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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러시아는 왜 초강력 제재를 감수하면서까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일까요?
https://imnews.imbc.com/replay/2022/nw1400/article/6344562_357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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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원인 – 나무위키:대문
결국 현 시점의 러시아는 반 러시아 성향 우크라이나 정권을 방치시 극도로 치명적인 지정학적 피해를 입게 되며, 명분과 무관하게 대규모 전쟁을 감행하더라도 …
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9/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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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유… 푸틴이 원하는 바는? – BBC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몇 달간 우크라이나 침공설을 부인했다.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유럽 내에서 침략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
Source: www.bbc.com
Date Published: 2/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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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과 과정 –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
지난 2월 24일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의 특별 군사작전 개시 명령 선포 후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였다. 왜 이러한 일이 발생했을까?
Source: contents.premium.naver.com
Date Published: 8/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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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푸틴은 왜 우크라이나를 원하는가
단순히 푸틴의 국내 정치 돌파용 혹은 구 소련의 영광을 재현하고픈 야망의 발로만은 아니다. 이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러시아의 현재를 파악 …
Source: www.mk.co.kr
Date Published: 4/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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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유와 그 배경은? – 내외경제TV
[내외경제TV] 진병훈 기자=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그 이유에 대해서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먼저 지난 1949년 미국과 유럽 10 …Source: www.nbntv.co.kr
Date Published: 8/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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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본질적 원인은? – 시사IN
하지만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위기와 전쟁의 본질적 원인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편입 가능성에 대한 러시아의 근본적인 안보 불안감 때문이다. 러시아가 …
Source: www.sisain.co.kr
Date Published: 11/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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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전쟁, 원인은 미국이다” 석학의 파격주장, 美 발칵
미어샤이머 교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과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 동맹 규합에 전념할 때 전쟁이 발발한 근본 …
Source: www.joongang.co.kr
Date Published: 3/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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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고전하는 5가지 이유…라브 …
[분석]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고전하는 5가지 이유…라브로프 “정전 협상 매일 접촉” · 1. 상당한 전력 손실 · 2. 우크라이나 강력한 항전 의지 · 3.Source: www.voakorea.com
Date Published: 8/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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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이유
- Author: MBC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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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2. 2. 23.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E1hAzor6c9A
우크라이나-러시아전쟁의 ‘원인’과 교훈:평화의 역동성을 키우자
100시간 협상해서 성과가 없어도 1분간 총을 쏘는 것보다는 낫다
“100시간 동안이나 협상했는데 아무 성과가 없어도 그것이 1분간 총을 쏘는 것보다는 낫다.” 서독의 평화정치가이자 안보 전문가인 헬무트 슈미트 총리의 말이다. 명료한 평화 명구도 인류의 어리석음을 막기에는 부족했다. 지난 2월 24일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서로에게 총을 쏘고 있는 시간은 이미 100시간이 아니라 100일이 넘었다. 전쟁 양상은 혼미하고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 말은 양측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들이 계속 살해당한다는 것을 뜻한다. 5월 중순 현재 이미 양측에는 각기 수천 명의 군인 사망자가 발생했다.
게다가 4천 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망자와 그보다 더 많은 수의 민간인 부상자들이 발생했다. 또 6백만 명의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난민으로 삶의 근거지를 잃고 안전을 찾아 나섰다. 경제 손실은 아직 헤아리기 어렵고, 종전이나 휴전이 되더라도 우크라이나 사회와 주민의 상흔은 오래갈 것이다. 러시아도 전쟁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렵다. 심지어 전쟁이 우크라이나를 넘어 나토(NATO, 북대서양 조약기구)의 직접 개입으로 치닫는다면 그 결과는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문명파괴’로 이어질 것이다.
전쟁은 승자와 패자를 낳는 것이 아니라 민간인 학살과 난민, 산업과 기간 시설의 파괴와 폐허만이 아니라 무책임한 적대 감정과 폭력 공간을 창출할 것이다. 전쟁은 협상과 달라 1분이라도 그 자체의 고유한 역동성과 강력한 흡인력을 갖는다. 전쟁은 당사자 모두를 적대 감정의 소용돌이로 몰고 종전 후라도 화해를 어렵게 만든다. 한국전쟁은 3년이었지만 그 후 지금까지 한반도는 대결과 적대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남북한 사이의 화해와 협력의 시간을 다 합하면 한국전쟁의 기간보다 훨씬 길지만 전쟁과는 달리 어떤 역동성이나 지속성을 창출하지 못했다. 전쟁은 문명적 삶의 정상성의 고삐를 풀어 버렸기에 적대와 불화를 계속 고조시킨다. 100시간 협상해서 성과가 없는 상황은 사실 최소한 적대의 고조를 막고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만큼 협상은 성과가 없더라도 중하다.
‘전쟁 원인’으로 불리는 전쟁 정당화 주장들
우크라이나-러시아전쟁의 원인으로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은 러시아 측의 주장이었다. 1989-91년 국제 냉전이 종결된 후 서방의 군사동맹인 나토가 러시아를 향해 계속 동진해 러시아가 안보 위협을 느꼈기에 어쩔 수 없이 그것에 맞섰다는 주장이다. 나토 동진을 전쟁의 핵심 원인으로 간주하면 이 전쟁은 러시아와 미국의 대리전으로 간주될 수 있다. 탈냉전기 미국의 군사적 패권 전략과 러시아의 탈소비에트 지역 통합 전략 사이의 충돌이 전쟁의 원인으로 여겨진다. 미국은 탈냉전 후 세계질서를 일방적으로 만들고자 했지만, 러시아는 탈냉전 과정에 주요한 역할을 수행했기에 그것에 걸맞은 안보 이익을 관철하고자 한다. 미국과 러시아의 패권과 안보 갈등이 우크라이나에서 충돌했다고 여기는 분석이 틀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키거나 옹호하는 사람들이 전쟁을 정당화하면서 주장한 구실들을 무심하게 전쟁의 원인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나토 동진이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곧장 우크라이나를 침략할 명분이 되지는 않는다. 나토 가입은 철저히 우크라이나인들의 주권과 자결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전쟁은 명백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고, 주권 침해다. 안보 이익은 조정과 타협의 문제지 전쟁 정당화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반면, 미국의 책임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우선 미국과 러시아는 1990년대 내내 그리고 2001년 9.11 테러 후에도 경제와 외교 및 안보 영역에서도 협력 정치를 선보였다. 그때 분명 양자는 새로운 평화체제 형성의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평화의 기회를 활용하지 않았고 평화 협력관계의 제도화를 포기하고 군사동맹의 확대에만 매달렸다. 군사동맹이 존재하는 한 동맹 바깥의 대결 내지 이질 세력은 항상 현실적 또는 잠정적 ‘적’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우리’와 ‘적’의 경계를 강화하는 군사동맹은 필연적으로 군사적 우위와 동맹 강화를 목표로 삼게 된다. 군사동맹을 통한 안보 강화는 실상 현실적 갈등 세력 내지 잠정적 적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뿐이지 평화를 보장해주지 못한다. 사실 나토 국가들은 이미 돈바스내전 당시 무기와 군수물자를 지원하고, 우크라이나 군대와 함께 군사훈련을 수행했다. 나토는 이미 분쟁 지역의 군사 긴장을 계속 고조시켰다. 게다가 미국은 작년 11월부터 전쟁 위기 상황에서 러시아의 협상 요구를 무시했다. 유럽 국가들, 특히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전쟁 발발 전에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를 제안했지만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못했다. 상황은 곧 인간의 이성과 조정 능력을 넘어 안보론에 빠졌다. 갈등이 제어되지 않은 무책임의 대결 정치로 귀결되었다.
