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귀걸이 를 한 소녀 | 베르메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가 걸작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9826 투표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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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제임스 얼(James Earle)
영상: 테스 마틴(Tess Mar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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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 나무위키:대문

미국의 소설가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본 작품을 주제로 <진주 귀고리 소녀>라는 소설을 1999년 출간했다. 베르메르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것이 많지 않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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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5/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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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숨겨진 비밀은? – 네이버 블로그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미어르 Johannes Vermeer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Het meisje met de parel’ ‘북유럽의 모나리자’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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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6/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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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베르메르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 신동아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의 1665년 작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이 작품을 두고 누군가는 “회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소녀”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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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hindonga.donga.com

Date Published: 1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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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걸이 소녀의 미스터리 – 브런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빛의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 1632-1675)’의 대표 작품이다. 페르메이르는 ‘베르메르’로 더 알려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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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runch.co.kr

Date Published: 10/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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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 넷플릭스 – Netflix

스칼렛 요한슨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역할을 맡았으며, 콜린 퍼스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로 출연한다. 상세 정보. 오프라인 시청. 저장 가능 콘텐츠.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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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etflix.com

Date Published: 1/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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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 다음영화

“더 이상 감추지 말아요” 아름다운 유화 뒤에 가려진 치명적인 사랑!’북유럽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속 소녀의 아름다운 두 눈과 보일 듯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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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ovie.daum.net

Date Published: 9/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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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 Sciencetimes – 사이언스타임즈

영화의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350년 전인 1665년, 네델란드 남부의 델프트(Delft)입니다. 주인공 그리트는 하이틴 소녀의 나이지만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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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ciencetimes.co.kr

Date Published: 6/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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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가 걸작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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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진주 귀걸이 를 한 소녀

  • Author: 디스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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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1. 5.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qV2eoi5Vokw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숨겨진 비밀은?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미어르 Johannes Vermeer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Het meisje met de parel’ ‘북유럽의 모나리자’로 불리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명화 중 하나다.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살짝 고개를 돌려 상대를 응시하는 듯 한 작품 속의 소녀는 신비롭고 고혹적인 자태로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특히, 페르미어르가 즐겨 사용하던 노랑과 파랑의 의상과 헤드 스카프, 소녀의 귀에 걸린 진주가 영롱하게 빛을 내면서 이국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해마다 약 4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소녀를 직접 보기 위해 네덜란드의 덴 하흐에 있는 마우리츠하우스 Mauritshuis를 찾고 있다.

작품의 실재 모델이 누구인지 콜린 퍼스와 스칼렛 조핸슨 주연의 동명 영화처럼 화가와 모델과의 로맨스를 궁금해하는 이들도 있지만, 특정 인물의 초상화가 아니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이 작품 또한 페르미어르가 활동하던 17세기 네덜란드 골든 에이지 시기의 회화에서 유행하던 과장된 얼굴 표현이나 유형을 묘사한 작품인 ‘트로니 Tronie’ 장르 중 하나다. 페르미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그중에서도 이국적인 취향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힌다.

요하네스 베르메르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마법에 걸린 고요함

나치를 조롱한 세기의 僞作

“베르메르를 잃었지만 메이헤른을 발견했다”

‘미인도’ 진위 논란

검찰은 2016년 12월 19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소회의실에서 고 천경자 화백 ‘미인도’ 위작 논란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25년간 위작 논란이 일었던 천 화백의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뉴시스]

푸른 터번 vs 진주 귀고리

요하네스 베르메르 ‘우유 따르는 여인’, 1660년. [네덜란드 국립미술관]

사라진 눈썹과 무모증 피부 질환

● 1965년 충남 예산 출생

●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 고려대 대학원 문화유산학협동과정 졸업(박사)

●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 저서 : ‘그림에 나를 담다’ ‘손 안의 박물관’ ‘한국의 국보’ 등

