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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선발된 12명의 정탐꾼.
이들 중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오늘의 말씀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성경이야기 하늘필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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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 주간기쁜소식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드디어 가나안에 도착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 하나님이 열두 정탐꾼에게 그 땅을 탐지하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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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igoodnews.or.kr

Date Published: 9/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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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와 갈렙의 신앙! (민 13:25-14:10) – 다음블로그

여호수아와 갈렙의 신앙! (민 13:25-14:10) 요 며칠 전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텔레비전을 끄고 신문을 감추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잠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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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6/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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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_ 4과- 믿음의 용사 여호수아와 갈렙 – 네이버 블로그

믿음_ 4과- 믿음의 용사 여호수아와 갈렙 ·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 2.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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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5/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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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폼드뉴스] [성경의 맥4] 여호수아와 갈렙의 자리

우리들 역시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두가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원망하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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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reformednews.co.kr

Date Published: 4/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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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노장, 갈렙 – 뉴스파워

두 사람은 무슨 듀엣처럼 주로 ‘여호수아와 갈렙’으로 불리워진다. 그렇게 된 사연은 모세가 12명의 정탐꾼을 선택하여 가나안 땅으로 보낸 민수기 13, 14장에 나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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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ewspower.co.kr

Date Published: 12/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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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4장 – 갈렙의 믿음 – 성경 하루한장!

(수 14:1)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받은 기업 곧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이 분배한 것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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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usicina.tistory.com

Date Published: 2/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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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와 갈렙은 생존하니라(민14:36~38) – 새안교회

그러나 10지파장과 여호수아 및 갈렙의 보고가 전혀 달랐습니다. … 보고는 불신의 보고였고,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는 믿음의 보고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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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aeanchurch.tistory.com

Date Published: 4/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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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믿음의 사람 – 국민일보

민수기 13장 25~33절 본문 말씀에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의 태도와 다른 열 명의 정탐꾼들의 불신앙적 태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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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ews.kmib.co.kr

Date Published: 7/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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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와 갈렙 – 소리

또한 음부의 권세가 절대로 이기지 못하는 강력한,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를 함께 세워나가는 복된 새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광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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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ry.or.kr

Date Published: 4/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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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렙의 믿음을 축복하신 하나님 –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받은 기업 곧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이 분배한 것이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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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hangmoolee.tistory.com

Date Published: 12/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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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구원받은 여호수아와 갈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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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

  • Author: 하늘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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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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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올해는 믿음의 세계로

오늘은 2009년 새해 두 번째 주일입니다. 저는 올 한 해 우리 교회 형제자매님들이 막연하게 이론으로 알고 있었던 믿음의 세계로 발을 한 번 내딛어서 성경이 그대로 이루어지는지, 내게도 하나님이 정말 살아서 역사를 하시는지 시험해 보면서 믿음으로 달려 나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는 형제자매라면 누구든지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우리 교회 안에 역사하시는 걸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게도 일하실까? 나도 기도 하면 응답 받을 수 있을까? 나는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이 과연 해결해 주실까?’ 하는 부분에 대해서 분명한 답을 못 하는 분이 정말 많습니다.

주님을 경험하는 신앙

만일 여러분이 예수님의 피로 죄가 사해졌다는 사실을 마음에 받아들이면 여러분은 가장 큰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 사실을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거나 믿음으로 사는 것을 부담스러운 일로 여겼을 겁니다.

저는 올해 우리 교회 형제자매 모두가 믿음으로 달려 나가도록 밀어주고 싶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믿음을 경험하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는, 대단히 놀라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가정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즉 아이가 아프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이 문제를 하나님께 맡겼으니 이 문제는 더 이상 내 문제가 아니니까 나는 쉴 수 있겠다’ 하는 마음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안 도우시면 하나님 믿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삶에 크고 작은 문제가 일어날 때 주님이 일하시는 걸 실제로 경험하면 여러분의 삶은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비를 주시고

몇 년 전에 대학생을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으로 파송하기 위한 워크숍을 하면서 제가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들, 부모님에게 비행기 표값 달라고 하지마라. 너희들은 하나님의 자녀니까 기도해서 믿음으로 비행기 표값을 구해라.” 갑자기 분위기가 가라앉더니 학생들 얼굴이 어두워졌습니다.

그 후 한 주쯤 지나자 한 학생이 나와서 간증을 했습니다. “외할아버지가 미국에 계시는데 얼마나 인색하신지 용돈을 10불 이상 받아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이번에 외할아버지가 1,500불을 보내셨어요. 제가 멕시코로 파송된다는 말도 안 했는데….”

며칠 후에는 한 여학생이 간증을 했습니다. 그 학생은 어머니한테 하나님께서 비행기 표값을 줄 테니 걱정 말라고 했더니, 어머니가 “하나님이 하늘에서 떨어뜨려 주기라도 하냐?”고 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야, 비행기 표 값 마련되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떨어뜨리시더라”고 하면서 그 돈이 어떻게 생겼는지 이야기했습니다.

그 학생이 사는 동네는 아파트를 한참 짓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파트 건설업체에서 반장인 그 학생의 어머니를 찾아와 아파트 짓는데 잘 협조해 달라며 200만 원을 주더라는 겁니다. 안 받겠다고 사양했지만 이웃 사람들에게 아파트 짓는 것에 대해 말만 좋게 해달라고 하면서 주더라는 겁니다.

그 학생의 어머니가 ‘내 딸 비행기 표값이 200만 원 필요하다더니 하늘에서 이렇게 떨어뜨려 주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 돈을 받았다고 합니다. 딸이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것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라며 하나님을 경험했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생각을 버리고

여러분, 인간의 생각으로 보면 죄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양심의 가책을 받은 일, 거짓말한 것, 음란한 마음을 따라 행한 걸 생각하면 어떻게 의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생각입니다.

이제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를 보세요. 전에는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좋아 보이는 대로 했지만 자신의 생각을 따라 산 결과가 실패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제는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이 어떠한지 성경을 펴 보십시오.

가나 혼인 잔치 집에 포도주가 모자랐을 때 예수님이 포도주를 만들기 위하여 “항아리에 물을 채워라”고 하셨습니다. 하인들은 ‘이것은 물이지 포도주가 아니야’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포도주라고 하셨습니다.

하인들은 갈등했습니다. ‘내 말을 따를 것인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를 것인가? 내 판단이 옳은 것인가, 예수님의 판단이 옳은 것인가? 그렇지, 예수님이 옳지. 내가 볼 때 물이지만 예수님이 포도주라고 하시면 포도주야’ 하며 떠다주었더니 포도주가 되어 있었습니다.

말씀을 따랐더니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 된 병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38년 동안 누워있으면서 다리가 말랐고 일어서도 걸을 만한 힘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주여, 물이 동할 때 나를 물에 넣어줄 자가 없어 나보다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38년 된 병자는 갈등했습니다. ‘난 다리가 말라 못 걷는데 날 보고 걸어가라고? 그런데도 말씀에는 걸어가라고 하네. 내 생각이 옳을까,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이 옳을까?’ 자기 생각을 버리고 말씀을 따라 한 번 일어나 걸어봤더니 예수님 말씀대로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신앙은 아주 간단하고 단순합니다. 내 생각이 옳은지 예수님의 생각이 옳은지 그것만 정확하게 구분하면 신앙이 됩니다. 그래서 노인이나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게 신앙입니다. 저도 믿음 있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내 생각에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인데,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이루어지는 걸 한두 번 경험하다보니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오늘 우리는 민수기 13장을 읽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모세를 통해서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들이 홍해에 이르렀을 때 앞에는 홍해가 있고, 뒤에는 애굽 군인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때 모세가 손을 내미니까 바람이 불면서 바닷물이 갈라져서 바다를 육지처럼 걸어갔습니다. 그들은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그들이 바다를 다 건넜을 때 바로의 병사들도 바닷속으로 따라왔지만, 모세가 다시 손을 내밀자 바닷물이 합쳐지면서 그들이 다 죽었습니다. 그걸 보고나서 그들은 다시 진행했습니다.

도중에 배가 고플 때는 하나님이 만나를 내려주시고, 목이 마를 때는 반석에서 나는 물을 먹게 하시고, 햇볕이 뜨거울 때는 구름 기둥으로 가려주시고, 추운 밤에는 불기둥으로 덮어 따뜻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드디어 가나안에 도착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

하나님이 열두 정탐꾼에게 그 땅을 탐지하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가서 과일이 크고 풍성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걸 보고 왔습니다. 그들 중 여호수아와 갈렙은 큰 포도송이를 막대에 끼워서 메고 석류와 무화과를 가지고 와서 가나안 땅을 호평했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열 명은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는데 키가 장대하고, 힘이 세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처럼 보였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정탐꾼들이 가나안 복지(福地)에 들어가려고 했을 때 그곳의 자손들은 장대한 자손이라는 것 때문에 부담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 없이 어떤 문제를 처리하려고 할 때는 부담스럽지만, 하나님이 계셔서 이 문제를 능히 해결하신다는 믿음이 있으면 문제가 안 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우리를 가나안 복지에 들여보내려고 애굽에서 이끌어내신 후 지금까지 인도하신 것을 보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워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다.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했습니다.

물을 주시겠다는 확신이

우리가 김천시 대덕면에 수양관을 건립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장소가 좁아서 별관을 지었습니다. 새 건물을 지었지만 물이 부족했습니다. 하루에 70톤 정도 나오지만 필요한 양은 300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지하수를 1,000미터 정도 팠지만 물이 전혀 나오지 않고 돌이 깨지면서 생기는 가루만 뿌옇게 날렸습니다. 혹시 200미터만 더 파면 물이 나올까 싶어 팠지만 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1억 가까운 돈을 들였지만 지하수를 찾지 못해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한번은 교회 어르신 한 분이 지하수 박사를 불러보라고 하셔서 그분을 불렀습니다. 그분이 지하수 판 데가 어딘지 물어 보여줬더니 “여기뿐 아니라 이 산에는 물이 안 나온다”고 하기에 제가 하도 답답해서 말했습니다. “박사님, 여기 물 안 나오는 거 나도 알아요. 물 안 나온다고 이야기하지 마시고 물 나온다고 하세요. 그 소리 들으려고 불렀어요.”

IYF 월드캠프가 가까워질수록 제 마음은 매우 암담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1주일 기도했을 때 아무렇지 않았는데 2주일 동안 기도하면서 제 마음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이 산을 살 때, 산으로 올라오는 도로를 낼 때, 산 아래에 다리를 놓을 때, 전기와 전화를 설치할 때, 산림훼손 허가를 받을 때, 건축할 때 하나님이 도우신 간증들이 떠오르면서 ‘이제까지 도우신 하나님이 왜 물이 부족한 문제를 도우시지 않겠나? 틀림없이 물을 주시겠다’는 생각이 들자 평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시며

얼마 후 월드캠프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는데, 진행하는 형제가 “여러분, 물이 충분하니 마음껏 쓰세요”라고 하는 겁니다. 그 말에 깜짝 놀라 옆에 있는 목사님에게 “저게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물이 남는다며 설명을 했습니다.

1,200미터를 팔 때 펌프를 달고 ‘케이싱’이라는 큰 파이프를 박아가면서 샘을 팠는데, 거기서 물이 안 나오니까 그 구멍을 막아야 했습니다. 그대로 두면 파이프가 녹슬어 지하가 오염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파이프가 깊이 들어가서 안 뽑혀지자 작업하던 형제가 포크레인을 끌고 와서 파이프에 걸고 밀었다 당겼다 옆으로 돌렸다 하면서 파이프를 흔들었는데 “퍽” 하며 물길이 솟았다는 겁니다. 형제가 “물 나온다”고 소리치자 거기 있던 형제자매들이 감격해서 양푼을 두들기며 춤을 췄다고 합니다. 물의 양을 재보니까 하루에 필요한 물이 300톤인데 450톤이나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적인 면으로 불가능한 많은 일들을 이루셨습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달려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사단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을 넣어주기 때문에 믿음으로 달려가려고 하면 부담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나는 구원받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 성경을 조금 더 배운 다음에 믿음으로 살아야겠다’며 미루게 합니다.

그러다 보면 구원 받은 지 1년, 2년, 10년이 되어도 한 번도 믿음으로 살아보지 못하게 됩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몇 번 기도 하다가 ‘나는 믿음 없어서 안 되겠다’ 며 인간적인 방법으로 처리해 버리기 때문에 예수님을 경험할 수 없는 겁니다.