전쟁의 또 다른 원인으로 간주한 것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갈등이다. 현실의 대결과 적대는 항상 역사를 소환하는 법이다. 두 국가의 역사적 뿌리가 같음에서 양국의 깊은 문화적 연루와 긴밀한 인적 연결을 확인할 수 있음에도 오히려 양국 사이의 불화가 강조된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병합한 사건이나 1930년대 농업 집단화의 결과로 발생한 우크라이나 대기근의 참화, 즉 ‘홀로도모르’가 새삼 주목받는다. 다수 우크라이나인들은 서구 지향과 반러시아 감정이 뚜렷하다. 반면, 우크라이나를 여전히 러시아의 일부로 보는 러시아인들은 70%에 달한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역사적 갈등과 정체성의 차이로 전쟁이 일어난다면 지구는 항상 불바다일 것이다. 그것 또한 전쟁의 필연성이 아니라 전쟁 수행을 위한 국민 결집과 동원의 이데올로기임에 더 주목해야 한다.
요컨대, 나토 동진과 안보 이익 주장 및 역사적 갈등에 기인한 이질적인 국가 정체성은 전쟁의 원인이라기보다는 양측 정치엘리트 모두에게 각기 전쟁 정당화의 도구다. 역사에는 항상 평화의 대안이 없지 않다. 전쟁은 안보 구조나 패권 대결의 필연적 귀결이 아니다. 과거에 불화가 있었다고 해서, 현재 자아상과 타자상이 다르다고 해서 곧장 전쟁이 일어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전쟁의 배경이나 이유가 아니라 결과이자 변명이다. 반대로 전쟁은 늘 그와 같은 요인을 내세운 정치 지도자들의 무책임한 선동과 긴장 고조를 제어하지 않는 행위의 파국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전쟁의 교훈
우크라이나-러시아전쟁은 무력이 아닌 협상을 통해 국가 간 갈등 해결을 추구하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세계 전역에서 안보 동맹 강화나 군사력 강화로 갈등을 해결하는 일이 득세할 수 있다. 그것이 어떤 파국을 낳을지는 이미 20세기에 충분히 보았다. 글로벌 사회가 직면한 보편적 곤경과 위기에 맞서 국제 협력과 초국적 연결이 강화되어야 마땅한데, 오히려 각국은 인습적인 국가안보를 내세운 군비 강화에 매달리게 될 위험이 크다. 그것 또한 전쟁의 역동성이다. 그것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전쟁이 발발하지 않을 이유나 근거가 있음에도 전쟁은 21세기에도 여전히 너무 손쉽게 일어날 수 있음을 보았다.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유럽은 탈냉전이라는 일시적 성취에 취해 안보 동맹이나 공동의 경제 이익에만 주목하다 평화 질서의 근본적 재창출을 놓쳤다. 그것은 남의 일이 아니다. 갈등과 위기가 자가 상승하도록 내버려 두면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거나 인적·문화적 교류가 활발하더라도 순식간에 전쟁으로까지 치달을 수 있음을 이 전쟁이 잘 보여주었다. 갈등의 고조와 적대의 상승을 억제하는 온갖 제어 장치들을 새롭게 발견하고 발명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적대적 갈등이나 전쟁과는 달리 화해나 평화는 손쉽게 발생하지도 않고, 한번 개시되었다고 잘 지속되기도 어렵다. 그렇더라도, 아니 그렇기에 평화의 원인과 요인, 평화의 조건과 과정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평화의 역동성을 창안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어떤 것도 곧장 전쟁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 반면, 갈등 악화를 막고 긴장 고조를 제어하는 모든 노력은 다 평화의 원인이 된다. “평화를 원하면 평화를 준비해야 한다.”라는 말은 바로 그것을 뜻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과 과정
이번에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내의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침공을 시작하였다. 2월 22일 러시아는 도네츠크, 루간스크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평화 유지군’ 의 명목으로 러시아 병력의 진압을 지시하였다. 두 공화국 지도자들은 러시아 공화국들 간 우호-협약, 원조에 관한 조역에 서명하며 ‘동맹’ 지위를 공식화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사흘 내에 결론짓고 크림 합병사태와 같이 일부 비난을 감수하는 선에서 끝내려고 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보다는 약하나, 쉬운 국가는 아니였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이후 대러 위협 인식이 고조되어 반러 연대 구성을 노력했고 발트해에서 흑해로 이어지는 지정학적 전선 구축을 시도하는 등 이전부터 여러 위협에 대비해왔다. 이러한 대비 덕분인지 침공 두 달이 지나가는 시점에도 전쟁은 아직 진행 중에 있다.
러시아는 처음에 남오세티야 전쟁 때 썼던 방법과 똑같은 방법으로 예상되는 모든 침공 경로(북부,중부,남부)로 침공하였다. 그러나 북부, 북동쪽 방면(키이우 부근)에서 러시아가 공격을 중단한 것으로 보아 우크라이나의 방어가 성공했다고 보인다.
하지만 이를 두고 한편에서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키이우 주민들의 대피를 허락하지 않아, 러시아군의 공격이 더뎌졌다는 의견도 있다.
