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장 40절 | 누가복음 5강 송태근 목사 \”예수님의 성장\” 본문 – 누가복음 2:40-52 / 성경공부는 Cbs성서학당 최근 답변 5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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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5강 송태근 목사 \”예수님의 성장\” 본문 – 누가복음 2: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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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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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

예수의 나심(마 1:18-25) 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목자들이 예수 탄생 소식을 듣다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21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아기 예수의 정결예식 22 ㄱ)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ㄴ)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ㄷ)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39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지혜가 충만한 하나님의 아들 (눅 2:40~52)

주제 : 지혜가 충만한 하나님의 아들

본문 : 누가복음 2장 40~52절

설교자 : 조정의

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41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42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43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44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45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48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9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50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51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라

2장은 예수님의 탄생부터 성장기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누가는 세례 요한의 탄생부터 성장까지 5가지 항목을 차례로 기술했는데, 이제는 예수님의 탄생부터 성장까지의 다섯 항목을 세례 요한의 그것과 서로 비교 대조하며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섯 항목은 ‘탄생’, ‘주위 사람들의 반응’, ‘할례를 받고 이름을 예언된 대로 지은 것’, ‘예언의 찬송’, 그리고 ‘성장기’입니다.

세례 요한에 대해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1:80)라고 기록했던 누가는, 예수님에 대해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2:40)라고 기록합니다. 세례 요한에 대한 기록에서 추가된 것이 바로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입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동일하게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자라갔는데, 특별히 예수님은 지혜가 충만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는 성령의 은사를 말할 때 ‘은사’와 같은 단어입니다. 곧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이 예수님과 함께 했다는 표현입니다.

이어지는 41-51절에서는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이 얼마나 충만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세례 요한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일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에 대해 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은 아이를 키우면서 아마도 ‘이 아이가 메시야가 맞을까’ 생각했을 것입니다. 때로는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고 더디게 자라나는 모습에 그런 의구심을 가졌을 것도 같습니다. 누가가 기록한 이 말씀이 없었다면 우리는, 예수님은 30살 이후 공생애 기간부터 메시야였지 그 전에는 아니었다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예수님의 유년기에 대한 오해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많은 이단들이 있었는데, 어떤 이들은 눅 3:22에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시는 장면을 들어 그 순간에 인간이었던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어릴 때는 그저 인간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또 이와는 반대로 외경에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흙으로 새를 만들어 날렸고, 손가락으로 나귀와 양을 가리키면 그 짐승들이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또 흙으로 장난을 치다가 방해한 친구를 저주하며 죽게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문제가 있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예수님이 죄가 없었다고 말합니다(히 4:15; 벧전 2:22 고후 5:21). 또 그분께 지혜가 충만했다는 것도 성경의 일반적인 가르침입니다(막 6:2).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지혜와 권능은 공생애 전 어린 시절에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질문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과연 아이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메시야의 임무도 알고 있었을까요? 마지막으로, 그러한 임무를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본문에 나타난 일련의 사건들을 살펴보면서 그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41).

유월절은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명절입니다(출 23:17; 34:22-23; 민 16:16). 로마 전역에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 중 남자들이 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였습니다. 굳이 가족이 다 함께 갈 필요가 없는데 그렇게 한 것으로 보아 예수님의 부모는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던 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독실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들은 친척들과 가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나사렛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140-150킬로의 여정이었습니다. 당시는 강도들이 많아 여럿이 함께 이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42-43).

유대인들은 13살부터 성인으로 인정하는데 당시 예수님의 나이는 12살이니 그 이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절기의 관례를 따라”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유월절 이후에는 7일 동안 무교병을 먹는 절기가 있었습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을 합쳐서 유월절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온 사람들은 이 긴 기간을 머물 장소를 먼저 구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짐을 풀고 머물 장소를 구한 뒤 희생 제사를 드릴 제물을 구하러 다닐 것입니다.

유월절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로 있던 애굽에서 탈출할 때 하나님이 그곳에 내리신 몇 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재앙과 관련된 것입니다. 마지막 재앙은 모든 장자가 죽는 재앙이었는데 희생 제물의 피가 문에 발라진 집은 심판하지 않고 넘어갔습니다(유월절=Passover), 그 집 안에서 백성들은 희생제물로 잡은 양과 무교병, 그리고 쓴 나물을 먹었습니다. 쓴 나물은 쓰디 쓴 노예생활을 기억하는 의미였습니다. 이것을 기념하는 유월절 행사는 신약시대까지 내려져왔습니다. 모든 남성들이 예루살렘에 가서 희생제물을 잡고 여러 가족이 함께 모여 양과 무교병, 쓴 나물을 먹고 4잔의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이후에 무교절이 이어져 7일 간 무교병을 먹고 첫째 날과 마지막 날에 성회로 모여 제사를 지내게 했습니다(민 28:19~23). 예수님의 부모는 이 모든 관례에 따라 모든 절기를 마치고 나사렛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예수님의 부모가 신실한 이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43).

그런데 예수님은 함께 떠나지 않고 예루살렘이 머무셨습니다. 예수님이 아주 어린 아이였다면 부모의 부주의로 아이를 잃어버렸겠지만 이 때 예수님은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나이였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남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남으셨을까요?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43-44).

당시 행렬은 여자와 아이를 앞세우고 남자는 뒤에 따라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와중에 친척들 중에 있거나, 부모가 따로 움직이니 서로에게 있으려니 하여 예수님을 놓쳤던 것 같습니다. 4-5일 여정 중 하루를 간 뒤에 예수님이 없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친척 중에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46).

만일 예수님이 일반적인 아이였다면 어떤 모습으로 있었을까요? 울고 있었을까요? 가축들을 관찰하고 있었을까요? 넓은 광장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었을까요? 똑똑한 아이라서 성전에서 가르치는 선생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47).

당시의 수업방법은 질의응답이 많았습니다. 선생이 중앙에 앉고 학생들이 둘러앉아서 질문도 하고 토론도 하는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가운데 계셨고 많은 이스라엘의 선생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아이가 하버드 대학에 있는데 그곳의 세계적인 교수들이 그 아이를 둘러싸고 그 아이가 하는 말을 진지하게 들으며 놀라고 있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교수들은 웬만해서는 그렇게 놀라지 않습니다. 당시 예수님은 아마도 모세의 율법이나 메시아에 대한 것, 즉 유대인의 스승들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것들에 대해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예수님의 지혜가 얼마나 충만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놀랍다’라는 표현은 ‘물러나다’, ‘정신을 잃다’, ‘이성을 잃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그 정도로 놀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산상수훈을 나누시는데, 그 지혜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서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하였다’고 말합니다.(마 7:28-29). 예수님은 열두 살의 나이에 유대인의 스승들 앞에서 놀라운 지혜와 권능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아이 예수님은 메시야로서의 임무를 성취할 능력이 있으실까?’라는 질문에 우리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권능이 충만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48).

사흘을 찾아헤맨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참 야속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49). 마리아가 말한 “아버지”는 요셉을 가리키고, 예수님이 말한 “아버지”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개인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말씀하십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 아버지’는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를 가리키거나, 모든 생명체에게 생명을 주신 분으로 말하곤 하는데, 여기서는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로서의 ‘아버지’를 말하고 있습니다(요 1:14).

공생애 이후 예수님은 세례 요한과 제자들, 백부장과 여러 백성들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증거 되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여러 번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씀하셨고, 그로 인해 죽임을 당할 위기를 여러 차례 겪으셨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볼 때, 12살 소년이던 예수님은 이미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계셨습니다.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곧 아버지의 권세 아래 복종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해야 할 것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으로 시작되어 이스라엘 역사 내내 그림자로 보여진 희생양. 그것이 가리키는 메시야가 자신임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혜와 깨달음은 그 어떤 지혜 있는 자들도 월등히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이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을까요? 물론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하나님 아버지가 주신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부모는 소년 예수에게 유월절의 의미를 설명해 주었을 것입니다. 희생제물 어린양이 죽임을 당하고 그 피가 제단에 뿌려졌을 때 오래전 하나님께서 우리를 노예생활에서 구원해주시고 자유를 주셨다는 것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성전에 남아서 하나님이 주신 임무에 대해 생각했을 것입니다. 죽임 당한 희생양이 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되새겼을 것입니다. 주님은 훗날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보내시면서 내 피와 살로 새언약을 맺는다고 하셨고,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실 때 성전의 휘장이 찢어져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여셨습니다.

어린 예수님이 부모에게 했던 말이 너무 무례하지는 않았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셨던 말이 그렇게 무례한 말은 아닌 것은 51절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51).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아셨고 그 임무도 아셨으며 능력도 가지고 계셨지만, 때가 이르기까지 부모에게 순종하셨습니다. ‘순종하며 받드셨다’는 이 표현은 참 놀랍습니다. 이 예수님의 모습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해야 할 중요한 본이 됩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에 도착하셔서 남은 17년의 삶을 평범하게 살아가셨습니다. 여기까지가 바로 예수님의 성장기에 대한 기록입니다. 가브리엘과 사가랴, 엘리사벳, 시므온, 안나를 통해 우리는 메시야가 어떤 분인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큰자이며 구원자이심을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전후로 이런 증언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 자신의 입술에서 나온 증언을 들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하나님께 임무를 받으셨음을, 그리고 그 임무를 성취할 지혜와 권능을 지니고 계심을 보았습니다. 열두 살의 나이에 말입니다.

여러분은 삶에서 많은 지혜가 필요하실 것입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무엇이 삶에 필요한 지에 대한 지혜를 구할 것입니다. 이미 열두 살의 나이에 모든 지혜에 충만하셨던 예수님이 우리의 지혜가 되셨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전 1:30-31). 여러분의 영적인 눈이 떠져서 여러분 안에 있는 예수님의 지혜와 권능의 충만함이 여러분에게 함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겠다고 하신 그 지혜의 하나님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아직 하나님의 지혜에 굴복하지 않으신 분은 이제 그분께 나오십시오.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라고 했던 베드로의 고백처럼 주님께 나오십시오. 예수님 외에는 진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 지혜 앞에 나오시고 그것을 여러분의 지혜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우리에게 지혜를 부으셨습니다. 열두 살 예수님의 지혜는 선생들을 경이롭게 할 정도로 위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라가며 더욱 지혜가 커지고 충만해지셨습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52).

