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7장 12절 | 2014-02-14_베이직교회_아침예배_사무엘상 7:12-17_조정민 목사 153 개의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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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7장 12절 말씀 묵상 [김연희 목사] – 복음뉴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우리에게 생명이 있고 믿음이 남겨 있는 것은 아직도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며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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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ogeumnews.com

Date Published: 8/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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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사무엘상 7장

사무엘상 7장 · (삼상 7:1),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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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cm.co.kr

Date Published: 11/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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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피플 오늘의말씀_사무엘상7장12절_2020.11.29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_사무엘상 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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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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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벤에셀의 회복 (사무엘상 7장 1-12절)

에벤에셀의 회복 (사무엘상 7장 1-12절). 엘리 제사장과 그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로 대변되는 이스라엘의 죄악은 결국 하나님의 법궤를 블레셋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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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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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7 | KR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사무엘상 7. 7. 1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 … 사람을 따라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12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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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7/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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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도우셨던 하나님이… (삼상 7:12~14) – 기멀전

제목 : 여기까지 도우셨던 하나님이… 본문 : 사무엘상 7장 12~14절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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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godpeople.or.kr

Date Published: 7/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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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7장)(삼상7장3-12절)에벤에셀의 하나님(사무엘 상하 …

(삼7장3-12절)에벤에셀의 하나님(사무엘 상하 강해). ​.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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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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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사무엘상 7장 12~14절) 2020년 10월 11일 (주일)

새벽설교 (20.10.11) 본문: 사무엘상 7장 12~17절 제목: 기억이 가져다 주는 의미 본문내용 오늘 본문은 사무엘이 블레셋과의 싸움 이후에 승리를 기념하는 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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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신 하나님(삼상7:12-14) – 열린교회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신 하나님 사무엘상7:12-14 사람은 대부분 부자가 되고 싶어 … 출애굽기 20장 24절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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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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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7 KLB –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다스림

12 그때 사무엘은 돌 하나를 주워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우고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에벤에셀’ 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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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gateway.com

Date Published: 10/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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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7장 12절 말씀 묵상 [김연희 목사]

에벤에셀’

(사무엘상 7: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오늘 본문 배경에는 이스라엘이 뼈저리게 경험한 블레셋과의 전투의 패배가 있습니다. 사무엘상 4장에는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전쟁에 패할 뿐 아니라 언약궤를 블레셋에 빼앗기는 철저한 패배를 맛보게 됩니다. 하지만 언약궤을 뺏아간 블레셋 진영에도 언약궤로 인한 재앙이 계속되어 견디다 못한 블레셋 사람들은 결국 언약궤를 반환하기로 결정하고 이스라엘로 돌려 보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궤를 교만과 경망함으로 취급한 벧세메스 사람들이 죽는 징계를 당하게 되고 언약궤는 다시 기랏여아림에 정착하게 됩니다. 삼상 7:2절에서는 궤가 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었고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지도자 사무엘은 전격적으로 이스라엘 신앙을 새롭게 하고자 우상 제거와 여호와 중심의 삶을 살도록 촉구하며 미스바에 온 이스라엘이 모이도록 합니다.즉,미스바에 모인 이유는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섬겼던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위해서 모였던 것입니다(삼상 7:3) 그런데 회개하려고 모인 이스라엘을 블레셋은 자기들과 전쟁하려고 모이는지 알고, 쳐들어 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두려워하여 사무엘에게 요청합니다. 하나님께 쉬지말고 기도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해 달라고…이에 사무엘은 여호와께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큰 우레를 발하여 블레셋 사람을 어지럽히시면서 그들을 패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는, 잃었던 땅을 되찾습니다. 이에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기념비를 세우며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 이라고 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도움의 돌’이란 이름의 ‘에벤에셀’에는 이처럼 언약궤를 빼앗긴 이스라엘의 수치스러운 역사가 담겨져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블레셋을 물리친 승리의 고백도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우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때 수치를 당케 하신 하나님은 우상을 제하고 전심으로 하나님만을 섬길때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고 더 소중히 여긴 내 안에 있는 우상들을 전부 다 제거하며 잘못 살아 온 지난 날들을 온전히 회개하고, 앞으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번제물의 삶으로 다짐하며 나아갈때 하나님은 수치를 은혜로 바꾸시고 패배를 승리로 바꾸시는,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2020년 한 해가 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뒤돌아보면 코로나로 임한 역병 가운데 유독 기독교는 전에 경험하지 못한 수치를 당했습니다. 이는 아마도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도 온전히 섬기지 못하고 적당히 세상과 타협했던 우리의 죄악 때문이 아닌 가 싶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우리에게 생명이 있고 믿음이 남겨 있는 것은 아직도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며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입술로만 ‘에벤에셀’ 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러 미스바로 모였던 이스라엘 백성들 처럼, 마음을 찢는 금식과 회개로 올 한해을 뒤돌아 보며 온전한 번제와 부르짖는 기도로 다가올 새해를 준비하므로 ‘에벤에셀’의 고백이 계속되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어지기를 함께 기도합니다.

갓피플 오늘의말씀_사무엘상7장12절_202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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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책 ‘북터뷰’는 이대로 잊혀지기에는 아쉬운 지난 책들을 돌아보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새롭게 인생책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려보세요.^^ =======================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 불가능을…

에벤에셀의 회복 (사무엘상 7장 1-12절)

에벤에셀의 회복 (사무엘상 7장 1-12절)

엘리 제사장과 그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로 대변되는 이스라엘의 죄악은 결국 하나님의 법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기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법궤를 빼앗겼다는 것은 말씀을 잃어버렸다는 것이고 곧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사무엘상 4장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이스라엘 백성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 줍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대패, 홉니와 비느하스의 죽음, 법궤를 빼았기고 그 소식을 들은 엘리가 죽은 이야기, 그 충격으로 갑자기 애를 낳다가 죽은 엘리의 며느리, 그가 외친 말 ‘이가봇’, 말 그대로 이스라엘에게서 영광이 떠난 상태입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품을 떠나자 그에게 일어났던 일이 무엇입니까? 곧 허랑방탕하고, 재산을 탕진하다가 결국 돼지 쥐엄열매를 먹고, 그 조차 먹지 못해 구걸하는 신세…

요나가 하나님의 뜻을 떠나자 물고기 뱃속에 갇혀 살려달라고 외치는 상태…

가끔씩 신앙을 불평하면서 내가 교회를 안다녔으면 그 시간에 공부해가지고, 더 좋은 학교에 가고, 헌금 낼 돈 모아서 사고 싶은 것 사고… 신앙을 떠나면 자유한 것 같지만 하나님의 처소를 떠난 인생은 그야말로 이가봇의 삶을 삽니다. 제게 주신 은혜가 있다면 한번도 하나님을 떠난 삶을 상상하지 않은 것…

금요예배 때에 말씀을 전해주신 목사님…

좋은 직장도 그만 두고 목사가 되어, 더 좋은 목사가 되기 위해 늦은 나이에 유학까지 왔는데… 아이의 병으로 말미암아 목회도 그만 두고, 학업도 그만 두고… 이젠 택시 운전하면서 아이의 치료를 계속해야 하는데….곁에서 바라볼 때 조차도 그 신앙이 어찌 유지 될 수 있을까? 아니 신앙은 고사하고 그 삶을 어찌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런데 와서 전해주신 첫 마디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평화, 평화 하나님 주신 선물에 목매어 하던 그 모습…

그 모습을 전해달라고 부탁하면서도 참 고민이 많았지만… 바라만 보고 있어도… 내 신앙이 부끄러워지는…

파도 위를 걸어서 주님을 바라보는 신앙…

엘리야가 이세벨의 협박에 도망하면서 하나님께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하신 말씀.

“아직 바알에게 무릎꿇지 아니한 7000명의 사람들이 있다.”

엘리야도 모르고 성경에도 등장하지 않는 숨어있는 순수한 신앙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을 수 있는 교회 찾기 힘들고, 믿을 수 있는 목사를 찾아보기 힘들 때에 그래도 하나님의 교회에는 순수한 신앙을 위해 몸부림치는 알려지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곳곳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7개월 동안 떠나 있던 법궤가 스스로 돌아왔습니다.

떠났던 하나님의 영광이 스스로 범죄한 이스라엘에게 찾아왔습니다.

제사장들로 모여진 벧세메스 사람들마저 법궤를 들여다 보고 죽임을 당하자 법궤는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통해 20년 동안 머물게 됩니다.

“산에 사는”이라는 말이 눈이 멈추어 집니다.

수많은 무리가 주님을 따랐지만 산에 올라 주님의 말씀을 들은 자는 소수였습니다.

산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는 장소입니다. 자신을 비워 주님을 따라가는 장소입니다.

제사장이라는 직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룩하고 구별된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거할 곳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법궤.