역사하신 하나님을 기억한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도우신 일들을 기억했다고 합시다.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안 보내려고 했지만 하나님이 10가지 재앙을 내려 우리를 보내주었다. 홍해를 만나 원망했지만 모세가 손을 내밀었을 때 홍해가 갈라져 바다를 건넜지. 애굽 병사들이 우리를 쫓아오다가 홍해에 빠져 죽었지.’

‘우리가 광야생활을 할 동안 더울 때는 구름기둥으로 덮어주시고 추울 때는 불기둥으로 따뜻하게 해 주시고 메추라기와 반석에서 나는 물도 주셨어. 이런 하나님이 계신다면 큰 네피림 자손이 무슨 문제가 될까?’ 하는 결론이 나옵니다. 정탐꾼 중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믿었지만 나머지 10명은 지금까지 역사하신 하나님은 다 잊어버리고 장대한 네피림 자손만 쳐다보며 두려워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속해 교회와 한마음이라면 여러분은 교회의 한 지체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여러분이 당하는 모든 문제도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믿음으로 도전할 때

정상적인 사람이라도 하루에 3천~1만 개 정도 암세포가 생기지만 우리 몸 안에 있는 NK(Natural Killer)세포가 암세포를 이깁니다. 여러분이 암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다는 것은 NK세포가 암세포와 열심히 싸워 이겼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왜 암에 걸리게 됩니까? 우리가 고민하고 괴로워할 때 NK세포가 힘을 잃는데 그때 암세포가 ‘기회는 이때다’며 살아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암환자가 암 수술을 받았지만 또 재발하는 건 수술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NK세포가 힘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문제를 없애야 하는 게 아니라 문제가 있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셔서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믿음으로 도전해 나갈 때 하나님이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니까 우리가 힘을 얻는 겁니다. 그런 경험을 열 번만 하면 믿음의 용장(勇壯)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놓고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고 하나님 말씀은 어떤지 정리해 보세요.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실런지 아닐런지를 계산해 보세요.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안 그러면 저는 망합니다. 제가 망하더라도 인간적인 방법은 쓰지 않겠습니다’ 하며 믿음으로 부딪쳐 보십시오. 하나님이 응답하시면 ‘믿음으로 사는 게 이런 거구나’ 하면서 다른 문제 앞에서도 하나님이 응답하시겠다는 마음이 일어날 것입니다.

복음을 위하여

우리 선교회는 이번에 아프리카 텔레비전 방송국 허가를 기적적으로 받았습니다. 저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다 복음을 들을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어 정말 기쁩니다. 우리가 작년에 가나와 케냐에서 IYF 월드캠프를 개최한 이후 다른 나라에서도 월드캠프를 유치하려고 총리들이 앞다투어 저를 만나려고 하고 캠프에 필요한 땅까지 제공하려는 정부도 많습니다. 우리는 아프리카에 방송국뿐만 아니라 학교도 세우고 예배당도 지어서 복음의 일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잘 먹고 잘 살다 죽는 것보다 십자가에 피 흘리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드려서 여러분은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은 여러분을 위해서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삶을 산다면 우리 교회를 통해서 전 세계가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려 보십시오. 가난하다고 생각지 말고 하나님께 드려서 더 가난해지는지 시험해 보십시오. 저는 지금까지 정상적인 사례비를 받지 않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이 저에게 필요한 것들을 풍성하게 채워주셨습니다. 저는 그런 하나님을 믿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막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여러분의 모든 문제 하나하나를 믿음으로 해결하는 사람이 됩시다. 하나님은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게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누구의 눈으로 볼 것인가?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민 14:6~9)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니까 우리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될 거야. 우리는 이길 수밖에 없어. 그들은 우리의 밥이야’ 하며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른 열 명은 장대한 네피림 후손을 보고 무서운 생각이 들자, 그 땅의 좋은 무화과나무와 포도도 보이지 않고 다만 그 땅이 험악하고 어둡게만 보였습니다. 사단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절망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무슨 일이든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이 여러분 눈에 보인다면 여러분은 어떤 일 앞에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는 삶

‘내가 죄 사함을 받았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나? 아니면 왜 함께 하시지 않는가? 등 하나님을 막연하게 믿지 말고 성경을 찾고 찾아서 확실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아닌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이 다른 나라의 대통령과 국무총리도 만나게 하시고 전 세계의 대학생을 인도하게 하시고 텔레비전 방송국을 설립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 일하시기 위하여 여러분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여러분 안에 거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서 당신을 나타내시길 원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신다면 여러분은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얻게 될 줄 믿습니다.

– 2009.1.11주일 낮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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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와 갈렙의 신앙! (민 13:25-14:10)

여호수아와 갈렙의 신앙! (민 13:25-14:10)

요 며칠 전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텔레비전을 끄고 신문을 감추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잠겼습니다. 왜냐하면 보험금을 노리고 부모를 죽이고 두 누나들을 중태에 빠뜨린 패륜아가 붙잡혔기 때문입니다. 23살에 이 모 씨는 주식투자로 3천만 원을 잃자 지난달 21일 부모와 누나들 명의로 사망 시 최고 6천만 원이 지급되는 생명보험에 몰래 가입한 뒤 범행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특히 처음 흉기에 찔렸던 아버지가 야구방망이와 전기 충격기를 들고 저항하면서 복면을 썼지만 눈빛을 보고 아들인 것을 알아채고, 아들 이름을 불러가면서 ‘왜 그러냐?’며 꾸짖는 아버지를 수 차례 찔러 살해를 했고, 어머니가 ‘살려달라’고 애원을 해도 무자비하게 살해했으며 작은방에 있던 큰누나. 작은누나에게 흉기를 휘두른 뒤 집을 나와 200여m 떨어진 골목길에 주차된 차량 밑에 복면 등을 버리고 인근 친구 집으로 도주해서 인터넷을 통해 영화를 보는 등 알리바이 조작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현장검증에 30여명의 주민들이 지켜보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울분을 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인륜과 천륜의 죄를 범한 것입니다. 어쩌다가 이 사회가 이렇게 엉망이 되어 버렸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보면 그 가정에 특별한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가치관이 그런 자식을 길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황금만능주의가 이러한 사건을 몰고 온 것입니다. 뜻 있는 사람들은 이 나라의 교육 제도에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과연 올바른 도덕교육, 인성교육, 가정교육, 사회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은 이 나라 교육이 입시위주에 교육이 되다보니 참다운 인간교육은 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성교육은 뭐니뭐니 해도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주입해 주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은 오직 예수 안에서만 회복될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녀들에게 부족함이 없이 풍성하게 해주는 것도 좋습니다. 유학을 보내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그들에게 신앙의 깊은 뿌리를 심어줘야 합니다. 인간의 썩어진 심령을 지식으로 치유할 수는 없습니다. 그 어떤 조직으로도 할 수 없습니다. 정부에서도 안기부에서도 인간의 삐틀어진 인격을 고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이 치유 받을 수 있습니다. /믿/ 우리 모두는 이번 사건을 보면서 부모의 입장에서, 또 자식된 도리에서 깊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자식 된 심정에서 그 부모의 비극적 죽음을 바라보고 부끄러움에 울어야 하고, 부모의 심정에선 그 자식의 황폐한 영혼이 불쌍해서 울어야 합니다.

이 사건은 우리 믿는 사람들의 책임이 큽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회를 정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인 빛과 소금의 직분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우리 믿는 자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죄인 된 심정으로 이 나라와 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또 청소년들을 위해서 더욱 기도로 분발해야 할 때입니다. /믿/할/ ◀제목소개!▶

여러분! 하나님의 최고의 관심은 무엇이며 가장 소중히 여기시는 부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한 마디로 하나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자에게 관심을 가지시고 있으며 또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관심을 깊이 가지고 계십니다.

이스라엘백성을 애굽에서 나오게 한 역사의 주인공은 모세였지만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는 여호수아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왜 하나님이 이 사람들을 들어 쓰시고 높여줍니까? 그들 모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음으로 산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자를 들어서 큰일을 행하십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역사의 지배자이십니다.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십니다. 있게도 하시고 없게도 하십니다. 나라를 세우기도 하시고 없애기도 하십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우리 하나님은 어디에 관심이 있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간단한 고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고백을 들으시고 기뻐(흥분)하십니다.

우리가 주일 날마다 예배드리는 것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여러분이 하는 기도와 봉사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주시면서도 우리가 드리는 조그마한 것으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고, 위에 있을지언정 아래에 있지 않고 남에서 퍼줄지언정 꾸지 않고,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믿음을 갖지 않으면 하나님의 관심 밖으로 밀려납니다. 믿음이 없는 자는 하나님과 관계가 없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요1:12절에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예수님을 믿는(영접)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할/

오늘 본문은 믿음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즉 부정적인 자와 긍정적인 자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그 곳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이요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땅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생전에 자기 가족 무덤으로 사용된 몇 평 남짓 막벨라 굴 외엔 자기 땅을 갖지 못했고 이삭도 야곱도 이 가나안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 가나안을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주었더라면 큰 일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변 강대국들이 그 땅을 고분고분 넘겨줄 이가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을 멸절시키고 그 땅을 차지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을 관리할 수 있을 때까지 약 400년 간 당시 초강대국이었던 애굽의 자유지대인 고센 땅 품안에 숨겨두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세밀하시고도 정확합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애굽을 일컬어 ‘이스라엘 민족의 어머니 품과 같다. 어머니의 자궁 안’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요 영적 선민이요 영적 이스라엘입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을 위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예비하셨듯이 오늘날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새 하늘과 새 땅인 저 영원한 천국을 예비해 놓고 계십니다. /믿/

이스라엘이 400년의 종살이가 끝나고 모세의 인도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뒤 그들은 수없이 많은 역경을 물리치고 40년을 광야에서 고된 훈련을 마치고 이제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둔 바란 광야에 도착했습니다.

이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 족장 한 명씩을 택하여 12명을 가나안 땅에 보내어 그 땅을 탐지하라고 보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12명을 뽑았습니다. 이 12명은 각 지역의 대표들입니다. 요사이로 말하면 지역을 대표한 국회의원정도 됩니다.

▶12지파 중에 유다지파에서는 갈렙이, 에브라임 지파에서는 여호수아가 뽑혔습니다. 그들의 임무는 40일 동안 여리고, 예루살렘, 벧엘, 갈릴리, 헤브론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을 정탐하라는 임무가 주어졌습니다(믿13:17-20).

⑴그 땅의 가치에 대하여 알아보라고 보냈습니다. 땅이 좋은가 나쁜가? 성은 산성인가 진성인가? 나무가 많은가 적은가? 이것은 경제적 자원에 관한 정보입수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경제가 우선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⑵그 땅에 살고 있는 거민들의 힘에 관한 것입니다. 원주민이 강한가? 약한가를 알아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군사적인 정보입니다.

⑶그 땅의 실과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정탐사실에 관한 산 증거물을 제시하라는 것입니다. ⑷그들에게 ‘담대 하라’고 했습니다. 담대하지 않으면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12명의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에 잠입하여 모세의 명대로 자세히 정탐을 했습니다. 40일간을 정탐했으니까 자세히 알아볼 수가 있었습니다. 드디어 그들이 모세 앞에 보고를 합니다.

2.먼저 열 명의 정탐꾼들의 보고는 무엇인가?

⑴그 땅의 거민은 강하고 장대합니다. 그들의 신장에 비해 우리는 메뚜기와 같습니다. ⑵그들의 인구수도 우리보다 월등히 많습니다. 성읍에도, 해변에도, 남쪽에도 그들이 널려있습니다. ⑶그 땅은 과연 젓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포도 한 송이를 두 사람이 막대기에 매고 왔습니다. ⑷산에도 산성을 쌓았고, 평지에도 성을 쌓아 진영이 튼튼하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보고의 결론을 말하기를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이 우리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했으며 그곳에는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보니 마치 메뚜기와 같았습니다. 아마 그들이 보기에도 그렇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보고는 ‘그 땅 거민은 강합니다. 성읍은 견고합니다. 심히 큽니다. 아낙 자손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합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이 보였습니다.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부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한 마디로 그 땅을 정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한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민13:2절에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이라고 그 땅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①이들의 부정적인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의 반응은 무엇인가?