소녀의 눈은 크고 맑다.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는 순간, 진주 귀고리가 쨍하고 투명하게 빛난다. 동시에 살짝 벌린 입술에서 무언가를 꼭 말해야겠다는 애절함이 밀려온다. 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저 소녀의 말을 꼭 들어줘야만 할 것 같다. 그런데 터번으로 머리를 동여맨 소녀는 놀랍게도 눈썹이 없다. 혹시 여기에 무슨 비밀이 숨어 있는 건 아닐까.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의 1665년 작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이 작품을 두고 누군가는 “회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소녀”라고 한다. 또 누군가는 “북유럽의 모나리자”라고 한다. 일본의 한 미술상은 이 작품을 2000억 원 정도로 평가하기도 했다.베르메르 그림은 대부분 일상의 순간을 아름답고 평화롭게 포착했다. 그 일상을 투명한 빛이 감싸 안고 있다. 그의 그림들 곳곳엔 고요와 적막이 흐른다.‘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보자. 라피스 라줄리(선명한 청색 보석)의 색조가 진하게 묻어나는 푸른 터번, 노란색 상의, 반짝이는 진주 귀고리, 베르메르 특유의 빛의 표현….이 그림은 은근히 동적(動的)이다. 베르메르는 얼굴을 돌린 모습을 스냅사진 촬영하듯 순간적으로 포착했다. 화가의 감각이 빼어나다. 이러한 포즈는 이 작품의 주요 덕목이다. 그렇기에 현대적이고 세련됐다. 17세기에 이렇게 동적인 포즈를 포착해 인물화로 구현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소녀는 얼굴을 돌려 뒤를 바라본다. 맑고 커다란 눈망울에 살짝 벌린 입. 다소 우울한 눈빛에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하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무척 궁금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 수는 없다. 베르메르는 이에 대한 단서를 전혀 남겨놓지 않았다.색감 또한 매혹적이다. 특히 푸른색 터번과 노란옷의 대비가 두드러진다. 푸른 터번에선 라피스 라줄리의 색조가 진하게 묻어난다. ‘꿈과 같이 조용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마법에 걸린 듯한 고요함’이 화면에 가득하다. 진주 귀고리 소녀의 눈망울은 ‘모나리자’ 눈빛보다 더 매혹적이다.네덜란드 헤이그에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이 있다. 그리 크지 않지만 알찬 미술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헤이그에 가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가는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여기에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베르메르는 작은 운하도시 델프트에 살면서 그림을 그렸다. 17세기 네덜란드는 해양문명의 황금기를 구가하면서 미술도 성행했다. 당시 암스테르담에만 화가가 무려 700여 명이나 활동했고, 1600~1800년 사이 500만~1000만 점의 그림이 생산됐다고 한다. 귀족이나 교황보다는 일반 시민들의 그림 주문이 많았고, 그렇다 보니 일상의 풍속화가 유행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그런 분위기에서 베르메르는 일상의 모습을 화폭에 옮겼다. 하지만 베르메르는 43세의 젊은 나이에 부인과 10명의 자식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현전하는 그의 작품은 불과 30여 점. 베르메르는 곧바로 세상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갔다.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베르메르는 이제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다. 그가 그린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헤이그의 자랑이 됐다. 작품도 적고 별로 알려진 바가 없어 베르메르를 “수수께끼 화가”라고 하는데도 베르메르와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어떻게 유명세를 탄 것일까.그리 존재감이 없던 베르메르가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19세기 후반 연구가 진행되면서부터다. 이에 힘입어 20세기 베르메르의 그림들이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했다. 1930년대엔 특히 더 화제였다. 베르메르의 새로운 작품들이 잇따라 발굴됐기 때문이다.제2차 세계대전 유럽전쟁 직후인 1945년 5월, 연합군은 오스트리아 아우스제 소금광산에서 나치가 숨겨둔 미술품을 대량 발견했다. 나치 2인자 헤르만 괴링의 수집품도 있었고, 거기서 ‘간음한 여인과 그리스도’라는 작품이 나왔다. 작품엔 요하네스 베르메르란 서명이 들어 있었다. 수집 경위를 적어놓은 기록에 따르면, 1942년 괴링이 중개인을 통해 판 메이헤른(1889~1947)이라는 화상 겸 화가로부터 구입한 것이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미술계는 “베르메르의 새로운 작품”이라며 흥분했다.하지만 네덜란드 경찰은 메이헤른을 나치 협력죄로 체포했다. 나치에게 그림을 판 것은 나치에 부역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유에서였다. 경찰은 메이헤른이 베르메르 작품을 어떻게 입수했는지 추궁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메이헤른은 “그 작품은 내가 그렸다”고 실토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메이헤른은 “1930년대 새롭게 발견돼 주목받은 베르메르의 그림은 모두 내가 그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충격적인 발설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놀라운 내용이다 보니 사람들은 메이헤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메이헤른이 나치 협력죄로부터 벗어나려 꾸며낸 말이라고 여겼다.