홉니와 비느하스-

다곤 신전-

벧세메스-

하나님의 이름이 능욕당하고 거절 당하고 외면당하는, 도저히 함께 거할 수 없는 그런 곳을 떠나 거처를 찾아 헤메는 법궤.

요한복음 1장 – 빛이 어둠에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더라….

지금도 그렇지 않을까?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 체험하고 싶다”라는 소망. – 말씀 묵상, 말씀을 통하여…

시편 1편의 복있는 사람,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 – 예수 그리스도.

이 20년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를 사모했다”고 전합니다. 정확하게는 하나님의 법궤가 사라지면 이스라엘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 가를 체험하고 슬퍼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찌 보면 후회에 가까운 것이고 자기 연민입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사라지면 재앙이고, 곁에 두자니 불편하고 두렵고….

이러한 때에 사무엘이 등장하여 이른바 미스바 부흥회를 개최합니다.

이때의 미스바라는 장소를 따서 많은 집회의 이름이 미스바 집회, 미스바 회개 운동 등으로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미스바는 “망대” 즉 파수꾼이 망보는 곳이라는 뜻의 지명입니다.

영적인 의미로는 깨어라, 깨어있으라는 말입니다.

슬퍼하지만 말고, 두려워하지만 말고 하나님 앞에 깨어서 자신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무엘은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로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고 말합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씀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 후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마지막으로 전햇던 세겜 언약에서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믿는다고 하면서 결국 우상 섬기고 이방신 섬기고, 세상에 기대어 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

그런데 사사 시대를 지나면서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삶이 지속되면 알게 모르게 하나님 아닌 가까운 것, 빠른 것, 쉬운 것을 의지하게 됩니다. 밖에 나가면 때가 쌓이듯 세상에 살면서 깨어있고 회개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우상을 의지하여 사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상은 끊임없이 믿는 자를 넘어뜨리고 유혹하고, 하나님이 아닌 돈을, 물질을, 권력을, 힘을, 세상을 의지하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물을 여호와께 붓는 것은 ‘자신들의 죄과를 하나님 앞에 쏟아 놓는 실제적 회개’를 의미합니다. 마치 물을 부어 쏟듯이 자신의 마음 전부를 다 내어놓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의 방법으로 금식을 했다는 것은 주의해서 살펴야 합니다.

죄의 성격은 욕구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죄의 통로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본능적이고 직접적인 것이 먹는 것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의 죄가 먹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식욕을 다스리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드릴 것도 빼앗아 먹었습니다. 엘리는 너무 먹어 몸이 비대하였다고 증거합니다. 그들은 먹은 것에 지배당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이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먹지 않고 욕구를 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진정과 겸손으로 회개한다는 구체적인 표시로 ‘금식'(fast)란 방법이 채택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전심으로 회개하며 금식하며 하나님을 찾을 때에 블레셋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은혜가 있는 곳에 사단의 역사도 함께 일어납니다. 기도하려고 하면 먼저 방해하는 것이 사단입니다. 그들은 교활해서 우리가 결심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 하면 일을 만들고, 몸을 치고 마음을 쳐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깨어있는 자는 그러한 일이 나타났을 때에 사단의 정체를 발견합니다. 사단에게 무릎꿇지 않습니다.

깨어있지 못하니까 결심해도 일생기면 포기하고 낙담하고 맨날 그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블레셋이 쳐들어 왔다는 것을 듣고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사무엘에게 “우리를 위하여 쉬지 말고 부르짖어달라” 요구합니다.

그들은 군사를 모으지 않았습니다. 두려웠지만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니까 기도를 통해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들어온 것입니다.

사무엘은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온전한 번제”란 말에 주의하십시오.

블레셋 사람들도 볍궤 앞에서 속건제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제사는 드렸지만 자기 마음대로 독종과 금쥐를 만들어 예물로 드렸습니다.

신앙은 마음으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 거듭 말씀드리지만 신앙생활은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먼저되야 하지만 형식도 있어야 하고 방법도 바르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온전한 번제입니다.

기도하며 번제를 드리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십니까?

군사 하나 모으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우레를 내려 그들을 어지럽게 하여 흩어지고 스스로 무너지게 하삽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기게 합니다. 스스로 무너지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승리의 장소를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셨다”라는 의미의 에벤에셀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에벤에셀이라는 말이 여기서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닙니다.

(삼상 4:1b)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은 아벡에 진 쳤더니

이들은 이미 에벤에셀에 진을 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블레셋과 싸우려 했습니다.

거기서 패하자 “아니 어찌하여 우리가 패하였는가?”하고 하나님께 항변합니다.

그러고 실로에 있던 법궤를 가져다가 또다시 전쟁하여 대 재앙을 맞습니다.

그 장소도 역시 에벤에셀 입니다.

똑같은 에벤에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데 4장과 7장이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4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의는 해도 기도는 하지 않습니다. 전쟁에 패하자 우리가 왜 졌을까? 하면서 궁리하여 법궤를 가져오게 하지만 정작 하나님께 묻고 기도하지 않고 스스로 행동합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부적처럼 사용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말씀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우상을 섬기고, 여전히 범죄하며 단지 형식만 남은 경건, 부적과도 같은 신앙생활만을 합니다.

그런데 7장은 다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곁에 없을 때에 자기들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법궤는 산위에 엘리아살이 지키고 있지만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우상을 제거하고, 금식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회개와 기도,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진정한 신앙을 통해 얻어지는 기쁨이자 능력입니다.

우리는 엇그제 헌신 예배를 통해 한끼 금식을 작정했습니다.

굶는 것으로 작정을 이루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회개하여야 합니다. 우리 삶의 우상을 제거하여야 합니다.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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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 놓고 그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2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5 사무엘이 가로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7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이 듣고 그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듣고 블레셋 사람을 두려워하여

8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9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10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을 따라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13 이에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여기까지 도우셨던 하나님이… (삼상 7:12~14)

제목 : 여기까지 도우셨던 하나님이…

본문 : 사무엘상 7장 12~14절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이에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경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사무엘상 7장 12~14절 말씀

좋은 명절 되셨습니까? 설날을 맞아 자녀들이 부모님을 찾아 온 가정도 있고, 고향에 다녀 온 가정들도 있을 거예요. 큰 사고나 어려움 없이 오고 가는 교통편들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고, 우리 가정들이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이 복을 주실만한 길을 가면 지금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그 길이 열리는 형통한 앞날이 될 줄로 믿습니다. 지금 아무리 여건이 힘들어도 오늘 하나님을 붙들면 넘어설 만한 힘을 주십니다. 능력을 주십니다. 이 시간, 말씀을 듣는 시간이 여러분을 얽매이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다 벗겨지고 단절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마음의 염려와 근심이 해결되고, 질병도, 가난도 물러가고, 마음 속에 남아있는 응어리와 불안을 떨쳐버리고, 주님 주시는 참 평화와 기쁨이 여러분에게 충만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적 생활의 핵심은 생각이 바뀌는 거예요. 믿음의 생각! 하나님 기뻐하시는 생각으로 바꾸어질 수 있다면 지금까지 나를 도와주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나의 앞날도 도와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실패가 변하여 성공하는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저주가 변하여 축복된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으로 받는 심령마다 주께서 함께 하시고 살아가시는 앞날에 주님의 시원한 생수와 같은 은혜가 충만하게, 만족하게, 넘치도록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40 1. 구주 예수 의지함이 심히 기쁜 일일세 허락하심 받았으니 의심 아주 없도다 4. 구주 예수 의지하여 구원함을 얻었네 영원 무궁 지나도록 함께 계시리로다 (후렴)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줍소서