러시아는 애초부터 자국민 보호라는 명목으로 우크라이나에 침공하였기에 최대한 민간인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 남부의 경우 헤르손을 포위하고 마리우폴에서 유격전을 벌이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순항 중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모스크바함 격침으로 오데사 상륙전 방어에 배치되었던 우크라이나군이 헤르손 전투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한, 동부에서도 전면전이 예고되며 시리아 병력도 투입될 것으로 보아 앞으로의 전쟁 상황은 더욱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시리아 용병의 투입은 민간인들의 안위에 대한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총 5번의 협상이 진행되었다. 최근 협상을 통해 우크라이나는 중립국화 방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을 내보였으며, 러시아는 군사행동을 축소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푸틴은 왜 우크라이나를 원하는가
지난 몇 달 동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우크라이나 사태가 결국 전쟁으로 결론 났다. 지난 2월 초,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이 2월16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공식 발표했다. 이 발언으로 세계의 금융, 에너지 산업은 흔들렸고 외국인의 우크라이나 탈출이 본격화되었다.▶세계의 화약고로 떠오른 ‘키예프 루스’2월16일 러시아는 국경 지대에 배치한 탱크 등 중무기의 철수 모습을 보여주며 미국의 예측이 빗나갔음을 세계에 알렸다. 하지만 정보 자산을 총동원해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리고 결국 지난 2월21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의 친 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이 선포한 독립 국가 선언을 승인하며 후속 조치로 이 지역의 분쟁 완화와 돈바스 지역 약 400만 명에 이르는 시민의 안전, 특히 러시아계 시민 보호를 목적으로 러시아 평화유지군의 돈바스 진입을 승인했다. 2월24일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내에서 러시아 군의 군사 작전을 승인, 돈바스 지역뿐만 아니라 벨라루스, 크림반도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향해 미사일 발사와 지상군을 투입했다.이에 미국을 비롯한 EU회원국들은 돈바스 지역 두 곳의 친 러시아 국가인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분리 독립 승인을 거부했다. 하지만 세계의 언론과 학자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러시아는 이 돈바스 지역에서의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 러시아 반군과의 분쟁을 이유로 군사행동을 할 것’이라 예측했었다. 미국과 EU는 러시아에 대한 신규 투자, 무역, 은행 거래 정지 등을 금지하는 본격적인 경제 제재를 시작하며 세계 국가의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그렇다면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의 경제 및 금융 제재, 국제 사회의 비판을 무릅쓰면서까지 왜 우크라이나에 집착하는 것일까. 단순히 푸틴의 국내 정치 돌파용 혹은 구 소련의 영광을 재현하고픈 야망의 발로만은 아니다. 이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러시아의 현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역사와 뿌리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러시아는 광대한 국가이다.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약 78배 크기인 약 1709만㎢로 세계에서 가장 넓으며, 인구는 1억4600만 명이다. 물론 전 국토의 약 70%가 불모지라 인구의 80%는 유럽과 인접한 서부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동토인 시베리아 등에 천연가스, 석유 등의 각종 자원이 엄청나게 매장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지며 러시아의 미래는 밝게 점쳐졌다. 인구의 대부분은 동슬라브인이다.러시아는 자신들의 국가 기원을 약 9세기경 지금의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전성기를 누렸던 키예프 루스에서 찾는다. 이 키예프 루스가 현재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기원인 셈이다. 즉 동슬라브인의 최초 국가가 바로 키예프 루스인 것이다. 키예프 루스는 ‘항해술이 뛰어난 키예프 사람’이라는 뜻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역사의 대부분은 게르만족, 바이킹족, 투르크족, 몽골족 등 주변 강력한 세력을 형성한 국가의 침략과 지배의 시간이었다. 그러다 9세기경 지금의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중심으로 도시국가 연합체인 키예프 루스가 등장했다. 키예프가 지금의 국가 형태를 형성한 것은 바이킹의 후손인 올레크가 키예프를 점령한 이후이다. 물론 도시국가 형태의 ‘공국公國’ 연합이었다. 이 키예프의 전성시대를 연 군주가 스뱌토슬라프이다. 그는 평생을 말 위에서 내려오지 않은 ‘전쟁의 왕’으로 불린 군주이다. 그는 키예프 루스의 영토를 확장해 지금의 볼가강과 카스피해까지 진출해 비잔틴 제국과 맞닿은 국경선을 확보했다. 얼마 후, 스뱌토슬라프는 비잔틴 제국과 일전을 불사했지만 패하고 971년 비잔틴 제국과 강화 조약을 체결했다.이윽고 스뱌토슬라프의 아들 블라디미르 대공이 즉위했다. 그는 키예프를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발전시킨 군주이다. 블라디미르는 그리스 정교를 받아들였고 본인 스스로 비잔틴 제국의 공주와 결혼해 이후 러시아 정교회 발전의 토대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키예프 루스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1036년에 즉위한 블라디미르의 아들 야로슬라프는 키예프를 눈부시게 발전시켰다. 그는 법전을 정비하고 학교와 도서관을 지어 국민을 계도했다. 후에 역사가들은 야로슬라프를 ‘현자’라 불렀다. 하지만 키예프 루스의 전성기는 13세기 초 몽골 제국의 침략으로 끝났다. 야로슬라프의 손자인 블라디미르 모노마흐 때부터 키예프는 분열하기 시작했고 1240년 몽골 제국에 의해 멸망되었다.이후 몇 세기 동안 키예프의 후손들 즉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의 동슬라브인들은 국가가 없는 시간을 지냈다. 이후 몽골 제국이 멸망하고 우크라이나 지역은 오스트리아 등 주변 강국의 분할 통치에 들어갔다. 모스크바 대공국은 주변 지역을 모두 장악했으며, 그들은 몽골 제국에 세금을 내는 대신 지역 지배권을 유지했다. 그 뒤 17세기 폴란드 지배 하에 있던 우크라이나는 독립을 위해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한다. 이 시기부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간접적인 지배와 간섭이 시작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우크라이나는 독립 국가를 건국할 기회를 얻었지만 당시 프랑스가 폴란드의 서 우크라이나 지역의 병합을 용인함으로써 그 기회도 상실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우크라이나는 비로소 국가의 형태를 갖추고 독립했지만 역시 소련의 위성국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우크라이나와는 달리 러시아는 제국으로 발전했다. 약 15세기경 모스크바 대공국 이반 3세는 스스로를 차르 즉 황제라 칭하고 국가를 재정비해 17세기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리고 18세기에 들어 러시아는 표트르 1세와 예카테리나 대제의 확장 정책으로 서유럽 국가와 견줄 만한 제국의 면모를 갖추었다. 하지만 로마노프 왕조의 부패와 무능으로 1917년 소비에트 혁명이 일어나고 러시아 제국은 멸망한다. 소비에트 사회주의연방 즉 구 소련은 1922년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자카프카스 등을 포함한 연방을 출범시켰고 이 연방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약 15개 연방으로 늘어났다. 그 뒤 소련은 미국과 냉전시대를 이끌며 사회주의의 종주국 위치를 점했다. 이후 고르바초프, 옐친을 거치면서 시민 혁명과 사회주의 포기로 1991년 구 소련은 붕괴되고 러시아가 재탄생했다. 1999년 당시 옐친 대통령은 정보국장이던 블라디미르 푸틴을 총리로 지명하고 대통령 직에서 물러났다. 