사법 당국 또한 메이헤른을 믿지 않았다. 1945년 7월 네덜란드 국립미술관은 한술 더 떠 “진작(眞作)임을 증명할 수 있다”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메이헤른은 답답했다. 메이헤른은 이렇게 주장했다.“‘간음한 여인과 그리스도’는 내가 캔버스의 안료를 벗겨내고 그린 것이다. 그림을 긁어내면 원래 그림이 드러날 것이다.” “그 원래 그림을 내게 판 미술상도 다 알고 있다.”메이헤른의 실토가 계속 이어지자 경찰은 현미경 조사를 실시했고 실제로 밑그림 흔적이 드러났다. 메이헤른의 말대로 위작이었다. 그러나 사법 당국과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이런 상황에서 메이헤른은 자신이 가짜를 그렸다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했다. 그는 옥중에서 직접 새로운 위작을 그려 입증하고자 했다. 결국 메이헤른은 2개월 만에 ‘학자들 사이에 앉은 그리스도’란 제목의 그림을 완성했다. 1930년대 새롭게 발굴됐다는 베르메르 그림과 분위기, 색감, 붓 터치 등이 거의 흡사했다. 사법부는 위작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 사람들도 가짜임을 비로소 인정하기 시작했다.희대의 위작 사건이었다. 세상은 미술계에 냉소를 쏟아냈다. “우리는 베르메르를 잃었지만 대신 판 메이헤른을 발견했다”라고. 가짜를 제대로 가려내지 못한 미술계를 조롱하는 것이었다. 메이헤른은 나치에 부역한 매국노에서 침략자 독일을 감쪽같이 속여버린 영웅으로 취급받기도 했다. 메이헤른은 사기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나치 협력 혐의는 무죄로 판결 났다.위작 사건의 후유증은 만만치 않았다. 메이헤른의 위작을 구입한 사람들은 현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소장한 작품의 값이 떨어지고, 안목과 자존심에 치명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재판 결과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메이헤른은 왜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을까. 사실은 메이헤른도 화가였다. 그는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았다. 미술계는 내 작품을 과소평가했다. 나의 존재를 알리고 미술계와 세상에 복수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메이헤른은 1932년부터 베르메르의 그림을 탐구했다. 작품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 아이템을 찾아내 비평가들의 평가를 참고하면서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옛날 캔버스 그림을 찾아내 물감을 벗겨내고 거기 그림을 다시 그렸다. 그렇게 그린 뒤 오븐에 굽고 균열과 흠집을 내고 옛날 분위기로 꾸며 ‘엠마오의 그리스도와 제자들’ ‘엠마오의 저녁 식사’와 같은 제목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그러자 미술사가와 평론가들은 “베르메르의 그림이 발견됐다. 놀라운 그림이다”라며 극찬했다. 메이헤른이 1935~37년에 그린 ‘엠마오의 저녁 식사’는 1938년 로테르담 보이만스 미술관이 54만 길더에 구입해 지금도 소장하고 있다. 괴링이 부인과 함께 사들인 작품 중 11점도 가짜로 확인됐다. 결과적으로 나치에 부역한 것이 아니라 나치를 제대로 조롱한 셈이 됐다. 이러한 소동을 겪으며 베르메르는 대중의 마음속에 완전하게 각인됐고 ‘우유를 따르는 여인’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등도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위조범은 “내가 가짜를 그렸다”고 하는데, 세상 사람들과 전문가들은 “진짜”라고 부인한다. 베르메르 위작 사건은 이처럼 매우 특이한 경우였다. 그런데 국내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진 바 있다. 천경자(1924~2015)의 ‘미인도’ 진위 논란이다. 요약하면, 천경자의 ‘미인도’를 두고 국립현대미술관과 미술계는 “진짜(천경자가 그린 작품)”라고 주장하는데 화가인 천경자와 유족들은 “가짜” 라고 반박하는 형국이다. 미인도 논란의 개요는 이렇다.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계엄사령부가 김재규의 소장 미술품을 압수했다. 여기에 ‘미인도’가 포함돼 있었다. 압수 미술품은 1980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이관됐고, 1990년과 1991년 도록과 전시를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그러자 천경자는 “그 미인도는 내가 그리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술계가 발칵 뒤집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진짜가 맞다”며 화랑협회에 감정을 요구했다. 1991년 4월 화랑협회와 감정 참여 전문가들은 세 차례 감정 결과 모두 “진짜”라고 판정했다. 그러나 논란은 그치지 않았다. 생존 작가가 “내가 그리지 않았다”고 하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이 “천경자가 그린 것”이라고 하는 특이한 상황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지금까지 “진짜”라는 견해를 견지하고 있다.그러던 중 1999년 수감 중이던 그림 위조범 권춘식이 “미인도는 내가 그렸다. 그러니 미인도는 가짜다”라고 말했다. 세월이 흘러 2015년 천경자가 타계했고, 그 후 권춘식은 다시 입을 열어 “미인도는 내가 그렸다. 작가에게 미안하다. 용서를 구한다”고 했다. 