이스라엘 백성이 여러 해 동안 블레셋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농사를 지어놓으면 빼앗아가고, 짐승을 길러 놓으면 빼앗아가고, 사람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부려먹고, 많은 어려움 당하며 살았어요. 통쾌하게 이겨보지 못하고, 늘 당하면서 산 거예요. 사무엘은 이런 위기 때에 법궤마저 블레셋에게 빼앗기고 말할 수 없는 절망과 낙심 가운데 있을 때, 미스바로 온 백성을 모아 놓고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부르짖은 거예요.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큰 은혜 베푸셔서 블레셋을 모조리 진멸시키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큰 승리를 주신 거예요. 사무엘은 이 은혜가 감사해서 미스바와 센 사이에 기념비를 세워놓고 에벤에셀(도움의 돌)이라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주님은 자녀들의 사정과 형편을 아실 분 아니라 부르짖는 소원을 아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먼저 지금까지 도와주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감사하는 심령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금까지 도와주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믿음으로 사는 저와 여러분의 앞날을 도와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문제가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보다 더 큰 것은 없어요. 주님 의지함으로 오늘도 나를 얽매이고 있는 모든 장애물과 문제와 염려와 근심으로부터 넘어서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무엘은 위기의 때에,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리라”(3절) 돌아오다란 말은 죄에서 돌이켜 회개함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는데, “전심으로”란 말은 “마음을 송두리째”란 의미입니다. 다른 곳에 마음 두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께만 향하는 믿음!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이방 신의 대표적인 것이 바알 신인데, 바알은 비와 풍년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생각했었고, “아스다롯”은 성(性)의 여신이었습니다. 이런 이방신들이 당장에 풍년을 가져다 줄 것 같고, 행복하게 할 것 같지마는 우상 숭배의 길은 결국은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고 망하는 길이더라! 그래서 이것을 제거해 버리라는 것입니다. “제하고”는 흔적까지도 없앤다는 뜻으로서 많이 사용된 단어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축복의 길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들이 있다면 생각까지도, 흔적까지도 없애버리는 지혜로운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시37:5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믿음으로 주신 약속을 따를 때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앞날을 모르고 삽니다. 그게 인생이에요. 하나님의 손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들 다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오늘 이루어진 일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도 알 수가 없어요. 이것을 이해하는 데 1년이 걸릴 수도 있고, 10년이 걸릴 수도 있어요. 별 것 아닌 것도 크게 생각하면 그것 때문에 무너집니다. 어떤 분이 병원에서 검사하는 가운데 간에 물 혹이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다음부터는 잠을 못 자는 거예요. 물 혹이 터지면 죽을 것 아닌가? 고민하고, 불안해합니다. 밥맛이 떨어지고 나는 끝났다 싶은 거예요. 그러니 온갖 병이 다 찾아 온 것입니다. 한 주일만에 거의 죽을 환자처럼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교인이 운영하는 병원을 찾아가게 되었는데 자세히 설명을 해준 것입니다. 물혹은 암이 아니며 별 문제가 없노라고, 그랬더니 하루만에 밥맛이 돌아오고 통증이 없어지고, 잠도 잘 오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믿음이 많은 것 좌우합니다. 믿음의 생각 뿐 아니라 믿음의 선포는 하나님이 들으시고 이루십니다. 우리는 마음과 생활에도 진실하게 살아야겠거니와, 말도 참 중요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겠다 죽겠다 그러니까 그 말대로 다 죽었습니다. 때로는 땅이 갈라져서 죽고, 독사에 물려 죽고, 질병 때문에 죽고, 여러 가지 환경이 그 길을 막아 버린 거예요. 말은 속 사람의 표현이기에 더 중요합니다. 우리 인생길이 안 열리고, 안 풀립니까? 인생을 바꾸려면 믿음을 바꾸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을 바꾸려면 말을 바꾸시기를 바랍니다. 말을 바꾸면 좋은 성도, 좋은 가정됩니다. 행여라도 내 속에 불신앙의 말, 원망의 말, 의심의 말, 불평의 말 있다면 다 물리쳐 버리고 행복의 말, 사랑의 말, 믿음의 말로 바꾸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좋은 성도, 복된 가정됩니다. 악한 세력과 질병이 물러가는 축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믿음대로, 말대로 하나님은 역사를 허락하십니다. 믿음의 말에는 성령이 역사하시고, 믿음있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덕을 보게 되어있어요. 요셉의 믿음보고 하나님께서 보디발의 집에 복을 주셨잖아요? 요셉 때문에 애굽에 복을 주셨잖아요? 이 말은 남편 안 믿어도 잘 믿는 아내 때문에 천국 간다는 말은 아니에요. 덕을 끼치고, 축복을 끼친다는 말입니다. 남편도 덕을 보고, 아내도 덕을 보고, 주인도 덕을 보고, 종도 덕을 보고, 친구도 덕을 보는 거예요. 내가 지금 처한 형편과 처지가 최악의 경우라도 최선의 기회로 바꾸어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5절에 보면 “사무엘이 가로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온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이게 합니다. 대 회개 운동이, 신앙의 회복이, 깨어진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살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기도하리라” 사무엘은 중보의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은 거예요. 기도하기 위해서 모였고, 신앙의 회복을 위해서 모였는데,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로 뭉쳐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졌습니다. 저들이 준비하기 전에 먼저 깨버리자! 그래서 쳐들어 온 거예요. 7절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이 듣고 그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듣고 블레셋 사람을 두려워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싸울 무기도 조직도 없었는데, 블레셋 족속은 강력한 철 병기로 중무장한 조직된 군대였습니다. 게임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두려워만 하지 아니하고, 8절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나님만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시는 분임을 알았던 거예요. 이 때는 주님 의지하고, 주님 붙들어야 할 시기임을 안 거예요. 지금 내가 알고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에요. 지금 내가 알고있는 하나님보다 더 큰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더 큰 하나님을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분명하신 하나님! 넉넉하신 하나님! 역사적으로 한 시대에 큰 일을 했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모세는 이것 깨닫는데 40년이나 걸렸어요. 주신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지 못했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회개하고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십시오. 우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던 막혔던 담이 헐리고, 축복의 역사가 시작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모든 것 물리치고 은혜의 자리, 축복의 자리에 나아 온 우리에게도 이런 신령한 깨달음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잘 깨달으면 내 인생이 바뀝니다. 문제가 해결됩니다. 축복이 임합니다. 앞날이 열리게 됩니다. 형통함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자는 자신의 인생도 실패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는 기도도 좋지만 드리겠습니다 하는 기도가 더욱 복됩니다. 병들었을 때 “병을 치료하여 주시고, 낫게 해 주옵소서!” 하는 기도도 좋지마는, “주님! 나를 고쳐서 써 주옵소서! 나를 고쳐서 주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살게 하옵소서!” 이런 믿음에 하나님의 역사가 더 크게, 더 능력있게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물질을 주옵소서! 가난하고 배가 고픕니다 불쌍히 여기셔서 속히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이 기도도 좋습니다. 이런 기도도 주님 의지하는 믿음 없으면 못 하는 거예요. 그런데 “주님을 위해서 쓸 수 있는 물질을 주옵소서! 십일조도 더 드리고 싶고, 주님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할만한 물질도 주옵소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남을 도우며 살게 하옵소서! 내 일터에 주님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물질을 주옵소서!”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건강을 구하고, 주님을 위해서 물질을 구하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것을 구할 때, 주님 아낌없이 채워주시고, 넘치도록 허락하시고, 끊임없이 부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믿음을 훨씬 기뻐하시고, 이런 믿음에 하나님의 역사가 더 크게, 더 속히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9,10절에 보면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하나님이 응답 하셨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예배가, 주님께 쌓는 제단이 생활화 되야 합니다.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모든 일에 주님 앞에 기도하고 제단 쌓는 일이 생활화 되어질 때, 생활 속에서 세밀하게 간섭하시고, 역사하시는 손길을 보게 되는 거예요. 예배를 귀하게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예배가운데 임하시는 은혜를 많이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제의 제단을 쌓을 때에, 큰 우뢰를 발하여 블레셋 사람들을 어지럽게 했다고 했습니다. 정신이 혼란해 지니까 군사들의 힘과 사기가 꺾여 버린 거예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큰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할 때에 우리를 넘보려 하는 어두운 그림자들과 악한 영들이 무력해 지고, 가로막던 장애물들이 힘을 잃고 깨어지는 역사가 나타나거니와 우리에게는 감당하고 이길만한 힘을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을 뿐 아니라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1절 “이스라엘 사람들이…블레셋 사람을…쳤더라” 득의 양양하게 진군해 오던 순간에 갑자기 하늘로부터 터져 나온 큰 우뢰소리에 놀라 혼비백산한 블레셋 군대를 이스라엘이 사기충천하여 물리친 거예요. 그 승리를 기념하면서 돌을 세워 놓고 “에벤에셀(도움의 돌)”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고 고백을 합니다. 지난 날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산 것에 대한 감사이기도 하고, 앞날에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 안에서 살고 싶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에벤에셀의 고백이 내 심령의 고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런 저런 고비 많이 넘겼습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오늘까지 도와주신 하나님께서 앞날에도 여러분과 저의 인생살이에 반드시 도와주실 줄로 믿습니다. 끝까지 도와주실 줄로 믿습니다. 같이합니다. “반드시 도와주실 것입니다. 끝까지 도와주실 것입니다” 13절에 보면 “이에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블레셋 사람이 굴복했다고 했습니다. 완전히 항복한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이때부터 점점 그 세력이 약해 진 것입니다. “여호와의 손이…막으시매” 14절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경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잃었던 것 되찾을 뿐 아니라 계속적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혀온 족속이 더 이상 괴롭히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얼마나 은혜를 주시고 응답이 빠른지 이상하게도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하고, 그렇게 힘들었던 사업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저주 가운데 있던 사람이 축복을 받기 시작하고, 건강도 회복되어지는 역사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지금 이 자리가 어떤 자리입니까? 사무엘상 4:10-11 “블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이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살아가다 보면 한 사람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한 사람 때문에 큰 결과가 오기도 하더라는 것입니다. 좋은 일에도 그렇고, 나쁜 일에도 그렇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한 때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로 있으면서 나이가 많아 몸도 늙고 눈도 어두웠지만, 가장 큰 불행은 영적으로 대단히 어두웠더라는 거예요. 자신도 불행하게 살고, 가정도 망가지고,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실패하고 힘든 길을 가게 되었더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어두웠던 한 사람으로 인해 자신은 물론, 한 가문이 완전히 무너지고 온 나라가 힘들어지는 결말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사무엘을 보십시오. 자신만 아니라 주변을 살리고, 나라를 살립니다. 사무엘이라고 어려움이 없었던 것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려울 때 해야 될 일을 안 거예요.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이게 합니다. 미스바는 예루살렘 북쪽으로부터 13Km정도 떨어진 곳인데 걸어서 모이기에는 그렇게 가까운 거리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모여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해서 모인 것입니다. 모여서 부르짖으니 어두웠던 이스라엘에 새로운 부흥이 일어나고,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시작 된 것입니다. 20년 전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하였던 바로 그 자리입니다. 패배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고 승리하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보시고 그 집안에 복을 내리시겠습니까? 남편이 돈을 벌어와서 잘 먹고 산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 남편을 보고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에요. 믿음 생활을 잘하고 순종하는 그 집안의 아내를 보고 복을 내려 주시는 거예요. 오늘 우리가정에 누가 사무엘입니까? 안 믿는 남편은 물론이거니와 같이 믿는 가정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믿음 있는 자를 보시고, 복을 주십니다. 우리 가정에 내가 사무엘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 평화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내가 기도하는 동안, 내가 예배하고 믿음으로 사는 동안이에요. 내가 순종하고 충성하는 동안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붙드심이 나의 평생동안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당대뿐 아니라 자녀에게까지 이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분이 그 나름대로 주일성수도 잘하고, 순종하고, 십일조 생활을 잘 했습니다. 그러다가 열심히 식어지고, 믿음이 없어지다 보니 주일 성수도, 십일조도 거르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마음이 꺼림직했는데, 별 문제도 없고 별 이상이 없는 거예요. “괜찮구나, 큰일나는 것 아니구나, 굳이 안해도 되는구나” 그런데 3년이 지난 어느 날 사업에 부도가 나고 맙니다. 자기가 잘못한 것 아니었어요. 가장 큰 거래처가 부도를 맞게되어, 자기도 연쇄부도를 내고 도망가는 형편에까지 이르고 맙니다. 그제서야 “동안”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의 물질축복은 주일성수하고, 순종하고, 십일조 하는 동안이었구나” 회개합니다. “하나님! 내 힘으로 잘 된 것이 아니었는데, 이 동안을 잊어버린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 속에 사무엘이 죽었던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하나님 앞에 평생동안 은혜생활 되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업장을 다시 일으켜 주셨습니다. 영육간에 회복을 주신 거예요.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 평화가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의 사는 날 동안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셔서 가는 곳마다 평화가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예배를 희생하면서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바빠도 예배까지도 빼먹어야 할 만큼 바쁘게 살지 마십시오. 그것은 복이 아니에요. 우리의 예배가 살 때에 믿음도 자랍니다. 예배가 살 때에 삶 속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게됩니다. 예배가 살 때에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 인생은 운명이나 팔자가 아니에요. 우리를 연약하게 하고, 우리를 넘어지게 하고, 우리를 뒤로 물러나게 하는, 우리를 은혜의 자리에서 멀어지게 하는 악한 역사를 주의 이름으로 물리쳐 버려야합니다. 어렵다고 한탄하고 주저앉아 있으면 사탄이 가장 기뻐합니다. 사람은 생각에 따라서 그 앞날이 달라집니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실망하고, 보디발의 가정을 원망하고, 신세 타령이나 하고 있었다면 아마 정신병에 걸렸거나 폐인이 되었을 거예요. 자포자기해서 그 인생의 길 내리막길 걸어갔을 거예요. 믿음은 모든 것을 변화시킵니다. 듣는 대로 믿는 복된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들으실 때마다 교리를 얻고, 지식을 얻으려 하지 마세요. 메마른 교리가, 지식이 우리를 살리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 예비하신 은혜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살길이 열립니다. 인생살이에는 깜깜 할 때가 있는가 하면,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좋은 때도 있는 거예요. 때로는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이, 내 기도하는 대로 안 이루어지는 것이 더 큰 축복일 수도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어느 교회, 목회를 대단히 성공적으로 하고있는 세계적인 어느 목사님의 간증인데요. 목회를 시작해서 어려움이 많았는데, 잘못한 것도 없이 자꾸 쫓겨나더라는 거예요. 안동에서 목회 할 때는 너무 가난한 교회여서 먹을 것이 없으니까 교회에서 동네에 문방구를 하나 차려 주었답니다. 그래서 주일에는 설교하고 월요일부터는 문방구에 나가서 지나가는 초등학생들에게 연필도 팔고 노트도 팔고 껌도 팔면서 기도했대요. “아버지 이 문방구를 축복해 주셔서 잘 되게 해 주옵소서” 전도사 시절이었는데 그 기도가 얼마나 순수하고 소박한 기도입니까? 그런데 거기서 또 쫓겨나게 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그렇게 감사하다는 것이에요. 그때 문방구가 잘 되어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지금의 모습을 이루지 못했을 거라는 말입니다. 쫓겨난 행복, 버림받은 축복이라고 표현하면서 그것을 통해서 끊임없이 옷 갈아입게 하시고, 허물을 벗게 하셔서, 새 출발하게 하시고, 더 큰 일을 하게 하시더라는 거예요. 어려운 일을 당해도, 내 생각과는 다른 길로 인도하실 지라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주님의 더 큰 뜻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치우치지 아니하고, 포기하지 아니하고, 믿음의 정도를 걸어가면 주께서 앞날을 열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채워 주실 줄로 믿습니다. 지난 날 혹 잃어버린 것 있습니까? 잘못하여 잃어버렸던 물질도 회복되고, 잃어버린 직장이 회복되고, 건강도 회복되고, 잃어버린 명예도 회복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날마다 더 큰 은혜들을 체험하면서 사는 임마누엘의 축복된 가정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야고보서 5:16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에벤에셀의 하나님! 지난날을 도우실 뿐 아니라 바꾸시는 하나님! 악한 것이라도 선으로 바꾸어 주시는 에벤에셀의 하나님! 믿고 의지할 뿐 아니라 생활로 체험하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1.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2.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전혀 없네. (후)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사무엘상7장)(삼상7장3-12절)에벤에셀의 하나님(사무엘 상하 강해설교)

