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고시 합격 수기 | 드라마 같았던 사법고시 합격 이야기(Feat. 대성통곡) Ep. 3-10 76 개의 가장 정확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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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사법 고시 합격 수기

  • Author: 서울대 14년 서준석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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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12. 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RVNNNQZBhnA

노무현 대통령 사법고시합격 수기

뭐 아는분들은 보셨겠지만 다시올립니다.

고시 준비생은 아니지만, 정말 잘 쓴 글이라 읽어 보기를 권유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는 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등학교만 졸업하고도 어떻게 그 힘들다는 사법고시에 합격했냐고 묻곤 한다. 젊은 사람들 가운데는 좀더 구체적으로 ‘공부를 어떤 식으로 했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1975년 내가 제 1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을 당시는 물론이고, 20년이 거의 다된 지금까지도 내게 묻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칭찬도 반인 것 같고 호기심도 반인 것 같다.

그런데 그때마다 제대로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워낙 오래 전의 일이고 또한 조금은 쑥스럽기도 해서였다. 그러나 혼자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뛰고 흐뭇해진다. 남들보다 많이 힘든 상황에서 공부를 했고 시험에 합격해서 그런지, 내 인생을 되돌아볼 때 사법 고시에 합격했던 그 순간만큼 행복했고 성취감을 느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수험 잡지인 [고시계] 75년 7월호에 ‘과정도 하나의 직업이었다’라는 제목으로 고시 합격기를 쓴 적이 있다. 이번에 책을 내기 위해 [고시계] 75년 7월호를 어렵게 구해 오랜 만에 내 합격기를 읽어보았다.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 참으로 절망도 깊었고 일도 많았던 고시 공부 시절…..

어릴 때 쓴 것이라 여기저기 어색한 데도 많고 유치하게 느껴지는데도 있지만, 그 당시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하고 싶어 손보지 않고 그대로 싣는다. 그 동안 나의 고시 공부 시절에 대해 물어 보았던 분들께 만족스런 대답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 * *

1. 머리에

지나간 일은 언제나 아름답게만 보인다지요? 산꼭대기에서는 힘겹게 올라온 가파른 산길마저도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듯이 말입니다. 또 승자의 과거는 그것이 자서전이든 타인의 작품이든 가끔 신화적으로 수식되어 있음을 봅니다.

사 법시험의 합격, 이것이 긴 여정에서 하나의 중간 목적지에 불과하지만 하나의 성취와 조그마한 승리로 평가될 수도 있기에, 막상 합격기라는 것을 쓰려 하니 자칫 어떤 승리감에 도취되거나 과거를 돌아보는 낭만적인 기분에 도취되어 힘겹고 괴로웠던 긴 수험 과정의 체험을 스스로 미화시켜 얘기하는 잘못을 범하게 될까 여간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졸 합격자라는 다소 특이한 제 입장이 독학도들에게 어떤 관심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둔한 솜씨나마 될 수 있는 한 사실대로 기억을 더듬고 그때의 생생한 감정들을 살려서 몇 자 쓰고자 합니다.

2. 동기 – 꿈을 키우던 시절

나 는 경남 진영이라는 읍에서 약 10리나 떨어진 산골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위로는 형님이 두 분으로, 큰형님은 부산 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고등고시를 준비하였으나, 본래 가난한 살림에 벅찬 대학 공부 때문에 가세는 더욱 기울어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때쯤 끝내 응시도 해보지 못한 채 그만두고 말았다.

당시 나는 형님을 따라 마을 뒤에 있는 봉화사라는 절에 가서 그곳에서 고시 공부를 하는 형님 친구들의 법이론이나 시국에 대한 토론을 자주 듣곤 했으며, 또 형님은 자신의 좌절에서 오는 울적한 심정을 털어놓기를 좋아했던 모양으로 가끔 상기된 어조로 나에게 여러 가지 얘기를 들려주곤 했다.

물론 나는 그때의 얘기들이 너무 어려워서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이 많았으나, 그들의 엄숙한 표정과 격한 어조의 토론은 만만한 젊음의 패기와 이상을, 그리고 격렬한 논쟁의 뒤에 주고받는 소탈한 웃음은 사나이들의 인간미와 호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느꼈고, 이것들이 고시 학도들의 속성이요 또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으로까지 생각했다. 결국 이런 분위기는 나에게 고시를 해보겠다는 막연한 꿈을 갖게 해주었다.

그러나 살림은 더욱 기울어 작은형님은 학업을 중단했다. 부모님의 노동 능력은 차츰 줄어갔고, 마침내 최후의 명줄로 남아 있던 조그만 과수원마저 빚에 쪼들려 처분해야 했다.

나 는 3학년이 되면서 일찌감치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5급 공무원 시험을 거쳐 독학으로 고등고시에까지 밀고 나가 보겠다는 결심으로 옛날 형님께서 보시던 누렇게 바랜 [법제 대의]와 [헌법의 기초 이론(유진오)]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해 10월에는 일자리를 찾아 나갔던 형님께서 돌아와 내가 하는 꼴을 보고 크게 나무라시며 진학을 권하셨다. 나도 가정 사정을 들어 고집을 부려 보긴 했으나 끝내 강권에 못 이겨 부산 상고에 장학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예순이 넘으신 부모님들의 생활은 아무런 토지의 근거도 없이 자신들의 노동으로 해결하시도록 내버려 둔 채 작은형님이 어렵고 힘든 직장을 전전하며 벌은 돈으로 내 숙식비를 부담해야 했으니, 대학 진학은 아예 엄두도 내어 보지도 못하고 취직반에 들어갔다.

그래도 역시 막연하게나마 길러 오던 고시에의 꿈을 버릴 수는 없었던지 3학년 말 농협에 취직시험을 치른 후 발표도 나기 전에 65년도 11월호 [고시계]를 한 권 샀다. 고시의 냄새를 알기 위하여…..

3. 출범, 그리고 표류

농 협에의 낙방에 이어 개인 회사에 취직했으나 생각보다 급료가 박했고 근무 시간이 많았던 것은 고시로 향한 출범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야산 돌밭을 개간하여 심은 고구마와 영세민 취로 사업장에서 내주는 밀가루로 연명하시는 부모님들의 실망을 모른 체하고 직장을 그만두었다. 한 달 반의 급료 6천원으로 몇 권의 책을 사고 마을 건너편 산기슭에 토담집을 손수 지어 ‘마옥당(磨玉堂)’이라 이름 붙인 후, ‘사법 및 행 정 요원 예비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당시에는 학력 제한이 있었다). 책값을 벌겠다고 울산 한국비료 공장 건설 공사장에 막노동을 하러 갔다가 이빨이 3개나 부러지고 턱이 찢어지는 불운을 겪으면서도, 용케 11월에는 제7회 예시에 합격하였다.