그러나 2016년 다시 미인도 진위 논란이 일었고, 그해 3월 권춘식은 “나는 미인도를 그린 적이 없다” “감형 받고 싶어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그러곤 한 달 뒤 다시 “미인도는 내가 그린 게 맞다”고 횡설수설했다.2016년 4월 천경자 유족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전·현직 관계자들을 사자(死者)명예훼손, 저작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고발했다. 문제가 된 작품의 진위를 다시 가리자는 것이었다. 그 소송의 와중에도 견해차로 인한 논란은 그치지 않았지만, 검찰은 “천경자 그림이 맞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하고, 전문가 그룹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화가는 자신의 작품을 모두 완벽하게 알아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베르메르 위작 사건처럼 참으로 특이한 경우였다.1940년대 메이헤른 사건은 세계 미술사에서 최대의 위작 사건으로 꼽힌다. 메이헤른은 세상을 조롱했고 세상은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 메이헤른은 특히 최고의 전문가들을 완벽하게 속였다. 옥중과 법정에서 진행된 메이헤른의 위작 시연은 ‘세기의 퍼포먼스’였다는 얘기를 듣는다. 상처와 후유증은 컸지만, 사람들은 베르메르라는 이름을 완전히 기억하게 됐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회자되던 베르메르가 비로소 대중화에 성공한 것이다.그 가운데 가장 인기를 끄는 작품이 ‘우유를 따르는 여인’과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다. 두 그림의 공통점은 고요함과 적막한 분위기, 그리고 빛의 표현이다. 사람들은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보면서 많은 것을 궁금해했다. 저 소녀는 실존 인물일까 아닐까. 이런 궁금증은 결국 소설과 영화 ‘진주 귀고리 소녀’를 탄생시켰다. 1999년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소설 ‘진주 귀고리의 소녀’를 내놓았고, 이 작품은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2003년엔 피터 웨버 감독이 영화를 만들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진주 귀고리 소녀는 대중의 스타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이 무렵까지만 해도 이 작품을 ‘푸른 터번의 소녀’로 부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소설과 영화를 계기로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라는 이름이 사람들의 마음에 온전하게 자리 잡게 됐다. 작품 이름을 둘러싼 변화는 그 작품의 일생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푸른 터번이 주는 감성과 진주 귀고리가 주는 감성은 분명 다르다. 소녀의 귀에 걸려 있는 진주 귀고리는 어두운 배경 속에서 딱 한 점으로 명징하게 빛난다. 푸른 터번에 비해 응집력과 발산력이 훨씬 더 강렬하다.피부과 전문의인 이성락 전 가천대 총장은 그림을 매우 좋아한다. ‘조선시대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 병변(病變) 연구’라는 미술사 박사 논문을 쓰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이 전 총장은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에 관해 놀라운 점을 하나 찾아냈다. 소녀 얼굴에서 눈썹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림을 눈여겨보면, 그의 지적대로 소녀는 눈썹이 없다. 대체 어찌된 일일까. 이는 또 다른 추론과 상상력을 유발한다. 그러고 보니 이 소녀는 머리를 터번으로 감쌌다. 그냥 터번을 걸친 것이 아니라 머리를 완전히 감싼 것이다. 왜 그랬을까. 혹시 머리카락이 없는 것은 아닐까.베르메르의 다른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 풍성한 머릿결과 눈썹을 갖고 있다. 그런데 진주 귀고리 소녀에게서만 눈썹이 보이지 않는다. 이 전 총장은 피부과학적으로 접근해, 소녀가 난치성 희귀 질환인 전신 무모증(全身 無毛症)을 앓고 있다고 봤다. 그는 이렇게 추론한다.“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다고는 하지만 성장기 소녀가 겪어야 할 심리적 부담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흥미롭고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저 소녀의 애잔한 눈망울은 무모증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추론이지만 개연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더 나아가 그 소녀가 당시 실존 인물이었을 가능성도 농후하다.사람들은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만큼이나 다양하게 변주하고 패러디한다. 왜 그런 것일까.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면서 무언가 말하려고 하는 저 소녀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 소녀에게 무언가를 답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진주 귀고리 소녀는 보는 이를 자신의 화면 속으로 불러들인다. 관객이 소녀를 향해 무언가 말을 하도록 호소한다. 그 호소력 덕분에 그림은 늘 신선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그 대답에 이제 눈썹 얘기를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어린 소녀가 겪었을 무모증의 서글픔.어느 전시 기획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한국에 초대할 수 있다면 완전 대박일 텐데….”당연한 말이다.