14:1절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며 말했습니다. ‘장관을 세워 지도자로 삼자. 모세를 따르지 말자.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②이때 ‘아닙니다. 정복할 수 있습니다.’ 하고 외치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인가?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열 사람은 ‘어렵다, 안 된다.’고 절망적이고 부정적인 보고를 하고 있을 때 두 사람은 ‘된다. 할 수 있다.’고 소리를 쳤습니다. 13:30절을 보세요!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할/

3. 두 사람의 보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해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과연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오직 우리는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그 땅 백성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그 땅을 정복하러 갑시다.’ /할/

여러분! 열 두 사람이 보고 느낀 것은 똑 같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의 관점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긍정적인 자화상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부정적인 자화상을 갖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들은 ‘할 수 없다.’는 자화상을 가졌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할 수 있다.’는 자화상을 가졌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들은 ‘하나님이 없다.’는 자화상을 가졌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자화상을 가졌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은 ‘스스로 메뚜기’라는 자화상을 가졌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는 자화상을 가졌습니다.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열 명의 정탐꾼은 안 되는 것만 보고 안 되는 것만 말하고 안 되는 것만 고르는 부정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안 된다고 믿기에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부정적인 사람은 똑같은 상황에서도 안 되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이요 긍정적인 사람은 되는 쪽을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런 부정적인 믿음의 소유자들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안 된다고 반대만 합니다. 미리부터 겁먹어 버리고 관심에 등을 돌립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과 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되는 것만 보고. 되는 것만 말하고, 되는 것만 고르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들어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다수를 찾지 않으시고 창조적인 믿음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눅9:62절에서 주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그렇습니다. 믿음은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또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믿고 바라보고 나아가는 긍정의 신앙이 꼭 있어야 합니다.

▶벳세다 광야에서 예수님을 아침부터 복음을 증거하고 계셨습니다. 점심, 저녁때가 지나 밤이 되었습니다. 온 무리가 온 종일 굶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 보내야지 허기져서 쓰러질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빌립이 부정 적은 보고를 합니다.

‘여기는 빈들입니다. 때가 이미 저물었습니다. 200 데나리온도 부족하겠습니다.’

그러나 안드레가 오병이어를 들고 있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와서 말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예수님은 이것을 받아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나누어주라고 하셨습니다. 다 배불리 먹고 열 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부정을 선택하지 않으시고 긍정을 선택하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400년 노예생활에서 해방시킨 이스라엘의 지도자입니다. 모세가 10가지 재앙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냈습니다. 홍해 앞으로 왔습니다. 그 때 노예를 잃어버린 바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로 잡으러 군사들을 이끌고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마침 홍해 앞에서 건너지 못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독 안에 든 쥐’라고 생각하고 신나게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죽이려고 하면서 외쳤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고 원망하며 부정적인 자화상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부정의 말을 하지 않고 긍정의 말, 믿음의 말을 했습니다. 사람 입장에서 말하지 않고 하나님 입장에서 말했습니다.

출14:13절에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긍정의 말대로 믿음의 말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기적의 언어는 기적을 끌어 드립니다. 기적의 말을 하는 것이 기적을 창조하는 근원입니다. /믿/

나폴레옹이 당당하게 한 말이 두개나 있습니다. 하나는 누구나 다 아는 말입니다.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라는 말이 없다.’는 말이고, 또 하나는 ‘내가 가는 길에는 언제나 길이 있다. 길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 얼마나 긍정적인 자화상입니까?

유명한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역사를 이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창조적 소수란 ‘적극적인 사고를 가지고 하면 된다. 해 보자는 결단을 가지고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입니다.

태평양에는 파도를 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산 덩이 같은 파도가 밀려와야 신이 납니다. 그들은 크고 거센 그 파도를 타고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타도를 타고 쏜살같이 내려가기도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악조건 속에서도, 절망 속에서도, 새로운 도전과 희망과 가능성을 발견했던 사람입니다. 남들이 다 포기할 때 의연히 일어선 사람입니다. 이제 죽었다고 통곡할 때 그게 아니라고 살 길이 있다고 소리쳤던 사람입니다.

똑같이 보고 왔는데 왜 이들에게 이런 가능성이 있었습니까? 그들이 배짱이 있어서 그랬습니까? 아니면 무슨 별난 전법이라도 있어서 그랬겠습니까? 아닙니다. 두렵고 떨리는 것은 그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땅이다. 하나님이 인도해주시면 우리는 그 땅을 들어갈 수 있다’고 외쳤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비결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 하나님이 들어가게 하시면’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문제를 밥으로 보는 신앙! 여러분, 어떠한 고난도 문제도, 역경도, 풍랑도, 시험도, 신앙의 밥으로 보십시오! 빌4:13절에서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할/ 하나님 안에서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런 신앙을 가진 자는 승리합니다. 세상을 이깁니다. 어떠한 조건도 환경도 이깁니다. /아멘!/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할 때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남한 전체를 이미 점령하고 있는 공산군을 물리치기 위해 인천 상륙작전을 통하여 허리를 끊으면 인천 남쪽에 있는 적들은 독 안에 든 쥐가 되리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안에서 참모들과 작전회의를 하면서 이런 구상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참모들은 절대 반대였습니다.

‘장군님! 안 됩니다. 인천 상륙작전은 99% 실패하는 길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상륙작전은 500번이 있었는데 거의 다 실패했습니다. 더구나 인천은 밀물과 썰물의 간 차가 짧아 상륙작전을 하다가 만일 지연되어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 상륙 작전하던 배는 갯벌에서 꼼짝도 못 하고 지상에 있는 적들은 그 표적을 백발백중 명중시킬 것입니다. 독 안에 든 쥐가 됩니다. 위험한 작전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때 한 사람이 긍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장군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한 예입니다. 인천보다 더 상황이 불리했던 곳입니다. 그 때 기상 전문가 ‘어밍 크리스티’ 박사의 말을 잘 따랐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곳 노르망디에는 프랑스군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거센 폭풍이 그곳에 불어 왔습니다. 프랑스군은 도저히 배가 뜰 수 없는 상황이라 모두 안심하고 방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티 박사는 1944년 6월 6일 하루만은 바다가 잔잔할 것이라고 예보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연합군 장군 ‘아이젠하워’는 그 날을 대비하여 상륙작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그의 말대로 그 날 갑자기 바다가 조용해 졌습니다. 방심하고 있는 프랑스군을 기습 공격하여 연합군의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장군님! 이번 작전도 하나님이 함께 하면 됩니다.’ /할/

맥아더 장군은 부정적인 보고를 듣지 않고 긍정적인 500분의 1의 성공을 받아 드렸습니다. 그리고 감행했습니다. 그리고 6.25를 승리로 이끈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할/

①본문 30절에서 갈렙의 외침을 보세요!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할/ 신앙은 쟁취입니다. 천국은 빼앗는 자의 것입니다. 축복도 탐내는 자의 것입니다.

갈렙은 그 땅을 취하자고 했습니다. 능히 이기리라고 했습니다. 이런 신앙이 기적을 일으킵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신앙은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뒤로 후퇴하는 것이 아닙니다. 올라가는 것입니다. 달려가는 것입니다. /믿/

②그런데 열 사람의 행동을 보겠습니다. 31절에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그들은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실망하고 좌절하고 낙심하고 포기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두려움이 아닙니다. 포기가 아닙니다. 도전입니다. 그들은 옛 생활로 돌아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민14:3절을 보자!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오늘날도 신앙 생활하다가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다시 세상으로 가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애굽은 세상입니다. 그들은 다시 옛날 노예 생활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돌아가면 죄의 노예밖에 되지 않습니다.

③부정적인 사람은 악평을 합니다. 32절에 보면 ‘악평하여 가로되’ 또 14:2절에 보면 ‘원망’하고 있습니다. 불 신앙입니다.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아주 비관적으로 확대해서 해석합니다.

조그마한 것은 아주 크게 확대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살리려고 데려왔는데도 그들은 죽이려고 한다는 부정적으로 반응합니다. 3절을 보면 자기들도 죽고 처자들도 다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또 부정적인 면으로 보아서도 안 됩니다.

▶사람들은 세상 살기가 위험하다고 합니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안전하다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안전합니다. 비행기사고, 자동차사고, 수없이 많은 사고가 나지만 우리는 사고가 안 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음식 속에는 암에 걸릴 요소가 많이 있기도 하지만 건강할 요소는 백 배나 많습니다. 결혼해서 싸우는 경우도 있지만 안 싸우고 잘 사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자녀를 낳아 기르면 잘 안되고 속상할 경우도 있지만 잘 자라서 훌륭하게 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생각을 가지고 믿음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믿음을 가진 여호수아와 갈렙을 찾으십니다. 부정적인 보고를 드린 열 명의 정탐꾼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도 그들은 그들의 믿음대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이스라엘의 국가의 기초를 세웠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되었고, 갈렙은 다윗의 도읍지 헤브론을 분 깃으로 받았습니다. 신앙의 사람 갈렙은 후에 그 나이 85세가 되었어도 그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더욱 더 큰 신앙으로 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드디어 이스라엘이 대망의 가나안 땅을 정복했습니다. 물론 여호수아와 갈렙을 주축으로 한 제2세대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각 지파별로 가나안 땅을 분배하게 되었습니다.

땅을 분배하는 일에 있어서 서로 좋은 땅을 얻기 위해 신경전을 벌리게 되었습니다. 어떤 지파는 불평이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공평하게 제비를 뽑아 분배했습니다. 그때부터 APT추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앙의 사람 갈렙은 모든 지파들이 다 기피하고 거절하는 헤브론 산지를 달라고 요구합니다.

수14:12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그 땅은 아직도 가나안 부족 잔당이 남아서 반격할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는 위험천만한 곳입니다. 그래서 모든 지파가 기피했습니다. 그런데 갈렙은 ‘그 산지를 내게 달라’고 합니다. 얼마나 당당한 선언입니까? ‘악조건을 내게 주소서! 불리한 조건을 내게 주소서! 어려운 일을 내게 주소서! 고난의 멍에를 내게 주소서! 남이 싫어하는 일을 내게 주소서! 십자가를 내게 주소서!’ 이런 뜻이 산지를 내게 달라는 갈렙의 외침 속에 들어있습니다. /할/

4. 부정적이고 불 신앙적인 사람들의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민13:31절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⑴현실만을 보게 합니다. 그들은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이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다고 했고,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고 했습니다.

불 신앙은 언제나 환경을 보고, 사람을 보고 조건을 보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열등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 보이지 않는 힘,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이것이 바로 불 신앙의 현주소입니다.

불 신앙에 빠진 이스라엘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골리앗을 바라보고 절망했지만 믿음의 사람 다윗은 ‘너는 칼과 단 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하고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⑵원망을 합니다. 이웃을 원망하고, 지도자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⑶남의 탓으로 모든 것을 돌립니다. ‘누구 때문이다.’ 남에게 탓을 돌립니다.

⑷과거에 매달리게 됩니다. ‘왕년에 네가 누구인데’ 부장이고, 사장이고, 회장이고, 짱이었다고 외칩니다.

⑸결국 그들은 망하고 맙니다. 14:35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고 했고, 37절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라고 했습니다.

5. 긍정적인 믿음의 사람들의 특징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⑴현실을 뛰어넘게 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할/ 문제를 밥으로 보는 사람을 하나님이 쓰십니다.

▶밥이 무엇입니까? 밥은 영양가입니다. 사자는 다니엘을 밥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사자 때문에 더 왕에게 신임을 받습니다. 사자는 다니엘의 밥이었습니다. 고래는 요나를 영양가 있는 밥으로 생각하고 요나를 삼켰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고래 때문에 니느웨에 가게 되었고, 니느웨 성에 회개의 복음을 던짐으로 그 성이 구원을 받습니다. 고래가 요나를 삼킨 것이 아니라 요나가 고래를 요리한 것입니다. 바로는 홍해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독 안에 든 쥐처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나중에 보니 홍해 때문에 모두가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 때문에 죽게 되었다고 원망했지만, 결과적으로 홍해는 이스라엘에게 맛있고 영양가 있는 밥이었습니다.

문제를 우리의 밥으로 보십시오. 여러분! 지금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건강이 문제입니까? 사업이 문제입니까? 무엇이 문제입니까? 문제를 밥으로 보십시오.

시29:10절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떠한 홍수 같은 문제가 다가온다 할지라도 그 홍수 위에, 그 문제 위에 하나님께서 좌정하고 계시면서 홍수를 다스린다는 말씀입니다. /할/

⑵미래지향적인 삶을 삽니다. 신학자 ‘틸리케’는 ‘겨자씨에서 새소리를 듣는 것이 믿음이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작은 씨앗이지만 거기서 거대한 나무를 보고, 새가 깃들이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⑶하나님 중심으로 삽니다. 준비된 예배자로 삽니다. ‘신전의식’의 사상으로 삽니다. 그리고 우리의 언행이 하나님에 의해 통제되고, 생각이 하나님의 지배를 받게 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됩니다.