(삼7장3-12절)에벤에셀의 하나님(사무엘 상하 강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고 하나님의 종 모세와 여호수아 인도로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약 200여년이라는 시간동안 사사시대를 걸쳐,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 선지자가 등장하는 때까지 이르게 됩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로서, 사사시대의 종말을 예언하고 왕이 다스리는 왕정시대로 가는 안내자 역할을 했던 이스라엘의 지도자였습니다. 사무엘이 지도자로 세워졌을 때, 이스라엘 민족은 당시 블레셋 이라는 이방민족에 의해서 큰 위기를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블레셋 민족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와 그들이 살고 있던 땅과 터전들이 빼앗고, 사람들의 생명을 해하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블레셋 민족을 대항하여 전쟁을 벌였지만, 결과는 참패였습니다. 이제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해야할지,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그러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민족적 위기 가운데, 지도자로 세워진 사무엘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이게 했습니다. 미스바 이스라엘 민족이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모였던 회의의 장소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면한 위기를 해결할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위기의 시대, 위기의 상황을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가정의 위기, 직장과 사업의 위기, 인생의 위기, 개인과 공동체의 여러 가지 위기를 직면하며, 이 위기 앞에 어찌할지 모르고 당황하며 서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 민족의 위기 앞에 당황하고 있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인생의 위기 앞에 서서 당황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기를 직면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오늘 사무엘 선지자가 선포한 말씀을 들려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이 위기를 극복하기를 원하느냐? 그러면 나의 말을 들으라’이스라엘 민족이 위기를 경험할 때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하나님이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선포하게 하신 말씀을 통해서 동일하게 우리가 경험하는 인생의 위기들, 삶의 위기들을 극복할 수 있는 영적인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직면한 무수한 위기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 우리가 직면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영적인 원리는 과연 무엇인지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알려주시는 말씀은 무엇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당시 이스라엘은 이웃에 있는 블레셋이라는 강대국의 침략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이방나라에 의해서 고통을 당하고 있으니깐 가장 먼저 준비해야할 것은 국방을 튼튼히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상황가운데 사무엘선지자는 엉뚱하게도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가 경험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첫 번째 방법은 육적인 방법이 아니라 영적인 방법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고통을 당하는 것은 단순히 이방 민족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임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섬기고, 자기를 섬기고, 재물을 섬기고, 권력을 섬기고, 형식적인 신앙생활로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한없이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블레셋의 공격으로 고통을 받게된 것입니다. 블레셋 이라는 민족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정신차리도록 사용된 징계의 도구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고 있는 여러 가지 위기와 어려움들도 이와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위기와 어려움이 우리를 깨닫고 정신차리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일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위기들은 단순히 육적인 이유와 원인 때문에 발생한 것만이 아니라, 보다 더 근본적인 것, 영적인 것에 원인이 있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이 있습니다.그 영적인 원인은 바로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되어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민족의 위기 가운데 이렇게 외칩니다. ‘너희의 위기는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에서 온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라’오늘 사무엘의 선포는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삶 가운데 무수한 위기를 경험합니다.

