번영한다는 의미에서의 축복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의 평안을 의미하는 축복이 아니라 공동체가 아름답게 성장하고 은혜 안에서 지어져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교회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시편 133편은 다윗이 지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이 시편은 블레셋에 빼앗겼던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옴으로 인해 오랫동안 깨어졌던 백성들의 연합(聯合)이 회복된 기쁨을 노래한 시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일단 법궤가 기럇여아림, 즉 바알레유다에 있었던 시간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삼상 7:1~2절에는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20년 동안 오래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때는 사울이 왕이 되기 전입니다. 사울이 왕으로 통치한 시간이 40년입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40년이 더 지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20년 동안 오래라는 말은 대략이라는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거기다가 다윗이 왕이 되고 법궤를 옮기기까지는 또다시 상당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사울이 죽고 왕이 되는데 걸린 시간이 약 8년입니다. 예루살렘으로 왕궁을 옮기고 블레셋과 전쟁을 하고 또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니까 최소한 60여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법궤는 홀대당하고 있었습니다. 홀대를 당하게 된 배경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과 전쟁을 하면서 법궤를 부적처럼 사용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1차 패배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로들은 왜 전쟁에서 패하게 되었는지를 의논하다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 것이 아니라 법궤를 가지고 나가기로 한 것입니다. 즉 인격적인 회개와 돌이킴 없이 법궤를 사용해서 전쟁에 승리하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 그들의 신앙에 하나님은 모욕을 불사하시고 전쟁에 패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법궤는 빼앗겨서 다곤의 신전에 전리품으로 남게 됩니다. 7개월을 다곤 신전에 있는 동안 블레셋 사람들은 별의별 일들을 다 겪습니다. 자신의 신인 다곤의 신상이 여호와의 궤 앞에 엎어져 절하는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하고 다음 날은 똑같이 엎어져 있지만, 머리와 손목이 끊어진 처참한 형상이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독한 종기가 아스돗, 즉 하나님의 법궤가 있는 동네 창궐합니다. 그래서 상의한 끝에 가드로 옮깁니다. 그러자 가드에서도 독한 종기와 재앙으로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은 법궤를 돌려보내기로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 돌려보낼 것을 고민하다가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않은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 제물을 상자에 담아 보냅니다. 그러면서 그 소가 곧장 가면 하나님이 자신들을 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아니라 우연히 재앙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멍에도 메어 보지 않았고 젖 나는 소가 새끼를 떼어 놓고 가는데도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블레셋 방백들이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갔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법궤는 벧세메스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벧세메스 사람들이 법궤를 들여다보다가 죽임을 당하지 기럇여아림으로 보내져 방치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그 법궤를 블레셋의 방법대로 수레에 싣고 오려다가 실패하고 다시 석 달이 지난 후에 메어오면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다윗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답다고 노래한 것일까요? 아무래도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심점이며 하나님을 중심으로 연합되는 중요한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회복시킴으로써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가 하나님 안에서 일치하여 함께 지어져 가게 된 기쁨을 노래한 시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형제는 누구입니까? 믿음 안에서의 모든 지체를 의미합니다. 연합이라는 말이 원문에는 없지만, 연합하여 동거함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성전으로서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은 교회를 지칭하는 말로 이해해도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다윗에게는 예루살렘에서의 예배 회복으로 인한 공동체의 회복이 너무 큰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하나 되어 회복될 예배의 기쁨이 묻어나는 시편입니다. 그 이유는 “아름다운고”(1절)에 해당하는 ‘나임’(!y[in:)은 본래 ‘즐거운’ ‘유쾌한’이라는 뜻을 지닌 형용사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형제가 연합한 모습이 아름답다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표현이라기보다는, 형제가 연합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시인의 마음이 즐겁고 행복하다는 의미의 표현인 것입니다. 헐몬의 이슬처럼(2~3절) 2~3절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의 아름다움에 대한 다윗의 은유입니다. 지금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표현이지만 설명을 통해 다윗이 느끼는 아름다움을 이해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일단 “머리에 있는 기름”(2절)은 기름을 제사장의 머리에 부었던 관례를 상기시켜 줍니다. 물론 머리에 기름을 부었던 관례는 제사장 임직 뿐만 아니라 왕의 임직 시에나 선지자도 해당하였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손질하기 위해 기름을 머리에 바르기도 했습니다. 여기 기름은 제사장 위임식에서 제사장을 세울 때 거룩하게 구별하기 위해 머리에 부었던 바로 그 기름입니다. 그런데 법궤를 안치하면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모습이 아론의 머리에 부은 기름이 수염을 타고 흘러 옷깃까지 내림 같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표현입니다. 저는 이 말이 온 이스라엘이 제사장 아론처럼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별 되었다는 의미로 읽어집니다. 