⑷기도로 매달리며 삽니다. 5절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여기 ‘엎드린지라’는 말은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기도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말합니다. 여러분, 인생들이 만나는 모든 문제의 해결은 오직 기도밖에 없습니다. /믿/

⑸생명을 얻게 합니다. 본문 속의 불 신앙의 사람들은 가나안땅을 눈앞에 두고 다 죽었으나, 신앙의 사람들은 생명을 얻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요11장에서 우리 예수님도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리셨습니다. 예수만이 생명이요 부활이요 예수만이 영생이십니다. /믿/

6.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떤 신앙의 인물인가?

①창조적인 꿈을 가지고 목표를 세운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목표와 꿈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저도 목회하면서 목표와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소원은 ‘교회의 부흥’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 성도가 동참해서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 이 일에 우리 모두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목표를 세우면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루어 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개인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에 들어가려고 꿈과 목표를 세웠습니다. 오늘 여기 나온 성도들은 다 목표를 세운 분들입니다. 천국을 가겠다는 목표와 이 땅에 살면서도 여러분들의 사업의 목표와 꿈을 가지십시오! 다만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세우고 달려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그 꿈 위에, 목표 위에 축복을 주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할/

②그들은 긍정적인 삶에 자세를 가졌습니다.

그들은 적극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고백은 ‘우리가 탐지한 땅은 아름다운 땅이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하나님 안에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먼저 그 마음의 고백이 중요합니다. 왜?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중요합니다. 마음에 확신을 가지십시오. /할/

‘로버트 슐러’ 목사님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그러나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갈렙이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확신하는 고백입니다.

▶대원군은 술과 여자를 유난히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섭정관이 되기 전에 기생집 출입이 잦았습니다. 어느 날 술이 잔뜩 취하여 기생을 품에 안으려 하자 그 무명의 기생이 ‘당신이 품에 안을 것은 내가 아니라 이 민족이어야 합니다.’ 이 소리에 자신의 꿈을 바꾸어 드디어 천하를 호령하는 왕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적극적 사고가 ‘지그 지글러’ 박사가 막 뉴욕의 지하도를 들어서려고 할 때, 한 거지가 연필을 팔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들 그러하듯이 그는 돈 1불을 주기만 하고 연필을 받지도 않고 바쁘게 자신의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러다가 불현듯 발걸음을 돌려 그 거지에게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아까 1불의 대가로 연필을 달라’고 하자, 거지는 섭섭해하는 눈치로 연필을 건네줄 때, 지글러는 ‘당신도 나와 같은 사업가요’ 그의 등을 두들기며 이 말 한마디를 남기고 갔습니다. 그 거지는 그 말 한마디에 자신의 자화상을 바꾸고 후에 위대한 사업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할/

▶긍정적인 말은 사람을 살리지만 부정적인 말은 사람을 죽입니다.

어느 사모님이 대단히 내성적이고 말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사모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보다 심방을 가서 무엇이든지 칭찬을 해주라고 말했습니다. 사모님도 그게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어느 날 성도 집으로 심방을 갔습니다. 참으로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어느 것도 칭찬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 하나가 바로 예쁘게 수놓은 식탁보였습니다. 사모님은 칭찬할 것을 찾다가 ‘저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참 수를 잘 놓았네요. 어떻게 저렇게 수를 잘 놓았어요?’ 하고 칭찬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의외의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생전 말을 안 하던 사모가 그런 말을 하니까 그 집에 같이 심방 갔던 집사가 오해를 하고 ‘사모님이 욕심이 많아서 그렇게 어려운 집에 가서도 식탁보를 탐냈다.’고 떠들어댔습니다.

사모님은 이 말에 깊은 상처를 받고 ‘다시는 말하지 않으리라.’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기도 중에 성령 님은 ‘몰라서 그런 것이니 칭찬을 아끼지 말라.’는 음성을 듣고 계속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부정적인 입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긍정의 말을 합시다! 칭찬을 합시다! /할/

③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심을 믿는 위대한 신앙인들 입니다.

14:9절의 ‘무서워 말라’는 음성에 우리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두려워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믿는 확신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 신앙이 임마누엘의 신앙입니다.

⑴믿음의 눈은 하나님을 봅니다. ‘두려워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⑵믿음의 눈은 하나님의 가능성을 봅니다.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사 능히 이기리라!’ /아멘!/

⑶믿음은 절개를 지키는 것입니다. ▶어느 왕이 변장을 하고 민정시철을 나가서 생긴 이야기입니다. 왕이 길에서 아주 참신한 청년을 만났습니다. 왕은 그 청년을 시험해 보려고 다음과 같은 대화를 했습니다. ‘면장을 시켜 주면 할 수 있겠는가?’ ‘할 수 있습니다.’ ‘군수를 시켜 주면 할 수 있겠는가?’ ‘할 수 있습니다.’ ‘도지사를 시켜 주면 할 수 있겠는가?’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왕을 시켜 주면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왕이 묻자 그 청년은 왕이 뺨을 세차게 후려치면서 말하기를 ‘나보고 왕에게 반역하라는 말입니까?’ 왕은 뺨에서 불이 나는 것같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속으로 좋은 인재를 만났다고 기뻐하며 궁궐로 돌아 온 후 그를 등극시켜서 큰 벼슬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도 절개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도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삽시다! /할/ (2007년 8월 19일 대예배설교)

( Desire To Stay – Fariborz Lachini)

믿음_ 4과- 믿음의 용사 여호수아와 갈렙

믿음_ 4과- 믿음의 용사 여호수아와 갈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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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 과 주제 학습목표 말씀찾기 20 4 믿음의 용사

여호수아와 갈렙

본문말씀-민수기 14장 1~10절

외울 말씀-민수기 14장 9절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흔들리지 아니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지도자의

겸손과 용기를 배웁시다.

민수기 13장 3절- 12명 정탐꾼 파견

– 가데스바네아( 창 14장 7절-앤미스밧-거룩한 샘)

민수기 14장 30절

1)여호수아- ‘여호와께서 구원하심’이라는 뜻

2) 여호수아의 생애-

눈의 아들로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자

12명의 정탐꾼 중 1인

여리고성을 위시하여 많은 가나안 땅을 정복함

모든 지파를 소집하고 또 땅을 분배함

온 집 안이 여호와를 섬기기로 선포함

3)갈렙- ‘공격자’라는 뜻

갈렙의 생애- 여분네의 아들이자 악사의 아버지

가나안 12명의 정탐꾼 중의 1인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로운 직언을 한 자

노년까지 강성하여 헤브론을 기업으로 삼음

하나님 앞에서 성별된 자가 됨

민수기 13장 4~15 절 말씀

◀◀ 12명의 정탐꾼 이름??

삼무아 , 밧사 , 갈렙, 이갈 ,, 호세아 , 발디 ,,갓디엘 ,갓디 ,암미엘 ,스둘 , 나비 , 그우엘

가나안 땅 정탐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그들의 조상의 가문 각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

3.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바란 광야에서 그들을 보냈으니

그들은 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령된 사람이라

4. 그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르우벤 지파에서는 삭굴의 아들 삼무아요

5. 시므온 지파에서는 호리의 아들 시밧이요

6. 유다 지파에서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요

7. 잇사갈 지파에서는 요셉의 아들 이갈이요

8. 에브라임 지파에서는 눈의 아들 호세아요

9. 베냐민 지파에서는 라부의 아들 발디요

10. 스불론 지파에서는 소디의 아들 갓디엘이요

11. 요셉 지파 곧 므낫세 지파에서는 수사의 아들 갓디요

12. 단 지파에서는 그말리의 아들 암미엘이요

13. 아셀 지파에서는 미가엘의 아들 스둘이요

14. 납달리 지파에서는 웝시의 아들 나비요

15. 갓 지파에서는 마기의 아들 그우엘이니

16. 이는 모세가 땅을 정탐하러 보낸 자들의 이름이라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불렀더라

17.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그들을 보내며 이르되

너희는 네겝 길로 행하여 산지로 올라가서

18. 그 땅이 어떠한지 정탐하라 곧 그 땅 거민이 강한지 약한지 많은지 적은지와

19. 그들이 사는 땅이 좋은지 나쁜지와 사는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와

20. 토지가 비옥한지 메라른지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를 탐지하라

담대하라 또 그 땅의 실과를 가져오라 하니

그 때는 포도가 처음 익을 즈음이었더라

21. 이에 그들이 올라가서 땅을 정탐하되 신 광야에서부터 하맛어귀 르흡에 이르렀고

22. 또 네겝으로 올라가서 헤브론에 이르렀으니

헤브론은 애굽 소안보다 칠 년 전에 세운 곳이라

그 곳에 아낙 자손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가 있었더라

23. 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따니라

24.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포도를 베었으므로 그 곳을 에스골 골짜기라 불렀더라

25. 사십 일 동안 땅을 정탐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26.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

27.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28.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29.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민수기 14장

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5.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6.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

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12.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너로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13.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애굽인 중에서 주의 능력으로 이 백성을 인도하여 내셨거늘 그리하시면 그들이 듣고

14. 이 땅 거민에게 고하리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백성 중에 계심을 그들도 들었으니

곧 주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보이시며 주의 구름이 그들 위에 섰으며

주께서 낮에는 구름기둥 가운데서, 밤에는 불기둥 가운데서 그들 앞에서 행하시는 것이니이다

15. 이제 주께서 이 백성을 한 사람 같이 죽이시면 주의 명성을 들은 열국이 말하여 이르기를

16.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이 없는 고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

17. 이제 구하옵나니 이미 말씀하신대로 주의 큰 권능을 나타내옵소서 이르시기를

18.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과실을 사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고

아비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9. 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것 같이 사하옵소서

2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21. 그러나 진실로 나의 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으로 맹세하노니

22.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24.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르 온전히 쫒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25.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거하나니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로 하여 광야로 들어갈찌니라

26.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27.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29.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31.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32. 너희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33.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34.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수

사십 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그 사십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찌니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라 하셨다 하라

35.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단정코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리서 죽으리라

36.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으로 모세를 원망케 한 사람

37.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38. 그 땅을 탐지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

## 신명기 34장

http://blog.daum.net/lbsok/17176987 ….. 모세의 죽음

## 여호수아 6장

여리고성 무너짐

1.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2.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3.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4.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 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5.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 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6.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가라 하고

7.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그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갈지니라 하니라

8.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나아가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

9.그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행진하며

후군은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더라

10.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

11.여호와의 궤가 그 성을 한 번 돌게 하고 그들이 진영으로 들어와서 진영에서 자니라

12.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니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

13.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계속 행진하며 나팔을 불고

​ 무장한 자들은 그 앞에 행진하며

후군은 여호와의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니라

14.그 둘째 날에도 그 성을 한 번 돌고 진영으로 돌아오니라

엿새 동안을 이같이 행하니라

15.일곱째 날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도니 그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날뿐이었더라

16.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 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17.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기생 라합과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모두 살려 주라

이는 우리가 보낸 사자들을 그가 숨겨 주었음이니라

18.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19.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하니라

20.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21.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 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22.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이르되

그 기생의 집에 들어가서

너희가 그 여인에게 맹세한 대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라 하매

23.정탐한 젊은이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의 부모와 그의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고

또 그의 친족도 다 이끌어 내어 그들을 이스라엘의 진영 밖에 두고

24.무리가 그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불로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더라

25.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

26.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

27.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

##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였어요.

여호수아가 이끄는 동안 성경에 기록된 주요 사건들이 있어요.