이제 우리가 만날 예수님은 더욱 커지고 충만해진 지혜와 권능을 가지신 분입니다. 이어지는 누가복음 공부를 통해 우리는 여러 사건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이분이 하나님이시구나’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신년설교] 성장하라, 예수님처럼(눅 2:40~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눅 2:52)

한규삼 목사(충현교회)

2020년 새해를 맞이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듬뿍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특별한 면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은 우리가 한 번도 살아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세계입니다. 우리는 늘 새로운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새롭게 맞이하는 시간을 살아가면서 성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성장’과 ‘성숙’입니다. 특별히 영적인 분야에 있어서 성장과 성숙은 나이와 관계없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생명이 있고 영혼이 살아있으면 성장하고 성숙하며 성화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생명은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숙을 바라게 되어 있습니다. 성화를 원하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 40~52절은 예수님이 성장하는 모습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 말씀에서 두 번에 걸쳐 예수님의 성장에 대해 요약하고 있습니다. 40절에는 “아기가 자라며”, 52절에는 “키가 자라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두 개의 ‘자란다’라는 말의 헬라어 원문을 보면 서로 다른 단어가 쓰이고 있습니다. 이 두 개의 다른 단어를 통해서 예수님의 성장에 관한 본질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성장에 관한 본질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40절에서 아기 예수가 자라가면서 강해진다고 말씀하는데, 이것은 육신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자란다’의 의미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 나라가 커지는 것처럼 자란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의 성장을 비유로 가르치신 말씀에서 그 의미가 분명해집니다.(막 4:27~28) 천국은 씨가 자라는 것처럼 커진다고 합니다. 천국은 어느 날 보면 커져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보면 분명히 커져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커지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싹이 나며 이삭이 맺히고 충실한 곡식이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가 커가는 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세한 이유와 원리를 우리가 다 알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알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입니다. 스스로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 누가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우리가 자라는 모양은 알 수 있어도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정확한 것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모습이고, 생명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종합적인 성장을 말합니다. 그래서 아이들만 자라는 것이 아니고 성인들도 자라야 합니다. “나는 이제 다 컸어”라고 생각하며 성장의 마음이 없는 것은 늙었다는 겁니다. 반대로 내가 계속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늙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성장처럼 우리가 성장과 성숙을 바랄 때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1년간 우리의 성장과 성숙을 바라며 살다가 내년 이 맘 때에는 “내가 성장했습니다. 성숙했습니다. 성화됐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 52절에 쓰인 ‘자라다’는 말은 ‘발전하다’, ‘진보하다(progress)’의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목회자로서 영적으로 발전을 이루라고 권면할 때에도 사용하였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15절에 보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성숙’이 바로 이 단어입니다. 전심전력하면 진보와 발전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성장의 모습이 외적 성장만이 아닌 내적인 성숙과 성화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세 가지 측면에서 성장, 성숙, 성화될 수 있습니다. 지혜, 키, 사랑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영역에서 진보와 발전을 이루라는 뜻입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지혜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지혜가 어느 정도인지 예수님의 일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12살 된 해에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에 갔습니다. 부모님은 유월절을 지내고 돌아오다가 하루가 지나서야 예수님이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찾으러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갔는데 며칠을 헤매다가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선생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47절을 보면 예수님의 대답을 듣고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겼습니다. 예수님의 지혜가 아주 탁월했는데 도대체 무슨 대답을 하셨을까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예수님이 가장 지혜롭게 대답하신 때가 언제인지 생각해 봅시다.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권세 잡은 자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려고 공격적으로 질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가장 지혜롭게 대답하신 때는 세금 문제를 갖고 달려든 때입니다. 당시 예수님은 이렇게 답해도 안 되고, 저렇게 답해도 안 될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동전에 로마 황제 가이사의 상이 있는 것을 보이면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입니다. 그 때 “대답한다”라는 말이 12살 때 성전에서 “대답한다”는 말과 일치합니다. 정확히 무슨 대답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류의 지혜로운 대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지혜 덩어리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처럼 자라갈 때 지혜가 자라기를 주 안에서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의 키가 자란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 말은 상징적인 의미로 생각하면 됩니다. 키가 큰 사람의 장점 중에 시야가 넓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가 발전이 있고, 성장이 있고, 성숙이 있을 때 작은 시야를 갖고 있다가 넓은 시야로 커지게 됩니다. 특히 베드로후서 3장 18절에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을 붙잡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꼭 붙들어야 할 신령한 지혜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사랑스러움에서 자랐습니다. 진정한 성장과 성숙은 더 사랑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성장과 성숙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런 상상을 합니다. 좀 더 커져 있는 것, 좀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것, 좀 더 안정된 상태들을 성장 혹은 성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주신 말씀에서 진정한 성장과 성숙은 더욱 사랑스러워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랑스러워지는 것이 더 커지고 더 높아지고 더 안정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주의할 것은 ‘하나님 앞에’와 ‘사람 앞에서’ 사랑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사람 앞에서만 사랑스러워지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사랑스러워지면, 사람 앞에서도 사랑스러워지게 됩니다. 적어도 세상의 바른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할 것은 사랑스러워지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의 성장을 보면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사랑을 계속 부어 주십니다. 계속해서 사랑을 부어 주시니까 예수님이 사랑스러워집니다. 우리가 정말 사랑스러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예쁘게 봐 주셔야 합니다. 여기에서 사랑스럽게 본다는 것은 하나님이 좋은 마음으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호의로 봐 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하나님이 좋게 봐 주실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좋게 봐 주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좋게 봐 주시니까 우리 안에 좋은 것들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속 더 좋게 우리를 봐 주실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을 부모 입장에서 보면 예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를 보면 예쁩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으니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만 선택하고 살겠다.” 이런 다짐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랑 받는 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계속해서 우리를 사랑하는 자로 더욱더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십니다.

누가복음 2장 40~52절 말씀에 기록된 예수님을 통해 성장과 성숙에 대한 원리를 살펴보았습니다. 2020년 한 해, 이 원리를 갖고 살면 좋겠습니다. 이 원리 붙들고 1년 뒤에는 하나님이 더욱더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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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이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번 한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8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18 듣는 자가 다 목자의 말하는 일을 기이히 여기되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

20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21 할례할 팔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러라

22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대로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 둘로 제사하려함이더라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33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

34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

39 주의 율법을 좇아 모든 일을 필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41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42 예수께서 열 두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43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44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45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48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9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50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51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누가복음 강해 13강, 예수님의 소년기12년의 삶 (눅2장40절)

오늘말씀은 누가복음40절 한절의 말씀인데 우리한국성경에는 이게 잘되어 있습니다, 한절이지만 그기에 동그라미가 하나가 있습니다,

그리고 41절에 동그라미가 또 있고 그러니까 이 한절에 동그라미가 있을 걸 보니까 그기에 깊은 뜻이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40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이 말씀 한절인데 이 말씀은 누가만 이 말씀을 이렇게 적여 놓았습니다, 마태나 마가나 요한복음에는 이 말씀이 없습니다,

그리고 누가는 항상 앞에 스토리를 주욱 말씀하신 후에 이런 말씀으로 요약을 한번 하시는 그런 기록스타일이 있습니다, 52절을 보면 그기도 이런 요약말씀이 있습니다, 52절에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그러니까 앞에 스토리와 연관해서 마무리를 한번 씩 하십니다, 이게 누가의 스타일입니다,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했습니다, 사도행전에도 이런 식으로 항상 요약을 했습니다, 오늘40절 한절의 말씀에 요약을 하시고는 그리고41절42절을 보면 새로운 이야기입니다 41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42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그러니까 4복음서에 누가복음에만 예수님의 열두 살 때 이야기를 잠깐 이렇게 비쳤습니다, 다른 복음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없는데 그래서 우리가 추측을 하기를 오늘 본문40절 이 말씀은 예수님이 탄생하셔서 주욱해서12살 될 때까지 나사렛에서 사시면서 소년기를40절에다가 요약을 하신 거라고 우리가 추측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40절은 예수님의 소년기12년 동안의 삶을 간단하게 요약하신 말씀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전에 우리가 그동안에 본 것은 예수님이 탄생하셔서 탄생소식을 두 그룹들에게 전했습니다,

첫째 그룹이 목동들에게 누가복음에만 있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는 동방박사들 마태복음에만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누가가 그다음에 개인 두 분을 지칭을 했습니다,

시므온과 여자선지자 안나 그래서 우리가 지난시간에 안나 이야기를 주욱 했잖아요, 이렇게 해서 안나 이야기가 끝나면서 오늘 본문에 동그라미하나가 있는 겁니다,

이 동그라미하나가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이 말씀이 그냥 쉽게 보이지만 이안에 엄청나게 숨겨진 의미들이 있습니다, 이 의미를 보면 3분설이 이 속에 있구나.

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3분설 육과 혼과 영 이렇게 세부분이 있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보면 육적인 부분을 설명을 합니다,

아기예수가 한 살부터 시작해서12살까지 아기예수가 육적으로 어떤 성장이 와 있느냐 그래서 보면 아이가 자라며 그랬습니다, 그래서 한국말로는 그냥 자라며 했는데 원어나 영어 성경에는 컨티뉴(continue)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 말은12년 동안 계속해서 육이 성장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키도 자라고 살도 조금씩 붙고 뼈도 자라나며 그리고 강하여지고 그랬습니다,

그것도 계속해서 근육이 더 강해지고 힘도 생기고 예수님이 인가으로 오셔서 이렇게 우리가 자라나는 식으로 예수님도 우리처럼 똑같이 육으로 자라나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공중에서 낙하산타고 내려오신 분이 아니고 마리아의 몸으로 태어나서 우리처럼 똑같이 우리의 성장과정 똑같이 경험하셨다는 그러한 뜻이 숨겨져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도 보면 우리도 자랄 때 태어나서부터3살까지를 유아기라 그러잖아요, 예수님도 유아기를 경험하시고 그리고 두 번째로 유치원기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유치원기가4살부터7살까지 그리고 초등학교 들어가잖아요,

12살에 초등학교 졸업하잖아요, 그러니까 초등학년 기 예수님도 톡같이 이렇게 성장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이분도12년 동안 여러 가지 스트레스도 받았을 겁니다, 예수님이 가족들 사이에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어떤 스트레스입니까, 동생들과 사이에서 엄마는 같은데 아버지는 다른 분이야 이런 것 때문에 가족 안에서도 스트레스가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게다가 동네 분들도 마찬가지고 그럴 때마다 마리아가 가슴에 찔림을 경험하셨습니다, 그렇게 시므온이 마리아에게 예언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소년예수님이 혼 쪽으로도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 보면 지혜가 충만하며 그랬습니다, 지혜도 유아기 때의 지혜 유치원 때의 지혜 초등학년 때의 지혜 이렇게 지혜가 가면서 발전되었다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그러면 누구의 은혜입니까, 지금 예수님도 하나님이신데 지금12살 먹은 소년 예수님도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하나님 되시는 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그분 위에 있었다는 겁니다, 이걸 어떻게 우리가 소화할 수 있습니까,

이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예수님은 삼위하나님의 이위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사람이 되셨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이100%의 사람이 되신 분입니다, 그래서100%하나님이면서100%사람이 되신 겁니다,

그래서 주후451년에 칼케톤 공의회에서 기독교지도자들이 모여 가지고 예수님의100%신성과100%인성을 발표를 했습니다,

그 후부터 모든 기독교교단들은 예수님의 양면성을100%인성과100%신성을 철저하게 믿는 게 정통기독교교리입니다

여호와증인 같은 분들을 왜 이단이라고 그럽니까, 그분들은 예수님의100%신성을 부인하는 겁니다,

100%사람이라고 보는 겁니다, 신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단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보면 12년 동안 예수님의100%사람이 되신 모습을 바울이 빌립보서2장7절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100%하나님이신데 이분이 신성을 비우셨다는 겁니다,

신성을100%비우시고100%사람이 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금12년 소년기간에100%사람이 되신 겁니다,

신성을 비워버린 겁니다, 신성을 비웠기 때문에 이분은 하나님의 은혜가 이분에게 임해야 됩니다,

그런데 이때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은 누구의 은혜입니까, 어느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성부하나님 성령님하나님까지도 보탤 수 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하나님의 은혜는 아닙니다,

그 분은 사람이 되어서 여기 계시기 때문에 그렇지만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의 은혜가 이 소년에게 임했다는 겁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이 은혜도 보면 유년기의 은혜가 있고 또 유치원 때의 은혜와 초등학년 때의 은혜 이 은혜의 수준이 다른 겁니다,

그러니까 은혜를 나이를 먹으면서 은혜의 크기와 볼륨을 이분이 점 점점 장려하는 겁니다,

더 깊이 넓게 깊이 크게 경험하시는 겁니다, 나중에 요약에서52절에 보면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이때의 이 요약은 또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이때 이 요약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시작하기 직전까지의 요약으로 다시 말하면 13살부터30세까지 그 기간 동안에 경험했던 것을 지금52절에다가 요약을 한 겁니다,