진주 귀걸이 소녀의 미스터리

소설과 영화로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법한 작품이죠. 베르메르로 더 많이 알려진,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입니다. 원문은 어플 속 작가들의 미술관 [Sharp Spoon]에서 볼 수 있습니다.

원문보기: http://sharpspoon.kr/interview_detail?id=41

‘영롱한 눈빛’, ‘푸른색 터번’, 그리고 ‘진주 귀걸이’라는 세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그림 너머 관람객을 바라보는 듯한 영롱하고도 오묘한 눈빛, 시선을 사로잡는 푸른색 터번, 그리고 반짝이는 귀걸이가 어떻게 한 번 보고 잊힐까. 그런 마음을 더 각인시키려는 듯 그녀를 위한 조명이 켜졌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이다.

@‘Girl with a Pearl Earring’ to draw crowds(2013.10.23), Hurriyet Daily News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빛의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 1632-1675)’의 대표 작품이다. 페르메이르는 ‘베르메르’로 더 알려진 17세기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그는 빛과 안정적인 구도로 그가 바라보는 세상을 작품에 표현했다.

페르메이르는 ‘풍속화가’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화가이다. 그만큼 일상의 아름다움을 작품에 남겼으며, 뛰어난 실력으로 인정을 받아서 화가로서 유명세를 얻었다. 그러나 당시의 평균 자녀 수를 훌쩍 뛰어넘은 11명의 자녀를 그림으로만 먹여 살리기엔 어려웠다. 이에 갤러리스트나 숙박업 등 다양한 일을 하며 가족을 책임졌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니 그가 매우 고단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어쩐지 그의 그림은 삶의 고단함 대신 따스한 빛과 시선으로 바라본 평범한 일상이 특별하게 표현되어있다.

당시 그가 그림을 그렸던 17세기의 델프트는 왕이나 성직자의 통치를 받지 않았다. 이에 예술가들은 새로운 후원자를 찾아야 했고, 상인 계급과 같은 새로운 후원자들이 등장한다. 후원자들은 자신을 미술작품에 담고 싶어 했기에, ‘바로크 시대’의 역동적이면서도 명암의 대비를 극대화시키는 특징을 가진 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이러한 그 시대의 대표 화가로 렘브란트가 있다.

좌) 렘브란트 하르먼손 반 레인 <야경>, 우)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우유 따르는 여인>

렘브란트의 <야경>과 페르메이르의 <우유 따르는 여인>을 비교해보면 그 시대의 특징과 두 작품의 차이가 뚜렷하게 보인다.

먼저 두 작품 모두 명암대비를 통해 작품 내에서 선택과 집중을 했다. 관람객은 화가의 의도에 따라 조명이 켜진 밝은 부분에 시선을 따라가는데, 사실적인 질감과 인물의 표정에 분위기가 실감 난다.

그런데 두 대가가 그린 인물이 매우 다르다. 렘브란트가 당시의 군인들을 대상으로 그렸다면, 페르메이르는 한 여인을 그렸다. 당시 화가들은 주로 종교/ 신화/ 역사/ 초상화 위주의 작품을 주로 그렸는데, 페르메이르가 그린 모델은 어쩐지 그에 비해 너무 평범하다. 렘브란트가 여러 색을 조화롭게 사용했다면, 페르메이르는 파란색과 노란색을 강렬하게 등장시켰다. 또한 렘브란트의 <야경>이 시끌벅적하면서도 무언가 분주한 느낌이라면, 페르메이르의 <우유 따르는 여인>은 고요하고 평화로우며 따뜻함이 묻어난다. 따뜻한 햇살이 창문을 타고 들어온 어느 날에 우유를 따르는 여인의 모습, 페르메이르는 종교와 신화 속 주제가 아닌 일상을 남겼다.

이렇듯 페르메이르의 대상은 당시의 작가들과는 다르게 ‘부’와 관련이 없는 인물들을 주로 그렸다. 우유를 따르는 여인이나 피아노를 지도하는 인물 등 왕과 귀족같이 힘을 행사하는 이들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에선 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따뜻한 빛을 받고 있다. 그들이 ‘고상하다’라고 불리는 인물은 아니었을지라도, 그들 스스로의 빛이 작품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다. 페르메이르는 이들을 아무런 걱정이 없는 것처럼 평온한 분위기로 담았다. 네덜란드 서민들의 평범한 삶을 빛이 절정인 순간에 섬세하게 묘사한 것이다.