법궤를 안치하고 성막을 준비해서 예배를 회복하는 모습 속에서 다윗은 제사장 나라의 영광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제사장 위임식 장면을 통해 이스라엘도 같은 하나님의 축복에 참여한 자들로서 하나로 온전히 연합되어 있음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헐몬산은 안티레바논산맥의 남쪽 돌출부를 이루는 산으로 해발 약 2.770m에 이른다고 합니다. 요단의 근원을 이루는 헐몬 산은 많은 양의 이슬이 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힐몬의 이슬”은 ‘많은 이슬’을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헐몬 산의 새벽이슬 같은 수많은 믿음의 형제들이 예배하기 위해 모여드는 것을 상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다는 표현 때문입니다. 시온의 산들은 예루살렘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헐몬 산의 이슬 같은 성도들이 예배하러 모여드는 상상을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순례자의 노래(시편 134:1~3절) 시편 134편은 오랜 순례 여행 끝에 성전에 도착한 자의 감격스러운 찬양 촉구와 이들을 맞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축복이 어우러지는 감격스러운 노래입니다. 1~2절은 밤에 성소에 선 무리에게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권고하는 반면, 3절은 여호와께서 너를 축복하실 것이라는 제사장의 축복기도인 것입니다. 이 시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들’의 마지막 시편입니다. 따라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의 결론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보면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들의 기쁨과 감격이 배어 있는 노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 교통편으로 한 해에 세 번 성전에 올라가려면 얼마나 많은 값을 지불해야 했겠습니까? 그래서 성전에 온 순례자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 절로 구성된 이 시는 내용상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l~2절에서는“여호와께서”가 목적어라면, 3절에서는 “여호와”가 주어입니다. 1~2절은 그분의 이름으로 백성을 축복하는 제사장의 축복기도입니다. 시편 134편에서는 ‘축복하다’ 혹은 ‘송축하다’라는 동사가 1, 2, 3절에 모두 나타납니다. 또한 “여호와”는 1절에서 3회, 2절에서 1회, 3절에서 1회 나타나고 또한 “종들” “서다” “집” “시온” 등의 표현들은 예루살렘 성소에서 야간근무를 위해 회집한 성직자들과 관련된 것들이 이 시의 배경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1절과 2절에 반복되는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외침은 성전을 향한 순례자들의 감격과 기쁨을 엿보게 합니다. 여호와를 송축하라(1~2절) “보라!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섰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1절)이라는 표현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상번제를 드리라는 명령에 따라 일몰 이후부터 새벽까지 성소에서 봉사하는 모든 제사장과 레위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다소 생소합니다. 그런데 불을 꺼트리지 않아야 하는 레위인의 직무를 생각할 때 반드시 밤에도 성소에서 근무하는 레위인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아침 상번제와 상소제를 드리는 그룹과 저녁 상번제와 상소제를 드리는 근무자가 달랐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제사장들은 저녁 제사를 드렸으며 밤을 새워 제단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레위인들은 곁에서 이를 수발했고, 찬양대원들은 성전 골방에 거하면서 제사의 진행에 따라 찬양 사역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에 대해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편을 살펴보면서 이 일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일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밤 근무를 하는 그룹들은 성실하게 깨어 성전을 돌보고 불이 꺼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했습니다. 저는 이 숨겨진 이야기에서 맡겨진 일에 대한 성실함을 발견합니다. 이 일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잘 드러나는 일은 아닙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소중한 일입니다. 저는 하나님 나라가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을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건설되고 유지된다고 굳게 믿습니다. 밤에 성전에 도착한 순례자들은 이 시와 같은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묵묵히 감당하고 있는 직분자들을 향한 사랑과 애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 ‘밤에’라는 말이 복수로 표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룻밤이 아닌 여러 날입니다. 그래서 여기 밤에라는 표현은 늘 깨어 있을 것과 하나님의 일들을 감당하는 순간순간 빠지기 쉬운 상념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그분을 송축하라는 격려의 의미도 담겨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온도, 즉 뜨거움과 열정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성실하게 유지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뜨겁게 며칠보다는 성실하게 평생 해야 하는 것이 신앙생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여기 제사장들이 감당했던 이 소중한 사역은 우리 신앙생활이 가야 할 길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순례자들이 성전을 향해 외치자 화답이 돌아옵니다.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밤을 새우며 성전을 돌보던 제사장들이 하는 말입니다. 예배자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합당한 지극한 예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할 때 손을 들라는 것은 기도와 찬양을 드리는 자세로 정성을 다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들어 올리는 상징적 행동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가 찬양할 때 혹은 기도할 때 손을 드는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마음에 감동이 있고 은혜가 있을 때 손을 듭니다. 따라서 손을 들어 하나님을 송축하라는 것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요구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예를 표하라는 요구이기도 합니다. “송축하라”라는 말은 바락, 혹은 바라크(&r’B;)라는 히브리어로 ‘찬양하라’는 기본적인 뜻을 가지지만 같은 의미의 다른 단어들과는 달리 찬양의 행위와 마음의 자세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무릎을 꿇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성전에서 봉사하던 제사장들은 순례자들이 온 마음과 인격을 다해 하나님을 높여 드리라고 초청하는 것입니다. 