수준이 더 높아진 수준입니다 이 말씀은 제가 다음시간에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중요한 개념이 있으니까 잘 들어 보세요,

예수님이33년 동안 누구의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말할 때 그냥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 그랬지만 구체적으로 누구의 은혜입니까

성부하나님의 은혜와 성령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시면서33년을 이렇게 지냈습니다,

33년 끝날 무렵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는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실 때는 인성이 완전히 신성으로 변하는 순간입니다

부활하시면서 이때부터 이분은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께서 이분에게 새로운 직임을 허락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후에 엄청난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사건과 부활사건을 통해서 엄청난 예수님에 대해서 전환점이 생겨납니다, 성서에서 보면 예수님의 직임이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사람으로 계실 때하고는 완전히 부활해서 이제는 제2의 삼위하나님의 역할을 하면서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이 예수님께 수고했다, 라는 인간적인 표현으로 보면 수고하셨어,

이제부터는 당신이 직임을 가지게 될 거다, 우리식으로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모든 직임을 삼위하나님이 가지고 있던 직임을 예수님에게 집중적으로 몰아주십니다,

그래서 우선 직임 중에 보면 마태복음28장18절이 부활하신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아버지가 나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단다,

그러니까 이제는 이분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

예수님이 이제는 권세 자가 되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피조물들은 이제는 누구에게 무릎을 굵어야 됩니까,

예수님께 무릎을 굵어야 되는 겁니다,

두 번째 직임은 디모데전서6장15절 또는 빌립보서2장10절에서11절에 보면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직임을 받았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만유의 주로써 직임을 받으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빌립보서2장10절에서11절에 2장5절부터 보면 그분은 본래 하나님이어셨지만100% 사람이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10절부터 그것 때문에 하늘에 있는 자들이나 땅에 있는 자들이나 또는 땅 밑에 있는 자들 땅 밑이 어디입니까 음부입니다 이 모든 자들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굵고 서는 말하기를 그분들의 입을 통해서 예수는 나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면서 아버지께 영광 드렸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피조물들이 예수님에게 무릎을 굵을 때 누가 기뻐하십니까, 성부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엄청난 직임을 가지신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나의 주인으로 섬기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버지보고 나의 주님 이라고 안합니다, 나의 주님 하면 누굽니까,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나중에 천국에 올라가도 예수님과 만나서 그분과 교제하는 겁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그다음에 그분의 말을 들어야 됩니다, 그분이 천사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일거리를 주고 하시는 겁니다,

그만큼 예수님과 우리는 깊은 관계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부활사건이후에 하나님의 은혜는 누구의 은혜라고 그랬습니까,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의 은혜인데 예수님이 부활하시고는 그다음에 성경을 보면 부활사건이후부터 신약전체의 성경을 들여다보면 은혜를 베푸는 자가 변해버렸습니다, 그때부터는 예수님이 은혜를 베푸는 자로써 직임을 받으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은혜 하나님의 은혜 그리스도의 은혜 예수그리스도의 은혜 이 모든 단어들이 누굽니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은혜를 베푸는 자로 이제는 직임을 받으신 겁니다,

그분의 부활사건 이후에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바울이 축도할 때 어떻게 합니까,

축도할 때 고린도후서13장13절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그러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제일 먼저 나옵니다,

십자가사건 이후에는 아버지의 은혜와 이런 말을 쓰면 안 됩니다

이제는 예수그리스도의 은혜 이게 굉장히 중요한 단어입니다

그다음에 갈라디아서6장18절에도 바울의 신앙고백입니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이 말씀은 갈라디아서를 끝내면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으로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간구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나중에 말씀드리겠지만 빌립보서4장23절에도 빌립보서를 끝내면서 바울이 항상 그러는 겁니다, 바울의 편지에는 항상 이것으로 결론을 내리는 겁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그러는 겁니다,

이제는 성부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성령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예수님의 은혜가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제부터 신약에 와서 부활사건 이후부터는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신 겁니다, 예수님이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분이33년 인간으로 계실 때는 그분에게 은혜를 누가 베푸셨습니까,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의 은혜와 이분의 부활사건 이후의 하나님의 은혜는 임직 자가 다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베푸신 은혜를 성서에서 주욱 보면서 정리를 하다보니까 10가지의 은혜를 우리에게 베푸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배 끝날 때마다 축도할 때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임하기를10가지를 항상 생각해야 됩니다, 막연히 그냥 아멘 하지 마시고10가지의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무엇인가

첫 번째 은혜가 무엇이냐면 은혜라는 것은 그냥 일방적으로 주시는 겁니다, 주시는 분의 마음에 따라서 그냥 일방적으로 주시는 것이지 내가 어떻게 해서 받는 게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은혜입니다 첫 번째 예수님이 베푸신 은혜가 구원을 베푸신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구절을 드립니다,

에베소서1장7절에 사도행전15장11절 로마서3장24절 로마서5장15절에 뭐냐면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에 의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그러는 겁니다, 예수님의 은혜 때문에

두 번째는 예수님이 구원된 사람들 중에서 특별히 사도의 직분을 베푸시는 은혜가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갈라디아서1장25절에 바울도 이 은혜 때문에 자기가 사도가 되었다는 겁니다,

고린도전서15장10절에 에베소서3장7절에 보면 사도직분을 베푸시는 은혜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앞으로 주님이 어떤 직분을 내리실지 모르는 겁니다, 목사님 되실 분도 계시고 사도가 되실 분도 계시고 전도자가 되실 분도 계시고 세 번째 은혜는 복음전파자의 직분을 주시는 은혜입니다, 갈라디아서1장6절 사도행전20장24절 고린도전서3장10절 베드로전서5장10절에 보면 복음전파자도 예수님의 은혜를 받아야지만 되는 겁니다,

네 번째로 바울이 그랬습니다, 남은 자가 되는 은혜입니다,

그러니까 소수의 헌신 자들 우상을 섬기지 않는 이런 자가 되는 것도 예수님의 은혜가 따라와야 되는 겁니다,

로마서11징5절 에 내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예수님의 은혜가 임해야 되는 겁니다,

다섯 번째로는 예수님의 은혜는 때가 예수님이 때가 되었을 때 베푸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때를 따라서 도우시는 예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아무 때나 주는 게 아닙니다, 히브리서4장16절 전도서3장에도 보면 그분의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때를 기다려야 되는 겁니다,

여섯 번째로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게 도와주는 은혜가 있는 겁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도와주시는 겁니다, 성령의 열매가 맺도록 고린도후서1장12절과9장8절에 그다음에 일곱 번째로 육적으로 건강하게 하는 은혜도 있는가하면 또 병들도록 하는 은혜도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일방적으로 건강한 것만이 예수님의 은혜가 아닙니다, 아픈 것도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에게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이게 파라독스(paradox)입니다, 예수 믿으면 건강하고 다 잘 된다,

아닙니다, 핍박도 허락하시는 것도 은혜고 약하게 하는 것도 은혜입니다

고린도후서12장7절과9절에 바울이 나에게 사탄의 가시가 잇는데 내가 이렇게 몸이 약합니다,

이 병 좀 고쳐주십시오 하니까 예수님이 바울에게 무엇이라고 그랬습니까, 그것이 은혜라는 겁니다,

내가 주는 은혜라는 겁니다,

그것 없어지면 너 믿음이 약해진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픈 것도 장사가 잘 안 되는 것도 핍박받는 것도 모든 것이 예수님의 장중에 있는 주님의 자녀들에게는 그게 다 은혜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베푸시는 은혜라는 겁니다,

여러 가지 우리가 문제 있는 것도 이분의 장중에서 움직인다는 겁니다,

여덟 번째는 오늘 본문에서 소년예수님도 성부하나님의 은혜가 임했기 때문에 지혜가 증가가 되었다는 겁니다,

우리가 지혜를 받는 것도 십자가사건이후에 예수님의 은혜가 임해야지만 우리가 지혜를 때를 따라서 계속해서 받을 수 있습니다, 똑같이 아홉번째는 지혜와 연결되는 명철입니다

그다음에 열 번째는 지식입니다 지식과 명철과 지혜가 이분의 은혜가 임해야 된다는 겁니다,

성경구절은 잠언23장4절과3절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30년 사생활을 하시면서 가장 필요했던 것이 본문40절에도 52절에도 공통적으로 지혜가 충만하게 되었다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 말은 뭐냐면 예수님이 육신으로 계시면서도 지혜가 필요했구나,

라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이분이 첫30년 동안 지혜를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에게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머지3년 공생애를 잘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분이 그 지혜가 필요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지혜라는 것이 뭡니까, 지혜는 헬라어로 소피아(sophia)라고 그럽니다,

지혜를 잠언에서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잠언24장3절4절에 보면 3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되며 4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 그랬습니다,

첫째 집을 짓는 건축학적 의미에서 지혜와 명철과 지식을 잠언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뭐냐면 집을 건축하는 것은 지혜에 의해서 건축되며 명철에 의하여 견고히 된다는 말은 지어진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건축이 된다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방들은 지식에 의해서 아름다워진다는 것은 실내장식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걸 다시 제가 설명하여 드리겠습니다,

집은 지혜에 의해서 건축된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면 지혜는 건축을 할 때 마스트 플랜이 필요한 겁니다,

예컨대 도안이 필요한 겁니다,

큰 그림이 필요한 겁니다, 우리가 건축할 때 어떤 모습으로 지어야지 하는 아이디어 큰 그림 이것을 비전이라고 그럽니다, 실제로 짓는 게 아니라 먼저 그림이 그려져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림을 먼저 그리는 겁니다,

이것이 지혜고 이 마스트 플랜이 있는데다가 명철이 따라오는 겁니다,

명철은 뭐냐면 다시 말하면 마스트 플랜에 의해서 실제로 건축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건축하려면 건축자재가 필요하고 실제로 건축하는 그 자체를 명철이라 그럽니다,

그다음에 건축해놓으면 그 안에 지식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실내장식을 잘해놓아야 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지식이라고 그럽니다,

그러면 이 중에 뭐가 가장 중요할까요, 지혜가 가장 중요합니다,

먼저 마스트 플랜이 있어야 되잖아요, 지혜가 최우선입니다 다시 말하면 비전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지혜에 의해서 명철이 만들어지고 그기에 지식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이12년 동안 뭘 받았습니까,

지혜가 나이에 따라서 올라간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100%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지혜도 계속해서 나이가 들면서 지혜도 올라가는 겁니다,

지혜를 가지려면 지혜홀로만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건물를 짓겠다는 비전만 가지고 있지 비전만 가지고는 실제로 지혜의 역할을 못합니다, 그러니까 이 지혜가 있지만 그 지혜를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합니까,

명철과 지식이 필요한 겁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건물을 지으려면 집짓는 건축가도 있어야 되고 기술자도 있어야 되고 그다음에 인테리어기술자도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세부분이 종합적으로 연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거꾸로 보면 지식이 실내장식을 싸구려로 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러면 건축도 싸구려 건축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분이 가지고 있는 비전도 조그만 오두막하나 짓는 비전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비전을 크게 하기위해서는 실내장식을 잘하는 아주 고급 장식을 하는 지식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다가 건축하는 실력도 명철도 고급화되고 그렇게 준비가 되는 사람에게는 비전도 지혜도 커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큰 지혜를 준 사람에게는 필요한 것들을 준비시켜주십니다,

