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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26
제 26 장. 욥의 대답.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네가 힘 없는 자를 참 잘도 도와 주는구나 기력 없는 팔을 참 잘도 구원하여 주는구나.
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6/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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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26 | KR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욥기 26 · 6하나님 앞에는 음부도 드러나며 멸망의 웅덩이도 가리움이 없음이니라 · 7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 · 8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
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3/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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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3(화) “욥기 26:1~14″/ 작성: 김효진
25장에 나타난 빌닷의 발언은 매우 초라해보입니다. 빌닷의 옹색한 발언이 끝나자마자 욥은 빌닷을 향한 신랄한 비판을 쏟아놓았습니다. 네가 힘 없는 자를 참 잘도 도와 …
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5/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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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26장 해석, 빌닷에 대한 욥의 변론 – Daum 블로그
빌닷의 3차 공박에 대한 욥의 변론 욥26장 출처, 정리 *부제: “너는 누구에게 영감을 받아서 그런 말을 하는 거냐? ” (:4) ◑1. 빌닷의 발언에 대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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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3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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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7일] 욥기 26장 – 묵상과 기도 – 나눔과섬김의교회
날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라(욥기 26장)내용관찰오늘 본문은 크게 두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6절까지 ‘욥이 빌닷에게 하는 말’과 7~14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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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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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26장 – 교사용]
욥기 26장. 1. 친구들 중에 소발은 할 말이 없고, 빌닷도 짧게 끝냈다(25장). 욥의 대답은? 정말 길다, 혼자서 할 말을 다 해버렸다. 26장은 짧으나 그게 끝이 아니다.
Source: www.skhong.org
Date Published: 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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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욥기 26장
욥기 26장 · (욥 27:1), 욥이 또 풍자하여 이르되 · (욥 27:2), 나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욥34:5 · (욥 27: …
Source: kcm.co.kr
Date Published: 9/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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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욥기 26 장
-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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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1.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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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26
욥의 대답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네가 힘 없는 자를 참 잘도 도와 주는구나 기력 없는 팔을 참 잘도 구원하여 주는구나
3 지혜 없는 자를 참 잘도 가르치는구나 큰 지식을 참 잘도 자랑하는구나
4 네가 누구를 향하여 말하느냐 누구의 정신이 네게서 나왔느냐
5 죽은 자의 영들이 물 밑에서 떨며 물에서 사는 것들도 그러하도다
6 하나님 앞에서는 스올도 벗은 몸으로 드러나며 멸망도 가림이 없음이라
7 그는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
8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
9 그는 보름달을 가리시고 자기의 구름을 그 위에 펴시며
10 수면에 경계를 그으시니 빛과 어둠이 함께 끝나는 곳이니라
11 그가 꾸짖으신즉 하늘 기둥이 흔들리며 놀라느니라
12 그는 능력으로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며 지혜로 1)라합을 깨뜨리시며
13 그의 입김으로 하늘을 맑게 하시고 손으로 날렵한 뱀을 무찌르시나니
14 보라 이런 것들은 그의 행사의 단편일 뿐이요 우리가 그에게서 들은 것도 속삭이는 소리일 뿐이니 그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헤아리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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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1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2 네가 힘 없는 자를 참 잘 도왔구나 기력 없는 팔을 참 잘 구원하였구나 3 지혜 없는 자를 참 잘 가르쳤구나 큰 지식을 참 잘 나타내었구나 4 네가 누구를 향하여 말을 내었느냐 뉘 신이 네게서 나왔느냐 5 음령들이 큰 물과 수족 밑에서 떠나니
13(화) “욥기 26:1~14”
욥기 26:1~14
25장에 나타난 빌닷의 발언은 매우 초라해보입니다. 빌닷의 옹색한 발언이 끝나자마자 욥은 빌닷을 향한 신랄한 비판을 쏟아놓았습니다.