푸틴은 대통령 권한 대행을 거쳐 이듬해 2000년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푸틴은 4년 연임이 끝나는 2008년 대선에서 심복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워 그를 당선시켰다. 그리고 메드베데프는 푸틴을 총리로 임명했다. 이후 메드베데프는 대통령의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연장하는 개헌을 실시한다. 2012년 푸틴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곧이어 대통령의 3선 금지 조항도 폐지해 푸틴은 2036년까지 합법적으로 대통령 직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2000년 이후 푸틴 대통령은 강력한 러시아 재건을 시작했다. 그의 목표는 미국과 세계를 주도했던 구 소련이다. 푸틴은 군비를 증강하고 천연가스, 석유 등 자원 수출을 통해 러시아를 국제무대의 주역으로 재등장시켰다. 푸틴은 체첸 지역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2014년에는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전격적으로 병합하는 등 강력한 러시아의 재건에 온 힘을 쏟고 있다. 푸틴과 러시아로서는 지정학적 위치, 자원과 곡창 지대 혹은 정치군사적 역학관계의 중요성을 떠나서 슬라브족의 뿌리이자 기원인 우크라이나와 키예프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더구나 푸틴은 미국이 더 이상 세계 유일의 패권국을 유지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 시작은 아프가니스탄 철수였다. 20년 전쟁을 황급히 마무리하고 떠나는 미군의 모습에서 푸틴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도 미국의 지상군이 개입하지 않으리라 판단했을 것이다. 또 중국의 강력한 부상으로 대만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가중되는 현 정세에서 미국이 대만과 우크라이나에서의 두 개의 전선을 형성할 능력과 의지가 없다고 판단해 과감하게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다.▶러시아의 역사적 뿌리, 키예프 루스푸틴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배권을 국제 사회에 공개적으로 표방하기 위해 이번 침공을 단행했다. 러시아와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원하는 첫 번째 이유는 러시아의 뿌리가 바로 우크라이나의 키예프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민족, 종교에서 동질감이 있다. 물론 언어와 기타 문화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원래부터 러시아의 일부라는 인식을 감추지 않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뿌리가 같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키예프에서 분리한 형제국이지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보다는 게르만, 투르크, 바이킹, 비잔틴 문화와 오랜 시간 교류하면서 우크라이나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 왔다.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동질적 뿌리 인식을 갖고 있는 반면 우크라이나인은 그렇지 않다. 우크라이나인들의 러시아에 대한 역사적 기억은 좋지 않다. 그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 수많은 러시아 인을 이주시켰고 그로 인해 분쟁의 씨앗이 잉태됐다고 생각한다. 즉 돈바스 지역에 약 200만 명에 달하는 러시아 인들이 이주하면서 이곳에서 친 러시아 분리 독립이 시작된 것이다. 또한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큰 영토인 우크라이나는 비옥한 곡창지대를 보유한 ‘유럽의 빵 공장’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이런 지리적 이점의 수혜를 그동안 각종 수탈과 핍박을 통해 러시아가 가져갔다고 생각한다. 유럽에서 가장 축복받은 비옥한 땅에서 벌어진 스탈린 시절의 우크라이나 대기근의 트라우마를 우크라이나인들은 잊지 않고 있다.구 소련의 붕괴 이후 러시아의 영향력이 감소하자 우크라이나는 실질적 독립을 했다. 철의 장막이 무너지자 그동안 소련의 영향권 안에 있던 동독은 서독과 통일하고 헝가리, 체코, 폴란드, 알바니아, 루마니아 등을 비롯해 발트해 3국 등은 러시아의 위성국에서 벗어났다. 우크라이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여타의 동구권 국가와 다른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것은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에 배치했던 약 1800여 기의 핵탄두. 이 숫자는 미국과 러시아에 이은 세계 3번째 핵보유국이 바로 우크라이나라는 뜻이다. 러시아는 물론이고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은 우크라이나가 1800여 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에 불안감을 표출했다. 해서 이들은 1994년 부다페스트 안정보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각서의 주된 내용은 우크라이나가 핵폭탄 1800여 개를 러시아에 넘기고 대신 미국, 영국,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존과 정치적 독립을 약속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결국 핵 대신 달러를 선택했다.하지만 이 부다페스트 각서는 말 그대로 각서. 즉 국가 간의 조약이나 협정보다는 구속력이 약한 약속일 뿐이다. 러시아는 핵탄두를 손에 넣었고, 미국과 영국은 우크라이나보다는 러시아가 핵탄두를 관리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해 각서를 써준 것이다. 이후 러시아는 국가 재정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상태에서도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서는 여전히 친 러시아계 주민들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무장 투쟁이 일어났다. 즉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 러시아계 반군의 전투가 끊이지 않은 것이다.드디어 러시아가 구 소련급의 국력을 회복했다고 판단한 푸틴 대통령은 2014년 전격적으로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합병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에 대한 야망은 거의 집착 수준이었다. 이는 러시아가 부동항을 갖기를 원하는 오랜 역사의 결과였다. 크림반도 안에 있는 세바스토폴 항구는 바로 러시아 흑해함대의 주둔지. 러시아는 이 흑해함대를 통해 지중해로 진출하려는 야망을 갖고 있었다.2014년 3월11일, 크림 자치공화국과 세바스토폴이 독립을 선포하고 이른바 ‘크림공화국’을 결성했다. 그리고 친 러 악쇼노프라가 크림 자치공화국 총리 자격으로 푸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푸틴은 흑해함대와 러시아 주민보호 명분으로 크림반도에 군대를 파병했다. 2014년 3월16일, 러시아와 합병을 내건 주민 투표를 실시했다. 당시 주민의 63%가 러시아계라 결과는 예정되어 있었다. 투표 결과 95% 찬성으로 러시아와 크림공화국의 합병은 통과되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현재까지도 이 크림공화국을 인정한 국가는 전 세계에서 8개국뿐이다. 러시아로서는 옛 소련의 영화를 재현하기 위한 첫 단추를 크림반도 주민들의 자발적인 선택이라는 방법으로 이뤄낸 것이다.2014년 당시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친러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시위대는 정부의 진압에도 반정부 봉기를 계속해 드디어 야누코비치 정권이 물러나고 새로운 친 서방 정권이 들어섰다. 이 시민 운동이 바로 ‘유로마이단’이다. 물론 그 시작은 2008년 세계 경제위기였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국가 부도의 직격탄을 맞았다. 2013년 유럽연합과 IMF국제통화기금은 우크라이나에게 지원을 제안했지만 당시 친러 성향의 대통령은 러시아의 손을 잡았고, 이에 분노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정권 축출운동을 시작한 것이다.이윽고 크림반도 합병에 자극받은 돈바스 지역 친러파들이 분리 독립을 주장하며 내전을 선포했다. 바로 돈바스 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 내전으로 약 1만4000명의 사상자와 약 15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이에 2015년 러시아, 우크라이나, 독일, 프랑스 등 4개국이 만나 분쟁 해결을 위한 민스크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민스크 협정은 사실 미봉책이다. 