4개월 정도의 준비로 예시에 합격하는 행운과 함께 이제까지의 나의 처절한 투쟁은 막을 내렸다. 나의 예시 합격에 자극받아 큰형님은 67년에, 작은형님은 68년에 각각 5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67년에는 법률 서적을 살 형편이 못되어 예비 시험 과목을 새로 공부하고 있다가 68년에는 군에 입대했다. 군에 있는 동안에도 공부를 해 보려고 애썼으나 영어 단어 하나 암기를 못하고 3년을 표류하고 말았다.

4. 열풍에 돛을 달고 – 그리고 좌초

71 년 제대를 하고 집에 오니 집안 사정은 상당히 호전되어 있었다. 4월부터 옛날의 ‘마옥당’을 수리하여 공부를 시작, 5월 2일에 3급 1차에 합격, 그리고 사법시험으로 전환. 처음 법률 책을 대하니 다소 흥분되기도 했으나 과연 이 어려운 것을 해낼 수 있을지 더럭 겁부터 났다. 그러나 소설을 읽듯이 마구 읽었다. 생각보다 쉬웠다. 겉만 슬슬 핥으니 그럴 수밖에……. 전 과목을 무질서하게 읽었다. 행정법과 상법이 좀 어려운 듯했다. 민법을 모르니 그럴 수 밖에……. 소송법은 전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실체법을 전혀 모르니 그럴 수밖에……. 4개월에 걸쳐 오리무중을 헤매면서 전 과목 3회독을 마쳤다.

「고시 계」를 66년도부터 소급해서 샀다. 그러나 합격기 말고는 아무 것도 읽을 수 없었다. 그 동안의 체험과「고시계」합격기에서 읽은 것을 정리하여 얻은 것은 책을 읽는 순서 정도였다. 이리하여 민법을 먼저 읽고 상법과 행정법에 들어가고 실체법을 먼저 읽고 소송법에 들어 간다는 순서를 정하여 9월부터 시작했다. 새로 읽으니 과거의 3회독은 간 곳 없고 전혀 새로 읽는 기분이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다시 어려워졌다.

그러던 중 10월에 14회 공고가 났다. 외면하려 했으나 자꾸만 들떴고 마침내는 고시 사상 최단기 기록을 목표로 하여 무작정 덤볐다. 문제 집을 샀다. 1차의 합격은 나의 이러한 만용을 더욱 부채질했다. 이젠 문제집마저도 내 나름대로 밑줄을 긋고 그 부분만 골라 읽었다. 8개월 정도의 준비로 2차 시험에 응했다.

시 험장에서 고향의 중학교 후배를 만났다. 사법시험 준비는 나보다 훨씬 선배였다. 나의 공부 기간을 듣고는 “전 과목을 한 번 다 보지도 못했겠네요?” 했다. 어리석게도 나는 자신이 무시당하는 기분에 저으기 분개하면서 우습게 받아 넘겼다. “두고 보라지……. ” 정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을 모르는 막강한 뱃심이었다. 이런 뱃심으로 시험에 응했다. 기막히게 더 잘 썼다. 내가 아는 건 다 썼고 또 아는 건 그 뿐이었으며 집에 와서 책을 대조해 보지도 않았으니, 기막히게 잘 썼다고 생각할 수밖에……. 점수는 50점 얼마였다.

뒤에 읽어보니 문제집에 밑줄을 그어 두었던 부분이 모두 엉터리였다. 다른 색깔로 새로 밑줄을 고쳐야 할 형편이었다. 이러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응시자를 젖히고(?) 과락 없이 300명 선 안에 들어갔으니 다음에는 틀림없을 거라고 또 한 번 낙관했다.

그러나 발표 후 5-6개월을 이유 없이 허송했다. 제대 후 공부도 시작하기 전부터 마을 처녀에게 마음을 뺏기기 시작하여 상대방의 단호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열을 올리게 되고 8개월에 걸쳐 집요하게 추근거려 1차 시험 직전에야 겨우 처녀의 마음을 함락시키고는 안도했는데, 이제 그녀가 결혼 적령을 넘었다는 사실과 고시와 연애는 양립할 수 없다는 중론 사이에서 그녀와 나는 고민의 연쇄반응을 일으켰고, 또 이틀이 멀다 하고 만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애정의 열도에 비례하여 공부를 위한 시간에의 집착이 강하여 심리적 갈등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9월에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장유암이라는 절에 들어갔다. 국사의 추가로 부담이 늘었지만 시험이 연기된 것을 다행으로 여겨 ‘수석 합격’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열심히 공부를 했다.

73년 1월에는 예년의 시험 대신에 그녀와 결혼했고 5월에는 아들도 낳았으나 나는 여전히 절에서 계속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아! 그런데…… 글쎄 정말 이럴 수가! 그렇게 끔찍이도 나를 아껴주시며 자신의 못 다한 소망을 나에게 걸어 꿈을 키워 주시던 큰형님이 5월 14일 교통사고로 저 세상으로 떠나 버리셨다. 한 줌 잿가루로 화해 버린 형님의 유해를 고향에 묻고 절로 올라 올 때는 길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이제부터 전혀 공부도 되지 않았다. 단지 타성에 의하여 책장을 넘기고 있는 동안에도 마음은 삶과 죽음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생각들과 고시와 출세에 대한 회의로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결론은 하나, 형님의 꿈 그리고 나의 꿈, 어떻든 고시는 필연적이었다. 15회 시험까지 남은 기간은 40여일 뿐, 차츰 초조해지기 시작하고 마침내 책을 읽기만 하면 가슴이 울렁거리며 답답해지는 알지 못할 병에 걸리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시험을 한 달 앞두고 보따리를 싸 들고 집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아직 산고가 풀리지 않아 부자유스러운 아내와 핏덩이 신걸이, 자식을 잃은 부모님의 비탄……. 공부가 될 리 없으니 병은 점점 더해지고……. 수석 합격이라는 화려한 표어와는 달리 응시조차 포기하고 싶은 것을 부모님의 시선이 두려워 마지 못해 상경하였으나, 시험 첫 날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목구멍에 무엇이 치밀어 올라 우유와 계란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그래도 기를 쓰고 책을 볼라치면 몸에서 식은 땀이 배어 나왔다.