네가 힘 없는 자를 참 잘도 도와주는구나 기력 없는 팔을 참 잘도 구원하여 주는구나(2절)
욥은 마치 빈정거리듯이 빌닷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힘없는 자를 참 잘도 도와주었다고 하는 욥의 말은 빌닷의 발언이 더 이상 그 어떤 설득력도 없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빌닷은 욥의 세 친구 중 엘리바스에 이어 두 번째로 발언을 하곤 했는데 그는 엘리바스의 발언을 토대로 내용만 약간 바꾸어 자신의 논지인 것처럼 이야기할 따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엘리바스의 첫 번째 발언에서 엘리바스는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4:7)라고 말했습니다. 엘리바스는 가장 먼저 욥의 고난이 욥의 죄악에서 비롯되었음을 주장한 것입니다. 빌닷은 이 말을 근거로 한 걸음 더 나아가 “왕골이 진펄 아닌 데서 크게 자라겠으며 갈대가 물 없는 데서 크게 자라겠느냐”(7:11)고 말했습니다. 즉 빌닷은 아닌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고 욥을 죄인으로 몰아간 것입니다.
또한 엘리바스는 두 번째 발언을 통해 “(악인은) 헤매며 음식을 구하여 이르기를 어디 있느냐 하며 흑암의 날이 가까운 줄을 스스로 아느니라”(15:23)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빌닷은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의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18:5)라고 말했습니다.
이렇듯 빌닷은 엘리바스의 견해를 토대로 내용만 살짝 바꾸어 자신의 논지를 펼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빌닷의 모습은 그의 마지막 발언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자신의 세 번째 발언에서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유익하게 하겠느냐 지혜로운 자도 자기에게 유익할 따름이니라 네가 의로운들 전능자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으며 네 행위가 온전한들 그에게 이익이 되겠느냐”(22:2~3)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빌닷 역시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여자에게서 난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보라 그의 눈에는 달이라도 빛을 발하지 못하고 별도 빛나지 못하거든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이랴”(25:4~5)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빌닷의 발언은 거기까지였습니다. 애초에 자신의 논지가 없었던 빌닷은 더 이상 욥을 공박할 수 있는 자원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빌닷의 한계를 간파하고 있었다는 듯이 욥은 빌닷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매서운 공격을 퍼붓기 시작합니다.
지혜 없는 자를 참 잘도 가르치는구나 큰 지식을 참 잘도 자랑하는구나 네가 누구를 향하여 말하느냐 누구의 정신이 네게서 왔느냐(3~4절)
욥은 자신의 논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빌닷이 과연 ‘지혜’를 가르칠 만한 자격이 있는 것인지, 또한 ‘지식’을 내세울 만한 근거가 있는 것인지 되묻고 있습니다. 나아가 욥은 그러한 빌닷의 발언이 ‘누구의 정신’에서 왔는지를 날카롭게 파고들면서 빌닷의 입을 막아버렸습니다.
빌닷이 비록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지만 욥은 빌닷의 말은 더 이상 들을 만한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고 빌닷의 말을 잘라버리듯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에 관한 자신의 지식을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5절 이하에서 욥은 빌닷이 말하려고 했던 내용을 대변하듯, 그러나 빌닷보다는 훨씬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의 영들이 물 밑에서 떨며 물에서 사는 것들도 그러하도다 하나님 앞에서는 스올도 벗은 몸으로 드러나며 멸망도 가림이 없음이라 그는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5~7절)
빌닷이 이해하고 있는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은 ‘높은 곳’과 ‘광명’ 즉 하늘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이에 비해 욥은 그 범위가 ‘물 밑’과 ‘스올’에서부터 ‘허공’ 즉 광활한 우주공간에까지 미친다고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은 ‘구름’이 있는 대기권은 물론 ‘바다’와 ‘하늘’에도 펼쳐져있다고 욥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보라 이런 것들은 그의 행사의 단편일 뿐이요 우리가 그에게서 들은 것도 속삭이는 소리일 뿐이니 그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헤아리랴(14절)
욥은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이 가장 낮은 곳과 가장 높은 곳에까지 미치고 있을 뿐 아니라 구름을 비롯한 하늘과 바다까지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시지만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의 ‘단편’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단편’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차’는 ‘테두리의 끝’을 의미합니다. 즉 5~13절에 언급된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의 매우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욥이 ‘죽은 자의 영들’이 있는 ‘물 밑’과 ‘스올’까지도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영역으로 고백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욥은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면서까지 죽음보다 더한 고난과 고통 속에서 힘겨워했습니다. 그럼에도 욥은 그 죽음의 영역에서조차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이 미치고 있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욥의 고백은 자신이 겪고 있는 고난 가운데서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통치하고 계심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욥의 고백은 시편 23편의 시인이 고백하고 있는 내용과 다르지 않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1~2)