가정의 위기, 부모와 자녀의 위기, 직장과 사업장의 위기 등을 경험할 때, 우리는 먼저 이 위기의 이유와 원인을 진단함에 있어서,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한번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 가정은, 내 직장과 사업장은, 과연 하나님 앞에 온전히 바로 서 있었는가? 부모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나는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리에 서 있었는가? 만약 내가 그러지 못했다라면 우리는 회개하고 우리의 잘못을 돌이켜 하나님을 향해 있지 않았던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우선시 했던 삶의 잘못된 모습들을 바로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 관계를 회복케 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너희 가운데 우상을 제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와 민족이 사는 길, 나와 내집이 사는 길은 우상을 버리고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슨 우상이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대인들에게는 보이는 우상보다 보이지 않는 우상숭배가 더 심각합니다.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 우상입니다.

하나님 보다 더 우선권을 두는 것 우상입니다. 내 마음대로, 내 고집대로 인생을 살려는 것 역시도 나라는 우상이 우리안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그 우상에 마음을 뺏기고 그 우상을 바라보며 살던 삶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여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가운데 있는 우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우상, 하나님보다 더 우선시하는 우상,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바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은 내 안의 우상은 과연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우상을 우리가 먼저 버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두 번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사무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민족의 위기가운데 제일 먼저한 행한 일은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도란 나를 포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행위입니다. 나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라는 신앙 고백이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위기 가운데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행동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위기 가운데 가장 먼저 해야 하는 행동은 모든 것들을 다 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모든 것들 다 해본 후, 어쩔 수 없이 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세상적인 방법, 인간적인 방법을 다 동원해 보고 안 되면, 지푸라기라도 잡은 심정으로 ‘마지막으로 기도나 해볼까?’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기도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 성도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문제 해결방법이자, 가장 먼저해야하는 최선의 행위입니다. 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사무엘선지자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블레셋 민족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였다라는 소식을 듣고 쳐들어올 준비를 합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였으니, 한 번에 모두 잡아 없애버린다라는 생각으로 쳐들어 오는 것입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해야 겠습니까? 빨리 전쟁준비를 하고, 싸울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사무엘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일 먼저 한 행동이 무엇입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는 일을 하였습니다.‘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 하나님이 역사하여 주시옵소서.’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사무엘 선지자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위기 가운데 가장 먼저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사무엘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도와다라는 기도, 간구하는 기도만 하지 않고, 그들의 죄를 회개하는 회개의 기도를 함께 하나님 앞에 올려드렸다는 것입니다.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기도중 가장 강력한 기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응답하시는 기도는 회개의 기도입니다. 회개를 전제로한 기도와 간구는 하나님의 제일 빠른 응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가장 빠른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기도의 방법은 회개를 전제로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우리가 경험하는 대다수의 위기가 우리의 불순종과 범죄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회개를 하며 우리의 불순종과 범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허락하신 징계로서의 벌을 거두어 가십니다. 하나님이 내리신 징계가 제역할을 다 마쳤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간절히 회개하며 하나님앞에 기도하자 어떠한 일이 벌어집니까?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의 대적을 치셨습니다.

그리고 원수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들을 되찾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위기를 극복하고 그동안 잃버린 것도 도로 찾는 회복의 역사를 허락하신 것입니다.기도는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이자 책임입니다. 기도를 잘하면 부족한 것 같은데 성공하고, 안될 것 같은데 잘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반대로 모든 것이 잘 갖추어도 기도가 없다면, 우리는 실패할 수 있고 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도는 부족한 내가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과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습니다. 아니 잠시 실패하는 듯 보여도 결국엔 더 크게 일어납니다. 저와 여러분은 기도의 성공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케 되고 회보케 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본문10을 보면 블레셋이 쳐들어 왔을 때 사무엘은 제단에서 번제를 드리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우뢰를 발하여 블레셋을 물리쳐주셨습니다. 그동안 잃어버려던 땅을 도로 찾았습니다. 평화가 지속되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비결은 예배입니다. 예배란 창조주 하나님, 구원자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행위입니다. 예배란 우리의 환경과 상황에 따라서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상황을 뛰어넘어 하나님 앞에 감사와 경배를 드리는 신앙의 행위입니다. ‘내가 고난을 당해도, 내가 위기를 경험해도 창조주 하나님, 구원자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합니다. 내 경배와 찬양을 받아주시옵소서.’ 이것이 진정한 예배의 정신인 것입니다.

사무엘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민족의 위기 앞에서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지금 나라의 존망이 위태로운 그 시기에, 창조자 하나님, 구원자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합니다. 하나님을 나의 창조자요 나의 구원자로 여기고 경배와 찬양을 올리는 사람들을 과연 하나님이 가만히 놨두시겠습니까? 그들을 망하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 돌이키고 회개와 기도를 하며,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그들을 망하게 하셨습니까? 그들이 원수 블래셋의 손에 넘어가게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을 구원하셨고, 그들을 승리케 하셨고, 그들을 회복케 하셨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역사가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도,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운데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위기를 경험할 때, 세상적인 방법을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에벤에셀의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에벤에셀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입니다.’ 인생의 무수한 위기가 우리들의 삶의 장가운데 있겠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인생을 붙들어 주시고, 우리를 위기를 넘어 안전한 자리에 까지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심을 여러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 어떠한 위기를 경험하고 있으십니까? 하나님 앞에 나와 그분과의 관계를 바로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나의 창조자요 구원자로 인정하고 그분께 경배와 찬양을 올려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기를 극복케 하는 능력을 주시고, 또한 우리를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위기를 극복케하고, 승리와 회복의 자리에까지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이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만나, 그분이 주시는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새벽설교 (사무엘상 7장 12~14절) 2020년 10월 11일 (주일) – 새벽기도회

새벽설교 (20.10.11)

본문: 사무엘상 7장 12~17절

제목: 기억이 가져다 주는 의미

본문내용

오늘 본문은 사무엘이 블레셋과의 싸움 이후에 승리를 기념하는 돌을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우는 장면이다. 돌은 세월이 지나도 그 형체나 모양이 동.식물처럼 바뀌지 않는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불로 열을 가해도 돌은 그 모양이 한결같이 그대로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돌’은 ‘영원’을 상징했다. 오늘 사무엘이 어떤 돌을 취하여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칭했다. 이 말을 번역하면 ‘도움의 돌’이란 뜻이다.

사무엘은 원수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을 후대에까지 기념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기념비를 세웠다. 사무엘이 이끈 이스라엘은 미스바에 쳐들어온 블레셋 군을 하나님의 도움으로 물리쳤다. 그들은 서쪽으로 도망가는 블레셋 군을 센 이라는 지역까지 쫓아갔고 거기서 추격하는 것을 멈추고 진영을 정비했다. 이스라엘이 더 이상 추격하지 못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히브리어로 ‘센’이라는 말은 ‘치아’란 뜻이다. 이는 그 지역이 치아처럼 불쑥 불쑥 튀어나온 바위들이 많은 험준한 곳임을 시사해준다.

구석 구석 좁은 곳으로 숨어든 블레셋 군을 추격하는데 한계가 부딪친 이스라엘은 이 지역에서 추격을 멈춘다. 그리고 미스바와 센 사이의 어느 지점에 승리를 기념하는 기념비인 ‘에벤에셀’을 세운 것이다. 이 기념비는 미스바 전투의 승리가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세운 기념 석주였다.

여기서 우리가 혼동을 피해야 할 일이 하나있다. 에벤에셀이라는 말은 앞전에도 한번 나온적이 있다. 사무엘상 4장 1절에 보면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라고 했다. 사무엘상 4장에 나오는 에벤에셀은 한 지역의 명칭이다. 반면, 사무엘상 6장에 나오는 에벤에셀은 기념비의 이름으로 서로 다른 것을 지칭하는 용어인 것이다.