「고시계」의 통계란에 따르면 결과는 90위 정도, 정리만 잘하면…… 하는 자신을 얻은 셈이었다.

5. 새로운 좌표 – 직업 의식

그 러나 좀 쉬어야 했다. 책을 잡기만 하면 예의 증세가 나를 괴롭혔다. 고시를 그만둘까도 싶었다. 학교 성적이 우수했다는 사실이 반드시 고시를 해야 할 필연적 이유로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도 되었고,법을 공부하면서 차츰 정의의 이념을 배워 가는 동안 ‘고시=권력=출세’라는 과거에 내가 생각했던 등식이 우스운 것임을 느끼게 될 무렵 형님의 뜻 아닌 타계는 예시 과목의 철학 개론을 공부하면서부터 어렴풋하게나마 생각해 오던 삶의 의미를 보다 깊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맹목적 출세주의와 ‘ 그 수단으로서의 고시’라는 과거의 생각에 결정적인 쐐기를 박았다.

그러나 상고를 졸업한지 너무 오래되어 새로운 진로를 찾기는 어렵고 하여 고시를 그만두지는 못했다. 다만 이제는 고시 아니면 파멸이라는 배수의 진은 거두어 버리고, 하나의 직업인이 자기의 생각에 충실히 종사하듯이 고시 공부도 평범한 생활의 일부로 생각하려 했다. ‘수석 합격’이라는 표어 대신에 ‘천직 =소명’이라 써붙이고, 숙소를 마옥당에서 집으로 철수하여 직장에 출퇴근하는 기분으로 낮에는 마옥당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집에 와서 여유가 있을 때만 공부하기로 하였다.

아기가 울면 달래기도 하고 기저귀도 갈아 채우고 밤이 늦도록 아내와 정담을 나누며 잠을 덜 자면 이튿날 낮잠을 잤다. 그러나 가슴과 목의 증세는 쉽게 낫질 않아 16회 시험까지는 부담 없이 쉬었다. 16회 시험도 주위의 시선이 두려워 응시한 정도였고 성적은 15회보다 내려 130위 안팎으로 생각되었다. 17회 준비 1년간은 정말 순조로웠다. 절에 있을 때 만들었던 독서대의 실용 신안 특허 출원 관계로 9-10월에 조금 쉰 것 말고는 가금 아내와의 대판으로 선풍기 목이 부러지거나 문짝이 떨어져 나가는 활극이 연출되기도 하는 가운데에도 예전과 같이 재미있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10월 하순부터는 풀었던 긴장을 바짝 조여 이때부터는 아내가 들 건너 마옥당까지 점심을 날라다 주었고 잠은 여전히 집에서 잤으나 신걸이가 잠들기 전에는 우리 방에 못 오게 하고 책을 보았다.

그러나 17회 때에도 역시 정리가 다 되지는 않았다. 단지 다른 어느 때보다 정리 기간이 착실했으니 훨씬 낫겠지……. 집을 나서면서 아내에게 “신문 기자들이 수석 합격자 인터뷰하러 올 테니 당신도 피력할 소감 한 마디 준비해 두지 그래.”하고 허풍을 쳤다. 건강은 좋았고 시험은 순조로웠다. 집에 와서도 역시 출발 전의 호언장담을 되풀이했다. 3월 27일 아침 먹고는 불안을 떨쳐 버릴 수 없어 진작부터 낮잠에 들어갔다. 꿈결에 “무현아! 무현아!”하는 친구의 떨리는 목소리, 그도 뒷말을 잇지 못했고 더 들을 필요도 없이 아내는 내 무릎에 엎드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형님! 지하에서도 신문을 보십니까? 아버지 어머니도 형님 생각에 자꾸만 우십니다.”

6. 더하고 싶은 이야기

공부 방법, 책의 선택, 공부 장소, 독서 방법 등에 관한 문제는 각각 제 것이겠지요. 그래도 일반론이 있다면 이미 많은 선배님들의 합격기가 말한 것과 나도 같습니다.

그 래서 제 특이한 입장에 관한 것과 또 제가 따로 하고 싶은 얘기만 골라서 제 경험을 예로 들어 쓰렵니다. 다만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얘기하는 것은 객관성을 잃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됩니다마는, 어느 정도 참고는 되리라 믿습니다.

1) 독학에 대하여

응 시자 중에 4년제는 물론 초급대학에도 안 간 사람들만을 독학도로 계산해도 그 수는 600명을 넘는데, 이 수는 서울대 출신 응시자 800명에 거의 육박하는 수임에도 합격자 수는 수년만에 하나씩 나올 뿐으로 도저히 비교가 안된다. 이런 점을 보면 대학교에는 꼭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주로 경제 사정과 연령이 문제인 것 같으나, 경제 문제라면 요즘 일부 사립 대학에서 고시반을 편성하여 학비는 물론 숙식 일체까지 밀어 준다고 하니 오히려 독학보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가벼울 것이다. 연령 문제도 생각 나름이 아닐까?

2) 그래도 구태여 독학을 하겠다면 독학도들의 고시 합격률이 지극히 저조한데 반하여 대학 출신자 중에는 법대 출신이 아니고도 고시에 합격하는 사람이 많고 17회에는 수석 합격자가 공대 출신이다. 이러한 결과는 여러 가지 원인으로 연유하는 것이겠으나 나는 이 점을 대학에서 얻게 되는 일반 교양 과정의 지식 탓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과거 예비 고시에 합격한 후에도 법서를 살 형편이 못되어 군에 입대하기까지 1년간을 예시 과목의 책을 그대로 읽었고 이것이 제대 후 법서를 공부할 때 상당한 도움을 준 것 같았다. 이런 점에서 학력 제한이 철폐된 오늘의 제도보다 과거의 예비 시험 제도가 보다 합리적인 제도가 아닐까?

흔히 독학도들은 소위 공부 방법이나 수험 정보, 고시 기술론, 고시 분위기 등에 생소함을 걱정하게 되나 그런 점은 고시 잡지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수험 기간 중 많은 사람들과 많은 얘기들을 나누어 보았으나, 수험 잡지의 합격기나 좌담회, 통계 기타 안내편에 나오는 이상의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었다.

3) 병역 문제

군 에서 공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러나 어차피 가야 한다면 일찍 갔다 오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현역 복무 중 가는 세월을 한없이 초조하게 생각했으나, 마치고 나니 부담이 없어 좋았고 또 졸병 생활 자체가 하나의 수업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수험 과정 중에 필요했던 끈기 있는 자세는 군에서 몸에 익힌 바 큰 것이었다.