이 시편을 쓴 다윗은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인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함께 하고 계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친구들의 끊임없는 비난과 정죄 앞에서도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욥은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길고 긴 죽음의 터널조차 하나님께서 통치하고 계시는 영역임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자신의 처지와 형편을 맡겨드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님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평안할 때뿐 아니라 죽음이 드리워져 있는 것 같은 고난과 고통의 터널을 지날 때도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통치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오늘 하루도 우리의 삶을 온전히 맡겨 드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주님, 메마른 광야를 지날 때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도 여전히 우리의 좋은 목자가 되어주심을 참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가 처해 있는 고난과 고통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이 멀게만 여겨지는 그 시간이 오히려 주님의 은혜가 가장 가까이 머물러 있는 시간임을 기억하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래서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주님의 통치하심을 신뢰하며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잃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작성: 김효진)
냉수한그릇 창고
*부제: “너는 누구에게 영감을 받아서 그런 말을 하는 거냐? ” (:4)
◑1. 빌닷의 발언에 대한 욥의 비꼼 26:1~4
빌닷은 25장에서 욥이 미천한 주제에, 높으신 하나님 앞에
감히 자신의 의로움과 깨끗함을 내세우는 것이.. 어불성설이라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빌닷은, 하나님의 권능을 내세우며,
욥이 부당한 고통을 그냥 체념하고 받아들이라는 일갈이지요.
▶여기에 대해 욥은 야유로 대꾸합니다. 2~4절을 보세요.
1 욥이 대답하였다.
2 나를 그렇게까지 생각하여 주니, 고맙다. 나처럼 가난하고 힘없는 자를 도와주다니!
3 너는 우둔한 나를 잘 깨우쳐 주었고, 네 지혜를 내게 나누어 주었다.
4 그런데 누가, 네게 한 그런 말을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너는 누구에게 영감을 받아서 그런 말을 하는 거냐?
빌닷의 핀잔에 대해서 빈정거리는 투로 맞받아치는 것이지요.
그가 욥을 잘 지도해 주어서 고맙다고 비꼬면서, 자기 말을 덧보태기까지 합니다.
빌닷은, 사람(욥을 겨냥해서)을,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구더기와 벌레 같은 존재라고 했는데, 25:6
자기는 ‘가난하고,’ ‘힘없고,’ ‘우둔하기’까지 하다는 것입니다. 26:2~3
식당에 갔더니 반찬을 인색하게 아주 조금 줍니다.
그 때 반어법으로 “참, 푸짐하게도 준다!” 이렇게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빌닷이 욥의 비천함을 들먹거리자,
“그래, 그렇게 좋은 말 해주어서 고맙다. 그래, 나는 구더기 같고 벌레 같아.
네 말이 다 맞아. 어디 그 뿐인지 알아. 나는 가난하고 힘없고 우둔하기까지 해!”
뭐, 이런 식으로 비꼬는 것입니다.
▶그런데 4절 후반부에 보면 욥은
“너는 누구에게서 영감을 받아서 그런 말을 하느냐?”며 다그치는 모양이 중요합니다.
4:12~17절에서 엘리바스가 욥을 공박할 때도, 신비한 체험 운운한 적이 있습니다.
빌닷이 자신의 영적인 체험을 직접 언급한 적은 없지만
혹시 계시라도 받아서 자기에게 이 말을 한다면
욥은, 그런 빌닷의 영적인 교만을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입니다.
영분별은 중요합니다.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령을 받은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일4:1절은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영이든지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에게서 났는가를
시험하여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가 세상에 많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말입니다.
욥이 보기에, 빌닷의 말(25장)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이 심히 위대하니
너 구더기와 벌레 같은 욥아, 입 닥치고 잠잠히 있어라!” 25:6
이 말은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의 말씀이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5~14절의 말씀을 읽으면, 훨씬 더 쉽게 이해가 됩니다.
“빌닷, 네가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에 대해서 말했는데 나라고 모를쏘냐?
어디 내가 한 번 읊어 볼 테니 들어볼래?”
이 부분은, 이렇게 빌닷의 빈 말에 대한
욥의 반어법적인 대응으로 나온 말로 봐야 합니다. ↓
◑2. 욥의 우주론 찬양 26:5~14
이 부분에서 욥이 말한 내용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찬양 그 자체로서는 조금도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이러한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
빌닷에 대한 반발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이 우주만물의 운행은 물론이고
죽은 사람들이 가는 스올의 세계까지 주관하시는 분임을 역설합니다.