네게 복을 주시리라(3절) 그럴 때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이라는 말부터 주목해야 합니다. 이 말 역시 앞에 사용된 바라크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전심으로 찬양하는 것이 복이라는 말입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그것이 곧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순례자들에게 하나님을 전심으로 송축할 때 그 마음 자체를 축복으로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요? 시인은 이 복을 주시는 분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에게 그 예배 자체가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입니까? 이 복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 창조의 결과로 존재합니다. 따라서 예배자가 누리는 이 축복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며 하나님 창조의 솜씨라는 신앙고백입니다. 그 복은 시온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순례자를 향한 위로의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성전이 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기 순례자들처럼 하나님의 성전을 찾아 순례하지 않아도 됩니다. 또한, 여기 제사장들처럼 성소의 불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이 그림 언어들은 오늘을 사는 성도들에게 던지는 화두입니다. 예루살렘을 찾아 순례했던 순례자들의 거룩한 열정과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성실했던 제사장의 삶을 묵상하면서 현재 우리 신앙생활을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자신들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우리에게 맡겨진 일들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들로서 성소의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자리를 성소로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삶의 예배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바로 축복입니다. 누군가는 깨어서 자리를 지켜야 찾아오는 순례자들이 은혜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해 보십시오. 우리 시대, 우리 교회도 누군가는 깨어서 자기 자리를 지켜야 유지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누군가가 바로 저와 여러분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에벤에셀선교단John
시편 133:1~3, 시편 134:1~3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편 133:1~3 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3 혈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시편 134:1~3 1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섰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2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3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찌어다 법궤를 블레셋에 빼앗겨 기럇여아림에 20여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비로소 다윗성으로 돌아오게 되자 다윗은 이스라엘의 모든 형제 즉 동족들이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하나가 되고 회복되어 하나님을 예배함이 너무 좋고 아름다워서 마치 대제사장이 성직을 받을 떄 머리에 기름을 부어 그 기름이 수염을 타고 흘러 옷깃까지 내리는 것과 같이 이스라엘 공동체가 온전히 거룩하게 구별되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연합되며 이스라엘 민족의 최고지도자들로부터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주시는 축복과 생명이 하나된 이스라엘에 흘러 넘친다고 찬양합니다 성전을 순례하기 위해 각지에서 올라온 순례자들이 밤새도록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기 위해 성전 안에 남아 있던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자신들의 도착을 알리기 위해 성전 밖에서 외치면서 그들로 하여금 정성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손을 들고 신령과 진정으로 경배하고 찬양하라고 하자 성전 안에 있던 봉사자들은 성정을 순례하기 위해 찾아 온 순례자들을 향해 하나님의 성전과 임재가 있는 시온으로부터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빼앗겼던 법궤가 성으로 돌아오게 되자 그동안 중단 되었던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회복이 되고 거룩하게 구별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된 이스라엘 공동체의 연합을 기뻐하며 축복과 영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함을 보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전국 각지에서 성전 찾아온 순례자들이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들로 하여금 전심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라고 독려하자 성전 봉사자들은 창조주 하나님꼐서 그들에게 축복하시기를 축원하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빼앗겼던 법궤가 돌아오게 되자 다윗은 중단되었던 예배가 회복되고 거룩한 대제사장직을 위임받음과 같이 이스라엘 공동체가 최고 지도자들로부터 온 백성들에게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거룩하게 구별하심과 축복하심과 영원한 생명 주심이 이스라엘에 차고 넘친다고 찬양함을 보며, 우리가 구하는 모든 은혜와 축복은 다른 어떤 방법이나 수단이 아닌 오직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예배의 회복이며 이를 통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축복과 영생을 주심을 믿고 내가 있는 어디서나 어느 시간이나 거룩한 은헤를 향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스라엘 각지에서 성전을 찾아 온 순례자들이 밤새도록 성전에서 예배하며 봉사하는 성전 봉사자들에게 자신들의 도착을 알리며 성전 봉사자들이 영과 전리로 전심을 다해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라고 말하자 성전 봉사들이 순례자들을 향해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시온 성전으로부터 축복을 베푸실 것을 축원하는 것을 보며,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수행하면서 각자의 임무와 위치가 달라도 서로의 사역을 존중하면서 축복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축복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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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3:1 ]제 133 편
다윗 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 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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