4) 연애와 결혼

처음 8개월에 걸친 일방적 구애 작전은 시간과 정력의 손실이 너무 컸다. 그러나 일단 결혼한 후에는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아내의 세심한 배려는 말할 것도 없고 점심을 가지고 올 때면 언제나 따라오는 개구장이 신걸이의 재롱은 식사시간을 즐겁게 해 주었다. 붉은 낙조를 바라보며 집에 건너오면 또 반겨 주는 신걸이의 고사리 손이 하루의 긴장과 피로를 깨끗이 잊게 해 주어, 나는 침체기를 몰랐고 따로 휴식이나 기분 전환 거리가 필요 없었다.

애타는 애인들 있으면 결혼들 합시다.

5) 건강

절 대적 조건임은 두말 할 것 없고 다만 공부로 오는 정신적 육체적 피로보다 초조, 불안 등의 심리적 파탄에서 오는 손실이 훨씬 더 심각하고 장기적인 것이다. ‘고시 아니면 파멸’이라는 생각이나 출세에의 지나친 집착, ‘최단기’ ‘수석합격’ 등의 욕심은 사람을 견딜 수 없이 초조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하나의 직업인이 성실하게 직장에 임하듯 수험 생활에 임했더니 장기에 걸쳐 장소를 옮기지도 않고 공백 기간도 없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바꾸고도 곧잘 대성하더라. 일정시까지 안되면 직업을 바꾸면 그만이다. 여하튼 다소간의 긴장은 필요하겠으나 지나친 긴장 불안 초조는 금물이다.

또 며칠을 허송했다 하여 갑자기 초조해지고 그를 보상하겠다고 급하게 열을 올리고 무리를 하는 것은 잇달아서 또다시 며칠의 침체와 시간의 낭비를 강요하는 결과가 되기 십상이다. 지나간 시간은 아무리 아까워도 깨끗이 잊는 것이 좋다. 장기전에서의 며칠의 허송은 그리 문제되 지 않는다. 나는 최종 정리 기간에도 부부 관계는 억지로 금욕하지는 않았다.

여하튼 나는 이런 느슨한 자세로 공부했다. 그러나 결코 남보다 노력을 덜하지는 않았다. 보통 10시간은 넘게 공부했고 일단 책상에 앉으면 무서운 집중력을 구사했다. 머리가 혼란해지고 잡념이 생길 때에는 책을 보면 머리가 맑아지고 안정이 되었다. 그러나 일단 책을 떠나면 고시는 깨끗이 잊었다. 이런 느슨하면서도 투철한 자세는 확고한 직업관에서 왔다고 생각되지만, 또 합격에의 신념으로 보완될 때 더욱 안정적이라 생각된다

사법고시 합격수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것 (input)

인생=시간.

인생을 열심히 산다 = 시간을 한 점에 모아서 뚫고 나간다.

장승수 변호사 예비법조인, 수험생들에게 선배로서 권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부탁에, 그는 “시험에만 합격하면, 연수원만 나오면 인생이 보장된다는 인식(수험생들도 이것을 바라고 있겠지만)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현실적으로 그렇지가 못하다. 판사가 되더라도 언제 부장이 되는지, 로펌에 가서도 언제까지 근무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면서 인식의 변화를 주문했다. 그러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는 말라는 당부가 이어졌다. “그래도 이만한 직업은 없을 걸요. 생각보다 보람도 큽니다.” “법학은 결코 쉬운 공부가 아닙니다. 지금 각종 고시제도도 바뀌고 있지만 모두에게 똑같은 조건 아닌가요. 자신의 인생을 다 불살라서라도 열심히 한번 해본다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공부한다면, 승패여부를 떠나, 그 떳떳함은 또 다른 자산이 되지 않을까요. 양심에 꿀리지 않게 열심히 한다면 성공은 보장될 것이며 그것이 인지상정이겠죠.” 거듭 강조했다. “돈, 명예 다 좋지만 억울한 자를 구제해보면 그 보람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정말 한 치의 부끄럼도 없이 취선을 다했다고 자신한다면 정말 합격할 겁니다. 다만 상당한 준비기간을 필요로 하는 시험인 만큼, 그에 따른 인내심도 필요할 것입니다.”

이민영 변호사 (이윤규 변호사 아버님) 고시에 있어 ‘하면 된다’는 신념은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문제는 자기에게 주어진 여건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느냐에 있다. 고시 자체, 아니, 합격의 영광에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무슨 일에도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집념, 소기의 목표에 도전해서 뜻을 이루었다는 성취감 그 자체에 고시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현재의 어려운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굳센 전진을 계속할 때 승리는 반드시 자신의 것이 되리라 믿는다. 인간적인 최선 앞에 신인들 외면할 수 있겠는가?

김진수 김앤장 변호사 – 연수원 수석 ―CPA를 휴학 없이 한 번에 합격한 게 화제였다. “2학년 때 공부 시작해서 3학년 1학기 때 1차 붙고, 2학기 때 2차에 붙었다. 휴학을 안 했기 때문에 절대적인 공부 시간이 부족하긴 했지만, 덕분에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았던 거 같기도 하다.” ―어떻게 공부했나. “스톱워치 공부법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공부할 준비 다 해놓고 책상 위에 책 펴놓고 집중해서 책을 읽어 나가기 시작할 때 스톱워치를 켠다. 그리고 잠시 어떠한 이유로든 집중을 안 할 때 끈다. 그러면 딱 공부한 시간만 카운트 된다. 처음엔 내가 온종일 공부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하다 보니 하루 4~5시간밖에 안 하더라. 그래서 그 시간을 좀 더 많이 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차츰 요령도 생겨 스톱워치 시간으로 하루에 10시간까지 찍을 수 있었다.” ―내가 집중을 안 하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아나. “같은 줄을 반복해서 읽거나, 졸거나. 목이 마렵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거나. 그런데 공부가 재미있었다.” ―공부가 재미있다니. “내게 CPA 공부는 안 해도 상관없는 공부였다. 그런 공부를 한 이유는 재밌었기 때문이다. 물론 놀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뭔가 쌓여 가는 느낌도 들고, 충실하게 산다는 느낌도 들었다.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다. 공대 수업이 끝난 오후부터 새벽 내내 혼자 공부하면 새벽 3시쯤 문 여는 식당이 없어서 편의점에서 라면과 삼각김밥,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웠다. 학점이 잘 안 나오기도 하고, ‘과연 붙을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이 들면서 슬럼프가 와 울면서 꾸역꾸역 공부하기도 했지만,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을 때 하니 정말 재밌었다.” ―새로운 길에 도전할 때마다 고민된 적은 없나. “지나고 나니 미화가 되는 것 같은데, 모든 수험생은 ‘시험에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을 한다. 그런데 고민을 하든 안 하든, 시험 날짜는 다가오고 있고, 공부를 때려치울 게 아니라면 계속 해야 하는 거니깐, 고민 자체를 안 하려고 했다. 안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평소 성격도 긍정적인가. “그렇지 않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합격한 사람들 수기도 읽어 보고, 계획도 세워보고, 될 것 같으니깐 만반의 준비를 한 거다.”