근본적인 해결 없이 협정을 체결, 그 이후에도 돈바스 지역에서의 내전은 끊이지 않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간접적인 간섭 역시 계속되었다.▶미국과 나토의 동진을 막아라나폴레옹, 히틀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두 사람은 권력으로 유럽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두 사람 모두 러시아, 소련에 대한 공격과 패전으로 멸망의 길을 걸었다.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러시아 침공 루트가 바로 우크라이나였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노리는 자에게는 첫 번째 목표이자 러시아를 위협할 수 있는 목줄인 셈이다.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냉전체제에 접어들었다. 미국은 서유럽 재건을 위해 마샬플랜을 통해 막대한 달러를 쏟아부었고 또한 소련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군사동맹을 결성했다. 바로 ‘NATO북대서양동맹’이다. 이 동맹은 회원국이 비회원국의 공격을 받으면 회원국들은 군사적으로 자동 개입하는 직접적인 미국의 안보 우산이다.소련은 1955년 나토에 대항하기 위해 ‘WTO바르샤바조약기구’를 결성했다. 구 소련과 동유럽 위성국들이 포함된 군사동맹체이다. 동독, 폴란드, 알바니아, 체코, 유고슬라비아, 헝가리 등이다. 1989년 치열했던 동서냉전이 종식되며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다. 유럽의 정치 지형이 급변한 것이다. 1990년 독일의 통일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서독, 동독이 모였다. 여기서 서독과 동독은 통일 과정과 그 이후에도 통일 독일을 비롯해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의 동진, 즉 소련을 향한 공격이나 위협은 없을 것이라는 협정을 체결했다. 구 소련 체제가 붕괴되면서 동유럽의 소련 위성국들은 줄줄이 독립했다. 이후 이 국가들의 행보는 바로 나토 가입으로 이어졌다. 1999년 헝가리, 폴란드 체코를 시작으로 2004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과 루마니아, 불가리아가 나토에 가입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는 바르샤바동맹국의 일원. 그리고 우크라이나 역시 나토의 31번째 회원국이 되기 위해 가입을 공식 선언했다. 그동안 러시아는 동맹 혹은 위성국들의 나토 가입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 내의 국내 정치와 민족 문제 혹은 경제 및 군사적 재건이 더 우선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로서는 마지막 선이다. 러시아와 인접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조지아, 우크라이나 중에서 특히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나토의 완충지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평원 지대. 특히 러시아와의 국경지대는 모두 평원으로 러시아로서는 이곳에 나토의 군사적 자원이 주둔하는 것은 러시아의 국경 방어에 치명적이라고 판단했다.더구나 우크라이나에 나토의 핵 자산과 미사일 시스템이 설치된다면 러시아로서는 하루도 편하게 잠을 잘 수가 없는 위협인 셈이다. 우리나라에 사드가 배치되자 중국이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고 우리에 대한 각종 제재를 가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재정비를 마친 푸틴의 입장에서는 키예프를 포기할 수도 없고, 더구나 나토 회원국이 된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미국과 러시아, 유럽의 에너지 패권21세기는 자원 전쟁의 시대이다. 이 자원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이 바로 천연가스이다.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탈원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있다. 이에 가장 필요한 것이 천연가스, 즉 액화천연가스LNG이다. 러시아는 천혜의 혜택으로 이 천연가스 매장량이 막대하다. 러시아의 재건에 필요한 재원을 이 천연가스 수출로 충당할 정도. 이에 비해 서유럽은 자원이 빈약하다. 해서 러시아는 막대한 양의 천연가스를 그동안 서유럽 국가에 수출했다. 이 러시아 산 천연가스는 서유럽 국가의 난방 그리고 산업용으로 활용되었다. 지리적 특성상 러시아 산 천연가스의 주요 수출길에 우크라이나가 있다. 러시아는 미국을 비롯한 서유럽 국가와 마찰이 생길 때마다 가스관의 밸브를 잠가 버렸다. 물론 러시아도 피해를 보았지만 서유럽 국가는 당장 산업시설이 멈추고 국민들은 겨울에 냉방에서 지내야 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러시아의 가장 큰 고객인 독일은 가스관을 직접 연결하는 노르트스트림1을 설치했다. 이 가스관 설치에 제일 반발한 것은 미국과 우크라이나다.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서유럽에 대한 영향력 감소를, 미국으로서는 러시아의 서유럽 국가에 대한 영향력이 증대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까지 미국은 서유럽 동맹에 막대한 가스를 수출했다. 하지만 러시아산 천연가스는 지리적 여건으로 미국산보다 유용했다. 미국이 반발했지만 러시아와 유럽, 특히 독일 주도의 노르트스트림2 설치 계획이 발표되면서 공사는 시작되었다. 미국의 공식 반대에도 불구, 독일은 이를 내정간섭이라 여기며 러시아와 직접 협력 입장을 고수했다. 이미 2012년 노르트스트림1은 설치되어 가동 중이며 여기에 더해 노르트스트림2 건설을 주도한 것은 독일이다. 독일은 2000년 당시 슈로더 총리가 이미 탈원전을 선언하며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확대시켜 왔고 노르트스트림2 건설도 2021년 완공했다. 발트해를 통해 러시아 북부와 독일을 직접 연결하는 이 거대한 해저 가스관은 길이가 무려 1200여km에 가스 공급량은 연 550억 입방미터. 약 13조 원이 투입된 이 가스관으로 독일은 자국 가스 필요량의 약 50%를 러시아로부터 공급받으려는 계획이었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이를 러시아의 영향력 증대를 이유로 반대했다. 물론 지금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출 라인은 노르트스트림을 제외하고도 몇 개가 더 있다. 1997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러시아-벨라루스-폴란드-독일을 경유하는 야말 가스관과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가스관이다. 러시아가 이 가스관들의 밸브를 잠가버리면 유럽은 큰 곤란에 직면하게 된다. 이미 작년 천연가스 가격이 연초에 비해 800% 폭등하는 직격탄을 맞은 바 있다.지난 2월7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면 노르트스트림2를 끝장내겠다”고 선언했다. 독일의 숄츠 총리도 이에 동의했다. 이만큼 가스관은 유럽 각국의 복잡한 이해가 얽힌 존재이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노르트스트림2 가동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포기할까. 국제 정치전문가들은 ‘노’라고 답한다. 러시아에 필요한 것은 노르트스트림보다 우크라이나를 통해 공급되는 라인이다.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푸틴은 절대 우크라이나를 그 어떤 것과 대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유럽에서 가장 풍요로운 곡창지대, 유럽의 동쪽 중추인 우크라이나에게 이제 운명의 시간을 다가왔다. 푸틴은 돈바스 지역을 실효적으로 지배하면서 우크라이나에 친 러시아 정부를 세울 것이다. 이제 우크라이나에게는 고통의 시간만이 기다리고 있다. 국제 정치에서 무엇보다 우선되는 자국 우선주의, 그리고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주의 때문이다. 힘이 먼저인 세상이다. 우크라이나 내에서도 ‘우리가 너무나도 순진하게 핵무기를 포기했었다. 만약 우리가 지금도 1800개의 핵탄두를 갖고 있다면 러시아가 함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제 우크라이나 문제는 단순히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우크라이나보다 더 복잡한 각국의 이해관계가 집약된 우리에게도 언제든 닥칠 문제이기 때문이다.[글 조영원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20호 (22.03.15) 기사입니다][ⓒ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유와 그 배경은?