첫째- 여리고성의 무너짐….. 기생 라합이야기-

둘째- 아이성의 참패- 아간의 罪

셋째- 머무른 태양과 우박

수7:1-15 아이성 참패로 마음이 녹아내림 요절/수7:13“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성결케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여 내일을 기다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의 중에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네가 그 바친 물건을 너의 중에서 제하기 전에는 너의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 [내용 관찰] 아이성은 여리고성에 비하면 한 주먹거리도 안된다. 그런데 참패를 당하고 백성들은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되었다. 하나님은 바친 물건을 도적질 한 죄를 지적하고 백성들이 성결케 되기를 원한다. [연구묵상] 1.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됨 (1-5) 2. 너희는 스스로 성걸케 하라 (6-15) 패전의 원인은 이스라엘이 범죄로 인한 것인데 곧,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질 하고 사기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백성들로 성결케하고 하나님의 것을 무리 중에서 제하라고 했다. 망령되게 하나님을 것을 훔친 자와 모든 소유를 불사르고 깨끗케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니 죄악이 있는 곳에 함께 하실 수 없다. 실패한 일들로 낙심하거나 분노하거나 원망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성결케 해야 한다. [느낀 점] 전쟁에서 쫓기고 전사자가 생기는 상황은 참 안타깝다. 이들이 반드시 죄가 있어서 죽은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의 잘못으로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다

## 여호수아 10장

7.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용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올라가니라 8.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그들 중에서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신지라 9.여호수아가 길갈에서 밤새도록 올라가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니 10.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시므로 여호수아가 그들을 기브온에서 크게 살륙하고 벧호론에 올라가는 비탈에서 추격하여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이르니라 11.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우박 덩이를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았더라 12.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 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야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13.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4.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15.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길갈 진영으로 돌아왔더라 16.그 다섯 왕들이 도망하여 막게다의 굴에 숨었더니 17.어떤 사람이 여호수아에게 고하여 이르되 막게다의 굴에 그 다섯 왕들이 숨은 것을 발견하였나이다 하니 18.여호수아가 이르되 굴 어귀에 큰 돌을 굴려 막고 사람을 그 곁에 두어 그들을 지키게 하고 19.너희는 지체하지 말고 너희 대적의 뒤를 따라가 그 후군을 쳐서 그들이 자기들의 성읍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고 20.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크게 살륙하여 거의 멸하였고 그 남은 몇 사람은 견고한 성들로 들어간 고로 21.모든 백성이 평안히 막게다 진영으로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이르렀더니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 22.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르되 굴 어귀를 열고 그 굴에서 그 다섯 왕들을 내게로 끌어내라 하매 23.그들이 그대로 하여 그 다섯 왕들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을 굴에서 그에게로 끌어내니라 24.그 왕들을 여호수아에게로 끌어내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을 부르고 자기와 함께 갔던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가까이 와서 이 왕들의 목을 발로 밟으라 하매 그들이 가까이 가서 그들의 목을 밟으매 25.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너희가 맞서서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하고 26.그 후에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쳐죽여 다섯 나무에 매달고 저녁까지 나무에 달린채로 두었다가 27.해 질 때에 여호수아가 명령하매 그들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들이 숨었던 굴 안에 던지고 굴 어귀를 큰 돌로 막았더니 오늘까지 그대로 있더라

사진 출처 : http://blog.daum.net/lbsok/17177092 사진출처 : 각…교회 블로그 ^^

믿음의 노장, 갈렙:한국 교회의 나침반 뉴스파워(newspower.co.kr)

믿음의 노장, 갈렙 믿음은 인내 정도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죽는 날까지도 기다려야 하며, 죽은 후에라도 성취될 수 있음을 알아야 김윤희

1. 갈렙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

1951년 4월 19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유명한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은 미국 국회에서 행해진 자신의 은퇴 연설 중 군대 막사에서 불리워졌던 오래된 가요를 인용하여 “노장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갈렙이라는 인물은 어쩐지 그러한 노장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왜 그런 것일까?

가데스 바네아에서(민 13∼14장)

‘갈렙’ 하면 같이 떠오르는 인물이 ‘여호수아’이다. 두 사람은 무슨 듀엣처럼 주로 ‘여호수아와 갈렙’으로 불리워진다. 그렇게 된 사연은 모세가 12명의 정탐꾼을 선택하여 가나안 땅으로 보낸 민수기 13, 14장에 나오는 가데스 바네아 사건(민 13:26; 참고: 민 32:8; 신 1:19)에서 기인한다.

이 이야기는 출애굽의 세대들에게는 ad와 bc를 갈라놓는 운명적 사건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러한 운명이 확정지어지기 전에 그러한 불운을 막으려고 필사적으로 위협을 무릅쓰고(민 14:10, 온 회중이 그들[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 하는 동시에) 믿음의 관점으로 상황을 보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을 설득했던 두 젊은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여호수아와 갈렙’이다.

이 사건의 시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한 후 시내산에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체결하고 성막을 완성한 후 시내산을 출발하여 바야흐로 가나안 땅으로 진입하려는 때였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기본적인 입문이 끝나고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바로 직전의 순간이었다.

갈렙은 여분네의 아들로서 유다 지파를 대표하여, 각 지파들을 대표한 다른 리더들과 함께 12명의 정탐꾼들 중의 하나였다. 물론 여호수아도 그들 중의 하나였다. 문제는 그 12명이 똑같이 땅을 정탐하고 같은 것을 보고 관찰했으나 그 결과에 있어서는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12명 중 10명은,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분명했으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며 아낙 자손의 대장부들을 보았고, 자신들은 그들에 비해 메뚜기 같은 정도에 불과하며 능히 올라가서 그들을 쳐서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민 13:27∼29, 31∼33).

이와는 대조적으로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대로 그 땅을 주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기 ㏏??그 땅 거민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들은 이스라엘의 밥이라고 주장했다. 갈렙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능히 이길 것이라는 확신 하에 가나안 땅을 취하자라는 주장을 폈다(민 13:30; 14:6∼9).

인간적인 시각과 믿음의 시각은 이토록 커다란 차이를 만든다.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간적인 시각을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였으며, 하나님의 약속과 출애굽의 역사를 불신으로 보답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민 14:29∼35)는 심판을 내리신다.

갈렙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민 14:24)고 평가하신다. 출애굽 첫 세대 중 누구도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자가 없었다. 궁극적으로 아론도, 미리암도, 그리고 모세조차도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함께 갈렙만이 유일한 예외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갈렙의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대한 ‘오직 믿음’ 때문이었다.

약속의 땅에서(수 14:6∼15; 15:13∼14)

모세오경을 떠나서 갈렙이 다시 등장하는 곳은 여호수아 14장에서 이미 약속의 땅에 들어와 있는 장면에서이다. 구조적으로 보면 여호수아 1∼11장까지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11:23b,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12∼21장에서는 ‘땅의 분배’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그 중에서도 12장은 요단강을 중심으로(마치 ‘한강’을 중심으로 남북을 나누듯 동서로 나눔) 요단 동편과 서편에서 점령된 왕들의 명단을 다루고 있고, 13장에서는 요단 동편 땅의 분배에 대한 기록을 다루고 있다. 14장에서는 땅의 분깃이 없는 레위 지파들에 대하여 언급한 후, 요단 서편의 땅, 즉 가나안 땅의 분배를 시작하려는 서두에 제일 먼저 그 땅을 분배받는 사람으로 등장하는 자가 바로 갈렙이다.

저자가 갈렙을 먼저 기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갈렙과 같은 자만이 궁극적으로 가나안 땅을 분배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가 있다. 즉 갈렙을 믿음의 모델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믿음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그는 온전한 믿음의 소유자였다. 본문은 세 번씩 반복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수 14:8, 9, 14). 하나님께서도 같은 표현을 사용하여 그의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인정하셨다(민 14:24; 32:12; 신 1:36,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다’는 표현은 갈렙에게만 주로 독특하게 사용되었는데, 딱 한 군데 다른 사람에게 사용된 경우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 부친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좇음같이 좇지 아니하고”(왕상 11:6)라는 구절에서이다.

이 구절은 두 가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첫째는 갈렙의 믿음과 솔로몬의 믿음이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 준다. 갈렙은 온전한 믿음으로 땅을 차지했으나, 솔로몬은 瀏망?못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국가의 운명을 기울게 하며, 나라가 갈라지게 하고, 급기야 땅을 빼앗기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 제공자가 되었다. 둘째는 갈렙의 믿음과 다윗의 믿음이 동일한 것임을 보여 주고 있다. 그 둘은 다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은 모범을 보여 줌으로 각각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들이다.

둘째로 갈렙은 그의 믿음의 근거를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 있다. 그는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14:6b),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14:10a),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14:10b),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14:12a),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14:12b) 등의 표현으로 그가 땅을 요청하는 근거가 하나님의 말씀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공을 세운 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에 근거하여 믿음으로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갈렙은 자신의 나이가 이제 85세임을 상기시키며, 하나님께서 기업의 약속을 주신 때부터 지금까지 “45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14:10)라는 고백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그는 이제까지 자신이 살아 있는 이유의 근거가 말씀하신 약속을 지키시려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즉, 그가 살아 있는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이며, 이제 그가 살아 있는 목적도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기 위함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믿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그는 4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믿음의 귀감이 되고 있다.

셋째로 그는 믿음으로 도전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수 14:10∼12). 갈렙은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읜湯?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14:11)이라는 말과 함께 노령에도 불구하고 땅의 정복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그의 이러한 표현 뒤에는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으므로 하나님께서 필요한 강건함과 힘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뒷받침하고 있다. 그는 단순히 자신의 건강에 의지하여 ‘그 나이에도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인간적인 유치함의 발로가 아닌 그의 성숙한 신앙의 깊이가 바탕에 깔려 있는 고백인 것이다. 이것이 85세 노장의 진면목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믿음으로 자신에게,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도전이 되는 땅을 정복할 것을 요청한다. 그곳은 다름 아닌 아낙 자손이 있는 성읍이었다. 갈렙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10명의 정탐꾼들이 견고한 성읍과 아낙 자손이 있다고 하여 그들에 비해 자신들은 ‘대장부들 앞에 메뚜기 같다고 비교하며’(민 13:28, 33) 두려워했던 그 치욕스러운 과거에 대한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만회하고자 하는 과감한 믿음의 요청을 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아낙 자손들에게 마음이 녹아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며 원망함으로 40년 광야생활을 해야 했던 바로 ‘그때 그 사람들’을 이제 갈렙이 과업으로 떠맡겠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라는 고백을 한다. 여기에서 ‘혹시’라는 표현은 여호와께서 함께하실지 안하실지 몰라서 하는 불확실함에서 오는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표현인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이미 승리까지도 확신하는(수 14:9,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갈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자신의 요구나 주장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임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갈렙의 믿음의 깊이와 성숙함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다.

넷째로 갈렙은 믿음의 보상을 받는다(수 14:13∼15). 여호수아는 갈렙의 의도를 이해하고 그를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했다. 사실 헤브론은 후에 다윗이 처음으로 그의 왕권을 공인시킨 장소이며(삼하 2:1∼4), 또한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킬 때 본거지로 사용한(삼하 15:7∼10)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는 유서 깊은 요새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에서 이렇게 중요한 요새지인 헤브론이 갈렙의 기업이 된 것은 그가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은 것에 대한 보상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고 갈렙이 차지한 땅은 아낙 사람 중에서도 가장 큰 사람이 살고 있었던, 가장 도전이 되는 지역이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수 14:15). 이것을 통하여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갈렙의 전투력이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믿음이 뛰어났기 때문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고 있다.

본문은 또한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라는 표현으로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이 표현이 갈렙 스토리와 함께 나옴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에 갈렙의 일조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즉, 믿음의 사람들이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근거하여 그 약속을 성취하기 위한 도전을 할 때에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는 장면이다. 이렇게 갈씬?사라졌으나 노장의 믿음은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남겨놓았다.

2.우리에게 주는 교훈

갈렙의 삶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첫째, 믿음은 우리에게 용기 있는 행동을 요구한다. 여호수아서는 현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에게 믿음의 원리를 실감 있게 가르쳐 주는 좋은 책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의지하여 그것을 믿는 믿음으로 땅을 얻기 위해 전쟁을 치루어야 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용기 있는 행함이 따를 때에만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귀한 교훈이다. 갈렙은 그런 믿음을 가진 대표적인 인물이다. 노장의 몸으로 가장 난공불락처럼 보이는, 아낙 자손이 사는 성읍을 요청했던 것이다. 물론 목숨을 건 전쟁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이것은 ‘적당히 싸워도 하나님이 적당히 알아서 해 주시겠지’ 하는 ‘적당주의’적인 믿음이 아닌 전쟁이라는 무서운 현실 속에서도 믿음이라는 더 큰 진실이 있기에 앞으로 전진할 수 있었던 용기인 것이다.

때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왜 하나님께서는 대학 입학을 시켜 주시지 않는가? 매일 새벽기도를 다니며 그토록 간구했건만 왜 나만 직장에 취직이 안 되는 것인가? 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안 들어 주시는 것인가, 저것을 안 들어 주시는가? 등의 의문을 던지는 것을 보았다. 당연한 의문이며 누구도 하나님이 아닌 이상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이런 여호수아서나 갈렙의 삶을 통하여 배울 수 있는 원리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가 현실이라는 강을 건너야 한다는 것이다. 다윗은 돌팔매로 양 떼들을 지키기 위하여 여러 번 무서운 야수들을 죽여 보았기 때문에 골리앗을 대적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하고자 했던 것은 그의 믿음의 용기였다. 한번도 돌팔매를 사용해 보지 않았던 사람이 갑자기 믿음으로 나와보았자 그것은 비현실적인 엉뚱한 요행을 바라는 행위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 믿음은 가상하나 누가 보아도 현실성이 없는 행동들 말이다. 기적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아무 때나 함부로, 그것도 요행을 바라는 어리석은 신자의 행동을 정당화시켜 주기 위해 사용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갈렙의 경우도 그는 초보가 아닌 노련한 병사다. 나이는 먹었어도 그는 여호수아와 계속 전쟁의 실전이 있는 자이다. 그러한 그가 어려운 현실 앞에 믿음의 용기를 낸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모습을 보며 현실이라는 강적과 사투를 벌일 각오를 해야 한다. 즉, 전쟁을 치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는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현실을 능히 이기실 수 있는 분을 의지하여 이 전쟁을 치룬다는 것이다.