그렇다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소녀’는 누구일까.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

그가 선택한 그림이 ‘부’를 가져다주는 그림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그의 삶 역시 모델을 구할 만큼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이에 많은 평론가들은 그의 아내, 딸, 혹은 하녀로 추정 하고 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그래서 더 신비하다. 누군지 알 수 없는 한 소녀가 작품 속에서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작품 밖을 응시하고 있다. 어두운 배경은 소녀의 눈동자를 밝게 부각하는데, 아무런 장식이 없는 배경 덕분에 그 눈동자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가만 보니 동작도 특이하다. 뒤돌아 서있는 건지, 돌아서 바라보는 자세인지 오묘하다. 빛과 주름으로 추론해보아 몸을 옆으로 두고 고개를 돌린 것 같은데 ‘확실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그저 당시로서는 특이한 동작이라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다. 어둡고 단조로운 배경이 동작의 입체성을 강조했다.

아랍풍의 파란색 터번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당시 네덜란드는 교역의 중심지였다. 파란색의 터번은 그 시대를 대변하고 있으며, 동시에 소녀를 더욱더 신비롭고 이국적으로 보이게 한다. 여기에 더해 그녀가 착용한 진주 귀걸이는 마치 부의 상징을 보여주는 듯하다.

진주 귀걸이 덕분에 그녀의 얼굴은 조명을 받는 것처럼 밝고 화사하다. 반짝이는 눈동자와 귀걸이, 그리고 붉은빛이 감도는 입술은 생기가 있다. 확대해서 바라보니 몽환적인 분위기가 매우 신비롭다.

마치 소녀의 눈동자는 어느 각도에서 봐도 아이컨텍을 하는 듯하다. 응시하는 시선과 살짝 벌린 입술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느낌까지 준다.

페르메이르는 세부묘사를 과감하게 생략했다는 평을 받는 작가 이다. 그 예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 눈썹을 그리지 않고 속눈썹을 최소화한 것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생략은 ‘왜?’라는 물음으로 소녀를 더 신비롭게 만들었으며, 사라진 눈썹은 그녀에게 ‘북유럽의 모나리자’ 또는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는 별명도 붙여줬다.

눈썹이 없음에도 커다란 두 눈을 바라보느라 어색한 느낌이 전혀 안 든다. 흥미로운 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처럼 뚜렷한 윤곽선이 없는 것이다. 이것을 스푸마토 기법(회화에서 색깔 사이의 경계선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부드럽게 하는 음영법)이라고 부르는데, 윤곽선 없는 입술이 복잡 미묘한 표정을 완성시켰다. 실제 살아있는 사람의 표정을 보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그녀의 표정은 묘하게 미소 짓거나, 놀랐거나, 마지막 인사를 하는 듯 아리송하다.

오묘한 표정에 반해 입술 옆의 흰색 점은 매우 선명하다. 무언가 얘기하는 듯한 입술 옆으로 흰 점을 찍어서 반짝이는 느낌을 강조했다. 흰 점으로 강조하는 건 다른 작품에서도 종종 만날 수 있는데, 빛의 원리를 잘 아는 만큼 잘 이용했던 작가였다.

입술만 봐도 그의 특징이 도드라진다. 페르메이르는 붉은 입술 안에서도, 그 안에 빛에 반사된 모습과 안쪽의 더 붉게 변한 색상, 그리고 자연스러운 그림자까지 어색함이 없이 표현했다. 단순해 보였던 그의 작품을 가까이서 볼 수록 감탄하는 이유이다.

이 작품의 제목에도 있는 ‘진주 귀걸이’도 주목해보자. 진주 귀걸이를 확대해보니 굉장히 맑고 투명하다. 소녀의 얼굴에 들어왔던 화사하고도 강한 빛이 진주 귀걸이도 함께 비춘 것 같다. 그 빛이 어찌나 강했던지 굵은 흰색 점으로 표현되어 있다. 진주 귀걸이 아래로는 흰색 옷도 반사되었다. 사실적인 묘사에 마치 진짜 같은 착각에 빠져본다.