느 티 나 무

전재현 제51회 사법시험 수석 합격

원래 제가 이름이 알려지고 사람들이 많이 알게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인터뷰도 전혀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저도 많은 선배들로부터 조언을 받았었고 저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합격수기를 씁니다. 합격수기라는 것을 써본 적이 당연히 없고, 이런 것을 쓰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도 어색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분명 저보다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거나, 더 체계적인 공부방법이 있거나, 열심히 공부하신 분들이 많을 텐데도 부족한 제가 이러한 글을 쓴다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공부하는 동안 다른 사람의 합격수기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무슨 내용을 써야 할지 몰라서, 그냥 제가 1차 공부부터 쭉 공부해온 과정과 공부하면서 겪었던 문제들, 그에 대한 제 나름의 생각을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이 사람은 이렇게 공부했구나 하고 그냥 편하게 읽으시면 됩니다. 먼저 저는 공부 방법에 있어서는 특이한 길을 갔다기 보다는 대다수의 수험생들이 그렇듯이 학원 수업을 듣고, 학원 시험을 보는 길을 택했습니다.

“쓰리-포 합격의 꿈 접고 대학생활 즐겨”

2005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한 저는 지겨운 수능생활을 끝냈으니 대학 생활을 조금은 즐겨보자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1학년 여름부터 민법입문을 읽거나 테이프를 듣기 시작하는 아이들도 간혹 있었으나, 저는 애초부터 ‘쓰리-포'(3,4학년) 합격의 꿈은 버렸습니다.

지금은 3학년 때도 1차를 많이 붙지만, 그때의 저로서는 불확실한 가능성에 도전하였다가 이도 저도 아닌 대학생활을 보내는 것 보다는 차라리 1년 더 놀고 나중에 시작할 때 진지하게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신 첫 전공과목인 민법총칙 수업은 열심히 듣고, 그때 민법에 흥미를 느껴서, 지금도 민법이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기도 합니다. 2학년 2학기까지는 학교 수업만 듣고, 따로 고시 테이프나 서적을 읽지는 않았습니다. 지원림이 교수 이름인지 강사 이름인지, 이태섭이 교수 이름인지 강사 이름인지 모를 정도였으니까요.

이제 2학년 겨울방학(2006년)부터 테이프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지원림 책에 이태섭 테이프를 들었습니다. 원래 고3때까지만 해도 집에서 공부를 하는 체질이라 저는 집에서 혼자 민법 테이프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지, 고시공부는 기존의 공부와는 다르게 너무나 숨이 막혀 오는 공부였습니다. 스스로는 학교 민법 수업을 민총, 채각, 채총까지 들었으니 어느 정도 따라가지 않을까 생각했었으나, 테이프의 내용은 너무나 방대하였고, 하루에 테이프 6~7개를 듣더라도 끝이 없는 갯수에 당황하였습니다.

매일 책상에 혼자 앉아 공부를 하다가 힘들어서 밤에는 컴퓨터를 몇 시간하고, 너무 숨이 막혀 혼자 산책을 나가기도 했습니다. 원래의 목표는 처음 보는 1차 시험 전까지 헌민형 테이프를 다 듣는 것이었으나 그 목표는 조금씩 줄어들고 결국엔 채총을 듣다가 1차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그렇게 봤던 첫 1차 시험은 당연히 모든 과목이 다 40점도 안 나오고, 심지어 헌법은 21점이 나와서 국제법보다도 낮은 점수가 나왔었습니다.

3학년 1학기가 되어서 재산법을 마저 다 듣고 형법은 신호진 형법요론에 테이프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항상 봄에는 공부가 잘 되지 않듯이 어수선한 분위기에 시간을 보내고, 여름방학이 되어서야 형법을 다 들었습니다. 원래는 테이프를 빨리 쭉 들은 뒤에 책을 읽을 생각이었는데, 형각부터는 이러다가 책 읽을 시간이 없겠다는 불안감이 들어, 테이프를 들으며 책도 읽었습니다.

형법을 다 듣고 헌법은 정회철 책에 정회철 2년 전 테이프를 들으며 책을 읽었습니다. 여름방학 때에도 집에서 공부를 했었는데, 점점 고시 공부라는 것은 집에서 혼자 하면 안되겠다는 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가족들에게는 공부의 힘든 점에 대 해서 잘 얘기하지 않았으니, 공부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길이 없어서 테이프를 듣다가 공부가 안 되는 날에는 그냥 컴퓨터를 하며 하루 종일 놀아버리곤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헌법도 테이프를 다 듣고 책을 읽은 것이 7월말쯤이라고 기억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민법 전부 1회독과 형총 1회독이 남았는데, 한달 동안 어찌어찌 민법은 다 읽고 모강을 시작했습니다.

“판례-다수설-학설-요건 등 색상으로 구분”

2007년 9월부터 모강이 시작되어 저도 학교 ‘법오'(법대 5층 열람실)에 나가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모강을 한다는 것은 혼자 진도를 설정할 때와는 다른 압박이 있었습니다. 우선 열악한 열람실 상황으로 아침 8시만 조금 넘어도 좋은 칸막이와 평상 자리는 다 차버려서 아침에 일찍 오는 것도 상당한 부담이 되었습니다.

저는 고시생활 내내 자취를 하지 않고 학교에서 1시간 거리의 집에서 통학을 하였는데, 나중에 시험 막바지에는 힘들어서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들과 카풀을 하여 택시를 타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모강을 다니면서 공부를 하는데, 처음에는 민법을 하며 따라가는 것에 무리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태섭 강의를 듣고 지원림 책을 보며, 이태섭 판례집을 보고, 기출도 보았습니다. 모강은 권순한 것으로 보고, 강의는 듣지 않고 시험만 보았습니다. 4시 모강을 보았는데, 아침에 학교에 와서는 기본서를 한번 쭉 보고, 그 후에 판례집과 기출을 본 뒤, 녹두에 가서 시험을 보았습니다. 돌아와서는 채점을 하고, 틀린 부분은 책에 해당 부분에 빨간 사인펜으로 표시를 했습니다.