바울 같은 사람도 보면 바울이 로마제국을 복음화 하는 일을 비전으로 주신 사람입니다,

그 지혜를 가졌는데 그게 하루아침에 되었습니까,

바울에게30년을 이 세상지식훈련을 시킨 겁니다, 그리고는30세에 개종을 시킨 다음에 10년을 또 훈련시킨 겁니다,

이10년을 제가 볼 때는 명철훈련을 시킨 겁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이 훈련을 시키면서 그 훈련의 크기만큼 이분에게 비전을 주시는 겁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니까 다 준비되니까 나중에 이분이 로마제국을 복음화해야 된다는 비전을 구체적으로 가지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주신 이 비전을 얼마만큼 지혜를 가지면 그기에 맞게끔 뭐부터 훈련을 시킵니까, 지식훈련부터 시키는 겁니다,

지식이 훈련되지 않는 사람은 비전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여러분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게 왜 합니까,

이렇게 공부하다보면 명철이 생겨나고 그러면서 지혜가 생겨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혜를 주십시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지식훈련이 안되어 있으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의 지혜와 하나님의 사람들의 지혜는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의 비전과 하나님의 사람들의 비전은 다른 겁니다,

그만큼 지혜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걸 다시 설명하면 지식이 가장 밑바탕입니다 지식이라는 것은 정보를 얻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 성경공부로 지식공부를 여러분들이 하고 있습니다, 이 지식에서 정보를 얻는 단순작업으로 생각하면 두 번째로 이 정보를 내가 어떻게 이해하느냐 소화하느냐 의미를 깨닫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앉아서 노트정리하면서 의미를 깨닫는 것이 명철입니다

의미를 깨달은 사람이 그걸 가지고 집을 짓은 겁니다,

의미를 깨달은 다음에 그것이 지혜로 적용하는 능력이 다시 말하면 이걸 내가 어떻게 적용을 하느냐 적용하는 능력이 지혜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우리가 성경공부를 하다가 명철이 생기면서 이제 여러분들이 전도도 하고 선교도 하고 그러잖아요,

이게 발전되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그 규모가 다른 겁니다, 크기가 다르지만 그렇게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겁니다,

이순서가 없이 말씀에 지식의 연습이 없이는 집이 무너져버립니다,

그래서 지혜가 얼마나 중요하느냐면 성서에서 지혜의 중요성을 다시 말하면 비전을 가지는 겁니다,

마스트 플랜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잠언8장11절에 지혜는 진주보다 낫다 그러는 겁니다,

또 잠언16장16절에 지혜를 얻는 것은 금을 얻는 것보다 낫다 그랬습니다,

그다음에 잠언10장11절에는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생명의 샘이다 그랬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일을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생명의 샘이 잠언에서 여러 가지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제가 간단간단하게 읽어드리겠습니다,

잠언15장4절에 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지혜 있는 자들은 혀를 열고서 많은 사람을 살려준다는 겁니다,

잠언16장24절에는 선한 말은 꿀 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지혜 있는 사람의 말 한마디가 이렇게 사람을 살려준다는 겁니다,

잠언25장11절에는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잠언18장21절에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다시 말하면 혀를 나쁘게 쓰면 나쁜 열매가 있고 혀를 좋게 쓰면 좋은 열매를 먹는다는 겁니다,

잠언10장18절에는 미움을 감추는 자는 거짓된 입술을 가진 자요 중상하는 자는 미련한 자이니라 혀를 잘못 써서 항상 불평하고 이간질 하고 하는 사람은 미련한 자라는 겁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야 되는데 항상 죽이는 일을 하는 참소하는 일을 하는 자는 미련한 자라는 겁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잠언10장11절에는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잠언10장19절에는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언10장21절에는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어 죽느니라

그런 의미에서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생명의 샘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혜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그게 입에서부터 보이는 겁니다, 항상 격려해주고 살려주고 부족한 것이 보이지만 부족한 부분은 보지 말고 좋은 점만 자꾸 세워서 올려주는 사람 그런 사람과 그것이 생활화 된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을 보면 근방 알 수 있습니다, 지난시간에 치마폭이야기 기억나십니까,

치마폭이 넓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지혜자입니다 그리고 잠언13장14절에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아까는 지혜 있는 자의 입술은 격려해주고 그랬는데 지금은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교훈이라는 것은 가르치는 겁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생명의 샘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혜 있는 자는 자기보다 지혜가 더 있는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는 게 그게 지혜 있는 자라는 겁니다,

그래서 잠언21장11절에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을 받으면 지식이 더하리라

그랬습니다, 그다음에 잠언15장32절에 지혜로운 자의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느니라 그랬습니다,

그만큼 지혜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도 이 지혜를 계속해서33년 동안 받으신 겁니다,

그렇다면 지혜의 근본은 무엇인가면 시편111편10절 지혜의 시작 지혜의 근본이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겁니다, 이 말은 항상 제가 말씀드리지만 창조목적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상을 섬기지 않는 겁니다, 우상보다는 항상 여호와 예수님을 우선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항상 예수님께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한 걸음 더나가서 예수님이 누구라는 것을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기독론이 강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기독론이 강한 것은 다시 말하면 여호와예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입만 열면 예수님이야기만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이 지혜의 근본에 순종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혜는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을 섬기는 일 자체가 지혜인 겁니다, 예수님우선주의입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지혜자인 겁니다, 창조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고는 그것을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서 잠언1장7절에는 또 다른 말을 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 그랬습니다,

아까시편111편10절에는 지혜의 근본이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잠언1장7절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 그랬습니다,

지식의 근본이라는 말이 우리가 지금 성경 공부하는 게 지식입니다

성경공부 내용에 가장중심 되는 게 무엇입니까, 창조목적 예수님이야기라는 겁니다, 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나 그분이 누구신가 왜 창조하셨나,

십자가사건이 왜 일어났는가, 이런 모든 예수님에 관한 지식이 창조목적에 관한 지식 이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건데 다시 말하면 지식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으로 초점이 맞추어지니까 지혜도 따라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으로 연결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겁니다, 우리가 왜 성경공부를 하느냐 왜 예배를 드리는가,

왜 우리가 이 지혜를 가져야 되는가, 왜 내가 이 지혜로운 자는 생명의 샘이 되는가, 이런 모든 것이 뭐냐면 예수님을 더 부각시키고 창조의 목적을 더 가르치고 내가 그기에 순종하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식에서도 성경공부에서도 초점이 누가 되어야 됩니까, 예수님이 되셔야 합니다,

명철도 초점이 예수님이 되셔야 되고 지혜도 초점이 예수님이 되셔야 됩니다, 성서에는 주로 잠언에만 있지만 다른 데도 있습니다,

이런 지혜 자들에 대한 모습을 성서에 이렇게 저렇게 표현 한 게 있습니다,

제가 성서에서 골라보니까15가지 정도 됩니다, 그래서 지혜 자들의 삶의 특색이라고 할까요,

그걸 보면 지혜로운 자는 나중에 주님나라에 가서 영광을 기업으로 받는다, 그랬습니다,

잠언3장35절에 다시 말하면 높은 계급의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지혜로운 자는 훈계를 듣고는 거기에서 지혜를 얻는 사람입니다 훈계를 잘 듣는 사람입니다 잠언8장33절에 다른 사람이 나에게 훈계할 때 또 세 번째로 지혜로운 자는 지혜로 집을 짓는 자다 그랬습니다, 다시 말하면 비전을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잠언9장1절에 또 잠언10장1절에는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한다는 겁니다,

잠언12장18절에는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다 그랬습니다,

잠언13장15절에는 선한 지혜는 은혜를 베푼다, 그랬습니다,

잠언13장20절에는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는다, 그랬습니다,

잠언14장1절에는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운다,

그런데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 집을 허물러버린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때 지혜는 어디다가 초점을 맞추어야 됩니까,

그냥 일반 세상지혜가 아닙니다, 지혜의 근본이 누굽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머니들이여 자녀들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도록 가르쳐야 되는 겁니다, 그게 지혜로운 어머니라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세상지혜를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자녀들에게 예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치는 게 그게 지혜로운 어머니라는 겁니다, 미련한 어머니는 어떤 어머니입니까 자녀들에게 예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치는 게 아니라 세상 좋아하도록 가르치는 겁니다, 그것은 미련한 어머니라는 겁니다, 우리기독교인들보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잠언14장6절에는 그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한다는 겁니다,

열 번째로 잠언19장8절에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영혼을 사랑한다고 그랬습니다,

전도서2장14절에 지혜 자는 준이 밝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지혜 자는 영의 눈이 밝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열두 번째로 마태복음5장8절에 지혜 자는 마음이 순수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눈이 밝은 사람은 마음이 순수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열세 번째로 히브리서12장15절에 지혜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본다고 그랬습니다,

그다음에 고린도전서14장20절에는 지혜에 있어서는 어린아이가 되지 말고 장성한 자가 되어야 된다,

그다음에 다니엘서12장3절에 지혜로운 자는 궁창에 빛과 같이 빛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영광스러운 높은 자리에 앉게 된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마태복음24장45절에는 충성되고 지혜로운 자는 들림 받는 자다 그랬습니다,

이제 제가 결론적인 말씀을 몇 마디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지혜가 필요한 것 때문에 예수님이 몸소33년 동안 예수님이 인간으로써 지혜를 추가로 받았고 증가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계속해서 지혜를 받았습니다, 이와 똑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들도 우리크리스천들도 예수님처럼 우리가 지혜를 받아야 되는 겁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지혜를 받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봐도 지도자로써 임명이 되는 사람들은 꼭 성경에 보면 이런 분들에게 어떤 사람이 지도자가 될 수 있느냐에 대한 자격을 이야기하는 게 있습니다, 첫째 모세에게 모세가 사역이 많으니까 천부장도 임명하고 백부장도 임명하고 50부장 10부장 이렇게 모든 사람들을 임명할 때 그분들을 임명할 때 조건을 달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이냐면 신명기1장13절에 각지파의 사람들 중에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자들을 택하라 그랬습니다,

지혜와 지식이 있는 사람들 신명기4장6절에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뭐라고 그랬냐면 모세야 수직계명을 잘하는 사람이 지금 너희들 중에서 소수지만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면 우상 섬기지 않고 수직계명을 잘 하는 사람들은 지혜와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이렇게 신앙 생활하지만 돈 좋아하고 명예 좋아하고 이 세상 좋아하고 하면 실은 지혜와 지식이 없는 기독교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데 다니엘서1장20절에 봐도 다니엘에게 은혜를 베푸셨는데 어떤 은혜냐면 지식과 명철과 지혜가 중동지방에 모든 박수들이나 술객들 보다도 10배나 다니엘이 더 받았다는 겁니다, 다니엘에게 주셨다는 겁니다,

뭘 줍니까, 지식을 주고 명철을 주고 지혜를 다니엘에게 주셨다는 겁니다,

솔로몬도 너에게 물질을 줄까 뭘 줄까 할 때 솔로몬이 뭘 달라고 그랬습니까,

역대하1장10절에 보면 지혜와 지식을 주십시오, 라고 대답했던 솔로몬의 모습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이랬습니다, 빌립보서3장4절에서9절에 그랬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육적인 것에 자랑거리가 많다 그런데 이것은 다 배설물 같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면 배설물 같은데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느냐면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이 지식에 비교하면 이 세상에 육적인 자랑거리는 다 배설물 같다는 겁니다,

이사야서11장9절에도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아는 지식 그래서 호세아서4장6절에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의 이스라엘사람들이 여호와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겁니다,

소수만 빼놓고 그분들이 우상을 섬겼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호세아서4장6절에 여호와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아야지만 이스라엘사람들이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주님이 의도적으로 눈을 감겨 놓았지만 그것 때문에 반유대주의 사상이 생기고 1세기에 소수만 알게 되고 나머지는2000년 동안 눈이 감긴 사건 우리가 알잖아요,