둘째, 믿음은 인내를 필요로 한다. 하나님께서는 갈렙에게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신 1:36)라고 약속하셨다. 여호수아서 본문에 따르면 그것은 45년 전의 일이었다. 갈렙은 85세의 나이까지 그 약속의 성취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45년 동안 기다린 셈이다!

우리는 흔히 10년이나 기도하며 간절히 기도했건만 아직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셨다는 말을 한다. 10년 동안이라는 말에 숙연해진다. 얼마나 긴 세월의 믿음의 시련인가? 이제 갈렙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말자. 46년 동안 기다렸다면 그때에 가서 ‘나도 상당히 기다렸노라.’라고 한 마디만 하자.

믿음은 인내 정도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죽는 날까지도 기다려야 하며, 죽은 후에라도 성취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에서는 믿음의 선진들을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히 11:39, these were all commended for their faith, yet none of them received what had been promised.)라고 칭찬하고 있다. 그들은 생전에 약속 받은 것의 성취를 보지 못하고 죽었으나 그것을 믿는 믿음으로 살았던 자들이다. 그만큼 믿음은 인내를 요구한다.

셋째, 믿음에는 보상이 따른다. 이것은 세속적인 원리가 아니라 지극히 성서적인 원리이다. 여호수아서에서는 ‘여호와께서 헤브론성을 분깃으로 갈렙에게 주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수 15:13). 사도 바울도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보상을 바라보았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

여기에서 기억할 것은 믿음의 상급은 사도 바울에게만 예비된 것이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동일하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도 그러한 상급을 바라보며 주의 오시는 날까지 믿음의 노장의 본을 받아 살아가야겠다.

김윤희 기자는 미국 트리니티신학대학원에서 신약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싱가폴 동아시아신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명쾌한 논리와 언변으로 기독교방송(cbs)의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기사입력: 2003/04/23 [17:15] 최종편집: ⓒ newspower

여호수아 14장

(수 14:1)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받은 기업 곧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이 분배한 것이니라

(수 14: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의 기업을 제비 뽑아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주었으니

(수 14:3) 이는 두 지파와 반 지파의 기업은 모세가 요단 저쪽에서 주었음이요 레위 자손에게는 그들 가운데에서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민32:33

(수 14:4) 이는 요셉의 자손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두 지파가 되었음이라 이 땅에서 레위 사람에게 아무 분깃도 주지 아니하고 다만 거주할 성읍들과 가축과 재산을 위한 목초지만 주었으니

(수 14: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이 행하여 그 땅을 나누었더라

갈렙이 헤브론을 기업으로 받다

(수 14:6)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수 14:7)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수 14: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수 14:9)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신1:36

(수 14: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민14:30

갈렙은 여호수아에게 헤브론 땅을 정복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합니다.

갈렙이 청년일 때 정탐하며 하나님이 주시기로 약속하신 그 땅이었습니다.

갈렙은 가나안 땅을 정탐한 바로 그 다음날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실하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노년이 된 지금 약속이 성취될 때라는 것을 확신하고 여호수아 앞에 나아온 것입니다.

갈렙이 광야를 40년동안 돌았을 때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다른 정탐꾼들은 하나님을 원망했을지 몰라도,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담대하게 가나안땅을 정복할 수 있다고,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선포했는데

다른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똑같이 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우등생인 갈렙과 여호수아는 따로 취급하셨어야하는 것 아닌가?

이것이 인간의 생각입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억울해하지 않고 인내함으로 광야 40년의 세월을 견뎠습니다.

갈렙이 억울할수도 있는(?) 40년 광야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매일 아침 하나님께서 갈렙에게 힘을 주셨고 성령과 함께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말씀이 날마다 나를 채우게 하면, 절망이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매일 아침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수 14: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신34:7, 신31:2

(수 14: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갈렙은 여호수아가 1인자가 되어 모세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을 때에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갈렙에게만 보여주신 비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인자가 1인자를 두고 경쟁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확실하게 붙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인생을 각자의 삶에서 1인자로써 설계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신경쓸 필요가 없습니다.

내 삶에서의 비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 안에서 내삶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편안하고 안전한 삶은 아닙니다.

모든 문제에서 격리된 삶이 아니라 그 문제 안으로 발을 내닫는 모험의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붙잡을 수 밖에 없는 믿음의 삶입니다.

갈렙은 이 산지를 “공짜로” 내게 주소서 하지 않았다.

아낙 자손과 크고 견고한 성을 하나님과 함께 무너뜨리길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붙잡는 사람은 모든 장애물을 알고, 뛰어넘습니다.

기쁨으로 모든 고난을 감당합니다.

(수 14:13)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수 14: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음이라

(수 14:15)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갈렙이 헤브론을 그토록 열망했던 이유는 45년 전 정탐한 땅에 대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그 땅에 들어가기까지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갈렙은 단 하루도 하나님을 붙잡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약속을 성취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여호수아가 정복하지 않은 땅을 왜 여호수아에게 달라고 할까요?

여호수아의 축복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 하나님의 사람이 주는 축복을 받고자 한 것입니다.

갈렙은 그니스 사람, 즉 에서의 후손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노예로 살다가 함께 출애굽한 이방인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헤브론을 선택하자

다윗의 계보, 예수님의 계보를 잇는 영광의 후손이 됩니다.

헤브론을 선택하는 일은 결코 만만하거나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하나님 약속을 붙잡고 도전한 갈렙에게

하나님은 영원히 예수님의 조상으로 지억되게 하는 더할 수 없는 축복을 선물하셨습니다.

주님~

갈렙에게 약속하신 땅을 그냥 주시지 않았습니다.

갈렙이 매일 하나님을 붙잡고 전투할 때마다 하나님께 사로잡힐 수 있도록

기도하고, 치열하게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주님, 하나님이 무엇이든 그냥 해주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님을 기억하게 해주세요.

하나님은 약속을 성취하실 때 내가 그 고난을 담대함으로 받고ㅡ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내길 원하십니다.

감히 이 악하고 작은 내가 하나님의 일에 이름을 올릴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두십니다.

주님.. 제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없습니다.

하나님 그러나 감히 하나님의 비전을 내게 주시길 원합니다.

내가 그 모든 고난과 아픔을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약속으로 이기고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길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오늘의 약속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여호수아와 갈렙은 생존하니라(민14:36~38)

<본문>

민14:36-38

36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이 모세를 원망하게 한 사람

37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38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서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

<말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가 이스라엘의 12지파장들, 즉 리더들을 가나안 땅으로 정탐을 보냈습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보고 와서 보고 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10지파장과 여호수아 및 갈렙의 보고가 전혀 달랐습니다. 같은 것을 보고도 전혀 다른 증거가 나온 것입니다. 10지파장들의 보고는 불신의 보고였고,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는 믿음의 보고를 했습니다.

10지파장은 어떻게 보고 한 것입니까? 가나안 족속은 심히 강하고 우리는 그들 앞에 메뚜기 같다(민13:31~33)고 얘기했습니다. 10지파장들이 본 것이 무엇입니까? 이들이 잘못 본 것입니까? 그들의 보고는 매우 정확하고 현실적이었을지 모릅니다. 광야의 백성들이 정착민과 얼마나 달랐겠습니까? 잘 먹지 못하고, 훈련된 정예 병사도 없었을 것이고, 이런 모든 상황을 고려해봤을 때 이길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을 것입니다. 근데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이렇게 보고한 사람들은 다 죽었다고 합니다. 무엇이 문제였던 것입니까? 그들은 현실만 봤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은 불신했고, 뿐 아니라 10지파장을 따르는 백성들도 불신하게 됐습니다(민14:2~3).

반면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는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심히 아름다운 땅”(민14:7)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땅인데 너무 아름다운 땅이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과 같이 반드시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역지, 이는 심히 귀한 일입니다. 그 사역이 어려움이 있고 열악한 사역일지라도 그 안에 담아두신 아름다움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주신 땅이 사막일지라도, 땅을 갈고 물을 주면 옥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절망의 땅이 아니요, 무한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땅입니다. 우리 자신 또한 이렇게 바라보기 원합니다. 우리가 부족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귀한 것을 담아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악평하거나 부정적인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우리를 예비한 곳으로 인도해주실 것(민14:8)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 땅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고 우리가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면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라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얘기합니다. 이 두 가지의 보고가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는 것이 녹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진정 살아계시다 라는 것을 믿고 살면 이런 보고가 나오는 것입니다.

또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라(민14:9~10)고 합니다. 우리의 신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잘 말하는 “임마누엘”입니다. 우리 신앙의 승리는 항상 임마누엘을 믿고 사느냐에 있습니다. 이 안에 모든 상황을 다 역전할 수 있는 담대함이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는 길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범죄 전에 하나님께서 분명 “너희가 따먹으면 죽는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따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죽었습니까? 살았습니다. 그런데 죽은 것입니다. 살았으나 죽은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주님이 사데교회에게 주신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3:1)의 말씀과 같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깨므로 수치와 저주를 받게 됐습니다. 남자는 종일토록 수고하여야 하고 여자는 해산의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게 무슨 저주입니까? 하나님 안에선 고생이 고생이 아닌 것입니다. 생명을 낳는 게 왜 고통인 것입니까? 우리가 주를 위해 사는 것은 기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면 세상 사는 게 고통일 뿐이고, 이게 죽은 것입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그래서 우리의 죽고 사는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믿느냐 믿지 않느냐, 우리 삶의 모든 것은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10지파장과 여호수와 갈렙은 전혀 다른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불신한 지파장들은 다 죽고 여호수아와 갈렙만 생존했습니다. 이것이 역사의 기록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통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아게 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와 함게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할지라도, 어떤 현실을 직시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바꾸실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살길 바랍니다.

홈페이지 : http://saeanchurch.org

여호수아와 갈렙

(민14:1-25) 하나님의 은혜로 새해가 시작된 지 한 주가 지났습니다. 우리 중앙의 성도들은 새로운 마음과 결단과 계획을 가지고 새해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원하는 대로 하나님이 주신 귀한 새해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로 가득 채워나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세상이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광야같은 세상입니다. 광야같은 인생을 승리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 앞에 선 우리들에게 오늘 말씀은 참으로 귀한 교훈을 줍니다. 과거 출애굽 한 이스라엘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이나 살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광야를 성공적으로 산 자는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이백만 명이 출애굽 했으나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가나안 복지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요한 질문 앞에 봉착합니다. 어째서 2백만 명이 광야에서 실패하고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광야를 이겨냈습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의 실패의 원인은 무엇이고, 여호수아와 갈렙의 승리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은 오늘날 광야같은 인생을 사는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승리하는 비결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주신 새해를 승리로 채우는 비결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깨닫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들은 처음에는 성막을 중심으로 광야를 질서정연하게 행진했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이 살인적인 햇볕을 막아주었고, 밤에는 불기둥이 추위를 막아주었습니다. 아침마다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려 주린 배를 채워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들은 광야의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고, 서로 돕고 격려하고 의지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더불어 사는 삶을 훈련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드디어 가데스 바네아라는 광야까지 왔습니다. 가데스 바네아는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둔 땅이었습니다. 거기서 모세가 가나안으로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각 지파에서 한 명씩 열두 명을 선발해서 40일 동안 정탐한 후에 돌아와서 보고케했습니다. 민수기13장 25절에서 저들이 40일 만에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기는 한데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강해서 도저히 우리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거기서 본 아낙 자손들은 전부 거인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에 비하면 자신들은 메뚜기 같다고 했습니다.(민13:33)