13절에서 17절은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새로운 사사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는 동안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지역을 회복하고 주변국들과도 화친 정책을 통해 오랜만에 평화를 이루었다는 내용이다.

13절은 그 시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이게 어떤 말이냐 하면, 블레셋이 이스라엘에게 완전히 항복했다는 그런 말이 아니다. 한글성경을 눈으로 언뜻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는데, 아니다. 블레셋이 미스바 전투에서 패하여 쫓겨 가기는 했어도 얼마 후 다시 이스라엘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블레셋은 집요한 모기처럼 계속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했지만, 번번이 여호와께서 그들의 침략을 막으셨다. 하나님께서 블레셋의 공격을 막아주어 이스라엘은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블레셋은 더 이상 예전처럼 이스라엘의 영토 내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뻗어나가지 못했다는 그런 말이다. 이런 기간이 언제까지 지속되었느냐 하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이다. 이 말은 사무엘이 사사로서 통치하고 있을 동안을 가리키는데, 이 기간은 사울이 왕이 된 후의 약 5년을 포함하는 기간이다. 실제로 사울은 이 5년 동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많은 전공을 남길 수 있었다.

이 기간 동안에 이스라엘은 또한 블레셋 영토에 속한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빼앗겼던 성읍을 되찾았다. 14절은 이렇게 말한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이 말은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주요 성읍인 에그론과 가드까지 정복했다는 말이 아니다. 오해할 수 있는데, 에그론과 가드는 원래부터 블레셋 영토였었다. 이스라엘이 차지한 적이 없었다. 이 말은 에그론과 가드를 잇는 블레셋 경계의 동쪽 성읍을 회복했다는 뜻이다. 사실 이 부근의 이스라엘 성읍들은 오랫동안 블레셋의 통치와 압제하에 있었으나, 사무엘 시대에 도로 되찾은 것이다.

이것은 사무엘 시대에 하나님이 도우시는 이스라엘이 강했다는 뜻이다.

그러했기에 인근 지역에 흩어져 있던 아모리 사람과도 싸우지 않고 화친한 상태로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아모리 사람은 가나안의 일곱 족속 중 가장 강력한 족속으로 계속적으로 이스라엘과 대립했던 그런 족속이었다. 하지만 사무엘 시대에 블레셋이 계속하여 이스라엘에게 패한 것을 보고 이스라엘의 위세에 눌려 화평을 자처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 이렇듯 나라 밖의 사정들이 진압이 되고 평온해지자 사무엘은 가나안 땅 중심부인 벧엘과 길갈 미스바 라마 지역을 정기적으로 순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도 하고 제사장으로서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었던 것이다. 이것은 지난 블레셋과의 전쟁으로 실로가 불에 타 버렸고, 이 실로에는 언약궤도 없고 성막도 없었기에 사무엘이 더 이상 전통적인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처럼 한 곳에 머무를 필요가 없었음을 알려준다. 사무엘은 이전과 다른 그런 시대를 새롭게 개척해 나갔던 인물이었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사례를 들면, 미국의 개척 초창기에는 장로교가 우세했었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하버드 대학이나 예일대학은 처음에는 장로교 성직자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었다. 그리고 장로교는 이런 주요대학에서 정규적인 훈련을 통해 배출된 사역자들을 지역 교회에 청빙하여 교세를 넓혀 갔었다. 그런데 어느 한 시점에 침례교의 교세가 장로교를 앞질러 지금까지 왔다. 여기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미국이 땅 덩어리가 얼마나 넓은가. 이 넓은 미국을 하버드나 예일 대학 같은 몇 군데의 기관에서 배출된 사역자들만으로는 채울 수가 없다. 그럼에도 장로교는 지성을 갖추고 학문적으로 엄격한 훈련을 한 성직자들만을 지역교회의 목사로 세우며 교회를 개척해 나갔다. 그러니, 부족한 성직자들로 그 넓은 땅 덩어리를 속도감 있게 전도하지 못했던 것이다. 반면 늦게 출발했던 침례교의 경우는 장로교처럼 지역 교회를 중심으로 말뚝 사역을 한게 아니라 여러 지역을 한 사람의 사역자가 순회하는 방식의 사역을 도입했다. 그리고 장로교만큼 엄격하게 학문적 훈련을 한 사역자만을 세운게 아니라, 조금 지성적으로 부족하여도 복음전파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분들을 세워 빠른 속도로 미국 전역을 휩쓸었던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침례교가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개신교단이 중심이 된 이유이다. 사무엘의 경우와 완전 유사하다. 사무엘은 실로라는 곳에서 말뚝사역을 했던 전임 사역자들과 달리, 이스라엘중심부의 4개 지역을 선정하여 그곳을 차례로 돌아다니면서 사역을 했다. 이런 사역이 효과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다윗과 솔로몬이 아무리 뛰어나도 혼자서는 나라를 이끌어갈 수 없다. 좋은 일군, 영적으로 깨어있고 하나님 편에 서 있는 백성들 때문에 그들은 이스라엘에 전성기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기반을 사무엘이 이 순회사역을 통해 마련한 것이다.

오늘날 순회 사역은 조금 더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코로나 시대에 순회사역은 지역이 아닌 공간의 의미로 확장된다.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에서 드려지는 예배, 줌 프로그램을 통한 화상강의의 발달,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같은 SNS, 교회 홈페이지 등은 이 시대의 새로운 순회사역지이다. 변화되어지는 세상에서 지혜로운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부영교회도 앞으로 비전을 가지고 전통적 목회 영역을 넘어 새로운 순회 사역지를 개발해야 하는 시점에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한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도움의 돌에서 시작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이 블레셋과의 관계에서 이스라엘을 우위적 위치에 놓으시고, 또 평화 가운데 새로운 시대를 준비케 하시는 하나님을 안배를 살펴보았다. 도움의 돌 에벤에셀. 여호와의 구원행위를 기억하고 회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기억은 인간 중심의 삶에서 하나님 중심으로의 삶으로 옮겨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 우리를 포함한 후대의 사람들은 이 도움의 돌 에벤에셀을 기억함으로 과거의 승리를 현실로 가져올 수 있다. 과거에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본 받고 따라갈 때, 오늘 우리 역시 도우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절기와 각종 기념일이 의미가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 있다. 기억은 과거의 승리를 현재로 가져올 수 있는 ‘통로’이다.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신 하나님(삼상7:12-14)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신6:18)