사진=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페이스북·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트위터
[내외경제TV] 진병훈 기자=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그 이유에 대해서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먼저 지난 1949년 미국과 유럽 10개국 등이 소련 및 동구권을 견제하기 위해 창설한 군사 방위 기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당시 동구권은 과거 동유럽과 중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였다.
이에 지난 1955년 구소련 등 공산권 국가들이 NATO에 대항해 바르샤바조약기구 안보 기구를 만들었으나 1991년에 공산주의가 몰락하면서 74년만에 발트 3국을 비롯해 15개국으로 흩어진다.
바르샤바조약기구는 흐지부지됐으나 NATO는 건재했다. 오히려 동쪽으로 세력을 확대해 나가더니 74년에 걸쳐 총 30개국이 NATO에 손을 들어 주었다.
여기에 NATO가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가입 환영 메시지를 보내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합당한 대응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한 격으로 우크라이나가 NATO 가입을 희망하자 전쟁까지 발발했던 것이다.
러시아의 침공 배경에는 크림반도 사태도 끼어 있다. 지난 2014년 3월 러시아가 무력으로 크림반도를 병합했으나 시리아를 제외하고 미국 및 유럽연합 등 국제사회가 인정해 주지 않았다.
푸틴은 당시 돈바스 지역에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을 만들어 편입하겠다고 으름장을 놨으나 서방 강국들이 외면했던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본질적 원인은?
2월24일 러시아가 군사작전을 개시한 가운데 우크라이나의 하르키우 인근 군 공항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AFP PHOTO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월24일 오전(현지 시각) ‘우크라이나의 위협을 용납할 수 없다’며 돈바스 지역에 대한 ‘특별 군사작전’을 전격 선언했다.
돈바스는 우크라이나의 동부 지역이다. 이 나라의 영토이지만 친(親)러시아 분리주의 세력들이 득세하고 있다. 최근엔 분리주의 세력들이 돈바스 일부 지역에서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된 공화국’을 선포하기도 했다. 푸틴이 2월24일 선언에서 “우크라이나(전역)를 점령할 계획은 없으며” “돈바스 지역에 대한 특별 군사작전”이라고 말한 것은 이 분리주의 세력을 우크라이나 정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2월24일 현재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동부인 돈바스는 물론 수도 키예프와 남부의 주요 도시들도 러시아의 로켓 공격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러시아가 돈바스뿐 아니라 사실상 ‘우크라이나 침공’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무성하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날 “이미 러시아의 전면 침공이 시작됐다”라고 선언했다. 푸틴의 작전 개시 직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의 침공은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 단호히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푸틴은 “외국이 간섭할 경우 러시아는 즉각 보복할 것”이라고 경고해 결코 물러날 뜻이 없음을 천명했다.
러시아의 2월24일 침공은 예견된 바였다. 사흘 전인 2월21일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국영 TV에서 비장한 어조로 연설하면서 선언한 조치들 때문이다.
위에 짧게 언급했듯이, 최근 친러 분리주의자들이 돈바스 지역의 두 곳에서 각각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LPR)’을 선포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한 뒤 러시아연방으로 편입하겠다는 의미다. 푸틴은 2월21일의 격정에 넘친 연설에서 DPR과 LPR의 독립을 승인하면서, 러시아 군을 두 공화국(?)에 ‘평화유지군’이란 명목으로 파견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이 공화국들과 상호 원조 조약을 체결했다. 만약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돈바스 분리주의 세력 간의 교전이 격화되는 경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력 점령할 수 있는 준비를 마친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날 연설에서 푸틴의 발언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우크라이나를 주권국가가 아닌 “꼭두각시 정권이 들어선 미국의 식민지”라고 격렬히 비난하면서 이 나라에 대한 강한 집착을 드러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단순한 이웃 나라가 아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 정신적 공간의 필수 불가결한 일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한 몸’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러시아 군을 돈바스 내 친러 공화국들로 파견하겠다는 푸틴의 이날 결정에 대해,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자 ‘우크라이나 침략의 전주곡’이라며 즉각 1차 제재를 단행했다. 미국은 러시아 국책 개발은행인 VEB와 방위산업 지원용 특수은행인 PSB 등 금융기관 2곳을 제재했다. 러시아 국채가 미국 및 유럽 시장에서 거래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푸틴과 가까운 러시아 지도층과 가족들도 제재 대상에 올렸다. EU와 미국의 우방인 오스트레일리아, 일본도 제재에 동참했다. 특히 유럽연합의 핵심국인 독일 정부는 ‘노르트스트림 2(러시아에서 독일로 이어지는 1230㎞ 길이의 천연가스 송유관)’ 사업을 중단시켰다. 서방국가들은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 본토를 침공할 경우 더 강도 높은 전면적 경제제재를 단행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푸틴은 “우리가 현재 협박당하고, 제재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주권과 국익, 가치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미국과 EU에 맞서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는 예비군 소집령에 국가 비상사태까지 선포하면서 러시아와 전면전 대비 태세로 돌입했다. 유럽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도의 군사적 긴장이 조성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2월21일부터 23일까지의 상황이다. 푸틴의 24일 선언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사실상 전면적 공격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위기는 한 단계 더 위험한 국면으로 돌입하게 되었다.
푸틴의 궁극적 목표는 ‘옛 소련의 영예 회복’과 ‘나토 중심의 유럽 안보구조 변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우크라이나는 다른 나라가 아니라 러시아의 일부다. 푸틴은 지난해 7월 공표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는 러시아와 하나의 민족이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는 모든 러시아 도시의 어머니다.”
하지만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위기와 전쟁의 본질적 원인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편입 가능성에 대한 러시아의 근본적인 안보 불안감 때문이다. 러시아가 주축이었던 옛 소련(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은 1991년 해체되었다. 소속 공화국들은 독립했다. 동유럽 국가들은 옛 소련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 이런 나라들 중 상당수는 나토에 가입했다. 푸틴에게 우크라이나는 나토의 동진(東進)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였기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푸틴은 미국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를 국제법적 구속력이 있는 문서로 보장해줄 것을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나토에 가입하고 말고는 해당국의 자유’라는 미국의 공식 입장 때문에 번번이 좌절감을 겪었다.
2019년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희극 배우 출신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후보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는 친서방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이 나라 개정 헌법에 ‘나토 가입을 추구한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게다가 지난 몇 년 동안 각종 여론조사에서 우크라이나 국민의 대다수가 러시아에 부속되기보다는 나토 가입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들이 푸틴의 위기감을 부채질했을 것이다.