이런 보고를 듣고 이스라엘백성들은 절망했습니다. 오늘 말씀 14장 1절 이하를 보겠습니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했습니다. “아이고 우린 다 죽었다. 죽을 고생해서 여기까지 와서.. 여기서 다 죽었구나!” 이러면서 통곡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들의 직접 눈으로 보고 누리던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순식간에 잊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모세의 리더십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이럴 것이 아니라 저 모세와 아론은 더 이상 믿지 못하겠으니 다른 지도자를 세워서 애굽으로 돌아갑시다.” 이렇게 나왔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오늘 말씀 14장 6절 이하를 보겠습니다.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이 부정적으로 보고하는 자들의 말을 들으면서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무엇이 두려우냐!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올라가 취하자!” 외쳤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쳐 죽이려고 덤벼들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이 실망하다 못해 분노하셨습니다. 1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불같이 진노하셨습니다. “그렇게 큰 이적을 보여주었음에도 나를 멸시하는 저놈들을 진멸해 버리겠다”고 펄펄 뛰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이스라엘백성 중간에서 죽어나는 사람은 모세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넙죽 엎드려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제발 좀 고정하시옵소서. 지금 열방들이 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들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것을 저들이 다 알고 있는데, 이스라엘백성들을 이 광야에서 죽이시면, ‘여호와가 자기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능력이 없어서 광야에서 다 죽였다’ 이렇게 수군댈 것 아닙니까? 그러니 제발 고정하시옵소서.” 이렇게 간구한 것입니다. 듣고 보니까 모세의 말도 일리가 있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20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그러나 진실로 내가 살아 있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이것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이후로 이스라엘백성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헤매다 죽고 말았습니다. 광야의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실패로 끝내버린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통탄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광야의 시련을 이겨내고 하나님께 칭찬받았습니다. 24절에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했습니다. 또 30절에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광야의 시련을 이겨내고 하나님께 칭찬받은 여호수아와 갈렙은 훗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차지하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 가데스 바네아의 사건은 광야같이 어지러운 인생을 사는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광야생활을 승리한 비결이 무엇입니까? 어째서 광야에서 이백만명은 실패하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승리할 수 있었습니까? 첫째,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을 몰랐고, 그러므로 자신들이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잘 알고 잘 믿었고, 그러므로 자신들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인 차이였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굉장한 은혜를 누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왜 저들을 광야로 인도하셨는지, 광야의 고난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애굽만 나가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기다리고 있겠지.. 기대했습니다. 하나님이 절대로 한 번도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는데, 저들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오해하고 스스로 낙심하고 낙담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나 하나님의 뜻이나.. 이런 것들에는 관심 없었고, 오직 당장 잘 먹고 잘 사는 데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하나님의 큰 은혜를 누리고 날마다 이적을 체험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니까 자기들이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신들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진 공동체인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저들은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애굽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애굽 백성이었을 때는 자기 배만 부르면 그만이었습니다. 자기 등만 따스우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때는 오합지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자기 등만 따스우면 만족하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나도 그렇지만 내 이웃도 함께 따스해야 했습니다. 이제 저들은 하나님의 가르침으로 무장한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더불어 살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뜻으로 똘똘 뭉친 공동체였습니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서로 돕고 위하는 이런 공동체를 대적할 상대는 세상에 없습니다. 어둠의 세력들이 아무리 준동한다 할지라도 이렇게 하나님의 뜻으로 뭉친 공동체를 당할 재간이 없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백성들은 아낙자손이 아니라 아낙자손의 할애비라도 대적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큰 시련도 능히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스스로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공동체가 얼마나 강한 공동체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이것이 저들의 불행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결정적인 순간에 스스로 두려워하고 낙심하고 절망했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제대로 믿을 수 없었고, 그러니 제대로 살지 못하다가 그만 하나님으로부터 무서운 책망과 함께 심판을 자초했던 것입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스라엘백성들과는 달리 자신들을 광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았고, 광야의 고난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광야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았고, 하나님의 가르침에 더욱 철저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광야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체험했고, 그러므로 자신들이 누구인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면서 점점 하나님을 바로 알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니까, 그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들을 볼 수 있었고, 그러니 자신들이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더 이상 애굽의 노예들이 아니라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용기 백배해서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올라가 취하자!’ 외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보여준 모습은 만용이 아니었습니다. 용기와 만용은 어디에서 차이가 납니까? 하나님을 ‘알고 모르고’에서 차이가 납니다. 하나님을 아는 여호수아와 갈렙은 만용이 아니라 참 용기의 소유자였습니다. 이 용기를 가지고 광야의 시련을 헤쳐 나갔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 때, 하나님을 바로 믿을 수 있고, 그러할 때, 우리가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고, 광야같은 인생을 용기있게 당당하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참으로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고 천국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우리에게 급선무입니다. 우리 중앙의 성도들은 참으로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습니까? 그 비결은 오직 성경을 바로 아는 길 외에 다른 비결이 없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을 점차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머릿속으로 지식적으로 안다는 말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경험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가르침을 깨닫고 거기에 순종할 때, 그 때 비로소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대단하신가를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우리를 건강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머릿속으로만 맴돌 뿐 순종하지 않을 때, 절대로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계신데, 그 분이 평생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시다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이제야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쳤던 예수님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르침에 순종할 때 비로소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러할 때만이 우리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우리에게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게 됩니다. 그 때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외치면서, 여호수아와 갈렙 같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롬8장) 광야의 어떤 시련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광야같은 인생을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이스라엘백성들은 광야에서 실패하고 여호수아와 갈렙은승리한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친구 한 사람이 없었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아는 친구 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비록 200만 명이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친구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반대로 여호수아와 갈렙은 비록 둘이었지만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친구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200만 명의 친구가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아는 친구 한 사람이 없으면 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친구밖에 없다 할지라도 그 한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친구라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아는 친구가 중요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서로에게 하나님을 아는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들의 우정은 하나님을 사랑으로 묶여진 진정한 우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여호수아와 갈렙 둘이 의기투합했을 때, 넉넉히 광야를 이기고 참으로 놀라운 역사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아름다운 우정이야기가 여호수아 14장에 나옵니다. 훗날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가 가나안땅을 정복해 갈 때, 헤브론이라는 난공불락의 땅이 떡 버티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가네스 바네아에서 10명의 정탐꾼이 보고한 것처럼 아낙사람들이 자리잡고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이스라엘백성들이 다 겁을 집어먹고 슬슬 피하는 땅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시 지도자였던 여호수아가 얼마나 난감했겠습니까? 잘못하면 가나안 정복이 실패로 끝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간파했던 갈렙이 자원하고 나섰습니다. “여호수아여!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수14:12) 했습니다. 이 때 갈렙의 나이가 팔십오 세였습니다. 정탐꾼으로 활약하던 때는 벌써 45년 전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45전에 정탐꾼으로 파송되던 때와 힘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선봉에 서서 저 아낙자손을 물리치겠다는 것입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그날에 주께서 말씀하신 이제 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이 땅을 취하리라!’ 얼마나 대단합니까? 이 때 여호수아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겠습니까? 당시 갈렙은 유다지파의 지도자였고, 여호수아는 에브라임지파의 지도자였습니다. 당시의 유다지파는 가장 세력이 큰 지파였습니다. 그에 비해 에브라임지파는 별볼일 없는 지파였습니다. 그러므로 갈렙은 자신이 모세의 후계자가 될 것으로 기대할 만했고, 지도자로 낙점받지 못했을 때 실망이 컸을 법도 했는데 갈렙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 지목하니까 군소리 한 마디 없이 여호수아의 참모로 끝까지 여호수아를 도와 가나안 정복전쟁에 임하고, 온갖 어려운 일을 도맡아 감당했습니다. 그러니 여호수아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겠습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렇게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었고, 이 우정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만이 누리는 참된 우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우정이 광야생활을 이겨내는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이 광야같은 세상을 이겨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그 명령에 순종하는 친구 한 사람이 있을 때, 그리하여 그 친구와 진정한 우정을 나눌 때 가능합니다. 이 때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아니라 열이요 백이요 천이요 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있습니까? 그런 자는 참으로 복된 자입니다. 광야를 멋지게 승리한 사람들에게는 예외없이 이런 친구가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에게는 갈렙이 있었고, 모세에게는 아론이 있었습니다. 다윗에게는 요나단이 있었습니다. 바울에게는 디모데가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를 파송할 때, 둘씩 짝을 지어 보냈습니다. 전도할 때도 둘씩 짝을 지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 더하기 일은 이가 아니라 열이요 백이요 천이 될 수 있음을 예수님을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힘을 합치면 능히 광야를 이길 수 있습니다. 전도서4:12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했습니다. 한 줄은 쉽게 끊을 수 있지만 삼겹줄을 끊지 못합니다. 기러기도 함께 날아갈 때, 혼자 날아갈 때보다 훨씬 더 멀리 날아갈 수 있습니다. 힘을 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친구 만 명보다 하나님을 아는 친구 한 명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가데스 바네아의 사건을 기억하십시오.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의 시련을 이겨내지 못한 원인이 무엇입니까? 반대로 여호수아와 갈렙은 넉넉히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상황과 여건이 달라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차이는 하나님을 알았느냐! 몰랐느냐!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과 역사를 보는 눈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이 차이였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하나님을 바로 아는 친구 한 사람이 소중합니다. 그와 힘을 합할 때, 우리가 능히 광야를 이길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친구 한 사람이면 족합니다. 하나님께 칭찬받고 천국의 주인공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런 친구들 열두 명이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상을 뒤집어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12명의 예수님의 제자들이 로마를 정복했습니다. 우리 중앙의 성도들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는 공동체가 얼마나 강한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공동체, 하나님의 뜻대로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공동체가 얼마나 강한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낙자손이 아니라 그보다 열배 백배 천배 강한 힘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뜻으로 무장되어 있는 공동체는 능히 이기고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했습니다.(마16:1절) 오늘 우리 중앙의 성도들은 기억하기 바랍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보고, 역사를 볼 때, 바로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잃지 않고 광야같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나아가 그런 친구를 가진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 중앙의 성도들은 여호수아와 갈렙같은 친구들을 얻고, 그런 친구들이 되어 줌으로서 광야같은 세상을 능히 이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음부의 권세가 절대로 이기지 못하는 강력한,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를 함께 세워나가는 복된 새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광양중앙교회 담임목사

갈렙의 믿음을 축복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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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렙의 믿음을 축복하신 하나님

▣ 말씀 / 여호수아 14:6-15(민수기 13:1-14:24)

▣ 요절 / 여호수아 14:12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믿음의 사람들의 인생을 한 마디로 표현한 구절들이 있습니다. 모세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대면하여 아는 사람”(신 34:10)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윗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갈렙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좇은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갈렙은 늘 여호수아 뒤에 있던 2인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평가할 때 2인자로 평가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좇은 사람이라고 평가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던 갈렙의 믿음을 배우고자 합니다. 갈렙의 믿음이 여름 수양회를 앞둔 우리에게 내적 방향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내 나이 사십 세에 (14:6-8a)

14장 1절을 보십시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받은 기업 곧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이 분배한 것이니라”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땅 분배를 위한 특별 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땅 분배 방식은 제비를 뽑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명한대로 땅 분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땅을 분배할 때 갈렙은 여호수아에게 나아와 45년 전에 있었던 일을 상기시켰습니다. 당시 모세는 갈렙과 여호수아를 포함하여 열 두 명의 두령들에게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오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명을 받고 남방에서부터 헤브론까지 40일 동안 가나안을 정탐했습니다. 정탐한 후에는 포도 한 송이 달린 가지를 베어 막대기에 꿰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온 회중 앞에서 보고했습니다. “우리를 보낸 땅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축복받은 땅입니다. 그러나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강하고 성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만 아니라 거인 족속들도 있었습니다.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입니다.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은데 어떻게 그 땅을 정복할 수 있겠습니까?” 정탐꾼들은 가나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도저히 그 땅을 얻을 수 없다고 악평했습니다. 이때 갈렙과 여호수아가 나서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그 땅 백성을 두려워 마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두려울 것이 무엇입니까? 가서 그 땅을 쟁취합시다.” 똑같은 상황을 보았지만 열 명의 두령들의 보고와 갈렙과 여호수아의 보고는 전혀 달랐습니다.

과연 이 차이가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왜 똑 같은 것을 보고도 그들의 말은 서로 이렇게 전혀 달랐을까요? 이는 그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였습니다. 열 두령들의 마음 가운데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눈이 아니라 사람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이때 아낙 자손은 거대해 보이고, 자신들이 메뚜기처럼 작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자 그 땅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기름진 밥상으로 보였습니다.