나중에 모강 시험지를 다시 볼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책에 단권화를 다 한 것입니다. 그리고 책과 판례집에 없는 판례들은 해설지에서 오려서 책에 일단 다 붙였습니다. 이렇게 복습은 오래는 3시간, 짧은 날은 1시간 반~2시간에 끝나고, 그러고 그 다음 날 범위를 보면 하루가 끝났습니다.

민법은 밀리지 않다가, 채각 때부터 밀리기 시작하였으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크게 밀리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형법은 모강은 이인규 것을 보면서 역시 시험만 봤습니다. 민법과 비슷하게 형법요론을 보고, 판례집은 따로 보지 않고 기출을 풀었습니다. 헌법은 모강을 정회철 것을 보고, 정회철 책과 정회철 판례집, 그리고 정회철 기출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모강이 끝난 뒤, 밀린 시험지가 3과목 합쳐서 일주일이 안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어차피 학교 수업 듣는 것이 있어서 기말고사 보고, 그리고 모강 밀린 것 다 하고, 추석 때 못 들었던 안진우 국제법을 마저 들으니 거의 12월이 다 끝나 갔습니다. 결국 모강 후에 돌리기 시작하는 것은 12월 28일 정도가 되어, 1차를 2달 정도 남겨놓고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모강 때는 책에 표시를 시작했습니다. 색연필을 써서, 판례, 다수설, 학설, 요건 혹은 암기할 것 이렇게 구분되는 색상으로 표시를 했습니다.

“회독 때마다 모르는 부분 다른 색으로 표시”

원래는 2달동안 4회독(8-4-2-1)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시작을 했는데, 막상 읽다 보니 그것보다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그래서 민법은 8일이 아닌 거의 2주가 걸리고 다른 과목도 열흘 정도가 걸리게 되어, 계획을 3회독으로 수정하여야 했습니다.

모강 후 첫번째 보는 동안에는 스스로 노트를 하나 만들어서 암기할 사항을 따로 그곳에 적었습니다. 예를 들어 변제충당의 순서라든가 아니면 사전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 등 이러한 것들을 따로 노트에 썼습니다. 나중에 시험 전날에 그것만 볼 수 있게요. 그렇게 암기 노트를 만들면서 처음 회독을 넘기고, 이제 두번째 회독에 들어갔습니다.

제 공부 방법에서 특이한 점이라고 하면은 회독이 늘어갈 때마다 다른 색으로 표시를 했다는 점입니다. 저는 회독을 할 때마다 그 때에 잘 모르는 부분은 다른 색깔로 표시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처음엔 다 샤프로 하다가, 모강 후에 처음 돌릴 때에는 검정 볼펜, 두 번째에는 파란 볼펜, 세 번째엔 더 진한 사인펜 이런 식으로요. 이렇게 표시를 해 두면 나중에 이틀 만에 한 과목을 보거나, 하루 만에 한 과목을 볼 때 자신이 잘 모르는 부분에 집중을 할 수 있어 편리합니다.

모강 끝나고 두번째 회독 때에는 책을 보면서 기출을 풀었습니다. 그 당시에 전범위 모의고사를 보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그러한 여유는 없어서 포기했고, 최근 5개년간 기출을 뽑아서 매일 한 회씩 모의고사 보듯이 시간을 재고 풀었습니다. 그 때 기출을 풀면서도 모르는 부분은 정말 심각한 것이니 책에 표시를 했습니다. 이렇게 기출을 풀며, 민법은 거의 90점 대가 나오고 헌법이나 형법도 나쁘지 않게 나오길래 약간은 자신감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모강 후 약 3회독을 하고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1차 시험을 보는데 헌법과 국제법이 너무 어려워서 정말 좌절했습니다. 헌법은 모르는 문제가 너무 많고, 국제법은 솔직히 거의 3분의1 정도가 확실치 않았습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마킹을 하다가 손을 너무 떨어서 두 문제 정도가 옆으로 번지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겨우겨우 넘겨서 첫 교시를 끝내고, 형법을 보는데 헌법보다는 볼만하길래 약간 기대를 가지고 문제를 풀다가, 마킹 실수를 했습니다. 머리 속이 하얗게 되어서 종료 약 3~4분전에 답안지를 바꾸어 겨우 끝냈습니다. 민법을 보는데도 헌법보다는 볼만하길래 아 이거 기대해볼만 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처음 시험을 끝내고 나왔을 때에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집에 와서 밤에 채점을 해보니 걱정했던 국제법도 38점이고, 다른 과목들도 괜찮아서 1차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1차 공부를 하는 동안 저는 정말 힘들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매일매일 숨막히는 열람실에서 공부를 해도, 그날 목표를 달성하면 잠깐의 기쁨도 있지만 내일, 모레 계속 끝없는 공부가 있으니 삶이 참 메마르다고 느꼈습니다.

진도를 맞추면 다행이지 진도가 밀리는 날에는 “오늘 하루 대체 뭐한 것인가”하는 자괴감에 집에 가도 편하지가 않고, 그리고 밀린 진도는 계속 밀리며 누적되지 그것을 따라잡을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압박이 컸습니다. 공부가 빡빡하다보니 바깥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피하게 되고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하고만 연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성격이 지나친 것일 수도 있으나, 고시 공부를 하다 보면 아주 위급한 일이 아니라면 흔들리지 않고 바깥 세상에 관심을 끊은 채 매일 꾸준히 공부를 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를 위해서는 친구의 반가운 연락도, 오랜만에 온 친구의 휴가도 갈지 말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공부를 시작하기 전과 달리 소원해지고, 공부 외에 다른 자신감을 얻을 곳도 없어 삶이 어두웠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공부에서 자신감을 얻기란 고시 공부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구요. 또 힘들었던 점은 이렇게 힘들었던 공부에 대해 토로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족들에게 이러한 힘듦을 말하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은 힘든 것은 다 똑같으니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고시를 하지 않는 친구들은 고시생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니 이들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지 않고 있었던 법대 후배들에게 공부에서 느끼는 힘든 점들에 대해 투정을 부렸던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자리를 빌어 제가 투정을 부리고 괴롭히는 것을 받아준 후배와 친구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단기간에 끝장내자는 마음으로 덤벼”

이렇게 고시 공부 자체가 힘들다 보니, 스스로 이번에 끝장을 내자는 마음으로 덤볐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 후회가 남지 않는 공부를 하여, 만약 이번에 안되면 고시 그만 두고 다른 것 해서 먹고 살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살았습니다.