2월21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국영 TV를 통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AP Photo
‘나토의 동진 금지’ 약속했었지만…
서방국가 일각에선 사태의 근본 해결을 위해 미국과 EU가 푸틴의 안보 불안감을 해소해줄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실제로 1990년 독일 통일에 앞서 미국과 서유럽은 소련에 ‘나토의 동진 금지’를 약속한 바 있다. 1997년에도 나토는 러시아에 ‘동진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런 약속들은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다.
2월24일 감행된 푸틴의 특별 군사작전으로 상황은 어떻게 변화될까? 미국과 EU는 푸틴의 조치를 침공으로 간주한 만큼 강력한 추가 제재를 가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한 뒤 미국과 EU의 경제제재를 받았다. 그러나 이 제재가 러시아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정도로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힌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이번엔 다를 것이다. 만약 러시아를 겨냥한 ‘전면적 경제제재’가 이루어진다면, 무엇보다 러시아 금융기관들이 전 세계 1만100여 금융기관들과 연계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을 이용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글로벌 증시와 연계된 러시아 주식시장 붕괴, 채권 거래 중단, 루블화 가치 폭락 등으로 인해 러시아 경제가 파탄에 빠질 수 있다. 생필품 품귀 및 가격인상은 물론 연금 및 저축액의 가치가 줄어들어 러시아 국민들은 심각한 경제적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이는 2024년 재선을 노리는 푸틴에게도 정치적 치명상이 될 수 있다.
최근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통해 밀월관계를 과시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러시아에 원조의 손길을 내밀 가능성도 점쳐진다. 최근 중국은 향후 30년간 러시아산 천연가스 구매를 계약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서방국가들의 전면 제재는 러시아와 거래하는 중국 기업들에까지 미칠 것이다. 중국 역시 러시아 원조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2월22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를 겨냥한 첫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EPA
서방 측의 전면 제재 카드에 대항해서 러시아도 보복에 나설 것이다. 러시아는 EU에 천연가스와 석탄, 원유 등을 대거 공급하는 주요 수출국이다. EU의 연간 액화천연가스 수입 가운데 약 40%가 러시아산이다. 설상가상 전 세계 천연가스 공급의 3분의 2는 일찌감치 계약된 상태여서 EU가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를 들여오지 못하면 대체 수입원을 찾기도 힘들어 에너지 가격의 급등이 불가피하다. 미국 역시 글로벌 에너지 가격이 치솟으면 가뜩이나 인플레이션으로 허덕이는 시민들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될 것이다.
푸틴은 최근 미국에 제시한 문서에서 우크라이나의 항구적인 나토 가입 금지, 나토의 추가 확장 중단, 러시아 국경지역에 대한 공격무기 시스템 배치 중단 및 유럽 내 병력 배치를 나토가 동진하기 전인 1997년 상태로 복귀시킬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 같은 조건 가운데 미국이 쉽게 받아들일 만한 것은 없다. 현재의 유럽 안보 지형을 30년 전으로 되돌리라는 요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국과 EU는 전면 제재 카드를 일단 유보한 채 외교적 해법을 강조하며 푸틴이 우크라이나 공격이라는 레드라인을 넘지 않길 잔뜩 기대해왔다. 그러나 푸틴의 2월24일 특별 군사작전은 모든 것을 허사로 만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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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전쟁, 원인은 미국이다” 석학의 파격주장, 美 발칵 [박현영의 워싱턴 살롱]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전쟁이 두 달을 넘겨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전쟁이 일어난 근본 원인에 대한 논쟁이 활발하다. 미국 학계와 정계 일각에선 전쟁 원인을 기존 통념과 다른 시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가 일고 있다. 현실주의 국제관계 이론의 대가인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가 대표 주자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과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 동맹 규합에 전념할 때 전쟁이 발발한 근본 원인에 주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전쟁의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상황 악화를 막고 전쟁의 끝도 가늠할 수 있다면서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지만, 그것과 전쟁이 일어난 원인은 구분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은 미국이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와 여야 정치권, 주류 학계·언론이 볼 땐 매우 파격적인 주장이다. 미어샤이머 교수 자신도 “일반 통념에 반대되고, 주류 사회에서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 소수설”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주류 언론이 미어샤이머 교수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면서 그의 이론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지난 3월 뉴요커는 ‘존 미어샤이머가 우크라이나 위기에 대해 미국을 비난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왜 서구는 우크라이나 위기에 주로 책임이 있는가’를 제목으로 한 그의 기고를 실었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기고에서 “푸틴이 전쟁을 시작했고 전쟁 전개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가 왜 그랬는지는 다른 문제”라고 밝혔다. 이어 “서구의 주류 견해는 (푸틴이) 구소련의 형태를 띠는, 보다 위대한 러시아를 만드는 데 전념하는 비이성적이고, 이해하지 못할 침략자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푸틴이 홀로 우크라이나 위기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는데, 이 같은 주류의 시각은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서구, 특히 미국이 우크라이나 위기에 주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씨앗은 2008년 4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 뿌려졌다고 봤다.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행정부는 이 회의에서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가 나토 회원국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푸틴과 러시아는 즉각 반발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러시아에 대한 “실존적 위협(existential threat)”으로 여기며 이를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천명했다. 러시아가 레드라인을 그었는데도 미국은 경고를 무시했다.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 대한 “서구의 방어벽(bulwark)”으로 삼으려 했다는 게 미어샤이머의 시각이다. 당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러시아를 자극할 것이라며 반대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미어샤이머는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는 나토, 경제적으로는 유럽연합(EU)에 편입하고, 이념적으로는 친미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려는 전략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결국 미국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가 2014년 2월 ‘메이단 혁명’으로 친러 성향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축출하자 이에 반발한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동부 돈바스 지역 내전을 부추겼다고 봤다.
그가 보는 전쟁의 가장 직접적 원인은 지난해 11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디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이 체결한 ‘미국-우크라이나 전략적 파트너십 헌장’이다. 이 헌장은 2008년 부쿠레슈티 나토 정상회의를 언급하면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한 미국의 약속을 재천명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끓는 점에 도달했다”고 경고했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포기를 서면으로 약속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응하지 않자 푸틴이 “나토로부터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침공했다는 게 미어샤이머 교수의 시각이다.
주류의 시각에서는 우크라이나 국민이 나토 가입을 원하고, 모든 나라는 스스로 외교 정책을 결정할 수 있다고 반론을 제기한다. 또 모든 나라가 국경을 접하는 이웃 국가의 성향을 선택할 수 없는데, 러시아는 접경하는 우크라이나가 서구화되는 것을 무력으로 막겠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미어샤이머 교수는 “서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러시아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반박했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1962년 소련의 쿠바 미사일 기지 건설로 미·소가 대립한 군사 위기를 거론하며 당시 미국이 지금의 러시아가 느끼는 것과 같은 존재론적 위협을 느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중국이 만약 미국의 이웃인 멕시코나 캐나다와 손잡고 중국군을 주둔시키려 하면 미국은 가만히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미어샤이머는 지금 미국에 가장 큰 적은 러시아가 아닌 중국이며, 러시아를 대적하는 데 모든 자원을 쏟아붓는 것은 미국 국익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고 격려하며 장기전으로 끌고 갈 게 아니라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고 중국과 전략적 경쟁에 전념할 것을 주문했다. 빠른 종전을 위해서는 우크라이나의 중립 선언이 해법이라고 제안한다.