사무엘상7:12-14사람은 대부분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부자가 되는 방법에 대한 책이 많이 나와 있고 그런 책이 잘 팔립니다.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요? [부자의 탄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미국 최고의 부자를 선정하는 “포브스 400” 명단을 발표한 25주년을 맞아, 1982년부터 2006년까지 이 명단에 오른 1302명의 부자들을 조사하여 지은 책입니다. 공동 저자인 피터 번스타인과 애널린 스완은 부자들의 특징으로 네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첫째는 학벌, 두뇌, 추진력입니다. 둘째, 모험, 셋째, 행운 그리고 타이밍입니다. 넷째가 승부욕입니다. 학력이 부자가 되는데 필요한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지만 기술 문명이 급속히 발전되는 지금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은 필수적이라고 합니다. 지난 25년 간 명단에 오른 포브스 400대 부호들 중 약 10%는 고등학교 중퇴자이거나 대학은 들어갔으나 끝까지 학업을 마치지는 못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1982년 400대 부호 중 50명 정도가 대학졸업자였던 반면에 2006년에는 244명으로 급증했다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는데도 학력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학력을 떠나 부호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위험감수(Risk Taking)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부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시도한 끝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호들은 ‘승부욕’이 있다고 합니다. 유명한 자선가로 활동하고 있는 빌 게이츠도 인터넷 브라우저 시장을 독점적으로 석권하기 위해 자사의 브라우저를 윈도우 운영체제에 무료로 끼워 파는 등의 방법까지 동원하며 경쟁자인 넷스케이프를 없애려 했다는 것입니다.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운이 따라야 한다고 합니다. 하버드 대학 사회학과 크리스토퍼 젠크스 교수는 미국인의 소득을 결정짓는 요소로 개인의 능력이나 경험 못지않게 운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다수 ‘포브스 400’의 부호들도 그들이 정상에 오르는데 운이 중요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성경은 그것을 ‘행운’이라고 말하지 않고 ‘은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라고 받아들입니다. 신앙인은 그것을 우연이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사업에 성공하는 것도, 원하는 대학 들어가는 것도, 건강해지는 것도, 꿈을 성취하는 것도, 부자가 되는 것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부자가 된 후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나의 소유도 족하오니(창33:11)”라고 고백하였고, 솔로몬도 부귀영화를 누린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대하1:8). 바울 역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15:10)”라고 고백합니다. 20년 동안 블레셋의 지배를 받다 극적으로 블레셋과 전쟁에서 승리한 사무엘도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1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 이라 하니라 (삼상 7:12)” 이제 2009년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고백도 이런 고백이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십니다.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1. 누가 우리를 궁극적으로 도와주십니까?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살면 살수록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된다는 사실을 더욱 깨닫습니다. 살면 살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고 인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열심히 운동한다고 모두가 건강한 것 아니고 지혜를 짜서 힘을 다해 사업한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부 잘 한다고 모두 출세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도 뇌출혈 되어 쓰러지면 그 지혜 하루아침에 달아납니다. 아무리 부유한 사람도 자그마한 세포 하나가 반란을 일으키면 쌓아놓은 모두 재산 다 놓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형통의 길이 있습니다. 인생을 수많은 어려움을 겪은 다윗은 “하나님은 나의 돕는 자시라”(시편 54:4)고 고백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너를 지으며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너를 도와줄 여호와”(이사야서42:2)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히브리서 13:6)라고 말씀합니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브리서 2:18)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는다고 했습니다.(요한복음 14:18)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올해 참 어려움을 많이 겪으신 성도님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날 뭘 도와 주셨느냐고 원망하시지 말시기 바랍니다. 날 외면했다고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사회복지사의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한 집에 방문했는데 아주머니가 얼굴에 코가 없고 구멍만 나 있었답니다. 어릴 때 화상을 입어 가족은 다 죽고 아버지와 자신만 살았는데 그 사건 이후 아버지는 허구헌날 술만 드시고 자신을 구타했답니다. 결국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부랑자 보호시설에 살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답니다. 얼굴에 온 통 화상이고 코가 없고 구멍만 두 개 나 있는데 어떻게 결혼을 했을까 의심을 했는데 남편이 시각장애인이었답니다. 그래서 딸을 낳았는데 그 때가 가장 행복했답니다. 딸을 낳은 후 남편은 신음신음 앓다 죽었답니다. 그래서 딸을 기르기 위해 전철역에서 구걸하는 일을 하였답니다. 부엌을 돌아 보니 쌀 한톨 없었답니다. 이제 쌀도 나오고 정부에서 보조금도 나올테니까 조금 기다리라고 말하고 나오려는데 손을 붙잡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답니다. 그러더니 장롱에서 검은 비닐 봉지를 들고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그걸 가지고 가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 주라는 것이었답니다. 받지 않으려고 하니까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혼자 약속한게 있어서요. 구걸하면서 1000원짜리가 들어오면 생활비로 쓰고, 500원짜리가 들어오면 자꾸 시력을 읽어가는 딸아이 수술비로 저축하고. 그리고 100원짜리가 들어오면 나보다 더 어려운 노인분들을 위해 드리기로요. 좋은데 써 주세요.” 집에 와 세어보니 100원짜리 1006개의 동전이 들어 있었답니다. 그 돈을 세는 동안 내 그는 열 손가락이 모두 더러워졌지만 감히 그 거룩한 더러움을 씻어 내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한밤을 뜬눈으로 지새고 말았답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올 한해 되는 일 없었다고 불평하며 원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이 시간 예배를 드리며 말씀을 들으면서 에벤에셀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에벤에셀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범죄하였을 때는 법궤를 빼앗겼던 곳입니다. 범죄한 제사장 엘리의 아들 홈니와 비느하스가 블레셋 군대에 의해 비참하게 죽었던 곳입니다. 실패한 곳입니다. 수치를 당한 곳입니다. 그러나 이제 사무엘 때 완전히 역전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미스바에 모여 회개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실패에서 승리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수치에서 영광으로 바뀐 곳입니다. 사무엘은 그 승리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기념비를 세워놓고 그것을 에벤에셀이라 하였습니다. ‘에벤에셀’이란 ‘도움의 돌(stone of help)’이란 뜻으로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도 2009년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진솔한 고백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세상이 다 나를 외면한다 해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지금 우리의 형편이 어떤 처지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은 멈추지 않습니다.” 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때 나를 밀어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는주 평안히 길을 갈땐 보이지 않아도 지치고 곤하여 넘어질때면 다가와 손내미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는주 때때로 뒤 돌아보면 여전히 계신주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시며 나를 재촉하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2. 하나님은 우리를 어디까지 도와주십니까?1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삼상 7:13)”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입니다. 사무엘이라는 이름에 우리 자신의 이름을 넣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00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아멘.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을 강조하고 있습니다.1)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보호하심으로 도와주십니다.(12-13)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어떠한 적도 사무엘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불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을 막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사무엘은 마치 살아 있는 법궤와 같이 무서운 재앙을 일으키는 존재로 보였습니다.2)사무엘이 살아 있는 동안 회복해 주심으로 도와주십니다.(14상)잃어버린 것을 되찾게 해 주셨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경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빼앗겼던 국토를 찾게 해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빼앗겼던 모든 성읍들을 전부 되찾았습니다.3)사물엘이 살아 있는 동안 평화를 주심으로 도와주십니다(14하)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도록 해 주엇습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실 때 평화가 보장됩니다. 조지헐버트라고하는 사람이 “평화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불화가 있는 곳에는 마귀가 있다는 말입니다.4)주어진 사명을 완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15-17)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다스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 주셨습니다.하나님이 도와주실 때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보호받고, 회복되고, 평화가 보장되고, 사명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보호 받고, 회복되고, 평화가 보장받고,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려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사람이 도와주지 않을지라도 우리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우리는 보호받고, 회복되고, 평화를 보장받고, 주어진 사명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초등학교 때 부모님을 잃은 타미, 지미라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들을 도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고아원에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신앙생활을 잘 하였습니다. 고아원으로 들어갈 때 교회 학교 담임선생님이 “지미야, 하나님은 결코 너를 버리지 아니하신다. 하늘의 별을 따거라. 같은 값이면 큰 별을 따거라.”라고 격려해 주었답니다. 고아원에서 생활하면서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중학교 다니면서 삐뚤어지기 시작합니다. 못된 친구를 사귀어서 자꾸 문제를 일으키므로 학교에서 “더 이상 교육을 못하겠다.”해서 퇴학을 시켰습니다. 퇴학당했다는 것을 알고 옛날의 교회학교 선생님이 지미를 찾아갔습니다. “내가 네게 했던 말 기억하지? 학교는 너를 버리고 세상은 너를 버려도 “하나님은 절대로 너를 버리지 아니하신다. 네가 별을 따려고 하거든 절대로 작은 별을 따지 말고 큰 별을 따거라.”라고 다시금 위로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때 지미는 힘을 얻었습니다. 다시 교회학교를 다니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학교는 다닐 수 없으니 자립하리라 마음먹고 피자 집에 취직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피자집을 차렸습니다. 잘되어 지점이 생겼습니다. 지점이 1400개가 되었습니다. 1,400개의 지점을 거느리는 사장이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형님을 찾아서 형님과 같이 운영합니다. 그 피자집이 도미노 피자집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나를 버리지 아니한다’는 신앙으로 잃어 버렸던 가정의 행복을 되찾게 되었습니다.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시지 않는다 해도 우리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보호받고 회복되고 평화가 보장되고 사명을 완수할 수 있을 줄 믿습니다.3. 그러면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사무엘이 어떻게 에벤에셀의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까?1)하나님은 여호와를 사모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드리는 자들에게 에벤에셀의 복을 주십니다.