실제로 페르메이르는 이만한 크기의 진주 귀걸이를 살만큼 형편이 좋지 않았다. 이에 대해 작은 귀걸이를 과장해서 그렸다는 의견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귀걸이를 진주 귀걸이로 대체해서 그렸다는 의견도 있다. 어떤 주장이 사실이건, 작품 속에서는 진주 귀걸이로 소녀가 더 화사하게 도드라졌으니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렇듯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모두를 알쏭달쏭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깊이 있는 눈과 표정의 생동감, 응시하는 시선, 그리고 파랑/ 노랑/ 빨강의 조화는 참 우아하면서도 세련되었다. 그리고 작품 안에서 작가의 숨겨진 표현 방법들은 그 신비로움을 더욱더 부각했다.

소녀는 이 모든 것이 재미있다는 듯, 그녀를 궁금해하는 이들을 그저 응시하고 있다.

현재 이 작품은 네덜란드의 마우리츠호이스(Mauritshuis)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이곳에서는 이 작품 외에도 페르메이르의 다른 작품들을 함께 소장하고 있다.

페르메이르는 43살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가난으로 인한 질병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따라서 그는 생전에 40점 정도만 그렸으며, 전해지는 작품으로는 32~36점(전문가마다 의견이 다르다)이다.

좌)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 우) 한 반 메헤렌의 위작

여담으로, 그와 관련해서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만큼이나 몇 가지 이슈가 더 있다.

대표적으로 도난과 위작사건이다. 먼저 도난사건으로는, 그의 작품의 희소성 때문에 정치적 사건의 인질이 되는 것이다. 몇 없는 그의 작품을 지키려고 정부가 최대한 협상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작품으로는 가 있다. 이 작품은 1990년 가드너 미술관에서 경관으로 위장한 강도에 의해 도난당했다.

위작사건도 유명한데, 네덜란드의 화가 한 반 메헤렌(Han van Meegeren, 1889-1947)의 일화이다. 그는 2차 세계 대전 후 아돌프 히틀러에게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팔아넘겨서, 나치에 협력한 죄로 체포되었으나 이내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바로 그가 팔았던 작품이 그가 그린 위작이었던 것이다. 너무나도 페르메이르의 그림과 비슷해서 아무도 믿지 않았고, 이를 밝히기 위해 법정에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림을 그렸다. 결국 위작을 그려서 판 것이 밝혀지며 히틀러를 속인 국민 영웅으로 칭송받기까지 했다.

이렇듯 페르메이르는 그 신비로운 작품들만큼이나 아직까지 안타까운 사건에도 연루되며 여전한 존재감을 과시 중이다. 그리고 네덜란드 정부에서는 몇 없는 그의 작품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

따스한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며 빛을 통해 그 마음을 화폭에 담은 화가, 페르메이르.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남긴 걸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이 작품만큼 책과 영화로도 만들어졌을 정도로 여전히 많은 이의 호기심 안에서 사랑과 관심을 한 가득 받고 있다.

그가 담은 소녀는 여전히 미스터리이다. 그러나 감히 짐작해보면, 그는 매우 따스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며 행복했을 것이다. 작품을 통해 화가의 따사로운 눈길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행복으로 전해지길, 함께 바란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 Sciencetimes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초상화는 아마 루브르박물관에 걸려있는 다빈치의 <모나리자>이겠지요. 값을 매긴 적이 없지만 경매 시장에 나온다면 종전의 기록을 죄다 갈아치울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필자는 그 값비싼 ‘귀부인’보다는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가 더 좋습니다. 수수하고, 생기가 넘치고, 정감이 느껴져서 참 좋아하는 그림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 베르메르

이 그림을 소재로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1999년에 썼던 소설이 2003년에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오자 필자는 냉큼 사다가 읽었습니다.

베르메르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화가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화가들은 이른바 고흐, 고갱, 세잔,…으로 대표되는 ‘교과서에 실린 화가들’이 대부분입니다. 베르메르는 교과서에 나오지도 않았고, 미술사의 주류에도 속하지 않았습니다.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화가인 렘브란트(1606~1669)보다는 25년 아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을 소재로 한 소설과 영화가 국내에 나오자 우리에게도 그 이름이 꽤 알려집니다. 영화는 2003년에 개봉되었는데 콜린 퍼스가 베르메르 역으로 스칼렛 요한슨이 그리트 역으로 출연했습니다. 필자는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도 보았습니다. 덕분에 베일에 가려졌던 화가 베르메르(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얀 페르메이르, Johannes Vermeer, Jan Vermeer; 1632~1675)의 삶을 조금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서 말입니다.