하늘과 땅, 바다, 지하 세계까지 다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다는 것이지요.
▶5~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주를 관장하시는 권능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5 죽은 자들이 떤다. 깊은 물 밑에서 사는 자들이 두려워한다.
6 스올도 하나님께는 훤하게 보이고, 멸망의 구덩이도 그분의 눈에는 훤하게 보인다.
7 하나님이 북쪽 하늘을 허공에 펼쳐 놓으시고, 이 땅덩이를 빈 곳에 매달아 놓으셨다.
8 구름 속에 물을 채우시고, 물이 구름 밑으로 터져 나오지 못하게 막고 계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9 하나님은 보름달을 구름 뒤에 숨기신다.
10 물 위에 수평선을 만드시고, 빛과 어둠을 나누신다.
11 그분께서 꾸짖으시면,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 흔들린다.
12 능력으로 ‘바다’를 정복하시며, 지혜로 라합을 쳐부순다.
13 그분의 콧김에 하늘이 맑게 개며, 그분의 손은 도망치는 바다 괴물을 찔러 죽인다.
하나님은 스올의 세계도 훤히 꿰뚫고 보시며(6절),
하늘을 허공에 펼쳐 놓으시고 땅덩이를 빈 곳에 매달아 놓으셨습니다(7절).
구름 속에 물을 채우셔서 비를 관장하시는데 빗물이 터지지 못하도록 막으십니다(8절).
보름달을 띄우시고(9절), 빛과 어둠을 나누십니다(10절).
하나님께서 한 번 성을 내시면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도 흔들립니다(11절).
하나님은 변화무쌍한 바다도 정복하시고
이 바다를 혼돈과 악으로 몰고 가는 바다 괴물 라합도 쳐부수십니다(12절).
하나님이 콧김을 한 번 훅 불면 흐렸던 하늘이 금방 맑게 개입니다(13절).
하나님은 혼돈과 변덕으로 가득 찬 우주 자연을
확실히 장악하고 계신 분이시라는 것이지요!
▶자, 이렇게 하나님의 권능을 찬양하던 욥이 14절에서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14 “그러나 이런 것들은, 그분이 하시는 일의 일부에 지나지 않고,
우리가 그분에게서 듣는 것도 가냘픈 속삭임에 지나지 않는다.
하물며 그분의 권능에 찬 우레 소리를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느냐!”
빌닷도 하나님의 주권을 언급했고 자신도 빌닷의 말을 이어
하나님의 그 엄청난 권능에 대해서 열거했지만
이것은 다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4절 후반부에서 욥이 “너는, 누구의 영감을 받아서 나를 가르치려느냐?”
하고 따진 말씀과 직결됩니다.
빌닷을 비롯한 친구들이
혹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하나님의 권능에 대하여 자기를 가르치려고 한다면
그것은 터무니없다고 일축하는 것이지요.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말이
하나님의 권능에 찬 ‘우레 소리’인데 ‘가냘픈 속삭임’과 잘 대조가 됩니다. :14
친구들이 영감을 받는다면, 그것은 순전히 이론적이고 추상적으로
하나님이 가냘프게 속삭이는 정도라면,
실제 하나님은
우레 소리 마냥 훨씬 더 크고 놀라우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너희가 자랑하는 신비 체험을 (4절, ‘영감’)
마치 전부인 것처럼, 자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영감의 진정성 여부는, 즉 하나님으로부터 왔는지 아니면 사탄에게서 왔는지는
그 열매를 통해 가려집니다.
예수님도 나무는 그 열매로 안다고 말씀하셨으며 마7:20
사도바울 역시 성령체험은 그 열매를 통해서 진실성이 입증된다고 했습니다. 갈5: 22~23
그렇다면 불의한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욥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너에게 한 수 가르친다.”는 언행은
진실한 것이 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상처를 쓰다듬고 위로하라고 말씀하시지
훈계하고 충고하라고 하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욥이 말한 것처럼
친구들의 영감은 하나님으로부터 겨우 <가냘픈 속삭임> 정도를 들은 것 밖에는 :14
되지 않습니다.
◑교훈 및 적용
저도 그런 적이 있지만 우리는
“내가 기도해보니…” 혹은 “내가 꿈에 환상과 계시를 받았는데…”
하는 식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접근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참 조심해야 할 태도입니다.