사실 누구나 자기보다 키가 크고 몸집이 큰 사람을 보면 위축이 되기 마련입니다. 낯선 곳에 가면 두렵고 긴장이 됩니다. 하나님 없이 세상을 보면 두려움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불신으로 말미암는 두려움은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됩니다. 민수기 14장 1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는 나를 멸시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멸시하는 것과 불신하는 것을 똑같은 것으로 취급하셨습니다. 만약 제 딸 예진이가 어느날 저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해 봅시다. “아빠를 도무지 믿을 수가 없네요.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너무 막막하고 두려워 죽겠어요” 이런 말을 듣는다면 제가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억장이 무너지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이와 똑같은 말을 하나님께 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한 적이 너무나 많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두려워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두려움이 마음 속에 들어온다는 사실입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두려움과 불안을 심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 두려움을 몰아낼 수 있겠습니까? 답은 한 가지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뿐입니다. 믿음으로부터 내적 평안이 임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생사화복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 보십시오. 마음에 두려움과 불안과 염려가 사라집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봅시다.(히 12:2) 믿으면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제가 이번에 출국하면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그렇게 광활한 미국 땅도 아주 작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믿음의 통로를 통해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내려다 보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상황이나 조건이 아닙니다. 오히려 상황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믿음의 진가가 더욱 더 발휘됩니다. 문제는 ‘내 마음 깊은 곳에 정말 하나님이 계시는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갈렙과 여호수아, 이 두 사람과 다른 열 두령의 보고가 백성들에게 미친 영향이 어떠했습니까? 열 두령의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 잡혔습니다. 백성들은 밤새도록 울고 불며 통곡했습니다. 되지도 않는 말을 한다며 갈렙과 여호수아를 돌로 치려고 하였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하나님까지 원망했습니다. 심지어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열 두령들도 스스로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나도 이렇게까지 만들 생각은 아니었는데… 백성들이 왜 이렇게 울고 불고 난리를 치는 거지?” 열 두령들의 불신에 찬 보고가 끼친 파급 효과가 이처럼 엄청났습니다. 두령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지도자들입니다. 지도자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어떤 모양으로든지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리더일수록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지도자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 불신의 말이 상대방에게는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믿음의 말 한 마디가 생명을 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백성들은 갈렙과 여호수아의 말에는 영향력을 받지 않고 열 두령들에게 영향을 받았을까요? 수적으로 열 두령이 더 우세했기 때문일까요?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을 가질만한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이적을 이미 많이 체험했습니다. 홍해를 가르신 사건, 만나를 내리신 사건, 마라의 쓴 물이 단 물로 변화된 사건 등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하나님을 시험하고 청종치 아니했습니다. 그 수많은 체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믿지 않는 것입니까? 이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역하려는 죄악된 성향에 깊이 물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에는 믿음의 말에는 귀를 잘 기울이지 않고, 불신의 말은 잘 받아들이는 그런 본성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근본적으로 악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연인에게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본성을 거슬러 부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은 투쟁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불신적인 생각을 합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문제 의식도 안 가질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자연스럽다고 하나님께서 이해해 주십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해해 주시기 않고, ‘왜 네가 나를 멸시하느냐? 왜 네가 나를 시험하느냐?’ 하시며 진노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불신은 큰 죄악입니다. 우리는 나의 자연스러운 생각과 싸워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불신의 사고 방식에서 터닝해서 믿음의 사고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싸워야 합니다. 기도는 새벽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 종일 쉬지 말고 기도하면서 이런 저런 불신의 생각과 싸우는 것입니다.(살전 5:17) 싸우지 않으면 죽습니다. 나만 죽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 그리고 내 후손들까지 다 죽습니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부정적인 생각과 날마다 싸워 승리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악평을 한 열 두령들과 불신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시고 심히 진노하셨습니다. 그들 가운데 20세 이상 된 사람들은 광야에서 다 엎드러져 죽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좀 불신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봐 주시겠지 하면서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신한 자들의 결국을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광야에서 다 엎드려 졌습니다. 고린도 전서 10장 5절 6절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하나님께서는 불신과 원망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신을 혐오하십니다. 불신의 결과는 멸망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불신의 죄를 범치 않도록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반면 갈렙과 여호수아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셔서 약속의 땅에 들이셨습니다. 모두 다 죽었는데 여호수아와 갈렙만 남았습니다. 특히 하나님은 갈렙 장군의 믿음을 크게 기뻐하시고 그가 밟은 헤브론 땅을 그와 그 자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하신 주권에 따라 역사하십니다. 민주주의의 원리란 다수결의 원리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다수가 지지해도 하나님의 뜻과 정면으로 어긋나는 수가 있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백성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수결이 아니라 믿음의 원리를 따른 갈렙과 여호수아의 손을 높이 들어 주셨습니다. 레밍스라는 불리우는 북극산 나그네쥐가 있습니다. 집단 생활을 하는 레밍스는 선두에 있는 쥐를 무조건 따라가는 독특한 습성이 있습니다. 어쩌다가 선두 쥐가 잘못해서 낭떠러지에 떨어지면 그 무리에 속해있는 모든 쥐가 다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습니다. 이럴 땐 깨어 있는 쥐 한 마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누군가 나서서 위험을 앞서 보고 무리를 돌이킬 수 있어야 합니다. 갈렙과 여호수아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대를 향해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눅 9:41) 하시며 탄식하셨습니다. 현재에도 우리의 불신으로 인해 성령 하나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 가운데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고 계십니다.(롬 8:26) 이 불신의 시대에 나 자신이 먼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깨어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두려워하는 무리들에게 믿음의 길을 제시하는 갈렙과 여호수아와 같은 참된 영적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I. 오늘날 내가 팔십오세로되 (14:8b-15)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나와서 헤브론 땅을 요구하고 차지하게 된 사건 속에서 반복되어 나오는 말씀이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갈렙의 신앙에 대한 저자의 평가입니다. 이는 갈렙이 헤브론 땅을 기업으로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이었습니다. 온전히 좇았다는 말은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따랐다’ ‘하나님께서 만족하실 만큼 충분히 그 분의 뜻에 순종했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온전히 좇은 갈렙의 신앙은 그의 삶에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첫째, 갈렙에게는 나의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8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갈렙은 하나님을 ‘내 하나님 여호와’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모세의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의 하나님’이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 하나님, 갈렙의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자신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자신이 믿고 섬기는 인격적인 나의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움 받았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르고 돌아올 때 여인들은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사울은 이 소리를 듣고 다윗에 대한 질투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다윗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질투심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질투심으로 악령에 사로잡혀 비참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여호수아와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갈렙이나 여호수아나 똑같이 두령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갈렙이 아니라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 택하시고 세우셨습니다. 갈렙은 여호수아는 지도자로 세움 받고 자신은 그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고 원망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옆을 돌아 보지 않았습니다. 오직 위에 계신 나의 하나님, 갈렙의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깊이 영접하고 자신의 부여된 사명에 충성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끝까지 믿음의 길을 갔습니다.

둘째, 갈렙에게는 약속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9절과 10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믿음의 말을 한 갈렙을 축복했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당장에 이루어질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갈렙은 무려 45년 동안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갈렙은 이 45년간 단 한번도 성경 상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갈렙의 동료들은 다 죽었고, 산천이 여러 번 변하였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말씀은 변함이 없었고, 갈렙의 믿음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때까지 죽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서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우리에게도 각자 받은 바 약속의 말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요? 우리는 각자 받은 바 말씀에 대해서 적어도 45년은 기다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갈렙이 45년을 겨우겨우 버텨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갈렙이 가진 것이 그저 꿈이거나 희망사항이었다면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붙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약속의 말씀이 삶의 토대가 되었기 때문에 45년 동안 믿음과 스피릿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굳게 서리 영원하신 말씀 위에 굳게 서리 굳게 서리 그 말씀 위에 굳게 서리라” 우리가 갈렙과 같이 우리가 일생 각자 받은 바 약속의 말씀 위에 굳게 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갈렙에게는 청년의 스피릿이 있었습니다. 10절 하반절과 11절을 보십시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현재 갈렙의 나이는 85세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은퇴해서 편안한 노후를 즐길 나이입니다. 뭔가 하고 싶어도 기력이 쇠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나이입니다. 그러나 갈렙은 85세의 나이에 새로운 일을 꿈꾸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을 정복하는 일이었습니다. 나이는 비록 85세가 되었지만 4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강건하고 근육도 있고 힘도 세다고 하였습니다. 아마 그는 평소에 이 날을 기다리며 팔 굽혀 펴기를 하면서 자신을 몸짱으로 다듬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들과 겨루어 이길 수 있을 정도로 팔팔하고 생기가 넘쳤습니다.

갈렙에게는 인생의 프라임 타임(Prime Time)이었던 40대의 스피릿과 85세의 스피릿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갈렙! 우리는 갈렙을 어떻게 기억합니까? 우리는 갈렙을 늘 푸른 청년으로 기억합니다. 힘없고 축 늘어진 노인 갈렙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노인과 청년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노인은 과거 지향적입니다. “왕년에 말이지”, “나도 한창 때에는” 이런 과거 이야기를 많이 하면 그 사람은 노인입니다. 노인은 현실에 안주하고 변화를 싫어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40세가 되면 내 인생은 꺾였다고 생각합니다. 50세가 되면 뒷짐을 지고 다닙니다. 노인은 소극적이 되기 쉽습니다. 모험을 싫어합니다. 반면 청년은 미래 지향적입니다. 청년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청년에게는 심장을 두근두근 뛰게 하는 비전이 있습니다. 청년은 계속 변화를 시도합니다. 도전하고 모험을 감수합니다. 신체적인 나이가 문제가 아닙니다. 나이는 청년이더라도 기백과 비전과 꿈이 없으면 우리는 그를 ‘애늙은이’라고 부릅니다. 끊임 없이 도전하고 개척하는 사명인, 그는 언제나 청년입니다. 여러분은 노인의 인생을 사시겠습니까? 청년의 인생을 사시겠습니까? ‘인생 뭐 있어! 다 그렇고 그런거지’ 하면서 뒷짐지고 어슬렁거리는 노인이 되시겠습니까? 나이에 관계없이 꿈과 비전이 있고 도전하는 갈렙과 같은 영원한 청년이 되시겠습니까? ‘주를 앙모하는 자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 같이…’ 우리 믿는 자의 삶은 주님 안에서 끊임 없이 오르고 또 오르는 영원한 청년의 삶인 줄 믿습니다.

넷째, 갈렙에게는 고난을 앞장 서서 감당하려는 자세가 있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이제 갈렙은 구체적으로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하고 말합니다. 갈렙이 요구한 산지는 헤브론 땅입니다. 이곳은 성읍들이 크고 견고합니다. 철기 문화를 이룬 강대한 블레셋 족속들이 살고 있습니다. 특히 골리앗과 같은 아낙 자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곳은 정복하기 매우 힘든 곳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그 땅은 의미가 남다른 곳입니다. 헤브론에는 막벨라 굴이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가 이곳에 묻혔습니다. 믿음의 조상들이 이곳에서 믿음으로 살며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던 거룩한 땅입니다.

이처럼 헤브론은 쉽지 않지만 반드시 얻어야 할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모두가 이 곳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이때 85세인 갈렙이 앞장 섰습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갈렙은 승리의 비결은 상황에 달려있지 않고 하나님 손에 달려 있음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반드시 이길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은 45년 전과 동일한 믿음이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갈렙처럼 전쟁의 최전선에 서고자 하는 믿음의 사람이 많이 나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자신이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고 느끼는 사람부터 힘든 일에 앞장 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솔선 수범해서 힘든 일을 자청하는 선배들을 보고, 후배들은 존경하고 그 뒤를 따르고자 할 것입니다. ‘이 나이에 내가 하랴’ 이런 게 앞에서 말한 노인의 생각입니다. 군인이 빨리 늙는 이유가 다 있습니다. 사회에서 한창 뛰어다닐 나이에 직업군인들은 이래라 저래라 지시만 하다보니 빨리 늙는 것입니다. 갈렙은 자기 한 몸을 던져서 헤브론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는 이를 후손 즉 유다의 기업으로 남겨 주고자 했습니다. 우리 다음 세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에게 무엇을 유산으로 남겨 주시겠습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얻은 기업을 유산으로 남겨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한 번뿐인 인생을 투자해서 다음 세대를 위한 믿음의 초석을 남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용사는 용사를 알아본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갈렙의 믿음의 말을 듣고 심히 기뻤습니다. 그를 축복하고 헤브론을 기업으로 주었습니다. 갈렙은 기업으로 받은 헤브론을 쳐서 정복하였습니다. 그는 약속의 땅을 믿음으로 쟁취한 것입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이것은 갈렙에게 일생의 열망이었고, 이 열망 때문에 갈렙은 영원한 청년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어떤 산지가 있습니까?

그 산지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공기가 놓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믿음이 없으면 모두가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좇은 갈렙의 믿음을 배워 이 산지를 믿음으로 정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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