예전부터 생각해왔던 것이, 고시 공부란 만약에 10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면, 반드시 10을 단기간에 쏟아야 하는 공부인 것 같습니다. 7,8혹은 5,6이렇게 공부를 하면, 몇 년을 그렇게 해도 소용이 없고, 차라리 한번에 10만큼의 공부를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어중간한 공부를 하면 안 좋은 것이, 자기 나름대로는 놀지 않고 공부를 했다고 하는데 결국에 결과가 좋지 않다면 다시 공부를 하는 것이 상당히 힘듭니다. 차라리 맘먹고 놀았다면 진심으로 덤빈 것이 아니니 나중에 상처 없이 다시 공부를 할 수 있겠지만, 적당히 공부를 한 경우라면 다시 공부를 하자니 힘들고, 책에는 밑줄 다 그어져 있는데 보자니 막막하고, 그렇다고 처음 공부를 하는 사람들처럼 적극적으로 덤비지도 못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운이 좋았는지 저는 진심으로 시도하였던 1차 시험에 합격(2008년)하게 되었습니다.

1차 시험에 합격한 후에 이제 예비순환(2008년)이 되었는데, 저는 학교 강의를 20학점이나 듣고, 그리고 못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고 놀기에 정신이 없어 예비순환에는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동차를 어설프게 노리려다가 예비 때 너무 힘들게 공부해서 동차가 안되고 나중에 본격적으로 해야 할 때 체력이 부족하게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고, 스스로도 동차에 대한 욕심은 없었기 때문에 지옥같을 1년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마음껏 놀아두자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예비순환은 민소를 강의만 듣고, 그리고 행정은 강의를 듣다가 다 듣지도 못하고 초시를 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초시를 보러 가서는 사실 형소는 학교 수업도 듣지 않고 강의도 듣지 않아 전혀 몰랐으나, 그래도 모든 과목을 정해진 시간을 맞춰 채우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책도 안보고 단지 법무부 법전을 얻으려는 목적에서 가서 봤으나 대충 쓰고 엎드려 자는 일 없이 나름대로 고생을 했기 때문인지 7법 중에 민법과 형법은 면과락하였습니다.

1순환을 시작하여, 학교에 나와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로스쿨 공사 때문에 학교가 어수선하여 여기저기 법대 열람실들을 옮겨 다니며 공부를 하였습니다. 2차 교재는 민소 이시윤+이창한 사례, 상법 김혁붕+황의영 사례, 형소 이재상 교재+사례(이지민 강의), 행정 박균성 교재+김연태 사례, 형법 송헌철+이케바, 민법 교안(윤동환 강의), 헌법 정회철 단문사례 이렇게 보았습니다.

저는 1순환 때에는 같은 반 5명이 스터디를 구성하여, 다같이 인터넷 강의를 듣고, 선배에게 시험문제 출제와 답안지 작성 첨삭을 하는 스터디 매니저를 부탁드렸습니다. 그리고 스터디원들끼리 사례집 스터디를 하기로 하여 돌아가며 사례 내용을 발제하는 식으로 스터디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스터디는 첫 두 과목인 상법과 민소까지는 어느 정도 유지가 되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진도가 점점 밀리게 되어 나중에는 유명무실하게 되었습니다.

사례 스터디는 민소를 끝으로 그만두었고, 시험을 보는 스터디도 행정과 형소까지는 하였으나, 그 이후로 기본 3법은 하지 못하였습니다. 스터디의 필요성에 대하여는 개인적으로는, 사례 스터디는 다들 많이 하지만 계륵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스터디를 한다고 적극적으로 남는 것이 있다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을 통해 진도를 밀리지 않는다는 진도 강제의 효과가 있는 정도 같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본말이 전도되어 기본서도 못 보는데 사례집을 보느라 바쁘면 안되겠지요. 만약 스터디 없이도 혼자 사례집을 다 볼 자신이 있으시면 안 해도 무방하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에 다들 할 수 없이 사례 스터디를 하는 듯 합니다. 시험 스터디의 경우에는 학원에서 실강이나 비디오를 들으면서 하는 경우라면 하지 않아도 무방하나(물론 학원 첨삭보다 선배들이 해주는 스터디가 더 성의가 있겠으나),

인강을 듣는 경우라면 답안지 쓸 기회가 없으니 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저는 1순환 때는 답안지 쓸 때 시간 제한 없이 썼습니다. 그리고 사례집은 첫 두 과목은 보고, 셋째 과목 형소는 강의 때 언급하는 것만 보았고 그 뒤로는 손도 못댔습니다. 심지어 마지막 과목 헌법은 강의도 3분의 2정도만 듣고 책은 읽지도 못하고 2순환에 돌입했는데, 그래서 헌법은 수험 생활 내내 불안함이 남아 있었습니다.

“모든 과목 기본서에 단권화 노력”

그렇게 1순환을 넘기고 2순환을 시작하였습니다. 듣기로는 요즘엔 학원마다 스케쥴이 달라서 2순환이 주5일이 아닌 곳도 있다던데 제 때에는 주5일이라 편했던 것 같습니다. 주6일의 경우에는 하루 밀리면 휴일이 위협받게 되지만, 주5일의 경우에는 공부하는 날에 살짝 밀려도, 주중 하루에 보충을 하고 나면 여전히 휴일은 온전히 쉴 수 있어 좋았습니다.

2순환부터는 강의를 듣지 않고 학원에 시험만 보러 갔습니다. 어떻게 보면 2순환이나 3순환은 1차와 비교하면 모강과 같다고 생각을 하는데, 모강 때 공부하는 것처럼 하루 진도를 쭉 읽고, 그 다음에 해당하는 사례집을 푼 다음에 학원 가서 답안지를 작성하고 돌아와서 해설을 보며 복습을 하였습니다. 저는 최대한 모든 과목을 기본서에 단권화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사례집에만 있는 내용은 사례집에 표시를 해놓고 포스트잇 등을 붙여 그 부분을 교과서처럼 보았고, 사례집과 기본서에 다 없는 내용이 모의고사에 나오면 그냥 그 부분 해설을 오려서 책에 붙였습니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책에 옮겨 적기도 했습니다. 선배에게 배운 대로 1차 때처럼 쟁점(하늘색), 판례(분홍색), 다수설(초록색), 학설(주황색), 요건,목차(노란색) 이런 식으로 책에 색연필로 표시를 하였습니다.