영화의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350년 전인 1665년, 네델란드 남부의 델프트(Delft)입니다. 주인공 그리트는 하이틴 소녀의 나이지만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베르메르의 집에 하녀로 취직을 합니다. 그곳에서 빛이 가득 넘쳐나는 아뜰리에에서 말없이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만났습니다. 그를 통해 소녀는 내면에 숨겨진 그림에 대한 감각이 깨어납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애뜻한 정도 느낍니다. 화가는 소녀를 모델로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리트를 손아귀에 넣으려는 부유한 상인, 남편과의 관계를 의심하는 주인 마님의 질투로 갈등은 고조되고…. 결국 소녀는 쫓겨나고, 그녀가 떠난 자리에는 초상화만 하나 남습니다. 나중에 화가는 그녀에게 그림의 소품으로 썼던 진주 귀고리와 푸른 천을 선물로 보내줍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이야기지요. 물론 작가의 소설적인 상상력으로 꾸며낸 허구랍니다.

베르메르의 그림은 사람을 잡아 끄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오는 창가에 선 인물이나, 아주 정교하게 그려진 소품들, 그리고 생생한 원근감은 다른 화가들의 작품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결정적인 특징입니다. 마치 사진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지요.

특히 실사(實寫)를 보는 듯한 정교한 원근감의 표현은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라는 광학 기구 덕분에 가능했지요. 영화에도 등장하는 이 광학 기구는 아마도 레벤후크가 만들었을 것입니다. ‘미생물학의 아버지’인 안톤 레벤후크(반 레이원후크, Anton van Leeuwenhoek; 1632~1723) 그 사람 맞습니다. 트레이시의 소설에서는 이 기구를 레벤후크가 베르메르에게 빌려준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로도 그러했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무엇이냐고요? 몇 가지 있습니다.

베르메르와 레벤후크의 인연

베르메르와 레벤후크 모두 1632년에 델프트에서 태어났습니다. 베르메르는 평생을 거의 델프트에서만 살았고, 레벤후크도 아흔 평생 동안 델프트를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당시 델프트의 인구는 2만4천 명 정도였는데, 두 사람의 집은 불과 두세 블록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니 모르고 지내기도 어려웠겠지요. 이걸로는 근거가 약하다구요?

1675년에 베르메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유산 관리인으로 선임된 사람이 레벤후크였습니다. 이 정도로도 부족하다 하시면 결정적인 증거를 밝히는 수 밖에 없네요.

보시는 그림은 <지리학자 geographer(1668~1669년)>입니다. 햇살 눈부신 창가에서 디바이더를 들고 생각에 잠긴 인물은 바로 레벤후크입니다. 그림이 완성된 1669년은 레벤후크가 공인측량사가 된 때인데 그 기념으로 베르메르가 그린 그림이지요.

아마추어 미생물학자, 레벤후크

레벤후크는 본디 직물상이었습니다. 그는 렌즈에 관심이 많아서 유리를 깎고 다듬어서 구슬 모양의 렌즈를 만들었습니다. 이 렌즈를 이용해 카메라 옵스큐라도 현미경도 만들었습니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베르메르에게 빌려 주었지만 현미경으로는 자신이 세상을 관찰했습니다. 깨끗하고 맑은 물을 들여다 보니 엄청나게 많은 미생물들이 돌아다닌다는 사실도 알았고, 동물(혹은 자신)의 배설물과 체액에서 세균, 정자, 혈구세포들도 찾아냈습니다.

소설 속에도 등장하는 레벤후크지만 안타깝게도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영화 감독이 생물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화가의 절친한 친구이자 ‘미생물학의 아버지’를 그냥 지나치진 않았을 텐데, 많이 아쉽습니다.

레벤후크도 본업은 화상(畵商)이었습니다. 그 역시 취미로 그림을 그렸으며, 평생 34~35 점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처가집에 얹혀 살았고, 43세 요절했을 때는 열 명이 넘는 아이들과 많은 빚을 남겼습니다. 빚 대신에 그림이 그렇게 많이 남은 걸 보면 그리 잘 팔리는 화가는 아니었다는 말이겠지요.

이제 겨울이 한창 깊어갑니다. 낮은 구름이 계속 무거운 하늘을 뒤덮고 있을 때면 햇살 가득한 창가에서 따뜻한 차 한잔이 그리워집니다. 그 때 베르메르의 아무 그림이라도 하나 펼치면 금새 그림에서 퍼져나온 빛에 눈이 부셔지는 마술을 필자는 경험합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그 마술을 한번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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