영감과 계시라는 이름으로 더 큰 고통을 안겨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자기가 신비한 체험이 깊다 하더라도
말 표현에는 그런 표현을 삼가는 것이.. 겸손해서 좋습니다.
‘주님에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서로 사랑하십시오!’ 이렇게 하지 말고,
그냥 ‘여러분, 서로 사랑하십시오!’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오래 갑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의 신비적 체험을 자꾸 드러내는 사람은.. 오래 못 갑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신비 체험을 모르는 것이 좋습니다. 알려고 하지 마십시오.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정말 성인(聖人)처럼 거룩하게 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그가 거룩하게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은 거룩한 줄 모르고 거룩하게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람이 지니고 있는 특징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그 사람들의 과거에 대한 어떤 것에도 상관없이
항상 처음처럼 새롭게 대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를 사람들 중에 가장 거룩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여,
한번은 수호천사를 불러 그에게 모습을 보이고
소원을 하나 꼭 들어주도록 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명을 받은 수호천사가 그에게 모습을 보이고
소원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런데 그는 소원이라고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글쎄 소원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그러나 그는 한사코 소원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할 수 없이 천사가 “네게 사람의 병을 치유하는 기적의 은사를 줄까?” 묻자,
병자를 치유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는 일이라면서 거절하였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죄인들을 회개시켜 바른 삶을 살도록 하는 힘을 줄까?” 묻자,
그런 일이라면 당신들 천사들이 해야 할 일이라며 거절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천사가 “그러면 너의 거룩한 삶을 사람들이 모범으로 삼아
존경할 수 있도록 해 줄까?” 하고 묻자,
그는 펄쩍 뛰면서 절대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교만해져서 사람들에게 오히려 해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소원이든 한 가지는 꼭 들어주어야 한다는 명을 받은 천사가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다며 난처해하자, 그가 말했습니다.
” 사람들이 저를 통해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살도록 해 주시되,
그 사실을 내가 모르도록 해 주십시오 .”
천사는 하나님께 가서 그대로 고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해줄 수 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시더니,
천사를 시켜 그 착한 사람에게 후광(後光)을 걸어 주도록 하였습니다.
(자기는 광채가 나는 것을 모르게 됩니다. 다른 사람만 보게 됩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이 가져야 할 능력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평소에, 일상에서 살아갈 때,
자신은 모르지만, 자기에게 후광과 같은 능력이 나타나서,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6월 27일] 욥기 26장
날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라
(욥기 26장)
내용관찰
오늘 본문은 크게 두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6절까지 ‘욥이 빌닷에게 하는 말’과 7~14절까지 ‘욥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 내용상 이렇게 2부분으로 나누어 집니다.
욥이 빌닷에게 하는 말 (1~6절)
먼저 1~6절까지 욥이 빌닷에게 하는 말을 보겠습니다.
성경 낭독하시는 분이 욥의 늬앙스를 잘 살려서 읽어 주셨죠~ 2절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네가 얼마나 힘이 세면, 이렇게 힘 없는 나를 참 자알~도 도와 주는구나” “네가 얼마나 기력이 넘쳐 났으면, 이렇게 기력 없는 나를 참 자알~~도 도와주는구나!” “네가 얼마나 똑똑하고 지혜로운지, 나 같은 지혜 없는 자를 참 자알~도 도와주는구나!”
무슨 늬앙스죠? 빌닷이 스스로 마음에 생각하기를 ‘나는 힘이 있다’ ‘나는 기력이 넘친다’ ‘지혜롭다’ ‘많이 안다’ 하는 것을 욥이 비꼬는 듯한 늬앙스입니다.
4절에 보시면 “네가 누구의 정신에서 나와서 누구를 향하여 말하느냐!”고 합니다. 여기서 ‘정신’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창2:7에서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고 할 때, 그 ‘생기’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니깐 욥의 말은 ‘빌닷, 너가 하는 말들이 도대체 누구! 어느 영으로 부터 받은 말을 하고 있는거냐?’ .. 쉽게 말해서 ‘지금 제 정신으로 하는 말이냐?’ 하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5절에서 ‘죽은 자의 영들이 물 밑에서 떨며 물에서 사는 것들도 그러하다’ 하면서 빌닷의 판단과 정죄로 인해 죽은 자나 산자나 모두 두려워 떤다고 말하죠~ 이것도 욥이 빌닷이 자기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에 대해 비꼬는 표현입니다.