그러니까 여호와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철저히 알아야 되고 우리가 이것을 깨닫고 가르쳐야 되는 겁니다,

가르치는 사람 자체가 지혜자인 겁니다,

그러니까 기독론이 강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결론적인 말씀인데 욥기에서 욥이 고백한 게 있습니다,

욥기12장13절에 지식이나 명철이나 지혜가 다 여호와의 손에 속해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에 속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식 명철 지혜가 내가 노력을 해서 가지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원해서 가지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기에 누구의 은혜가 임해야 되느냐면 예수님의 은혜가 임해야 되는 겁니다, 이 개념을 먼저 가지고 계신 분은 마태복음20장15절에 나는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내 것을 나누어준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다시피 바울이 성령의 은사이야기를 할 때 고린도전서12장8절부터 나오잖아요,

제일먼저 나오는 아홉 가지 은사 중에 지혜의 은사입니다 그다음에 지식의 은사가 따라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무료선물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무료선물이 지혜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고린도전서12장11절에 그랬습니다, 성령님의 뜻에 따라서 이 성령님의 뜻은 예수님의 영입니다

예수님의 영의 뜻에 따라서 무료선물을 나누어주신다는 겁니다, 아무나 지식 명철 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분의 뜻이 있습니다, 저 사람에게 내가 주어야겠다,

저 사람에게 지혜를 주어야겠다, 지식을 준비시키시고 명철을 준비시켜야 되겠다고 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주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욥기12장13절에서14절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그렇게 일방적으로 주지만 예수님의 뜻에 따라서 주지만 이분이 이것을 빼앗아 가기도 하고 더 주기도 한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에게 지식을 주고 명철을 주고 지혜를 주셨는데 더 주기도 하고 안 그러면 빼앗아 가시기도 하신답니다,

다니엘에게도 다니엘서2장21절에 그랬습니다, 지혜 자에게는 더욱 지혜를 베푸시고 지식 자에게는 더욱 총명을 베푸시는 것이 일방적인 하나님의 뜻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주님 우리성도들 또는 유튜브를 보면서 공부하시는 분들은 지혜를 더 받으려고 지혜를 더 크게 받으려고 더 넓게 받으려고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 분들이구나, 라고 제가 해석을 하는 겁니다,

안 그러면 여기 앉아서 지시공부 명철공부를 못합니다,

설교를 짧게 하면 목사님 설교가 왜 짧습니까, 길게 해달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이고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지혜가 더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지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사람들입니다,

시계 들여다보고 하는 사람은 아직 시간이 더 가야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보면 주님이 예수님이 우리 성도님들에게 또 유튜브로 공부하고 있는 분들에게 예수님의 은혜를 주셨구나,

어떤 은혜냐면 지혜를 주시는 은혜를 주셨구나,

그래서 그 지혜의 크기에 따라서 지식을 발전시켜주시고 명철을 발전시켜주시는구나 잠언1장22에 보면 뭐라고 되어 있느냐면 미련한 자는 지식을 미워한다고 그랬습니다, 다시 말하면 미련한 자는 셀 공부하는 것 싫어하는 겁니다,

미련한 자는 노트 정리하는 것도 싫어하는 겁니다,

그냥 빨리 끝나고 가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교회는 없지만 가끔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그런 사람은 다 도태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간구는 주여 우리 교회 권속들이 날로, 날로 지식이 더 발전되고 명철이 더 발전되고 그와 같이 지혜가 더 커지면 그분의 삶 속에서 나타는 것들이 있습니다,

입술이 변하는 겁니다, 그 입술이 생명 샘이 되는 겁니다,

지혜가 많이 생긴 사람은 지혜가 있는 사람은 그분의 교훈은 생명 샘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지혜가 있는 사람은 여호와를 경외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혜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압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수직계명에 잘하는 사람이고 그다음에 수평계명에 사람들과 사이에서 항상 화평하게 하고 입을 열면 격려의 말을 해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은 지혜로운 자구나 이렇게 알 수가 있습니다,

복 있는 자구나 왜냐면 지혜 있는 자는 천국에 영광 체로써 높은 위치에 있게 된다고 그랬잖아요,

그러면 뒤집어서 보는 겁니다,

입을 열면 항상 부정적인 이야기하고 남을 비판하고 하는 사람은 우둔한 크리스천인 겁니다,

지혜가 없는 크리스천인 겁니다, 저는 담임 목사로써 우리 모두가 다 지혜 자가 되기를 또 우리권속들은 주변에 많은 사람들을 지혜자로 만드는 일에 우리가 사용받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따라와야 됩니다, 예수님 저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저에게 지식을 넓혀주시고 명철을 넓혀주시고 지혜를 넓혀주셔서 내가 점점 점 더 지혜가 높아져서 지혜가 무엇입니까, 비전입니다 중국전체를 내가 들여다보는 겁니다, 소련 전체를 들여다보는 겁니다,

중국 소련 동남아 아프리카를 들여다보면서 저 나라를 내 손에 주셨구나, 라는 그런 지혜를 가지는 겁니다,

그 비전을 그기에 맞추어서 지식을 집어넣어주시고 명철을 집어넣어주시고 그렇게 하신 거라는 겁니다,

우리예수님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이 먼저33년 동안 지금 지혜를 계속 공급받으시고 그리고는 십자가사건 부활을 끝내면서 지혜를 공급하는 자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나타나신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우리에게 지식과 명철과 지혜를 지금도 많이 부어주시는 겁니다, 우리 모두가 이것을 받아야 됩니다,

분명히 우리 권속들은 이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어떻게 아느냐면 이렇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우리교회 형제자매들에게 주님이 분명히 사랑하시기에 지식과 명철과 지혜를 날로, 날로 더욱 많이 옷 입혀 주심에 감사합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임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사탄이 무서워하는 자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은 사람임을 알고 있습니다, 분명히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이고 은혜 받은 사람들이고 창조의 목적에 부합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 계속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예수님도 이 지혜를 필요로 했던 것처럼 우리도 이 지혜가 날로, 날로 예수님처럼 더 크게 넓게 높게 깊게 길게 만들어지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데 예수님처럼 전 세계를 이 지혜로써 가슴속에 담아둔 것처럼 바울도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전 세계를 가슴에 담는 지혜 자가 되기를 그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한규의 온새기&월새기

누가복음 2장 40-52절

(40절)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41절)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42절)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43절)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44절)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45절)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46절)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48절)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50절)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51절)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52절)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점점 사랑스러워지는 사람 (누가복음 2장 40-52절)

(알림) 온새기 월요일말씀과 홈페이지 주일설교의 차이

매주 월요일은 전날의 주일설교를 일부 발췌해서 온새기(온라인 새벽기도)로 보내는 날입니다.

오늘은 어제 주일설교의 약 60%를 발췌해서 보냅니다.