미어샤이머의 전쟁 원인론을 놓고 “푸틴에게 면죄부를 주려 하는가”라는 비판이 잇따른다. 단 미국의 진짜 경쟁자는 러시아가 아닌 중국이라는 지적엔 동조하는 여론도 꽤 있다.
한편 랜드 폴 상원의원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미어샤이머 교수 의견을 언급하며 미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폴 의원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반대하면서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 되면 나토와 러시아 간 전쟁이 일어날 경우 미군이 참전해야 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이에 대해 블링컨 장관은 우크라이나와 조지아, 몰도바 등 러시아가 공격한 나라들은 나토 회원국이 아니라는 공통점이 있다면서 나토 회원국이 되면 러시아가 침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반대 주장을 폈다. 또 우크라이나가 자신의 미래와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그들의 기본적 권리라고 옹호했다.
[분석]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고전하는 5가지 이유…라브로프 “정전 협상 매일 접촉”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2단계’를 선언하고, 동부에 있는 돈바스 지역의 ‘완전 해방’에 주력하겠다고 밝힌 지 몇 주가 지났지만, 이렇다할 전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러시아군은 돈바스에서 몇km 밖에 진전을 못했다”며 “현재 러시아군은 하르키우주 이지움 동쪽과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최근 언론에 설명했습니다.
당초 5월 9일 이전에 러시아가 돈바스를 장악한 뒤 우크라이나 전쟁 승리를 선언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5월 9일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에 승리한 날로, 러시아에서 ‘전승 기념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매년 이 날이 되면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대규모 열병식을 여는 등 곳곳에서 각종 행사를 진행합니다.
1. 상당한 전력 손실
동부 지역 공세를 위해 수도 크이우(러시아명 키예프) 방향 병력을 퇴각시키고 전열을 가다듬었던 러시아가 전세를 진전시키지 못하는 이유로 첫째, 전쟁이 장기화하는데 따른 후유증이 꼽힙니다.
전력 손실이 상당하고 러시아군 장병들의 피로도가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영국 국방부는 30일자 우크라이나 전쟁 최신 정보 보고에서, 러시아군은 “북동부 진격에 실패하면서 (전투력이) 고갈된 서로 다른 부대를 합치고 재배치해야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재배치 되는 부대) 대다수가 사기 저하에 시달리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흡한 전술 조율 문제가 여전하다”며 “부대 차원의 기술 부족과 일관성 없는 공중 지원으로 국지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전투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정부도 앞서 같은 맥락의 분석을 내놨습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지난 26일 독일 람스타인 미 공군기지에서 개최한 40개국 국방장관 회의에서 “러시아는 개전 후 지상군 전력을 매우 크게 손실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장비도 상당히 많이 잃었고, 정밀 유도탄도 많이 썼다”면서, 따라서 “군사적 역량 면에서 전쟁을 시작했을 때보다 약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2. 우크라이나 강력한 항전 의지
우크라이나 측의 강렬한 저항도 현재 전황을 가늠하는 주요 요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최근 동부 전선에서 우크라이나 정예군은 러시아군을 10차례 가까이 격퇴하며 방어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러시아 측이 사실상 장악한 남동부 마리우폴에서 5월 9일에 맞춰 열병식을 개최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으나, 시내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우크라이나 측 병력 수천 명이 여전히 저항하는 중입니다.
제철소에 남은 우크라이나 병력에 러시아 측이 수차례 항복을 요구했으나, 해당 병력은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3. 미국 등 무기 공급 확대
아울러,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무기 공급을 확대하고 있는 것도 우크라이나의 항전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미국 등 30여 개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군수 지원 규모는 약 50억달러로 추산됩니다.
이 가운데, 미국의 지원액이 가장 많은 37억달러를 차지합니다.
미국은 이밖에 물량으로 구체화하기 어려운 정보 사안 등도 우크라이나 측에 적극 제공하고 있습니다.
4. 악천후 등 환경 요인
날씨도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전황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미 육군 정보당국 관계자는 30일 VOA와의 통화에서 “돈바스에 폭우가 이어지면, 러시아군 장병들은 빗속에서 싸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최근 봄이 무르익으면서, 돈바스 지역 토양이 진흙으로 변해 군용 차량 이동이 쉽지 않은 점도 러시아군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우기에 들어가면 땅이 질척거리는데, 탱크와 궤도차량들은 이런 환경에서 전진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포장 도로를 찾아 달릴 경우, 지형 지물을 파악하고 있는 우크라이나군에 표적으로 노출될 수 있어 러시아군이 이동 폭이 제한된 상황입니다.
야전에서는 날씨가 안좋을 수록 지형에 익숙한 쪽이 유리하다는 게 군사적 통설입니다.
5. ‘속도 조절’ 가능성
다만, 러시아군이 수도 크이우 점령에 실패한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동부 전선에서는 일부러 속도를 내지 않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와 폴리티코 등 29일 보도에 따르면, 미 고위 국방당국자는 러시아군의 움직임에 관해 “느리고 고르지 않다”며 이어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당국자는 러시아군이 크이우 진격 당시 보급선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속도전을 추구하다보니 전투를 지속할 자원이 고갈됐다고 지적했습니다.
동부 전선에서는 우크라이나군의 항전 속에 보급선이 길어지는 것을 피하려 러시아군이 서두르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 러시아 외무 “우크라이나와 매일 접촉”
이런 가운데,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평화적 관계를 회복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라브로프 장관은 30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의 단독 서면 인터뷰에서 이같이 언급하고, 정전 협상을 위해 우크라이나 측과 매일 접촉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우크라이나의 영구 중립, 비핵·비동맹·비군사화와 같은 분쟁 후 상황의 많은 요소와 안보 보장을 (협상 내용에) 포함해야 하는데 진전이 쉽지는 않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라브로프 장관은 이번 전쟁의 책임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있다고 거듭 주장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위기의 본질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우크라이나 위기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냉전 종식 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파괴적 노선을 먼저 언급해야 한다”고 라브로프 장관은 답했습니다.
라브로프 장관은 “나토를 확장하지 않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동진했다”고 강조하고 “몇년에 걸쳐 나토의 기반시설이 러시아 국경에 가까워졌다”고 덧붙였습니다.
라브로프 장관은 미국과 나토가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해야 이번 사태가 해결될 것이라면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스팅어와 재블린 미사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스팅어’는 대공 미사일, ‘재블린’은 대전차 미사일로서,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고 있는 대표적 무기들입니다.
VOA 뉴스 오종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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