(2-4, 17)실패의 에벤에셀이 성공의 에벤에셀로 변화되는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 받고도 이미 에벤에셀이라는 칭호를 받고도 수치와 멸시는 받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정 에벤에셀되시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려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실패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에벤에셀의 복을 누립니까? 그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섬기는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습니다. 그 신들이 자신의 인생을 보장해 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수치와 실패뿐이었습니다. 법궤를 빼앗겨 20년 동안 찾아오지 못하고 블레셋에 조공하며 노예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맘몬 돈이 우리의 인생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이 우리의 인생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권력과 명예가 우리 인생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불나비처럼 그것을 좇아갑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우리에게 행복을 주고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그것들의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십시오.20년 동안 불레셋의 압제에 시달린 백성들이 어떤 마음을 갖습니까? 2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를 사모합니다. 그 때 사무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3-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우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돌아와 여호와께 단을 쌓습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예배생활이 회복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자들이 복을 받습니다. 심령에 치료를 받습니다. 상한 마음 위로를 받습니다. 절망하는 인생에 소망이 생깁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민족, 가정, 개인이 복을 받습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지혜와 부와 영광을 받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 나오는 민족을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복을 받습니까?우리 민족이 세계 부자들 나라의 모임인 OECD에 가입하고 곳곳에서 이만큼 대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을 믿는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독선적이고 호교적인 해석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개신교는 우리 나라 근대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학교와 병원과 교회가 세워지면서 사람의 정신이 개조되었고 새로운 문화가 태동하였습니다. 우리 민족에 개신교 선교사가 들어온지 120년이 되었습니다. 눈부신 발전을 했습니다. 1885년 언더우드 아펜젤러가 들어왔습니다. 그전에 알렌이 1884년에 중국에서 들어왔습니다. 예수님 오시기전 57년 전에 신라가 태동하였습니다. 37년 전에 고구려, 18년 전에 백제가 생겨났습니다. 주님 구원 사역을 이룰 때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였습니다. 주님이 구원사역을 성취한 후 1884년 동안 복음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918년 국호가 고려로 바꾸어집니다. 936년에 삼국통일을 하여 코리아라는 국호가 세계에 알려집니다. 그 때 우리나라는 불교를 국교로 삼았습니다. 고구려 소수림왕 372년에 불교가 들어옵니다. 그리고 1600년 동안 승불정책을 펴며 불교 영향을 받습니다. 1392년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국호가 조선으로 바뀝니다. 조선은 500년 동안 승유정책을 썹니다. 죽은 자의 문화가 세상을 포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제사 문화 민족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반만년 샤머니즘에 젖은 민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백성을 사랑하여서 선교사를 보내주시고 학교를 짓고 병원을 열고 개화 문명을 받아들이게 하여 이렇게 복을 받게 하였습니다. 요즈음 경제가 어렵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이 진정 복받은 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미스바로 가야 합니다. 그 때 에벤에셀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출애굽기 20장 24절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게 토단(土壇)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和睦祭)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라고 하셨습니다.2)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에벤에셀의 복을 주십니다.(5-9)5절을 보십시오. 사무엘이 온 백성을 미스바로 모이게 합니다. 그곳에서 무엇을 합니까? 6절을 보십시오. 백성들은 금식하며 회개하고 기도합니다. 이 소식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습니다. 절호의 기회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이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총칼을 들고 싸워야 할 때 백성들이 다 모여 금식하며 회개하고 기도하고 있다면 백전 백패할 것은 뻔한 것입니다. 블레셋이 처들어 오니까 기도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두려워합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두려움으로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두려움을 기도로 이겨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거나 말을 하면 우리의 뇌는 못하는 이유를 열심히 찾게 되어 있습니다.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어도 그쪽으로는 생각하지도 않고 할 수 없는 자료만 찾아냅니다. 그 결과 ‘안 된다’, ‘불가능하다’고 확정해 버립니다. 그러나 기도하며 긍정적인 말을 하면 우리 뇌는 가능한 방법을 찾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도울 것이라고 말하면 두려움이 물러날 뿐 아니라 믿고 기도한대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어 허락하시면 때가 되면 이루어집니다. 부정이 긍정을 이길 것같지만 결국 긍정이 부정을 이기는 것입니다.미국에 슈퍼마켓 체인점을 2,000개나 갖고 있는 페니(J.C.Penney)란 사람을 아실 것입니다. 그는 자산도 없었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임종자리에서 “너는 반드시 해낼 거야”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페니는 의기소침 할 때면 아버지의 유언을 떠올리곤 했답니다. 그는 큰 재산을 모았지만 58세에 모든 것을 잃고 빈털터리가 되어 버렸답니다. 다시 희망을 걸어 볼 만큼의 재산이 남아 있지 않았답니다. 그는 다시 아버지의 유언을 떠올렸답니다. “너는 반드시 해낼 거야” 결국 그는 다시 일어나 미국에 슈퍼마켓 체인점을 2,000개나 갖고 있는 부자가 되었습니다.백성들은 두려움으로 낙심하며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백성들은 어떻게 합니까? 8절을 보십시오. 사무엘에게 기도를 요청합니다. 쉬지말고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백성의 기도부탁을 받고 어떻게 합니까? 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응답해 주셨습니다. 저와 우리 성도님도 이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사무엘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말입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뇌성으로 혼비백산됩니다.전쟁이 일어났을 때 기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철기로 무장한 강력한 군대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니까 에벤에셀의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위기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공포가 다가올 때 질병과 가난으로 고통을 받을 때 자녀 문제로 고민이 될 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예수님 말씀합니다. 우리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면 우리 하나님이 도와 주실 줄 믿습니다.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 7:7-8)”3)하나님은 사명붙들고 나아가는 자에게 에벤에셀의 복을 주십니다(11)기도한 후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켜 주어 블레셋들을 혼비백산하게 합니다. 이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계속 기도만 하고 있었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도망가는 블레셋 사람들을 좇아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다고 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무엇인가 이루기 위해 사명 붙들고 나갈 때 그곳에 에벤에셀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받는 것입니다. 기도하며 운동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통해 질병으로부터 놓임을 받게 됩니다. 기도하며 사업 열심히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에벤에셀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받게 됩니다. 기도만 하고 가만히 있으면 안됩니다. 과거 실패했다고 그 실패의 경험 때문에 기도만 하고 나가기를 두려워하면 안됩니다. 에벤에셀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범죄하였을 때는 법궤를 빼앗겼던 곳입니다. 범죄한 제사장 엘리의 아들 홈니와 비느하스가 블레셋 군대에 의해 비참하게 죽었던 곳입니다. 실패한 곳입니다. 수치를 당한 곳입니다. 아픈 상처를 가진 곳입니다.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는 ‘자기(self)란 자신이 기억하는 것의 총체’라는 말로 정의하였습니다. 기억을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전쟁에 참여한 사람 중에는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이 무참이 죽임을 상한 고통들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기억에는 ‘진술적 기억'(declarative memory)과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 즉, ‘비진술적 기억'(non-declarative memory)이라고 말합니다. 감정적으로 아팠던 사건에 대한 명시적이면서 진술할 수 있는 기억과 다릴 진술하지 못하지만 삶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암묵적인 감정적 기억'(implicit emotional memory)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픔을 털고 일어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어떤 경우에도 그 상처와 패배, 슬픔과 고통을 딛고 일어나야 합니다.2009년 글로벌 리더십 서밋(Global Leadership Summit)에서 크렉 그로쉘(Graig Groeschel)은 본질을 붙잡는 사역자는 실패를 털어버리는 사역자라고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말합니다.한 작은 마을에서 당나귀가 구덩이에 빠졌습니다. 모두가 말했습니다. “당나귀를 꺼내자. 당나귀를 살려야 해.” 그러나 당나귀를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잡아당기고 몸을 묶어 끌어당기고, 모든 시도를 다 해봤지만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누군가 말했습니다. “할 수 없지만 당나귀를 묻어야겠다.” 그래서 사람들은 삽을 들고 당나귀에게 흙을 퍼부었습니다. 구덩이 안에 갇혀 있던 당나귀는 흙이 쏟아지자 몸에서 흙을 털어냈습니다. 흙이 몸에 떨어질 때마다 당나귀는 털어냈고 흙은 바닥에 쌓였습니다. 그리고 바닥이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당나귀는 흙 위로 올라섰고 또 올라섰습니다. 사역자들에게는 당나귀처럼 실패를 털어버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가슴 아픈 사연들, 생각 없이 쏟아놓은 비난들, 마음을 짓누르는 두려움들을 털어버리고 그것을 디딤돌로 일어서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뛰어야 합니다. 사명 붙들고 나가다 보면 강도 나오고, 바다도 나오고, 산도 나오지만 어느새 건너간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곳에서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외치게 되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여리고성도 무너지고, 요단강도 건널 수 있으며 홍해도 건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만이 있는다고 여리고성이 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고 잠만 잔다고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매일 위험을 무릎쓰고 돌아야 합니다. 법궤를 메고 요단강을 들어갈 때 요단강이 갈라진 것입니다. 홍해를 바라보고 지팡이를 내밀었을 때 홍해가 갈라진 것입니다. 모세가 아말렉과 싸울 때 기도만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붙들고 기도할 때 여호수아는 산 아래에서 싸웠던 것입니다. 아내가 집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을 때 남편은 직장에서 열심히 뛰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새벽에 나와 열심히 기도할 할 때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 붙들고 사명을 위해 뛰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릴 때 그저 우연히 무너뜨린 것이 아닙니다. 믿음 가지고 자신에게 익숙한 물매와 돌을 가지고 나갈 때 골리앗이 넘어진 것입니다.2009년 마지막 주일 예배입니다. 에벤에셀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와 주셨던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내년에도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하나님은 이 시간 여호와를 사모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드림으로 에벤에셀의 복을 누리시길 원하십니다.하나님은 이 시간 기도하므로 응답받고 살아 있는 동안 보호와 회복, 평화와 사명 성취의 에벤에셀의 복을 누리시길 원하십니다.하나님은 이 시간 과거 실패의 경험으로 좌절하지 말고 사명 붙들고 일어나 전진함으로 에벤에셀의 복을 누리시길 원하십니다.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9.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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