주일설교 100% 원문을 보기를 원하면 본 홈페이지 ‘주일설교’ 란에서 보시면 됩니다

어느 날, 성 빈체시오 수도사에게 한 여성이 물었습니다. “수도사님! 밤낮 남편과 싸우는데 어떻게 해야 잘 살까요?” 그때 수도사가 교회 뒤 우물물을 성수(聖水)라고 주면서 말했습니다. “성도님! 남편이 싸우려고 달려들면 그 성수를 한 모금 마신 후 삼키지 말고 있다가 남편의 말이 다 끝나면 삼키세요. 그러면 한 달 쯤 후에는 가정이 좋아질 것입니다.”그 후 그녀는 남편이 싸우려고 달려들 때마다 수도사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러자 한 달 후에 가정이 정말 화목해졌습니다. 너무 신기해서 수도사에게 찾아와 말했습니다. “수도사님! 그 물이 정말 신비하네요.” 그때 수도사가 말했습니다. “물이 신비한 것이 아니라 침묵이 신비한 것입니다.”때로는 말보다 침묵이 문제를 풀 때도 많습니다. 사람됨과 인격성과 영성도 침묵할 줄 아는 능력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기도 응답에는 “그래라(Yes)”는 응답도 있고, “안 된다(No)”는 응답도 있지만 “기다려라(Wait)”는 응답도 있습니다. 그처럼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침묵에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숨어있을 때가 많습니다. 어렸을 때 큰 잘못을 해서 야단맞을 것을 각오했는데 엄한 아버님이 그냥 침묵하시면 그 침묵 속에서 더 깊은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처럼 침묵과 기다림이 때로는 깊은 사랑을 표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나쁜 일은 대개 좋은 일과 잇닿아 있듯이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희망과 잇닿아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절망적인 상황만 보지 말고 그 상황 너머의 희망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며 침묵 중에 기다려 보십시오. 속상하고 섭섭해도 너무 성급하게 말하지 마십시오. 자녀교육의 핵심 요소는 침묵과 기다림입니다. 목회의 핵심 요소도 침묵과 기다림입니다. 침묵과 기다림 속에서 사랑을 느낄 때 비로소 인생은 철든 인생이 됩니다.믿음의 침묵은 문제 해결의 신비한 능력이 있습니다. 몰라도 침묵하면 중간은 갑니다. 더 나아가 알아도 침묵하면 신앙 및 인간관계에서 최고수가 됩니다. 신비함을 드러내려고 신비한 말을 많이 하면 신비의 가치는 떨어집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신비를 지나치게 추구하면 진짜 신비는 사라집니다. 진짜 신비는 떠들썩하게 드러낼 때보다 침묵하며 감출 때 그 진가가 드러납니다. 다 알려고 하지 말고 모를 것은 모르게 두고 자기도 모르는 것이 있음을 드러내야 인간관계도 좋아지고 신앙도 깊어집니다.초대교회 때 예수님을 신비하게 보이게 만들려고 신비한 얘기를 많이 기록한 문서가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독이 되듯이 그런 문서들은 다른 면에서 상당한 정경성을 가졌어도 정경문서가 되지 못했습니다. 신기한 얘기가 많아야 예수님의 신성이 증대되는 것은 아닙니다. 너무 신비한 말에 끌려 다니지 마십시오. “환상을 봤다! 천국을 봤다!”는 말에 끌려 다니면 누군가의 ‘자기 망상과 자기 투사’에 끌려 다니는 비참한 영혼이 될 수 있습니다. 신비를 너무 추구하면 대개 영성이 깊어지기보다는 오히려 천박해집니다.예수님의 공생애 전에 신비한 일들이 많았겠지만 그런 얘기들을 다 기록해야 성경과 예수님의 신성이 증대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비한 얘기들이 많아지면 오히려 예수님의 성육신의 의미가 희석될 수 있고 신앙의 본질과 핵심을 놓치기 쉽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신비는 필요하지만 신비가 남용되어 신비주의가 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의 공생애 전의 신비한 얘기들을 거의 감춰놓은 것입니다.본문은 공생애 이전의 예수님의 삶이 기록된 유일한 본문으로 30년간 숨겨진 역사의 커튼이 잠깐 열리고 예수님의 첫 말씀이 기록된 본문입니다. 이 본문의 마지막 구절을 보면 예수님이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점점 사랑스러워 가셨다고 전합니다. 그처럼 하나님과 사람에게 점점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본문 40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이 구절에서 “자라며 강하여지고”란 말은 육적인 성장을 뜻하고, “지혜가 충만하며”란 말은 정신적인 성장을 뜻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는 말은 영적인 성장을 뜻합니다. 즉 예수님의 성장은 육신과 정신과 영혼이 균형 잡힌 전인적인 성장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런 전인성과 균형과 중용의 삶이 있어야 사랑을 받습니다.극단에 치우치면 많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게 되고 인간성도 점점 병들게 됩니다. 심지어는 좋은 것도 지나치면 부작용이 생깁니다. “오직 예수!”란 말이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그러나 그 구호는 예수님 외에 다른 사람은 다 무시해도 좋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구호를 잘못 받아들여 부모와 선생과 목회자와 어른을 우습게 아는 후대들을 보면 극단주의의 위험성을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오직 성경!”이란 말도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그러나 그 말은 성경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지 다른 책은 읽을 가치도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직 성경!”을 내세우며 다른 경건서적을 인간적인 책이라고 읽지 말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조심하십시오. 그 사람은 오직 자기 말만 듣고 자기 말에만 세뇌되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그래서 이단성을 가진 사람이 오히려 “오직 예수! 오직 성경!”이란 말을 더 잘 쓸 때가 많습니다.폭넓은 독서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독서’를 멈추면 ‘독선’에 빠집니다. 사람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2대 요소는 책과 멘토입니다. 결국 독서를 멈추면 성장도 멈춥니다. ‘읽는 사람’이 되어야 ‘읽혀지는 사람’도 됩니다. 남의 지혜를 인용할 줄도 알아야 자기 지혜도 인용되고, 남의 머리를 사용할 줄도 알아야 자기 머리도 쓰임 받습니다. 폭넓은 독서를 외면하지 마십시오. 좋은 리더(reader)가 되어야 좋은 리더(leader)가 됩니다.예수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41절). 예수님도 열두 살 때 유월절 관례를 따라 예루살렘에 갔습니다. 그리고 절기를 지키고 귀가할 때 예수님은 그냥 예루살렘 성전에 머물러 계셨는데 그 사실을 요셉과 마리아는 알지 못했습니다(43절). 그러다가 하룻길을 간 후에 예수님이 동행하지 않음을 깨닫고 예수님을 찾으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44-45절).그처럼 예수님이 동행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이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사실상 예수님이 없는 예수꾼이 되는 것처럼 비극은 없습니다. 왜 요셉 부부가 예수님을 잃어버렸습니까? 사람들이 많은 복잡한 성전에서 마음이 분주했기 때문입니다. 삼백만의 인파가 몰린 유월절 축제 마당이었으니 예수님을 잃어버릴 만도 했습니다. 그처럼 마음이 번잡하면 중심을 놓칠 수가 있습니다.요새 현대인들은 정말 마음이 번잡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볼 시간이나 기도 시간을 잘 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군중 교인들 틈에서 예수님이 없이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는 교인들도 얼마나 많습니까? 사실상 거대한 대중이 몰려다니는 모습은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그렇게 군중 속에서 휩쓸리다 보면 본인은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교회의 양적 성장에 의식이 길들여져 몸집 불리기에만 관심을 두고 나눔과 선교를 외면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은 아닙니다.초대교회 성도들은 극심한 핍박 속에서 예수님 때문에 죽겠다는 각오가 없으면 단 하루도 신앙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새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목적을 위해 교회를 다니기도 해서 알곡과 쭉정이의 구별이 모호해졌습니다. 그러면서 모험적인 희생과 나눔을 체험하지 못한 채 인생을 보낸다면 얼마나 불행한 삶입니까? 항상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예수님의 뜻을 따라 모험적인 희생과 나눔을 주저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점점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 받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결국 사흘 후에 성전에서 예수님을 찾았는데 보니까 예수님이 선생들 중에 앉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했습니다(46절). 외경 도마복음을 보면 그때 예수님이 율법의 난제들을 풀고 또 어려운 질문을 묻고 답하며 천문학, 의학, 물리학, 철학 등의 얘기도 나눴다고 전합니다. 그처럼 어린 예수님이 당대 최고 석학들과 율법에 관한 말씀을 나누자 주변 사람들은 다 예수님의 지혜와 대답에 놀랐습니다(47절).그 장면을 보고 요셉 부부도 놀랐습니다. 그때 마리아가 물었습니다. “아이야! 왜 이렇게 했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며 너를 찾았다(48절).” 열두 살의 아들이 당대의 석학들과 당당하게 토론하는 장면을 보고 평소에 느끼던 자녀의 신성을 새롭게 느꼈겠지만 여전히 예수님의 실체를 잘 몰랐기에 그 동안 걱정했던 감정을 표한 것입니다.그때 예수님은 공손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왜 나를 찾으셨나요?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요?(49절)”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육신의 부모를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인류 구원의 큰 사명을 이행해야 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의 실체를 요셉과 마리아는 깨닫지 못했습니다(50절). 다만 마리아는 그 모든 말을 마음에 기억해 두었습니다.그 후 예수님은 나사렛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순종해 받드셨습니다(51절). 그리고 공생애 시작 전까지 18년 동안 부모 및 동생들과 지내며 가업을 이어받아 목수로서 가정을 돌보고 부모를 섬겼습니다(막 6:3). 그 후 아버지 요셉에 관한 기록은 더 이상 없는데 18년 중의 어느 시점에 죽으면서 예수님이 가장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결국 순종하며 받으시는 성품 때문에 예수님은 점점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워 가셨습니다. 그처럼 순종하여 받드는 성품을 체질화시키면 반드시 사랑 받고 축복의 문도 활짝 열립니다.외경 복음서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전에 행하신 여러 기적을 언급하며 예수님의 신성을 높이려고 했지만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정상적인 성장 과정을 거치셨음을 언급합니다(52절). 그런 언급은 예수님의 신성을 약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예수님이 철저히 인간이 되셨음을 나타내며 예수님의 성육신의 사랑에 더욱 감동하게 만듭니다. 결국 정상(情狀)이 정상(頂上)으로 가는 최적의 길입니다.불행한 사람들은 ‘정상’보다는 ‘환상’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환상적인 얘기가 있어야 신성이 증대된다고 여깁니다. 그런 환상적인 방식을 동원했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몇 가지 환상적인 기적만 펼쳐도 전 세계 70억의 인류를 며칠 내로 다 예수님 믿게 할 수 있지만 그런 환상을 동원하면 믿음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하나님은 마술적인 신앙을 결코 기뻐하지 않습니다. 마술사들의 눈속임이 얼마나 신기합니까? 커튼 하나만 통과하면 옷을 다 갈아입는 마술도 신기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신기한 마술들도 많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아무리 봐도 그 마술의 비밀을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만큼 마술로도 보통 사람들을 속이기 쉽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마술 신앙에 빠지면 영혼이 누군가의 노리개가 될 수 있습니다. 신기한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기한 것으로 신앙의 기초를 세우지 마십시오.인천에서 목회할 때 어느 날부터 매일 아침마다 한두 시간씩 비몽사몽간에 우주를 날아다니는 환상에 젖은 적이 있었습니다. 빛의 속도로 날아다니며 극치의 쾌락이 생생하게 느껴지니까 매일 그 환상에 빠져들었습니다. 빛의 속도로 날아다닐 때는 빠르고 느리게 하는 속도 조절도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집사에게 가볼까 하면 빛의 속도로 그 집사의 집 안까지 들어가서 집안 내부까지 환하게 보였습니다.그런 극치의 쾌락적인 환상이 매일 계속되는데 2달쯤 지난 어느 날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왜 이런 환상을 즐기고 있지? 이 환상이 하나님의 일에 어떤 유익이 있나?” 냉철하게 생각하자 환상적인 쾌락으로 한두 시간을 보낸 것 외에는 어떤 유익도 없었습니다. 그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이런 환상에 젖지 말게 하시고 이 극도의 쾌락적인 기분을 이겨내게 하소서!” 그래서 마침내 그 환상을 거부하고 아침에 몸이 피곤하면 차라리 ‘숙면 모드’로 들어갔지 ‘환상 모드’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분당으로 이사한 후에도 가끔 그 환상적인 경험이 생각나서 그때의 경험이 또 펼쳐질까 하고 ‘환상 모드’로 돌입하면 여지없이 또 그런 환상 체험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바로 그 환상 체험을 끊었습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10여 년 동안 한 번도 환상 모드로 들어가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런 유익도 없이 쾌락적인 기분으로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아서 그 뒤로는 아예 환상 모드로 들어갈 시도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너무 환상적인 기분과 환상적인 얘기만 좋아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신앙생활의 기본이 되면 영혼이 위험해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특별한 기록의도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예수님을 환상적으로 그려내지 않습니다. 몇몇 외경 책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관한 환상적인 얘기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어렸을 때 진흙으로 새를 만들었다는 얘기 등이 기록되어 있지만 성경은 그런 기록들을 철저히 배제합니다.예수님은 인간 가정에서 태어나 인간이 겪는 모든 과정을 겪었습니다. 그 과정을 보여주려고 성경에 예수님의 어린 시절 얘기가 잠깐 기록된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기적적인 탄생 후에 공생애를 시작할 30세까지 예수님이 행한 초자연적인 기록을 다 배제하신 것은 환상과 기적 중심적인 신앙을 주의하라는 하나님의 뜻도 있습니다.환상을 좋아하면 과정도 없이 열매만 찾는 무책임한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그처럼 지나친 환상 추구는 참된 영성의 길이 아닙니다. 인간은 신적인 것을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뜻 안에서 펼쳐진 인간적인 과정도 마땅히 필요한 과정임을 예수님의 인간적인 성장 과정은 잘 교훈합니다. 과정을 생략하고 좋은 결과만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과정에 충실해야 대개 좋은 결과도 얻습니다.분당에 처음 이사 왔을 때 아주 인기 있는 칼국수 맛집을 발견했습니다.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밀가루 파동으로 원가가 오르자 어느 때부터 칼국수 양이 조금씩 줄었습니다. 가격은 착한 가격을 내세우고 양은 슬쩍 줄인 것입니다. 그러면 손님도 모르는 것 같지만 다 알아챕니다. 결국 손님들도 하나씩 줄면서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슬쩍 줄이는 것이 문제입니다.어느 날, 한 어리석은 농부가 몇 년 동안 노새에게 먹인 귀리가 아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귀리에 약간의 톱밥을 섞었습니다. 다음날에는 조금 더 섞었고, 그 다음날에는 조금 더 섞었습니다. 그러니까 노새는 귀리의 양이 준 것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농부는 모든 것이 자기 의도대로 잘 되는 줄 알고 계속 귀리의 비율을 줄이다가 나중에는 거의 톱밥만 먹였습니다. 그래서 비용을 꽤 절약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새가 거의 톱밥으로만 된 식사를 마친 후 벌러덩 엎드러져 죽어버려서 결국 몇 배의 손해를 입었습니다.살면서 자신조차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예수님과의 관계가 조금씩 멀어지는 것을 경계하십시오. 예수님을 마음의 중심에서 조금씩 외곽으로 밀어내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것 같지만 나중에는 결국 영혼의 붕괴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예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사십시오.또한 교회 중심적인 삶이 멀어지지 않게 하십시오. 언제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잃어버렸습니까? 성전을 떠난 후였습니다. 요새 예수님을 잃는 가장 큰 이유는 교회 사랑의 퇴색 때문입니다. 교회가 지난 이천년 동안 많은 허물을 보였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착착 진행시켰습니다. 캘빈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길 때 교회를 어머니처럼 섬기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지극히 사랑하면 신앙에 실패가 없습니다.나중에 요셉 부부가 어디서 다시 예수님을 찾았습니까? 성전에서 찾았습니다. 그처럼 교회에서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교회에 올 때 예수님 외에 돈이나 권력이나 인맥과 같은 다른 것을 찾으러 오지 마십시오. 교회 내에서 다단계 판매 등은 아예 기생할 틈이 없도록 서로 협력해서 막아내야 합니다. 교회에서 다른 것을 찾으려고 하면 반드시 낙심과 불평과 미움과 섭섭함이 생깁니다.요새 어떤 교인들은 이 교회 저 교회를 찾아다닙니다. 헌신이 겁나서 방황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좋은 교회를 찾아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그처럼 생명수가 넘치는 말씀과 거룩한 비전과 은혜를 찾아 몸부림을 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교회를 힘써 사랑하고 돌보려는 자신의 결단입니다.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3가지로 듭니다. 첫째, 성공자들은 한결같이 비전과 목적에 맞게 살고, 둘째, 성공자들은 환경에 끌려 살기보다 환경을 주도하며 살고, 셋째, 성공자들은 소중한 일에 집중하며 산다고 했습니다.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요새 세월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갑니까? 방심하면 인생을 허둥대다 마치기 쉽습니다. 그런 실패가 없도록 중요한 것이 집중하며 사십시오. 정보의 홍수 시대에 성공적으로 살려면 단순화는 필수적입니다. 그러므로 환경을 단순하게 만들고, 인간관계를 단순하게 만들고, 삶을 단순하게 만드십시오. 또한 좋은 습관을 만들고 핵심가치와 본래의 사명에 집중하고 특별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누는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러면 마침내 때가 되어 수직상승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어느 날, 한 재벌 아들이 경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폭풍우를 만나 사막에 불시착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아버지가 수색대를 조직해 며칠 동안 사막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점차 극한 상황이 되는 것을 느끼고 그 아버지는 사막에 수백 만 장의 전단을 뿌렸습니다. 그 전단에는 사막에서의 생존 방법들을 자세히 쓰는 대신에 이렇게 썼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존아! 내가 지금 너를 최선들 다해 찾고 있단다.”사람은 극한 상황에 처하면 생존을 위해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합니다. 그때 중요한 것은 극한 어려움 속에서 맞이하는 고독과 공포를 이겨내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전단을 고독과 공포와 좌절감과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죽어 가던 아들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희망을 가지고 용기를 내어 며칠 간 생존의 끈을 놓지 않고 자신을 최대한 지켜서 결국 구조대를 만나 살 수 있었습니다.지금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아무개야! 내가 너를 사랑한다! 지금 내가 너를 위해 최상의 길을 예비하고 있단다.” 그 하나님의 음성에 집중하고 예수님을 마음의 중심에 다시 모시십시오. 사람이 무엇에 집중하느냐 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헛된 일에 집중하면 헛된 인생이 되고 중요한 일에 집중하면 중요한 인생이 됩니다. 항상 하나님의 사랑에 집중하며 특별히 하나님의 거룩한 뜻인 나눔의 비전이 흐트러지지 않게 함으로 마침내 때가 되어 수직상승의 은혜를 체험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누가복음2장39절~52절(성전과 말씀을 향한 소년 예수의 열정)