욥의 주장 (6절)
욥이 빌닷에게 결론적으로 하는 말이 6절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스올과 멸망이 모두 드러날 것이다” 여기서 ‘멸망’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아바돈’이라는 단어인데, 스올과 아바돈은 모두 ‘음부’ ‘지하세계’ 정도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니깐 ‘언젠가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밝히 드러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런 의미입니다.
욥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 (7~14절)
이어서 욥은 7~14절까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열거합니다.
7절에 보시면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메다시며’라고 말씀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한 것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였던 것을 ‘하늘과 땅’을 만드셔서 아름다운 세상을 시작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리고 8절에 ‘물은 빽빽한 구름에 싸시며 그 밑의 구름이 찌어지지 아니하느니라’ – 요즘 비가 자주 오는데, 비가 억수로 내리는 날에 하늘을 가만히 보면.. 신기한 것이 ‘도대체 이 많고 무거운 비가 어떻게 저 하늘에 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아 홍수 때에 내린 그 많은 비는 하늘 어디에 저장 되어 있었던 것인가! 이런 엉뚱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 말씀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신묘막측한 지혜로써 창조하신 모든 것을 붙드시고 간섭하시면서 인도하시는 것을 말씀합니다. 9절 말씀도 그런 의미의 말씀입니다.
10~13절의 말씀은 이 세상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 날이 오면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이 피조세계를 심판하실 것이다는 말씀입니다.
욥이 내린 결론 (14절)
이와같은 욥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고백하면서 내리는 결론이 14절의 말씀입니다. 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욥26:14] 보라 이런 것들은 그의 행사의 단편일 뿐이요 우리가 그에게서 들은 것도 속삭이는 소리일 뿐이니 그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헤아리랴지금까지 욥이 열거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하나님에 대한 아주 단편적인 지식뿐이라고 고백합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그 보다 훨씬 더 크시고 광대하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그리고 그것을 인도하시고 성취해 나가시는 하나님, 그리고 이 모든 마지막에 모든 것을 심판하실 하나님!
우리는 그러한 크신 하나님 앞에서 누군가를 심판하고 정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욥은 빌닷이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서 마음대로 욥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반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욥의 주장이 맞습니다. 우리는 크신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가 얼마나 힘이 없고, 기력이 없으며, 가진 지혜와 지식이 없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보면서도 함부로 판단하거나 정죄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을 정직히 들여다 보면.. 우리는 내 마음의 왕좌에 앉아서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의 영혼을 판단하고 정죄하며 ‘지옥에 떨어져 죽은 존재’로 사형 선고를 내리며, 나 자신이 내 마음의 심판주로 서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러한 마음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아무도 모르고 우리 자신만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잠언서 기자는 오늘 본문 6절의 고백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씀합니다. 잠언 15장 11절입니다.
[잠15:11] 스올과 아바돈도 여호와의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 사람의 마음이리요스올과 아바돈이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어 다 드러나는 것 처럼, 언젠가 우리의 마음도 하나님 앞에서 다 드러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결단과 적용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땅에 살면서 자기와 남을 기만하고 이 모든 죄된 생각과 마음을 속에 감추며 살다가 하나님 앞에 서서 모든 것이 밝혀지고 벌거벗겨 지기 전에 우리는 이 땅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이 문제를 해결할 답을 주셨지요. 우리는 날마다 우리 자신을 그 앞에 세워야 합니다. 다름 아닌 그리스도 십자가 앞에 우리 자신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앞에 내가 입고 있는 나의 수치를 가리는 무화과나무로 만든 옷을 벗어 던지고, 어린양의 피로 씻어 정결케 된 가죽옷, 그리스도로 옷 입는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그날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밝혀 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며 판단과 정죄가 아닌 ‘긍휼의 마음’ ‘나와 같은 은혜가 필요한 사람’으로 여기며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기를 너무 좋아하며 그러면서 희열을 느끼는 이들로 넘쳐 납니다. 기사를 통해서 누가 갑질을 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입을 모아 신상을 공개하라 하고, 공개적인 망신을 줘야 한다고 소리칩니다. / 물론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성난 군중으로 인해 법과 질서가 흔들려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나눔과섬김의교회 성도님들은 영적으로 깨어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을 가지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세워나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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