처음 2차 공부가 어려웠던 것이 교수 기본서로 보는 과목의 경우에 학원 강사 프린트물이 무한하게 많아 이를 다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난감했었는데 저는 그냥 나중에 뗄 것을 생각하고 그냥 다 붙여버리는 길을 택했습니다. 2순환 때에는 학원에 가서 모의고사를 볼 때에는 60분에 10분을 추가하여 70분 이내에는 작성하도록 노력했습니다.

2순환 때에도 스터디를 했었는데, 사례 스터디를 밥먹고 20분 정도 했습니다. 과목은 형법과 헌법을 하여, 발제를 맡은 사람이 간략히 그 사례의 목차에 대하여 설명하는 식으로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헌법은 스스로 외워야 할 내용이 많아서 그런지 큰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민법이나 형법은 시간이 나신다면 밥 먹고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스터디를 한다면 좋을 듯합니다. 2순환 때에는 저는 제대로 보지 못했던 사례집을 한번은 보는 것에 중점을 두었고, 다행히 1순환 때 사례를 못 보았던 과목들도 2순환 때는 한번은 볼 수 있었습니다.

“항상 실전이라고 생각하고 답안 써”

3순환을 시작하였는데, 3순환부터는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2순환 때까지는 1차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주변에 있으니 다같이 공부하는 분위기인데, 3순환은 봄이 되면서 학교에는 신입생들도 들어오고, 막 1차를 보고 난 예비순환생들은 여유롭고, 게다가 올해는 로스쿨생들이 처음으로 들어온 때라 더더욱 정신이 없었습니다.

특히 사시생들을 위한 학교측의 배려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2차생들은 다같이 힘들었습니다. 객관적으로 공부가 힘든 것도 있지만 그뿐 아니라 남들이 다 놀고 있으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듯이, 꽃 피고 따뜻해지는 봄에 빡빡한 3순환 공부를 하자니 세상에서 혼자만 공부하는 기분이 들어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제 성격이 밥을 혼자 먹느니 굶자는 성격이라 힘든 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같이 밥을 먹고 서로 의지하는 고마운 친구들이 있어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공부를 포기하지 않고 해낼 수 있었던 것도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1,2순환 때에도 같이 밥 먹고 학원 다니며 때로는 공부에 대한 궁금증을 토론하기도 했던 친구가 큰 힘이 되었듯이, 3순환 때에도 저를 정말 모든 곳에서 도와주고, 비슷한 고민을 나누며 의지했던 친구가 있었기에 ‘혼자만 공부하는 것 같은 느낌’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3순환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나중에 4-2-1 시간 확보를 위해서는 아침반으로 옮기는 것이 좋다는 선배의 말에 따라 1,2순환 때에는 오후,저녁반이었는데, 2순환 끝나는 시점에 약간 무리를 하여 3순환부터는 8시 아침반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날에 해당 범위를 다 공부하는 것이 달라졌고, 사례집을 풀어본 뒤에 학원 가서 모의고사를 푸는 점은 똑같았습니다. (역시 강의는 듣지 않았습니다.)

3순환 때에는 120분, 혹은 60분에 맞춰 실전처럼 풀었습니다. 간혹 보면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시험을 보지 않고 가버리거나 책을 보고 적는 분들도 있던데 저는 항상 실전이라고 생각하고 모르는 내용이 나와서 소설을 쓰는 한이 있더라도 직접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3순환을 하는 동안에도 스터디를 했고, 큰 도움이 된 듯합니다.

역시 사례 스터디를 했는데, 1,2순환 때와는 다르게 선배의 조언대로 민법을 암기 위주로 했습니다. 발제자 한 명이 쟁점에 대하여 학설을 물어보면 다른 사람이 대답하고, 판례를 물어보면 구체적인 판례 문구를 또 다른 사람이 대답하는 식으로 특히 판례를 암기하는 식으로 공부했더니, 매일 30분 정도 시간이 들어가긴 했으나 민법 공부에는 큰 도움이 된 듯합니다.

이렇게 3순환을 넘기고, 4-2-1로 들어가서는 이제 모의고사도 보지 않고 기본서를 보았습니다. 다만 감각이 떨어지는 문제는 이제 사시 기출을 최근 4개년 정도를 한과목이 끝난 후에 목차만 짜보는 식으로 풀어보았습니다.(시간이 허락한다면 직접 써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제가 3순환부터 했던 작업은 3순환부터는 책을 바로 읽지 않고 쟁점 표시된 것을 보고 먼저 학설과 판례를 먼저 떠올린 뒤 그 다음에 제대로 암기가 되었나 책을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판례 문구와 요건도 마찬가지구요. 내용을 먼저 보기 전에 스스로 떠올리고, 다시 부족한 부분은 책에 표시하고 암기했습니다.

1차 때와 마찬가지로 각 회독 때마다 못 외운 부분을 다른 색깔로 표시하여 마찬가지로 하루에 한과목씩 볼 때나 마지막 날에는 그 부분만을 위주로 보았습니다. 판례나 요건 등도 두문자를 따서 외웠던 것이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고시 공부에서 꾸준함이 중요”

대충 시간 순으로는 말씀을 드린 것 같고 일반적인 얘기 하나만 하면, 고시 공부에서 중요한 것은 꾸준함인 듯합니다. 책을 한번 싹 읽고 다 기억하는 천재적인 사람이 아닌지라, 하루에 10시간씩 책을 읽어야 하는데, 하루 열심히 하고 다음날 느슨해지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매일매일 꾸준히 공부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러한 공부가 숨막히고, 돌아서면 기억이 안 나고 자신에 대한 불신만이 늘어갈 수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커다란 공부의 양에서 퍼즐처럼 부분을 맞춰가다 보면 시험 당일이 되면 공부했던 시간들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습니다.

저는 꼭 지켰던 것이 4-2-1 정도로 시험 막바지 때가 아니라면, 일주일에 하루는 꼭 쉰다는 점이었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매일 공부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데, 쉬는 날을 정하지 않고 의욕에 넘쳐 공부를 하다 보면, 처음 일주일이나 2주 정도야 연이어 공부를 할 수 있겠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주말이 아닌 평일에 너무 힘들어 무너집니다.

스스로 한번 그렇게 공부하는 날에 무너지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하루 정해서 쉬는 사람보다도 더 자주 아무 때나 쉬고 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공부하는 날과 쉬는 날을 명확히 구분하고, 공부하는 곳(학교, 독서실)과 쉬는 곳(집)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나은 것 같습니다. 황금 같은 쉬는 날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공부하는 날에는 필사적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나 빼앗길 휴일이 없다면, 공부하는 날에도 그냥 해이해지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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