유월절에 성전을 방문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이 가지신 지혜와 하나님과 예수님의 밀접(密接)한 관계(關係)를 강조하고 있음을 봅니다.

예수님은 그 길고 긴 삼십 년 동안 하나님의 아들이자 인간의 구주로서 자신의 소명을 위하여 기다리며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음을 봅니다. 그분의 삶에 모험과 용기 그리고 정열은 칭찬의 가치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극히 훌륭한 감정들이라는 것을 기억합니다.

솔로몬보다 더 위대하신 분이 모리아 궁전보다 더 고귀한 성전을 세우실 때는, 망치나 도끼 혹은 쇠로 된 연장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커다란 종려나무가 소리 없이 그 몸체를 키우듯이 일군(一群)의 연장이나 무거운 도끼 소리가 전혀 울리지 않았음을 기억합니다.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39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40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41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42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43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44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45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46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47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49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50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51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52

할렐루야! 하나님 아버지! 계시를 받은 성서 기자들이 예수님의 모습에 대한 기록을 생략한 이유를 묵상합니다.

그분은 모든 어린이들의 본이 될 만큼 거룩하고 순결하며 또한 아름다운 생각과 감정들을 품고 계셨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우리가 알지 못하게 하셨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조용하게 그리고 은밀하게 인격을 형성해 가시는 그리스도!

오늘날 우리의 자녀들의 자람과 생활은 어떠한지 돌아보게 하시고,

어린이의 잠재력이 갖는 혜택과 권능을 감지하고 이 시절을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데 선용(善用)되도록 하옵소서.

이 시간에도 주님의 임하심을 바라며, 우리의 다음 세대를 믿음의 세대, 순종의 세대, 헌신의 세대가 되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참고: G. D. Boardman

2020/03/31(화) “누가복음 2:21-40”/ 작성: 강요섭

본문 누가복음 2장 21-40절

찬송가 85장 ‘구주를 생각만 해도’

예수님의 영유아기 시절 모습은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나마 누가복음에는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 예수님과 함께 겪은 몇 가지 사건들이 짧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그 본문들을 함께 살펴보시면서 하나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위해 어떤 사람들을 통해 일하셨는지 또 그 의미는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할례와 정결예식(21-24절)

마리아와 요셉은 경건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한 순종으로 나아가는 자들이었습니다.

(21-24)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이 태어나신지 팔 일이 되자 율법의 명령대로 할례를 행하고 천사가 전해준 ‘예수’ 곧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의 이름을 짓습니다. 또한 출산 후 40일이 되어 정결예식을 행하는 날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제사를 드립니다. 무엇하나 어그러지거나 지체함이 없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율법의 모든 요구를 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비둘기로 번제를 드린 이유는 하나님께서 어린 양을 잡을 경제적 여유가 없는 자들에게 허락하신 긍휼덕분이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첫 아이를 낳았음에도 그를 위해 어린 양 하나 잡아 하나님께 감사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우리가 만약 사정이 생겨 내 자녀를 누군가의 집에 잠시 맡겨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자녀가 고생하지 않도록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에 보내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실 때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 말씀에 순종하는 부부를 사용하셨습니다. 비록 그들은 하나님께 새끼 양 한 마리 드릴 수 없어 비둘기로 번제를 드리는 처지였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여 순종하는 그 신앙의 삶을 통해 아기 예수님이 율법에 순종해야 하는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의무를 다 할 수 있도록 돕는 귀한 하나님의 동역자로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양 한 마리보다 더한 삶의 예배였으며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순종의 제사였습니다. 오늘날도 어떤 교우님들은 하나님께 많은 헌금을 드리지 못하고 교회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한다고 스스로 자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가난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리아와 요셉의 가정에 가장 소중한 자신의 아들을 양육하는 사명을 맡기신 하나님을 기억 하십시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외적인 화려함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통해 일하고 계십니다.

시므온의 찬송(25-35절)

정결 예식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마리아와 요셉에게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25-3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이 시므온이라는 사람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속하여 위로해주시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리는 자였습니다. 특히 그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욕심과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집중하여 기민하게 순종하였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 그에 대한 설명 중에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라는 표현들은 그가 얼마나 성령 하나님의 지배아래 자신을 드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렇게 성령이 충만했던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지시를 받았고 오늘 드디어 아기 예수님을 만나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사명을 설명하고 또 예수님의 육적인 어머니로서 그녀가 감내해야 하는 고통을 미리 고지하여 줍니다. 이로서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서 맞이하여 확증하는 사명과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의 육적부모로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귀한 사명을 감당합니다.

그가 29절에 예수님을 만나 처음 하는 고백을 주목해보면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 말씀의 성취를 기다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라고 고백했는데 ‘주재’라는 뜻은 ‘집 주인’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 말로서 성전의 집 주인이시며 또한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부르는 고백이고 그 뒤에 고백을 보면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얼마나 자신의 인생에 목표로 삼고 달려왔는지를 알려주는 고백입니다. 죽기 전에 메시아를 보게 하신다는 그 말씀 때문에 그는 우연히 마주치는 한 사람도 허투루 보지 않고 혹여나 자신이 메시아를 보고서 그냥 지나칠 까 긴장하며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성령 하나님의 인도함 가운데 아기 예수님을 만난 뒤에야 자신을 평안히 놓아 주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명을 완수한 자만 느끼는 홀가분함과 평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시므온은 우리가 그 사명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표적을 보여주셨음에도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에 비해 시므온은 숨 쉬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던 아기 예수님을 보고서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 아기가 메시아이심을 알아보고 찬송을 드린 것입니다. 어찌 보면 아기 예수님을 만난 그는 이제 죽음의 문턱 앞에 더 가까이 가게되었는지도 모르지만 그것보다 자신이 죽기 전에 사명을 감당했다는 사실에 더 안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그가 생명을 잃는 것보다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더 걱정하고 있었음을 알려줍니다. 오늘날 현실의 늪에 빠져 사명과 영적 기민함을 잃어버린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시므온의 헌신은 큰 도전이 됩니다. 또한 이 시대에도 시므온과 같은 영적 기민함과 생명보다 사명을 귀하게 여기는 헌신의 마음이 충만한 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일들을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시므온은 찬송을 마친 뒤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사명을 설명하면서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해 세움을 받았고’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표적이란 ‘희생 제물로 바칠 짐승을 보증해주는 표시’라는 의미로도 사용되곤 했습니다. 고로 예수님이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해 세움을 받았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희생 제물로 자신의 아들을 주신 것이며 인간들은 그 사실도 모른 채 예수님을 비방할 것이고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마리아의 마음은 마치 칼이 마음을 찌르는 듯 아플 것임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리아의 사명을 보게 됩니다. 동정녀로 아이를 낳으며 사랑하는 남편에게 오해를 받고 고난을 당했는데 그 이후 받아야 할 고난은 칼로 마음을 찌르는 고통이었습니다. 훗날 마리아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앞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가장 근접한 고통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낳고 기르고 그 죽음 앞에 대면해야 했던 마리아는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명자로서 자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자녀를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실 때 우리는 그 길의 방해자가 됩니다. ‘내 자녀는 안 됩니다, 제가 어떻게 키운 자식인줄 아십니까?’ 이는 하나님의 뜻보다 자녀를 사랑하는 내 사욕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늘 본문의 마리아는 가장 사랑하는 자녀조차 하나님의 것이며 그 자녀를 위탁받은 청지기로서의 바른 자세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합니다.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은 그 자녀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십자가의 자리, 고난의 자리로 나아가려 할 때 우리의 마음은 칼로 찌르는 것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픔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아픔이요, 마리아가 공감했던 아픔임을 기억하고 기꺼이 눈물을 삼키며 축복해 줄 수 있는 부모로 성숙해질 때 우리는 부모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를 더 이상 키울 수 없어 갈대상자에 넣던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며 지은 ‘요게벳의 노래’라는 CCM의 가사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너의 삶의 참 주인 너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맡긴다 너의 삶의 참 주인 너를 이끄시는 주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드린다 그가 널 구원하시리 그가 널 이끄시리라 그가 널 사용하시리 그가 너를 인도하시리’ 언젠가 우리의 자녀가 우리 품을 떠나 주님을 위해 헌신의 자리로 나아갈 때에 이 노래의 가사를 기억하며 우리의 자녀를 주님 손에 믿음으로 맡기는 청지기가 되십시다. 그때까지 마리아와 요셉처럼 믿음으로 자녀를 기르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안나와 예수님의 성장(36-40절)

시므온이 찬송과 예언의 말씀을 전하는 사이 안나라는 선지자도 때마침 그곳에 나아와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36-38)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안나는 예측할 수 없는 궤적의 삶을 살아 왔습니다. 사랑하여 결혼했던 남편이 결혼 7년 만에 죽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죽은 이유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안나에게 큰 아픔이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안나는 그 아픔을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승화시켰습니다. 그녀는 팔십사 세가 되었음에도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다고 합니다. 누가는 굳이 왜 안나가 젊어서 과부가 된 사실을 기록해 놓았을까요? 이는 그 사건이 그녀의 경건과 따로 뗄 수 없는 관련을 가진 것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녀는 먼저 이 세상을 떠난 남편을 회복될 하나님의 나라에서 만나길 고대하였을 것입니다. 마치 욥이 고난을 당하고 회복될 때에 모든 재산이 2배로 회복되었지만 자녀만큼은 2배가 되지 않고 천국의 자녀의 빈 자리가 남아있던 것처럼 안나는 남편의 자리를 비워두고 그 자리를 하늘 소망으로 채워 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픔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되어 그녀로 하여금 금식의 자리로 기도의 자리로 이끄는 씨앗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부활의 소망되신 예수님을 두 눈으로 목도하며 이 아기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속량을 이루실 메시아이심을 고백하고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안나와 같은 아픔을 가진 교우님들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내고 그 상실의 아픔으로 오늘을 견디기 힘들어 하나님께 원망도하고 울기도하며 하루를 보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안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그녀를 지켜주시고 아기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셨던 하나님께서 오늘 상실의 아픔의 자리에 있는 교우님들과 함께 하고 계심을 신뢰 하십시다. 그 아픔은 변하여 소망이 되고 그 소망은 헛되이 사라지지 아니하고 반드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만남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어 39절에서 40절에는 예수님의 성장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39-40)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예수님께서 자라시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었다는 것은 육체적, 정신적, 영적 성장이 골고루 건강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마리아와 요셉이 부모로서의 수고를 기꺼이 지불하였음을 알려줍니다. 그 부모는 부족한 환경 속에서도 예수님의 성장을 위해 육체적, 정신적, 영적 필요를 채우려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모든 부모는 자녀의 성장을 위해 마리아와 요셉처럼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고 있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40절 본문을 현대어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아기는 날로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랐으며 지혜가 뛰어났다. 하나님께서 늘 보살피신 까닭이다.’ 우리는 부모로서 자녀가 지적으로 성장하며 육체적 아름다움과 힘이 세지는 것을 보는 기쁨을 누립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주신 큰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도가 지나쳐 마치 자녀의 성장이 내 힘만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됩니다. 겸손한 농부는 한 해의 풍작을 보며 자신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고백합니다. 실제로 비와 해와 공기와 바람을 주신 하나님이 없으셨다면 곡식은 하루 밤 사이에도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녀가 무탈히 잘 자라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늘 보살피신 까닭입니다. 이는 반대의 경우에도 동일한 믿음의 고백이 필요 합니다. 내 자녀가 내 기대와 다르게 자라가고 일반적 기준으로 볼 때 잘 성장하지 않는 것 같고 때로 아프더라도 아주 낙심하지 말아야 함은 여전히 그 아이의 참 부모 되신 하나님께서 그 자녀를 나와 함께 보살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독박육아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하는 공동육아임을 기억하며 늘 보살피시는 하나님께 감사로 나아가십시다.

오늘 우리는 아기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기르시고 메시아이심을 확증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4명의 사람들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죽기 전 메시아를 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붙들고 늘 영적 긴장감속에 살며 자신의 죽음보다 사명감당한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아기 예수님을 만나 증거 했던 시므온, 남편을 잃어버린 아픔을 하늘소망으로 채우며 금식과 기도의 자리를 지키고 생명의 주로 오신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증거 했던 안나, 가난한 환경에서 메시아로 보내주신 아들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헌신하였던 요셉, 그렇게 애지중지 키웠던 아들이 사람들의 비방 속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했던 마리아 모두 하나님 앞에 귀한 사명자로 경주를 완주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복음증거의 사명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 삶의 아픔을 소망의 노래로 승화시킬 기도자로, 하나님께 받은 귀한 자녀를 사명자로 키울 부모로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기꺼이 낮춤과 섬김의 자리로 나아가는 사순절, 주님의 사람들이 되십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기적을 이루어 가시는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목도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늙어서 죽음을 앞 둔 한 노인을 통해서도, 남편을 보내고 슬픔에 잠겼던 한 여인을 통해서도, 가난하여 새끼 양 한 마리조차 주님께 드릴 수 없었던 가난한 부모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일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동일한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의 나이와 아픔과 가난도 우리가 주께 받은 사명을 막을 수 없음을 기억하고 맡겨주신 사명을 위해 달려갈 수 있도록 힘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 되는 표인 할례를 받으셨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묵상해 봅시다.

2. 오늘 본문에 성령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사명자들에게 어떤 일들을 행하셨는지 찾아보며 묵상해 봅시다.

3.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을 양육할 수 있었던 비결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기억하며 나의 성장과정, 내 자녀의 성장 과정 속에 돌보아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해 봅시다.

4. 시므온, 안나, 마리아, 요셉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께 드렸던 헌신을 살펴보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삶의 예배가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작성: 강요섭)

알아 보는 사람들 – 누가복음 2장 22절-40절, 거룩한 가정 주일 성가정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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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정주일을 맞아, 본문은 누가복음 2:22-40로, 그리고 예수님을 알아보는 사람들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우리와 우리 가정도 예수님을 알아보는 성도로, 그리고 사람들이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로 알아보는 삶을 살아가길 권면하는 설교를 준비하였습니다.

성경 : 누가복음 2:22-40

설교 : 알아 보는 사람들

길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

지난 여름이 시작되던 무렵, 농협을 가다가 우리 교회 어르신을 한 분 만났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 길에 서서 한참을 대화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반가운 이유는, 지나가도 아는 분도 없고 저를 알아보는 분도 거의 없는데, 마침 저를 알아봐 주셨기 때문이지요. 마음으로 뜻을 전한다는 말인 이심전심이라는 말과 같이, 나를 알아봐 줌으로써 나에 대한 관심을 전하는 행동입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길거리에서 나를 알아 보고 반갑게 인사하고 길에 서서 한참동안 대화할 정도의 사이면, 가깝고 정말 친한 사이이지 않겠습니까?

연예인이 지나가는데 아무도 알아 보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유명하지 않거나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아 보는 사람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병든 자를 고치시는 가운데에도 여전히 예수님을 알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구원자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이셨는데도 그들의 마음이 열리지 못하였기에 예수님을 알아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태어난지 8일 밖에 되지 않은 아기를 보면서 그 아기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그 아기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한 눈에 알아본 사람들이 오늘 본문에 등장합니다.

베들레헴의 구유에서 탄생하신 예수님께서는 태어난지 8일 후에 모세의 율법을 따라서 할례를 받으셨습니다.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비록 형편이 어려웠지만,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었기에 율법이 정한 대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 할례를 행했습니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나사렛의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예루살렘을 들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할례를 행함으로 율법을 지켰습니다.

가정에 율법이 바로 서 있을 때, 그 가정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가정의 법칙이 분명하게 세워져 있고 공정하게 법칙이 적용될 때, 그 가정에는 불평과 불만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분명하고 공정한 법칙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부모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자녀들을 말씀으로 가르칠 때, 그 가정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될 수 밖에 없음을 기억합시다.

예수님의 가정이 율법대로 예수님의 할례를 위해 예루살렘에 왔을 때, 아기 예수님을 한 눈에 알아 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 아기가 누구인지 몰랐지만 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인류의 구원자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한 사람은 시므온이라는 사람이었고 또 한 사람은 안나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만나 찬양하는 축복을 누립니다. 이 두 사람이 어떤 것을 보고 예수님을 알아 보았는지는 본문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상상하기도 힘듭니다. 한 눈에 알아본 것인지, 예수님의 얼굴에 메시아라고 쓰여 있었던 것인지 혹은 천사가 예수님의 뒤에서 가리키고 있었는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들이 예수님을 알아볼 정도로 메시아를 기다리며 경건하게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먼저 시므온이라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고 있었습니까?

마태복음 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또 안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까?

마태복음 2: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두 사람 모두 공통된 삶은, 의롭고 경건하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기도에 힘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기도하기에 힘썼기에 이 두 사람이 예수님을 알아 보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성령의 지시하심(크레마티조, χρηματίζω)이란, 기도 중에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을 말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미리 가르쳐 주시며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마치 운전할 때 네비게이션이 앞의 길을 미리 알고 오른쪽 왼쪽 직진을 알려 주듯이,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사모하며 기도하는 이들에게 지시하시고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통하여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것입니다.

시므온과 안나의 경건생활의 비결은 메시아에 대한 주의 말씀을 기억하고 기도하고 삶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알아 보았으며, 노래하고 찬양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말합니다.

일평생 믿음 생활을 지켜온 우리들인데, 우리는 과연 시므온과 안나처럼 예수님을 알아 볼 수 있는 사람일까요? 만일 주님께서 우리 곁에 평범한 모습으로 오신다면, 누가 평범한 모습의 예수님을 알아 보는 사람들이 될 수 있을까요?

평범한 목수의 아들로, 그리고 허름한 옷을 입고 우리 옆에 서 계시다면, 혹은 우리 교회에서 함께 예배의 자리에 앉아 계시다면, 그 분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모든 민족을 모으고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35-36,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 말합니다. 우리가 언제 주님을 돌보았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예수님을 알아 보지는 못했지만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예수님께 칭찬 받으며 천국의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영접한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복이 있는데, 예수님을 알아보는 사람에게는 어떤 복이 있겠습니까?

한 해의 마지막과 시작을 바라보는 이 때, 우리는 경건 생활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말씀을 더욱 가까이 하려고 애쓰고 기도하려고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치열한 수고와 노력 없이는 결코 시므온과 안나처럼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을 알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주님을 놓치지 않고 우리 주님도 나를 알아보시지 않겠습니까?

시므온과 안나처럼, 경건생활, 매일 묵상과 기도에 힘씀으로써, 나도 예수님을 알아 보는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또한 우리 가정이 예수님을 알아보는 가정이 되도록 항상 가정에 말씀이 있고 기도가 있는 가정, 찬양이 흐르는 가정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하루에 성경을 어떻게 묵상하고 읽을 것인지, 기도를 언제 어디서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결단하십시오. 그리고 경건의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더욱 힘써 수고하십시오.

나의 경건생활과 거룩한 우리 가정을 만들어 가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희생과 수고가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부분입니다. 내가 더 수고하여 주님을 알아보는 나, 주님을 알아보는 우리 가정을 만들어 갑시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은, 사람들이 내가 예수님의 사람임을 알아보도록 살아가야 합니다. 일년을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같이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알아 보는 사람이 없다면, 나의 삶이 과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향기를 나타내었는지 나를 심각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예수님의 사람임을 알아볼 수 있도록 경건하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고 그리스도의 편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나가면서

율법대로 할례를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찾은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그들이 모시고 온 아기 예수님을 보고서도 메시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한 눈에 알아 본 시므온과 안나는, 말씀과 기도에 항상 힘쓰던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도 시므온과 안나처럼, 말씀 묵상과 기도에 힘쓰는 경건한 사람, 예수님을 한 눈에 알아 보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가정도 경건한 가정으로 세워감으로써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정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알아보는 경건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돌아보는 주일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베들레헴에서 동방박사들과 목자들이, 성전에서는 시므온과 안나를 주님을 알아 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 보았던 이들처럼, 나와 우리 가정도 주님을 알아 보는 사람들이 되고 싶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알아 보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을 통하여 경건한 삶을 살고자 결단하오니, 이 연말에 성실하게 결단을 지켜갈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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